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22
21화.
케일은 이른 아침부터 찾아온 최한에게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론이 두고 간 냉수 잔을 집어들었다. 서늘한 잔의 촉감에 케일은 냉수를 가져다주며 론이 건넸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
‘도련님. 밤 산책을 너무 오래하면 안 좋습니다. 이 론이 걱정이 많이 됩니다.’
왠지 냉수를 마시지 않아도 속이 서늘해 정신이 확 들었다. 케일은 들었던 냉수 잔을 다시 조심스럽게 제 자리에 내려 놓으며 최한에게 말했다.
“뒷처리는 다 했고?”
“네.”
최한은 케일을 숙소로 데려다준 뒤, 곧바로 그들의 흔적을 지우고 서쪽 방향으로 흔적을 만들고 돌아왔다.
냐아아옹. 케일은 하품을 하며 꾸벅꾸벅 육포를 뜯어먹는 고양이들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최한에게 중간 지점이 되는 도시에 대해 설명했다.
“다음 도시의 이름은 퍼슬 시야. 거기가 중간 지점이고.”
산으로 둘러싸인 헤니투스 영지를 벗어나면 지금 이 자작가의 영지에서부터는 수도까지 길이 잘 이어져 있다.
‘그 덕에 헤니투스 영지가 지금까지 안전했고 그 때문에 위치가 애매해졌지.’
대리석이 많더라도 길이 안 좋으면 상단들이 찾아오기가 힘들다. 그러나 헤니투스 영지만 벗어나면 길이 좋으니, 다들 그 정도의 불편함은 감수하고 찾아오는 것이다.
또한 이 길 덕분에 로운 왕국 동북부의 세력들이 자주 모일 수 있었다. 때문에 다른 지역들과 달리 후작급 이상의 대귀족이 없음에도 나름 수도에서 이 지역에 관한 저들의 의견을 말할 수 있었다.
“우리 영지는 계속 산을 넘어와야 해서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이제는 시간이 걸릴 일이 없을거야.”
퍼슬시는 거리 상 중간 지점이 아니라, 시간 상 중간 지점이었다.
“그런데 케일님.”
“그래.”
“제가 돌아오는 길에 자작가 별장을 확인하러 갔습니다.”
“그런데?”
심드렁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케일에게 최한은 찝찝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다들 정신이 없어보였고 이 마을을 벗어나는 병사와 기사들이 있었습니다.”
“보고하러 갔겠지.”
정신을 차린 이들이 베니온에게 사람을 보냈을 것이고, 동굴 주변을 수색하느라 정신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최한의 말은 그것이 끝이 아닌 듯 했다.
“그런데.”
“뭘 자꾸 말을 끌어?”
케일이 미간을 찌푸리며 퉁명스럽게 물었다. 그 목소리에도 최한은 여전히 찝찝한 표정으로 천천히 말을 이었다.
“탈출했던 동굴 비밀 출구 일대가 폭발되어 있었습니다. 동굴 출구는 물론 근처 나무와 풀, 땅. 모든 것들이 다 뒤집어져 있더군요.”
툭. 고양이들이 물고 있던 육포를 떨어뜨렸다. 하지만 케일은 심드렁했다.
“용이 했겠지.”
최한이 입을 다문 채 가만히 서 있었다. 케일은 그 모습에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4살이라도 나름 머리를 쓸 줄 아니, 탈출구에 누군가 올까 싶어 날려버렸을 것이다. 그리고 마나에 가장 민감한 생물이니, 일대를 부순 것도 마법 장치를 파괴하기 위한 행동이었으리라.
“거기 사람들 아직 안 죽인 것만 해도 다행이야. 아직 어리고 겁을 집어먹은 상태라, 참는 중일걸?”
“그렇군요. 마나의 힘이 엄청난 것은 느꼈지만.”
“용이 작다고 얕보지 마. 큰 코 다쳐.”
