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237
236화.
“라온.”
케일은 라온을 불렀다. 하지만 대답 대신 가쁜 숨소리만이 들려왔다. 예전에 감기에 걸려 잠시 아팠던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케일은 잠에 빠져든 듯하지만 열에 가득 차 괴로운 숨을 내뱉는 라온을 보며 눈을 감았다가 떴다.
1차 성장기.
그 단어 말고는 떠오르는 단어가 없었다. 케일은 에르하벤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쟤 꽤 똑똑해. 세 달 배울 걸 한 달 만에 배울 정도야.’
‘그런데 안 커.’
‘1차 성장을 안 해.’
‘할 때가 되었는데. 왜 저렇지?’
이미 한계까지 배웠음에도 성장하지 못했던 용. 케일은 잠결에 들었던 목소리를 떠올렸다.
‘인간, 그때처럼 다시 약해져서 구해야 하면 구하나?’
빌어먹을.
케일은 입에서 거친 말이 흘러나왔다.
라온이 했던 말이 떠올라서가 아니었다.
삐이이이- 삐이이-
사람 깨우는 알람 소리가 이렇게 크게, 계속해서 울릴 필요가 있을까?
적들의 눈을 살펴야 하는 쪽에서, 이렇게 점점 더 크게, 진영 전체가 울릴 정도로 소리를 낼 수 있을까?
문득 떠오른 생각에 케일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는 라온을 바라봤다. 저 어린 용의 아공간에 케일의 영상 통신구가 있었다.
수호 기사 클로페. 그놈은 지금껏 오로지 저 영상 통신구로만 연락했다.
케일은 불굴 연합에 생긴 변동이나 긴급 사항이 생길 때마다 보안을 위해 자신의 영상 통신구로 연락하라고 클로페에게 지시해 두었다.
물론 그 외의 다른 영상 통신구 주소 하나도 비상으로 전해주었지만.
삐이이이- 삐이이-
“케일 님!”
천막 밖. 최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케일은 손으로 눈가를 쓸어내렸다.
자신이 잠든 세 시간.
아니, 라온이 아프기 시작한 시간. 그동안 클로페에게 연락이 왔다면?
그랬다면 케일은 그 연락을 받지 못한다. 라온이 아프니까.
삐이이- 삐이이-
이건 알람 소리가 아니다.
경고음.
무언가 일이 생겼음을 뜻하는 소리다.
‘미치겠네.’
케일은 찡그려지려는 얼굴을 최대한 바로 하며 천막으로 다가갔다.
촤악.
입구가 걷히며 천막 너머 바삐 움직이는 병사들이 보였다. 진영에 설치된 텔레포트 진에서 계속해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인근 도시에 있던 병사와 기사들이 이동해 왔다.
“케일 님, 절벽 너머에 적들이 오고 있다고 합니다!”
케일은 최한의 목소리에 천막 입구 바로 앞으로 시선을 돌렸다. 최한과 힐스만, 메리, 라크가 보였다. 그리고 왕가 기사단 몇 명도, 아니, 로운 왕국 측 병력의 핵심 인사들이 모두 보였다.
케일은 입을 열었다.
“최한, 라크. 들어와. 다른 이들은 대기하도록.”
최한은 케일이 담담한 얼굴로 자신에게 들어오라고 명하자, 의아했지만 따라 들어갔다. 그의 눈동자에는 다급함이 서려 있었다.
적이 문제가 아니었다.
클로페가 배신을 때린 걸까?
그 생각이 최한을 서두르게 만들었다.
그러다 어둠에 크게 괘념치 않는 그의 눈동자가 천막 안 어둠을 보았고, 걸음을 멈췄다.
“…케일 님.”
뒤따라오던 라크도 눈에 보이는 광경에 놀라 움직임을 멈췄다.
최한과 라크, 두 사람은 침대 위에서 눈을 감고 있는 라온이 보였다. 최한의 표정이 달라졌다. 의문으로 가득 찼던 표정에 납득이 서렸다.
“…수호 기사가 배신을 했나 싶었는데. 그래서 지금 상황에 대해 아무 말씀이 없으셨군요.”
최한은 대번에 케일이 클로페에게 아무 연락도 못 받고 지금 상황을 맞이했음을 알아챘다. 그는 아픈 라온의 모습에 위급 상황임에도 속이 쓰려왔다.
“케일 님.”
하지만 가장 속이 쓰릴 사람일 케일의 담담한 얼굴에, 최한은 최대한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적군들이 텔레포트 진을 통해 대규모 이동을 하고 있음을 십 분 전에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현재 모든 병력들이 집결하고 있는 중입니다.”
집결 방법은 마법병단 단원들이 설치한 여러 개의 대형 텔레포트 진이었다.
“예상보다 3시간 이른 이동으로, 그에 따라 총 다섯 개의 대형 텔레포트 진이 설치된 죽음의 협곡 지점으로 브렉 왕국군이 모이고 있습니다.”
동에서 서로, 서대륙의 일부를 가로지르는 죽음의 협곡. 그중 주요 브렉 왕국 도시에 최단으로 갈 수 있는 루트의 중심, 요충지에 다섯 개의 텔레포트 진을 설치하였다.
