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200
199화.
헤니투스 영지의 가장 높은 곳.
영주성 첨탑.
“형, 형님-!”
차남 바센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그는 한 손으로 난간을 부여잡은 채 금방이라도 첨탑 밖으로 뛰쳐나갈 듯했다.
빛이 지나간 자리.
바센 헤니투스는 한차례 빛이 지나가고 시야가 돌아왔을 때, 제일 처음 한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쩌저적.
금이 갔던 거대한 검.
검이 서서히 갈라지며 공기 중으로 사라져 갔다. 사라지는 잔해에 닿은 와이번 몇 마리는 허무하게 흔적도 없이 먼지처럼 스러졌다. 그 장면에 두려움을 느끼기도 전.
방패가 보였다.
아주 작은 방패는 부서지지 않았다. 그러나 검 끝이 닿았던 곳은 당장 부서질 듯 금이 가 있었다. 방패는 금이 가지 않은 곳이 없었다.
위태위태해 보였다.
그리고 형님, 케일 헤니투스도 보였다.
삐이이- 삐이이이-
정보 통신실.
그곳에 온갖 긴급 연락이 쏟아지고 있었다.
특히 동북부에서 온갖 연락들이 쏟아졌다.
현재 헤니투스 가문으로 연결된 수많은 영상 통신구들.
그 영상통신으로 전해진 전쟁의 광경.
바센은 이 시끄러운 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저 멀리 겨우, 쓰러지지 않고 겨우 버티고 있는 형님만이 보였다.
그가 토해내는 검은 피들이 보였다. 17살 바센의 머릿속에 처음으로 전쟁과 그로 인한 아픔이 새겨졌다.
그 순간이었다.
-바센 헤니투스.
그에게 알베르 크로스만, 왕세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에 바센은 그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했다. 그러나 상당히 메마른 목소리가 곧 바센의 정신을 일깨웠다.
-네 형님이 너에게 무엇을 명했지?
바센은 고개를 들었다.
바센, 그가 할 일.
그는 고개를 돌려 정보 통신실을 보았다. 지금 이곳은 로운 왕국 모든 연락망과 영상이 교신되는 곳. 전쟁에 있어 왕실만큼이나 중요한 모든 정보가 모이는 곳.
-부끄럽지 않으려면, 후회하지 않으려면 네 할 일을 잊지 마라.
알베르는 스스로에게 하는 말을 내뱉었다.
영상통신 화면에 비친 알베르는 눈에 실핏줄이 다 터진 채 붉어진 눈으로 헤니투스 영지의 전경을 한시도 놓치지 않고 있었다.
그는 바센에게 한마디를 전했다.
-왕가 1기사단과 마법병단 1대대는 지금부터 헤니투스 영지로 간다.
케일 헤니투스는 기다리라고 했다.
그러나 왕세자는 부끄럽지 않기 위해, 후회하지 않기 위해 자신이 할 일을 시작했다.
로운 왕국의 마법병단이 세상에 처음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기 위해 발을 내디뎠다.
또한 바센도 멍해 있는 통신 마법사들에게 지시했다.
“…지금부터 로운 왕국 전역에 적의 힘을 정확하게 전합니다.”
3일 전 왕세자의 선언이 있었던 저녁, 바센에게 형님 케일 헤니투스는 말했다.
‘우리가 시작이다.’
그 목소리가 바센의 머릿속에 선명하게 떠오르기 시작했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지. 우리가 살아남고 성을 지키는 모습을 알리면 로운의 기세가 달라질 거다.’
‘왕국민들의 머릿속에 승리를 새겨야 돼.’
‘그래야 전쟁을 이겨내고.’
그 말을 하는 형님은 평소처럼 참 담담했다.
‘모두가 살아남을 수 있어.’
그리 말하던 형님은 지금은 겨우 버티고 있다.
바센은 통신 마법사들에게 명했다.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이겨내는지 정확하게 전합니다.”
지금부터 로운의 기세는 달라질 것이다.
바센은 그럴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는 고개를 숙여 성벽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 성벽 위에는 혼혈 쥐족 드워프 뮐러가 있었다. 그는 시야가 돌아오자마자 들린 작은 소리에 눈을 크게 떴다.
