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241
240화.
본래라면 원통에서 발사된 마법 폭탄으로 무너져야 할 협곡.
쿠구구궁-
깎아지르는 벼랑의 바위들이 무너져 내렸다.
부서진 바위들은 깊고 깊은 협곡을 메우기 시작했다.
“이, 이럴 수가-”
불굴 연합 기사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땅의 흔들림에 황급히 말에서 내려섰다. 말고삐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지만, 이도 알아차리지 못한 채 눈앞의 광경을 보며 할 말을 잃어갔다.
이는 브렉 왕국 진영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마법 폭탄을 피해 진영으로 이동하던 병사들은 폭발 때문에 납작 엎드린 몸을 일으켜 세웠다.
“저게 우리의 힘이라니-”
아군이 벌인 광경에 병사들은 손발이 떨려왔다. 몸을 일으키는 그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향했다.
케일과 그의 일행이 있는 곳으로. 지금 이 광경을 당당히 서서 마주한 이들은 그들뿐이었으니까.
수백 킬로미터의 협곡 중 일부. 단 몇 킬로미터의 협곡이 바위와 흙으로 채워졌다.
“불굴 연합의 작전은 성공했네요.”
로잘린은 적의 작전이 성공하는 것을 보면서 웃음을 터뜨렸다.
왜냐고?
무너진 벼랑, 그 영역을 잡아먹으며 솟아오르는 검푸른 불의 장벽이 눈에 담겼으니까.
로잘린의 붉은 눈동자에 검푸른 불꽃이 비쳤다.
‘역시 용은 대단해.’
무리한 마나 사용으로 속이 뒤엉켰지만 그녀는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때, 그녀의 귓가로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로잘린 씨, 이만 내리겠습니다.”
로잘린은 흠칫했다. 아직 그녀는 케일의 어깨에 들쳐 메어 있는 중이었다.
그녀는 슬쩍 고개를 돌렸다. 부들부들 떨리는 케일의 팔이 보였다.
‘…아, 이 약한 사람이-’
이 약한 사람이 자신을 들쳐 메고 달렸다는 것을 깨닫자, 로잘린은 안쓰러움과 미안함이 밀려왔다. 로잘린은 얼른 케일의 어깨에서 내려섰다.
그녀는 힘들어서 찡그리고 있을 케일을 예상하며 그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리고 멈칫했다.
지극히 평온한 얼굴은 검푸른 불의 장벽을 향해 있었다.
‘다리는 막혔다.’
수백 킬로미터에 달하는 죽음의 협곡. 그 중간에 생겨야 했던 적의 다리는 검푸른 불의 장벽으로 소용이 없어졌다.
물론 적들은 아직 남아 있는 다른 절벽에 다시 다리를 만들려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마다 절벽 곳곳에 심어둔 불기둥이 그들을 가로막을 터.
“로잘린 씨.”
“네, 공자. 이제 마법병단으로 차근차근 공중의 적들을 격추시키면 될 것 같아요.”
어느새 로잘린은 마법병단에 손으로 지시를 내리며 원거리 공중 공격 마법을 준비 중이었다. 그녀는 한층 여유로워진 마음으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기사와 병사들을 집결시켜 절벽을 따라 진을 쳐서, 적들이 다시 협곡을 무너뜨리려는 시도를 감시하고 막죠.”
이제 장기전이다.
적들의 통로는 막았지만, 반대로 이제 브렉 왕국군이 절벽 건너편의 적을 공격할 방법도 마법 외엔 마땅치 않았다. 강자들이 있었으나, 수가 적어 수십만의 병력을 이길 수는 없었다.
또한 로잘린은 최대한 아군의 전력 손실 없이 이기고 싶었다.
“장기전으로 가면 적들은 식량 보급 문제로 결국 돌아갈 거예요. 특히 북부는 봄이 되면 가장 식량난이 극심하잖아요? 브렉 왕국은 식량 수급은 문제없어요.”
