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235
234화.
고개 숙인 소년. 케일은 라크의 뒤에서 그를 걱정스레 바라보는 로잘린도 보였다.
첫 광폭화가 지났음에도 광폭화를 하지 못하는 수인.
로잘린은 그런 이야기를 처음 들어보았기에 이 상황에서 뭐라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특히 몇 개월 동안 더 강해진 그녀였기에 광폭화를 하지 못해 약해진 상태의 라크에게 더욱더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케일과 라크를 바라보는 그녀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그때였다. 로잘린의 몸이 움찔거렸다.
촤악.
천막의 입구가 살짝 열리며 사람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령관님, 로운 왕국 측 병력이 왔습니다.”
로잘린을 부르는 명칭이었다.
브렉 왕국의 모든 마법 공격을 담당하는 사령관.
그녀는 살짝 열린 천막 밖, 수하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로운 왕국 측 병력.
수는 많지 않지만, 그녀가 등 뒤를 맡길 수 있는 동료들이 온다. 기쁨과 반가움이 일었다. 동시에 머지않은 전쟁이 떠오르며 어서 서둘러야 함을 깨달았다.
그러나 고개 숙인 라크가 그녀를 멈칫하게 만들었다.
그때,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툭.
“무슨 어린놈이 뼈밖에 없어.”
로잘린은 라크의 등을 살짝 치고는 천막 입구로 향하는 케일이 보였다. 케일은 천막 입구를 열어젖히며 라크를 쳐다봤다.
“가자.”
라크는 우물쭈물하며 움직이지 못했다.
“라온, 밀어.”
그 말에 라크가 멈칫했다. 그는 곧 그의 등을 살짝 미는 작은 앞발을 느낄 수 있었다.
“다들 너 보고 싶어 한다! 라크야, 가자!”
투명화했지만 라온의 존재가 목소리와 촉감으로 느껴졌다. 라크는 앞에서 기다리는 사람과 자신의 등을 살짝 미는 용의 행동에 입술을 꾹 깨물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광폭화하지 못하는 자신은 터무니없이 약하다.
아주 약한 것은 아니지만, 동료들에 비하면, 가족들에 비하면 피해만 끼칠 정도로 약하다.
그래서 오랜만에 보는 이들을 만날 자신이 없었다.
천천히 걸음을 내디딘 소년의 발이 케일의 바로 앞에서 멈췄을 때, 케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 등을 잘 보고. 내 뒤를 잘 따라오도록.”
라크의 고개가 서서히 들어 올려졌다. 툭툭, 그의 등을 두드리는 작은 앞발도 느껴졌다.
천막 입구를 막고 있던 천이 완전히 걷혔다.
라크는 케일 뒷모습 너머로 주둔해 있는 브렉 왕국 사람들이 보였다.
죽음의 협곡.
그 길고 험난한 협곡의 몇몇 지점에 며칠 전부터 많은 이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마법을 펼쳐 그 이동을 은밀하게 감췄다.
그렇게 모여든 몇몇 지점 중 가장 많은 이들이 모인 곳.
그곳은 로잘린을 비롯한 브렉 왕국 수뇌부들이 모인 곳이었다.
라크는 천막 너머로 수뇌부와 그들이 데려온 병력들이 보였다. 저들은 모두 한 사람을 보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다.
동북부 사령관.
그를 기다리던 사람들이었다.
라크는 천막 밖으로 나서는 케일이 보였다. 그는 죽음의 협곡에서 브렉 왕국 마법사들 몇 명과 지내며 이번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수시로 들을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동료들과 케일이 얼마나 많은 일을 해냈는지 들었다. 그랬기에 오랜만에 본 케일의 뒷모습은 거대해 보였다. 자신과는 상당히 먼 사람 같아 보였다.
하지만, 라크는 케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 와?”
움직이지 않고 기다리는 등.
그리고 라크는 제 등을 살짝 미는 두 존재를 느꼈다. 한 사람은 로잘린이었고, 또 하나는 보이지 않지만 작은 용이었다.
라크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천막 밖 브렉 왕국 수뇌부들은 보지 않았다. 그저 케일의 등만을 보고 걸었다. 그래서 케일보다 키가 큰 그의 고개가 숙여지고 움츠러들었지만, 걸음은 막힘이 없었다.
케일은 걸음을 옮기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곳에 모인 사람은 적지 않았다. 하지만 브렉 왕국 병력의 대부분은 죽음의 협곡과 가장 가까운 도시에서 언제라도 움직일 수 있게 주둔해 있는 상태였다.
케일은 제 옆으로 다가온 로잘린을 보며 입을 열었다.
“병단은 모두 옮겼습니까?”
