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204
203화.
마치 철새의 이동과 같았다.
밤바다의 물살을 가르는 300여 척의 함대는 삼각 진형으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불굴 연합의 노르란드 해군기지에서 출발한 함대.
그 중심엔 북부 해안가의 얼어붙은 얼음들을 갈라냈던 쇄빙선 중 가장 거대한 배가 있었다.
남부로 내려오며 진형의 중심을 차지한 그 배의 가장 꼭대기 선실에서는 투구의 기사가 치료를 받고 있었다.
“한심하네.”
힐러가 툭 던진 말에 드래곤 슬레이어는 얼굴을 구겼다. 그러나 제대로 말을 하지는 못했다.
힐러는 한숨을 내쉬며 용잡이의 심장에 힐을 시전했다.
심장이 3분의 2가량 망가졌다.
이걸 복구하려면 적어도 일주일은 걸릴 터. 복구만 일주일이지, 완전히 회복하려면 한 달은 걸릴 것 같았다.
더욱이 팔까지 잘려서 왔다.
팔이야 단체에 말해서 복구하도록 조치하면 그만이었다. 힐러는 드래곤 슬레이어에게 비웃음을 흘렸다.
“너도 테이머 노인네처럼 한동안 감금되어야겠어.”
“시끄, 크윽!”
용잡이는 입을 열다가 도로 닫아야 했다.
막판에 제 심장을 움켜쥐었던 그 마법 발톱. 그것 때문에 몸에 크게 무리가 갔다.
그때, 투구의 기사와 힐러를 지켜보던 한 사람의 입이 열렸다.
나이 든 마법사는 목소리가 차가웠다.
“그 작은 영지에 너보다 조금 모자란 소드 마스터, 네크로맨서, 그리고 네 검을 한 번 막을 만한 고대의 힘 소유자가 존재한다고?”
“어.”
노인을 대하는 투구 기사의 태도는 건들건들했다. 그러나 마법사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말을 이었다.
“거기에다 나보다 더 뛰어난 마법사가 있단 말이지?”
투구의 기사는 속으로 멈칫했지만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고 답했다.
“그래. 내 재해 검을 흉내 내고 심장을 망가뜨린 마법사야. 마법사가 있어.”
투구 기사는, 용잡이는 용의 두 눈을 보았다.
하지만 그는 말하지 않았다.
‘내가 가져야 돼.’
말하면 이 단체 놈들에게 빼앗긴다. 빼앗긴 후엔 뭐 적선하듯이 자신에게 용의 목줄을 넘겨줄 터. 원래 그렇게 용을 한 마리 받기로 약속하지 않았던가. 물론 사라지는 바람에 받지 못하게 되었지만.
투구의 기사는 헤니투스 영지 전투를, 저를 쳐다보던 용의 두 눈을 다시 한 번 떠올렸다.
‘눈 크기로 봐선 고룡이 아냐.’
어린 용이다. 분명히 아직 1차 성장도 안 한 존재다.
투구의 기사는 쿵쾅거리는 심장을 최대한 억눌렀다.
용은 브레스를 안 쓴 것이 아니라, 못 쓴 것이다.
그 사실에 투구 기사는 희열이 찾아왔다. 잘만 하면 이 단체의 우두머리, 그 미친놈 모르게 강해질 기회를 얻을지도 모른다.
‘두 번째 용은 내가 잡아먹는다.’
투구 기사는 미래를 기약했다. 그런 그의 귓가로 마법사의 목소리가 한 번 더 들려왔다.
“네놈보다 못하다는 소드 마스터. 그 녀석의 그릇은 어떻던가?”
그릇.
고대의 힘을 담을 수 있는 신체를 뜻했다.
고대의 힘은 통상적으로 약하다고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뭣도 모르는 멍청한 인간들이 하는 말이었다.
고대의 힘 중, 인간 본연의 힘이 아닌 자연에서 파생되어 자연의 속성을 띤 힘들은 자연이 떼어준 것이다.
그것이 약할 리가 있겠는가.
쓸 줄 모르니 약한 줄 알 뿐이었다. 물론 고대의 힘 중 인간 본연의 힘은 자연 속성보다 약하다.
