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209
208화.
파에른 해안가가 저 멀리 보이는 곳에 위치한 작은 빙산. 그곳에서 케일은 해맑은 목소리를 들었다.
“약한 인간! 또 때려 부수나?”
라온은 날개를 파닥이며 들뜬 목소리로 물었다. 케일은 털목도리를 칭칭 감으며 답했다.
“아마도?”
아직 2월이라 얼어붙어 있는 해안가가 보였다.
케일은 총 다섯 개로 띄엄띄엄 떨어져 있는 초소를 응시했다.
파에른 왕국 북부 최전방. 과거에는 고래족을 대비한 방비가 어디보다도 뛰어났다. 그러나 고래족의 존재가 잊힌 지금, 얼어붙은 해안가의 방비는 형편없었다.
케일의 귓가로 검은 용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이것도 데려가나?”
이거.
그 단어에 작은 빙산 위, 케일의 곁에 있던 고래족들이 멈칫했다.
범고래 아치, 혹등고래 위티라와 파세톤. 그 셋의 시선이 슬금슬금 한쪽으로 향했다.
휠체어를 탄, 넋이 나간 얼굴의 백발 남자.
수호 기사 클로페.
그는 어딘가 넋이 나간 얼굴로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케일의 시선이 클로페에게 향했다. 그 순간, 멍한 얼굴이던 클로페의 시선에 초점이 돌아왔다. 케일은 퍽 다정스럽게 물었다.
“클로페, 같이 갈 거지?”
그 다정한 모양새에 범고래 아치는 흠칫했다가, 클로페가 하는 꼴에 더 크게 어깨를 움찔거렸다.
클로페는 축 늘어진 두 팔을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케일을 향해 두 손을 모으더니 휠체어에 탄 채로 깊숙이 허리를 숙여 보였다.
꼭 신을 향해 절을 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아치의 시선이 고래 혼혈 파세톤에게로 향했다. 그러나 파세톤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파세톤도 영문을 알 수 없는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때 클로페를 향한 케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가 해야 할 일을 알고 있겠지?”
“…말씀을… 받듭니다.”
뭘 받들어?
아치의 표정이 해괴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케일은 클로페의 눈동자 속, 자신을 향한 두려움을 빤히 응시하며 시선을 돌렸다.
최한에게 팔이 잘렸던 클로페.
론에게 나머지 팔이 잘리고, 다져지듯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던 두 다리.
그것들이 지금은 멀쩡하게 달려 있었다.
움직여지지 않지만 두 다리가 있었고, 두 팔은 느릿하게나마 움직였다.
위티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공자, 괜찮은 것 맞죠?”
클로페의 상태가 괜찮냐를 묻는 것이 아니었다. 적에게 동정심을 품을 존재는 아니었다.
그저 이번 일을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의미에서의 물음이었다.
“걱정 마.”
케일의 담담한 대답에 위티라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가 괜찮다면 괜찮았으니까.
케일은 클로페에게서 시선을 돌리며 코웃음을 쳤다.
지금 저놈이 자신을 무슨 신을 모시듯 떠받들고 있다는 것을 케일도 안다.
‘설마 진짜겠어?’
그리고 그는, 그 행동이 두려움이 섞인 연기일 것이라 생각했다.
왜냐고?
클로페의 두 팔과 두 다리를 만들어준 이는 네크로맨서 메리였다.
케일은 그녀에게 두 팔과 두 다리를 만들어주라고 지시를 내리며, 한 가지를 더 덧붙였다.
‘새로이 만들 두 팔과 두 다리는 폭탄이다.’
메리는 그 말을 단박에 알아들었다.
‘죽은 마나를 넣으면 되나요?’
산 자에게는 독약이나 다름없는 죽은 마나.
소드 마스터 하나도 메리의 도움으로 겨우 살아남았던 지독한 힘. 그 힘이 지금 클로페의 양팔과 두 다리에 남겨져 있었다.
케일은 메리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제가 신호를 보낼 때, 혹은 클로페를 누군가 치료하려고 할 때, 양팔과 두 다리가 터질 겁니다. 그러면 바로 즉사할 거예요.’
