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216
215화.
병사는 불안한 마음에 창 손잡이를 꾹 눌러 쥐며 계단에 올라섰다.
탁. 탁. 탁.
오랜 세월이 느껴졌지만 튼튼한 돌계단. 그 돌계단을 하나하나 밟고 올라가는 병사의 표정은 떫은 감을 집어 먹은 것처럼 좋지 못했다.
‘왜 하필!’
그는 앞서는 동료 병사의 너머 밖이 보였다.
계단 끝 출구로 그는 나갔다.
휘이이.
시원한 바람이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동시에 시원하게 탁 트인 광경이 보였다.
리오나성.
거대한 성을 둘러싼 세 개의 첨탑. 그중에서도 남쪽 첨탑과 붙어 있는 성벽에 자리한 병사는 몸을 움츠렸다.
‘제국 쪽도 아니고 중앙도 아니고 하필이면 로운 왕국 측이라니!’
그는 남쪽 첨탑에 배치된 몇 안 되는 병사 중 한 명이었다. 로운은 그들만으로 충분하다고 했으나 중앙 지휘를 위해 몇 명의 사람은 필요했다.
병사가 맡은 일은 주로 전령 겸 잡일이었다. 물론 전투를 대비한 창이 그의 손에 들려 있었다.
“…휑하구먼.”
함께 온 선임 병사의 말에 병사의 얼굴이 더 구겨졌다.
휑하다.
정말로.
백 명도 채 안 되는 로운의 병력.
작은 성에 버금가는 첨탑과 남쪽 방면 성벽을 채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숫자였다. 병사는 고개를 돌려 보인 광경에 한탄과도 같은 말을 흘렸다.
“제국 쪽은 엄청나네.”
북쪽 첨탑. 그곳에는 제국의 병사들과 기사, 그리고 마법사들로 꽉 찬 성벽이 보였다. 그리고 이들을 진두지휘하는 소드 마스터 후텐 공작이 보였다.
또 삼각형의 모양으로 북쪽과 남쪽 첨탑 조금 뒤에 위치한 중앙 첨탑, 그곳에도 수많은 카로 왕국군이 오가며 전열을 가다듬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뭐 저리 많아.”
남쪽 첨탑 아래에선 카로 왕국 중부 해안가의 모습이 모두 보였다.
그 해안가에 자리한 거대한 배들.
오늘 새벽부터 불굴 연합과 카로 왕국 연합 측은 대치 중이었다. 전쟁이 처음인 병사는 손발이 떨려왔다.
카로 왕국군 근처가 힘들다면 차라리 제국 쪽에 있어야 그나마 살아남을 확률이 높을 텐데.
아니, 싸우더라도 뭔가 제대로 군사 체계가 잡힌 곳에서 싸우고 싶은데!
병사의 표정이 흐려질 대로 흐려졌다.
해안가의 바닷물이 보이지 않을 만큼 들어찬 적의 함대들.
저 배 속의 병사들과 기사들이 쳐들어온다면 이 해안가는 모조리 적군으로 뒤덮일 것이다. 그 수만의 적군들이 이 성으로 진군할 모습을 생각하니 뒷골이 서늘해져 왔다.
물론 투석기와 나무 기둥들을 준비해, 말 혹은 걸어서 올 적군들을 대비할 장치를 해두었다. 그러나 그것도 중앙과 북쪽 첨탑의 이야기였다.
이곳, 휑한 남쪽 첨탑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아무리 강한 분들이 오셨다고 해도.’
로운 왕국의 승리는 유명한 이야기였다.
믿을 수 없는 승리에 다들 얼마나 이야기를 했던가.
사실 병사는 스스로 로운 왕국 측에 오겠다고 지원한 사람이었다. 왜냐면 그들의 이야기가 가슴을 뜨겁게 만들었다.
‘나도 저런 전투에서, 강대한 적들에 맞서 싸워 이기고 싶다! 승리하고 싶다!’
그 마음에 로운 측에 지원을 했으나, 결과로 마주한 현실에 두려움이 밀려왔다.
“왜 그리 겁을 집어먹었나?”
병사는 고개를 들었다. 선임 병사. 자신보다 십 년은 더 병사로 일한, 삼촌과 같은 이가 보였다. 그는 선임의 물음에 망설이다가 답했다.
“그냥. 살아남을 수 있을까 싶어서요.”
패기와 생존은 다른 문제였다.
“벌써부터 그렇게 기가 죽으면 안 되지.”
“…사실 그렇잖아요.”
병사의 시선이 다른 첨탑들로 향했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는 고개를 푹 숙였다.
