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253
252화.
먹보나 짠돌이, 그 외의 고대의 힘을 칭하는 별칭들에 대해 케일은 그러려니 했다.
자신이 느끼기에도 그런 사람들 같았고 별달리 자신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왠지 이번에는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미친 녀석이라니?’
미쳤다는 건 어디가 미쳤다는 것을 말하는 걸까?
케일의 의문을 알아채기라도 한 듯, 짱돌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싸움에 미친 녀석이었지. 내 살면서 그렇게 싸움에 환장한 존재는 처음 보았다.
케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왜 그러지? 몸에 무리라도 왔나?”
“…아닙니다.”
케일은 에르하벤에게 겨우 대답하고선 복잡한 머릿속을 차근차근 정리해 나갔다.
세계수는 심판하는 물을 찾으라고 말했다.
더불어 케일은 열 손가락 산의 엘프 족장에서 받았던, 짱돌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는 고서를 떠올렸다.
짱돌의 일대기를 기록한 고서에는 그의 친우에 대한 언급이 하나 있었다.
대륙이 북쪽의 냉기에 얼어붙었을 때, 그 냉기를 물리친 인물.
돈에 환장한 파괴하는 불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불에 겁을 먹은 세계수는 한참 시간이 흘러 케일이 찾아갔을 때, 엘프 사제를 시켜 케일에게 돈주머니를 주었다.
그렇다면 그때 그 불을 끈 존재는 누굴까?
심판하는 물이 자연히 떠올랐다.
또한 수호기사 클로페 세카의 저택에 쳐들어가서 발견한 신물 물뿌리개. 그 물뿌리개에 적혀 있는 글자들을 라온이 읽어줬었다.
‘결국 아무것도 없는 것이 삶. 강물을 막아두어도 결국 넘친다. 나는 얼어붙은 땅을 위해 강을 만들었건만. 너희들은 결국 강을 막았구나.’
‘내 소중한 아이를 쫓아내고 탐욕을 멈추지 못한 너희들의 결과도 하나다.’
신이 소중히 여겼던 아이.
그 아이를 쫓아낸 수호기사 가문과 파에른 왕국.
신은 그들에게 벌로 자신이 만들어주었던 강을 거둬가 버렸다.
‘이것도 심판하는 물일 확률이 높아졌어.’
아니, 거의 기정사실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도달하자, 의문이 일었다.
‘신이 아꼈다며?’
그런데 싸움에 미쳤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데?
“전쟁의 신이 아꼈다고 하면 말이 되지만.”
그럴 리가 없잖아?
전쟁의 신이 겨울마다 얼어붙은 강으로 괴로워하는 북부 사람들을 불쌍히 여겨 얼어붙지 않는 강을 만들 만큼 마음이 넓을까?
인간들을 아낀다면, 전쟁이 벌어지지 않을 텐데?
“…갑자기 전쟁의 신 이야기는 왜 하지? 정말 괜찮나? 무슨 일 있나?”
고룡은 3일의 여유밖에 없는 케일이 갑자기 인상을 찡그리며 생뚱맞은 혼잣말을 중얼거리자 걱정이 들었다.
그러나 그는 제 말을 못 들은 듯 이어지는 케일의 혼잣말에 그냥 시선을 외면했다. 케일은 저도 모르게 탄식을 흘렸다.
“…이럴 수가.”
짱돌이 케일의 머릿속에서 주절주절 떠들고 있었다.
맨날 ‘희생하려는 건가?’만 말하던 사람이 아는 게 나와서 그런지 참 말이 많았다.
-맞다. 전쟁의 신이 아꼈던 아이지. 어릴 적부터 남다른 떡잎을 지녔어. 만약 권력과 일을 귀찮아하지 않았다면 대륙을 제패했을 패황의 재능을 지녔지. 다시없을 폭군이 되었을 거야.
…미치겠다.
그냥 툰카 정도로 싸움에 미친 급이 아니었다.
폭군에 황제급이란다.
“…참 살기 힘듭니다.”
“정말 괜찮나?”
케일은 에르하벤의 반응은 무시하며 라온을 잠시 폭신한 풀 위에 올려놓고는 고룡의 손 위에 있는 일기장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무심히 지나가는 어투로 말을 내뱉었다.
“아, 그런데 에르하벤 님.”
“왜?”
