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240
239화.
하지만 미소와 달리 케일의 머릿속은 어느 때보다도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서둘러야 한다.
라온의 전투 불능 상태.
케일은 늘 최악을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손에 들린 영상 통신구를 바라봤다. 아직 알베르 크로스만, 왕세자와 연결되어 있는 통신구.
케일은 로잘린과 자신의 대화를 모두 들었을 그에게 입을 열었다.
“저하.”
-…하하하-
영상 통신구에서는 웃음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알베르는 영상 통신구 너머 케일을 쳐다봤다.
드워프가, 적들이 불가사의 영역을 부수려고 한다.
대륙의 일부를 가르는 죽음의 협곡. 그 일부를 부수려고 한다.
보통이라면 적들의 행동을 미쳤다고 평할 터.
‘하지만 이미 협곡에 불기둥을 심어둔 놈에게는 통할 말이 아니지.’
알베르는 적의 스케일에 놀라기 전, 아군의 스케일에 놀라고 말았다. 그러면서도 납득이 되었다.
‘그래, 이놈은 원래 이런 미친놈이야.’
적이 부수려는 죽음의 협곡을 먼저 부수려는 놈.
그리고 그런 케일과 똑같은 생각을 한 놈.
‘그게 나지.’
알베르는 곧바로 입을 열었다.
케일의 말을 더 들을 필요가 없었다. 불기둥 다음에 로운 왕국이, 그것도 알베르가 써먹을 수 있는 패. 그것은 정해져 있었다.
-준비해 놓도록 하지. 네 신호를 기다리마. 피 좀 그만 흘리고. 돈도 많은 놈이 포션 좀 쓰도록.
“알겠습니다.”
로잘린은 태연하게 대화를 주고받는 케일과 알베르를 보며 몇 번이나 입술을 달싹였지만, 따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알베르 왕세자가 이런 성격이었던가?
그걸 떠나서, 저 둘은 너무 태연한데?
로운 왕국 땅에서 벌어진 일이 아니라서 이렇게 느긋한 걸까? 하지만 로잘린은 그런 의문을 조금도 가질 수 없었다.
지금 가장 많이 피를 흘리는 사람은 케일이었으니까.
콰앙! 쾅! 콰앙!
날개들이 끊임없이 방패에 부딪쳤다.
“아, 진짜.”
그때마다 케일은 입가의 피를 닦으며 더 진한 은빛 선을 손에서 뿜어내었다.
방패는 라온의 실드가 없음에도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아직 더 안 먹어도 되겠다.
-희생하려는 건가?
케일은 아쉬움이 느껴지는 먹보 신녀의 목소리와 짱돌의 목소리를 들으며 일부러 힘겨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에는 여유가 가득했다.
“로잘린 씨, 서두르세요. 내가 신호하는 순간 마법을 펼칩니다.”
로잘린은 마침내 달싹이던 입술로 한마디를 내뱉었다.
“…좋아요.”
그녀는 동의함과 동시에 시선을 돌렸다. 대기 중인 기사 한 명이 그 시선에 황급히 다가왔다. 로잘린은 기사에게 빠르게 지시를 내렸다.
그 지시를 듣고 있던 케일도 힘겨운 표정으로 몇 마디 더 얹었다. 그러자 로잘린은 피식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전쟁 중임에도 웃음이 나왔다.
그녀는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케일을 살짝 흘겨보았다.
“내 힘을 아주 있는 대로 다 써먹으려고 하는군요?”
“최고를 부탁합니다, 로잘린.”
로잘린은 두 손에 머문 공격 마법을 중단시켰다. 그러고는 그녀의 손이 최상급 마정석이 담긴 주머니로 향했다.
로잘린.
어릴 때 궁정 수석 마법사의 마법을 보고 마법이라는 것에 홀렸다.
그녀는 곧 스스로가 마법에 재능이 있음을 깨달았다. 그냥 서 있는 와중에도 마나가 느껴졌으니까. 이 느낌에 그녀는 모든 것을 걸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실력에 오를 때까지 낮에는 왕위 계승 수업을, 밤에는 교양처럼 배우던 마법을 잠도 자지 않고 갈고닦았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는 마법이라는 자유를 얻었다.
또한 그녀는 자유 너머에서 환상을 보았다.
용.
라온과 에르하벤.
로잘린은 그들의 마법과 수업을 모두, 두 눈으로 똑똑히 새겼다.