투구 기사는 마법사의 물음에 멈칫했지만 이내 아무렇지 않게 답했다.
“별로야. 그릇은 크지 않아.”
투구의 기사는 거짓을 내뱉었다.
검은 오러의 소드 마스터, 그의 그릇은 자신과 비등했다.
그렇기에 사실대로 말할 수 없었다.
사실대로 말하면, 다친 자신을 굳이 치료해 줄 이유가 없으니까. 그들은 또 다른 그릇을 찾으려고 할 것이다.
“흐음.”
마법사 노인은 고민에 빠진 듯 미간을 찌푸렸다.
“로운 해안을 정복하면 곧바로 헤니투스 영지로 가야겠군. 그곳을 없애야겠어.”
투구의 기사는 아픈 몸을 부여잡고 꽤나 다급하게 말했다.
“그 귀족 나부랭이! 그 빨간 머리 놈은 내가 죽인다!”
그놈이 용의 비호를 받는 놈이니까. 그놈을 잡으면 용을 얻을 수 있었다.
한 팔로도 그놈은 충분히 상대 가능했다. 방패와 인간의 재생력만을 가진 놈이니까.
마법사는 같은 고대의 힘 소유자에게 열을 올리는 듯한 용잡이의 모습에 덤덤히 답했다.
“그러든가. 어차피 나와 너, 힐러까지 함께 가면 그들쯤이야 손쉽게 잡겠지.”
용잡이도 그 말을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자신보다야 약하지만 마법사 할배와 힐러도 쓸 만했다.
마법사는 힐러와 용잡이를 쳐다보다가 이내 선실 문을 열었다. 그러자 문 앞에서 한 사람이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곧 로운 왕국 동북부 해상에 진입한다고 합니다.”
그는 마창사였다.
과거 케일 일행이 ‘암’을 마주할 때 가장 많이 나타났던 적. 마법과 창술을 함께 사용하며 소드 마스터인 가짜 성녀 하나에게 배신을 때렸던 그자였다.
그는 선실 안의 세 사람을 보며 고개를 숙였다. 자신보다 한 단계 높은 자리의 사람들. 이들은 단체의 핵심이나 다름없었다.
그것은 마법사의 로브 가슴 부위에 새겨진 붉은 별로 알 수 있었다.
마창사가 하얀 별에 붉은 별 다섯 개가 수놓아진 옷인 것과 달리, 저들은 붉은 별 하나만이 새겨져 있었다.
붉은 별이 하나씩 새겨진 옷은 총 다섯.
하얀 별을 모시는 붉은 별 다섯이었다.
“곧 나가지. 선두 쪽으로 가봐야겠어.”
“네, 모시겠습니다.”
마법사 노인의 말에 마창사는 고개를 숙였다. 그때 가만히 있던 힐러가 툴툴거렸다.
“로운 왕국은 해군기지가 있어도 허접하다며? 배도 몇 척 없다는데, 뭘 이리 많이 데리고 가.”
“가는 김에 위퍼 왕국 해안도 정복하려고 이러는 거지. 그리고 잘됐어. 로운이 생각보다 강하니 이렇게 밀어붙여야 돼.”
노인은 대충 답하며 선실 문으로 향했다.
“무엇보다도 로운에게 한 방 먹었으니, 우리도 뒤통수를 쳐야 할 것 아닌가?”
힐러는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로운은 불굴 연합만 가는 줄 알고 있겠지? 이 배에 우리가 있는 줄은 모를 거 아냐. 재밌겠는데.”
상당히 재밌다는 듯 입맛을 다시는 힐러의 모습은 그들에게 익숙했다. 그리고 모두 어린아이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가장 재밌어하는 자는 따로 있었다.
삼백여 척의 배. 그 배들보다 한참 아래.
아주 깊은 바닷속.
그 속을 헤엄치는 혹등고래가 있었다.
등에 X자 흉터가 새겨진 혹등고래. 고래왕의 후계자 위티라는 남쪽을 응시했다.
‘곧 4차 경계선이군.’
