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206
205화.
거친 겨울 바다를 가로지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렇기에 북쪽 바다를 터로 삼는 항해사들의 실력은 결코 낮지 않았다. 북3국은 그 실력자들 중에서도 최고들만을 끌어들였다.
그러자 지금.
콰아아앙!
소용돌이들을 헤치고 겨우 안개를 벗어난 항해사들의 앞에 진정한 죽음의 바다가 펼쳐졌다.
“다들 진열을 갖춰라! 화약을 발포하라!”
불굴 연합의 병사들은 겨우 정신을 차리고 갑판과 배 안을 오갔다. 그들의 얼굴에는 공포가 어려 있었다.
투둑, 툭. 바쁘게 내디디는 발걸음에 동료의 시체가 걸렸다. 그러나 이를 제대로 알아차릴 틈이 없었다.
“크으으윽-”
독에 중독되었지만 아직 죽지 않은 병사. 그의 몸이 또 다른 병사의 발끝에 걸렸지만 그 병사는 중독된 병사를 힐끗 쳐다볼 뿐 쓰러진 그를 스쳐 지나갔다.
안 그러면 내가 죽으니까.
시체가 밟혀도 그저 밟고 지나갔다.
방금까지만 해도 전우를 챙기던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정신이 없었다.
“바다에 매장되고 싶지 않으면 빨리 움직여!”
노를 젓는 이들에게 호통치는 기사의 목소리.
“전우의 시체를 챙기고 싶다면, 지금 당장 노를 저어라!”
전우를 챙기려면 일단 살아야 한다.
안 그러면 바다에 매장되어 어느 누구도 우리의 시체를 찾지 못한다.
삼백여 척의 배를 이끌고 얼어붙은 해안가를 가로지를 때는 이렇지 않았다. 그때는 무엇이든 부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반대였다. 뭐든 부술 준비가 된 것은 적이었다.
“화약을 장전해!”
“궁사들은 어디 있나?!”
정신없는 갑판.
기사들은 겨우 도열했고, 마법사들은 마법을 쏘기 시작했다.
탕. 타앙!
마법사들의 실드와 기사들의 방패에 수많은 화살이 튕겨져 나갔다. 불굴 연합 파에른 왕국 소속의 마법사는 밤하늘을 뚫고 쏟아지는 화살비를 보며 욕을 참지 못했다.
“제기랄! 언제 이렇게 준비를!”
삼백여 척의 불굴 연합, 그 숫자에 밀리지 않는 붉은 배들이 보였다.
“어떻게 로운 왕국에서!”
그들의 선전포고에 맞선 로운 왕국의 선언은 당당했으나, 서대륙 대부분의 왕국에선 그런 로운 왕국을 크게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수십 년간 특출한 부분이 없던 곳이었으니까.
그런데 이런 저력이라니.
이런 해상전이라니!
단일 국가에서 이 정도 해군 규모를 가지고 있으면서 그간 왜 해상을 지배하지 않았나?
파에른 왕국 마법사는 실드를 더 크게 펼치며 수하들에게 지시했다.
“당장 화염, 전류 공격을 쏘아올-!”
쏘아 올려라.
그렇게 외치려던 마법사는 황급히 지시를 변경했다.
저 멀리 떠오른 화염구들.
수십은 될 것 같은 마법들이 동시에 하늘 위로 떠올랐다.
어떻게 로운 왕국에서 저런 마법 공격이 가능하지?
해군에, 마법 공격에.
마법사는 눈에 마법을 펼쳐 시야를 확대하며 다급히 외쳤다.
“실드-!”
그 순간, 수십 개의 화염구가 소용돌이를 빠져나온 배들을 공격했다.
“크으!”
실드로 간신히 이를 막은 마법사는 확대한 시야로 붉은 배의 선상이 보였다. 수많은 붉은 배들. 그 배들에 나뉘어 타고 있는 마법병단.
파에른 왕국의 마법사는 로브를 입은 이들을 보며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미쳤어.”