그 다섯 개 중 세 번째인 중간 지점. 그곳이 케일이 있는 곳이었다.
“로잘린은 현재 브렉 왕국 협곡 경계선에 가 적들의 공격을 대비하고 있습니다.”
케일은 최한의 말에 한마디도 답하지 않은 채 침대 위를 쳐다봤다.
케일 일행의 사정을 잘 알면서 영상통신이 가능한 자는 라온을 빼면 로잘린뿐이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당장 적을 맞이해야 한다.
‘에르하벤 님은 안 되겠군.’
지금 고룡에게 연락하기는 힘들다.
케일의 머릿속으로 여러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동시에 김록수일 적, 처음 제대로 된 일을 시작했을 때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침착해야 돼. 정보를 다루는 사람은 언제나 냉정해야 한다. 알겠나, 신입?’
전 팀장이 했던 말. 김록수의 재능을 확인하고 키워준 자의 목소리는 늘 태연했다.
들끓는 내면과 달리 서늘한 케일의 눈동자가 최한에게로 향했다. 하지만 그의 입은 다른 사람을 불렀다.
“라크.”
“네.”
“넌 무조건 내 옆에 있는다. 무조건. 알겠나?”
라크는 주먹을 꽉 쥐며 답했다.
“네, 네.”
라크의 마음속도 들끓고 있었다.
삐이이- 삐이-
시끄러운 경고음과 함께 라크의 머릿속도 복잡해져만 갔다.
케일은 라크가 대답하자 고개를 돌려 침대로 향했다. 그는 담요로 둥글게 몸을 만 라온을 덮어씌웠다. 머리부터 꼬리까지. 전체 길이가 1m 20㎝밖에 되지 않는 작은 몸은 금방 큰 담요에 가려졌다.
케일은 그 몸을 들어 올려 안았다.
두고 갈 순 없다.
그러나 내가 이 옆에 있을 수도 없다.
그럼 별수 있나?
안고 가야지.
“최한.”
케일이 부르자마자 최한은 입을 열었다.
“오늘은 계속 세 사람 옆에 있겠습니다. 우선적으로요.”
케일과 라크, 라온.
최한은 오늘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를 명확히 정해두었다. 전쟁도 문제였고 로잘린의 나라도 지켜주고 싶었지만, 그는 그보단 내 가족이 먼저인 사람이었다.
“뭔 소리야?”
하지만 최한은 케일의 일그러진 얼굴을 볼 수 있었다. 평소처럼 툴툴거리는 표정이었다.
“최한, 넌 오기 전에 부숴 버려.”
적들이 오기 전에 부순다.
최한의 표정이 묘해졌다.
동시에 케일은 라크에게로 다가가 담요로 똘똘 감싼 라온을 내밀었다. 라온을 안고 있는 케일의 팔이 살짝 부들부들거리고 있었다. 길이는 작았지만 살이 쪄 통통한 라온은 꽤 무거웠다.
“자.”
“네? 네.”
라크는 얼떨결에 라온을 조심스레 안아 들었다. 묵직한 무게가 느껴졌다. 고개를 숙이자, 남들은 볼 수 없는 살짝 벌어진 틈으로 가쁜 숨을 쌕쌕 내뱉는 라온이 보였다.
라크는 알 수 없는 기분에, 라온을 안은 팔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용이라고 생각해 막연히 강하다고 생각했던 존재가 생각보다 덜 무거웠고, 지금은 아파하고 있었다.
라온도 라크의 가족이었다.
“안 따라와?”
“아, 네!”
라크는 케일의 목소리에 얼른 그의 바로 뒤에 섰다.
“오늘은 내 뒤에서 조금도 떨어지지 말고 계속 붙어 있도록. 알겠어?”
“네!”
라크는 케일의 마음을 이해했다. 자신과 라온을 지키려는 그의 마음. 태연한 표정을 하지만 지금 저 속은 얼마나 걱정으로 가득하겠는가.
라크는 이번 전쟁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명확히 깨달았다.
아픈 라온을 안고 있는 것.
그리고 케일의 뒤를 잘 따라다니는 것.
별것 아니지만, 전쟁 속에서 할 일이 생겼다는 사실에 라크는 저도 모르게 몸에 힘이 들어갔다.
늑대는 보호할 존재가 있을수록 강해지는 법이었다. 외로움과 소속감은 종이 한 장 차이이다. 그 사실을 라크도, 케일도 아직 잘 몰랐다.
최한은 케일이 라크를 데리고 천막 밖으로 나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촤악.
천막이 다시 걷어졌고, 케일은 저를 쳐다보는 로운 왕국군의 핵심들 앞에 섰다. 메리, 힐스만, 마법병단, 왕가 제1기사단.
삐이이- 삐이이-
경고음이 울리며 정신없는 와중, 케일의 천막 앞에 도열해 있는 로운 왕국군은 조금의 흐트러짐도, 조바심도 없이 케일을 기다리고 있었다.
케일은 그런 이들 앞에 섰고, 최한도 천막 밖으로 나와 케일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때 케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늘 우리 목표는 간단하다.”