“안 됩니다.”
“네?”
드물게 단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장기전은 안 됩니다.”
“공자?”
안심하던 로잘린은 다시금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평온한 얼굴의 케일. 하지만 그 눈동자에 서린 긴장감이 느껴졌다.
긴장감.
케일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어였다. 그래서 로잘린은 불안감이 밀려왔다. 그 순간, 케일은 검푸른 불기둥에서 시선을 떼었다.
“빠르게 처리해야 합니다.”
케일의 전쟁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지금부터야말로 시간 싸움.
케일은 어떤 존재 때문에 싸움을 멈출 수가 없었다. 로잘린은 듣기만 했지 경험해 보지 못한 존재.
그러나 케일은 경험해 보았다.
케일은 아까부터 준비 중이던 한 사람을 불렀다.
“메리.”
검은 로브가 들썩이며 케일 쪽을 향했다. 어느덧 하늘은 푸르스름한 빛으로 물들며 밤이 사라지고 있었다.
그러자 붉은 머리칼이 선명하게 눈에 띄었다.
“저기, 저것들.”
케일의 손가락이 가리킨 곳으로 메리의 시선이 이동했다. 불기둥 위를 날아다니는, 얼핏 당황한 것처럼 보이는 날개들.
그것들을 그녀가 눈에 담는 순간, 케일의 명령이 내려졌다.
“싹을 없애 버려.”
저것들의 싹을 없애 버려라.
“메리, 저 날개에 달린 것도 죽은 생물의 뼈다.”
아.
메리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로잘린도 흠칫 놀라며 케일을 바라봤다. 죽은 와이번의 뼈. 죽은 몸을 일으키는 네크로맨서. 로잘린의 머릿속으로 한 가지 그림이 그려진 순간이었다.
검은 로브에 숨어 있던 네크로맨서의 입가에 미소가 머금어졌다.
“알겠습니다.”
기계적인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동시에 검은 실이 메리의 손에서 뻗어 나오기 시작했다.
펄럭, 펄럭. 검은 뼈만 남은 와이번이 날갯짓을 했다. 동시에 와이번의 발이 땅을 박차 올랐다.
케일은 고개를 들었다.
날아오른 검은 와이번, 그 와이번을 향해 까마득히 높은 하늘 위에 있던 한 사람이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타닥!
와이번의 몸이 살짝 흔들렸다.
하지만 그 위에 선 사람은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흑발의 소드 마스터, 최한은 와이번의 목뼈를 움켜쥐며 검푸른 불의 장벽을 따라 다시 위로 올라갔다.
그의 곁으로 까마귀 떼가 스쳐 지나갔다. 하늘에 검은 길을 낸 수백 마리의 까마귀들. 얼기설기 얽힌 새들이 하늘에 새로운 땅을 만들었다.
그중 한 마리가 최한의 어깨에 내려앉았다.
그리고 그 입이 열리며 새 울음소리 대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케일 님의 전언이다.”
호족 주술사 가샨, 그의 목소리였다.
전령인 까마귀는 제 주인의 목소리를 전했다.
그리고 전령은 하나가 아니었다.
검푸른 불 장벽을 내려다보는, 하늘 높이 자리한 흰 도복의 호족들. 까마귀는 자잘한 상처의 피를 대충 지혈하던 그들에게도 명령을 전했다.
“적들의 날개도 죽은 자의 흔적이다. 날개를 모두 부러뜨려라.”
죽은 자의 흔적.
호족들은 그 말의 의미를 명확히 알아들었다. 그들의 시선이 불기둥을 타고 올라오는 존재, 최한의 검은 와이번에게로 향했다.
까악, 까악.
명령을 전한 검은 새들이 다시 바람을 타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최한은 그 움직임을 따라 하늘을 오르며 검을 빼어 들었다.
채앵.
검은 오러가 피어올랐다. 최한은 제 곁을 스쳐 아래로 내려가는 이들을 보았다.
