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218
217화.
헤니투스성보다 2.5배는 더 큰 리오나성.
사람들은 시야를 점멸할 듯 무수하게 터지는 폭발들 사이로 자신들을 덮치는 검은 파도가 보였다.
카로 왕국 왕세자 발렌티노는 그 검은 액체를 보는 순간, 머릿속이 아득해지며 아찔함이 밀려왔다.
죽은 마나가 뒤덮은 땅.
그 땅 위에는 아무것도 자랄 수 없다.
저 검은 액체가 묻거나 혹은 상처나 입, 눈으로 스며든 병사들은 죽을 터.
그러나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다른 단어였다.
“…방패.”
콰앙, 콰아앙.
수십 척의 소형 배가 부딪쳤다.
쿠우웅-
성벽을 받치고 있는 땅.
그 지반이 요동치며 성벽이 흔들렸다.
그러나 흔들리지 않는 존재가 있었다.
발렌티노의 입이 열렸다.
“…실드를 거둬도 될 것 같네.”
리오나성 앞에 마치 또 다른 산이 하나 생긴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은 산이 아니라 방패였다.
심장 문양이 새겨진 은빛 방패. 그 거대한 방패가 리오나성의 정면을 버티고 서서 모든 것을 막고 있었다. 은빛이 어찌나 두꺼운지, 마치 몇 겹의 실드를 두른 듯 색이 선명해 눈을 부시게 만들었다.
물론 그 시각 케일은 머릿속으로 라온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인간, 역시 나는 조금 위대한 것 같다! 은빛 실드 4중짜리다! 죽은 마나는 우리를 조금도 건들지 못할 거다! 모두 구한다!
신이 난 라온의 목소리를 들으며 케일은 6살 용의 단단한 은빛 실드 아래서 희미하게 방패만 대충 펼쳤다.
어느 때보다도 방패를 넓게 펼쳐야 했기에 방패의 힘은 그다지 강하지 않았다. 물론 이전보다야 강해졌지만, 이 성 전체를 지킬 힘은 되지 못했다.
‘역시 용이 최고야.’
그러나 라온의 은빛 4중 실드로, 케일의 방패는 어느 때보다도 찬란한 은빛을 지닌 단단한 존재가 되어 있었다.
불굴 연합과 제국 놈들은 헤니투스 영지 전투를 기준으로 삼아 세 배 이상의 폭발력을 준비했다. 드래곤 슬레이어의 재해 검으로 일점에 집중했던 그때와 달리 이번 폭발은 동시다발적으로 곳곳에서 터지는 힘이었다.
아마 이 정도면 케일의 힘으로도 역부족이라고 여겼으리라. 적어도 조금의 틈을 만들거나, 혹은 시간은 끌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웃기는 놈들.’
하지만 케일에게는 상극인 드래곤 슬레이어의 힘만 없으면 최고인 어린 용이 있었다. 그의 입가에 흡족한 미소가 걸렸다.
이를 모르는 발렌티노 왕세자는 안도와 함께 두려움이 밀려왔다.
‘영웅은 역사를 바꾸는 자들이지.’
결국 승리를 쟁취해 대륙의 판도를 바꾸는 자들. 그런 자들을 영웅이라 한다.
케일 사령관은 발렌티노에게 영웅을 데리고 왔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 영웅들을 이끄는 이자는 누구일까?
“저하!”
그는 저를 부르는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장군에게 바로 지시를 내렸다.
“지금 당장 신관들을 데려와라! 빛 속성 신관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데려와!”
죽은 마나로 온 땅을 헤집어놓고 도망가는 적들.
그들을 잡으려면 죽은 마나 사이로 작은 길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빛 속성, 특히 태양신 교단의 힘이 필요했다. 그들이 네크로맨서들을 몰살시킬 때 선보였던 태양의 길. 신성력으로 만들어진 길이 필요했다.
왕세자도 눈치채고 있었다. 지금 떠나려는 저 배들이 그냥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북부 해안가를 노린다는 것을. 그도 충분히 깨닫고 있었다.
그렇기에 저들을 놓쳐서는 안 되었다. 반드시 붙잡아두어야 한다.
최대한 붙잡아 시간을 끌어야 한다.