쩌저적.
성벽.
성벽에 금이 가고 있었다.
‘내가 설계한 성벽이……!’
겁은 많았지만 자부심이 상당했던 드워프 혼혈의 눈동자에 두려움 대신 다른 감정이 맴돌기 시작했다. 그러나 백작 부인에게 목덜미가 잡혀 있던 뮐러는 곧 헛숨을 들이마셔야 했다.
“허억!”
날려졌다. 뮐러는 제 몸이 패대기쳐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비명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케일!”
백작 부인 바이올란의 비명 소리였다. 동시에 데르트 백작의 비명과도 같은 외침이 들려왔다.
“모두 정신 차려!”
뮐러는 고개를 들었다. 늘 차분하고 순해 보이던 백작의 얼굴이 일그러지다 못해 흉살과 같이 변해 있었다.
백작은 핏대를 세우며 지시했다.
“당장 투석기를 발사한다!”
영주는 검을 뽑아 들고 성벽 난간으로 다가가 모두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 목소리에는 분노와 슬픔이, 불안감이 섞여 있었다.
“한 놈도 살리지 마라!”
그 소리와 함께 또 다른 소리가 뮐러의 귓가에 닿았다.
콰앙!
처음 보인 것은 은빛이었다.
은빛의 방패는 아니었다. 그러나 마치 은하수처럼 은빛의 무언가가 계속해서 레인 시 하늘 위에 생겨나고 있었다.
실드였다.
마치 케일의 은빛 방패를 흉내 내는 듯한 실드가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었다.
하나, 둘, 삼중, 사중. 계속해서 은빛 실드가 생겨나며 하늘을 덮고 또 덮었다.
반쪽이지만 드워프였기에, 뮐러는 그 힘이 무엇인지 곧바로 깨달았다.
용이다.
저럴 만한 존재는 용뿐이다.
이 영지에 사는 어린 용.
어린 용이 드리운 실드였다.
그 은빛 너머에는 뮐러 그도 잘 아는 이가 보였다.
최한.
그가 투구를 쓴 기사와 싸우고 있었다. 검은 오러가 매섭게 일렁이고 있었다. 여전히 빛이 조금밖에 남지 않은 어둠이었으나, 그 오러는 어느 때보다도 맹렬하게 분노를 담고 있었다.
“하, 하하-”
그리고 그 오러를 가볍게 막아내는 검이 있었다.
투구를 쓴 기사, 그는 웃으며 검의 형상을 띤 고대의 힘으로 최한의 오러를 막았다. 한 번 검이 부서졌건만 힘들어 보이지도 않았다.
콰앙!
한 번의 부딪침.
최한은 뒤로 물러서며 발을 디뎠다.
투둑.
하늘 위에서 최한의 걸음을 지탱해 주는 존재들이 있었다.
도망가던 수많은 해골 떼들.
그들이 다시 돌아와, 아니, 메리가 최한에게 그가 디딜 땅을 만들어주었다. 셀 수 없이 많은 하얀 뼈들로 둘러싸인 최한과 투구 기사가 탄 와이번. 이 둘은 수많은 뼈들의 움직임으로 인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 광경이 가장 잘 보이는 이가 있었다.
메리.
그녀는 온몸을 죽은 마나로 휘감은 채 주체할 수 없이 손을 떨고 있었다. 그녀는 모든 게 너무나도 잘 보여 탈이었다.
“케일!”
백작 부인이 겨우, 겨우 버티고 서 있는 케일을 부축했다. 그녀는 비명을 삼켰다.
부축하자마자 케일이 비틀거리며 주저앉았다.
케일의 눈, 귀, 코, 입, 모든 곳에서 검은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케일은 숨조차 쉬기 버거워 보일 정도로 피를 토해내고 있었다.
백작 부인은 잡고 있는 케일의 몸이 차가워지는 것을 느꼈다. 아들의 몸이 차가워지고 있었다.
저 멀리 치료사와 신관이 달려왔다.
“케일, 조, 조금만, 조금만 버티렴.”