케일은 목표를 명확히 했다.
“몰살보다 방어를 택해라.”
은빛 방패. 사람들이 아는 그 힘의 원천은 라온이다. 케일의 방패는 라온의 실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오늘은 그것이 불가하다.
그렇다고 케일은 스스로의 약함을 드러낼 수 없었다. 다만 다른 지시를 내릴 뿐이었다.
“멀리 가지 마라. 그리고 혼자 있지 마라. 항시 3인 이상 함께해라.”
브렉 왕국을 도우러 왔지만, 케일은 궁극적으로 자신의 목숨과 내 영역 안의 목숨이 먼저다. 나와 가까운 자들이 살아남는 것.
그랬기에 케일은 로운 왕국 사람들에게 방어를 택하라고 명했다.
다만 한 명.
최한은 검집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는 저를 쳐다보는 케일의 시선에 고개를 숙이며 답을 대신했다.
방어보다 먼저 나아가라고. 그래서 적이 오기 전에 부수라고 명을 들은 사람은 유일하게 최한뿐이었다. 최한은 그 의미를 제대로 알아들었다.
라온이 없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최한 자신뿐이다.
최한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 순간, 케일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모두, 본인의 자리로!”
마법사 로브와 기사들의 갑옷이 여러 소리를 내며 진영의 각기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케일도 한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의 옆으로 메리와 힐스만, 최한, 라크가 따라붙었다.
“라온 님께 일이 생겼나요?”
기계 같은 목소리가 평소와 달리 떨리고 있었다. 케일은 검은 로브와 그 옆의 걱정 가득한 힐스만을 보며 말했다.
“일이 생겼지.”
둘의 몸이 흠칫하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케일은 안심하라는 말 따위는 하지 않았다. 힘들수록 제대로 마주해야 하는 법이다. 그래야 일을 정확히 파악하고 돌파구를 발견한다.
케일은 이 사실을 두 사람에게 주지시켜 주었다.
“그러니 더 일 안 생기게 다치지 말고 정신 똑바로 차려.”
메리와 힐스만은 그 말에 입술을 꾹 다물었다.
다치지 말고, 정신 차려라.
떨리던 메리의 입술 끝과 당황으로 얼룩졌던 힐스만의 표정이 평소처럼 돌아갔다.
케일은 대답 없는 두 사람을 외면하고는 한 사람에게로 향했다.
로잘린.
그녀에게 가야 했다.
현 상황을 가장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을 사람이고, 그녀에게 부탁할 일이 있었다.
***
케일은 로잘린의 뒷모습이 보였다.
휘이이- 휘이이이이-
바람이 불었다. 아직 어두운 이른 새벽 시간.
깊고 깊은 절벽들이 수백 킬로미터 구불구불 이어진 죽음의 협곡.
브렉 왕국과 아스코산 왕국의 국경선이 되는 이 죽음의 협곡에서 가장 깊은 절벽.
그 절벽을 사이에 두고 로잘린은 건너편 아스코산 진영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곁에 마법병단과 함께 대형 텔레포트 진이 존재했다.
파아앗, 파앗.
대형 텔레포트 진은 쉴 새 없이 빛을 토해냈고, 그 사이로 기사와 병사들이 오가고 있었다.
하지만 케일은 그 모든 것들이 보이지 않았다.
“…이런, 무슨-”
힐스만 부단장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케일은 그에 조금도 신경을 쓸 수 없었다.
절벽 건너편.
적들의 땅.
수많은 빛들이 그 땅에서부터 치솟고 있었다.
케일 진영에서도 빛이 하나 치솟아 올랐다. 대형 텔레포트 진 하나를 통해서 솟아오르는 빛이었다.
그 빛 수십 개가 지금 절벽 건너편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최후답군.”
절벽의 건너편.
길고 구불구불한 협곡 절벽을 따라,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인원이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늠조차 되지 않을 정도의 적군들.
펄럭펄럭.
불굴 연합과 각 소속원을 표시하는 깃발들이 절벽 건너편에서 협곡의 거친 바람을 따라 펄럭이고 있었다.
카로 왕국과 로운 왕국, 두 곳을 침략했던 수군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기사와 보병 인원이 흐트러짐 없이 도열해 있었다.
파에른 왕국을 포함한 북부의 땅은 기사의 나라.
기사들은 땅에서 강했다. 그리고 땅에 강하면 당연히 보병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브렉과 아스코산을 가르는 길고 긴 절벽을 제외하면 어떠한 바다도, 호수도 없는, 오로지 땅만 존재하는 공간.
“…예상했지만 실제로 보니 수가 많군요.”
“아니, 그 미친놈이 말한 것보다 많아.”
“네?”
클로페가 말한 것보다 많다.
그것도 보병들이 너무 많다.
“로잘린 씨.”
“…공자!”
케일의 손이 로잘린의 어깨 위에 올려졌다. 한 가지 의문이 계속 들었다.
그는 곧바로 로잘린의 귓가에 속삭였다.
“저 숫자가 어떻게 넘어온다는 겁니까?”
저 많은 숫자.
저 숫자들이 어떻게 이곳으로 넘어온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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