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24
23화.
물론 저들을 위한 새로운 희망은 몰래 전해줄 생각이다. 용을 통해 배운 교훈이었다.
‘신이 할일 없어서 내가 누군지 가르쳐주지 않는 이상, 저들이 날 알아볼리 없어.’
정체를 아는 건 불가능하다는 소리다.
이 얼마나 속 편한 상황인가. 진작에 몰래 했어야 했다. 케일은 유쾌한 기분에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유적지 안으로 들어섰다.
곳곳에는 기도하는 인간들이 보였다.
그 때 한스가 은근슬쩍 다가와 케일에게 귓속말을 전했다.
“방금 전에 스텐 후작가 장남을 보았습니다.”
“…네가 그 사람을 어떻게 알아?”
진심으로 케일은 놀랐다. 한스는 씩 웃더니 제 눈을 가리켰다.
“웬만한 대귀족 자제에 대한 정보는 모두 이 머릿속에 있습니다. 휠체어를 타고 가는 남자가 보이더군요. 대동한 이가 한 사람뿐이라, 이상했지만 휠체어에 붉은 뱀 문양이 그려져 있기에 확신했습니다.”
“한스.”
“네.”
“넌 유능하지 않은 듯 유능하구나.”
“제가 좀.”
어깨를 으쓱이며 한스는 뿌듯한 표정으로 보고를 마쳤다. 그리고 물었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케일은 왼쪽 얼굴이 뜨거워져 시선을 돌렸다. 최한이 쳐다보고 있었다. 케일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두 사람에게 말했다.
“무시해.”
군말없이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나서야 본격적인 관광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돌탑의 규모에 케일은 놀라고야 말았다.
“생각 이상으로-”
케일의 표정이 떨떠름해졌다.
“해괴한 모양들이 많은데.”
고대의 미의식을 케일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냥 산처럼 쌓인 돌탑을 예상했으나, 별별 모양의 돌탑이 다 있었다.
약간 기괴하다고 해야 할까. 아름다워보이지는 않았다. 케일이 슬쩍 시선을 옆으로 돌려 한스의 품에 안긴 고양이들을 쳐다봤다. 상당히 실망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생각 이상으로 진지한 사람도 있었다. 최한은 다른 이들처럼 고개를 숙인 채 무언가를 기도했다.
‘보나마나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것이겠지.’
최한은 행복한 가정에서 자란 인물이었다. 케일과는, 김록수와는 달랐다. 행복한 가정에서 선한 영향력을 받으며 커 온 인물. 그렇기에 그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끝까지 살아남았고 선할 수 있었다.
케일은 최한의 모습을 무미건조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그 때 최한이 고개를 들더니 케일을 쳐다봤다.
“케일님.”
“어.”
“제가 하나 묻고 싶은 것이 있고 하나 보고드릴 것이 있습니다.”
케일은 왠지 느낌이 싸했다.
“일단, 묻고 싶은 것부터 물어봐.”
최한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넓은 평원 곳곳에 쌓인 돌탑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케일님은 소원 안 비십니까?”
또 뭘 묻는다고. 케일은 흘러가듯이 답했다.
“난 소원 같은 건 안 빌어.”
“왜요?”
“기대를 갖게 되잖아.”
최한도, 한스도, 고양이들도 케일을 바라봤다. 케일은 최한이 그랬듯 돌탑들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기대 없이 사는 게 속 편해.”
백원을 기대하고 복권을 긁었다가 오백원이 나오면 기분이 좋지만, 1등 생각하고 긁었다가 오백원 나오면 세상이 그러면 그렇지 싶고 짜증나는 법이었다.
툭. 케일은 팔을 툭 건드는 느낌에 시선을 돌리니 부집사 한스가 씩 웃으며 입을 열었다.
“공자님. 아시는군요. 세상은 꿈도 희망도 없는 법이죠.”
“…넌 그냥 관광이나 해라.”
“네!”
힘차게 답하며 어딘가 허무한 표정의 고양이들을 데리고 한스는 앞장 섰다. 그 뒤를 케일이 설렁설렁 따라 걸었는데, 그 때 최한이 옆에 따라붙더니 한스에게는 들리지 않을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최한은 아직 보고를 하지 않았다.
