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245
244화.
용 혼혈은 고개를 들었다. 저를 쳐다보는 담담한 눈동자. 빛에 의해 손이 타들어가도 조금의 표정 변화도 없는 최한이 보였다.
최한의 난폭한 어둠이 라온이 남긴 상처를 타고서 사정없이 용 혼혈의 내부를 갉아먹기 시작했다.
“커억, 이, 이 쓰레기가!”
공중에서 생긴 거대한 빛 화살이 최한을 향해 쏘아졌다.
콰앙!
하지만 그 빛 화살은 최한에게 조금도 닿지 못했다.
대신 하얀 뼈들이 소리 없이 바스러졌다.
메리의 검은 와이번은 하얀 뼈로 만든 제 갑옷을 소비하며 최한에게 빛이 닿지 못하도록 막았다.
용 혼혈은 와이번도 버리고 저한테 붙어 검은 오러로 상처를 갉아먹는 최한을 떨어뜨리려 몸을 뒤틀었지만 최한은 결코 떨어지지 않았다.
파지지직, 파직.
용 혼혈은 온몸에 빛을 일으켰다.
그의 몸이 환한 빛에 휩싸여 갔다.
“크윽, 이 미친놈!”
하지만 최한은 비명 소리 한번 흘리지 않았다. 오히려 차근차근 상처를 벌리고 헤집으며 어둠을 몸 안에 심었다.
용 혼혈의 눈동자가 붉게 물들어갔다. 실핏줄이 터져 충혈된 눈동자. 용 혼혈은 제 몸을 뒤집는 상극의 힘에 이를 깨물었다.
불완전하지만, 역시 불완전한 제 몸을 뒤트는 존재.
“크아아아악!”
크윽!
최한의 억눌린 신음 소리와 함께 그의 몸이 용 혼혈에게서 튕겨졌다. 그런 그를 와이번이 달려가 구해냈다.
투둑, 툭.
뼈로 만들어진 와이번의 등 위를 한차례 구르며 안착한 최한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해냈다.
아직 끝은 아니지만, 용 혼혈에게서 시간을 더 벌 수 있는 틈을 만들었다. 그는 화상을 입은 두 손으로 등뼈를 짚으며 천천히 일어섰다.
“허억, 허억, 헉.”
검게 물들은 배를 움켜쥔 용 혼혈이 보였다.
빛으로 환하게 감싸도 라온의 상처에 심어둔 최한의 어둠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저 빛 속에서도 난폭하게 움직이며 불완전한 몸을 갉아먹어 갔다.
이제 저 불완전한 몸을, 남은 이들이 힘을 모아 없애면 된다.
최한은 할 수 있다는 확신을 품었다.
그때였다.
“…웃어?”
최한의 몸이 멈칫했다.
그는 저를 쳐다보는 용 혼혈의 충혈된 눈동자를 볼 수 있었다.
“감히, 감히 인간 따위가. 불완전한 존재가 나를 보며 웃어? 응?”
파직, 파지직.
용 혼혈의 몸을 감싼 빛이 마치 격렬한 파도처럼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의 입을 타고 피가 주륵 흘러내렸다.
“허억, 헉.”
용 혼혈은 제 배를 만졌다. 격렬한 고통이 느껴졌다.
인간 따위가, 그리고 1차 성장도 못한 용 따위가 자신을 이렇게 만들었다.
가장 증오하는 두 존재가 자신을 이렇게 만들었다.
둘 중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용 혼혈. 기억이라는 것이 존재할 때부터 그는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괴물이었다.
그의 눈동자에 분노와 함께 감춰두었던 깊은 한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저 검은 머리 인간과 자신에게 상처를 남긴 어린 용.
저 둘은 용서할 수 없다.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
“…빌어먹을 것들이, 감히, 이 몸을-”
파직, 파지지직.
용 혼혈의 백금발 머리칼이 하나하나 곧추섰고, 그의 몸은 빛에 휩싸여 갔다.
최한은 저도 모르게 두 손을 꽉 쥐었다.
불길하다.
분명 상처를 입은 용 혼혈은 어느 때보다도 약해 보였는데, 이상하게 그를 함부로 건들면 안 될 것 같은 불길함이 느껴졌다.
그때였다.
까악. 까악. 까악.
까마귀들이 주술사 가샨의 지시에 반하는 행동을 시작했다.
호족과 고래족, 그들을 땅으로 보내기 시작한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해 까마귀들이 땅으로 도망을 쳤다. 고래족과 호족의 당황한 모습이 최한의 눈에 담겼다.
그 순간, 까마귀 한 마리가 최한을 향해 날아왔다.
까마귀는 입을 벌리고 말했다.
“땅으로! 최한, 땅으로 와라!”
분명, 케일의 명령일 것이다.