“로운 왕국분들은 분명 강하신 분들이지만. 전쟁에서 싸우다 보면 우리까지 지켜줄 틈이 있을까요? 여기는 사람도 적어서 틈이 많이 생길 테고, 그러면 분명 우리부터 다칠 텐데.”
로운 왕국 측 강자들은 살아남을지도 모른다. 승리할지도 모른다.
아니, 카로 왕국 연합은 지금 전력으로 비기거나 혹은 승리를 예상했다. 그만큼 제국 측에서 생각보다 많은 병력을 보내왔고, 또 수성하는 입장은 유리했으니까.
그런데 그 승리에 병사는 자신이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그것이 그를 두렵게 만들었다.
“어제도 다른 진형은 일을 한다고 바쁜데, 우리 쪽은 기사들도, 마법사들도 다 땅이나 파고 있고. 그 이유도 모르겠고.”
어제 남쪽 첨탑을 맡은 로운 왕국 측 병력은 하루 종일 땅을 파댔다.
함정을 만드는가 싶었더니, 그건 또 아닌 것 같았다.
이유를 물어도 그냥 땅을 판다는 대답만 돌아와 답답하기만 했다.
“우리는 끼워주지도 않고! 그래도 함께 싸울 같은 편인데!”
그는 삼촌과 같은 선임에게 저도 모르게 평소처럼 편하게 말해 버리고 말았다. 그때였다.
“흐음, 사령관님.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는 사기에 좋지 않다고 생각되는데요.”
어?
병사는 멈칫했다. 선임이 슬쩍 앞으로 나서며 그를 가렸다. 어린 병사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돌계단에서부터 한 무리의 사람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로운 왕국에서 왔다는 압도적인 승리의 주인공들.
어린 병사는 붉은 머리칼의 사령관 케일 헤니투스의 무표정한 얼굴이 보였다. 딱딱하게 무섭게 생긴 것은 아니나, 쉬이 사람이 다가가기 어렵게 느껴지는 분위기의 외모였다.
그 뒤로 최연소 소드 마스터 최한, 네크로맨서 메리와 기사들, 마법사들이 차례대로 올라오고 있었다.
모두 로운 왕국 측의 사람들이었다.
“…아, 으.”
병사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어쩔 줄 몰라 했다.
들었나?
병사는 자신을 보며 씨익 웃는 남자가 보였다. 그도 아는 이였다.
어제 남쪽 첨탑 병사들 앞에서 인사를 했던 사람.
로운 왕국 헤니투스 영지 소속 기사단 부단장, 힐스만.
방금 전 케일에게 말을 건 이가 힐스만이었다.
어떡하지?
병사의 눈동자가 혼란으로 이리저리 흔들렸다. 그때였다. 어린 병사의 눈동자와 케일의 눈동자가 마주쳤다.
“걱정 말도록.”
“…네?”
어린 병사는 저도 모르게 되물었다.
그는 저를 지나쳐 첨탑의 꼭대기로 향하는 사령관을 볼 수 있었다. 사령관은 남쪽 첨탑에 배치된 몇 안 되는 전령, 혹은 잡일 담당의 병사들에게 나직이 말했다.
“이미 우리 편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무심한 목소리가 귓가에 박혔다.
“오늘 다 같이 살아남고, 술이라도 한잔하지.”
아.
병사는 남쪽 성벽의 가장 위, 첨탑 꼭대기로 향하는 사령관 케일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의 뒤를 따라 움직이는 소드 마스터와 네크로맨서가 보였다.
더불어 병사는 남쪽 성벽을 따라 일렬로 늘어서는 이들을 볼 수 있었다.
마법병단 소속 마법사들, 그리고 로운 측의 기사들. 그들은 병사들의 앞을 지나 성벽 난간 가장 가까이에 섰다.
이를 멍하니 지켜보던 어린 병사의 앞으로 한 사람이 다가왔다.
“크흠, 사기가 저하되면 곤란하니 내가 한마디를 하도록 하지.”
부단장 힐스만이었다.
그는 괜히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우리 헤니투스 영지에는 유명한 말이 있네. 아니, 로운 왕국 전체에서 유명해지고 있는 말이지. 이 말을 떠올리면 두렵지 않을 걸세.”
갑자기 무슨 소리지?
사령관이 남긴 말이 머릿속에 남아 여운이 가시지 않았다. 그런데 힐스만이 새로운 말을 꺼내자 어린 병사는 의아한 눈길을 감추지 못하고 그를 바라봤다.
힐스만은 저를 쳐다보는 몇 안 되는 병사들의 시선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방패는 부서지지 않는다.”
