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246
245화.
벼락. 비. 바람.
자연 속에서 땅을 부수려는 존재는 많았지만 땅은 결코 부서지지 않았다. 가루가 되어도, 진흙이 되어도 땅은 제 위의 모든 존재들을 받칠 만큼 강인했다.
그 땅이 움직였다.
지진과는 달랐다.
하지만 모두가 땅이 이상함을 느꼈다.
가장 먼저 이를 느낀 사람은 라크였다. 케일의 가장 가까이에 있던 소년. 그는 제 발밑이 얕게 진동하는 것을 느꼈다.
벼락이 내리꽂힌 땅이 격렬하게 진동하는 것과는 달랐다. 얕게, 아주 미세하게, 땅이 소리를 냈다.
그리고 그 진동이 시작된 곳을 향해 라크의 시선이 움직였다.
케일 헤니투스, 그가 서 있는 발밑에서부터 진동이 시작되었다.
곧 라크의 충혈된 눈동자가 크게 뜨였다.
“으윽!”
케일의 몸이 휘청였다. 잘게 떨리는 지표면을 밟고 있는 케일의 발이 살짝 흔들렸다.
“고, 공자님!”
라크는 놀란 마음에 손을 뻗었다. 하지만 앞으로 허리를 숙이며 휘청인 케일에게 손은 닿지 못했다.
라크는 허공을 휘젓는 손을 다시 움직여 케일의 어깨를 잡으려 했다.
그 순간이었다.
콰아앙!
방패를 두드리며 났던 소리.
공중에서 들려야 할 그 소리가 너무나도 가까이에서 들려왔다.
라크는 일순간 피부 위로 소름이 돋아났다. 그의 시선이 소리가 들린 쪽으로 향했다.
“으아악! 서, 서둘러!”
“방, 방패가 부서졌다!”
…부서져?
방패는 부서지지 않는다. 부단장 힐스만이 영상통신으로 그 말이 유명해졌다며 라크에게 웃었던 것이 떠올랐다.
죽음의 협곡. 그곳의 겨울밤은 바람이 너무 불어 꼭 사람의 울음소리가 밤새 들리는 것만 같은 곳이었다.
그곳에서 보고를 위해 간간이 부단장 힐스만과 영상통신할 때 들었던 케일 일행의 승리 이야기는 라크의 심장을 뛰게 만들었다.
그때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이 방패 이야기였다. 부서지지 않은 방패.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괜히 심장이 뜨겁게 꽉 차올랐다.
그런데 그 방패가 부서졌다고?
라크의 시선이 공중으로 향했다.
콰아아앙!
벼락 하나가 땅을 향해 내리꽂혔다. 텔레포트 마법진으로 이동하는 사람들의 걸음이 빨라졌다. 비명과 고함으로 뒤덮인 전장이 보였다.
그리고 벼락이 꿰뚫고 지나간 자리.
은빛 방패의 일부가 부서졌다.
콰앙! 쾅! 쾅!
수백의 벼락이 내리치는 곳에 펼쳐진 방패.
은빛 방패 곳곳에 금이 가고 있었다. 곧, 부서진다.
그 사실이 라크의 머릿속을 꽉 채웠다.
쾅!
라크는 고개를 들었다.
바로 머리 위. 고개를 들자마자 보이는 은빛 방패 너머에서도 벼락이 방패를 부수고 있었다.
쩌저저적-
방패에 실금이 가기 시작했다.
“마법병단은 실드를 펼쳐라!”
“아치, 파세톤. 사람들을 옮겨!”
로잘린과 위티라의 다급한 외침. 그 와중에도 점점 더 강하게 떨리는 대지. 라크의 심장이 점점 거세게 뛰기 시작했다.
그 순간.
쩌저적!
머리 바로 위에서 방패가 깨졌다.
라크는 방패를 부수고 들어오는 환한 빛을 보았다.
심장이 미칠 듯이 뛰었다.
저 벼락이 내리치면, 그러면-
라크의 머릿속으로 순간 두 사람이 스쳐 지나갔다.
자신이 해야 할 일.
케일의 등을 보는 것.
라온을 안는 것.
그 두 가지.