클로페의 목숨은 케일의 손아귀에 있었다.
‘살고 싶으면 어떤 짓이든 하겠지.’
케일이 클로페를 보며 코웃음을 흘릴 수 있는 이유였다.
저놈은 본인이 와이번 기사라며 대륙을 속이던 놈이다. 그런 놈이 제 목숨을 틀어쥔 사람 앞에서 무슨 연기든 못할까.
케일은 결코 적을 믿지 않으며, 틀어쥔 약점을 놓지 않을 생각이었다.
검은 용 라온은 케일과 클로페를 슬쩍 보다가 위티라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몰래 속삭였다.
“저 백발 놈 조금 맛이 갔다. 그래도 할 일은 할 수 있다.”
“알겠습니다. 드래곤 님.”
위티라는 그제야 클로페에 대한 신경을 놓았다. 케일도, 라온도 괜찮다고 했으니 걱정을 조금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위티라는 라온이 연신 클로페를 힐끗 보며 했던 말.
‘조금 맛이 갔다.’
그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여섯 살 라온은 여전히 케일의 등을 쳐다보는 클로페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클로페는 케일의 등을 보았다.
케일의 머리칼은 붉은색임에도 그에게는 하얗게 보였다.
수호 기사는 아직 전설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그는 저에게 폭탄과 같은 양팔과 두 다리를 붙여주었던 네크로맨서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차가운 목소리는 감정 없이 말했다.
‘공자님이 가시는 길을 방해하면 안 됩니다.’
물론 메리의 목소리에는 다부진 감정이 담겨 있었으나, 그건 친한 사람들이나 알 정도로 미세했다.
‘공자님은, 그분은 대단한 분이세요.’
메리는 기계적인 목소리로 수호 기사에게 케일에 대해 알려주었다.
그녀에게 있어 케일은 안쓰러우면서 선한 마음으로 궂은일을 하는 고마운 사람이었다.
조곤조곤. 그녀는 케일에 대한 솔직한 마음을 전했다. 순수한 그녀였기에 순수하게 느낀 바를 말로 표현했다.
‘그분은 늘 모든 걸 보고 계십니다.’
세심한 시선으로 동료들의 상처를 보듬어 안았다. 무심하게, 그렇지만 다정하게. 보듬는 마음의 크기가 정말로 산처럼 컸다.
메리의 상처도 그렇게 보듬어준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 말은 클로페에게 다르게 들렸다.
그분은 늘 모든 걸 보고 계십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클로페는 번쩍하고 머리가 트이는 느낌을 받았다.
‘그분은 정말로 모든 걸 알고 계시구나. 그래서 내 앞에 나타나신 것이었어.’
아직도 그는 붉은 머리칼이 백발로 변하던 그 광경이 눈앞에 선했다.
클로페는 전설을 떠올렸다. 세카 가문이 조작했지만 진실인 전설.
이건 진실이었다.
‘그렇다면 그 남쪽으로 간 신이-’
클로페의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그때, 또 목소리가 들리며 머리가 맑아졌다. 감옥 안에는 메리의 목소리만이 울렸다.
‘그분은 올바른 마음을 놓지 않으시고, 결국 올바른 일을 해내시죠.’
클로페는 깨달았다.
그렇구나.
결국 그분의 뜻대로 세상은 굴러가는구나.
메리는 그저 케일이 한발 앞서 전쟁을 준비하고 영지민을 비롯한 모두를 지키려는 선한 마음을 칭찬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 칭찬이 클로페에게는 다른 방향으로 닿았다.
그것도 조금 과하게.
이를 모른 채 케일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가자.”
철썩.
겨울 바다가 거친 파도를 만들어내었다.
빙산 아래의 바다. 그곳은 평소보다 짙은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고래들이었다.
거대한 고래들이 서서히 파에른 해안가를 향해 나아갔다.
***
“으, 오늘따라 왜 이리 춥냐?”
“그러게 말입니다.”
파에른 북쪽 국경 해안가. 중앙 초소에 있던 마법사의 투덜거림에 옆에서 한 병사가 따뜻한 찻잔을 내밀었다.