그녀는 연신 케일의 팔과 몸을 주물렀다. 피를 어찌나 쏟아내는지 그녀는 케일이 온몸의 피를 다 쏟아낼 것만 같았다.
그때, 그녀는 피를 게워내며 희미하게 겨우 내뱉는 케일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괜 …괜찮아.”
뭐?
케일을 바라보는 그녀의 동공이 흔들렸다. 어느새 케일 곁으로 다가온 신관도, 치료사도 순간 멈칫했다.
케일의 머릿속에는 한 존재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인간, 피를 너무 많이 쏟는다. 인간, 평소랑 다르다. 인간, 제발, 인간. 피 쏟지 마라. 가만 안 둔다! 내가 죽어도 가만 안 둔다.
“여기 있어.”
케일의 손이 무언가를 잡듯 오므려졌다.
백작 부인은 허공을 잡는 손길에 눈가를 일그러뜨렸다. 분명 케일은 제정신이 아닐 것이다. 아마 헛것을 보며 이러는 것일 터.
그녀는 케일을 보다가 미쳐 버린 것 같은 백작을 보고 간신히 마음을 가라앉혔다. 자신이라도 정신을 차려야 한다.
그러나 이어진 케일의 말에 그녀는 감정을 참기가 힘들었다.
“…가면 다쳐…….”
겨우 내뱉는 말에 백작 부인은 울컥 치미는 감정을 가라앉히기 힘들었다. 피를 토해내며 한다는 소리가, 분명 지금 제정신도 아닐 것인데!
그런 순간조차!
가슴이 찢어지는 기분이었다.
그때 케일의 입이 다시 겨우 열렸다.
“…내 옆에서- 쿨럭!”
피가 섞인 기침이었다. 다시 피가 쏟아졌다.
케일은 그 바람에 뒷말은 겨우 입모양으로만 했다.
‘족쳐.’
내 옆에서 족쳐.
그 말을 용케 한 존재만이 알아들었다. 케일의 바지 자락은 비도 안 오건만 피가 아닌 다른 것으로 젖어 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바지 자락을 적시던 존재는 케일의 말을 제대로 알아들었다.
-죽인다.
우르르르.
흐린 하늘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자연 재해를 담았던 검.
그 본질이 담겼던 검만은 못하지만 라온도, 용도 할 수 있었다.
흉내쯤이야.
그렇기에 용이다.
폭풍.
그리고 해일.
용은 모든 것을 쓸어버릴 힘을 쓰기 시작했다. 하늘이 검게 물들어갔다.
동시에 라온은, 어린 용은 고룡에게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이제야 모든 정황이 이해되었고, 케일이 왜 이러는지 짐작이 되었다.
고룡 에르하벤에게 배울 당시, 그때 그가 흘러가듯 했던 말.
‘꼬맹이, 드래곤 슬레이어를 들어봤나? 용잡이라고 불리기도 하지.’
라온은 그 단어가 참 마음에 안 들었다. 감히 위대한 용을 잡는 놈이라니.
‘뭐, 꼬맹이 넌 평생 가도 드래곤 슬레이어에게 다칠 일은 없겠지만. 아마 드래곤 슬레이어가 널 살리려고 온갖 짓을 다 할 테니까.’
케일이 드래곤 슬레이어 가문의 힘을 이어받은 줄 알았던 고룡 에르하벤. 그는 이런 날을 상상하고 한 말이 아니었다.
그저, 상식으로 라온에게 알려준 이야기였다.
‘드래곤 슬레이어는 특이한 존재들이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섰지. 자연을 닮은 존재야.’
인간 중 자연을 닮은 존재. 그 말에 라온은 반응했다.
‘우리 약한 인간도 자연과 비슷하다!’
‘그러니까 네 약한 인간 놈이 용-! 아무튼, 지가 숨기려고 하니 그냥 모른 척해야겠지만.’
‘뭐라는 거냐?’
‘아니다. 여하튼 꼬맹이, 드래곤 슬레이어가 네놈을 건들면 도망가라.’
그 말에 라온은 코웃음을 쳤다. 그러나 에르하벤은 꽤 진지하게 말했다.
‘그 새끼들은 용을 잡아먹고 성장하는 놈들이거든.’