로운 왕국에 이렇게 마법사들이 많았다니.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파에른 마법사의 시선이 이동했다.
그의 눈에 로브를 쓴 마법사가 하늘로 떠오르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그녀는 마법사가 아니었다.
바람의 정령으로 공중에 떠오른 존재.
다크엘프 타샤, 그녀는 바로 아래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한 번 더.”
케일의 명령.
타샤는 두 손을 들어 올렸다. 마법병단 1대대, 수십 명의 마법사들이 동시에 마법 캐스팅을 시작했다.
파지직, 파직.
번개의 힘을 담은 작은 구들이 일순간 하늘로 솟구쳤다. 타샤는 바람에 제 목소리를 담아 군사사령관의 명을 전했다.
“공격.”
광구가 배들을 다시 한번 공격했다.
케일은 그 광경을 보며 입을 열었다.
“배를 움직여라.”
그 말은 마법 통신구를 타고서 몇 개의 붉은 배들로 향했다. 그 붉은 배들 중 한 척에 있던 기사단장은 검을 뽑아 들었다.
채앵.
그의 검을 시작으로 기사들이 검을 뽑아 든 순간, 배가 움직여 웬만한 공격으론 가라앉힐 수 없는 상대측 중대형 군함 앞에 멈춰 섰다.
영상 통신구를 통해 케일의 목소리가 기사단장의 귓가에 박혔다.
-적의 목을 베어라.
타닥. 기사단장은 제 뒤에서 먼저 앞으로 쏘아져 나가는 자의 발걸음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에 기사단장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의 입이 열렸다.
“따라라.”
기사단장이 발을 굴렸다.
따라라.
앞선 자를 따라라.
기사단장의 몸이 치솟아 올라, 적의 배 갑판으로 떨어졌다. 그 뒤를 사다리를 통해, 혹은 본인의 신체 능력을 통해 다른 기사들이 뒤따랐다.
그들은 한 사람의 등을 보며 망설임 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부상을 당해 붕대로 칭칭 감긴 한쪽 어깨가 보였다.
그러나 부상을 당하지 않은 어깨, 그 아래 손에서 피어오르는 검은 오러가 로운 왕국 기사단원들의 눈에 똑똑히 보였다.
대가 끊겼다고 알려진 로운 왕국의 소드 마스터.
최한은 가만히 있으라는 케일의 말에도 굳이 움직였다. 피가 끓고 있다.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런 그를 빤히 쳐다보던 케일은 결국 허락했다.
‘…마음대로 해. 네가 알아서 잘하겠지. 그러나 더 다치면 앞으로 너는 데리고 다니지 않는다.’
케일의 명령을, 최한은 머릿속에 제대로 명심해 두었다.
그는 그 명령만을 기억하며 움직였다.
그런 그의 뒤를 왕가 제1기사단이 따랐다. 경지에 다다른 검. 저 검은 오러가 앞에 있는 한 로운 왕국 기사들은 두려울 것이 없었다.
콰아앙!
검은 오러가 선실을 부숴 버렸다.
케일은 부서지는 배와 꽤 멀리 떨어진, 가장 튼튼하고 안전한 황금 배 위에 서서 이를 지켜보았다.
‘역시 저놈은 대단해.’
케일은 사서 고생을 해대는 최한이 역시 주인공답다 생각하며 느긋하게 전장을 훑어보았다. 점점 최한의 영웅적 면모가 드러나는 것 같았다.
‘이제 좀 느긋하네.’
금빛으로 칠해진 거대한 거북이 조각상. 그 옆에 서 있는 케일의 붉은 머리칼은 황금선 안에 탄 모든 이들의 시선을 끌어모았다.
특히 가장 크고 튼튼한 이 배에는 귀족들이 많이 자리해 있었다. 케일에게 잘 보여야 하는 처지의 귀족들은 차마 선실에 숨어 있을 수도 없어, 최대한 튼튼한 갑옷을 입고 갑판 위에 있었다.