와이번이 급하게 땅으로 향했다. 화살처럼 쏘아지듯이, 거침없는 속도로 땅으로 향했다.
쿵. 쿵. 쿵.
최한은 심장이 뛰었다.
이건 위기감이었다.
물의 장벽도, 불기둥도 모두 없어진 협곡.
하지만 적들은 무너진 돌더미를 넘어오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최한은 고개를 돌려 제 뒤를 바라봤다.
저 위, 용 혼혈이 보였다.
그리고 핏줄이 불거져 나오는 얼굴과 손이 보였다.
쿠웅.
와이번이 땅으로 내려선 순간, 최한은 케일의 목소리를 들었다.
“폭주다.”
폭주.
그 말에 최한의 얼굴에 의문이 서리며, 시선이 케일에게로 향했다.
“…용의 폭주라니요?”
하지만 케일은 최한의 물음에 답하지 않고 하늘만 바라봤다.
까마귀들도, 호족, 고래족도 모두 그가 내려 보냈다.
쿵. 쿵. 쿵.
케일의 심장이 뛰었다.
그에게 한 존재가 오랜만에 말을 걸었다.
-용의 피가 날뛰는군.
중후한 목소리.
‘지배하는 아우라’ 힘의 주인이었다. 그에게 드래곤 슬레이어의 힘과 왕관의 존재에 대해서 알려줬던 그 힘의 주인.
그 목소리에 케일의 심장이 날뛰며, 머릿속이 터질 것처럼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용의 피가 날뛴다니.
그건 폭주밖에 없었다.
‘영웅의 탄생’ 1권.
최한과 라온이 만난 이야기.
폭주하는 어린 용에게 괴로움 대신 안식을 주기 위해 목숨을 끊었던 최한. ‘영웅의 탄생’에서는 그 용이 산 하나와 마을을 날릴 정도로 거대한 힘을 지녔다고 서술했다.
그 어린 용은 1차 성장은커녕 제대로 배운 것이 하나 없는 4살짜리 용이었다.
하지만 지금 눈앞의 용 혼혈은 그때의 라온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강자였다.
“크하하하! 다, 다 죽인다! 내가 반드시 저 세 놈은 죽인다!”
용 혼혈의 얼굴은 핏줄이 불거져 점점 더 모습이 흉측해져 갔다. 그럴수록 배를 뒤덮은 검은 오러는 더욱 커지며 더 많은 영역을 잡아먹었다.
하지만 용 혼혈은 이를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의 눈길이 케일을 향했다. 그리고 최한, 마지막으로 담요에 싸여 보이지 않는 존재를 향했다.
그는 용을 죽이는 것이 꿈이었다.
못 이룰 꿈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에 기회가 왔다. 분노와 환희. 그 모든 것들이 용 혼혈의 몸을 감쌌다.
퍼엉. 펑.
그의 주위 빛들이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서로 부딪치며 터져 나갔다.
용 혼혈은 두 손을 들었다.
하늘을 향해 들어 올린 두 손.
그의 손을 따라 공중에서 하나둘 빛 화살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카로 왕국 리오나성을 부수려고 했던 그 빛 화살.
하지만 그때와는 차원이 다르게 이글거리는 빛 화살들 수백 개가 공중에 나타났다.
“…저, 저런.”
마법사인 로잘린은 저 힘에 숨이 막혀왔다. 그녀의 손발이 떨려왔다.
용의 폭주. 그 단어에 두려움이 밀려왔다.
하지만 로잘린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는 사령관이니, 지금 당장 방도를 찾아야 했다.
고래족 아치와 파세톤은 위티라를 바라봤다. 그녀는 용 혼혈이 폭주하는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바다가 아닌 곳.
그곳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도망?
도망을 치려면-
“시간이 필요해.”
저 빛 화살이 언제라도 땅을 향해 내려꽂힐 것 같았다. 그걸 막아내며 다른 이들이 도망가게 해줘야 한다.
그게 바다를 다스리는 지배자의 의무이자 도리였다.
쿠웅. 쿵.
무거운 발걸음 소리에 위티라는 고개를 돌렸다. 검은 와이번이 최한을 땅에 내려 버리고는 날아올랐다.
그녀의 시선이 메리에게로 향했다.
네크로맨서의 생각도 위티라와 같았다.
막는다.
버틴다.
동시에 로잘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텔레포트 마법진을 가동한다! 마법사들은 실드를 펼치고, 누구든, 누구든!”
확성 마법을 펼친 로잘린의 목소리가 협곡을 울렸다.
“도망쳐라!”
그리 말하는 로잘린은 대형 실드 마법진을 준비하고 있었다. 위티라는 웃음을 흘렸다. 동시에 안타까움의 한숨을 흘렸다.
케일의 일행은 모두 알았다.
저 폭주를 막을 만한 존재가 있다는 것을.
라온.