“용 혼혈의 염색 마법이 벗겨지자, 검은 머리칼에 검은 눈이 나타났습니다.”
케일의 안색을 살피던 에르하벤의 눈동자가 커졌다. 일기장을 뒤적이던 케일은 이를 보지 못한 채 말을 이었다.
“용은 한 시대에 한 색을 타고난다고 들었습니다. 혼혈은 다릅니까?”
한 시대에 백금색의 용은 에르하벤이 유일했다.
붉은 용도 푸른 용도 모두 오로지 홀로 지니는 유일한 색이었다.
그렇기에 부모와 같은 색을 가지고 태어나지도 않았다. 붉은 용과 푸른 용 사이에서 백금색의 용이 나오는 게, 용의 세상에서는 당연한 순리였다.
케일은 라온과 눈 색은 다르지만 몸의 색이 검은색으로 같았던 용 혼혈을 떠올리며 에르하벤을 바라봤다.
그리고 멈칫했다.
에르하벤의 얼굴이 일그러져 있었다.
“아니. 혼혈도 용과 같다.”
용 혼혈도 용의 피를 타고난다. 그래서 인간의 몸이 버티지 못한다.
유일한 존재가 되려는 용의 피를 인간이 감당하는 건 불가능했다.
에르하벤은 케일의 목소리가 이어 들렸다.
“위티라가 2차 성장도 마친 것 같다고 말하더군요.”
고룡은 용 혼혈이 1차 성장은 지났을 것을 예상했다.
하지만 2차 성장까지 살았다는 말에 퍼뜩 떠오르는 것은 하나였다. 에르하벤의 미간이 찌푸려졌고, 케일이 그 모습을 유심히 바라봤을 때.
고룡과 인간의 시선이 마주쳤다. 인간은 고룡의 눈동자에 서린 두려움을 보았다.
“…그놈 진짜 혼혈이 맞나?”
동시에 두려움을 넘어서는 분노가 보였다. 그 눈빛에서 세월이 만들어온 지혜도 함께 보이는 듯해, 케일은 저도 모르게 답했다.
“용의 피와 인간의 피가 섞였으니, 혼혈이겠죠?”
“내가 한번 봐야겠어.”
에르하벤은 케일에게서 시선을 돌려 숲을 바라봤다.
올리엔. 이미 세상을 떠난 놈의 공간에는 청량한 초록의 향기가 가득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뒤숭숭했다.
“이상해.”
타살된 용.
가짜 드래곤 슬레이어.
그리고 용 혼혈.
“라온은 진짜 용이다. 이 아이의 색은 본인의 것이 맞아. 이 아이의 속성도 1차 성장이 끝나면 제대로 알 수 있어.”
라온은 확실히 진짜 용이다.
조금 특이하지만, 본질은 누구보다도 훌륭한 꼬맹이다. 그런데 라온과 같은 색이라고?
암.
그 글자가 에르하벤의 입안을 가득 채웠다.
고룡은 한숨처럼 내뱉었다.
“…자연의 순리를 벗어난 일이 벌어지고 있어.”
그나마 다행인 점은 순리를 벗어나고 있는 일들을 순리대로 바꿀 기회가 만들어졌다는 점이었다.
에르하벤은 박복한 놈을 쳐다봤다.
모든 것들이 이놈을 중심으로 벌어졌다.
만약 라온이 죽었다면 진짜 검은 용은 세상에서 사라졌을 터.
또한 드래곤 슬레이어와 용 혼혈 둘의 정체를 알게 해준 이도 이 녀석이다.
‘꼬맹이가 크려면 아직 멀었고. 나는 일 년밖에 남지 않았어.’
로드.
그 존재가 있었다면 이런 걱정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에르하벤이 태어나기도 전, 오래전부터 자연은 세상에 로드를 정해주지 않았다.
“에르하벤 님, 일단 하나씩 하죠?”
하.
에르하벤은 웃음과 같은 탄성을 흘렸다. 어찌 보면 살날이 3일밖에 남지 않은 놈이 제일 태연했다.
“넌 3일이라는 시간을 듣고도 참 태연하구나.”
“사는 게 그렇지 않겠습니까?”
케일 헤니투스는, 김록수는 현재 상황에 심적으로 그다지 크게 영향을 받지 않았다. 오히려 실마리가 존재하고 해결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니, 희망적이었다.