저마다 다른 색과 속성을 지닌 용. 자연을 담았고 닮은 존재인 용. 자연을 닮고 싶으면 용을 잡아먹으면 된다.
‘특히 어린 용은 조심해야 돼. 몸도 덜 성장했고 브레스도 못하니까. 너야 뭐 박복한 놈이 옆에 있으니 느긋하게 성장해도 되지만.’
‘위대한 내가 다칠 리 없다!’
에르하벤은 헛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세상에 위대한 존재는 없다, 꼬맹아.’
라온은, 검은 용은 지금에서야 제대로 깨달았다.
나는 위대하지 않다.
아직 멀었다.
라온은 투명화한 제 앞발을 잡은 손을 쳐다봤다. 손 위로 피가 떨어지고 있었다. 라온은 제 마음을 마법에 담았다.
투둑, 투둑.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살아남은 와이번들은 여전히 은빛 실드로 달려들었다. 곰족은 투석기와 화살을 피하며 금이 간 성벽으로 달려들었다.
호족은 그런 곰족의 뒤를 노렸으나, 곰족의 수는 호족의 열 배가 넘었다.
그때였다.
우르르-
비가 바뀌기 시작했다.
비는 폭풍우가 되어, 해일처럼 변해 몰아치기 시작했다.
하늘에서 벼락이 내리쳤다.
끼이이-!
와이번과 그들 위에 탄 기사, 그리고 곰족들을 향해 수십, 수백 개의 벼락이 내리치기 시작했다. 벼락들은 조금의 자비도 없이 정확하게 적의 목만을 노렸다.
마치 자연을 닮았던 그 검처럼, 벼락은 날카롭게 모든 것을 베어내려 했다.
그러나 그 해일도 폭풍우도 가볍게 검으로 내리그어 없애 버리는 이가 있었다.
“여기 정말 재밌네. 내 흉내를 내는 마법산가? 누구지?”
투구를 쓴 기사.
그는 무언가를 탐색하듯 입맛을 다시며 제 검으로 해일을 닮은 폭풍우도, 벼락도 베어냈다. 라온이 느꼈던 고대의 힘.
자연 재해의 일부.
폭풍우와 해일, 화산, 그 세 가지를 가진 그의 검은 마법으로 만든 가짜를 가볍게 짓눌렀다.
투구 기사의 시선이 최한으로 향했다. 그는 입안에 머금은 피를 뱉어내는 최한을 보며 웃음을 흘렸다. 검은 오러는 제 주인을 담아 끊임없이 일렁이고 있었다.
투구 기사의 눈동자가 최한과 닿았다.
“네가 어둠을 얻었다면 모르겠다만, 아직은 멀었어.”
기사는 가볍게 검을 내리그었다. 내리긋는 그의 손등에서도 살짝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검은 오러가 만든 생채기였다.
하지만 투구의 기사는 별다른 두려움이 없었다. 드워프의 갑옷이 그의 몸을 보호하고 있었으니까.
드래곤을 죽이고 싶은 드워프족의 역작.
용잡이의 갑옷으로 충분했다.
‘물론, 긴장을 놓을 수 없는 놈이지만!’
채앵!
검과 검이 부딪쳤다.
어느새 코앞으로 다가온 검은 오러가 기사의 왼뺨에 살짝 상처를 만들어냈다. 동시에 화산을 담은 자연의 힘이 검은 오러를 내리쳤다.
콰앙!
그 소리는 천둥도 묻혀 버릴 만큼 컸다.
“못 이긴다니까.”
기사는 웃었고, 최한은 이를 꽉 깨물었다. 최한도 기사의 말이 무엇인지 인지하고 있었다.
‘완성했다면……!’
검은 오러. 어둠을 완성했다면 그나마 싸워볼 만하겠는데!
도대체 저 검이 무엇이기에. 오러는 검을 이겨내지 못했다. 상극이니 뭐니를 떠나 그냥 격이 달랐다. 최한은 이제 수십 마리만이 남은 몬스터 해골들 중 하나 위에 서며 숨을 골랐다.
숨이 차왔다.
강하다.
자신보다 강하다.
한 걸음.
딱 한 걸음만 더 내디뎠다면 이자를 이겼을 텐데!