쿠우웅, 쿠웅,
폭발음이 가라앉으며 점점 땅의 진동도 줄어들었다. 은빛 실드의 빛도 옅어져 갔다.
“으음.”
그는 저도 모르게 침음을 흘렸다.
“으어억.”
“끄어어어-”
까맣게 물든 땅.
검은 늪이 생긴 듯 진득한 액체들이 땅을 잠식해 갔다. 그리고 그 위, 부서진 수많은 배의 잔해들 사이로 폭발과 죽은 마나 중독으로 죽어가는 적군 병사들이 보였다.
“…아, 악몽-”
발렌티노 왕세자는 성벽 난간으로 시선을 돌렸다. 덜덜 떨며 이건 악몽이라고 외치는 어린 병사가 보였다. 급하게 병사들을 차출한 카로 왕국이라, 병사들 중에선 이제 막 15살을 넘긴 어린 병사들도 많았다.
그들에게 이 광경은 전쟁의 참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일 터.
‘잔악한 놈들.’
발렌티노는 아군을 사지로 내밀어 버리고 또 다른 이들을 죽이러 가는 불굴 연합의 잔혹함에 치가 떨려왔다.
동시에 두려움이 밀려왔다.
나도 이렇게 내 병사들을 사지로 밀며 싸워야 이길 수 있을까?
전쟁이 처음인 것은 발렌티노 왕세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는 왕세자이기에 정신을 차려야 했다. 그건 그의 곁에 있는 카로 왕국 수뇌부들 모두 마찬가지였다.
저렇게 되지 않으려면 싸워야 한다.
참모장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저하, 적들을 놓치면 안 됩니다.”
적의 배들은 곰족과 병사, 기사들을 다시 태우며 빠르게 이동을 준비하고 있었다. 벌써 해상으로 떠나고 있는 배도 열 척이 넘어갔다.
대장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둘러야 합니다. 신관들이 죽은 마나를 치워준다고 해도 부서진 배의 잔해나 적 병사들로 인해 해안가까지 가는 데 어려움이 많을 것 같습니다.”
대장군의 말이 맞았다. 죽은 마나도 장애물이건만, 저 성벽 아래와 일대에 부서진 배와 적 병사들이 그들의 앞길을 막고 있었다.
“신관! 대신관을 불러!”
왕세자는 신관을 찾으면서, 동시에 영상통신 마법사를 보며 지시했다.
“북측과 남측 첨탑에 영상통신을 연결해라!”
“네, 저하!”
그 순간, 왕세자는 돌계단을 밟고 올라오는 여러 발걸음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타닥, 타닥.
그는 중앙 첨탑으로 올라오는 이들을 확인하고 이내 표정이 살짝 밝아졌다.
신관들이었다. 리오나성에 파견된 빛 속성 신관들이 태양신 교단 대신관을 필두로 성벽에 모두 올라서고 있었다.
왕세자는 이전의 무례한 행동으로 화가 났던 태양신 교단 대신관조차도 지금 이 순간에는 반가웠다. 그는 얼른 돌계단을 올라서는 대신관에게 다가갔다.
“대신관!”
“저하.”
대신관은 차분하게 허리를 숙여 보였다. 그러나 그런 예의를 따질 겨를이 없던 왕세자는 대신관의 어깨를 잡으며 빠르게 말을 쏟아부었다.
“저 죽은 마나 사이로 길을 만들어주시오. 빛 속성 신관들은 가능하다고 들었소. 내 부탁하오.”
“당연히 없애야지요. 더러운 죽은 마나 아닙니까.”
왕세자 발렌티노는 부드러이 대답하는 대신관이 이 순간만큼은 듬직했다.
태양의 길.
태양신 교단에서 네크로맨서들을 몰살하러 떠날 때, 죽은 마나로 뒤덮인 땅 위에 만들었다는 길. 그 길을 따라 성기사들이 나서 네크로맨서들과 결전을 벌였다고 한다.
그 순간, 영상 통신구가 하나 연결되었다.
-저하.
“아, 후텐 공작!”
모고르 제국의 후텐 공작. 북측 첨탑을 맡은 그가 로운 왕국 측보다 먼저 연결되었다.