“사실 용이 성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모른 척.”
“네.”
케일은 괜히 주위를 한 번 둘러보았다. 투명화한 것인지 용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그의 눈에는 기이해보이는 돌탑에 기도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돌탑 축제는 멀었건만 꽤 사람들이 많았다. 케일의 시선은 넓은 평원 위 돌탑들이 있는 곳과는 반대로 향했다.
퍼슬 시에서 가장 부유한 이들이 사는 곳. 부촌. 그 부촌의 뒤에 자리한 작은 산. 그 산 어딘가엔 150살까지 천수를 누리고 살았던 이의 무덤이 있었다.
* * *
다음 날, 케일은 그 무덤으로 출발하고자 했다. 물론 들러붙으려는 인간과 이종족을 다 떨궈야 했기에 딴 말이 튀어나오지 않을 한 사람을 지적했다.
“최한만 데리고 간다.”
가장 강하고 고지식해보이는 최한. 그를 호위로 붙이자 부단장도 한스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다만 부단장은 미간을 찌푸린 채 훈련을 해야 한다며 기사들을 들볶았다. 아침 댓바람부터 연무장으로 향하는 그들을 질린 얼굴로 보던 케일에게 한스가 한마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고양이님들은 제가 맡겠습니다.”
신이 나서 들썩이는 뒷모습을 외면하며 케일은 여관 밖으로 향했다. 그 뒤를 최한이 따랐다.
“오늘도 어떤 일을 하시는 겁니까?”
“오늘도 라니. 누가 보면 내가 매일 무슨 일을 저지르는 줄 알겠어?”
최한은 대답하지 않았다. 케일은 그 반응에 신경쓰지 않고 부촌 뒤의 산으로 향하며 말을 이었다.
“저 앞에 보이는 산에 갈 일이 있어. 넌 산 입구에서 기다리면 돼.”
“알겠습니다.”
최한은 다른 말 없이 알겠다고 답했다. 케일은 이런 면이 편했다. 최한은 케일에게 별다른 의문을 드러내지 않았다. 자신을 따르는 것 같지만 그 따르는 상대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는 것.
아마 최한은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다 알아낼 수 있다는 생각에, 그리고 케일이 무슨 일을 해도 자신은 위험하지 않다는 생각에서 나올 수 있는 행동일 것이다.
어느 도시를 가나 볼 수 있는 부촌을 지나 작은 산에 도착한 케일은 산의 입구에서 최한의 부름에 걸음을 멈췄다.
“케일님.”
“어.”
“내일 저는 떠납니다.”
“알아. 내가 그 때 가라고 했다만?”
최한은 산 입구에서 껄렁껄렁한 자세로 서 있는 케일과 시선을 마주했다. 호위로 자신이면 충분하다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최한은 요즘 지키는 것에 대해서 늘 생각하고 있었다.
“떠나기 전에 고민했습니다만. 말씀드려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어제의 용 보고는 사실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보고가 아니었다.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케일 쪽을 직시하며 입을 열었다. 최한의 시선은 케일 어깨 너머 산 초입의 한 나무 위를 향해 있었다.
“론씨는 위험한 사람입니다.”
앞뒤도 없이 갑자기 날아온 직구에 케일은 순간 당황했다. 아는 척할까, 모르는 척 할까. 곧 답은 정해졌다. 케일은 이런 질문은 예상 못 했지만. 평온하게 반응했다.
“그래?”
“안 놀라십니까? 그에게서는 위험한 피 냄새가 납니다. 강하고 피를 많이 묻히고 산 사람입니다. 처음에는 케일님도 아시면서 론 씨를 곁에 두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알았다면 용을 구할 때 강한 론을 데리고 갔을 것이다. 그러나 케일은 그러지 않았다.
이는 론의 힘을 모르거나 혹은 론을 믿지 못한다는 말이었는데, 18년 동안 함께 하고 계속 곁에 두는 이를 못 믿을 리 없었다.
결론은 론의 힘을 모른다로 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케일님도 다른 분들도 론 씨에 대해서 모르는 것 같더군요.”
최한은 나름대로 고민을 많이 했었다. 사실 어제 케일이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다는 말에 론의 이야기가 입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 호위로 자신을 택한 케일의 모습에 최한은 양심이 찔려왔다.