로운 왕국 동남부와 중앙을 따르던 동북부 귀족들.
그들은 지금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배가 부서진다.
사람들이 죽어나간다.
그런데 우리는 아니다.
귀족들은 그 모습에 안도하면서도 새로이 알게 된 사실들에 머릿속이 복잡했다. 동남부를 밀던 귀족은 제 목덜미를 매만졌다.
‘로운 왕국에 이런 해군 병력이 있었다니!’
왕세자가 준비했다고 알려진 해군기지였다.
그 규모와 힘, 더불어 마법병단까지 보자 귀족은 왜 왕실 후계자로 왕세자가 내정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더불어 한 가지 사실이 그를 더 크게 뒤흔들었다.
‘헤니투스 백작가가 해군기지 건설에 삼분의 일을 투자했을 줄이야!’
영지와 해안가를 가진 우바르 영지.
로운 왕국 왕세자.
더불어 금력을 지닌 헤니투스 백작가.
세 곳의 합작이 세상에 드러나자 귀족은 누구보다도 헤니투스 백작가에 두려움을 느꼈다.
“쿨럭.”
그때 귀족의 귓가를 작은 소리가 건드렸다. 그는 다시 앞을 쳐다봤다.
그의 앞에 선 자는 케일 헤니투스.
동북부 사령관은 대충 소매로 제 입가를 닦아내고 있었다. 소매에 조금 묻은 피가 보였다.
귀족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헤니투스 백작가에 두려움을 느꼈다.
구석 영지에서 조용히 힘을 키워온 그들이 무서웠다. 그런데 이제는 두려움이 아닌 다른 감정이 피어올랐다.
케일이 마법병단에게 내리는 명령이 들려왔다.
“실드를 펼쳐. 병사들을 보호하도록.”
마법사들은 케일의 명령에 따라 곧바로 적들의 마법사가 날린 회심의 마법들로부터 병사들을 지켜냈다.
적들은 몰살시키면서도 아군은 다치지 않는다. 압도적인 싸움이다.
어느 누가 로운 왕국이 이렇게 불굴 연합을 이겨낼 것이라 예상했겠는가.
예상이 깨지는 것을 몸소 체험한 귀족들의 마음에 또 다른 감정이 차올랐다. 그때, 한 귀족의 목소리가 다른 귀족들의 귓가에 닿았다.
“…원래 동북부의 수호 가문이 헤니투스 백작가였지.”
평화가 오래되어 잊고 있었다.
지금은 부유한 가문으로 유명하지만 헤니투스의 본질은 무가.
오랜 시간, 왕국이 이 땅 위에 들어섰을 때부터 헤니투스 백작가는 어둠의 숲 입구를 틀어막고 동북부와, 나아가 그 아래 로운 왕국을 지켜왔다.
로운 왕국에서 가장 이름난 무가인 아일란 후작가.
아일란 후작가가 로운 왕국 동남부, 가장 좋은 땅을 차지할 때 헤니투스 백작가는 당시 이름난 무가였음에도 산간 오지로 갔다.
그것도 가장 강한 몬스터들이 넘쳐나는 어둠의 숲으로.
이제야 무언가 보이는 것 같았다.
귀족의 시선이 케일의 등으로 향했다.
두려움을 넘어서자 전율이 일었고, 그다음에는 알 수 없는 벅참이 마음속을 뒤흔들었다.
귀족들의 눈에 미간을 찌푸린 케일 헤니투스가 보였다. 피 묻은 소매를 제대로 닦아내지도 못한 채, 여전히 전장만을 바라보는 고뇌에 찬 눈동자.
그러나 지시를 내리는 모습에는 막힘이 없었다.
믿음직스럽다.
동시에 후회가 찾아왔다.
자신들은 이 배에 탔지만 늦었다.
‘진짜’들은 이 가장 튼튼한 배가 아닌 전장 위를 누비고 있었다. 역사의 현장에 들어설 자격을 가진 이들은 이미 스스로 역사를 만들고 있었다.