-모두 무사해서 다행입니다.
제국의 한마디에 발렌티노는 고마움이 밀려옴과 동시에 황급히 입을 열었다.
“곧 신관들이 죽은 마나 사이로 길을 낼 것이네. 우리는 불굴 연합을 놓쳐서는 안 되니, 그에 대한 방비를 부탁하네.”
-알겠.
“그런데 저하.”
공작이 대답을 하던 순간이었다. 대신관의 입이 열렸다.
“왜 그러나, 대신관?”
“최소 한 달입니다.”
“…뭐?”
발렌티노는 그제야 부드러워 보이던 대신관의 미소에 담긴 어색함을 느낄 수 있었다.
“죽은 마나를 정화하려면 중앙에서 파견을 와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 준비를 해야 하기에 최소 한 달은 필요합니다.”
“…지금 바로 적들을 쫓을 길을 못 만든다는 소린가?”
“크흠, 그렇습니다.”
발렌티노는 저도 모르게 인상을 구기며 입을 열었다.
“태양의 길이 있지 않은가?”
“그건 성자께서 계셔야 가능한 일이라서.”
성자.
그 말에 발렌티노 왕세자는 말문이 턱 막혀왔다. 자신의 시선을 피하는 대신관과 고개를 숙인 채 있는 신관들을 보며 그는 겨우 입을 다시 열었다.
“…그럼 빛 속성 신성력으로 작은 길이라도 힘든가? 신성력으로 죽은 마나를 태울 수 있지 않은가?”
발렌티노는 간절히 말했다.
“작은 길이면 되네. 아주 작은 길. 우리 측 기사들이 일렬로라도 지나갈 길이면 돼. 비행 마법으로 이동시킬 수 있는 기사 수가 적어서 그러네. 안 되겠나?”
“크흠, 그게 말이지요.”
대신관은 어물쩍거렸다. 그 행동에 발렌티노는 의문이 강해졌다.
그때였다. 연결된 영상 통신구에서 후텐 공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빛 속성 신관은 신성력으로 죽은 마나를 태워 없애는 과정에서 꼭 제 몸을 불로 지지는 듯한 고통을 느낀다고 하지요.
정화.
신은 그냥 아무 대가 없이 힘을 안겨주지 않았다. 자연은 무엇이든 대가를 주어야 올바르게 굴러가는 존재였다.
“아.”
발렌티노 왕세자는 곧바로 지금 이 신관들의 행동이 이해되었다.
후텐 공작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예전 네크로맨서 몰살 때는 고통을 견디며 신관들이 힘을 썼다고 하더군요. 그게 정의라고 말입니다. 물론 그렇게 힘을 쓴다고 다치거나 죽은 이들은 없습니다만, 그 후유증으로 평생 괴로워하다가 죽은 신관들이 참 많다고 하더군요.
후텐 공작의 말을 들을 때마다 후방에 서 있는 신관들의 표정이 안 좋아졌다. 발렌티노와 카로 왕국 사람들은 그런 신관들을 쳐다봤다. 그렇기에 영상 통신구 화면에 뜬 후텐 공작의 눈동자에 스쳐 지나가는 비웃음을 아무도 보지 못했다.
‘생각보다 케일 헤니투스의 방패가 강해서 아무도 다치지 않았지만.’
어쨌든 저들의 발목을 붙잡을 수 있으니, 성공이었다.
‘네크로맨서가 있다고 해도, 혼자서는 힘들지.’
적은 카로 왕국, 로운 왕국의 마법 공격이나 몇 명의 기사에게 부여될 비행 마법으로 쫓아갈 수 있는 규모가 아니었다.
후텐 공작은 표정을 고치고는, 다시 진지하게 카로 왕국을 걱정하는 이가 되어 영상 통신구 밖 광경을 지켜보았다.
대신관이 발렌티노 왕세자를 보며 입을 열었다.
“크흠, 천천히 안전하게 정화하는 방법이 있으니 지금 당장은 힘듭니다. 저하, 이해 부탁드립니다.”
“…그렇지만 저렇게 적들이 가도록 두면 분명 북부의 왕국민들과 상인들이 모두 죽을 걸세. 그리고 저들의 배에 또 죽은 마나가 있다면.”