한계를 넘어서는 마법들.
인간의 몸이었지만 로잘린은 그 한계를 넘어서고 싶었다.
‘나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야.’
로잘린은 자신이 아주 탐욕스러운 사람임을 여실히 깨닫고 있었다.
왜냐고?
인간의 한계를 넘고 싶었으니까.
환상을 경험한 후, 그녀의 목표는 죽기 전에 그 환상에 닿는 것이었다. 왕족이라는 하나의 굴레를 탈피한 그녀에게 다시 한 번 벽을 넘어서는 일은 평생을 두고 해볼 만한 일이었다.
‘최고를 부탁합니다, 로잘린.’
로잘린 씨가 아닌, 로잘린이라 부르며 케일이 건넨 말.
그녀는 제 탐욕을 유일하게 알아챈 인간의 말을 따르기로 결심했다.
‘지금 내 실력으로는 에르하벤 님은커녕, 라온의 발끝에도 미치기 힘들다.’
하지만 수단은 정석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촤륵. 그녀의 손아귀에서 돌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마정석 주머니 안에 있던 그녀의 손이 밖으로 나왔다. 그녀는 있는 대로 마정석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녀는 수십 개의 마정석을 손에 쥐고서 뒤돌아섰다. 그리고 마법병단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기다릴게요.”
케일은 저를 향한 로잘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고, 공자님.”
“뒤에 붙어 있어.”
“네, 네.”
라크는 충혈된 눈동자로 평소와 사뭇 다른 분위기의 로잘린, 그리고 피를 흘리는 케일, 또 제 품 안에서 더 가쁜 숨을 몰아쉬는 라온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쿵. 쿵. 쿵.
라크의 심장이 점점 더 빠르고 거세게 뛰기 시작했다.
전쟁의 두려움과 공포.
키가 큰 라크의 몸은 저보다 작은 케일의 등에 가려지지 않았다. 그렇기에 케일 너머, 그의 방패에 부딪치는 존재들이 보였다. 또 하늘을 뛰노는 호족과 최한도 보였다. 그들은 위태로워 보였다.
“쓸데없는 데 시선 팔지 말고. 넌 네 할 일에 집중해.”
순간 들려온 케일의 목소리에 라크의 어깨가 멈칫했다.
내가 할 일.
케일의 뒤에 있는 것, 그리고 라온을 안고 있는 것.
라크는 다른 것들은 보지 않고 케일의 등만을 바라봤다. 라온을 안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쿵. 쿵. 쿵.
전쟁 중임에도 라크는 제 심장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렸다.
그리고 서서히 깨닫고 있었다.
심장 깊숙한 곳.
그곳에서부터 점점 차오르는 것.
두려움과 공포. 그것들과는 다른 감정이 거세게 뛰는 심장을 잡아먹을 듯 차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케일의 등을 바라보는 라크의 눈동자가 점점 붉어지기 시작했다.
케일은 이를 모른 채 방패에 힘을 쏟아부었다. 그의 표정은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져, 영 상태가 안 좋아 보였다.
“크흐흐! 그래, 계속 그렇게 막아봐라!”
곰족들은 방패에 거침없이 달려들며 웃음을 터뜨려 댔다. 그들의 목표는 시간을 끄는 것이었으니까. 그래서 오히려 이렇게 방패로 막아서며 시간을 끌어주는 것이 고마웠다.
“얼굴 꼴이 우습구나!”
입가에서 흘러내린 피로 케일의 목덜미와 제복 옷깃이 젖어들어 가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찡그린 얼굴도 곰족들의 눈에 선명하게 담겼다.
물론 케일은 연기였다.
피도 일부러 안 닦았다.
헤니투스 영지 전투 때, 얼굴에 구멍이란 구멍에서 모두 피를 흘렸을 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상당히 산뜻했다.
이를 어찌 적들이 알겠는가.
하지만 하늘을 나는 수백의 곰족들은 마냥 태연한 상태는 아니었다.
“…쉬이 부서지지 않는군.”
역시 방패는 버티고 있었다.
수백의 날개가 덤벼들어도 잠시 흔들릴 뿐 굳건했다. 마치 언제까지고 굳건하게 버티려는 성벽과 같아 보였다.
‘폭탄까지 막으려나?’
순간 곰족 몇몇은 등골이 서늘해져 왔다. 그럴 리 없음에도, 용 혼혈의 힘을 이겨낸 케일의 모습은 암 소속 곰족들이 ‘만약’을 가정하게 만들었다.