“허억, 헉.”
언제 숨을 가쁘게 내쉬었던가. 몇십 년 전부터는 떠오르지도 않았다.
최한은 숨을 내쉴 때마다 흘러내리는 피를 닦아내지 못했다.
오랜만에 피를 토하니 최한은 이 감각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동시에 한 가지를 깨달았다.
케일은 매번 이렇게, 자신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많은 피를 토했다.
최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자는 강하다.
그러나 최한은 진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없었다. 최한은 더욱더 얼굴을 찡그렸고 기사는 비웃듯 말을 이었다.
“고대의 힘을 지닌 놈이 있다고 해서 왔더니, 정말 소문대로 피를 토할 줄은 몰랐네. 몸도. 그릇도 안 되면서 고대의 힘을 얻은 건가?”
그가 내뱉는 말이 최한의 신경을 거슬리게 만들었다.
“자연이 저놈에게 고대의 힘을 허락했다고?”
그는 꼭 마치, 케일이 얻어선 안 될 것을 얻었다는 듯 말하지 않는가.
최한은 그 때문에 머릿속이 복잡했다.
사실 지금 투구 기사에게 가장 신기한 존재는 케일 헤니투스였다.
자연이 허락한, 그릇이 되는 존재만이 고대의 힘을 얻을 수 있었다.
보통 이 땅 위의 존재들에게는 천운이라 할 만큼 운이 좋아야 고대의 힘을 얻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사실은 고도의 계산 아래 자연이 택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저 녀석에게 고대의 힘이 두 개나 주어졌다고?
저렇게 그릇이 작은 놈에게?
나무와 인간의 생존력.
투구 기사가 방패를 겪으며 곧바로 깨달은 케일의 힘이었다.
그는 다음으로 최한도 신기했다.
자신과 비등한 크기의 그릇을 지닌 자. 그는 자연이 최한에게 어떠한 고대의 힘도 내려주지 않았음이 이상했다.
최한은 딴생각을 하는 듯한 기사에게 달려들었다. 다시 한 번 투구 기사의 검과 최한의 검이 부딪쳤다.
콰앙!
그 부딪침만으로도 곁에 있던 해골들이 부서지고 주변의 공기들이 흔들렸다.
반투명한 검과 검은 오러가 부딪친 채 서로를 노려보았다. 최한은 투구 너머 갈색 눈동자가 보였다. 그 눈꼬리가 휘었다.
위험하다.
최한은 뒤로 물러서려 했다.
이런 감각은 오랜만이었다.
마치 고룡 에르하벤을 떠올리게 하는 힘. 투구의 눈동자가 최한의 눈동자를 깊숙이 파고들었다. 기사는 최한에게 속삭였다.
“…너도 오래 살았구나.”
그 말에 최한의 몸이 멈칫거렸다.
너도라니?
그 잠깐의 멈칫거림에 기사는 씨익 미소를 그렸다.
그의 팔이 움직였다.
“커헉!”
최한의 목덜미가 잡혔다. 그러나 그 목덜미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메리의 몬스터들이 급격하게 투구 기사가 탄 와이번을 물어뜯었다.
최한의 어깨에 기사의 검이 박혀 있었다.
해일처럼 상처를 파고들고, 폭풍우처럼 휘몰아치며, 화산처럼 뜨거운 힘이 최한의 어깨를 잠식해 나갔다.
투구 기사는 최한의 목덜미를 움켜쥔 채 미소를 그렸다. 목덜미가 잡힌 최한은 공중에 위태로운 모습으로 떠 있었다.
“재밌는 경험이었어. 오랜만에 외출한 보람이 있군. 너희 정도면 곧 또 보겠지.”
기사는 일그러진 최한을 보며 실소를 흘렸다. 분노와 아픔을 숨기지 못한 얼굴. 기사는 그 얼굴을 보며 점점 손에 힘을 풀었다.
그러나 그때, 그는 최한의 표정이 사라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덥석.
검이 박힌 어깨의 손이 투구 기사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최한의 다른 손이 제 어깨에 박힌 검을 움켜쥐었다.
순식간이었다.
취이이익.
