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252
251화.
흔적이 있다.
그 말에 케일은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고 싶지 않았다.
3일이다.
길면서도 짧은 시간이다.
“설명은 가면서 듣겠습니다.”
“그러지.”
케일은 라온을 다시 담요에 싸 품에 안았다. 에르하벤이 있으니 곧바로 동대륙으로 텔레포트하면 되리라.
그때, 에르하벤이 천막 입구 쪽을 보며 입을 열었다.
“왕세자가 왔군.”
케일은 잠시 뒤, 천막 입구 근처에서 부스럭거리는 인기척을 느꼈다. 그러고 보니 최한을 비롯한 일행은 대강 케일의 사정을 들었지만, 왕세자 알베르는 갑자기 작전에서 빠진 케일의 행동이 의아할 것이다.
“들어가도 되겠나?”
입구 밖에서 알베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라온을 품에 안은 케일이 에르하벤을 바라보자, 에르하벤은 천막 입구로 다가가 입구의 천을 들어 올렸다.
에르하벤을 본 알베르가 멈칫했다.
예전 4국 1종족 연합을 결성할 때 케일의 호위로 왔던 백금발의 기사였다. 그자가 도착했다는 소식도 없었건만 이렇게 바로 천막에서 마주하니, 살짝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 들리는 케일의 목소리에, 알베르는 에르하벤에게서 시선을 떼고 걸음을 옮겼다.
“저하, 저하만 들어오셨으면 합니다.”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야.”
이미 알베르는 혼자 천막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가 아는 케일이 작전에서 빠질 정도의 일이라면, 비밀이 중요할 테니까.
“무슨 일이지?”
알베르 왕세자는 바로 본론에 들어갔다. 케일도 그런 대화가 편했다.
‘이제는 말할 때도 됐지.’
케일은 성큼성큼 알베르 코앞으로 걸어갔다.
“왜 이러나?”
표정 없이 피 칠갑을 한 채로 어두운 천막 안을 가로질러 성큼성큼 걸어오는 모양새가 영 살벌해 보여, 알베르는 다시 멈칫했다.
하지만 이어진 행동에 그는 당황하고 말았다.
“…어?”
왕세자답지 않은 얼빠진 소리가 튀어나왔다.
알베르의 동공이 흔들리고 있었다.
담요 포대기 사이로 삐죽 튀어나온 생물체의 얼굴이 보였다. 동글동글하고 통통한 생김새는 눈을 감고 있어도 꽤 귀여웠다.
하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알베르의 눈동자가 케일과 마주한 순간, 담담한 목소리가 그의 뒤통수를 세게 두드렸다.
“용입니다. 1차 성장 중인 용이죠.”
“…어?”
“6살입니다. 이름은 라온 미르입니다. 제가 지은 좋은 이름입니다.”
“…어?”
하지만 케일은 아직 말을 끝내지 않았다. 그는 한 손으로 라온을 안고 다른 한 손으로 에르하벤을 가리켰다.
“이분은 고룡이십니다. 서대륙에서 가장 오래 살아온 드래곤이시죠.”
알베르의 두 눈이 깜박였다.
그는 잠시 살짝 고개를 털었다.
‘피곤한 건가?’
며칠 잠을 제대로 못 잔 걸까?
알베르 왕세자는 병력을 통솔하고 진영을 가다듬는 동안 영상 통신구로 얼마 보지 못한 전쟁의 흐름을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전쟁의 흐름을 가장 객관적으로 들으려면 케일의 수족이나 다름없는 이가 알맞겠다 판단한 그는 케일 일행 중 그나마 한가한 사람을 불러 전투에 대해 들었다.
그 한가한 사람은 헤니투스 영지 기사단의 부단장인 힐스만이었다.
그에게서 전쟁의 양상을 듣던 알베르는 이야기를 들을수록 자신이 왜 피곤한지에 대해서 고민해야 했다.
‘공자님께서 은빛 방패를 펼치셨습니다. 그러더니 숭고한 방패와 더불어 불 액체를 터뜨려 장벽을 만드셨습니다.’
‘물의 장벽이 케일 공자님 손에서 펼쳐지며, 고래족이 광폭화를 시작했습니다!’
