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223
222화.
-희생하려는 건가?
머릿속을 울리는 짱돌의 중후한 목소리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쿠구구궁-!
은빛 방패가 흔들렸다. 아니, 라온의 은빛 실드가 거세게 흔들렸고 그 떨림이 온전히 케일의 손끝으로 전해져 왔다.
‘와씨.’
케일은 절로 욕이 튀어나올 뻔한 것을 겨우 참아냈다.
바다와 하늘, 붉은 벼락과 보라색 바람. 그 모든 것들이 뒤섞여 어디가 바다이고 어디가 하늘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휘몰아치는 폭풍에, 방패 너머의 바다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휘이이이- 쾅, 쾅, 쾅!
바람이 은빛 실드를 두드렸다. 바닷물을 해일처럼 끌어모아 거대한 은빛 방패조차 집어삼킬 듯이 굴었다.
만약 이 힘이 해안가나 리오나성으로 갔다면 심각한 상황이 벌어졌을 것이다.
특히 리오나성 양쪽에 있는 산이 무너지며 꼼짝없이 죽는 이들이 생길 터.
케일은 거센 바람 속에서 슬쩍 실눈을 뜨고 은빛 방패 너머 광경을 바라봤다.
촤아악-
케일은 제 머리를 적시는 바닷물을 느꼈다.
거대한 토네이도가 휘몰아쳤다. 토네이도는 스스로의 거대한 덩치를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인간, 내 힘 보이나? 내가 했다!
케일의 붉은 벼락은 아주 조금만 썼다. 대부분이 라온의 마법이었다.
이 녀석은 가짜 드래곤 슬레이어와 싸운 이후로 부쩍 마법이 강해졌다.
“어, 너 좀 대단- 쿨럭.”
케일은 얕은 기침을 내뱉었다. 그리고 쓱 소매를 닦아내었다. 입술에 짭조름한 바닷물 맛이 났다.
-…인간, 분명 내 앞발톱 삼분의 일만큼의 힘도 안 썼는데 왜 피가 나오나? 내 계산이 틀린 건가? 이럴 순 없다! 인간 네 몸은 얼마나 약하면 쥐똥만큼 힘을 써도 피를 토하나? 도대체 넌, 정말 불가사의하다!
케일은 상쾌해진 기분으로 답했다.
“괜찮아.”
하지만 투명화한 라온과 최한의 표정이 흐려졌다.
반면 케일은 이제야 대충 고대의 힘 반작용을 깨달았다.
‘저번에 먹보 신녀가 심장의 활력을 먹은 후로 확실히 부서지지 않는 방패의 힘이 커졌어.’
그 때문에 방패는 이제 부서질 정도의 충격을 받지 않는 이상 케일 몸에 무리를 주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고대의 힘은 여전히 조금만 써도 심장의 활력이 움직이게 만들었다.
‘그릇이 작으니 별수 없지.’
케일 헤니투스 본인이 지닌 몸의 그릇, 능력이 부족해서 생긴 일이었다.
“괜찮으니 신경 끄도록.”
그는 일행에게 대충 말하고 전장을 주시했다. 라온의 은빛 실드는 아주 튼튼했기에 그는 천천히 가라앉는 바다를 응시했다.
약 십 분간의 폭발과 회오리가 일어난 자리.
바다는 서서히 조용해졌으며 하늘과 바다가 구분되어 갔다.
뚝. 뚝.
케일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몇 방울의 바닷물을 맞으며 방패 너머만을 응시했다.
“다 부서졌군요.”
최한의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케일은 시선을 고정한 채 움직일 줄을 몰랐다. 그 마음을 최한은 이해했다.
모든 것이 부서졌다.
수십 척의 배, 대형 선박 할 것 없이, 해상 위에 떠 있던 대부분의 배들이 모두 뒤집히거나 여러 모습으로 파괴되어 있었다.
그 사이에 죽은 이들도, 간신히 살아남은 이들도 보였다.
