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255
254화.
콰아앙!
방패와 창이 격돌했다.
“크으윽.”
케일은 배 위를 움켜쥐었다.
울렁거린다.
속이 뒤집힐 것 같다.
심장의 활력을 사용했을 때 가끔씩 느끼는 감각과는 달랐다.
약해질 대로 약해진 유리그릇이 언제라도 깨질 듯 케일을 괴롭게 만들었다.
“제기랄.”
붉은 피다.
케일의 입가를 타고 내려 턱 아래로 떨어지는 핏방울.
잔디를 적시는 핏방울의 색은 새빨갰다.
평소 검붉은 색의 죽은피와 다르다.
비릿한 혈향이 회색 눈을 닮은 호수 근처로 퍼지기 시작했다.
꿈틀꿈틀.
비크로스는 이번엔 제대로 보았다.
검은 용의 앞발이 움직이고 있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앞발이 조금씩 조금씩, 선명히 눈에 담길 만큼 움직였다.
어린 검은 용은 비릿한 피 냄새에 점점 더 심장이 크게 뛰었다.
두근두근.
케일의 피 냄새가 분명하다.
라온은 어서 눈을 떠 현실을 마주하고 싶었다. 하지만 어린 용은 다른 세상을 보고 있었다.
성장기가 시작되자마자 어린 용은 꿈속에서 움직여야 했다.
아니, 꿈의 흉내를 내는 시련을 마주해야 했다. 본능적으로 이 시련을 이겨야 자신도 싸울 수가 있다는 걸 깨달았지만, 이겨내는 게 힘들었다.
라온은 제 몸을 살폈다.
짧은 앞발과 짧은 몸통, 그리고 작은 날개.
모두 상처로 가득했다.
쉬지 않고 싸웠지만, 이 시련 안에서 자신은 마나와 마법을 쓸 수가 없었다. 마법을 쓸 수 없고 1차 성장도 못한 용은 한없이 약했다.
라온은 제 발밑을 내려다봤다.
이 꿈속 시련이 시작되자마자 본 광경. 어린 용은 제 발목을 잡는 존재들이 보였다.
케일, 온과 홍, 금 용 할배, 최한, 로잘린, 론, 라크, 메리, 비크로스 등등.
너무 많은 존재들이 라온의 발목을 잡았다.
라온은 이 존재들을 짊어지고서 싸워야 했다.
고개를 들자 하늘에는 용이 보였다.
짜리몽땅한 자신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거대한 용.
보통 성룡은 길이가 20m에 달하건만, 이 거대한 용은 30m에 이르렀다.
용의 색깔은 검은색이었고, 눈동자는 검푸른색이었다.
라온은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저 용은 나다.
어른이 된 나다.
발목을 잡는 존재가 아무것도 없는, 오로지 홀로 하늘을 자유로이 나는 용이었다.
나는 저 용과 싸워 이겨야 한다.
그게 시련을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용으로서의 본능이 말해주었다. 그 판단에 따라 라온은 거대한 흑룡과 싸워야 했다.
하지만 조금도 이겨낼 수 없었다.
성룡을 이기기에 자신은 형편없이 약했다.
라온은 그걸 알고 있음에도 포기를 택할 수 없었다.
현실의 소리가 들렸고 냄새가 맡아졌다.
“빌어먹을!”
시련 밖, 꿈속 밖, 우리 약한 인간의 목소리가 들렸다.
꼭 답답하고 짜증 날 때마다 내뱉는 그 목소리가 들려왔다. 라온은 고개를 숙였다. 이 시련 속에서 제 발목을 잡는 존재가 내뱉는 말이 아니라, 현실 속 우리 인간의 목소리였다.
인간이 3일밖에 시간이 없다고 한다.
이 피 냄새는 우리 인간의 냄새다.
살려야 한다.
라온은 다시 날아올랐다. 제 발목을 잡는 존재들 때문에 조금, 아니, 많이 날아오르기 힘들었지만, 그래도 날갯짓을 멈추지 않았다.
제 발목을 잡는 존재들이 마냥 밉지 않았으니까.
라온은 다시 한번 저를 내려다보는 거대한 검은 용을 향해 돌진했다.
라온은 무섭지 않았다. 그저, 현실에 늦게 당도할까 봐 그게 두려울 뿐이었다.
그리고 라온이 그토록 바라는 현실을 마주한 사람은 입에서 자꾸만 욕이 흘러나왔다.
“크윽, 빌어처먹을!”
피를 뿜어내며 욕을 지껄이는 케일의 표정은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져 있었다. 속이 울렁거리는 것을 넘어 뒤집어질 것 같다.
더불어 계속해서 토해내는 붉은 피로 인해 미칠 것 같았다.
콰아앙!
다시 한번 회색 수창과 은빛 방패가 부딪쳤다.
거대한 굉음과 달리, 은빛 방패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멀쩡했다.
문제는 케일을 노리는 수창도 멀쩡했다.
촤르르륵.
방패와 부딪친 직후에는 잠깐 창의 형태가 무너졌지만, 이내 순식간에 거대한 창이 되어 다시금 케일을 찔러왔다.