‘그 뒤에 방패가 부서졌죠. 엄청난 위기가 도달했다는 생각과 함께 공자님이 쓰러지시는 줄 알았습니다. 그때, 공자님께서 숨겨두신 고대의 힘을 사용하셨죠. 방패, 물에 이어 마지막으로 수백 개의 석창을 하늘에 쏘아 올리셨습니다!’
최한과 다른 이들의 활약도 들려왔다. 하지만 알베르는 방패에, 물에, 석창까지 썼다는 케일의 이야기에 제 귀를 의심해야 했다.
‘그래서 저는 결국 방패는 부서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하!’
목에 핏대를 세우고 격앙된 어조로 보고하는 힐스만은 상당히 흥분한 사람처럼 보였다. 보통 때라면 그런 행동을 보고 객관성을 의심했겠으나, 힐스만의 뒤에서 훌쩍이는 왕가 제1기사단 기사단장의 모습과 고개를 끄덕이는 마법병단 임시 단장을 보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용이라고?’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둘?
알베르의 눈동자가 고룡에게로 향했다. 고룡은 무뚝뚝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반갑군.”
알베르 저를 아랫사람 대하듯이 행동하는 고룡.
호위기사인 줄 알았건만, 용이었다.
기가 찼다.
하지만 케일의 보고는 다시 이어졌다.
케일은 아직 할 말이 남았다.
“아, 그리고 제가 잘못하면 3일 뒤에 터져 죽습니다.”
“뭐? 이 미친-!”
오. 에르하벤이 그 찰진 비속어에 감탄을 흘렸고 알베르는 말을 멈춘 채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케일은 덤덤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고대의 힘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지금 임시방편으로 간당간당하게 버티고 있기는 한데, 버틸 수 있는 시간이 3일이라더군요.”
왕세자 알베르는 담담한 얼굴에 말문이 막혀왔다. 거짓을 말하는 얼굴도 아니었고, 이런 것을 거짓으로 말할 성격도 아니었다.
그리고 생각해 보면 그가 하는 말은 진실일 확률이 높았다.
‘공자님께서 계속 피를 토하셔서 혹시 큰일이 일어나는 건 아닐까 걱정했는데, 의연하신 태도로 전장을 호령하셨습니다!’
힐스만 부단장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케일이 고대의 힘을 쓰면 반동으로 부상을 당하거나 요양이 필요하다는 것은 기정사실이었다.
그런 놈이 비장의 수로 숨겨두었을 고대의 힘을 세 개나 사용했다. 과연 그 몸이 정상일 수 있을까?
“그러니 3일 동안만 저는 따로 활동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런 멍청한 놈.
알베르는 욕이 목 끝까지 치밀어 올랐지만 참았다.
그는 저와 케일이 비슷한 사람이라는 것을 가끔씩 느꼈다. 이익을 놓치지 않고, 가끔씩 약은 수를 쓸 때. 그럼에도 그 목적이 대의일 때.
대의.
그 이름의 무게를 짊어지고 나아가는 사람이 왕세자 알베르였다.
그는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3일 동안 휴가다. 그 뒤에 꼭 복귀하도록.”
휴가를 더 주고 싶었지만, 그는 복귀라는 단어를 반드시 내뱉어야만 했다.
“알겠습니다. 로운의 태양이신 저하의 말씀이니, 들어야지요. 전쟁 뒤에는 사령관 때려치울 겁니다. 보상금은 두둑이 받고 훈장은 사양입니다.”
“…말만 많은 놈. 이런 놈이 무슨 은빛 방패 공자라고.”
“저도 그 호칭 싫습니다만.”
케일이 진심으로 그 호칭을 꺼려하는 말투에도 왕세자 알베르는 케일과 라온, 에르하벤을 모른 척하며 천막 밖으로 향했다. 둘의 존재를 모른 척하는 것이 최선이란 판단 때문이었다.
촤악.
천막 입구 천이 걷혔다가 다시 닫혔다. 케일은 닫힌 천막 입구에서 시선을 돌려, 어느새 텔레포트 진을 만든 에르하벤의 근처로 걸어갔다.
에르하벤 발밑에서 정교한 마법들이 새겨진 진이 빛을 토해내고 있었다. 케일이 그 위에 서자 에르하벤은 곧바로 마법진을 발동시켰다.
