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23
22화.
가볍게 퍼슬 시 성문을 통과한 헤니투스의 황금 거북이 마차는 부집사 한스의 안내를 따라 숙소로 향하고 있었다.
“웨스턴 시보다는 작은데.”
“맞아요. 작아.”
온과 홍의 말에 케일은 수긍하며 마차 밖을 쳐다봤다.
‘성 안까지 따라오지는 않겠지?’
최한의 말에 따르면 검은 용은 꽤 먼 거리에서 따라오다가, 새벽에 먹을 거리를 놔두고 도망간다고 한다.
‘귀엽지 않습니까? 참, 그 힘겨운 삶 속에서 순수함을 잃지 않은 귀여운 아이 같습니다.’
‘…썩.’
최한은 흐뭇한 표정으로 말했지만, 케일에게는 전혀 즐겁지 않은 이야기였다. 용이 산 하나 날리는 꼴을 봐야 저 소리가 안 튀어나올 것이다.
인간이 싫다면서 왜 그러는지. 케일은 심히 부담스러웠다. 그의 예상과는 다른 전개였다.
일단 아직은 어리니, 후작가를 피해 자신만의 레어를 만들어 힘을 키울 줄 알았다. 그래서 힘을 키운 후에 전쟁이 일어났을 때 이 왕국을 좀 먹을 후작가를 미리 한방에 날려버리길, 케일은 바랐다. 그래야 헤니투스 영지도 조금 더 평화롭지 않겠는가.
“쯧.”
케일은 혀를 찼고, 신나게 창밖을 보고 있던 고양이들이 움찔하더니 그에게 다가왔다. 마차 창 밖을 열심히 쳐다보더니 궁금한 것이 생긴 듯 했다.
“집집마다 다 돌탑이 있어요.”
“이상한데.”
케일은 심드렁하게 답했다.
“돌탑의 도시니까.”
퍼슬 시에는 돌탑들이 모여있는 유적지가 유명했지만 그와 더불어 이 도시를 유명하게 만드는 것은 집집마다 쌓여있는 작은 돌탑들이었다.
이 도시의 사람들은 창문 밖에 작은 선반을 만들어 그 위에 돌탑을 작게 쌓아둔다. 돌 10개 이하의 작은 탑이라 돌탑이라고 하기도 애매했지만, 각 집안 사람의 성격에 따라 돌탑은 여러 모양을 형성했다.
케일이 도착한 고급 여관에도 돌탑이 쌓여있기는 매한가지였다.
“여기서 묵는건가?”
여관 주인의 안내를 받으며 뒤따라 가던 케일의 물음에 한스가 잽싸게 대답했다. 그는 고양이 남매를 품에 안은 채 신이 나 있었다.
“네. 최한님은 이틀로 예약해두었고 나머지는 시간에 따라 후불로 나중에 금액을 지급하기로 했습니다.”
한스의 뒤에 있던 론이 그의 말에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마법 상자를 든 채로 뒤를 따랐다. 한스는 마저 케일에게 말을 이었다.
“딱 돌탑 축제 전 비수기에 와서 그런지 아직 방값이 비싸지는 않더군요.”
돌탑 축제. 퍼슬 시는 다음 주에 있을 돌탑 축제를 위해 준비가 한창이었다. 케일은 무심히 생각난 것을 툭 내뱉었다.
“돌이 많은 동네도 아닌데, 돌탑은 꽤 신기하네. 이상하군.”
“그건 제가 이유를 압니다.”
뭐? 무심코 내뱉은 혼잣말에 반응한 한스를 케일은 슬쩍 쳐다봤다.
“과거부터 내려져오는 아주 슬프면서도 교훈적인 이야기가 있습니다.”
“긴 얘기면 그냥 하지 마라.”
굳이 듣고 싶지 않으니까. 케일은 그리 말했으나, 한스는 길지 않다고 판단한 듯 말을 이었다. 어느 새 케일의 방에 들어선 일행들은 나가는 여관 직원을 쳐다보며 한스의 말을 들어야 했다.
“이 이야기는, 아니 이 전설은 바야흐로 고대의 이야기입니다.”
“고대?”
달칵. 직원이 나가고 일행만 남은 방. 고대라는 단어에 케일이 반응했다.
“네. 고대 입니다.”
“한 번 해 봐.”