혹등고래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녀는 어젯밤 케일이 한 말을 떠올렸다.
‘위티라, 고래족과 함께 파에른 해안가를 부숴 버려.’
그리고 이어진 말.
‘대신 우리는 적의 함대를 몰살하마.’
아주 재밌겠어.
위티라는 케일의 명확한 모습에서 확신했다.
그는 자신이 내뱉은 말은 지키는 사람이다. 그러니 적들의 결말은 보지 않아도 충분하다고 확신했다.
그녀의 거대한 꼬리가 방향을 바꿨다.
북쪽.
혹등고래는 삼백여 척의 배와 반대 방향으로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녀의 뒤를 고래족과 수많은 고래들이 뒤따르기 시작했다.
소리 없이, 잊힌 채 살고 있던 존재들이 북쪽으로 향했다.
***
그리고 그 시각.
아주 작은 소리가 케일의 귓가를 사로잡았다.
달칵.
마법사가 보내는 신호였다.
적들이 우리의 바다에 왔다는 신호.
케일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안개.
그것은 적들의 눈도 가렸지만 케일 아군의 눈도 가렸다.
케일은 이제 가진 것을 숨길 필요가 없었다.
케일 일행을 제외한 로운 왕국과 대부분 사람들은 케일이 오로지 방패의 힘만 지닌 줄 알고 있었다.
케일은 오해를 굳이 풀고자 노력하지 않았다.
그게 편했으니까.
편하게 살려면 강함을 드러낼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안갯속에서는 굳이 숨기지 않아도 되었다.
다시 적막이 자리한 바다.
밤바다 위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스스스스-
안개가 서서히 퍼져 나갔다.
그리고 케일이 움직였다.
***
안개는 마치 고양이의 발걸음과 같이 은밀하게 퍼져 나갔다.
“뭐지? 안개?”
선실이 있던 배를 떠나 선두에서 함대를 이끄는 배의 갑판에 나와 있던 마법사 노인은 안개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어두운 밤바다를 둘러싼 하얀 안개는 상당히 넓게 퍼져 있었다.
로운 왕국 해상에 안개가 자주 끼던가?
노인 곁의 마창사는 불길함을 느꼈다.
그때, 마법사의 입이 열렸다.
“마법은 아닌데.”
“아, 그렇습니까?”
“그래. 안개는 마법으로 만든 게 아냐.”
안개는 마법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냥 자연 현상일 터.
마법이 아니면 무엇이 이런 안개를 만들 수 있겠는가.
마창사는 안심했다. 그는 안갯속으로 진입하는 배를 보며 명령을 내렸다.
“바다는 고요하지만 안개 지역이니 조심할 겸 경보 1단계만 알리도록.”
“네!”
노르란드 병사가 고개를 숙이며 마창사의 명령을 따랐다.
지금 이 배에는 주로 ‘암’의 사람들이, 그리고 이 배의 바로 뒤에 있는 두 대의 배에는 불굴 연합의 사람들이 있었다.
노르란드 병사는 마창사의 전언을 전하기 위해 뿔나팔을 집어 들고 숨을 들이켰다.
그래, 숨을 들이마셨다.
숨을 들이마시는 그의 눈에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안개가 보였다.
꽤 멀리 있던 것 같았는데, 벌써 안개 지역인가?
그는 그런 생각과 함께 뿔나팔에 입을 댔다. 이제 불기만 하면 되었다.
그때였다.
스스스스-
안개가 퍼지는 바람 소리.
그 바람 소리를 뚫고 마법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바람은 마법이다!”
동시에 갑판 위에 다른 소리가 울려 퍼졌다.
타앙!
뿔나팔이 떨어졌다.
마창사는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커헉, 컥!”
숨을 들이마셨던 병사의 입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중에도 숨을 쉬고 있던 마창사는 흠칫 몸을 떨었다.
독이다.
그리고 적이다.
그는 황급히 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러나 이미 바람은 거세게 몰아치기 시작했다.
쏴아아아아-
바람이 거세게 안개를 몰고 왔다. 어느 순간, 주변은 눈 깜짝할 새 하얀 안개로 가득 차 있었다. 마창사는 저도 모르게 눈을 크게 뜨며 외쳤다.