물론 케일은 성벽이 될 생각도, 계속 버틸 생각도 전혀 없었다. 그저 얼마 남지 않은 한계까지 시간을 끌다가 튈 생각뿐이다.
이를 모르는 곰족들은 케일이 끝까지 버틸 경우도 생각했다. 몇몇 곰족들이 수하들에게 목소리를 높여 지시했다.
“고래족을 무조건 막아!”
쿵. 쿵.
하늘을 날던 곰족들이 다시 땅에 내려섰다.
드워프와 곰족, 기사들이 세 존재의 앞을 막아섰다.
그 존재는 당연히 고래족이었다.
곰은 고래를 이기기 힘들었다. 체급이나 힘, 모든 것에서 밀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곰족들은 주춤하는 불굴 연합 기사, 병사들과 달리 조금은 편안해 보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곰족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광폭화를 할 수 없는 고래족은 두렵지 않지!”
땅에서 사는 곰족. 바다에서 사는 고래족.
그 차이가 고래족의 광폭화를 막았다.
고래족은 ‘물’이 있어야 광폭화가 된다. 마법으로 만든 그런 작은 물 따위가 아니라, 해일과 같은 물이 있어야 광폭화가 가능했다.
고래족은 강하다.
하지만 광폭화를 못하는 고래족은 두려울지언정 절망감을 주지는 않았다.
“하하하!”
그때 곰족들은 범고래 아치의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어깨까지 들썩이며 웃더니 두 주먹을 서로 부딪쳤다.
쾅!
맨주먹이 부딪치면서 나는 소리는 서늘했다.
아치의 눈동자가 제 앞을 가로막는 수백 명의 드워프와 곰족, 기사들에게로 향했다.
“곰 새끼한테 무시받으니까, 기분 나쁘네.”
싸가지 없기로 유명하며 질풍노도의 청소년기를 보냈던 아치. 그는 짝다리를 짚은 채로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
“되도 않는 것들이.”
그 말이 끝이었다.
동시에 시작이었다.
아치의 몸이 빠른 속도로 적들에게 향했다.
하지만 그의 몸보다 더 빠르게 앞으로 치고 나가는 존재가 있었다.
촤르르륵.
아치는 저를 스쳐 지나 앞으로 나아가는 물채찍을 보며 실소를 흘렸다. 누군가는 제 성격이 나쁘다고 하지만, 아치가 보기에는 왕족 집안인 혹등고래 수인들의 성격이 더 나빴다.
콰아아앙!
물채찍 두 개가 지나간 자리는 마치 오러가 지나간 자리처럼 부숴져 갔다. 그 공격에 놀란 불굴 연합 기사들이 뒤로 물러섰고, 동시에 마법사들이 원통 장치 앞에서 실드를 펼쳤다.
“무조건 막아! 3분만 버텨!”
드워프가 핏대를 세우며 외쳤다.
우우우웅-
원통에 점점 더 빛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법 폭탄들이 담긴 원통 안에서 조금씩 열기가 피어올랐다.
거대한 원통 두 개는 단 한 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브렉 왕국군을 향해, 건너편의 방패를 향해 있었다.
3분.
짧으면서도 긴 시간이었다.
취이이이이-
타들어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불굴 연합 기사들은 물채찍을 바라봤다. 두 갈래로 갈라진 채찍을 곰족들이 달라붙어 잡고 있었다.
“크으으!”
수인 최고의 신력을 지닌 고래. 그중에서도 차기 왕의 채찍을 잡은 곰족들은 마치 칼에 베이듯 손바닥이 쓸렸지만 이를 놓지 않고 있었다.
크르르르, 크르르. 광폭화한 곰족들의 거친 숨소리가 위티라의 채찍을 놓아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 사이로 나타난 존재가 있었다.
정확히 곰족들의 머리 위에서 떨어져 내린 것.
곰족들은 곧바로 채찍을 놓으며 뒤로 물러섰다.
콰아아아앙
아치의 주먹에 땅이 유리창 깨지듯 산산조각 나며 공중으로 비산했다.
동시에 파세톤의 검이 그 사이를 비집어 곰족들에게로 향했다.
“2분!”
시간을 외치는 드워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위티라가 일직선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쾅, 쾅!