최한은 이 안전한 방패 너머에서, 적군이지만 그들의 참담한 광경을 보는 케일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았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최한의 예상은 반쯤 맞고 반쯤 틀렸다.
케일의 입이 열었다.
“라온, 왜-”
그는 눈앞에 보이는 참혹한 광경에 기가 차서 입을 열었다.
“왜 용 혼혈은 실드를 펼치지 않았지?”
뭐?
최한은 고개를 돌려 케일을 바라봤다. 케일의 당황스러워하는 표정이 보였다. 둘 사이로 라온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인간, 최한아. 이상하다.”
라온은 분명 불벼락으로 보라색 구를 꿰뚫기 전, 대형 선박에 드리운 백금색 실드를 보았다.
“저 용 혼혈 실력이면 실드를 둘러서 그래도 어느 정도는 적을 보호할 수 있다. 그런데 펼쳤던 실드도 거뒀나 보다.”
뭐라고?
최한은 당황스러웠다. 아군에게 실드를 해주지 않았다고? 아니, 해준 것도 거뒀다고?
“왜?”
최한의 입에서 의문이 터져 나왔을 때였다. 그의 몸이 움직였다.
-온다.
크아아아!
은빛 방패 앞, 라온의 수룡이 물에서 솟구쳐 올랐다.
쾅!
동시에 폭발이 일어났다. 빛의 구가 터지며 수룡의 몸 일부가 폭발했고 물이 공중으로 비산했다. 최한의 몸이 은빛 방패를 밟고서 반대쪽으로 넘어갔다.
거친 오러가 해수면을 향해 수직으로 내리그어졌다.
콰앙, 쾅, 쾅!
이 또한 몇 개의 빛의 구와 함께 부딪치며 사라졌다. 그와 함께 해수면이 갈라졌다.
촤아악.
갈라진 틈으로 한 사람이 솟구쳐 올랐다.
백금색 실드를 몇 중으로 둘러 물기 하나 없이 말끔하게 서 있는 존재.
물 위에 서 있는 그자는 용 혼혈 마법사였다.
“하하하- 여기 있었어.”
광대뼈가 올라가며 웃는 얼굴이 방패 너머 케일과 정확히 마주했다.
뒤에 아군이 죽어간다. 암의 마법단으로 추정되는 이들도 죽어간다.
그런데 웃고 있다.
딱! 딱!
마법사의 손에서 작은 벼락이 생겨나 다시 한번 방패를 향해 쏘아졌다. 이는 당연히 수룡과 최한에 의해 막혔고, 또한 라온의 은빛 실드를 넘지 못했다.
하지만 튕겨 나온 벼락.
그 벼락들이 떨어진 곳.
파지지직-!
“으아아악!”
“크으으! 모, 몸이!”
벼락은 바다를 흐르며 그나마 살아남은 아군들의 숨통을 쥐었다. 물론 실드와 비행 마법을 펼친 마법사나 뒤집힌 배 위에 오를 만큼 실력 있는 기사들은 몸을 피하며 무사했지만.
불굴 연합의 병사들은 속절없이 죽어갔다.
“저거 맛이 간 거 아냐?”
케일은 저도 모르게 툭 내뱉었다.
그때.
“흐.”
마법사와 케일의 시선이 부딪쳤다. 마법사는 케일을 향해 직선으로 달려왔다.
최한의 검도 수룡도 달려들었지만.
딱! 딱! 딱!
쉼 없이 나타나는 수십 개의 마나구로 감싸인 마법사를 막을 수 없었다.
케일이 미처 뒤로 피하기 전.
콰앙!
순식간에 방패에 도달한 마법사와 은빛 실드가 부딪쳤다.
은빛 실드에 부딪친 용 혼혈 추정 마법사의 이마에 붉은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럼에도 마법사는 웃고 있었다.
그는 은빛 실드에 바짝 붙은 채 그 너머에 있는 케일을 응시했다.
아니, 정확히 케일 근처를 응시했다.