용은 거만하고 마음이 좁쌀만큼 좁은 녀석들이라고 했다. 케일은 다시 한 번 용을 내버려두고 온 자신을 칭찬하며 최한에게 물었다.
“그만 나가 봐. 아, 너 이제 출발 전까지 잘 건가?”
“아뇨. 비크로스를 도우러 가야 합니다.”
누구? 비크로스? 케일이 반색을 하고 급히 말을 내뱉었다.
“오, 친해졌나봐?”
그 순간 케일은 처음으로 떨떠름한 최한의 얼굴을 보았다. 최한은 아주 단호했다.
“아뇨. 결단코 친하지 않습니다.”
“…그, 그래… 가라.”
케일은 떨떠름한 얼굴로 답했고 최한은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숙이며 방 밖으로 향했다. 케일은 문을 여는 최한에게 한가지를 지시했다.
“아, 나가는 길에 밖에 한스 보고 술상 좀 차려 놓으라고 해.”
“네?”
최한이 놀라 눈을 크게 뜨고 케일을 돌아봤다. 평온해보이는 케일과 7시를 가리키는 시계를 번갈아보던 최한에게 케일은 상쾌하게 말했다.
“해장술 몰라?”
최한이 가타부타 대답 없이 방을 나가버렸지만 케일은 신경쓰지 않았다. 그는 온과 홍이 정말 아침부터 술을 마실거냐는 표정으로 쳐다봤지만 이를 무시하며 거울을 확인했다.
“아주 훌륭한 몰골이야.”
아주, 술과 피곤함에 쩔어보이는 얼굴이었다. 케일은 만족하며 1층으로 내려갔다.
‘역시.’
7시는 이른 아침이었지만 누군가에는 아직 끝나지 않은 하루였다. 어제 술을 마신 사람이 맞냐는 듯 부단장은 말끔한 모습으로 누군가와 심각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케일은 굳어버린 최한이 보였다. 하긴, 부단장과 대화를 나누는 이는 어제 저 녀석이 기절시켜 버린 기사 중에 하나 일테니, 굳어버리는 것은 당연할지도 몰랐다.
케일은 최한의 옆으로 가 그의 발을 툭 찼다.
“뭘 쫄고 그래?”
“아.”
케일의 은밀히 건넨 말에 최한은 잠시 당황하더니, 어색하게 웃으며 작게 답했다.
“하루 쯤은 전투 불능 상태로 만들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일찍 거동이 가능하군요. 제가 사람의 몸이 너무 약하다고 판단한 듯 합니다. 앞으로는 더 강하게 상대해도 될 것 같습니다.”
케일은 최한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역시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를 위해 다 부숴버리는 주인공다웠다. 그리고 하나 더 케일의 예상 밖인 존재들이 있었다.
어느 새 따라 내려온 온과 홍. 아기 고양이들은 음흉한 표정으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기사를 힐끔거렸다. 누가 봐도 즐기는 표정이었다.
‘…내가 제일 담이 작은건가.’
케일이 자신의 테이블에 앉으며 고민에 빠졌을 때, 여관 주인 노인은 술을 한 병 들고 다가왔다.
“공자님, 어제 드셨던 술로 준비해뒀습니다.”
“노인장, 내가 자네를 보면 볼수록 드는 생각인데.”
“네?”
긴장한 노인에게 케일은 씩 웃으며 말했다.
“자네는 장사를 잘하는 사람 같아. 칭찬이야. 아침 해장 술로 딱 알맞아.”
달칵. 경쾌한 소리와 함께 술병 뚜껑이 열렸고 케일은 이를 한 잔 따라 바로 들이켰다. 삽시간에 얼굴이 벌개지기 시작했다. 케일은 일부러 눈을 게슴츠레 뜨며 부단장 쪽을 쳐다봤다. 부단장이 상대 기사에게 말하고 있었다.
“어제 우리는 여정의 피로를 풀 겸 회식을 했습니다. 다들 술을 마시며 쉬었죠. 여관 밖을 나간 사람도 없고 말입니다. 그런데 이를 왜 자작가 사람이 궁금해하는지 모르겠군요.”