하늘을 올려다보자 검은 오러를 뿜어내는 흑발의 소드 마스터, 그가 자유로이 비행하며 까마귀가 만든 길을 따라 곰족들의 목을 베어갔다.
찌이익. 찌익!
날개가 찢어졌다.
“크하하하하!”
자잘한 상처와 곰족의 발톱에 할퀴어진 자국들이 가득함에도 호탕하게 웃는 호족들.
호족은 흰 도복이 피로 물들어가도 아랑곳하지 않고 곰족들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곰족 하나를 꼭 붙잡아 날개를 찢어 절벽 아래로 추락시켰다.
드워프는 입술을 깨물었다.
역시 강했다. 소수의 강자들이 너무 많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도 단기전에서나 통하는 바였다.
장기전은 결국 압도적인 숫자의 존재들이 이기는 법이다.
그렇다면 장기전이 가능한 상황을 만들면 된다.
협곡을 파괴하는 것.
“1분!”
드워프가 외쳤다. 그 순간, 기사들이 뒤로 물러섰다. 기사와 초급 마법사들은 고래족이 달려들어도 뒤로 도망쳤다.
대신 날개가 달린 존재들은 어느 때보다도 격렬하게 고래족들을 막았다. 광폭화한 곰족들은 고래족 세 명에게 수로 밀어붙이며 근근이 버티고 있었다.
드워프들이 하나둘 날개를 매단 채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30!”
30초.
드워프는 날아오를 준비를 하며 건너편을 바라봤다.
케일 헤니투스.
불굴 연합 척살 1호 대상자.
방패로 겨우겨우 곰족을 막아서는 그가 보였다. 곰족의 공격을 5분 동안이나 막아내는 저 방어력.
경탄할 만했다.
하지만 이 원통 장치까지 막기는 힘들 것이다.
그의 방패가 협곡 전체를 막을 정도의 크기는 되지 않았으니까. 죽음의 협곡 절벽은 리오나성과는 비교할 수 없이 거대했다.
그중 한 군데라도 부수면 된다.
그러면 무너질 것이다.
“10!”
드워프는 숫자를 외치며 서서히 날개를 움직였다.
우우우웅. 그는 제 발밑의 원통이 잘게 떨리는 것을 느꼈다. 철을 두드릴 때 느꼈던 대장간의 불길만큼 뜨거운 열기가 다리를 타고 올랐다.
“막아! 방어 마법진을 펼쳐!”
케일의 입모양이 보였다. 어느 때보다도 크게 외치는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드워프는 실소를 흘렸다.
원통 두 개의 방향은 케일의 방패를 향해 있었다.
“3!”
고래와 맞서던 곰족들은 땅을 박찼다. 곰족 한 명은 고래족을 보며 조소를 날렸다.
“광폭화를 못하니 결국 밀리는구나!”
2!
드워프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 1초 뒤에, 폭발이 일어난다.
실소를 흘렸던 곰족은 멈칫했다.
땅에서 박차 오른 그를 쳐다보는 고래족들의 미소가 보였다.
“…뭐야?”
그는 위티라의 입모양이 보였다.
‘모자라.’
…모자라다고?
무엇이?
곧이어 하늘로 뛰어오르는 고래족이 보였다.
고래족이 빠르게 움직였다.
까마귀들을 밟고서, 가샨의 바람을 타고서 고래족들이 하늘로 향했다.
호족도, 최한도 점점 더 빠르게 하늘로 향했다.
어느새 수백 마리가 모인 까마귀들이 일제히 하늘로 솟아올랐다.
위로, 위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위로만 올라갔다.
그때 원통 위에서 숫자를 외치던 드워프가 하늘로 박차 오르며 발에 닿는 것을 찼다.
“1!”
끼이익, 쿵!
원통 두 개의 방향이 바뀌었다.
방패를 바라보던 원통의 방향이 그 아래.
브렉 왕국군이 밟고 있는 땅인 절벽을 향했다.
원통 근처에 있던 드워프와 중급 이상 마법사들이 일제히 하늘로 올라섰다.
우우우우-
원통이 울음을 토해냈다.
동시에 뜨거운 열기가 들끓었다.
마침내, 두 개의 거대한 원통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부숴라, 부숴!”
드워프들은 그 광경을 보며 희열을 느꼈다.
하얀빛 수십 줄기가 쏘아져 나왔다.
수십 개의 마법 폭탄들이 일제히 절벽을 향해 쏘아졌다.