“…로드의 냄새가 나. 아까 그 힘은 분명 로드야. 나는 알아. 분명 맡아봤어.”
이런 미친놈.
케일은 무슨 호러 영화와 같은 광경에 욕이 절로 튀어나왔다.
“너 용이냐?”
마법사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붉은 벼락.
그 힘은 순수한 자연의 힘과 가공할 만한 마나의 힘이 담겨져 있었다.
이건 그냥 인간 마법사의 힘이 아니다. 용이다. 분명 용의 힘이 섞였다.
“네 옆의 투명화한 건 뭐지?”
느껴진다.
저놈에게 가까이 다가갈수록 느껴졌다. 저놈의 옆에 있는 투명화한 존재가.
그런데 너무 존재감이 희미했다.
오히려 저 붉은 머리칼, 케일 헤니투스의 존재감이 더 컸다. 그에게서 자연의 냄새가 일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래서 이상했다.
“용이지? 응? 유희 나온 용이야? 너야? 아니면, 네 옆의 존재야? 응?”
쾅. 쾅. 용 혼혈의 두 팔이, 두 주먹이 방패를 두드렸다.
이런 미친놈. 암에는 뭐 이딴 놈들만 있나?
케일은 완전히 돌아버린 놈을 보며 입을 열었다.
“유희 나온 용은 얼어 죽을. 네 정신이 유희를 나갔나 보구나. 멍청한 소리 그만 지껄이도록.”
“하하하하!”
케일의 대답에 용 혼혈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그럴 줄 알았어. 용들은 원래 내빼는 짓을 잘하지. 아닌 척하면서 자기보다 하위 존재들을 가지고 놀고. 크흐흐, 아주 좋아. 아주,”
하지만 그의 말은 끝나지 못했다.
싸아아악-
방패에 붙은 용 혼혈의 몸이 있던 곳. 그곳을 검은색의 거대한 발톱이 할퀴고 지나갔다. 마치 용의 거대한 발톱처럼, 흉폭한 힘이었다.
하지만 용 혼혈 마법사는 이미 공중으로 이동해 있었다.
“미숙해.”
강하지만 미숙하다.
용 혼혈의 마법사 눈동자에 이채가 감돌았다.
‘설마?’
그는 다시 케일을 쳐다봤다.
저 선명한 붉은 머리칼, 그리고 저 방패. 순수한 나무의 힘이라 처음엔 고대의 힘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정말로 그럴까?
그는 붉은 용이 떠올랐다.
마치 불이 형상화한 것 같았던 모습.
하지만 그 불은 꺼지며 죽음만이 남았다.
조금 전, 나무의 방패 힘과 상극이던 불벼락이 떠올랐다.
마법으로 둘러싸였지만 그 안에서 순수한 불이 느껴졌다.
드래곤의 힘도 순수하다.
그리고 드래곤의 피를 이어받은 나의 힘도.
‘그러나 이번 세대의 붉은 용은 더 이상 없다.’
분명 확인했다.
‘설마?’
나 같은 놈이 또 있는 건가?
미숙함.
1차 성장을 못한 용은 미숙하다. 힘도 주체를 못 한다.
용 혼혈도 반은 용이다. 당연히 성장을 한다. 반쪽짜리라도 용처럼 3번의 성장을 거친다.
그도 이미 2번의 성장을 거쳤다. 1차 성장을 못한 용과 용 혼혈쯤은 그의 손아귀였다. 마법사는 미친 듯이 웃겼다.
“푸하하하하! 다, 정말 다 오는군.”
마법사, 그의 곁으로 수룡, 검은 와이번 해골과 최한, 그리고 리오나성에서 날아오는 수많은 마법들이 보였다.
그는 케일 인근을 응시했다.
“이 전력이면, 나도 진심으로 해야겠어.”
용 혼혈 마법사의 몸에서 서서히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어? 인간! 이상하다, 인간!
케일의 머릿속에 라온의 놀란 목소리가 들렸다.