동북부 귀족은 입술을 깨물었다. 케일에게 뭐라도 말을 붙이고 싶었지만, 미간을 찌푸린 그에게 차마 다가갈 수 없었다.
그랬기에 귀족은 그저 지금 차오르는 벅참을 억누르며 숨을 죽였다. 귀족들 모두가 케일의 등을 뚫어질 듯 쳐다봤다.
그러나 케일은 지금 그런 시선들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미간을 더 깊게 찌푸리고 눈가를 찡그렸다.
‘배고파.’
불벼락인 파괴의 불을 조절해서 피는 별로 안 흘렸지만, 배가 고팠다. 그렇다고 전쟁 통에 혼자서 스테이크를 한가히 먹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그 순간, 케일의 머릿속으로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덜 약한 인간, 마법사 잡았다.
케일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검은 용 라온이 마법사 노인을 잡았다.
힐러와 용잡이는 이미 론과 비크로스 부자가 붙잡고 있다.
라온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이어졌다.
-그런데 미안하다.
미안하다고?
케일의 올라가던 입꼬리가 멈췄다. 라온의 말이 머릿속에 이어졌다.
-덜 약한 인간이 살려서 데려오랬는데, 간당간당한다. 죽기 직전이다. 숨은 붙어 있다. 포션 먹였다. 그래도 이틀 안에 죽을 것 같다.
아, 그럼 뭐.
케일은 다시 미소 짓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창사 놈도 잡았다. 이놈은 멀쩡하다. 소드 마스터 하나한테 던져주자.
케일은 아주 흡족했다.
고래족과 인어족의 싸움 당시 케일 일행이 ‘암’과 부딪쳤을 때, 소드 마스터이자 가짜 성녀인 하나와 친밀하게 지내던 놈이 마창사였다.
가짜 성녀는 자신을 배신한 이들에게 치를 떨고 있으니, 마창사를 던져주면 아주 제대로 써먹을 터.
케일은 흡족한 마음으로 손을 들어 올렸다.
갑작스럽게 그가 손을 들어 올리자, 지켜보던 귀족들은 멈칫했다.
그러나 우바르 영지의 후계자인 아미르 영애, 그리고 다크엘프 타샤 두 사람은 케일 곁에서 바로 그의 지시를 알아들었다. 케일의 입이 열렸다.
“총공격을 준비한다.”
최후의 공격을 알리는 명령이 울려 퍼졌다.
그 순간, 귀족들은 일순 변하는 분위기를 느꼈다.
쏴아아아-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붉은 안갯속, 그곳을 향해 바람이 모여들고 있었다.
마법병단 단장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7의 라로케!”
우우우웅-
마법사들이 일제히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다. 수십 갈래의 마나가 7줄기로 뭉쳐지기 시작했다.
로잘린이 중심이 되어 위퍼 왕국 출신 은둔 마법사들과 함께 만든 진형, 그중 하나가 서서히 바다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더불어 적의 군함을 휘젓고 다니던 기사들이 다시 배에 올라타 돌아오기 시작했다.
“쏴라! 한시도 놓치지 말고 쏘아라!”
병사들은 여전히 불굴 연합을 향해 화살을 쏘고 있었다.
철썩, 철썩.
곧 붉은 배들이 일제히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우바르 영지 해안가.
케일이 남겨둔 소용돌이 속에서 훈련했던 해군들은 북쪽의 항해사들보다 능력이 더 뛰어났다.
끼이익, 끼익. 노를 젓는 병사들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일시에 배들이 뒤로 빠졌다.
수백여 척의 배들이 한꺼번에 독안개에서 물러섰다. 그 광경은 장관이었다. 이를 지켜보던 귀족들은 그 광경이 어두운 밤임에도 잘 보이는 것에 의아해하지 않았다.
그들은 시야가 점점 밝아져 오는 것을 신경 쓸 틈이 없었다.