후작가 기사는 자신을 자작가 사람이라고 소개한 듯 했다. 부단장의 서슬퍼런 눈빛에 기사는 미소를 지었지만 심각한 얼굴로 답했다.
“어제 자작가 별장에 도둑들이 침입을 해서 말입니다. 저와 몇명이서 경비를 봤지만 물건을 몇개 잃어버려서 혹시 헤니투스 백작가 분들이 와 계신다는 말에 같은 피해를 입었나 확인하러 왔습니다.”
도둑은 무슨. 하긴 용 도둑도 도둑이지. 케일은 수긍하며 술을 병 째로 한모금 들이켰다. 그 순간 부단장과 대화를 나누던 사람. 어제 후작가 별장에 있던 기사와 눈이 마주쳤다.
“뭘 봐?”
기사는 곧바로 고개를 숙이며 시선을 돌렸다. 부단장은 그 모습을 보더니 헛기침을 하며 변호하듯이 당당하게, 그리고 과하게 밝게 말했다.
“크흠. 우리 공자님은 아침에 술을 드시지 않으면 하루가 상쾌하지 않으셔서. 그래서 마시는 것뿐이십니다. 또한 해장술이라고, 해장에 있어 진정한 끝장판 모습을 보여주시는 포부가 넓은 분이시지요.”
케일은 자신을 욕하는 것인지 혹은 변호하려고 애쓰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부단장을 탐탁지 않게 바라봤다가 이내 술을 들이켰다.
“그렇군요. 유쾌한 분이시군요.”
기사는 부단장의 말에 좋은 말로 답해주며 케일에게 예의바르게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우리 쪽 의심은 덜었겠네.’
케일은 이른 아침부터 찾아온 후작가 기사에게 의심을 받는 일은 없겠다 싶었다. 하필 케일 일행이 왔을 때 용이 사라졌고 그들이 오늘 떠나지만. 의심하기에는 애매하리라.
이 곳에 남아있는 베니온의 수하들은 어떤 단체를 뜻하는 것 같은 여섯개 별의 복장. 그리고 서쪽으로 향한 흔적. 무엇보다도 망나니라 불리는 케일이 그런 짓을 할 리 없다 생각할 것이다.
“그럼 오늘 떠나시는 여행 안전하시길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현재 후작도, 베니온도, 자작도 없는 상황에서 백작가 후계자를 잡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것도 왕실의 명을 받고 수도로 가는 귀족 자제 아닌가.
‘그리고 왕실을 명을 받고 가면서 술을 마시는 귀족가 자제를 누가 정상이라고 생각하겠어?’
망나니는 참 좋은 위치였다. 케일은 흡족한 마음으로 술을 마셨다.
‘아마 베니온이 알게 되어도 우리를 의심하지는 않을거야.’
비밀 단체와 헤니투스 백작가 사이에 어떠한 연관 고리가 없음을 가장 잘 아는 이들이 베니온과 스텐 후작이었다. 특히 용 이야기라면 더욱 더 그러했다.
케일은 여관을 빠져나가는 후작가 기사를 지켜보다가 론이 내민 레몬꿀차를 마셨다.
“론.”
“네, 도련님.”
“역시 해장은 꿀 차가 좋은 것 같아.”
“그렇지요?”
론이 흐뭇하게 미소를 그리며 바라봤지만 케일은 이를 외면한 채 뒤집힌 속을 다스렸다. 그리고 케일의 속이 해장되었을 때 쯤, 그들은 다시 길을 떠났다.
다음 목적지는 퍼슬 시였다. 동북부 운송의 중심 역할을 하는 도시로, 돌탑이 무수히 세워진 유적지가 꽤 유명한 곳이었다.
그리고 케일은 퍼슬 시에 있는 완성되지 못한 돌탑에 찾아가야 했다.
“오늘 야영이에요?”