“그래서 케일님께는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 론이 강한 줄은 몰랐네.”
최한은 심드렁한 케일의 반응에 되물었다.
“계속 그냥 곁에 두실 겁니까? 음습한 힘을 지녔습니다.”
케일은 최한의 말에 코웃음을 쳤다. 계속 곁에 두기는. 수도에 도착하면 당장 최한에게 보내버릴 작정이다.
“너나 론이나.”
“네?”
“위험한 힘을 지녔다면서, 너는 왜 론을 그대로 두는 것이지?”
“그건 당연히-”
최한은 할말이 순간 없어졌다.
“너한테 아무 짓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겠지.”
그는 이어진 케일의 말에 반박하지 못했다. 초반에 오해를 하고 잠시 짧은 공방이 있었지만 그 뒤에 검을 구해주고 해리스 마을 일 처리를 도와준 이가 론이었다.
케일은 말 없는 최한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론은 최한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도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다만 케일 자신에게 가끔씩 레모네이드를 주었지만, 토끼 고기를 가지고 놀렸지만, 그 정도야.
“18년 동안 론은 내 시종이었어.”
론은 어찌되었든 시종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했다. 권위 의식이 심한 부단장은 자신의 바로 옆에 시종 론이 어깨를 피고 당당히 걸어도 화를 내지 않았다. 부집사 한스도 제 일을 론이 대신 해도 화를 내지 않았다.
능력있고 가문에 헌신했기 때문이었다.
“넌 론을 싫어하냐?”
잠시 고민하던 최한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닙니다.”
“그럼?”
“위험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아두면 좋지 않을까 해 보고를 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너나 론이나.”
다시 한 번 들려온 똑같은 말에 최한이 케일을 바라봤다.
“나한테는 똑같아. 그렇게 따지면 너도 위험하지.”
케일은 무표정한 얼굴로 최한을 보며 말했다.
“너도 강하잖아.”
“아.”
최한이 탄식을 흘렸다. 그 탄식의 이유를 몰랐지만 케일은 이어 말했다.
“나한테는 다 비슷비슷하니까.”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동대륙에서 넘어온 론은 정체를 숨기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 그가 백작가의 아들을 건든다? 왕국이 시끄러워질 일이었다.
론. 따뜻한 정도 무엇도 없는, 오로지 자신만, 그리고 아들만 생각하는 이가 뭐하러 그런 짓을 하겠는가. 다만 위험한 노인네라 케일이 겁을 집어먹을 뿐이었다. 그리고 심신 안정을 위해 후딱 치워버리고 싶을 뿐이었고.
“내 시종인 이상, 론은 시종일 뿐이야. 네가 밥값 할 최한이듯.”
케일은 시계를 확인했다. 동굴의 바람은 시간에 따라 달랐다. 서둘러야 했다.
“이제 할 말 없지? 간다. 따라오지 마라.”
최한은 대답없이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케일은 그 모습에 뒤도 돌아보지 않았고 작은 산으로 향했다.
최한은 케일의 모습이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쯤. 산의 초입에 자리한, 아까 전부터 이따금씩 시선을 두었던 나무를 보며 입을 열었다.
“들었겠지?”
나무에서 론이 가뿐히 내려섰다. 그는 최한을 노려보며 입꼬리를 비틀어올렸다.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론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내가 똥기저귀 갈아주고 업어키운 놈이야.”
더 말할 필요 없는 진실이었다.
최한은 케일이 들어섰던 길 앞에 서며 론에게 말했다.
“여기서부터는 케일님이 따라오지 말라고 하셨다.”
“안다. 이 녀석아.”
론은 미련없이 산에서 등을 돌렸다. 묘족 아이들도 두고 최한과 단 둘이서만 간다기에 변덕 삼아 와 본 론이었다.
“괜히 왔어.”
늙으면 변덕만 는다더니, 변덕이 몹쓸 놈이었다. 왔던 때와 달리 론은 느릿한 걸음으로 숙소로 향했다. 최한은 그 모습을 지켜보며 케일이 내려올 때까지 있을 심산으로 근처 바위에 걸터 앉았다.
* * *
케일은 작은 언덕과 비슷한 산 등산로 밖에 위치한 한 동굴 앞에 섰다. 동굴의 입구는 덩굴로 가려져 자세히 보지 않으면 확인할 수 없었다.
