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214
213화.
황태자 아딘의 태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승리하면 푹 쉬어야지. 아주 푹.”
케일의 표정이 미묘하게 떨떠름해졌다.
아주 푹.
누가 보면 참 따스하겠으나, 케일에게는 이 이중인격자의 말이 인생을 하직해서 푹 쉬라는 소리로 들렸다.
사람 좋은 황태자 아딘의 모습.
케일은 그 모습을 슬쩍 훑어보면서도 다른 이들을 관찰했다.
황태자 뒤의 그의 호위 기사 몇 명, 그리고 그 뒤에 자리한 카로 왕국 사람들의 난감한 표정이 보였다.
‘황태자가 여기 있는 게 예정된 일은 아니군.’
어쩌면 당연한 생각이었다.
만약 지원 병력을 이끄는 이가 황태자 아딘이라면 카로 왕국은 당연히 이 사실을 로운 왕국 왕세자에게 알렸을 것이다.
케일은 저에게 한발 다가오는 황태자 아딘을 가만히 바라봤다. 황태자는 가까이 다가오더니, 속삭이듯이 말했다.
“그래서 푹 쉴 줄 알았더니, 이 요청에 응해 놀라웠어.”
승리해서 푹 쉴 줄 알았더니, 카로 왕국에 직접 올 줄은 몰랐다.
황태자는 카로 왕국 눈치를 보는 것처럼 익살스럽게 케일에게 말을 건넸고, 케일도 능청스럽게 답했다.
“저도 저하께서 여기에 계실 줄은 몰랐습니다.”
네가 여기 왜 있냐?
뭔 짓을 꾸몄고, 뭘 방해하려고 그러지?
케일의 속마음이었다.
그때, 한 사람이 텔레포트 이동장에 나타났다.
“오, 여기 있었군!”
케일은 처음 보는 사람이었지만 외관을 충분히 들어 누군지 대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발렌티노. 카로 왕국의 왕세자이자.
“자네는 집무실에 있겠다더니, 왜 여기 있는가?”
황태자 아딘의 오래된 친우.
발렌티노는 황태자 아딘의 어깨를 두드리며 살갑게 말을 건넸다. 황태자와 왕세자, 꽤 차이가 나는 지위임에도 둘의 모습은 스스럼이 없었다.
“나야 우리 제국의 영웅이 온다길래 보러 왔지.”
황태자는 사람 좋게 웃으며 케일을 가리켰고, 발렌티노는 이미 케일을 향해 손을 내밀고 있었다.
“반갑군. 우리 카로 왕국을 도와주러 와줘서 고맙네. 환영하러 오는 중이었는데, 이 친구가 먼저 와서 환영해 버렸군.”
발렌티노 왕세자는 예의를 별로 따지지 않는 성격으로 유명했다. 그렇기에 타국의 사령관에게 바로 악수를 청할 수 있는 것일 터.
“저도 반갑습니다.”
케일은 내민 손을 스스럼없이 잡고는 적당한 예의를 차렸다. 발렌티노는 그 모습에 씨익 미소를 그려 보였다.
“내 과군. 이런 성격이 좋아. 과한 예의가 없는 성격.”
“그렇습니까.”
덤덤하게 받아 넘기며 손을 놓는 케일을 발렌티노는 꽤 날카롭게 훑어보았다.
케일은 그런 시선을 알면서도 모른 척했다. 대신 그는 다른 게 궁금했다.
‘발렌티노 왕세자는 정말로 제국을, 황태자를 친우로 믿고 있을까?’
케일은 약간 맛이 간 놈, 클로페에게 대략적인 연합 관계도를 들었다. 그 안에 카로 왕국은 없었다.
북 3국, 암, 그리고 모고르 제국.
이들의 관계를 카로 왕국은 모르고 있다. 만약 알고 있다면 제국에게 도움을 요청했을 리 없었다.
‘하지만 제국의 뒷면을 알고 있을지 아닐지는 모를 일이지.’
수많은 노예를 구해 연금술 종탑에서 실험하도록 만든 제국.
카로 왕국은 제국의 저 추악한 일면을 모르고 있을까?
‘뭐, 그건 두고 볼 일이지.’
케일은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곧 카로 왕국의 권력 한축이 뒤흔들릴 테니까.
“자, 여기서 이러고 있을 것이 아니라, 자리를 안내해 주지.”
“저하, 그 일은 제가-”
“아닐세.”
발렌티노 왕세자는 카로 왕국 관리의 말에 손을 휘저어 보이고는 제가 안내하겠다고 나섰다. 이 과도한 친절을 지켜보고 있던 케일에게 황태자 아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자네 얼굴도 봤겠다, 우리 케일 공자도 봤겠다, 이만 돌아가봐야겠어.”