그게 정말 내가 해야 할 일일까?
두려움과 공포 사이에서 뛰고 있던 심장이 조금씩 다른 뜀박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에도 라크와 케일, 라온을 향해 벼락이 내리쳤다.
라크는 심장이 뛰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본능이었다.
그러나 라크보다 더 본능에 따라 움직인 사람이 있었다. 툭. 라크는 제 어깨를 밟고 공중으로 올라가는 사람이 보였다.
라크의 입이 열렸다.
“형!”
최한, 그의 검을 휘감은 검은 오러가 벼락과 부딪쳤다.
빛의 정수가 담긴 벼락.
벼락과 부딪친 완전하지 않은 어둠은 순식간에 바스러졌다.
“크윽!”
최한은 오러를 부수는 강력한 힘에 저도 모르게 튕겨 나왔다.
‘이런 힘이라니!’
폭주하는 용 혼혈의 힘은 최한의 어둠을 훨씬 더 상회하는 강력한 힘이었다. 최한은 벼락을 없앨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안도했다. 그는 튕겨 나가면서도 벼락의 방향을 틀었다.
콰아앙!
벼락은 아무도 없는 바닥에 내리꽂혔다. 하지만 최한은 마냥 그 모습을 편안히 지켜볼 수 없었다.
쩌저저적.
방패 곳곳이 부서진다. 그 사이로 벼락들이 들어선다. 그는 다시금 검을 고쳐 쥐었다. 케일은 허리를 숙인 채 일어서지 못하고 있었다.
‘괴로우실 거야.’
방패가 부서지는 반동은 모두 케일에게로 갈 터. 최한은 다시금 몸을 움직였다. 방패를 뚫고 케일과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내리꽂히는 또 하나의 벼락. 최한은 그 벼락을 향해 다시 검은 오러를 휘둘렀다.
부술 수 없다면 방향이라도 틀어야 한다.
콰앙!
검은 오러가 부서지며 굉음이 터졌다. 최한은 또다시 몸이 튕겨져 나가며 벼락 하나의 방향을 틀었다.
그때였다.
“언제까지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
아.
최한은 순식간에 자신을 지나쳐 땅으로 내리꽂히는 벼락이 보였다. 용 혼혈의 기이한 웃음소리. 제 곁을 지나가는 열기.
최한은 튕겨 나가는 몸을 다시 비틀었다. 저 벼락의 방향을 틀어야 한다. 그는 계속해서 검은 오러를 일으켰다.
“라크!”
그는 벼락을 보고 몸이 굳은 동생이 보였다.
“도망쳐!”
최한은 핏대를 세우며 외쳤다.
그러나 그 순간, 최한의 눈동자가 커졌다.
라크는 도망가지 않았다.
라크는 벼락을 보고 몸이 굳은 것이 아니었다.
그는 최한을 보느라 움직이지 못했다. 망설임 없이 벼락과 싸우는 형의 모습이 라크의 심장을 거세게 두드렸다.
공포와 두려움에 가려져 있던 붉은 심장을 최한의 검이 부수기 시작했다.
쿵. 쿵. 쿵.
미칠 듯이 뛰는 심장.
그 심장에서 뿜어져 나온 피는 늑대의 피였다.
짐승의 본능이 라크의 몸을 점점 거세게 두드렸다.
그리고 마침내, 부서진 방패 너머에서 웃고 있는 용 혼혈의 얼굴과 이쪽으로 내리꽂히는 벼락을 본 순간.
쿵!
늑대의 심장은 두려움과 공포라는 족쇄를 부쉈다.
동시에 인간 라크의 머릿속에 한 가지가 떠올랐다.
‘내가 할 일은!’
소년은 더 이상 명령이 아닌, 스스로 자신이 할 일을 떠올렸다. 깊은 수면 아래 잠들어 있던 그의 의지가 말해주었다.
내가 할 일.
‘지킨다!’
최한과 메리의 와이번들이 보였다.
벼락도 보였다.
그러나 라크는 벼락을 등졌다. 그의 몸이 순식간에 허리를 숙인 케일을 낚아챘다. 그리고 제 몸으로 라온과 케일을 벼락으로부터 숨겼다.