뿌우우우- 뿌우우-
발렌티노 왕세자는 바다로 방향 지시를 내리는 적의 뿔나팔 소리가 들려왔다.
“북부의 땅도 죽은 마나로 뒤덮일지 몰라.”
그렇게 된다면 정말로 끔찍한 일이었다.
솔직하게 발렌티노는 신관들이 조금만 희생해 주길 바랐다. 죽지 않는다고 했으니까. 제 이기적인 마음이라도 조금만, 조금만 희생해 주었으면 했다.
“아주 작은 길이라도 힘드나? 신관이 여러 명이니, 고통을 분담하면 되지 않겠나?”
하지만 대신관은 모른 척했다.
그는 결코 아프고 싶지 않았다. 자신이 죽는 것도 아닌데, 굳이 희생할 필요가 있겠는가?
“북부 해안가에 죽은 마나가 뒤덮이면 그때 또다시 천천히 정화를 하면 됩니다. 일단 최대한 빨리 북부 결전을 준비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대신관은 말을 이었다.
“아, 그리고 리오나성을 버리고 떠나시더라도 정화 작업을 위한 병사들을 조금 남겨주셔야 합니다. 정화 작업을 할 신관들을 보호해 줄 기사들도 필요합니다.”
아예 리오나성에서 더 이상의 전투는 불가능하다고 단정 짓는 말투였다.
발렌티노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어져 갔다.
“…이런 때에 그런 말을 하고 싶나?”
“어쩌겠습니까. 정화 작업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자들은 우리 빛 속성 신관들뿐인걸요. 귀한 존재들이니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대신관의 부드러운 미소가 발렌티노의 시야에 박혔다.
틀린 말이다.
대신관 말에는 틀린 부분이 너무나도 많았다.
분명 맞는 말들이나, 왕세자에게는 틀린 말로 느껴졌다.
하지만 저들을 지금 내칠 수도, 벌을 줄 수도 없었다. 저들이 없으면 죽은 마나를 없앨 수가 없으니까.
뿌우우우- 뿌우우-
그의 귓가에는 지금도 뿔나팔 소리가 들렸다. 아까 전 곰족의 웃음소리가 환청처럼 다시 귓가에 맴돌았다.
도망, 아니, 다른 곳을 파괴하러 가는 적. 그 적들을 무력하게 지켜봐야 하는 걸까.
발렌티노 왕세자와 카로 왕국 수뇌부들의 얼굴이 흐려졌다. 아니, 분노가 새겨지기 시작했다.
그 순간이었다.
“어?!”
중앙 첨탑 성벽 부근 병사들 몇몇의 탄성이 들려왔다.
타닥.
그리고 첨탑 꼭대기 난간을 밟으며 가볍게 내려서는 이가 보였다. 발렌티노 왕세자의 표정이 변했다. 그의 귓가로 같잖다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또 개소리하네.”
케일 헤니투스 사령관. 그였다.
“…사령관.”
발렌티노가 놀란 표정으로 케일을 불렀다. 케일은 발렌티노의 곁으로 다가가 입을 열었다. 늘 그렇듯 담담한 얼굴이었다.
“비행 마법으로 바로 넘어왔습니다. 와서 말해야 할 것 같아서요.”
무엇을? 무엇을 말하러 넘어왔다는 걸까?
발렌티노는 이상한 기대감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이상하게도, 본 지 며칠 안 된 이 사람이 무언가를 해결 해줄 것만 같았다.
그때, 대신관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 이 죽은 마나를 유일하게 정화할 수 있는 우리 신관들에게 개소리라 했나? 케일 사령관은 이 상황에서 감히 우리를.”
하지만 그 분노 서린 목소리는 끝까지 이어질 수 없었다.
“잡습니다.”
단호한 목소리에는 확신이 서려 있었다. 발렌티노는 케일 헤니투스를 따라 중앙 첨탑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벌써 삼십 척 이상의 배가 해상 위에 올라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역시 그들의 뱃머리는 북쪽을 향해 있었다. 곰족들은 이제 해안가 근처에 도착해 하나둘 배
에 올라섰다.