케일은 물러선 기사들과 준비를 끝낸 마법사들을 보았다. 그리고 라온의 목소리를 들었다.
-끝났다.
케일의 입이 열렸다.
“공격.”
케일의 손이 내려갔다.
그 순간 붉은 안개가 변했다.
휘이이잉.
잠잠하던 안개가 변하기 시작했다.
붉은 독안개들이 휘몰아쳤다.
이는 마치 세계수로 통하는 호수 위를 뒤덮던 그 눈보라와 닮아 있었다.
“크윽!”
거센 바람에 귀족과 병사들은 눈을 가렸다. 당장에라도 독안개에 휩쓸릴 것 같았다.
그때였다. 마법단장의 작은 목소리가 바람을 뚫고 간신히 들려왔다.
“발포!”
발포.
화약을 쏘는 것처럼. 마법사들의 손에 만들어진 7개의 구, 여러 속성이 뒤섞인 그 구들이 일제히 붉은 안개를 향해, 적들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그 7개의 구가 독안개 소용돌이와 닿는 순간.
콰아아아앙!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바다가, 해수면이 요동쳤다. 황금선에 타고 있던 귀족과 병사들은 그 폭발 여파에 배의 난간을 잡거나 혹은 갑판 바닥을 짚었다.
“으윽!”
“헛! 무슨 이런 힘이!”
폭발로 앞도 보이지 않건만, 해수면이 요동을 쳐 사람들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들의 귓가로 폭발음과 함께 사람들의 비명 소리, 배가 부서지는 소리들이 끊임없이 들려왔다.
적이 죽어간다.
명확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해수면이 잠잠해질수록 그 죽어가는 소리들이 들려오지 않았다.
“사, 사령관님!”
귀족들은 우바르 영주를 대신해 정보 통신을 담당하던 아미르 영애의 목소리에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사령관.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놀란 귀족들이 황급히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잠잠해진 바다가 보였다.
동시에 아미르 영애를 쳐다보는 케일을 볼 수 있었다.
“약속을 지킨 것 같군.”
귀족 한 명은 그 말에 홀린 것처럼 자리에서 일어섰다. 중심을 못 잡은 몸이 살짝 비틀거렸으나, 곧 올곧이 서 있는 케일과 그의 앞에 펼쳐진 바다가 보였다.
지금껏 미처 깨닫지 못했던 사실이 느껴졌다.
바다가 밝아지고 있었다.
해가,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다.
붉은 안개가 사라진 바다 위. 죽은 자들과 부서진 잔해들만이 보였다. 동시에 귀족과 병사들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찬란한 태양이었다.
그들의 시선은 찬란한 태양을 닮은 쪽으로 향했다. 태양의 황금빛과 붉은빛이 모두 자리한 곳.
궁사들은 화살을 잡고 있던 손을 내렸다. 항해를 담당하던 이들은 잡고 있던 밧줄을 놓았으며, 노를 잡고 있던 병사는 노를 손에서 놓았다.
툭.
궁사의 화살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때 그들의 수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왕국에 전하라.”
병사들의 두 손이 천천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수장의, 케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케일은 아미르 영애의 품에 들린 영상 통신구를 보며 말했다.
“우리는 승리했다. 이를 왕국에 전하라.”
우리는 승리했다.
더 이상 바다에 적은 없다.
병사들은 두 손을 하늘로 올리며 환호성을 내뱉었다.
“으아아아!”
“와아아아아!”
안도, 기쁨, 환호. 그 모든 것들이 뒤섞인 함성은 바다 위를 가득 채웠다.
우리는 살았으며 승리했다.
약속을 지켰다.
병사들은 이를 모두 담아 함성을 내질렀다.
태양과 함께 로운 왕국의 아침은 찾아왔다.
붉은 배들이 다시 천천히 한 곳으로 움직였다. 황금선, 케일 헤니투스. 그들의 수장이 있는 곳으로 함성과 함께 모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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