“오늘 저녁 군사 회의까지 남아 있겠다더니?”
관리와 이야기를 나누던 발렌티노 왕세자가 아쉬움이 담긴 얼굴로 황태자 아딘을 쳐다봤다. 아딘은 본인도 아쉽다는 듯 답했다.
“아무래도 제국을 비워두기 그래서 말이야. 그래도 후텐 공작이 있으니, 충분하지 않나?”
“그렇긴 하다만.”
황태자 아딘은 발렌티노의 어깨를 두드렸다.
“꼭 승리하길 바라네. 이건 황태자가 아닌 친우로서 자네에게 전하는 내 마음일세.”
“…고맙네.”
발렌티노는 정말로 고마워하고 있었다.
“후텐 공작에 병사, 제국 기사단, 제국 소속 마법사들까지. 자네가 얼마나 신경 써줬는지 알고 있네. 꼭 이기겠네.”
“그래! 이래야 내 친우지!”
카로 왕국 사람들과 아무것도 모르는 로운 왕국 사람들은 두 나라의 후계자들이 나누는 우정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그러나 한 사람.
케일의 표정은 남들이 모르는 사이, 미세하게 떨떠름해져 갔다.
‘이상한데.’
황태자 아딘이 이상하다.
왜 이리 친절한 척하지?
아무래도 뒷골이 서늘한 것이 감이 좋지 못했다. 거기다가 소드 마스터 후텐 공작에, 기사단에, 마법사라고? 연금술 빼고는 핵심 전력의 일부를 거의 떼어주었다.
제국은 카로 왕국에, 과하게 많은 것을 베풀었다.
진실한 우정이라면 아름다운 이야기겠지만.
황태자 아딘이 그럴 일은 없지 않은가?
황태자는 불굴 연합이 이겨야 이득이었다.
-…약한 인간. 그런데 저 황태자 놈 웃는 거 기분 나쁘다.
봐라. 우리 라온도 귀신같이 알아채고 있지 않은가.
케일은 더욱더 황태자 아딘을 미심쩍게 바라봤다. 그때였다.
황태자 아딘의 시선이 케일 쪽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봐서 반가웠네.”
“저도 그렇습니다, 저하.”
아무것도 모르는 로운 왕국 사람들은 케일과 황태자의 따스한 분위기에 미소를 그렸다. 제국의 황태자와 친해 보이는 케일이 괜히 듬직해 보였다.
그리고 이내 더 환한 미소를 그렸다.
“자네가 로운 왕국의 최연소 소드 마스터인가?”
황태자가 로운 왕국의 자랑이자 새로운 영웅인 소드 마스터 최한에게 먼저 살갑게 다가갔기 때문이다.
로운 왕국 기사단과 마법병단은 얼핏 감탄이 서린 황태자의 표정에 괜히 뿌듯함이 밀려왔다.
그러나 한 사람.
케일은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꾹 눌렀다.
‘이것 봐라?’
황태자의 시선이 최한과 메리에게로 향해 있었다. 그러나 고개를 푹 숙인 메리보다는 최한에게 말을 건넸다.
“저번에 보았던 호위 기사가 이리 강한 사람인 줄은 몰랐어.”
그리고 최한에게 손을 내밀었다.
황태자가 작위도, 관직도 없는 이에게 이러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최한은 소드 마스터다. 겉모습만 보면 대륙 최연소 소드 마스터.
“최연소 소드 마스터의 탄생이라니. 악수해도 되겠나?”
황태자는 소탈한 모습으로 부드럽게 최한을 바라봤다.
케일은 황태자의 그 모습을 쳐다보며 속으로 비웃음을 흘렸다.
‘여기 온 이유가 적의 전력 탐색이었어?’
최한과 메리.
둘의 존재를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던 건가?
케일은 비로소 황태자가 조급함을 느끼고 있음을 확실히 인지할 수 있었다.
하긴 얼마나 당황스럽겠는가?
제국과 로운 왕국은 현재 겉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사이가 좋다. 서로 마법 폭탄 테러의 아픔을 공유하고 있으며, 더욱이 케일은 제국에서 훈장도 받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 케일이 있는 영지에서부터 시작해 일이 틀어지게 생겼다.
케일은 모든 걸 컨트롤하길 원하는 황태자의 가면 속에 얼마나 짜증이 가득 차 있을지 충분히 짐작됐다.
나름 깨소금이 흘러나오는 상황이라, 케일은 꽤 느긋하게 황태자를 쳐다봤다. 그런데, 이상하게 뺨이 간지러웠다.