꿈틀, 꿈틀.
보드라운 풀 위에서, 담요로 싸여 보이지 않는 검은 용의 앞발이 꿈틀거렸다. 바들바들 떨리며, 마치 처음 뒤집기를 하려는 아이처럼 앞발이 조금씩 꿈틀거렸다. 하지만 이내 라온의 눈가가 찌푸려지며 다시 몸은 축 늘어졌다.
고룡은 사는 게 그렇지 않냐고 묻는 인간을 보며 생각을 정리했다.
“일단 일기장 내용부터 읽어봐라.”
먼저 해야 할 일부터 시작해야 맞다.
케일은 에르하벤이 일기장을 가리키자 다시 일기장을 읽어 내려갔다. 유일하게 서대륙 언어로 쓰인 페이지.
그 페이지를 읽는 케일의 표정이 점점 묘해져 갔다.
돌기둥이 세워져 있던 리브 산을 비롯한 리브엔 도시가 있는 지역.
그곳은 원래 몬스터가 많았다. 그러나 어느 날부턴가 몬스터들이 사라졌고, 케일과 에르하벤도 그 연유를 찾기 위해 이곳으로 왔다.
그 연유를 죽은 용 올리엔도 궁금해했다.
호수?
케일은 곧바로 이 장소가 ‘심판하는 물’, 고대의 힘이 있는 장소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어진 내용에 표정을 굳혔다.
심판했다고?
싸움에 미쳤다는 말이 떠올랐다.
몬스터와 인간들을 호수가 어떻게 심판했다는 거지? 무슨 기준으로?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의문들이 이어졌다. 잘 상상이 되지 않았다.
케일은 리브 산에서 탈탈 털어줬던 채주를 떠올렸다. 그는 분명 리브엔 시 근처에 몬스터가 남아 있긴 하지만 많이 줄어들었고, 그 덕에 용병과 상인들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고 했다.
케일은 뒤이어 적힌 글자를 천천히 읽어 내렸다.
신을 닮았다고?
전쟁의 신을 닮았나?
케일은 머리가 아파왔다.
안 그래도 방패를 넘어 물기둥과 석창까지 써버리고 말았다. 그런 상황에서 이 힘을 얻고 혹시, 정말로 혹시 이 힘을 써야 할 상황이 나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한데.’
그렇게 되면 백수 라이프가 아니라 은둔, 혹은 은신 라이프를 해야 할 상황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 3일 안으로 어디 있을지도 모를 다른 물 관련 고대의 힘을 찾기도 애매했다.
이를 모르는 에르하벤은 심각한 케일의 모습에 자못 부드럽게 다독이듯 말을 꺼냈다.
“아무래도 호수는 결계에 휩싸여서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여기 그 결계를 펼쳐놓은 지역 좌표가 적혀 있으니, 우리는 바로 그곳으로 이동해서 결계 속에 들어가면 될 거다.”
긍정적으로 대화를 이어가던 에르하벤은 잠시 멈칫하다가 이내 걱정스러운 어조로 말을 이었다.
“다만 결계는 내가 뚫어주어도, 고대의 힘을 얻는 것은 지금까지처럼 네 스스로 해야 한다. 그 힘이 주는 시련을 이겨야 돼.”
“…그게 시련이었습니까?”
“그렇지?”
“…그렇군요.”
케일은 나무에 빵을 사다 날랐던 시련과 돌탑을 부쉈던 시련, 바다 아래 바위 밑 팽이를 얻기 위해 호미질을 했던 시련, 용암에 돈을 던졌던 시련, 마지막으로 돌을 씹어 먹었던 시련을 떠올리며 떨떠름함을 감출 수 없었다.
이번에는 또 어떤 기상천외한 짓을 시킬지 케일은 감도 잡히지 않았다. 그래도 피 터지고 싸우는 일보다는 나았기에 큰 걱정을 하지는 않았다.
케일은 라온을 다시 품에 안아 들며 말했다.
“좌표 위치상 리브엔 시가 근처에 있으니 들렀다 가죠.”
“그러지.”
***
끼이익.
희망과 모험을 사랑하는 여관.
꽤 긴 이름을 지닌 여관은 오늘도 개업식 디데이까지 내부와 외부 수리를 끝내기 위해 열심히 노력 중이었다.
그 여관의 문이 천천히 열렸다.
