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251
250화.
용이 죽었다.
살해당했다.
그 사실을 듣는 순간, 케일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대화가 있었다. 에르하벤은 케일이 드래곤 슬레이어와 드래곤의 관계를 모를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클로페 세카. 정보를 얻기 위해 수호기사를 취조했을 때. 그때 클로페와 나눴던 대화가 다시 한번 케일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쿨럭, 가짜로 만든 드래곤 슬레이어라고 합니다. 커헉. 또, 그자와 불굴 연합에 함께하는 암의 수뇌부에는 마법사와 힐러가 있습니다.’
‘이백여 년 전 동대륙에서, 크윽, 가장 최근에 죽었던 고룡을 먹고 성장한 자라고 합니다.’
흩어져 있던 정보들이 조합되며 케일의 머릿속이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백여 년 전, 동대륙에서 가장 최근에 죽은 고룡.
케일은 그 말을 듣고, 고룡이 자연적으로 죽었을 거라 생각했다. 왜냐면 가짜 드래곤 슬레이어는 취조에서 본인이 아직 드래곤을 죽여본 적이 없다고 말했으니까.
“에르하벤 님.”
케일은 천천히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들을 정리하며 질문을 던졌다.
“죽은 그 드래곤 님이 동대륙에서 가장 나이가 많으십니까?”
“그래. 동대륙에서는 그 녀석이 가장 나이가 많았지.”
“…안 본 지는 얼마나 되셨습니까?”
“음, 얼마 안 되었지. 한 이삼백 년?”
그 용이 맞다.
케일은 손을 들어 눈가를 쓸어내렸다. 처리해야 할 일이 더 늘어나고 있음이 느껴졌다.
하지만 가장 급한 문제는 다른 일이었다.
“라온은 성장기인 겁니까?”
쌔액, 쌔액.
아이의 열에 가득 찬 숨소리가 적막한 천막을 울렸다.
검은 용은 가쁜 숨과 함께 이전보다 더 뜨거워진 몸으로 숨을 쉴 때마다 하얀 김을 토해냈다. 새벽이 지나고 아침이 되어 따뜻해지는 주변과 달리, 라온만은 추워 보였다.
케일은 투박한 손길로 라온의 뜨거워진 이마를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오늘 새벽부터 이렇게 열이 나며 몸에 힘이 없습니다. 열은 점점 높아지는 것 같고, 정신을 잃은 상태입니다.”
“정신 안 잃었다.”
머리를 쓰다듬던 손길이 멈췄다.
정신을 안 잃었다고?
케일은 눈을 감고 있는 라온을 쳐다봤다. 분명 눈도 못 뜨고 말도 못 했는데, 다 들렸던 건가? 케일의 미간에 주름이 한없이 깊게 파였을 때.
“비켜봐.”
케일은 에르하벤이 축 늘어진 라온을 들어 올리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에르하벤은 마나가 맴도는 손으로 어린 용의 몸을 다독이다가, 천천히 자신의 이마를 검은 용의 작은 이마에 대었다.
쿵.
쿵. 쿵.
어린 용의 심장박동이 느껴졌다.
동시에 라온의 목소리가 그에게는 들렸다.
어서 눈을 뜨고 싶다!
어서 나도 함께하고 싶다!
여섯 살의 소리 없는 외침이 작은 몸 안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라온은 지금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1차 성장이 맞아.”
용은 총 세 번 성장한다.
1차 성장 때, 용은 몸을 새로이 구성하며 성장할 발판을 만든다. 그래서 외양적 변화는 없으나, 내부는 격이 다른 존재가 된다.
그리고 2, 3차 때 몸집이 급격하게 커지며 지배자의 풍모를 갖춘다.
그 1, 2, 3차의 성장기를 모두 겪은 고룡은 묘한 표정으로 라온을 바라봤다.
‘이 꼬맹이가 왜 성장을 하게 됐지?’
그동안 꽉 막혀서 이뤄지지 않았던 성장이 진행됐다. 그 이유가 궁금하면서도, 점점 열을 뿜어내는 어린 용의 모습에 그는 한마디를 내뱉었다.
“꽤 깊은 성장통을 겪을 것 같군.”
보통 1차 성장은 최소 일주일이었다.
“1차 성장 때 성장통을 오래, 심하게 앓을수록 강한 용이 되지.”
그의 예상이 맞다면 라온은 꽤 오랫동안 앓거나, 혹은 아주 빠르게 이겨내든가, 그 두 가지 중에 하나만 있을 것 같았다.
원래 남들과 다른 존재는 성장에서도 독특한 면을 드러내는 법이니까.
에르하벤은 검은 용의 얼굴에 맺힌 땀을 닦아냈다. 그 순간, 케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참 세상은 썩었습니다. 아프면서 크는 게 무슨 소용이라고.”