“아, 진짜.”
케일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동굴의 입구가 상당히 작았다. 그는 자신의 옷을 훑어보았다. 가볍게 입고 왔지만 치렁치렁했다.
“하아.”
깊은 탄식과 함께 케일은 동굴 안으로 기어 들어갔다. 사람 먹는 나무도 그렇고 고대의 힘과 관련된 것들 중에는 제정신인 것이 하나도 없다고 케일은 확신했다. 동굴 입구 땅에 케일이 기어들어간 자국이 남았다. 잠시 뒤 그 자리에 작은 파충류의 발자국이 남겨졌다.
케일은 한 5분가량 기어들어가자 점점 동굴 안은 넓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테일러도 꽤 많이 간절했나 보네. 하반신 마비인데 여길 기어서 들어오다니.’
스스로의 힘으로 돌탑을 쌓아야 하기에 장남 테일러는 이 곳에 와야 했다. 케일에게는 5분이 테일러에게는 더 긴 시간이었을 것이다.
케일은 넓어진 공간에 다시 일어서서 동굴 안쪽으로 향했다. 그럴수록 그의 귓가로 소리가 들려왔다.
휘이이잉. 휘이이잉.
바람 소리였다. 바람들이 부딪치면서 나는 소리가 가까워질수록 점점 커져갔다. 이내 케일은 움막이었을 것으로 예상되는 터와 기둥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를 한 번 시선 주는 것으로 끝낸 케일은 더 안쪽으로 들어갔다.
휘이이잉.
바람 소리는 더욱 더 거세져 갔다. 쾅. 쾅. 바람이 마치 거대한 주먹처럼 동굴과 부딪치는 소리도 들려왔다. 케일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바람이라. 나중에 ‘바람의 소리’를 얻으면 이런 소리가 나려나.’
방패. 다음은 치유. 그 다음은 빠른 발을 계획했던 케일이었다. 다음 얻어야 할 고대의 힘을 떠올리며 케일은 마침내 걸음을 멈춰야 했다.
스스로 멈춘 것이 아니라, 멈춰졌다.
“이야.”
이거 상상 이상인데.
거대한 지하공간이 케일의 눈 앞에 나타났다. 그와 동시에 매서운 바람의 소용돌이가 그의 시야를 가득 채웠다.
쾅, 쾅!
바람의 소용돌이에 동굴 벽의 돌들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었다. 바닥에는 그렇게 떨어져 쌓인 돌이 수북했고 이 공간이 계속 넓어지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케일은 거대한 지하 공동과 자신이 걸어온 통로의 경계를 바라봤다. 공동 안으로 들어서면 바람에 의해 밀려날 것이다. 밀려나는 정도가 아니라, 저 바람에 휩쓸려 동굴 벽에 부딪쳐 크게 다칠 것이다.
그만큼 거센 바람이었다.
“음.”
물론 소용돌이 중심은 태풍의 눈처럼 고요할 것이다.
‘케이지의 도움이 없었다면 테일러는 불가능했겠군.’
일주일 간 고생했다던 두 콤비의 상황이 이해되었다. 하지만 케일의 입꼬리가 씰룩이며 위로 향했다. 이제부터 시간 싸움이었다.
그는 거침없이 지하 공동. 거대한 바람의 소용돌이 안으로 발을 내딛었다. 케일의 붉은 머리칼이 휘날리기 시작했고 그의 옷들이 거침없이 펄럭였다.
그와 동시에
“아, 안 된다! 다친다! 너는 엄청 약하다!”
다급하게 외치며 통로 뒤편에서 용이 나타났고.
또한 그 때,
“…어?”
용의 눈 앞에 몸을 가릴만큼 큰 방패와 그 방패 옆의 거대한 은빛 날개가 나타나 케일을 감싸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성스럽다는 말이 어울릴만큼, 빛나는 은빛 날개로 감싸인 케일은 거대한 방패가 바람을 막아주었고 방패로부터 시작되어 몸을 둥그렇게 감싼 양 날개로 안전할 수 있었다.
케일은 뒤를 돌아보았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굳은 용이 보였다.
“너, 뭐야?”
검은 용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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