식탁보를 만들고 있던 산적은 식탁보에 시선을 둔 채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외쳤다.
“야! 땡땡이치면 장갑 하나야! 도망가도 잡힐 거 왜 도망가냐? 먼지 날릴 정도, 아니지, 여기는 먼지도 없고. 네가 세상의 먼지가 되고 싶냐?”
“아니.”
“아니면 입 닥치고 그냥 일을-”
말을 이어가던 산적은 멈칫했다.
지금 홀에 있는 놈은 저를 포함한 산적 다섯 명이었다.
그런데 한 놈이 도망치는데 다른 놈들이 조용하다.
그리고 방금 대답한 목소리가 너무 익숙했다.
툭.
산적의 손에 들려 있던 식탁보가 아래로 떨어졌다.
식탁보는 나비처럼 나풀거리며 천천히 바닥에 떨어졌고, 이를 안으로 들어선 이가 주워 들었다.
“먼지가 묻으면 안 되지. 안 그래?”
빨간 머리칼이 보였다.
흰 장갑보다, 노인네보다 무서운 놈!
그는 저도 모르게 입이 열렸다.
“맞습니다! 먼지는 사악합니다! 처단해야 합니다! 식탁보는, 무조건 하얘야 합니다!”
케일은 부들부들 떠는 손으로 식탁보를 받아 가는 산적의 모습에 고개를 살짝 한쪽으로 기울였다.
‘왜 이래?’
왜 이리 겁을 먹었어?
케일은 일을 시킨 순간부터 산적들도 잘 먹이고 잘 입히라고 말해놓았다. 서빙도 맡을 예정이었으니까.
그리고 비크로스는 명에 따라 그들을 아주 잘 먹였다. 다만 그가 식칼을 휘두르는 모습을 본 주방보조 산적의 증언으로, 다들 그 음식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구분 못 했을 뿐이었다.
케일이 홀에서 쥐 죽은 듯이 일만 하는 산적 다섯 명을 이상하다는 듯 바라보는 순간, 갑자기 어떠한 전조도 없이 뒤에서 사람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셨군요, 도련님. 생각보다 빨리 오셨네요.”
아이구야, 놀래라.
케일은 소리 소문 없이 다가온 론의 존재에 놀랐다가, 이내 그에게 2층으로 가자고 눈짓했다.
케일이 2층으로 향했고, 그 뒤를 론과 에르하벤이 함께했다. 비크로스가 주방에서 나와 그 뒤를 따랐다. 2층으로 올라가니 타닥타닥 발소리가 들리며 케일을 반기는 이들이 있었다.
“왔는데! 빨리 왔는데!”
“보고 싶었는데! 막내는 자는 것 같은데!”
온과 홍이 신나게 뛰어와 케일을 반겼다.
하지만 그 표정은 케일이 2층 방 하나에 들어가 꽁꽁 싸맨 담요를 살짝 풀어, 라온을 침대에 눕힌 순간 달라졌다.
냐아아옹.
냐아옹.
놀랐던지, 순간 사람 목소리보다 고양이 울음소리를 내며 온과 홍이 라온의 양옆에 몸을 웅크렸다. 케일은 일행에게 라온의 상태를 알렸다.
“성장기야. 지금 라온은 스스로와 싸우는 중이지. 눈을 감고 있지만 우리 이야기는 다 듣고 있다.”
그 말에 온과 홍은 고양이 울음소리를 멈췄다. 그리고 라온의 근처에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수인들도 첫 광폭화 때 아프다고 들었는데. 근데 막내는 아프면 안 되는데.”
“막내는 안 커도 위대하고 좋은데.”
케일은 온과 홍이 라온의 옆에 딱 붙어 말하는 것을 지켜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론과 비크로스의 표정이 보였다.
이 둘은 살벌한 직업을 지녔으면서 은근히 감정이 풍부했다.
케일은 에르하벤에게 평균 9세들을 잠시 맡기고는 방 밖으로 나왔다. 그는 론에게만 살짝 따라 나오라 눈짓했다.
달칵.
문이 열렸다 닫혔다.
텅 빈 복도에서 케일은 론과 마주했다.
“도련님, 무슨 일 있으십니까? 전쟁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지요?”
역시 귀신같은 노인네.
케일은 눈치 빠른 론이 현 상황의 이상함을 당연히 알아채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만 따로 불러냈다.