크으.
힐스만은 술이라도 한잔 들이켠 듯 감탄을 흘렸다.
그러나 병사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케일의 방패가 강하다고 알려지긴 했지만, 이 말까지는 아직 다른 왕국들에게 전해지지 않았다.
부단장 힐스만은 영문을 몰라 하는 병사들에게 씨익 웃으며 덧붙였다.
“그냥 기억만 해두고 있게. 왜냐면 우리 편은 모두 이 말을 가슴에 달고 살거든.”
우리 편.
그 단어에 병사의 시선이 제 앞을 향했다. 마법사와 기사들이 보였다. 힐스만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우리 모두 함께 싸우다 보면 이 말이 자연히 떠오를 걸세. 그러니 힘내보자고.”
힐스만은 그 말과 함께 사라진 케일을 따라 얼른 첨탑의 꼭대기로 향했다.
방패는 부서지지 않는다.
병사는 그 말을 머릿속으로 한 번 더 되새겼다. 그때 삼촌과 같은, 어린 시절부터 동네에서 병사가 되겠다는 저에게 창술을 가르쳐 주었던 선임 병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걱정 안 해도 되겠어.”
“…네.”
걱정이 사라졌다.
“우린 우리 할 일을 제대로 하자.”
가장 고참인 선임의 말에 몇 안 되는 병사들은 뿔나팔과 창, 알림기를 다시 한번 챙겼다. 전반적인 전쟁 상황을 알리고 원활하게 소통하는 일.
케일 사령관에게 영상 통신구가 있겠지만, 그들은 몸 전체에 피가 빠짐없이 흐르기 위해서 꼭 필요한 모세혈관과 같은 존재였다.
그들의 마음가짐이 조금 달라졌다.
이를 모르고 있던 케일은 뒤늦게 올라오는 힐스만의 얼굴을 보고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얼굴이 왜 그래?”
“하하하.”
힐스만은 호탕하게 웃어댔고 케일은 그냥 외면했다. 병사들에게 뭔 소리를 했는지 몰라도 싱글벙글 웃는 모양새가 영 찝찝했다. 하지만 케일은 그 표정에 신경 쓸 틈이 없었다.
“여기 계셨군요!”
힐스만의 뒤를 이어 카로 왕국 측의 기사 한 명이 첨탑 꼭대기에 올라섰다. 케일의 곁에서 도울 목적으로 배정된 기사였다.
그리고 치료사 집안 출신이었다.
왕세자 발렌티노는 그 위치에 있음에도 케일에게 사과의 말을 여러 차례 건넸다. 스스럼없는 사과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괜찮다는 케일 일행에게 마음이 불편하다며, 이 기사와 함께 간단한 치료술을 할 수 있는 마법사를 배치시켰다.
단 두 명. 턱도 없는 숫자였으나, 현재 대치 중인 상황에서 발렌티노의 최선이 느껴졌다. 또 인원을 더 보낸다고 했고.
물론 케일이 필요 없다고 했다.
가진 게 돈이고 포션이다. 최상급 포션을 아공간에 쌓아두고 다니는 케일이다. 그는 제 사람들을 지킬 재력은 되었다.
“오늘따라 바람이 거세네요.”
기사의 말에 케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시선이 첨탑 밖의 풍경으로 향했다.
휘이이-
거친 바람과 함께 해안가가 보였다.
그곳에 자리한 거대한 배들.
또 남쪽 첨탑 좌측에 자리한 거대한 산이 보였다.
케일의 입이 열렸다.
“죽음의 땅도 보이는군.”
저 멀리 남쪽. 산과 해안가 사이, 남부를 모두 차지하는 거대한 사막. 죽음의 땅이 보였다.
지금은 해가 지기 바로 전이라 사막의 모래알은 핏빛처럼 붉은색이었다.
카로 왕국 기사는 얼른 입을 열었다.
“죽음의 땅이 보이지만, 우리에겐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으니 걱정 안 하셔도 될 겁니다. 적들도 저리로 도망갈 이유도 없고요.”
기사는 사막에 시선을 둔 사령관이 미소 짓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래. 도망가면 안 되지.”
기사는 나직한 목소리에 알 수 없는 서늘함이 느껴졌다. 그러나 이내 정신을 차리고 사령관을 찾아온 이유를 말했다.
“곧 노을이 지면 밤이 되니 경계 태세를 그대로 유지할 것이지만, 아무래도 전투는 내일부터 시작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여기는 밤에 게릴라 야습을 하기에도 적절치 않은 지형이고, 또 대규모 병력이 부딪치는 일이라 밤은 상황에 적절하지 않다고 참모부에서 판단하였습니다.”