쾅! 쾅! 쾅!
은빛 방패와 수창이 서로를 집어삼킬 듯 계속해서 부딪쳤다.
케일은 입가의 피를 닦아내며 회색 수창을 노려봤다.
몸의 그릇이 한계에 달했다.
아까 전, 이동만을 위해 ‘바람의 소리’를 사용할 때 속이 울렁거리던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내부가 요동쳤다.
그 까닭에 부서지지 않는 방패와 무서운 짱돌을 마음껏 펼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쟤는 먹보와 고집불통 짱돌에게는 맨날 졌다.’
파괴하는 불이 그렇게 말했지만, 그 힘을 마음껏 쓸 수 있는 상황 자체가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케일의 눈동자는 차분하게 호수와 물로 만들어진 창을 관찰하고 있었다.
‘한 번이다.’
지금 몸 상태로 방패를 펼친 상태에서 사용할 수 있는 무서운 짱돌의 힘은 한 번뿐이다.
한 번.
케일은 그 숫자를 되뇌며 다시 한번 저를 향해 쏘아져 오는 수창을 방패로 막아섰다.
콰아아앙!
다시 한번 굉음이 근처를 뒤흔들었다. 고룡 에르하벤은 그 광경을 보며 눈가를 찌푸렸다.
심판하는 물.
그 글자대로 서늘하고 가차 없는 힘이었다.
수창에서는 형언할 수 없는 힘이 느껴졌다. 당장에라도 죄인의 목을 베어낼 것만 같은, 직접 처단할 것 같은 힘이었다.
‘이상해.’
정말로 이상했다.
에르하벤이 아는 고대의 힘은 모두 주력이 되기에는 조금 모자란 힘들이었다.
그러나 저 박복한 케일 헤니투스가 지닌 고대의 힘들 중 몇몇은 웬만한 강자들의 주력, 그 이상을 보였다.
“…이런.”
에르하벤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는 케일 헤니투스의 흔들리는 내부가 느껴졌다. 그릇이 깨지려고 했다.
신을 닮은 오만한 힘이라 일컬어지는 고대의 힘.
그것을 이기기에 지금 케일 헤니투스의 상태는 최상이 아니었다.
이길 수 있을까?
저 몸 상태로 가능할까?
고룡도 쉬이 판단하기 힘들었다.
다만 한 가지는 알고 있었다.
“정석으로는 힘들어.”
그 순간, 고룡 에르하벤의 눈동자가 커졌다.
우우우우-
다시금 호수가 진동했다.
고룡은 제 팔을 쓰다듬었다.
소름이 돋았다.
그 순간, 에르하벤은 케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치겠네. 제정신이 없어, 제정신이! 빌어먹을!”
케일은 이렇게 내뱉지 않고는 참을 수가 없었다.
촤르르르륵.
호수 밑에서부터 올라오는 존재.
물로 만든 사슬이, 족쇄가 올라오고 있었다.
마치 죄수의 손발을 묶겠다는 듯, 사슬이 호수 아래에서 솟구쳐 올랐다. 수창에, 사슬까지. 케일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리고 답답했다.
조용하다.
그 시끄럽던 고대의 힘 주인들이 조용했다.
그러고 보니 고대의 힘을 얻을 상황이 들이닥치면, 다른 고대의 힘 주인들은 조용해졌다.
촤르르르, 촤르르-
여러 개의 사슬들이 솟구쳐 올랐다. 그리고 수창에 들러붙어 철컥철컥 소리를 내었다. 꼭 케일의 사지를 묶으려는 듯 수창과 함께 케일을 노렸다.
“빌어먹을. 심판하는 물이라더니, 이상한 거 쓰네.”
케일이 답답함을 저도 모르게 토로했을 때였다.
-내가 아냐.
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동굴 속에서 울리는 듯한 청아한 목소리가 케일의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심판하는 물이다.
그 목소리가 틀림없었다.
시련을 넘을 때면 늘 고대의 힘 주인의 목소리가 들려왔으니까.
-내가 아냐, 아니라고!
“으윽.”
케일은 귓가를 움켜쥐었다. 머릿속에 울려 퍼지던 차분한 목소리가 갑자기 커지며 격렬해졌다.
촤르르륵, 차르륵!
동시에 사슬과 창이 엉켜들며 몸집을 기형적일 정도로 부풀렸다. 더불어 호수 면이 격정적으로 출렁이기 시작했다.
-내 힘이 아냐! 이건 내가 아니라고! 나는, 나는 심판자가 아냐!
심판자가 아니라고?
머리를 부여잡던 케일의 눈빛이 달라졌다.
-나는, 나는!
-나는! 난!
계속 저 말만을 내뱉는 고대의 힘. 케일은 그 목소리에 머리가 울렸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툭 내뱉었다.
“네가 뭔데?”
심판하는 물이 아니라면, 넌 누구인가?
모두가 너를 심판하는 물이라고 하는데?
그 순간이었다.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난… 자유가 없는 자.