한스의 품 속 고양이 남매들이 흥미진진하다는 듯 꼬리를 살랑거리며 한스를 올려다봤다. 론은 묵묵히 마법 상자와 함께 들고온 병에서 레모네이드를 컵에 따라 케일에게 건넸다.
케일은 한 손에는 레모네이드를 든 채로 소파에 다리를 꼬고서 한스에게 턱짓 했다. 어서 말하라는 의미였다.
“크흠. 이 도시는 한 때 신의 버림을 받았다고 합니다.”
신의 버림? 케일은 전혀 모르는 이야기였다.
“난 처음 듣는데.”
“공자님은 역사에 대해 공부를 하지 않으셨으니까요.”
“…너 자꾸 맞 먹는다? 계속 그렇게 막 나가? 응?”
한스는 슬쩍 케일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주인이 모르는 걸 알려드리는 것이 집사의 훌륭한 태도 중 하나 인 것은 당연지사죠.”
한스는 고대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무엇 때문에 이 도시가 신에게 버림을 받았는지는 모릅니다. 다만 그 때 이 도시 사람들은 몇몇씩 무리를 지어 여러개의 돌탑을 쌓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게 어떤 바람을 담은 기도의 행위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바람은 이루어졌대?”
케일의 물음에 한스는 단호하게 답했다.
“아뇨.”
신은 바람을 들어주지 않았다.
“기도는 하나도 통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퍼슬 시에는 신전이 하나도 없지요.”
“신이 버렸는데, 굳이 내가 신을 모실 이유는 없다. 이건가?”
“정답입니다. 역시 우리 공자님은 똑똑하시고, 공부가 필요 없으신 분입니다.”
“…쓸데없는 소리 할래?”
한스는 케일에게서 시선을 돌려 저 먼 산을 보며 말을 이었다.
“크흠. 아무튼 신전 대신에 돌탑이 있지요. 이 돌탑은 그 뒤로 하나의 약속이 됩니다. 인간들 사이의 약속이기도 했고, 그 인간 스스로와의 약속이기도 했지요.”
“무슨 약속?”
한스는 퍼슬 시에 내려오는 한가지 이상한 규칙에 대해서 말했다.
“자신의 소원을 이룬 인간은 자신의 돌탑을 무너뜨린다.”
케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재밌는 도시네.”
“그렇죠. 결국 이들은 신에게 버림 받았으니 소원을 이루려면 본인 스스로의 힘으로 해야 하니까요. 돌탑을 부수는 행위는 일종의 ‘극복’을 뜻 합니다.”
케일은 돌탑을 부수는 행위가 꽤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집집마다 쌓인 작은 돌탑들, 그 갯수를 셀 수 없는 돌탑을 떠올렸다.
“신에게 기대어 쌓은 돌탑은 아니군.”
“네. 스스로에 대한 다짐이죠.”
무너뜨리지 못해도 충분한 가치가 있는 돌탑이었다.
“결국 신이 소원을 들어준다는 것은 아니었네.”
“네. 맞습니다. 어찌보면 버림 받았다는 것이 슬프지만, 굉장히 희망적인 이야기이기도 하지요.”
맞장구 치는 한스에게 케일은 툭 내뱉듯이 말했다.
“고개 숙여 봐.”
“네?”
어벙하게 되물어보는 한스에게 케일은 손가락으로 그의 품을 가리켰다.
“고양이들이 화가 난 것 같은데.”
“네?”
헉. 고개를 숙인 한스가 헛바람을 집어 삼키며 눈을 크게 떴다. 고양이들이 이를 드러내며 화를 내고 있었다. 한스를 노려보는 금안이 상당히 매서웠다.
“아이구. 우리 고양이님들이 왜 화가 나셨을까? 육포 가지고 올까요?”
한스는 고양이들을 품에서 내려 놓으며 생글생글 웃었다. 아직 묘인족인 줄 모르니, 단지 배가 고파서 화가 난 줄 아는 것이리라. 하지만 고양이들은 그것때문에 화가 난 것이 아니었다. 케일은 남매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한스에게 들었는데.’
‘한스가 그랬는데.’
‘돌탑에 가서 소원 빌면 이루어진다는데.’
‘돌탑이 이쁘다는데.’