우리 가족은 다치면 안 된다.
늑대의 본능이 인간의 생각과 일치했다.
그 순간이었다.
나를 버리고 우리를 택한 존재의 몸이 변하기 시작했다.
“크윽!”
점점 더 강하게 진동하는 땅처럼, 라크의 내부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내가 할 일은.
내가 할 일은!
그 말만을 되뇌는 소년의 메마른 몸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최한은 그 광경이 선명하게 보였다. 달려오던 케일 일행은 저도 모르게 눈을 크게 떴다. 라크의 상태를 알고 있던 최한의 입이 열렸다.
“…광폭화가!”
메마른 몸이 급속도로 팽창하기 시작했다.
이전 첫 광폭화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빠른 속도로 그의 몸이 달라져 갔다.
키가 더 커졌으며 메마른 몸에 근육이 생겨났다. 동시에 그의 손과 발에 날카로운 손톱이 자라났다.
푸른 늑대족은 광폭화하면 털의 빛깔이 검푸른색이었다. 첫 광폭화 당시 광폭화한 늑대족 라크의 몸을 덮은 털도 검푸른색이었다.
하지만 라크의 몸집이 이전 광폭화 때와 달리, 광폭화한 호족의 덩치를 넘어서는 순간.
“이런-”
주술사 가샨이 그 덩치에 놀라는 동시에 라크의 몸을 덮기 시작하는 털의 빛깔을 보고 탄성을 흘렸다.
검푸른 털이 아니었다.
빛난다.
라크의 회색 머리칼이 얼룩을 벗어던지듯 점점 더 빛나기 시작했다. 은빛의 머리칼이 자라나며 은빛의 털들이 그의 몸을 덮기 시작했다.
동시에, 은빛에 푸른빛이 머금어졌다.
푸른 늑대족.
마치 밤과 같던 검푸른 빛깔을 벗어던지고 새벽을 맞이한 듯, 푸르스름한 은빛이 머물기 시작했다.
나를 벗어던졌기에 라크는 새로운 모습으로 광폭화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제 모습에 시선을 두지 않았다.
라크는 호족보다 거대해진 몸을 웅크렸다.
곧 벼락이 떨어진다.
최대한 땅에 붙어 웅크리며 벼락을 등졌다. 그리고 제 몸으로 담요에 감싸인 검은 용과 케일을 숨겼다.
라크의 충혈된 눈동자가 본래의 색을 찾아갔다. 그의 거대하고 날카로워진 손톱이 땅에 박혔다.
도망치지 않기 위함이었다.
본래의 색을 찾은 눈동자에는 희미한 기쁨이 맺혀 있었다.
찾았다.
내가 해야 할 일을 이제야 찾았다.
라크는 고개를 숙이고 있던 케일이 천천히 고개를 드는 것을 보고 희미한 미소를 그렸다.
그는 보고 배운 것이 이런 것밖에 없었다.
푸른 늑대족,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죽어가던 부족 어른들, 그리고 저에게 숨으라고 말하던 족장이자 삼촌.
저를 구해준 최한과 로잘린, 그 뒤에 만난 케일. 그들과 함께하며 본 게 이런 것뿐이었다.
그렇기에 라크는 찡그린 얼굴로 저를 쳐다보는 케일에게 미소를 지었다.
“공자님, 괜찮습니다.”
벼락 따위.
자신감이, 확신이 생겼다.
나는 강하다.
더불어 할 수 있다.
“라크-”
일그러진 케일의 얼굴이 보였다. 동시에 피로 범벅이 된 몸도 보였다. 본인이 희생하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아 하면서 다른 이의 희생에는 이런 반응인 그가 우스웠다.
“괜찮습니-”
“아니.”
케일의 짜증 가득한 목소리에 라크는 멈칫했다. 흉폭해진 얼굴과 달리 순박한 소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동시에 예민해진 감각이 한 가지 변화를 알아차렸다.
“…어?”
등 뒤에서 벼락과 다른 거대한 힘이 느껴졌다.
그걸 깨달은 순간이었다.
라크는 케일이 한 손으로 라온 포대기를 안으며 다른 한 손으로 제 얼굴을 들이미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덤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좀 비켜봐라.”