-저 용 혼혈, 지금껏 전력이 아니었다!
전력이 아니었다고?
-…강하다.
케일은 마법사를 쳐다봤다.
백금빛의 마나가 요동치며 그의 온몸을 감쌌고 로브가 펄럭였다.
동시에 그의 머리칼이 공중으로 뻗치기 시작했다. 동시에 퀭하던 그의 피부에 생기가 감돌았다.
그는 제 가까이로 검은 오러를 든 채로 쫒아오는 놈, 최한을 쳐다봤다.
“내가 왜 아군들이 죽든 말든 신경 안 쓴 줄 알아?”
최한은 순간 궁금했지만, 그의 속도는 느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정말로 궁금했다. 그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으니까.
그러나 이어진 용 혼혈 마법사의 대답에 최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나는 인간이면 뭐든 죽으면 좋거든, 많이! 아주 많이 죽을수록 좋아.”
동시에 그의 온몸에서 빛이 발산되기 시작했다.
최한은 눈이 부셨지만 멈추지 않았다.
뒷목이 서늘해져 왔다.
저 환한 빛.
저 빛이 매우 질척한 어둠처럼 느껴졌다.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강한 빛은 마치 제 몸을 불태우며 피어오르는 것 같았다. 최한은 손바닥에 땀이 맺혔다.
저 빛 사이로 들어가면 죽을 것 같다.
내가 죽을 것 같다.
아직, 미숙한 어둠은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 같았다.
그러나 최한은 멈추지 않았다.
그때였다.
“모두, 인간은 모두 죽여주마! 내가 죽는 한이 있어도 모두 죽인다!”
모두?
그 단어에 최한의 표정이 하얗게 질렸다.
그는 고개를 돌렸다. 저기 날아오는 카로 왕국 측의 마법들이 보였다.
빛에 약한 어둠.
인간뿐만 아니라 다크엘프들도 떠올랐다.
설마?
“크하하하! 죽어라!”
용 혼혈의 몸이 카로 왕국 해안가로 향했다.
“안-”
안 돼!
최한의 몸이 방향을 틀었다.
그때 최한은 저를 앞서는 존재를 보았다
“미친 놈.”
거칠게 욕을 내뱉는 사람의 붉은 머리칼이 잔상에 남았다.
또 다른 와이번을 타고서, 케일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와이번과 케일을 위해 라온이 바람이 되어주었다.
쿠우우웅-
최한은 뒤따라오며 들리는 거대한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방패가, 바다를 가로막고 있던 거대한 방패가 하늘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방패의 양옆으로 거대한 은빛 날개가 펼쳐지며 제 주인의 뒤를 따랐다.
-약한 인간, 걱정 마라. 아무도 내가 안 다치게 한다.
방패만 따라오는 것이 아니었다. 은빛 실드도 제 주인을 따라갔다.
하지만 빛은 빨랐다. 속도와 파괴. 그가 가진 빛의 속성이었다.
용 혼혈 마법사는 어느새 해안가에 도착했다.
해안가에는 다크엘프와 곰족, 그리고 메리에 의해 정화된 땅을 따라 나온 카로 왕국 측 전력들이 포진해 있었다. 성벽에도 여전히 많은 이들이 있었다.
“저, 저-”
당황한 인간들이 보였다.
저 작고 하찮은 존재들.
‘암’에, 그 새끼에게 목줄이 잡히지만 않았다면 다 쳐 죽일, 쳐다도 안 볼 존재들.
“저하!”
카로 왕국 발렌티노 왕세자는 참모장의 부름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중앙 첨탑 난간을 쥔 그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해상을 뒤덮던 폭발.
인간의 영역을 벗어났던 그 전투.
그리고 지금 그의 눈앞에서 이마에 피를 흘리며 웃고 있는 마법사.
그 마법사와 함께 창공을 뒤덮은,
“모두에게 죽음을-!”
수백 개의 빛 화살.