“크하하하, 아무리 막아도 결국 다리는 생길 것이다!”
결국 거대한 진동에 절벽은 무너지리라!
불굴 연합 적군들은 이미 저 멀리, 폭발의 여파 범위를 벗어난 곳에 있었다.
화염의 드워프족은 쏘아지는 수십 개의 하얀빛을 보며 환호성을 터뜨렸다.
그 순간.
싸아아-
은빛 방패가 사라졌다.
동시에 케일은 입가의 피를 닦으며 한마디를 내뱉었다.
“공격.”
라크의 몸이 케일의 뒤를 따라 빠르게 이동을 시작했다. 케일의 발끝에 바람의 소리가 맴돌고 있었다.
그 순간, 라크는 땅이 울리는 소리를 들었다.
우우우웅-
또 다른 거대한 울음이 브렉 왕국군 진영을 뒤흔들었다.
쏘아져 오는 수십 개의 하얀빛. 마법 폭탄이 담긴 그 빛들을 향해 한 여인이 손을 뻗었다. 그녀의 뒤에서 두 마법 대대의 마법사 수십 명이 마법진에 손을 대고 있었다.
마법진의 중심에 선 로잘린, 그녀의 주위를 수십 개의 최상급 마정석이 원을 그리며 빙빙 돌았다.
주르륵. 로잘린은 입가에 흘러내리는 피를 무시하며 미소를 그렸다.
“불이여, 나아가라.”
우우우우-
마법진에서 거대한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마치 태양이 내려선 듯한 불꽃이 앞으로 나아갔다.
정확히, 수십 개의 하얀빛을 향해.
“뭐야?”
“무슨! 왜 공격을!”
“무너질 텐데!”
드워프와 곰족들이 외치는 순간, 그들은 저를 스쳐 위로 올라가는 적들을 볼 수 있었다.
최한, 호족, 고래족. 그들은 까마귀, 바람과 함께 계속해서 위로 향했다. 그래야 살 수 있다는 듯 거침없이 올라갔다.
“…무슨 일이-”
드워프는 서늘함을 느낀 순간,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하얀빛과 거대한 불이 부딪쳤다.
콰아아아아앙!
죽음의 협곡.
그곳에 죽음을 연주하는 듯한 거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하하하! 공자, 어떤가요?”
로잘린은 입가에 피를 흘리면서도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어느새 저를 들쳐 메고서 달리는 케일을 쳐다봤다.
케일은 고대의 힘인 바람의 소리를 더 사용하며, 제 뒤를 가리켰다.
로잘린은 고개를 들어 한 광경을 볼 수 있었다.
거대한 폭발.
하얀색과 붉은색들이 뒤섞인 빛의 향연.
그리고 대지의 진동이 느껴졌다.
협곡은 부서진다.
그건 피할 수 없다.
그러나 그 빛을 잡아먹는 존재가 협곡 아래에서부터 치솟아 올랐다.
케일은 안전지대에 들어선 순간,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뒤돌아섰다.
백색과 적색의 빛이 사라진 자리.
절벽이 무너지는 자리.
그 깊은 죽음의 골짜기에서부터 치솟아 오르는 불.
케일은 고룡 에르하벤과 어린 용의 대화를 떠올렸다.
‘무슨 색으로 하지? 꼬맹아, 넌 무슨 색이 좋냐?’
‘불 색 말이냐?’
‘그래. 이 몸은 연금술사보다 위대해서 색깔쯤이야 내 마음대로 할 수 있거든. 본질에 다른 색을 물들인다고 해서 불의 본질이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금 용아, 그럼 위대한 검은색 해라! 내 색이라 위대하다!’
‘싫은데. 내 마음대로 할 거다, 꼬맹이.’
콰앙. 콰아앙. 콰앙!
불 액체가 담긴 구슬들이 터져 나갔다.
거대한 불꽃이 백색과 적색의 빛을 집어삼켰다.
죽음의 협곡.
마치 죽음이 그 모습을 나타내듯.
검푸른 불꽃이 빛을 잡아먹기 시작했다.
“…하하하.”
케일은 웃음을 터뜨렸다.
검푸른 불이 하늘을 잡아먹을 듯 협곡의 일부를 뒤덮었다.
라온의 눈동자 색을 닮은 불꽃이 빛을 집어삼키고 협곡을 지배해 갔다.
용의 분노.
전쟁은 이제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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