케일은 용의 성격들이 하나같이 괴팍한 이유를 적어도 하나는 알 수 있었다.
아프면서 성장하는 게 뭐가 좋은 일인가.
케일은 썩 달갑게 느껴지지 않았다. 안 아프고 천천히 크면, 그게 최고 아닌가? 어차피 오래 사는 용생인데, 좀 느리게 크면 어떤가?
“하하하-”
에르하벤의 웃음소리가 천막을 가득 채웠다. 그는 이내 웃음을 삼키며 라온을 다시 침대 위에 올려놓았다.
“지금 우리가 딱히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다만 옆에서 위험에 노출되지 않게 보호해 주면 돼. 또 깨어났을 때 며칠 편히 쉴 수 있는 보금자리를 만들어주면 되고. 뭐, 이 꼬맹이에게는 다 있는 거지.”
떨떠름하다 못해 불만이 가득한 케일의 표정이 보였다.
하지만 에르하벤은 케일에게 더 이상 말해주지 않았다.
용의 성장은 스스로와의 싸움이다. 이 작은 몸 안에서 수많은 충돌이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또한 용의 성장통은 제가 짊어질 것들과의 싸움이기도 하지.’
왜 용은 본성이 이기적인가.
그건 어쩌면, 덜 아프기 위한 스스로의 보호막일지도 모른다.
혼자만을 짊어지는 게 가장 덜 아프고 편하니까.
하지만 에르하벤이 본 이 꼬맹이는 희한한 용이라, 곁에 많은 관계가 쌓여 있었다.
그것이 짐이 될지, 혹은 보호막이 될지. 그것은 이 용의 성장을 보면 알 수 있을 터.
“…어쨌든 문제는 이게 아니야.”
음.
케일은 침음을 흘렸다.
에르하벤의 눈동자는 백금색을 띠는 찬란함을 머금고 있음에도 어둡게 가라앉아 있었다.
용 살해자.
그 존재를 향한 분노이리라.
케일은 머릿속이 복잡해져 왔지만, 이내 자리에서 일어섰다.
순간, 케일과 고룡은 동시에 입을 열었다.
“가죠.”
“너 어떻게 살아 있지?”
…음?
“…네?”
케일은 진심으로 당황했다. 에르하벤은 다 듣고 있을 라온의 눈 감은 얼굴을 힐끗 보다가 케일에게로 거침없이 걸어갔다. 그리고 그의 팔을 잡아 들었다.
“왜 살아 있냐 이 소리다.”
“…제가 살아 있으면 안 됩니까?”
이건 또 무슨 황당한 소리야?
케일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고룡이 처음으로 불경하다 평할 만한 눈빛을 보냈다. 하지만 그는 이내 이어지는 행동에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 무슨!”
에르하벤의 손가락에 마나로 된 작은 칼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칼이 케일의 팔을 베었다.
사각-
검은 제복과 그 안의 셔츠까지, 날카로운 마나의 칼에 순식간에 베여나갔다. 그 광경에 케일은 기함을 토해냈다.
“이 미친- 어?”
탕!
딱딱한 것들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케일은 마나 칼과 제 팔을 번갈아 바라봤다. 팔이 멀쩡했다. 케일의 팔이 딱딱한 소리를 내며 마나 칼을 튕겨냈다.
‘이게 무슨 일이지?’
케일의 동공이 흔들렸다.
내 몸이 언제 이렇게 되었지?
아무런 감각도 없었는데?
너무 멀쩡했는데?
케일은 희멀건 제 피부가 딱딱해져 있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 다른 이들도 전혀 알 수 없었다. 라온이라면 알았겠으나, 라온은 지금 그럴 처지가 아니었다.
그 순간, 에르하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위의 힘이군.”
바위?
무서운 짱돌이 케일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짱돌의 힘을 쓰고 케일의 그릇은 확장되었다. 스스로가 느껴질 정도였다.
그래서 오히려 몸이 더 안정화된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나?
“케일 헤니투스, 물의 힘을 너무 많이 썼어.”
에르하벤의 굳은 표정과 목소리에 케일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지배하는 물.
그 불안정한 힘을 이번에 많이 쓰기는 했다.
“네가 가진 재생의 힘이 불안정한 물이 일으키려는 충돌을 막아냈고.”
에르하벤의 시선이 케일의 목깃으로 향했다. 피 특유의 비릿한 냄새가 맡아졌다.
짱돌의 힘을 얻기 전, 심장의 활력이 다른 속성의 충돌을 막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원래 있던 물의 힘은 사라지는 중이기에 균형이 무너지고 있었다.