온이 육포를 먹으며 건네는 물음에 케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 오늘부터 중간 중간 야영을 하게 될거야.”
케일은 다시 빡빡하게 일정을 세웠다. 퍼슬 시에서 넉넉하게 머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저들끼리 수근덕거리는 고양이 남매에게서 시선을 돌려 달리는 마차 밖을 바라봤다.
‘심장의 활력.’
부서지지 않는 방패를 강화시킬 고대의 힘 이름이었다. 이 힘은 재생과 생명력에 특화된 힘이었다.
‘그래서 장남도 찾았겠지.’
후작가의 버려진 장남, 테일러. 그나마 후작가에서 제대로 정신이 박힌 인간이었지만 베니온의 수작으로 인해 하반신 마비로 불구가 되었다.
그는 자신을 치유할 힘을 얻기 위해 온갖 문헌을 뒤졌다. 그러던 중 우연히 고서적 서점에서 고대 문헌을 구하게 되고. 고대 문자라 해석이 힘들지만 그는 노력 끝에 마침내 몇글자를 해석해낸다.
재생. 돌탑.
테일러는 그 두 단어가 뇌리에 박혔고 곧장 돌탑의 도시라 할 수 있는 퍼슬 시로 향했다. 지금도 그는 퍼슬시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한 달 뒤에 그 힘을 찾으리라.
‘하지만 소용이 없었지.’
심장의 활력은 이미 다친 몸을 재생 시키지 못했다. 힘을 얻고 난 후, 다쳤을 미래의 상황에서 그 재생의 힘이 발휘되었다. 그리고 그 재생의 정도도 한계가 있었고 대가가 따랐다.
테일러는 그 사실에 절망했다. 그에게는 시간이 없었고, 마지막 희망이었기 때문이었다. 베니온이 언제 자신을 죽이러 올지 몰랐으니까.
‘결국 한달 뒤에 죽었고.’
수도 테러 사건으로 한창 수도가 정신이 없을 때 그는 정체 불명의 집단에 암살 당한다. 물론 그 집단은 베니온의 사주였다.
케일이 이 스쳐지나가는, 어찌보면 본래의 케일보다 적은 비중을 차지하는 인물을 기억하는 이유는 친우와의 우정과 의리 때문이었다.
미친 신관. 테일러의 친우로, 암살 사건 때 그 현장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았으며, 암살자들의 절반을 죽이고 살인 행위때문에 파문당한 사람. 그녀는 그 사건으로 등에 커다란 상처를 입은 채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신전에 당당히 말했다.
‘신의 뜻보다 나는 사람으로서의 의리를, 도리를 먼저 했을 뿐이다. 그것이 나는 옳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덧붙였다.
‘이제 나는 자유다!’
그 뒤 그녀는 미친 신관이라고 사람들에게 불렸다. 그녀의 특기는 죽음의 신 힘을 이용한 저주술이었다. 신전은 그녀를 파문했지만 신은 그녀를 버리지 않았다.
후에 전쟁이 터졌을 때, 영웅은 아니지만 화통한 의병으로 이름을 날리는 사람이었다.
‘이번엔 다를 것 같기는 한데.’
한달 뒤에 테일러가 죽을 일은 없을 확률이 높았다.
베니온은 용 절도 사건을 뒷수습하며 후작에게 알랑거리느라 정신이 없을 것이다. 아마 이 일로 그의 후계자 자리는 위태위태해서 버려진 장남보다 제 밑의 동생들을 더 신경써야 할테니까.
‘그리고 테일러의 마지막 희망을 뺏었으니, 새로운 희망을 줘야지.’
비록 테일러에게 심장의 활력이 필요 없는 힘이라도, 케일은 사람의 마지막 희망까지 뺏을 나쁜 놈은 아니었다.
케일은 문득 저 둘도 없는 콤비가 다치지 않고 산다면 앞으로 둘이서 무엇을 해낼지 조금 궁금했다. 아마도 둘이서 후작가를 바꾸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장기적으로 보아 케일에게는 이득이었다.