통신 마법사는 익숙하게 찻잔을 받아 들고 한 모금 들이켜고는 한쪽으로 치웠다.
“크으. 이제 좀 살겠네. 여기는 쳐들어올 놈들도 없는데 뭘 감시하라는 건지.”
“그러게나 말입니다. 남부에 있는 왕국이 이 해안가 얼음을 뚫을 수 있을 리도 없고요.”
남쪽은 전쟁으로 정신이 없었으나, 북쪽 해안 초소에서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아닌 말로, 어느 누가 여기에 쳐들어오겠는가?
마법사는 의자에 기대며 초소 창문 너머로 보이는 바다를 쳐다봤다. 저 멀리 바다에선 물길이 일렁였으나, 해안가 초소 근처는 꽝꽝 얼어 있는 해수면뿐이었다.
이런 아무 짝에 쓸모도 없는 바다. 그곳을 누가 쳐들어오겠는가.
“다음 보고는 한 시간 뒤지?”
“네.”
“하아, 이놈의 인생.”
마법사는 공을 세울 수도 없고, 그저 시간 때우기나 해야 하는 초소의 상황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고 허투루 일할 수도 없었다.
지금은 나름 전시니까.
어느 때보다도 보고에 신경 쓰고 있는 중앙군이 존재했다.
중앙군.
세카 공작가의 가주이자 현 공작인 록 세카. 그가 중앙군을 이끌었다.
그는 정보와 보안을 중요시해 자신의 작전실을 중앙 정보 통신실로 만들어 통신 마법사들과 함께 사용하였다.
“어휴, 공작님이 바로 들으시니 대충 보고를 할 수도 없고.”
마법사는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이 보고를 하는 곳에 록 세카 공작도 있으니, 대충 보고할 수도 없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고래족이 내려오면 몰라도 보고할 일이 있겠습니까?”
“하!”
마법사는 병사의 말에 실소를 터뜨렸다.
“고래족? 용케도 잊힌 존재들을 떠올리는구먼. 그래도 그런 일은 없을걸세. 그 조용한 종족이 왜 우릴 쳐들어와?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그렇긴 하죠. 저도 말해놓고 아차 했습니다.”
병사는 어색하게 머리를 끄덕였다. 자신이 생각해도 턱도 없는 말이었다.
해안가에서 자라온 병사는 할아버지에게 고래족 이야기를 많이 들었으나, 사실 그들은 거의 잊힌 신비로운 존재들일 뿐이었다.
“음?”
그때, 병사가 초소 창문 너머를 보다 멈칫했다.
“저, 마, 마법사님?”
“왜?”
차를 마시던 마법사가 뚱한 얼굴로 병사를 쳐다봤다. 그러나 병사는 초소 창문 너머를 보며 움직이지 않았다.
“왜 그래?”
마법사는 짜증을 내며 초소 창문을 들여다봤다.
병사는 창문 너머를 가리켰다.
“저, 바다에 저게 뭡니까?”
저 멀리 바다에서 물줄기가 하늘로 뿜어져 오르고 있었다. 안 그래도 회색빛으로 어두운 바다가 이제는 아주 시꺼멓게 물들어 있었다.
파도가 보였다.
아니, 파도가 아니었다.
거대한 존재들이 밀려와 해수면이 일렁이고 있었다.
“…어?”
마법사의 입에서 얼빠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때 그 존재의 정체를 알아챈 병사가 비명과도 같은 목소리로 외쳤다.
“고, 고랩니다! 마법사님, 고래가 틀림없습-!”
콰아앙!
병사의 말은 끝맺어지지 못했다.
초소가 있는 해안가.
얼어붙은 해안가 바다의 해수면을 무언가가 저 아래에서부터 두드리고 있었다.
콰앙, 쾅!
“어, 어, 이게-”
마법사는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얼음 아래 바다, 그 바다의 밑바닥에서부터 무언가가 올라오고 있었다.
쾅. 쾅. 두드릴수록 해수면의 얼음에 금이 갔다.
병사는 마법사를 붙잡으며 외쳤다.
“고래, 고래족입니다! 마법사님!”