“…예?”
뭉개진 발음과 함께 라크의 볼은 케일의 손에 의해 한쪽으로 들이밀어졌다. 그 순간, 라크는 거대한 폭발음을 바로 위에서 들을 수 있었다.
콰아아앙!
라크는 돌려진 얼굴 덕에 폭발 광경을 보았다. 그의 입이 이전과는 다른 의미로 벌어졌다.
투둑. 투둑. 하늘에서 무언가가 떨어져 거대해진 그의 몸을 건드리고는 땅에 떨어졌다.
“…돌멩이?”
땅으로 떨어지는 것은 돌멩이였다.
라크는 벼락과 부딪치는 거대한 석창을 보았다.
벼락은 공중에서 석창과 함께 터졌다.
“역시 애들은 빨리 큰단 말이지.”
라크는 제 머리를 쓰다듬고 자리에서 일어서는 케일이 보였다. 그 모습에 라크는 땅이 진동하기 시작하던 때를 떠올렸다.
방패가 약해졌을 때.
그때부터 땅이, 대지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설마?’
대지가 진동한 이유가?
하지만 라크는 그 물음을 케일에게 던질 수 없었다.
쿠구구구구궁-
폭발음과는 다른, 사람들의 발걸음을 붙잡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의 진원지를 향해 사람들의 시선이 황급히 이동했다. 그리고 그들은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마주해야 했다.
땅이 들썩였다.
아니, 정확히 말해 무너진 죽음의 협곡 일부가 들썩였다.
절벽이 무너지며 수많은 잔해로 뒤덮인 곳.
그리고 하나둘, 어떤 물체가 그곳에서부터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이건-”
폭주하던 용 혼혈의 벼락들이 잠시 멈췄다. 폭주하는 이의 충혈된 눈동자가 한 광경을 눈에 담았다.
하늘을 뒤덮은 벼락들.
그 벼락들을 향해 움직이는 거대한 존재들.
마치 땅에서부터 하늘로 쏘아지는 운석들처럼.
땅이, 돌들이 수십, 수백 개의 창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 창의 날카로운 끝은 정확히 벼락들을 겨냥했다.
“푸하하하! 이런 힘을, 힘을 숨겨왔단 말이지! 어?”
피를 토해내는 것처럼 용 혼혈은 미친 듯이 웃어대다 한 사람을 노려보았다. 창은 한 사람을 중심에 두고 벼락을 노렸다.
마치 그 사람을 수호하는 기사처럼, 석창들이 땅에서 치솟아 올랐다.
그 사람, 케일 헤니투스를 향한 용 혼혈의 얼굴은 일그러지다 못해 불거진 핏줄로 점점 더 흉폭해져 갔다.
일행도 케일을 보며 걸음을 멈춰 세웠다. 라크도 케일을 쳐다보며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여기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이야, 무슨 이런.’
케일 헤니투스.
그는 멀쩡해진 속과 고픈 배를 느끼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짱돌이 너무 센데?
…이래도 되나?
케일은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그의 입꼬리는 점점 씰룩이며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쌔액쌔액.
이전보다 뜨거워진 라온의 체온이 느껴졌다. 성장통이 점점 더 심해지는 것 같았다. 케일은 이런 라온과 저를 죽이겠다고 설쳐대던 용 혼혈 놈을 쳐다봤다.
그 순간, 땅의 진동이 멈췄다.
케일은 확장된 제 그릇을 느꼈다. 짱돌의 힘을 사용하는 순간, 몸의 그릇이 커졌다. 그리고 또 하나, 케일은 제 품에서 라온처럼 점점 뜨거워지는 존재를 느꼈다.
그 순간, 머릿속에서 짱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희생하지 마라.
우우웅.
케일은 제 품 안에서 진동하는 물건을 느끼며 용 혼혈을 바라봤다. 저를 쳐다보며 웃는 미친놈.
“…죽이긴 누굴 죽여?”
본능적으로 케일은 발을 굴렀다.
쿵!
그의 발이 땅을 내려치는 순간, 땅에 큰 울림이 퍼졌다.
“가라.”
석창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땅이 만든 수백 개의 창들이 하늘을 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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