“론.”
“네, 도련님.”
무서운 노인네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가장 믿을 만했다.
케일은 현 상황이 희망적이라고 생각했기에 크게 부담은 없었다.
감이 왔으니까.
다년간 쌓아온 감이 자신은 죽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악은 언제나 대비해야 하는 법이다.
케일은 왕세자 알베르에게 사실대로 말했다.
알베르가 다른 이들에게 케일의 일을 말할지 안 할지 알 수 없으나, 지금은 전쟁 중이다.
어떠한 상황이 나올지 알 수가 없다.
혹시 일행에게 이 소식이 퍼지고, 더불어 갑작스럽게 안 좋은 전쟁 상황이 들이닥쳤을 때를 대비해야 한다.
그리고 그 최악을 함께 대비할 사람 중 한 명으로, 케일은 론 몰란을 망설임 없이 택했다. 일행 중 가장 나이가 많은 것은 아니나 인간 중 표면적으로 가장 나이가 많았고, 그들을 이끌 줄 아는 인물이었으니까.
김록수가 눈을 뜨자마자 처음 본 사람이자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온 사람이었다.
그래서 케일은 론에게 자신의 상황을 담담하게 알려주었다.
“3일, 아니지, 2일 8시간.”
“그게 무슨 시간인지요?”
론은 덤덤한 미소를 짓는 케일을 볼 수 있었다. 평온한 목소리가 텅 빈 복도를 채웠다.
“내 몸에 심어진 폭탄의 남은 시간이지.”
론의 냉정한 눈동자가 순간 흔들렸다. 하지만 론은 저를 바라보는 케일의 흔들림 없는 눈동자가 보였다. 그 눈빛에 론의 눈빛도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
그런 그에게로 케일은 망설임 없이 말했다.
“나는 폭탄을 제거하고 온다.”
케일은 론에게 한 가지를 부탁했다.
“그러니 평소처럼, 부탁해.”
평소처럼.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론은 처음으로 케일 앞에서 대답을 망설이며 눈을 감았다. 그런 그의 대답을 기다리는 케일에게 짱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결국 강해지려는 건가?
아니, 전혀 그러고 싶지 않은데.
케일이 부정하려던 찰나.
갑자기 한 존재의 목소리가 더 들려왔다.
-욕 좀 잘해?
…뭐?
낯익은 목소리.
돈에 환장하는 불벼락의 주인.
그 녀석이 갑자기 목소리를 내었다. 이 녀석이 불바다를 만들고, 그 불을 심판하는 물이 껐을 거라고 예상되는 상황.
고룡 올리엔의 일기장에 끼워져 있던 양피지에는 불벼락에 대해 언급한 내용이 있었다.
심판하는 물의 주인은 파괴하는 불과 꽤 잘 아는 사이 같아 보였다.
불벼락 주인의 목소리가 이어 들려왔다.
-선빵이 직방이야. 걔 이기려면 선빵으로 욕이 제격이지.
케일은 손으로 눈가를 쓸어내렸다.
-아니면 사고 치겠다고 구슬려 봐. 그러면 따라올걸? 걔 사직서 나랑 같이 썼거든.
그 정신 나간 사직서를 너랑 같이 썼냐?
-그래서 내가 걔 좀 알아. 싸우다가 가치관의 공감대를 형성했지. 꽉 막힌 세계수 영감보다 말이 잘 통했어.
…이런 미친 고대의 힘 주인들 같으니라고.
정상이 하나도 없다.
“…도련님?”
“하아. 사는 게 참 어렵다, 론.”
론은 진심으로 피곤해 보이는 케일의 모습에 인자한 척하거나 냉정하거나 둘 중 하나만 그리던 얼굴에 다른 표정이 나타났다.
케일은 그 표정을 제대로 보지도 못한 채 갑자기 튀어나온 짠돌이 불 때문에 머리를 싸맸다.
-내가 도와줄게. 그래서 말인데, 돈 좀 있어? 불벼락 강화하고 싶지 않아? 서대륙 북부를 다 태울 정도의 불벼락이 궁금하지 않아? 세계수 영감이 기절할 정도의 불이 확 당기지 않아?
전혀. 전혀 저 짠돌이의 도움을 받고 싶지 않았다.
“힘드네.”
케일의 중얼거림에 론의 얼굴은 결국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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