그 말을 외친 순간이었다.
콰아아앙!
이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굉음과 함께 해수면의 얼음이 부서졌다. 얼어붙은 바다가 깨지며 거대한 고래가 나타났다.
등에 X자 흉터가 새겨진 혹등고래. 그 거대한 몸체가 해수면 위로 드러났다.
병사와 마법사는 혹등고래와 눈이 마주쳤다. 서늘한 눈빛에 온몸이 굳는 것 같았다. 순간, 혹등고래의 거대한 꼬리가 움직였다.
하늘을 찌를 듯 치솟았던 꼬리가 수직 하강을 했다.
콰앙!
그리고 얼어붙은 바다를 부수기 시작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고래들이 바다를 둘러쌌다. 얼어붙은 바다를 고래족들이 모조리 부수기 시작했다.
자연을 부수는 힘.
광폭하고 흉악한 힘은 거침이 없었다.
“이, 무슨.”
“마법사님, 어서 통신을 넣어야 합니다! 고래족이 침략했다고 알려야 합니다!”
병사가 다급하게 외쳤고, 그 말에 마법사는 겨우 정신을 차렸다.
고래족의 침략.
마법사는 잊힌 존재의 무서움을 느꼈다.
저들은 바다를 부순다.
바다의 지배자라던 고래족.
그의 손이 덜덜 떨리며 황급히 영상 통신구를 쥐었다.
그때, 거대한 폭음이 들려왔다.
콰아아앙!
병사의 목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동쪽 초소가, 초소가 부서졌습니다!”
마법사는 영상 통신구에 마나를 쏟으며 고개를 들었다. 초소가 무너지는 광경이 실시간으로 보였다.
동시에 X자 흉터를 지닌 혹등고래, 그 혹등고래가 수증기를 일으키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 수증기가 사라졌을 때.
촤르르륵.
거대한 물 채찍을 휘두르는 고래족이 나타났다. 물로 만들어진 채찍이 거침없이 휘둘러지며 얼음들을 부수고 있었다.
혹등고래 수인은 부서진 얼음 조각들을 밟으며 초소를 향해 일직선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분명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마법사는 확신했다.
저 고래족은 나를 보고 있구나.
두려움이 몸을 엄습했다.
파지직, 파직.
영상 통신구가 연결되는 소리가 들렸다. 마법사는 황급히 고개를 숙여 영상 통신구로 시선을 돌렸다.
-보고 시간도 아닌데, 무슨 일인가?
상관인 중앙군 통신 마법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법사는 다급하게 외쳤다.
“고래족이, 고래족이 쳐들어왔습니다!”
-그게 무슨 소린가?
뜬금없는 소리에 순간 상관이 제대로 못 알아듣는 것 같자, 마법사는 절박하게 외쳤다.
“고래족이 왔다고요! 고래족이 해안가를 뒤엎고 있습니다!”
마법사는 무서웠다.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 그 생각에 사로잡혀 그는 영상 통신구를 부서뜨릴 듯이 쥐고서 외쳐댔다.
그런 그의 절박한 목소리는 중앙군 정보 통신실을 뒤덮었다.
그 목소리에 한 사람이 반응했다.
-무슨 소리지?
록 세카 공작.
파에른 왕국 사람들에게 현 수호 기사라고 알려진 인물이자 클로페 세카의 아버지. 그가 영상 통신구 화면에 드러났다.
마법사는 그 얼굴을 보자 더 급하게 말했다.
“고래족이 쳐들어와 해안가를 다 부수고 있습니다!”
마법사는 곧바로 영상 통신구 화면의 초점을 해안가로 돌렸다. 저 멀리 다 부서진 해안가와 파괴된, 혹은 파괴되어 가는 초소가 보였다.
-언제 공격을 시작했지? 현 상황은?
다급한 록 공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여전히 침착함은 잃지 않은 목소리에, 마법사는 진정하며 입을 열었다.
“오 분 전에 공격이 시작되었습니다. 동쪽 초소는 무너졌고 다른 곳도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희 초소는-”
마법사는 멈칫했다.
“…어?”
그는 초소 창문 너머로 이상함을 감지했다.