기사는 조금 여유로운 표정으로 해안가를 바라봤다.
“또 아직 적들은 배에서 모습을 한 번도 드러내지 않았잖습니까?”
그렇다.
적들은 배와 가끔 배 위를 오가는 몇 명의 사람만 보일 뿐, 다른 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모두 배 안에 있다는 소리였다.
“걸어서, 혹은 말과 같은 이동 수단을 데리고 진군해야 할 텐데, 아직 배 안에 머무는 걸로 봐서는 오늘은 아닐 것 같습니다. 저들도 준비를 하고 쳐들어와야 할 테니까요.”
카로 왕국이 자신만만한 이유 중 하나였다.
땅 위에서의 싸움은 서로 패를 거의 드러내고, 대놓고 싸우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기에 해가 지는 지금, 조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적들을 보며 참모부는 과감히 내일을 기약했다.
케일은 별다른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사는 그 모습에 살짝 허리를 숙였다.
“그럼 이만 전 내려가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그래.”
기사는 별다른 지시를 하지 않는 케일을 묘한 눈으로 쳐다보다가 첨탑 꼭대기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을 밟았다.
‘과묵하시네.’
알게 모르게 대신관에게 욕설과 거친 말을 한 케일에 대한 이야기가 알음알음 퍼지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기사는 괜히 그 거친 모습과 지금의 과묵한 모습이 겹쳐져 사령관이 신비롭게 보였다.
“보고를 했으니까 이제 성벽에서 대기만 하면-”
그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끼이이이이-
날카로운 소리가 기사의 귓가에 박혔다.
“윽!”
그 소리에 기사는 두 손으로 귀를 막았다. 그러나 그는 이내 귀에서 손을 황급히 떼어야 했다.
쿠우웅.
땅이 진동했다.
“어?”
그는 첨탑의 돌벽을 황급히 잡았다.
끼이이. 끼이익-
쿠웅, 쿠우웅.
여러 소리들이 주변을 뒤덮고 있었다.
‘뭐지?’
기사는 돌벽을 짚으며 황급히 계단을 내려섰다. 그러자, 전령 담당 병사가 보였다.
툭.
어린 병사의 손에 들린 창대가 떨어졌다.
그리고 겁에 질린 얼굴이 보였다.
설마?
기사는 고개를 돌렸다. 동시에 큰 소리가 리오나성 전체에 퍼지기 시작했다.
위이이잉- 위이이잉-
전쟁.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경고음이었다.
“…이런.”
기사의 눈이 커졌다.
끼이이, 끼이익.
바퀴가 구르는 소리였다.
끼이이-
하지만 이내 바퀴는 익숙해졌다는 듯, 더 이상 소리를 내지 않고 제대로 굴러가기 시작했다.
쿠우웅. 쿠웅.
더불어 땅이 진동했다.
아니, 해안가가 진동했다.
“무슨 저런……!”
기사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해안가에서 배가 달려오고 있었다.
해안가의 바닷물을 헤치고 모습을 드러낸 중형 배의 바닥.
그곳에는 바퀴가 달려 있었다.
그 바퀴가 힘차게 움직이며 해안을, 땅 위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움직이지 않는 대형 선박과 달리, 그에 버금가는 적의 소형, 중형 배들이 땅 위를 달리고 있었다.
‘저게 가능한가?’
기사는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저건 가능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지금 자신의 눈으로 보고 있었으니까.
그때,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북부 해안은 모래사장……!’
카로 왕국 북부 해안은 모래사장으로 유명했다.
그러나 중부 해안은 카로 왕국 해안가 중 유일하게 모래사장이 적었고, 대부분 모래가 적게 쌓여 있어 지반이 금세 드러났다.
‘…설마 중부를 택한 게 수도와의 거리 때문이 아니라!’
기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바다를 갈라야 할 중소형 배가, 마치 거대한 마차처럼 성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그 속도는 어마어마했다.
점점 붉어지는 하늘을 뒤로하고 달려오는 수백여 척의 배는 압박감이 어마어마했다.
그때, 배들 위로 드러나는 존재들이 보였다.
“으음!”
침음이 절로 흘러나왔다.
쿠우웅, 쿠웅.
땅을 울리며 달리는 배의 위. 커다란 그림자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곰족.”
광폭화한 곰족.
그것도 가장 강하다고 알려진 불곰족과 백곰족이 달리는 배들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예상했던 존재였다. 그렇지만 그 수가 어마어마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선두에 선 중형 배, 그 배를 보는 기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크하하하하!”