우우우웅-
시야가 흐려지며 케일은 눈을 감았다.
그는 자신의 몸이 이동되는 것을 느끼는 순간, 고룡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 녀석, 올리엔의 레어로 바로 이동한다.”
동대륙에서 가장 오래 살았던 고룡. 그의 레어로 케일이 이동했다.
***
그리고 눈을 뜬 순간, 그는 폐허가 된 공동을 볼 수 있었다.
거대한 동굴을 깎아 만든 듯한, 아름다운 조각들로 가득했을 레어는 먼지가 가득 쌓여 있었고 군데군데 파괴되어 제 모습을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
누구도 이 동굴이 드래곤의 레어라고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케일은 이곳이 드래곤의 레어라는 것을 오자마자 알 수 있었다. 에르하벤의 씁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연적으로 죽지 못한 용의 최후지.”
자연으로 돌아가지 못한 용.
자살이든 혹은 타살이든, 주어진 생을 마치지 못하고 먼저 떠나간 용은 천수를 다 보낸 용들과 다른 모습을 지녔다.
케일의 시야에 흉측하게 부패되어 가는 용이 보였다.
천수를 다 보낸, 그 길고 긴 삶을 끝낸 용들은 죽음의 순간 찬란한 빛을 토해내며 빛 가루가 되어 세상 속으로 흩어진다.
그러나 어둠의 숲 검은 늪에 있던 그 용뼈가 그러했듯, 천수를 다 보내지 못한 용은 다른 자연의 생명체들처럼 부패가 진행됐다.
그것도 천천히, 아주 천천히 자연 속으로 스며들어 갔다.
“보통 백 년이면 부패가 되기 마련인데, 이 녀석은.”
에르하벤은 말을 멈췄다가 잠시 숨을 토해내고는 이었다.
“이 녀석은 제 레어에서 죽은 바람에 부패가 더 늦었어. 너무 좋은 공간에 있어서 부패 속도가 늦춰졌어. 그래서 지금 저런 모습이군.”
케일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에르하벤이 왜 분노했는지,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죽은 용의 심장을 중심으로 일부가 파여 있었다.
누가 먹었다는 표현에 걸맞은, 아니, 좀먹었다는 표현이 더 알맞은 용의 시체는 심장과 그 부근의 살이 사라진 채 부패가 진행되었다.
“올리엔은 그린 드래곤이야. 아주 싸가지 없고, 말대꾸 꼬박꼬박 하는 막돼먹은 놈이었어. 하지만 꼬맹이만큼 꽤 괜찮은 놈이었지.”
에르하벤은 오래전의 기억들은 더 이상 내뱉지 않고 묻어두며 앞서 걸어갔다.
“따라와라. 물의 흔적을 보여줄 테니.”
그는 잠시 입술을 달싹이다가 내뱉었다.
“저 녀석은 모든 진실이 밝혀지면, 필요한 정보들을 모두 알아내고 나면. 내가 자연으로 돌려보낼 거다. 반드시.”
에르하벤은 제 옆으로 나란히 걷는 케일이 보였다.
“빨리 움직이죠.”
그는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놈답게 케일이 저보다 앞서 걷는 것을 보며 얕은 웃음을 터뜨렸다. 에르하벤은 이내 길도 모를 케일의 앞에 다시 서며 그를 비밀 공간으로 인도했다.
케일은 부서지고 먼지에 휩싸였음에도 고풍스러운 풍취를 내뿜는 거대한 레어 안을 걸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용의 비밀 공간.
그곳이 어딜까?
참으로 궁금했다.
그리고 그곳에 있을 물의 고대 힘 힌트도.
복도, 응접실, 서재, 그리고 침실까지. 모든 공간을 스쳐 지나가는 케일의 표정은 목적지에 도착한 순간 멈칫했다.
“…욕실입니까?”
“정확히 말해서 욕조지. 반신욕을 아주 좋아하거든.”
“그렇군요.”
용의 비밀 공간은 욕실이었다.
케일이 떨떠름한 얼굴로 그 공간을 보고 있을 때, 에르하벤이 욕조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 순간이었다.
-희생하려는 건가?
뭐?