“네. 텔레포트 마법진을 협곡 포인트들에 설치했고, 기사와 병사들은 내일 새벽에 모두 모일 겁니다.”
불굴 연합의 정보는 클로페 세카를 통해 전달되고 있는 중이었다.
로운 왕국은 클로페와 파에른의 배신이 불굴 연합에게 끝까지 들키지 않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다.
그렇기에 불굴 연합을 향한 브렉 왕국의 대비는 최대한 은밀하게 진행했다.
내일 새벽.
클로페가 전한 불굴 연합의 침공 시간이었다.
“공자, 지금 현재 인원 정도의 이동은 불굴 연합에서 탐색을 한다고 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 거예요.”
“그렇죠.”
로잘린의 말대로 현재 몇몇 포인트에 이동한 인원 정도는 전쟁 준비보다는 당연해 보이는 이동이었다.
불굴 연합은 아직 전쟁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남은 곳이 어디일까?
누가 보아도 브렉 왕국이었다.
물론 죽음의 협곡이 있어 사람들은 쉬이 그 판단을 믿을 수 없었지만, 브렉 왕국이 불굴 연합을 대비해 백 명 안팎의 인원을 죽음의 협곡 근처 곳곳에 이동시키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할 터.
로잘린은 입을 열었다.
“로운과 브렉, 두 곳의 마법병단이 드디어 제대로 모습을 보이겠군요.”
케일은 로잘린의 자신감 가득 찬 미소를 보며 피식 바람 빠지는 웃음을 흘렸다.
마법병단의 실질적인 대장.
그 사람은 로잘린이었다.
차기 마탑주의 자격을 가진 최상급 마법사.
그녀는 몇 개월간 스스로의 힘과 더불어 진짜 마법들을 갈고닦아 왔다. 그 힘을 제대로 쓸 생각에 그녀의 머릿속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드워프들이 죽음의 협곡을 건널 이동 수단을 만들었다던데, 어떨지 궁금하네요.”
케일은 로잘린의 말에 클로페가 전해준 정보 중 하나를 떠올렸다.
‘이번 불굴 연합 공격에 화염의 드워프족이 강력하게 나서겠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들은 죽음의 협곡을 자유롭게 이동할 수단을 만들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그 이동 수단 공개는 공격 직전에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아마도 저번에 카로 왕국 배가 다 부서지면서 만회를 위해 그러는 것 같습니다. 나름 비장의 수단을 뒤늦게 보이면서 저들의 힘을 과시할 생각인 것 같습니다만.’
‘그래 봤자, 제가 알자마자 바로 우리 로운에 보고를 할 것이니 상관없겠죠? 하하하하!’
클로페의 미친 웃음소리까지 떠올라 케일은 미간을 찌푸렸다. 미친놈 말은 이제 반만 믿는 케일이었다.
로잘린은 케일의 표정을 보지 못한 채 한 곳을 가리켰다.
“아, 공자. 에크러스 백작 알죠?”
케일의 시선이 로잘린이 가리키는 곳으로 향했다.
에크러스 백작.
궁정 수석 마법사의 제자로, 브렉 왕국 마법사 서열 2순위라 보면 되었다. 물론 로잘린은 논외의 존재였다.
케일은 죽음의 협곡에서 일할 때, 은근히 그를 무시하고 얕잡아 봤던 에크러스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에크러스 백작은 케일과 눈이 마주치자 멈칫했다. 그는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케일 헤니투스.
올해 초 죽음의 협곡에 호족을 데리고 왔던 케일을 에크러스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의 케일과 제복을 입고 있는 사령관 케일은 같은 사람임에도 느낌부터 달랐다.
그간 그가 한 일을 모두 들었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헤니투스 영지 전투, 로운 왕국 동북부 해안에서의 전투. 마지막으로 카로 왕국 전투.
그 모든 것들을 들은 에크러스 백작은 제가 보였던 행동이 떠올라 섬뜩하면서도 브렉 왕국을 도우러 온 케일의 모습에 든든함을 함께 느꼈다.
“오랜만이군요.”
“네, 케일 사령관님. 오랜만입니다.”
에크러스 백작은 저도 모르게 케일에게 존댓말을 했지만, 케일도 에크러스 백작도 이전과 달리진 그 차이를 알지 못했다.
-이럴 줄 알았다!
라온만 알아차렸지만, 케일은 그 말에 귀를 기울일 틈이 없었다.
“사령관님.”
“케일 님.”
케일은 반대편에서 저를 향해 걸어오는 무리를 볼 수 있었다.
로운의 왕가 제1기사단, 그리고 마법병단.
마지막으로 최한과 메리를 포함한 일행이 보였다.