라온이라면, 저 어린 용이라면 최소한 공격은 못해도 실드를 펼쳐 막아주리라. 리오나성에서 그러했듯이, 케일과 함께 막아줄 수 있었을 것이다.
케일 혼자서 저 힘을 막으라고 할 수 없었다.
그래서였다.
“공자님.”
라크는 케일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로잘린 누나, 메리 누나, 최한 형하고 다 같이 모여서 막아요. 그러면 될 거예요.”
쌔액쌔액. 점점 더 가팔라지는 라온의 숨소리가 라크의 귀를 두드려 댔다. 그는 꿈쩍도 안 하는 케일을 보며 그의 옷깃을 다시 잡아당겼다.
괜히 허튼 생각 할까 봐.
이 사람이 또 허튼 생각을 할까 봐 라크는 무서웠다.
그때, 라크는 평소와 같은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라크.”
그리고 저보다 작은 등이 보였다.
“네가 할 일을 알고 있겠지?”
“네. 알고 있습니다.”
케일의 뒤에서 라온을 안고 있는 것.
그걸 아는 라크에게 케일의 목소리가 이어 들려왔다.
“아마도.”
아마도라고?
뜬금없는 대답에 라크가 멈칫했을 때, 그는 고개를 들었다.
우르르르-
거대한 폭풍우가 오는 듯한 소리. 하지만 하늘엔 검은 구름 한 점 없었다. 오히려 너무 환했다.
너무 밝아서 세상의 종말이 오는 것 같았다.
수많은 벼락들이 부딪치며 하늘을 울리고 있었다.
“흐흐흐, 절대, 절대로 살려서 못 보내. 이 하찮은 버러지들!”
그 벼락의 중심에 선 자. 용 혼혈은 하늘을 향해 뻗었던 손을 천천히 땅을 향해 내렸다.
그의 눈에 도망가는 자들이 보였다. 아군이든, 적군이든, 그의 눈에는 도망가는 버러지들과 저를 막겠다고 실드와 힘을 사용하는 버러지들만이 보일 뿐이었다.
그 사이에 하나가 더 보였다.
버러지들과 다른 존재.
세계 최고의 격.
용.
담요에 싸인 용이 보였다.
용 혼혈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맺혔다.
죽인다.
저 용도 이제 하찮아진다. 자신처럼, 자신 같은 괴물이 된다. 아니, 어쩌면 괴물이 아닌 채로 죽으니 아름다운 건가? 머릿속을 채우는 생각에 용 혼혈은 웃음을 터뜨렸다.
어찌 죽어도 다른 모든 것들이 자신보다 나았다.
제일, 제일 빌어먹을 것이 자신이니까.
“크하하하하하! 다 죽어!”
두 손이 땅을 가리킨 순간, 빛들이 쏟아졌다.
수백 개의 벼락이 땅을 향해 내리쳤다.
“공자님!”
라크는 케일을 불렀다. 그 순간, 거대한 실드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벼락들을 향해 펼쳐졌다. 로잘린의 실드였다. 그리고 실드의 앞에 선 존재.
끼이이이-
검은 뼈의 와이번이 소리 없는 울음과 함께 날개를 활짝 펼쳤다.
그 난장판 속에서, 라크는 케일을 볼 수 있었다.
케일은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도망치는 병사들과 기사들, 그리고 한 명도 도망가지 않고 앞에 선 일행과 제 앞에 서는 최한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보지 않아도 느껴지는, 등 뒤의 라크와 라온을 떠올렸다.
‘아마도.’
케일은 머릿속 누군가의 물음에 답했다.
그의 물음은 지금도 들려왔다.
-희생하려는 건가?
케일은 손을 뻗었다.
콰아아앙!
와이번이 산산조각이 나며 부서졌다. 땅을 보호하듯 날개를 펼쳤던 와이번은 허무하게 검은 뼈가 바스러졌다.
콰앙, 쾅!
실드도 부서졌다.
이렇게 넓은 범위의 실드를, 로잘린은 하나 이상 펼칠 수 없었다.
그렇게 벼락이 그들을 덮치려는 순간.
사아아아아-
은빛 방패가 은빛의 양 날개를 펼치며 땅을 보호하듯 펼쳐졌다.
“으하하하! 이렇게 보니 보잘것없는 힘이구나! 용의 이름으로 숨겼던 거야! 이따위 힘으로, 인간의 힘으로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
용 혼혈은 용의 힘이 사리지고 남은 방패의 힘에 웃음을 터뜨렸다. 보잘것없었으니까, 위대한 용에 비하면 하찮았다.
확성 마법을 펼친 목소리가 협곡에 울려 퍼졌다.
“이 방패도, 너도, 네 힘의 원천도 모두 죽여주마!”
네 힘의 원천. 그건 분명 라온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케일은 입술을 깨물었다.
콰앙, 쾅! 쾅! 쾅!