최한의 손바닥이 용암에 닿은 듯 타들어갔다.
몇 초도 아닌 짧은 순간, 최한은 투구의 기사를 표정 없이 응시했다.
이게 최한의 진짜 얼굴.
일부러 멈칫거렸던 최한은 본인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냈다.
아무것도 없는 표정. 오래 살아오며 굳어진 그의 표정이었다.
퍽!
최한의 발이 와이번의 목덜미를 찼다.
그리고 그는 두 손에 투구의 기사와 검을 움켜쥔 채 허공으로 뛰어내렸다.
해골들이 멈칫하다가 빠르게 자리를 비웠다. 기사가 떠난 와이번에게는 곧바로 벼락이 내리쳤다.
끼이이이-! 쿵!
마지막 와이번이 하늘에서 땅으로 추락했다.
용은 마지막 와이번을 죽였다. 그리고 자신이 만든 은빛 실드 밖으로 나갔다. 하늘에는 이제 용뿐이었다.
그리고 최한은 투구의 기사와 함께 추락했다.
“미쳤어?”
투구의 기사는 발로 최한을 차며 떨어지려 했다. 그리고 고대의 힘을 더 강하게 일으켰다.
그러나 최한은 검은 오러를 휘두른 손으로 고대의 힘으로 만들어진 검을 절대 놓지 않았다.
투구의 기사는 추락이 두렵지 않았다. 그건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등 뒤.
죽은 마나.
자연과 상극인 그것이 똘똘 뭉치며 하나의 점을 이루어갔다.
그 중심에는 작은 소형 몬스터 해골이 있었다.
투구 기사는 자신에 비하면 비루하지만 점점 모이는 힘에 미간을 찌푸렸다.
등 뒤.
등 뒤로 작은 화살촉이 자신을 노리는 것이 느껴졌다.
네크로맨서는 힘을 모았다.
소형 몬스터를 감싼 죽은 마나가 마치 검처럼 날카롭게 변해갔다.
그리고 뭉쳐진 죽은 마나를 받치는 힘이 생기고 있었다. 가짜지만, 해일과 폭풍우, 그리고 화산을 닮은 마법.
어린 용은 투명화한 채 그 힘을 죽은 마나에 보탰다. 짧은 검처럼 뭉쳤던 죽은 마나는 화살촉이 되었고, 라온의 힘이 그것을 기다란 화살로 빚어냈다.
투구의 기사는 제 손을 붙잡고 있는 최한의 손에 불거진 핏줄을 볼 수 있었다. 절대 놓지 않으려는 의지가 보였다.
이러다가 다치겠는데. 기사는 인상을 찡그린 채 외쳤다.
“미쳤나? 저걸 맞으면 난 죽지 않아. 네놈만 죽어!”
화살은 정확히 투구 기사의 등을 향해 있었다. 점점 완전한 모습으로 변해가는 화살. 저 화살은 투구의 기사도, 최한도 쉬이 관통해 버릴 것 같았다.
그 화살을 마주 쳐다보던 최한은 투구의 기사를 쳐다봤다.
“난 이미 미쳤어.”
이미 미쳤다.
예전에, 아주 오래전에.
어둠의 숲에서 자신은 미쳤다. 수십 년 홀로 살아오려면 어딘가 미칠 수밖에.
최한은 이 기사 놈이 여유로운 게 싫었다. 다치기라도 해야 분노가 가라앉을 것 같았다.
표정 하나 없는 얼굴에 웃음이 그려졌다.
제 뜻을 알아차린 메리와 라온이 고마워서였다.
역시 혼자보다 여럿이 더 강했다.
최한의 머릿속으로 라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절대로 넌 죽지 않는다. 바보 최한아.
그리고 화살이 내려꽂혔다.
“…미친!”
투구 기사의 욕과 함께 다시 한 번 거대한 소리가, 이번엔 헤니투스 영주성 밖 땅을 내리쳤다.
콰아아앙!
케일은 또 한 번 시야를 가리는 폭발을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대책 없는 놈들.”
심장의 활력.
질긴 재생력은 케일의 몸에 깃든 죽은피를 모두 지워냈다.
케일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직 그는 쓰러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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