왼쪽 뺨이 간지럽다.
-인간, 인간! 최한이 인간 쳐다본다!
음?
케일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멀뚱히 저를 쳐다보는 최한을 볼 수 있었다. 더불어 아직 비어 있는 황태자의 손이 보였다.
케일은 카로 왕국에 오기 전 최한과 메리를 붙잡고서 단단히 일러둔 말을 떠올렸다.
‘둘은 연기하지 마라. 연기 할 일 생기면 나한테 일단 보고하고 해.’
발연기 소유자와 순수하게 다 말해 버릴 것 같은 사람.
케일은 제가 했던 말을 되새기며 최한을 다시 쳐다봤다.
‘설마?’
케일은 살짝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러자 최한은 무뚝뚝한 얼굴로 황태자 아딘의 손을 예의 바르게 잡으며 인사했다.
‘이 녀석이!’
케일은 오랜만에 속이 시원하다 못해 뻥 뚫리는 기분을 느꼈다.
역시 최한은 좋은 놈이다.
“하, 하하-”
황태자 아딘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거, 이거 완전히 케일 사령관의 충직한 부하로군.”
그는 정말로 재밌다는 듯 웃으며 최한의 어깨를 두드렸다. 어찌 보면 예의가 아닐 수 있는 상황. 케일이 슬쩍 끼어들며 부드럽게 대화를 이어갔다.
“아무래도 아직 귀족의 예의에 서툴러 제가 주의를 줬는데, 그 바람에 이리 행동한 것 같습니다. 저하께서 좋게 봐주시니 다행이군요.”
“뭐, 이 정도야. 귀족이 아니었으면 모를 수도 있지. 이 나이에 검술로 이 경지를 이룬다는 게, 다른 쪽에 신경을 두면 할 수 없는 일이지. 안 그런가, 최한?”
호오.
케일은 벌써 최한의 이름까지 알고 있는 황태자의 정보력에 감탄하며 생각했다.
‘로운 왕실의 누가 제국의 심부름꾼인가?’
서늘한 기운이 케일의 눈가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때였다. 최한이 입을 열고 황태자의 말에 대꾸했다.
“맞습니다. 우리의 전, 으음, 우리의 역사를 지키고 만들려면 열심히 검을 갈고닦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역사. 로운 왕국 사람들의 입가에 짙은 자부심이 담겼다.
검은 로브가 들썩이며 최한의 등을 쳐다봤다.
우리의 ‘전’. 그 뒤의 글자는 ‘설’일 것이다. 메리만이 이를 알아듣고 주먹을 꽉 쥐었다.
진심이었기에 최한의 발연기는 나오지 않았다.
“하하하, 그래. 참으로 올곧은 청년이군. 저 뒤의 네크로맨서도 그렇고. 참 다들 영웅감이야. 이런 이들이 왜 제국에 없는지.”
“그러게나 말일세. 카로 왕국에도 없는 게 아쉬워.”
두 후계자들은 허허 웃으며 대화를 슬슬 마무리했다.
“이만 가보지.”
황태자 아딘은 호위 기사들과 함께 로운 일행이 내려선 텔레포트를 통해 제국으로 돌아갔다.
***
그리고 얼마 뒤, 케일은 카로 왕국 군사 회의에 참석했다.
작은 원탁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아 있는 사람의 수는 적었다.
카로 왕국의 발렌티노 왕세자, 제국의 후텐 공작.
케일의 눈에 익은 이들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
카로 왕국의 대장군. 이번 전쟁의 총사령관이었다.
그리고 한 사람 더.
태양신 카로 왕국 교단의 대신관. 교단 연합을 대표하여 그도 자리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케일에게도, 메리에게도 적대감을 보이지 않았다. 눈이 마주친 케일에게도 그저 부드럽게 신관다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케일은 발렌티노 왕세자의 말이 떠올랐다.
‘왕국 내 교단 측에서도 다 돕기로 했네. 자네의 수하에게 시비를 거는 일은 없을 거야. 그쪽에서도 그러겠다고 했고, 우리도 단단히 일러두었거든.’
꽤 신경을 많이 쓴 카로 왕국 측의 태도에 케일은 만족했다. 전쟁이 걸린 만큼 교단이 적어도 사리 분별은 하는 모양이었다.
작은 원탁 테이블에 앉은 사람은 적었으나, 그 테이블 뒤에 자리한 사람들은 꽤 많았다.
모두 각 수장들의 호위였는데, 케일의 뒤에는 메리와, 최한, 부단장 힐스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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