“…무슨……!”
붉은 안개.
안개가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불길한 색.
피를 닮은 안개가 서서히 바다를 잠식해 나갔다.
라온, 온, 홍.
세 명의 힘이 합쳐진 붉은 안개는 공기가 통하는 모든 곳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커헉!”
“이 무슨 안개… 크헉!”
안타깝지만 안개는 가장 약한 이들부터 스며들었다.
노르란드와 파에른, 북쪽의 두 왕국 병사들은 목을 부여잡았다. 그들의 시야에는 오로지 붉은색밖에 보이지 않았다.
마창사는 황급히 실드를 펼치며 뿔나팔을 집어 들었다.
뿌우우- 뿌우우우-
전쟁.
경보가 아닌 전쟁을 알리는 소리가 바다 위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함대의 중심까지 전해졌다.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리야?”
함대의 중심 선박에 있던 힐러, 아이는 벌떡 일어나 창가를 내다봤다.
붉은 안개가 보였다. 그리고 피를 토하며 쓰러지는 암 말단 요원들이 보였다.
“…독?”
아이의 눈빛이 변했다. 힐러의 전문 분야였다.
“잠시 나갔다 올게.”
힐러는 선실 문고리를 잡았다. 그러나 용잡이는 아이의 손목을 잡았다.
“여기 있어.”
“뭐?”
“여기, 크흑, 나 안 나았으니까 여기 있으라고!”
힐러는 기가 찼다.
응급 치료도 끝나 이제 휴식만 하면 되는 놈이 지독하게도 이기적이다 싶었다. 말단이라도 저기 피를 뿜어내며 죽어가는 이들은 같은 단체 소속이었다.
그러나 용잡이의 상태는 조금 달랐다.
“…불길해.”
드래곤 슬레이어는 불길함을 느꼈다.
조금 휴식을 취했지만 아직 자신의 몸은 원상태가 아니었다. 아직 응급 상태였고, 팔도 한 짝 없다.
그러니 전투력이 제일 약한 녀석일지라도 힐러가 곁에 있는 것이 마음 편했다.
“하, 일단 밖에 상황만 보고 올게.”
힐러는 한숨을 내쉬며 용잡이의 손을 뿌리쳤다.
“1분 안에 갔다 와!”
으르렁거리듯 보채는 목소리에 힐러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선실 문고리를 돌렸다.
달칵. 문고리는 쉬이 돌아갔고 힐러는 바로 방 밖으로 나갔다.
문이 닫히자 용잡이는 창밖을 힐끗거렸다.
직감이었다.
로운 왕국 헤니투스 영지에서 한번 당했기에 얻을 수 있었던 직감.
소드 마스터에 네크로맨서, 용도 숨겨두는 왕국.
그곳이 이런 짓을 한다면 분명 뭔가 더 있다는 소리였다.
그는 정상이 아닌 몸이었지만 최대한 몸을 전투 상태로 끌어 올렸다.
그때였다.
달칵.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며 힐러의 머리카락이 보였다.
용잡이는 피식 웃었다.
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는 중년인 힐러. 음흉했지만 역시 말 잘 듣는 놈이었다.
“야, 얼른 들어와!”
말단 요원이 죽든 말든 제 알 바가 아니었다.
그는 전투에 그나마 도움이 될 힐러에게 어서 들어올 것을 재촉했다.
끼이이이-
문이 열렸다.
툭.
아이의 모습을 한 힐러가 힘없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리고 붉은색이 보였다.
‘안개?’
붉은 안개를 뒤집어쓴 사람. 그걸 머릿속에 인지한 순간이었다.
“제길!”
용잡이는 곧바로 침대 위에서 일어섰다.
콰앙!
그러나 그의 몸은 곧 검은 오러와 함께 벽에 처박혔다.
“커헉!”
용잡이는 신음을 내뱉었다.
지이익. 그런 그의 귓가에 아주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흰 장갑이 보였다. 이제 용잡이는 재해의 검을 다시 빼 들어야 했다.