하지만 이내 떠오른 생각에 케일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 저주술에 비크로스가 학을 뗄 정도였댔지?’
고문 전문가 비크로스가 그 신관에게 내린 평이 떠오르자 마자, 케일은 머릿속에서 그 미친 신관을 지워버렸다. 덩달아 심지가 곧고 소탈하며 영지민을 아꼈다던 귀족 테일러도 지워버렸다.
‘나랑은 안 맞아.’
일단 케일과는 종류부터 다른 인간들이었다. 선하고 의리가 깊고 서로를 믿는 사람들. 차라리 그들보다는 케일은 론이나 비크로스가 나았다.
‘…아니지. 아무리 그래도 이 무슨 끔찍한 생각을.’
케일은 얼른 론과 비크로스도 지워버렸다.
그 때, 툭툭. 케일은 자신의 허벅지를 두드리는 느낌에 고개를 아래로 내렸다. 그러자 고양이들이 금안을 반짝이며 케일에게 말했다.
“아까 전에 한스에게 들었는데.”
“한스가 그랬는데.”
한스는 아직 묘인족인 줄 모르면서도 고양이들을 앞에 두고 혼자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해댔다. 그 때 고양이들이 들은 이야기인 듯 했다.
“뭘?”
케일의 퉁명스런 물음에도 익숙하다는 듯 굴하지 않고 남매는 말했다.
“돌탑에 가서 소원 빌면 이루어진다는데.”
“돌탑이 이쁘다는데.”
“가고 싶은데. 귀찮으면 괜찮지만.”
“같이 가고 싶지만 곤란하면 괜찮은데.”
우물쭈물거리는 고양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케일은 툭 던지듯 물었다.
“무슨 소원 빌게?”
홍이 관리를 잘 받아 결이 한껏 좋아진 붉은 털을 흩날리며 신이나 말했다.
“막내 동생이 같이 다-”
“기각.”
케일은 바로 무시하며 고양이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 때 때맞춰 마차는 멈췄다. 오늘 야영할 곳에 도착한 것이다.
“오늘부터 다시 야영이군요.”
“그러게.”
한스의 말에 대충 답하며 케일은 야영할 곳의 주변을 둘러보았다. 숲의 바람이 그를 스쳐지나갔다. 케일은 꽤 편한 마음으로 하룻밤을 보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공자님.”
“…이게 뭐지?”
케일은 자신들이 설치한 야영지, 딱 그 경계선에 놓인 사슴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사냥을 당한 사슴이었다. 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케일에게 한스가 보고했다.
“야영지에 누군가 두고 갔습니다.”
한스는 사슴 옆을 가리켰다. 케일도 그 곳을 보고 있었다. 땅 바닥에는 포크와 숟가락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꼭 누가 먹으라고 놓아둔 사슴 고기 같았다. 케일이 순간 묘한 생각이 들었다. 그는 시선을 돌렸다. 최한의 품에 안긴 고양이 남매가, 그리고 최한이 케일을 보며 씩 웃고 있었다.
“…불길한데.”
아무래도 불길했다.
말은 알지만 글자를 모르는 듯한, 사슴 고기를 놓아두고 간 자.
그것도 어젯밤 불침번이었던 최한이 분명히 누군지 알았음에도 그 인기척을 모른 척 해준 자.
……아무래도 용 같다.
그는 고개를 돌려 자신을 여전히 쳐다보는 온과 홍, 최한에게 단단히 일러두었다.
“모른 척 하자.”
냐아아옹.
냐아옹
왠지 남매 둘이 비웃는 것 같았지만 일단 케일은 모른 척 했다. 그러나 야영을 할 때마다 케일에게는 새로운 음식 재료들이 배달되었다. 멧돼지 고기, 토끼 고기, 각종 과일 등등.
케일은 자신을 따라오고 있는 용의 존재를 확신했다.
그 확신과 함께 케일은 퍼슬 시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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