탁. 탁. 화가 났는지 온은 앞발로 바닥을 두드려댔고, 홍은 꼬리를 연신 바닥에 두드려댔다. 왜 돌탑으로 거짓말을 했냐는 화의 표출이었으나, 한스에게는 그 신호가 잘못 갔다.
“아이구, 우리 고양이님들. 맛있는 간식 들고 올게요! 공자님, 갔다와도 되겠습니까?”
“계속 나가 있어도 돼.”
“빨리 다녀 오겠습니다!”
한스는 빨리 다녀온다고 말하면서도 가져온 짐들을 착실히 정리부터 했고, 정리가 끝나자 아주 빠른 속도로 케일의 방을 나가버렸다.
“론, 자네도 가서 쉬어.”
방에는 아직 론이 남아 있었다. 그는 케일을 보며 한껏 인자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불길한데. 케일은 저 노인네의 미소가 참으로 싫었다. 웃을 때 더 불안한 인간이었다. 론은 케일이 앉아있는 소파로 다가오더니 입을 열었다.
“최한님이 이틀 뒤에 떠나는 겁니까?”
“그렇지.”
무심히 대답하던 케일은 문득 든 생각에 슬쩍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왜? 떠나보내기 싫어? 론도 함께 가고 싶은건가?”
론의 인자한 미소가 더 짙어졌다.
“제가 어찌 도련님을 두고 가겠습니까. 전 도련님 곁이 좋습니다.”
소름돋았다.
“다만, 최한님과 함께 간다면 더 좋았을 것이란 아쉬움이 들어서였습니다. 그 전에 대화를 많이 나눠야 겠습니다. 비크로스가 많이 아쉬워하겠군요.”
하지만 이어진 론의 말에 케일의 안색이 조금 밝아졌다. 그간 귀찮아서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는데 그럭저럭 론, 비크로스, 최한 세 사람 사이에 어느 정도 정이 생긴 듯 했다.
최한이야 떨떠름해 했지만 그는 정말로 싫은 이라면 대화 자체를 나누지 않을 것이다. 케일은 자신의 계획을 떠올리며 의뭉스런 미소로 넌지시 말했다.
“뭐, 수도에서부터는 계속 셋이서 자주 보면 되지. 같이 다닐텐데.”
그렇게 셋이서 이 왕국을 벗어나 로잘린의 왕국으로 가는 거야. 어때? 좋지? 뒷말을 속으로 삼키며 케일은 음흉스럽게 미소 지었고 론은 더 인자하게 미소를 지으며 케일의 말에 답했다.
“수도에서 최한님까지 모두와 함께 할 시간이 기대되는군요. 모두가 무사히 수도에 도착하는 것이 이 노인네의 바람입니다.”
케일은 저 말을 그대로 믿지 않았다. 기대된다느니, 무사히 도착하는 것이 바람이라느니. 그런 감정이 통할 노인네가 아니었다.
고양이들 역시 마찬가지인 듯 론을 보며 콧방귀를 꼈다. 매일 틈만 나면 케일 몰래 자신들도 다 아는 암살 기술을 가르치려드는 론이 귀찮은 온과 홍이었다.
“…나가 봐.”
힘없이 케일은 인자하게 웃고 있는 론을 내보냈다.
“한스 거짓말쟁이!”
“집사를 믿었는데!”
그제야 말을 쏟아내며 분노를 터트리는 고양이 남매를 외면하며 케일은 창 밖을 내다봤다.
‘심장의 활력’ 그 완성되지 못한 돌탑이 있을, 퍼슬 시 외곽의 동굴이 있을 방향을 케일은 응시했다. 그 동굴에는 작은 집이 있을 것이다.
‘150살까지 살았다고 했던가?’
노환으로, 자연히 수명이 다해 죽은 고대의 인간이 남겨놓은 힘. 죽은 인간은 스스로의 힘이 저주라고 생각했다. 케일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대충 옷을 정돈하고는 벌컥 열었다.
“아이구야!”
하필 문 바로 앞에 한스가 있었다. 육포를 한가득 품에 안고서 달려온 부집사에게 케일은 무심히 말했다.
“돌탑 보러 가자.”
고양이들의 귀가 들썩거렸다. 케일은 언제 화가 났냐는 듯 도도도 달려오는 고양이 남매를 보며 속으로 픽 웃고는 함께할 인원을정했다.
“인원은 최한과 우리만이다. 아, 온과 홍도 데려가고.”