‘지금은 이게 마지막인데!’
현재 몸 상태로는 재해의 검을 오래 유지하기도 힘들었다. 큰 파공음이 다시 한번 투구 기사 앞에 펼쳐졌다.
콰앙!
검은 오러.
그에게 덤벼들었던 그 소드 마스터.
그놈이 또 나타났다.
최한의 한 손에서 피어오른 검은 오러가 용잡이에게로 소리 없이 쇄도했다.
용잡이는 이를 겨우 피했다. 그러나 간신히 벽에서 빠져나와 공격을 피하자마자 다시 쇄도한 검은 오러를 막기 위해 한 번 더 뒤로 밀려나야 했다.
그런 그의 등 뒤로 불쑥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흰 장갑.
소드 마스터 옆에 있던 놈이 끼던 흰 장갑, 그것이 나타났다.
마치 암살자와 같은 은밀하고 신속한 몸놀림과 소드 마스터에 버금가는 실력.
앞에서는 최한이, 뒤에서는 암살자가.
용잡이의 얼굴이 찡그려진 순간, 흰 장갑은 곧바로 용잡이의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커헉!”
그의 잘린 어깻죽지로 단검이 박히며 회전했다. 고통을 극도로 자극하는 공격이었다.
동시에 최한은 검은 오러를 용잡이의 배에 꽂아 넣으며 박차 올랐다.
콰아아앙!
선실의 천장이 부서졌다. 그러자 붉은 안개로 가득 찬 하늘이 드러났다.
“커헉!”
용잡이는 흰 장갑에게 목덜미가 붙잡힌 채 뚫려진 천장 위로 끌려 올라갔다. 정신이 없었다.
어떻게 이놈들이 여기에, 그것도 이런 식으로 나타난단 말인가!
방금 나타났으면서 내가 여기 있는 줄은 어떻게 알았단 말인가?
이 모든 건 투구의 기사가 여기에 있다는 고래족의 정보와 라온의 마법 덕분이었으나, 그걸 라온보다 마법 실력이 부족한 마법사 노인이나 용잡이가 알 길은 없었다.
“커헉, 컥!”
그는 그저 점점 조여오는 힘에 제 목을 쥔 놈을 노려보았다.
60대의 노인.
론은 미소를 그려 보였다.
아들의 흰 장갑을 빌린 그는 제 도련님 앞에 섰다.
적의 함대 중심.
그 배의 가장 꼭대기.
케일은 제 앞까지 용잡이를 끌고 온 론과 최한을 보며 입을 열었다. 그제야 사람 말소리가 울려 퍼졌다.
“시작하지.”
우우우우-
적막이 깨졌다.
마치 귀신의 울음소리 같았다.
수백의 영혼이 우는 듯한 소리. 바다에서부터 올라오는 소리였다.
용잡이는 가장 높은 곳에 있었기에 모든 광경을 볼 수밖에 없었다. 아니, 느꼈다.
툭.
용잡이는 제 뺨을 두드리는 손길에 고개를 돌렸다.
케일 헤니투스.
그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투구 기사의 입이 열렸다.
“…고, 고대의 힘이 하나 더 있었어?”
툭, 투욱.
케일은 용잡이의 볼을 두드리며 말했다.
“잘 봐.”
우우우우-
바다 깊숙한 곳에서부터 올라오던, 마치 귀신의 울음과 같았던 소리.
케일은 용잡이의 귓가에 속삭였다.
“귀신들의 울음은 무서운 법이지.”
바다 밑이 요동쳤다.
우우우-
울음소리가 끊겼다.
그리고 소용돌이가 치솟아 올랐다.
콰아아앙!
콰아아앙!
케일의 소용돌이와 라온의 마법.
붉은 안개 사이로 소용돌이들이 치솟아 오르기 시작했다.
웃음이 사라진 케일의 눈동자는 드래곤 슬레이어를 향해 있었다.
그는 모두에게 약속한 말을 떠올렸다.
적을 몰살한다.
케일 헤니투스는, 김록수는 내뱉은 말은 지키는 사람이었다.
이제 그 약속을 지키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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