계속해서 내리치는 벼락들.
“으아아악!”
“크아악!”
적군들조차 죽어가며 비명 소리가 사방을 뒤덮었다.
부서지지 않는 방패를 강화했음에도 케일은 힘에 부쳤다. 곧 방패는 부서진다.
-또 먹을까?
먹보 신녀가 그렇게 물어왔다.
하지만 케일은 이렇게 계속 방패를 펼친다고 해서 끝날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저 수백 개의 벼락에 싸울 만한 게 무엇이 있을까?
저 벼락들과 부딪치며 맞설 수 있는 힘이 있을까?
그런 힘이 있었다.
“제기랄.”
일대다에 특화된 힘.
케일 혼자 수백의 벼락과 부딪칠 만한 무언가를 만들 수 있는 힘.
짱돌 저택 지하에서 보았던 그 힘이 케일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동대륙으로 향하는 통로 가득, 수많은 몬스터들을 죽였던 석창들.
그 석창들이 저 벼락과 부딪친다면?
벼락은 하늘에서 터지지 않을까?
빛. 그 상성에 최한도, 메리도, 고래족도 맞설 수 없다.
로잘린과 호족들은 저 용을 이기기에는 무리를 너무 많이 했다. 잘못하다가 죽으면 안 된다.
“공자님-”
제 옷깃을 잡아당기는, 덩치만 더 큰 어린놈의 손힘.
“케일 님, 피가, 그만, 그만하시고 도망가요!”
최한의 목소리.
쌔액쌔액, 라온의 더 가빠지는 숨소리. 정신을 잃은 라온을 데리고 저놈을 피해 어디까지 도망갈 수 있을까? 에르하벤이 오기 전까지 버틸 수 있을까?
저놈은 속성이 빛이라 이동에도 특화되어 있는데?
케일은 심장의 활력을 떠올렸다. 방패에 먹혔지만, 아직 존재하는 힘. 그 힘 덕에 케일은 웬만하면 죽지 않는다. 아파도 금방 낫는다.
“최한.”
“네, 케일 님!”
“내 뒤로 가.”
“…네?”
케일은 움직이지 않는 최한을 지나쳐 앞으로 걸어갔다. 그는 뒤에 따라오는 라크와 그 품 안의 라온을 느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서서히 빛을 잃어가는 은빛 방패 너머 용 혼혈을 바라봤다.
“빌어먹을 새끼.”
욕이라도 해야 편했다.
케일은 제 머릿속에 들려오는 물음에 입을 열었다.
-희생하려는 건가?
모든 것을 다 희생할 생각은 없다.
케일 헤니투스는, 김록수는 안다.
사람들이 돈을 벌고, 권력을 쥐고, 자신만의 보금자리를 가지려 늘 숨 가쁜 삶을 버티며 살아가는 이유가 희생하지 않기 위함임을.
나 자신을 희생시키지 않기 위해, 혹은 내 사람을 희생시키지 않기 위함임을 안다.
하지만 또한, 케일 헤니투스는 안다.
“…공자님, 도망가야 돼요.”
쌔액, 쌔액.
내가 이 둘의 어른이다.
보호자다.
책임을 졌으면,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
짱돌의 힘이 필요하다.
케일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희생하려는 건가?
“그래.”
그가 처음으로 짱돌의 물음에 답한 순간이었다.
케일은 멈칫했다.
희생을 준비한 그에게, 아플 준비를 마치고 싸울 준비를 한 그에게.
짱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희생하겠다는 케일의 대답에, 짱돌도 처음으로 답했다.
-내가 너를 지켜주마.
뭐?
케일은 제 몸을 울리는 진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지키는 것은 나의 사명.
짱돌의 주인은, 홀로 지하 공동 저택에서 여생을 보냈던 그는 한 가지 한이 남아 있었다.
수많은 이들을 지켜오며 살아왔던 그.
약자들을 찾아 보호했던 그는 수많은 이들을 지켰지만 대신 다른 존재들은 보호하지 못했다.
-내 동료들은 늘 제 목숨을 희생하며 앞서 싸웠다. 나는 그들을 지키지 못했다.
그는 동료들을 지켜주지 못했다.
그들은 희생하며 싸우다가 모두 그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나는 이제 희생하려는 자들을 지키고 싶다.
케일의 머릿속을 울리는 중후한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도 단단했다.
마치 바위와 같은 목소리.
-그것이 단 하나 남은 나의 소원.
케일은 제 발밑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평생 무언가를 지키며 살아왔던 사람.
그 사람이 지녔던 힘, 바위의 본질.
땅.
제 몸을 내어주며 이 세계의 모든 생명체들이 살아갈 곳을 만들어주었던 존재.
-지키기 위해 파괴할 것이며, 지키기 위해 나는 너의 앞에 설 것이다.
땅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