고래족 세 명, 그들이 최한에게 웃어 보이며 땅으로 향했다. 범고래 아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드래곤이 만든 불은 조금 힘들어서. 땅은 우리가 맡지.”
최한은 간단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을 대신하며 더 빠르게 하늘로 향했다. 아치는 그 살벌한 모습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놈도 정상은 아냐.’
아치가 그렇게 생각한 순간, 등 뒤로 굉음이 들렸다.
쾅!
검은 오러가 공기를 갈랐다.
“크윽!”
드워프들의 몸이 절로 뒤로 밀려났다.
그들은 제 손에 들린 각자의 무기를 내려다봤다. 오러에 베인 무기들이 조각나 아래로 떨어졌다.
화르르륵.
그리고 그 잔해들은 검푸른 불의 장벽에 잡아먹혔다.
검은 오러도 섬뜩했지만 드워프들은 저 불의 장벽이 더 무서웠다.
“…이런, 이런 불꽃이라니.”
날이 사라진 도끼를 들고 있는 드워프가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계획이 망가졌다.
다리가 생겨야 할 자리에 불이 치솟아 올랐다.
화염의 드워프족이기에 더 선명하게 느껴지는 광폭한 불이었다.
저런 순수한 힘이 담긴 액체를 만들 존재가 인간 중에 있을까?
드워프들을 알 수 없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아니, 알고 있는 두려움이었다.
인간도, 드워프도, 수인도, 엘프도 만들 수 없는 순수한 불의 힘.
그 힘을 만들 수 있는 존재는 드워프들 위에 군림하는 공포의 존재뿐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물러설 수 없었다.
“…안 돼. 우리끼리 해야 돼. 이렇게 묶여 살 순 없어.”
공포를 이겨내기 위해,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해서는 안 될 짓까지 한 화염의 드워프족이었다. 그들은 날개 장치를 움직였다. 하지만 본능적인 두려움으로 손이 떨리고 있는 것은 감출 수 없었다.
호족과 소드 마스터는 합쳐도 서른이 안 된다.
반면에 하늘을 나는 불굴 연합원은 아직 수백은 되었다.
특히 드워프들의 앞을 가려주는 존재들이 아직 있었다.
콰아앙!
곰족들과 최한이 부딪쳤다.
“미친놈들! 불기둥이라니! 협곡 전체에 불을 일으킬 셈이냐!”
한 곰족이 최한에게 외치며 바삐 눈동자를 움직였다. 드워프는 불기둥과 마법 폭탄 무효화에 충격을 먹은 듯 움직임이 움츠러들어 있었다.
‘이래서 노예 새끼들 근성은 안 바뀐다니까!’
호언장담할 때는 언제고 겁을 집어먹은, 마법 장치도 제대로 못 다루는 화염의 드워프족을 빌어먹을 쓰레기 쳐다보듯 쳐다본 곰족은 다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호족들은 피를 흘리면서도 여전히 곰족들을 하나하나 노렸다.
‘미친 새끼들……!’
곰족은 입술을 깨물었다.
동대륙은 사자족에게, 서대륙은 곰족에게.
그렇게 약속하며 서대륙의 늑대족과 동대륙의 호족들을 하나하나 없앴건만, 이렇게 일이 틀어질 줄이야!
‘거기다 고래족도 한 패라니.’
동서대륙을 잇기 위해 바다는 인어에게 주고 부려먹으려고 했건만 이를 망쳤던 고래족.
이들이 나타났을 때 일이 틀어질 것을 알아챘어야 했다.
하지만 지금에서야 대강의 흐름을 파악한 곰족은 멈출 수 없었다.
그의 허리춤에 달린 영상 통신구, 그 구슬이 반짝이며 곰족 지배자의 전언을 전했다.
-싸워라. 버텨.
영악하지만 곰족은 지배자의 말을 거절할 수 없었다.