환한 미소와 함께 용 혼혈 마법사는 손을 흔들었다. 마침내 마법사의 손이 멈췄을 때. 그 화살들은 아래로, 인간들에게로 향했다.
“실드, 실드를 펼쳐라!”
“저하, 피하십시오!”
발렌티노 왕세자는 땅을 향해 쏘아지는 하늘의 공격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저를 잡아당기는 참모의 손길이 느껴졌지만, 움직일 수 없었다.
꼭 신이 내리는 형벌처럼 쏟아지는 빛의 화살들.
그 화살들에 모든 것이 타버릴 것 같았다.
“오, 신이시여.”
대신관이 신을 부르며 도망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왕세자는 병사들을 바라봤다. 아비규환이 된 성벽. 그 성벽을 보는 그의 눈동자에 짙은 절망감이 드리웠다.
하지만 한 줄기의 희망이 있었다.
그 희망으로 인해.
“저하! 가셔야 합니다!”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희망을 볼 수 있었다.
활짝 펼쳐진 검은 날개가 보였다.
붉은 머리칼이 보였다.
“역시, 이럴 줄 알았어!”
용 혼혈은 함박 미소를 지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빛 속성으로 어둠에 강하면서도 빠른 그를 따라온 자가 보였다.
케일 헤니투스.
그가 어느새 용 혼혈이 쏟아부은 화살 앞에 자리했다.
“이런 빠른 이동이 가능하면서 인간이라고?”
“미친 새끼.”
두 사람은 서로에게 들리지 않을 말을 건넸다.
케일은 손을 뻗었다.
그의 등을 받치는 작은 두 앞발이 느껴졌다.
“하자.”
-알았다, 인간.
땅에 선 이들이 모두 하늘을 올려다봤다.
이미 해는 졌다.
하지만 밤은 오지 않았다.
밤보다 하얀 빛으로 눈이 부셨다.
마치 종말을 예고하듯 밤을 뒤엎는 빛.
그 수백 개의 빛이 땅으로 쏟아진 순간.
다시 한번 은빛이 땅 위에 수놓아졌다.
마치 은하수가 땅으로 내려온 듯, 빛나는 은빛의 방패가 밤을 뒤엎은 빛을 막아섰다.
콰아앙, 쾅, 쾅!
사람들은 땅으로, 바닥으로 몸을 엎드렸다. 땅이 흔들렸다. 하늘이 흔들렸다.
하늘의 눈부신 빛으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하하! 역시 넌 인간을 지킬 줄 알았어!”
용 혼혈은 방패 너머 케일이 보였다. 그는 찡그린 얼굴로 빛 화살을 막아내는 케일이 우스웠다.
도망갈 시간이 생겼으니까.
왜 내가 인간 따위를 죽이기 위해 죽을 위험을 무릅쓰나?
더럽게.
그는 이곳으로 다가오지 못하는 최한과 와이번이 보였다. 그래, 이런 빛으로 넌 오지 못해. 오면 와이번은 타 죽고, 저놈도 심한 부상을 입겠지.
그게 완전하지 못한, 열등한 어둠의 가치였다.
딱! 딱! 딱!
세 번 손가락을 두드리자, 그의 발밑에 텔레포트 진이 만들어졌다. ‘암’의 텔레포트 마법 스크롤을 만들었던 자인 그에게 순간 이동은 아주 쉬운 일이었다.
“그럼, 잘 있어.”
그는 빙글빙글 웃으며 마지막으로 케일을 쳐다봤다. 그리고 멈칫했다.
케일은 웃고 있었다.
케일의 머릿속에 한 존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인간, 나는 위대하지 않음을 배웠다. 그래서 결심했다. 뭐든 배우고 습득해 내 것으로 만들기로.
어린 용은 가짜 드래곤 슬레이어와 싸우며 한 가지를 깨달았다.
위대하지 않으면 위대해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어린 용은 저번에는 재해에 대해서 배웠다.
그리고.