에크러스 백작은 로운 왕국 승리의 주역들을 보고 살짝 뒤로 한 걸음 물렸다. 최소 두 번의 전쟁을 이겨낸 사람들. 그들이 풍기는 분위기는 자신과 달랐기 때문이었다.
케일은 제 주위 사람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회의를 진행하도록 하지.”
드워프의 이동 수단부터 사자족과 곰족, 그 밖에도 함께 올 적군의 병력과 전략.
그 모든 것들을 손바닥 위에 올리고 잘 구슬릴 세부적인 계획을 짜야 했다.
케일은 로잘린을 비롯한 참모, 수뇌부들과 함께 천막으로 향하며 제 등 뒤의 라크를 지나쳤다. 그는 라크를 스쳐 가며 한마디를 남겼다.
“저녁에 같이 밥 한 끼 하도록 하지.”
케일은 회의에 참가하지 않는 최한과 메리 등이 라크 주위를 둘러싸는 것을 보고는 미련 없이 회의 장소로 향했다.
***
“뭐 해? 안 먹어?”
케일을 위해 마련된 천막.
방음 마법 처리가 된 꽤 넓은 천막에는 그럭저럭 괜찮은 저녁 식탁이 차려져 있었다.
케일은 제 앞에 놓인 음식을 먹으며 맞은편을 힐끗 쳐다봤다.
“브렉 왕국에서 먹을 걸 안 주던가?”
“아, 아닙니다.”
라크는 화들짝 놀라며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케일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한때 배를 곯으며 살아온 케일이었다. 그는 어린애들이 마른 꼴을 보기가 싫었다. 라크가 원래 호리호리한 체격에 키가 커 살집이 적은 편이었으나, 지금은 한층 더 말라 있었다.
케일은 포크를 쥐고서 아무것도 못 하고 있는 라크의 움츠러든 등을 보다가 접시로 시선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
“할 말이 있으면 얼른 하고 밥 먹어.”
라크는 멈칫하며 케일을 바라봤다.
식탁에는 라온과 케일, 라크밖에 없었다. 다른 이들은 다른 곳에서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다. 라크는 이렇게 세 존재만을 위한 자리를 마련한 케일의 뜻을 알고 있었다. 그는 천천히 입을 뗐다.
“…정말, 정말 열심히 훈련을 했어요. 공자님의 믿음에 답하고 싶어서 정말 열심히 훈련을 했는데.”
믿는다.
그렇게 말한 케일에게 보답하고 싶어서 라크는 죽음의 협곡에서 훈련을 하고 또 했다. 정말 입안에 신물이 날 정도로 열심히 했다.
그러지 않으면 이 협곡에서의 하루는 너무나도 길었으니까.
그리고 케일의 믿음에 보답하는 것을 넘어 동료들에게 뒤처지기 싫었다.
“최한 형이나 다른 사람들 활약을 들으면서 더 열심히 했었는데.”
헤니투스 영지를 지켜낸 이야기.
로운 왕국 해상 전투에서 승리한 이야기.
그 이야기들을 들으며 심장이 뛰었다.
‘내 가족들이 이런 일을 했어요!’ 온 동네에 소문내고 싶을 만큼 자랑스러웠고 기뻤으며 그들의 무사함에 안도했다.
그리고 혼자 남은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공자님이 주신 늑대왕의 일기를 봤어요.”
채찍질에 좋은 재료가 있었다.
케일이 준 일기장.
누군가의 피로 적혀 있는 일기장.
케일은 그 일기장을 읽어보았다. 그는 라크를 바라봤다.
“거기에 적혀 있었습니다.”
케일이 라크를 홀로 남겨둔 이유도 그 일기장에 있었다. 소년의 입에서 일기장의 내용이 흘러나왔다.
“늑대는 상실과 외로움을 알아야 한다. 홀로 되었을 때 소중한 존재들의 가치를 알며, 그때서야 비로소 늑대는 강해진다고요.”
라크는 그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오래된 일기장. 그 위에 말라붙은 피로 쓰인 글자들.
자신도 푸른 늑대족 가족과 소중한 이들을 잃었을 때 첫 광폭화를 겪었다. 그때, 그는 처음으로 강해질 수 있는 수단을 얻었다.
이 늑대왕의 말은 사실이다.
“내 피를 흘릴지언정 늑대는 소중한 이들의 피는 흘리게 만들지 않는다.”
늑대왕의 그 말에 라크는 공감했다.
소중한 사람의 피보다 자신의 피가 나았다. 진심으로.
“그 말만 보고 열심히 훈련을 했는데. 그랬는데.”
라크는 포크를 쥔 손이 떨리는 것을 보며 제 두 손을 맞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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