짱돌이 반응했다.
-또 먹게?
먹보 신녀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이 둘이 왜 이래?
케일의 머릿속이 복잡해졌을 때, 그는 시야를 사로잡는 빛에 눈가를 찡그렸다.
우우우웅-
에르하벤의 손에는 백금빛의 마나가 머물고 있었다.
그 마나가 닿자마자, 욕조에서 수많은 초록색 마법진이 발동되었다. 그리고 그 마법진은 이내 욕실 전체를 감싸기 시작했다.
동시에 케일은 탄성을 흘렸다.
“…이야.”
숲이 나타났다.
평범한 동굴이던 욕실은 숲이 되었다.
“올리엔의 속성은 나무다. 그 녀석은 제 공간에 숲을 만들어놓았지.”
욕조가 있던 자리에는 나무가 생겨났다. 나무는 거대했고, 그 나무의 밑동에는 동그란 홈이 파여 있었다.
그리고 홈 안에서 일기가 보였다. 일기장은 평범한 가죽으로 감싸여 있었는데, 중간에 작은 양피지가 꽂혀 있었다.
에르하벤은 일기장을 집어 들었다.
“용에게 가장 소중한 보물은 사실 기록이야. 자신이 이 세상에 존재했다는 기록. 그래서 비밀 장소에 첫 번째로 두는 것이 기록이지.”
그는 괜히 쓸데없는 이야기를 케일과 라온에게 했다는 생각이 들어 얼른 일기장을 펼쳤다. 일기장은 양피지가 있는 페이지에서 멈췄다.
“일기장에서 이 페이지만 동대륙 말이 아니라 서대륙 말로 남겨져 있어.”
유일하게 서대륙 말로 남겨진 일기장의 한 페이지. 에르하벤은 그 페이지 위에 놓인 양피지를 집어 들었다.
“보존 마법이 들어간 오래된 양피지다. 아주 오래전에 남겨진 물건 같더군. 이게 아마 실마리이지 않을까- 음? 얼굴 표정이 왜 그러나?”
케일의 얼굴이 웃는 듯 구겨진 듯 미묘해졌다.
양피지 위에 글자 하나가 아주 크게 잘 보였다.
낯익은 강렬함이 전해져 왔다. 언젠가 세계수가 있는 엘프 마을에서 엘프 사제에게 심판하는 물과 관련된 목판을 받았을 때가 떠올랐다.
거기에도 사직서라고 적혀 있었다.
다만 내용은 조금 달랐다.
그 목판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강렬했으며, 이 고대의 힘도 정상이 아닐 것이라 확신하게 된 계기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른 내용이 적혀 있었다.
더 강렬해진 글귀들은 케일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파에른 왕국에 있는 메마른 호수.
강을 만들려던 신이 아끼던 아이를 쫓아내, 분노한 신이 물을 앗아갔다는 곳.
그 사람을 쫓아냈던 이는 백사의 상징을 가진, 세카 가문이었다.
‘설마?’
신이 아끼던 아이가 고대의 힘 소유자였나?
케일은 마지막 문장을 읽었다.
불벼락 짠돌이. 파괴하는 불.
돈을 좋아하던 고대의 힘 소유자가 했던 일 중 하나가 떠올랐다.
세계수를 만나러 갔을 때 들었던 이야기로, 파괴하는 불이 대륙 북부를 뒤엎어 세계수가 위험을 느꼈다는 내용이었다.
문득 의문이 들었다.
‘그 불은 누가 껐지?’
케일은 불을 끈 사람이 ‘심판하는 물’의 소유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 일기장에 이 양피지를 발견한 장소가 있다. 그곳에 물의 힘이 있지 않을까 싶군.”
케일의 시선이 일기장으로 향했다.
그 순간, 케일의 머릿속으로 짱돌이 말을 걸었다.
-먹보에, 짠돌이에, 도둑에, 울보더니 이번에는-
부서지지 않는 방패, 파괴하는 불, 바람의 소리, 심장의 활력.
그 이름들이 차례차례 지나갔다.
-이번에는, 미친 녀석을.
뭔 녀석?
-희생하려는 건가?
진심으로 걱정이 담긴 짱돌의 목소리에 케일은 말문이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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