광포한 웃음소리를 터뜨리는 존재.
3m에 달하는 거대한 몸체가 보였다.
하얀 털.
광폭화한 백곰 수인이 붉어진 눈으로 성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 웃음소리에 반응하듯 다른 곰족들도 웃음을 터뜨렸다. 그 모습은 일반 병사와 전쟁을 겪지 못한 기사들의 마음을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끼이이이- 쾅.
대형 배들의 문이 열렸다.
그곳에서 병사들이 개미 떼처럼 나타났다.
하나둘 점점 늘어가는 적 병사들의 숫자에 절로 마른침을 삼켰다.
“나뉘어라!”
백곰의 외침이 해안가에 울려 퍼졌다.
그 순간 배들이 세 갈래로 나뉘어졌다.
위이이잉- 위이이잉-
리오나성은 여전히 경고음을 연신 울렸다.
그러나 기사는 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남쪽 첨탑을 향해 다가오는 곰족과 배들, 그 뒤의 적군 병사와 기사들만이 보였다.
‘무슨 이런……!’
기세가 밀렸다.
그걸 기사도 느꼈다. 압박감이 달랐다.
그 순간.
툭.
기사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의 어깨에 올려진 손이 보였다.
“…사령관님.”
케일 사령관이 보였다.
그는 기사의 어깨에서 손을 떼더니 허리를 숙여 창을 집어 들었다.
“챙겨라.”
그러고는 창을 놓친 어린 병사에게 건넸다.
병사는 덜덜 떠는 손으로 창을 집어 들었다. 케일은 병사의 어깨를 두드리며 그를 지나쳤다.
“적을 앞에 두고 무기를 놓치면 안 되지.”
담담한 목소리는 태연했다.
사령관은 병사들을 지나쳐 성벽 난간 가까이에 섰다.
어찌 보면 가장 위험한 자리였다.
하지만 병사는 미소 짓는 사령관의 편한 얼굴이 보였다. 떨리던 손이 조금 멈췄다.
그때 사령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최한.”
“네, 케일 님.”
병사는 저보다 한두 살 많을 것 같은 소드 마스터가 케일의 옆에 서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최한은 케일의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케일은 성벽 아래를 내려다봤다.
그는 수호 기사 클로페가 알려주었던 수많은 정보 중 일부를 떠올렸다.
‘카로 왕국으로 향하는 함대는 분명 곰족이 주도하는 걸 겁니다. 그들은 땅을 원합니다.’
‘그리고 아마 비장의 무기를 숨겼을 겁니다. 곰족과 화염의 드워프족, 그들은 영악하고 비밀이 많습니다.’
케일은 입을 열었다.
“저거였어.”
비장의 무기가 저 배였다.
분명 마법 장치는 잘 못 만들어도 기계 장치에 뛰어난 화염의 드워프족이 만든 배이리라.
-인간, 배에서 마정석 힘이 느껴진다.
‘화염의 드워프, 그놈들이 제일 음습하고 영악합니다.’
라온의 목소리와 클로페의 정보가 머릿속에 함께 섞여 들어갔다.
마법 장치를 잘 못 만들어?
저 배를 움직이는 힘은 마나 같은데?
케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크하하하! 다 덤벼라!”
케일은 남쪽 첨탑을 향하는 광폭화한 불곰족의 거친 음성을 들었다. 아까 전의 그 거대한 백곰족은 중앙 첨탑을 향하고 있었다.
영악한 놈들이니, 저 거친 외침도, 웃음도 다 연기일 것이다.
“저, 사령관님. 중앙에서 연락이 옵니다.”
기사와 함께 치료술을 지녀 남쪽 첨탑으로 배정된 마법사, 그녀가 조심스럽게 영상 통신구를 내밀며 케일을 쳐다봤다. 하지만 그녀는 저를 보지 않고 입을 여는 케일을 보았다.
“기세 싸움은 지면 안 되지.”
“네?”
그녀가 저도 모르게 되물었을 때였다.
“최한.”
“네.”
케일은 성벽 아래를 가리켰다. 남쪽 첨탑을 맡은 배들 중 가장 앞서서 달려오는 배 위의 불곰족들이 보였다. 케일은 그 배를 가리켰다.
“부숴.”
그가 말한 순간이었다.
타닥.
가벼운 발걸음 소리가 성벽에 울려 퍼졌다.
“…어!”
어린 병사는 저도 모르게 탄성을 흘렸다.
날아올랐다.
성벽을 박차고 흑발의 검사가 날아올랐다.
그의 검에서는 검은 오러가 하늘을 찢을 듯 솟구쳐 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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