-이번엔 빛에 대해서 배웠다.
작은 빛이 검은 하늘에서 떨어져 내렸다.
작고 빨랐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힘은 무엇보다도 뜨겁고 파괴적이었다.
용 혼혈은 구백여 년을 갈고닦은 제 빛과 비슷한 힘을 느꼈다. 그의 등을 향한 빛.
“…이-”
콰아아앙!
다시 한번 거대한 굉음이 하늘을 뒤흔들었다.
이 광경은 오로지 최한과 케일, 라온에게만 보였다. 다른 이들에게는 환해서 여전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하늘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 굉음에 사람들은 감고 있던 눈을 떴다.
계속해서 굉음이 들렸다. 빛 화살이 계속 생기는 걸까? 어째서 이 소리가 끝나지 않는 거지?
그중 눈을 감고 있지 않고 있던 사람. 눈부신 빛에 눈물이 났음에도 이를 끝까지 지켜봤던 사람 중 한 명.
발렌티노 왕세자는 난간을 잡은 채로 서서히 어둠이 내려앉는 하늘을 바라봤다.
빛이 사라지며, 작은 등이 보였다.
거대한 방패와 수백 개의 빛 화살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등.
그 등의 주인은 꼿꼿했다.
“…사령관.”
검은 와이번과 붉은 머리칼의 남자.
하늘을 뒤엎었던 빛이 완전히 사라졌을 때. 그리고 온전한 밤이 찾아왔을 때.
케일은 은빛을 거둬들였다.
뚜욱. 뚝.
케일은 공중에서 떨어져 와이번의 머리를 타고 내리는 핏방울을 바라봤다.
이 피는 용 혼혈 마법사의 피였다.
하지만 케일은 용 혼혈을 놓쳤다.
‘1차 성장을 못했나 보구나. 오랜만에 재밌었다.’
용 혼혈은 제 등을 꿰뚫고 나온 빛을 움켜쥐며 웃어댔다. 동시에 도망이 아니라 다시 한번 빛 화살을 만들어 쏘아붙였다.
그 선택은 탁월했다. 라온과 케일의 발을 붙잡았고 최한이 다가오지 못했으니까. 그리고 다시 한번 쏘아진 빛 화살은 최한과 와이번을 향했다.
‘마음이 약하면 결국 아무것도 못하지.’
용 혼혈은 텔레포트 마법을, 라온은 결국 최한에게 실드를.
둘은 그렇게 갈라졌다.
케일은 제 머릿속에 울려 퍼졌던 용 혼혈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넌 나와 같은 용 피를 이어받은 놈이니, 내가 어린 너를 보호해 주지. 대신 너를 죽이는 것도 나다. 하하하하!’
…이건 또 무슨 개소리일까?
하지만 케일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인간. 흔적 남겼다! 그 녀석도 잡으러 가자!
그 녀석도 잡으면 그만이니까.
“죄송합니다, 케일 님.”
최한이 와이번을 탄 채로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툭, 툭. 케일은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입을 열었다.
“내려가자.”
케일은 아래를 내려다봤다.
땅에 선 이들이 보였다.
빛 화살로부터 살아남은 이들이 케일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쿠우웅.
와이번이 바닥에 내려섰고, 케일은 땅에 발을 디뎠다. 그런 그에게로 부단장 힐스만이 달려왔다. 케일은 힐스만의 벅찬 표정에 괜스레 헛기침을 해댔다.
도망친 적은 1명, 그리고 살아남은 아군들.
이만하면 되었다.
도망친 놈은 잡아서 족치면 된다.
케일은 그리 생각하며 다가오는 힐스만을 보며 입을 열었다. 그 순간이었다.
“공자님, 아니, 사령관님! 역시 방패는 부서지지 않았습니다!”
감격에 겨워 내뱉는 벅찬 음성. 케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는 힐스만 뒤에서 감격한 얼굴로 다가오는 발렌티노 왕세자의 눈물젖은 얼굴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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