150살까지 살다죽은 인간은 바람이 모이는 동굴에 돌탑을 쌓길 원했다.
‘저번엔 나무더니, 이번엔 바람인가?’
정체를 알 수 없는 기이한 바람으로 거친 소용돌이가 휘몰아치는 그 정중앙. 태풍의 눈과 같은 곳에 노인은 돌탑을 쌓으려고 100년이 넘게 애썼다. 하지만 실패한다.
아니, 늘 성공을 목전에 두고 노인은 돌탑을 부쉈다. 그렇게 반복하다가 중간 지점을 쌓은 어느 날 죽고 만다.
도대체 그 고대 노인은 무슨 소원을 바랐던 것일까? 딱히 케일이 알 바는 아니었다. 그는 다만 돌탑을 보러 가며 한가지를 유심히 쳐다볼 작정이었다.
‘이왕 쌓는 거 멋있게 쌓아야지.’
이왕 내일 할 일이니, 거 때깔 한 번 곱게 돌탑을 쌓을 생각이었다. 그리고 돌탑 유적지에서 케일은 혹시 모르니 미리 봐둬야 할 인간들도 있었다.
잠시 뒤, 케일은 고양이 두마리와 최한, 한스와 함께 돌탑 유적지 입구에 도착했다. 마차도 끌고 오지 않았고 케일은 햇볕이 싫다며 모자를 쓴 상태였다.
‘역시 아직은 여기에 있군.’
그는 유적지 입구에서부터 이곳을 찾은 목적 중에 하나인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케일은 몸을 은근슬쩍 최한과 한스 뒤로 숨겼다.
꽤 멀찍이 떨어진 곳에 평범한 옷 차림의 남자와 여자가 있었다. 다만 남자는 휠체어를 타고 있었다. 여자는 그 휠체어를 뒤에서 밀어주며 남자와 함께 유적지 입구이자 출구를 빠져나오고 있었다.
그들은 케일의 은밀한 시선을 모른 채, 여유로이 유적지를 벗어났다. 남자는 고개를 살짝 뒤로 돌리며 여자에게 물었다.
“웬일로 네가 여길 오자고 한거야?”
“무슨 신의 계신지 개소린지. 며칠 째 밤마다 꿈자리 뒤숭숭하게 자꾸 꿈에 나오길래 와봤지. 우리 미래의 은인이 나타난다고 여길 가보라고 하잖아. 자기도 오늘 제외하면 어떻게 행동할지 알 수 없는 인간이라고.”
“신이 예측할 수 없는 인간도 있어?”
“모르지. 신이 하는 소리 중 반은 개소리야. 개소리.”
숏컷으로 자른 갈색 머리칼의 여자는 한껏 귀찮음을 담은 표정으로 툴툴거렸다.
“개소리라니. 신의 말씀이야. 그리고 그 말씀을 듣는다는 건 비밀 아니었나?”
답하는 남자는 스텐 후작가의 버려진 장남, 테일러 스텐이었다.
“퍼슬시에는 신관도 없는데, 뭐. 그리고 말씀은 무슨. 신이 밥 먹여주냐? 우리 같은 처지의 사람에게 은인이라니. 말도 안되지. 배고프다. 밥 먹으러 가자.”
귀찮은 표정의 여자는 테일러의 친우이자 후에 미친 신관이라 불릴 케이지였다. 테일러는 심각한 얼굴로 친우의 말에 답했다.
“케이지. 나 심각하게 맥주가 갑자기 끌리는데.”
“와씨, 나는 훈제 돼지가 끌렸는데.”
심각한 얼굴로 둘은 서로를 바라봤다. 테일러는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키며 케이지에게 진중하게 말했다.
“훌륭한 조합이네. 가자. 끌어. 내가 쏜다.”
“아이구, 쏜다니! 이 신관, 성의성심껏 친절히 모시겠습니다.”
두 사람은 웃으며 함께 앞으로 나아갔다.
케일은 멀찍이 떨어져 있어 그들의 대화를 들을 순 없었지만, 절박한 상황임에도 유쾌하게 웃는 두 사람의 얼굴을 유심히 머릿속에 새겼다.
‘얼굴은 기억했고.’
이제 피해다니기만 하면 된다. 저들이 자신을 모르니, 자신만 피하면 될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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