그는 중간 계급 관리자였기에 곧바로 목소리를 높여 곰족들에게 지시했다.
“까마귀들을 먼저 죽여! 호족의 발을 묶어!”
동시에 커다란 굉음이 귓가를 두드렸다.
콰아앙!
곰족은 앞을 바라봤다.
검은 오러와 싸우는 수하들이 보였다.
“…미친놈.”
검은 오러가 검푸른 불의 장벽처럼 하늘을 향해 치솟아 오르고 있었다. 순하게 생긴 얼굴과 달리 저 검은 오러는 난폭하고, 조금도 정돈되지 않았다. 검사는 오히려 일부러 더 날뛰려는 듯 오러를 마구잡이로 뿜어댔다.
‘…얼굴도 생김새만 순하고, 인상은 순한 게 아니지.’
곰족은 두 주먹을 살짝 부딪쳤다.
탕. 철갑을 낀 그의 주먹에서 쇳소리가 났다. 동시에 그의 날개가 움직였다.
그는 전장의 중앙으로 뛰어들었다.
콰아아앙!
와이번의 날개뼈 일부를 후려치는 철갑.
곰족은 고개를 돌려 최한을 바라봤다. 눈이 마주쳤다. 그는 최한에게 씨익 웃어 보이며 주위 곰족들에게 지시했다.
“와이번을 부숴라!”
공중에서의 싸움.
호족도, 소드 마스터도. 그들의 탈것을 없애면 된다.
곰족은 살짝 입술을 깨무는 최한을 볼 수 있었다. 이 방법이 맞구나. 곰족의 눈동자에 이채가 스쳐 지나가며 저를 향해 달려드는 검은 오러를 피했다.
“크윽!”
오러는 빨랐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곰족들은 와이번의 몸체를 두드렸다.
콰앙, 쾅! 쾅!
그때마다 와이번 해골은 발톱을 세우며 주변 곰족들에게 흠집을 내려 시도했다. 하지만 느렸다.
와이번의 발톱은 번번히 곰족에게 닿지 못하고, 그저 날개를 살짝 긁는 정도였다.
“크하하하! 철과 뼈로 이뤄진 날개가 그깟 발톱에 부서질 것이라 생각하나?”
곰족은 땅에 있을 네크로맨서가 와이번을 지키려 하는 행동에 웃음이 나왔다. 저 지키려는 행동 탓에 흑발의 소드 마스터가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휘청거렸다.
일석이조였다.
“오러를 쓰면 뭐 해? 피하면 끝이거늘!”
곰족은 다시 한번 최한의 검은 오러를 피했다. 그래, 여태껏 이 소드 마스터가 강한 힘을 보인 곳은 지상이었다. 바다든 땅이든 어쨌든 공중은 아니었다.
물론 저 소드 마스터가 죽어버린 수호기사 클로페와 싸운 적이 있으나, 그때는 검은 와이번의 뼈 따위가 아니라 죽은 용의 뼈를 타고 있었다.
‘공중에선 우리가 더 자유로워!’
곰족은 확신했고, 그 확신은 행동으로 이어졌다.
쿠웅, 쾅!
와이번이 흔들렸다. 흔들림 위에서 최한은 제대로 검을 쓰지도, 적을 막아내지도 못했다.
“크윽.”
최한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때마다 와이번은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몸을 비틀어 발톱으로 곰족들을 할퀴었다.
하지만 그 발톱은 번번이 곰족들의 몸에 닿지 못하고 그저 날개에 흠집만을 내었다.
“하하하! 재밌구나! 와이번과 함께 네 아군이 만든 불구덩이 속에 집어넣어 주마!”
곰족은 송곳니가 드러날 정도로 미소를 그렸다.
“글쎄.”
그 순간, 곰족은 최한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동시에 땅에 있던 메리의 입에서 작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됐습니다.”
검은 와이번의 텅 빈 동공에서 검은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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