“지금 보니 네가 가진 바위의 힘이 네 몸을 보호하고 있군. 아직 바위의 힘을 사용한 후 느끼는 반동은 없었지?”
케일은 침묵으로 긍정을 표했다.
불벼락을 썼을 때도, 방패를 썼을 때도, 그는 반동으로 피를 토했다.
하지만 바위는 그렇지 않았다. 케일은 그저 이 바위가 자신을 지킨다고 해서 아무 일이 없는 줄 알았다.
‘…지켜?’
케일은 짱돌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지키기 위해 파괴할 것이며, 지키기 위해 나는 너의 앞에 설 것이다.’
파괴하는 힘은 석창이었다.
그렇다면 자신의 앞에 서는 힘은 무엇이지?
케일의 시선이 에르하벤에게로 향했다. 고룡은 평소처럼 희멀겋고 부실해 보이지만 위험을 튕겨내는 케일의 팔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아직 바위의 힘이 너를 감싸고 있다. 네 몸이 터지지 않은 건 바위 덕분이지.”
에르하벤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의문이 하나 해결되었다.
“돌기둥 통로 안에 어떻게 인간이 들어갈 수 있었나 했더니. 외부의 힘과 내부의 충돌을 차단할 수 있으니 통로에 들어가는 것이 가능했군.”
짱돌 저택에 있는 돌기둥 통로. 그곳에 어떻게 인간인 짱돌의 주인이 들어갔는지 궁금했다.
그 해답은 이 바위와 같은 피부에 있었다.
에르하벤은 진심으로 강한 의문이 생겼다.
‘…무서운 짱돌. 그 힘의 주인이 누구지?’
누구이길래, 공격과 방어 모든 방면에서 강한 힘을 지녔단 말인가.
‘인간이 맞나?’
고룡은 자신이 태어나기도 훨씬 전인 고대를 떠올렸지만, 이내 그 생각을 지워냈다. 드래곤 슬레이어와 용 혼혈, 라온. 이 셋 때문에 급히 돌아온 고룡은 그보다 더 급한 일을 마주했다.
“케일 헤니투스. 살고 싶다면 물을 찾아야 돼.”
심판하는 물.
그 고대의 힘이 케일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동대륙에 있는 것만 알 뿐, 도저히 행방을 알 수 없는 힘.
이제는 그 힘을 찾아야 할 때가 왔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어진 에르하벤의 목소리는 잔인하리만큼 냉정했다.
“기한은 3일이다.”
네 몸이 유지될 수 있는 시간은 3일이다.
그 뜻을 품은 말이 천막 안에 울려 퍼졌다.
꿈틀꿈틀.
어린 용의 작은 앞발의 발가락 하나가 움찔거렸다. 검은 용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온갖 힘을 다 쓰는 듯 얼굴은 점점 더 급박해져 갔고, 그럴수록 라온의 체온은 상승했다.
에르하벤과 케일은 긴박한 상황에서 서로를 보며 대화를 하느라 다른 것들은 미처 보지 못했다.
짊어져야 할 것이 많은 용의 성장기는 힘들다.
하지만 어린 용은 홀로 짊어지는 법보다 같이 짊어지는 법을 배운 아이였다.
언제 꿈틀거렸냐는 듯 어린 용의 몸은 다시 조용해졌지만, 그 안은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중이었다.
에르하벤은 담담하기만 한 케일의 모습에 다시 입을 열었다.
“네 몸은 그게 한계야.”
“한계 뒤에는요?”
고룡은 잠시 말을 멈췄다.
그는 케일처럼 고대의 힘을 많이 모은 인간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두 속성 이상의 힘을 지닌 인간들이 죽었다는 것은 알았다.
고룡은 세월의 끝자락이 되어서야 깨달은 진리가 하나 있었다.
생명은 죽는다.
동시에 그는 세월의 끝이 다가올수록 비로소 깨달은 본능이 있었다. 뛰어난 이성을 지닌 용으로서가 아니라, 생명체로서 가지는 본능.
그는 그 본능을 내뱉었다.
“죽게 놔둘 생각은 없다.”
그 말을 한 순간, 고룡은 케일의 입가에 지어지는 미소를 보았다.
“방법이 있군요.”
하!
탄성이 에르하벤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역시 이 박복한 놈은 달라.’
자신을 알아도 너무 잘 안다.
본능을 뒤늦게 깨달아가던 용이라도, 단단한 이성을 가진 용은 현실성 없는 말을 하지 않았다.
에르하벤은 담담한 케일의 모습에 옅은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죽은 용이 남긴 흔적이 있다.”
케일의 눈동자에 이채가 서렸다.
감이 왔다.
실마리를 찾았다.
심판하는 물의 실마리를 찾았다고, 그의 본능이 일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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