끼이이- 끼이-
기이한 소리에 케일은 고개를 들었다.
사슬에 엉킨 수창이 거대한 몸집을 케일에게 겨눴다. 그 힘은 보는 이의 숨을 막히게 만들었다.
그 힘을 본 고룡은 동시에 떠오르는 말을 내뱉었다.
“…신에게 묶였구나.”
-묶였어.
케일의 머릿속으로 고대의 힘 주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신에게, 그리고 사람들에 의해 의무와 책임이라는 이름의 족쇄에 묶였다. 타고난 자신의 모습이 아닌 세계가 만든 굴레에 억눌려야 했다.
태어나자마자 족쇄에 채워졌고, 신에게 발견되자 신이 자신에게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자신을 떠받들었다.
-벗어나고 싶어.
벗어나려 동대륙으로, 구석으로 도망치고 또 도망쳤지만, 이미 자신은 온전한 모습을 잊어버렸다.
-나를 풀어줘.
하지만 다시 온전한 제 모습을 찾고 싶다.
신이 아끼면서도 묶어둘 수밖에 없었던 그 힘을 단 한 번이라도 자유롭게 사용하고 싶었다.
-신은 나에게 심판하는 물이란 이름을 붙여주었다. 하지만 나는 내가 만든, 내 스스로의 이름이 있었다.
스스로 만든 이름. 그녀는 그것을 쓰고 싶었다.
-본디 고대의 힘은 스스로 이름을 짓는다. 나는 스스로 지을 기회를 잃었다. 다시 스스로 이름을 만들 기회를 얻고 싶다.
그리고 그 기회를 찾아줄 존재를 만났다.
오래전 자신이 동대륙으로 도망갈 수 있게 도와주었던 자들의 힘이 느껴졌다.
그들은 사직서를 만들어주고, 불을 피워 시선을 끌었으며, 방패로 백사들을 막아섰다.
또한 바람에 태워 자신을 옮겨주었으며, 마지막으로 저를 본인의 바위 힘만큼 강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때 자신을 위로해 주고 얘기 상대가 되어주던 착한 이도 있었다.
결국 세상을 위해 희생했던 사람들.
그들의 향기가 났다.
저 사람에게서 났다.
-나는 심판자가 아니야.
회색의 호수가 일렁였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존재.
세상의 법칙으로 인해 물은 무조건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결국 그것이 순리였다.
그러나 그녀는 세상의 법칙을 벗어난 존재였다.
그래서 신이 아끼면서도 족쇄를 묶었으며, 사람들의 구속을 받아야 했다.
고대의 힘 주인은 족쇄를 피해 동대륙에 오고 나서야, 홀로 자유롭게 남겨졌을 때야 비로소 지을 수 있었던 제 이름을 내뱉었다.
-나는 역행하는 물.
역행.
거슬러 가는 자.
케일의 머릿속에서 그녀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마치 머나먼 동굴에 있는 듯 그 목소리는 사라져 갔지만, 똑똑히 들렸다.
그녀가 내뱉는 마지막 말.
-나는 하늘을 잡아먹는 물이다.
심판하는 물을 버리고 스스로 지은 첫 이름.
하늘을 잡아먹는 물.
끼이이이- 끼이이!
케일은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목소리가 사라지자, 사슬이 수창의 끝을 케일 쪽으로 묶었다.
“…신의 흔적이구나.”
에르하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아무도 듣지 못했다.
물이 소리를 잡아먹었으니까.
촤르르륵-
거대한 회색의 수창이 케일을 향해 쏘아졌다.
동시에 사슬이 뻗어 나오며 케일의 사지를 묶을 듯 달려들었다.
“…안 돼.”
안 된다. 저건 안 된다.
에르하벤은 사슬과 수창에서 신의 흔적과 자연을 거부하는 힘을 동시에 느꼈다.
저건 케일이 감당할 수 없다.
“케일 헤니투스!”
에르하벤은 결국 케일을 향해 백금빛 마나를 뿌리며 다가갔다.
하지만 에르하벤은 케일의 옆에 설 수 없었다.
촤르르륵.
케일은 저를 향하는 수창과 사슬을 보며 미소를 그렸다.
역행하는 물이라.
꽤 마음에 드는 이름이다.
심판하는 물보다 나았다.
케일은 고대의 힘 주인들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제 몸 곳곳에서 존재를 드러내는 고대의 힘들이 느껴졌다.
케일은 수창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그럼 나도 역행하도록 하지.”
케일의 몸이 앞으로 쏘아졌다.
바람의 소리가 케일의 발이 되어주었다.
케일은 시선을 돌려 일행에게 슬쩍 웃어주었다. 당황한 표정들이 보였다.
케일의 발이 땅을 벗어났다. 마치 물이 갈 수 없는 하늘을 노리듯, 그의 발이 걸을 수 없는 곳으로 나아갔다. 그 결과가 곧 케일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
촤아아아-
회색 눈 호수.
그 호숫물로 케일은 뛰어들었다.
그는 확신했다.
물은 나를 건들지 못한다.
케일은 호수에 스스로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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