그 순간, 케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대로 두고 가면 북부 주민들과 상인들은 다 죽을 겁니다. 저들의 죽은 마나 폭탄은 이게 끝이 아닐 겁니다.”
모두가 아는 이야기였다. 그걸 말하는 이가 로운 왕국 사람이라는 점만 빼면, 지금까지의 어두운 상황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케일의 이어진 말은 누구도 생각 못 한,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저하, 죽음의 땅으로 도망치는 사람들 이야기를 아십니까?”
죽음의 땅?
사막?
갑자기 그 얘기가 왜 나온단 말인가.
발렌티노 왕세자는 뜬금없는 이야기를 하는 케일을 가만히 응시했다. 허튼말을 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들은 영지 내에서 먹고살기 힘들어서, 세금을 감당할 수 없어서 차라리 사막으로 갑니다. 아무도 살아나올 수 없다는 그 사막으로 달려가지요.”
“뭐? 죽음의 땅으로? 그리고 세금이 높아서 영지민들이 도망간다고?”
모두 몰랐던 사실이었다. 왕세자는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그때, 그는 케일의 입가에 맺히는 미소를 볼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사막에서 살아남는 이들이 있습니다.”
메리도 그중 한 명이죠.
케일은 뒷말을 삼켰다. 메리는 이제 카로 왕국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저하, 포기를 모르는 자들이 어둠을 밟고 일어설 수 있는 겁니다.”
“…사령관.”
“잡습니다.”
포기를 모른다.
이 말이 왕세자의 심장에 깊이 박혀들었다. 동시에 케일의 눈빛에서 그가 어떻게 동북부 전쟁에서 모두 승리했는지 느낄 수 있었다.
포기를 모르는 사령관.
그의 목소리가 중앙 첨탑 꼭대기를 가득 채웠다.
“무조건, 저들을 잡습니다.”
우우우웅.
그 순간 성벽 바닥이 진동했다.
폭발의 여파일까? 발렌티노가 생각한 순간이었다.
“어?”
은빛 방패가 사라졌다.
그러자 왕세자와 카로 왕국 수뇌부들 눈에 선명한 해질녘 해안가가 보였다.
“…저건!”
발렌티노 왕세자의 눈이 커졌다.
해안가에 있는 배, 그리고 그 배로 향하는 곰족들.
뿌우우- 뿌우-
여전한 뿔나팔 소리들.
그 사이로 이질적인 소리가 해안가로 향했다.
휘이이- 휘이이-
화살이었다.
바람으로 만들어진 화살 수십 개가 곰족과 배들로 향했다. 그리고 그대로 꽂혔다.
콰아앙, 콰앙!
해안가의 모래들이 공중으로 비산했다.
“으아악!”
“이, 이게 무슨 공격이야!”
당황한 목소리와 비명이 해안가를 뒤덮었다. 그러나 발렌티노는 그 광경보다 다른 광경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케일 헤니투스 사령관. 그의 시선이 정확히 머무는 곳.
그곳은 죽음의 땅이었다.
“…저, 저들은-”
노을이 지는 사막. 붉은 사막 위를 달려오는 검은 무리들이 보였다. 멀리서 보아도 그들의 피부색은 흑진주처럼 새까맣게 빛나고 있었다.
생경한 모습이었지만, 발렌티노는 한 존재를 떠올릴 수 있었다.
서대륙에 저런 종족은 단 하나뿐이다.
“…다크엘프?”
케일은 여전히 죽음의 땅, 그 피처럼 붉은 사막을 바라봤다.
“죽은 마나는 장애물이 아닙니다.”
사막을 가로질러 오는 다크엘프들.
그들의 맨 앞에서는 다크엘프 타샤가 몸에 바람을 두른 채 달려오고 있었다. 그녀를 비롯한 다크엘프들 몇의 머리 위에 바람의 정령이 만든 화살들이 떠오르고 있었다.
케일은 고개를 돌려, 중앙 첨탑 카로 왕국 사람들과 영상 통신구 너머 후텐 공작을 보며 말했다.
“로운의 병력이 이제 모두 모였군요.”
케일은 진동하는 땅을 느끼며 확신했다.
“적은 도망치지 못할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