그 고래는?
여기로 오던 고래족은 어디 갔지?
혹등고래 수인이 보이지 않았다.
-왜 그러나? 왜 말이 없지?
“아, 으, 아-”
마법사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방금 또 한 가지를 깨달았다.
병사.
자신의 옆에 있던 병사가 조용하다.
왜 조용하지?
툭.
그의 발치로 쓰러지는 병사가 보였다. 상처 하나 없이 기절해 무너지는 모습이었다. 마법사의 눈동자가 천천히 돌아갔다.
이 초소로 향하던 푸른 머리칼의 여인. 그 여인을 닮은 푸른 머리칼. 하지만 이번엔 남자였다.
그 남자의 손이 자신의 뒷목으로 향하는 것을 보면서도, 마법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툭.
마법사는 고래 혼혈 파세톤의 손에 가볍게 기절당했다.
타앙, 탕!
영상 통신구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무슨 일인가! 보고를 할 수 없는 상황인가!
꺼지지 않은 영상 통신구에서 록 공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영상 통신구를 한 사람이 집어 들었다.
케일 헤니투스. 그는 손에 쥔 영상 통신구를 누군가에게 넘겼다.
“자.”
클로페는 떨리는 두 손으로 케일이 건네는 영상 통신구를 받아 들었다. 화면이 흔들리는 영상 통신구에서 록 공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통신 마법사! 영상통신이 안 되나? 고래족의 규모는?
심각함과 다급함이 섞인 목소리였다. 그러나 그 목소리와 달리 케일은 느긋했다.
“내 명령 기억하지?”
케일의 목소리에 클로페의 눈동자가 일렁였다.
케일이 내린 명령.
파에른 왕국은 우리 쪽의 첩자가 되어라.
케일은 지그시 클로페의 어깨를 누르며 영상 통신구를 가리켰다. 자신의 말을 이행하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죽기 싫으면 하겠지.’
케일은 비겁한 만큼 목숨이 중요할 클로페를 가만히 응시했다. 클로페는 두 손을 떨며 영상 통신구로 자신을 비췄다.
-지금 무슨 상황, 어?
록 공작은 멈칫했다.
하얀 백발이 보였다.
그는 제 머리칼처럼 하얀 백발에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아, 아들아.
클로페 세카.
며칠 전 로운 왕국 전투에서 행방불명이 되어 전사자로 기록된 아들이었다. 록 공작은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머리가 잘 돌아가는 가문의 사람인 만큼 그는 손을 들어 마법사들에게 신호했다.
보안 1등급.
이를 가리키는 수신호에 정보 통신실은 조용히 그 지시를 이행했다.
공작은 이를 보지 않고서 아들을 바라봤다.
그때였다.
“안녕하십니까?”
공작의 눈에 한 사람이 더 보였다.
-너, 너는!
공작이 익히 아는 인물.
이번 로운 왕국 작전을 무위로 만들어 버린 인물.
붉은 머리칼의 남자.
케일 헤니투스가 보였다.
그가 클로페의 어깨에 다정히 손을 올린 채 환히 웃고 있었다. 록 공작은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것을 마주한 사람의 표정이 되어갔다.
고래족에, 북부 국경에, 아들에, 케일 헤니투스라니.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그 순간, 록의 동공이 흔들렸다.
“아버지.”
아들이, 클로페가 환하게 웃었다.
케일은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클로페는 살기 위해 제 말을 따를 것이다.
분명, 불굴 연합보다 로운 왕국이 강한 듯하니 그쪽으로 붙어 파에른 영토와 가문을 지키자고 말하겠지.
케일은 그렇게 확신하며 클로페의 입을 응시했다.
“신.”
음?
케일은 멈칫했다.
클로페는 제 아버지에게 환하게 말했다.
“이분은 신이십니다.”
…뭐야, 이 새끼?
케일은 진심으로 당황해 클로페를 쳐다봤다.
클로페는 자신의 꿈을 이뤘다는 얼굴로 말했다.
“아버지, 전설을 모셔왔습니다.”
…진짜로 맛이 갔어?
케일은 말문이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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