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259
258화.
삐이이- 삐이이-
영상 통신구의 알람 소리가 쉴 새 없이 방 안을 가득 울렸다.
그럼에도 누구 하나 선뜻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못했다.
물론 케일이야 반응을 보이고 싶어도 빌어먹을 몸이 말을 처듣질 않아서 미치고 팔짝 뛸 상태였다.
‘로잘린의 연락은 분명 둘 중 하나야.’
왕세자 알베르에게 연락을 받았거나 혹은 라온을 데리고 에르하벤을 만나러 간 케일에게 경과를 물어보기 위함이거나.
케일은 아무래도 후자일 확률이 높다고 판단했다.
그가 단기 휴가로 낸 시간이 3일이다. 그리고 이제 2일 차다.
아직 1일 20시간여 정도 남은 상황. 케일이 아는 알베르라면 적진에 작전을 펼치러 간 로잘린 일행에게 케일의 상태를 이리 빨리 말해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삐이이- 삐이이이-
계속 영상 통신구가 끈질기게 울렸다.
끊지도 않는다.
‘일단 대충 둘러대라고 해야 돼.’
케일은 일행에게 로잘린에 대한 대응을 전하기 위해 일단 간신히 눈을 떴다.
겨우 눈을 뜨자 흐릿하던 시야가 점점 또렷해져 갔다.
그리고 당황했다.
‘…왜 비크로스가 론을 부축하고 있지?’
비크로스가 아버지인 론을 부축하고 있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저 단도는 뭐야?’
론이 적을 죽일 때 사용하는 단도. 노인네는 그 단도를 들고서 케일을 매섭게 응시하고 있었다.
케일은 진심으로 무서웠다.
반대로 케일을 지켜보는 론은 실핏줄이 다 터져 붉게 충혈된 케일의 눈동자와 고통에 가득 차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가가 보였다.
론은 순간 세상이 뒤집히는 것 같은 극심한 분노를 느껴야 했다.
동대륙. 이곳에서 아내와 가족, 가문을 잃었던 그날 밤처럼. 모든 것들이 타오르던 붉은 밤처럼, 또다시 붉은 형상의 이가 피를 토하며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니 론은 마음을 진정시키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마음을 진정시키려 어릴 적부터 소장해 왔던 물건을 움켜쥐었다.
단도의 서늘함이 그의 들끓는 마음을 진정시켜 주었다.
달칵, 달칵.
단도를 만지작거리며 론은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는 저를 부축하는 아들 비크로스의 손을 살짝 털어냈다.
사실 비크로스는 부축하고 있던 것이 아니었다.
론은 아들이 자신을 부축한 것이 아니라 막으려고 붙잡고 있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과거 모든 것을 잃었던 날, 그때 자신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적에게 복수를 하러 가려 했다.
아내가 눈을 감으며 마지막으로 아들을 바라보던 그 눈빛을 보지 못했다면.
비크로스가 저와 눈을 감은 아내를 번갈아 쳐다보지 않았다면.
복수를 하러 갔을 것이다.
하지만 론은 복수보다 도망을 택했다.
아마 비크로스는 그때처럼 자신이 날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붙잡은 것이리라.
그러나 론은 아직 인내 중이었다.
이 모든 일은 궁극적으로 ‘암’ 때문이다.
늙은 육신은 아직 그 불꽃이 사그라지지 않았다.
달칵, 달칵.
론은 단도를 매만지며 점점 이성을 되찾았다. 그리고 단도를 쓰다듬으며 천천히 자신의 강아지 도련님에게 다가갔다.
강아지인 줄 알았다가 호랑이임을 깨달았지만 여전히 론에게 케일은 망나니 도련님이고 강아지 도련님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
에르하벤이 케일은 그릇이 다 붙을 때까지 이런 상태일 거라고 했다.
론은 침대로 다가가 한쪽 무릎을 꿇고서 저를 바라보는 케일과 마주했다.
고통에 가득 찬 케일의 입이 열렸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크으으.”
하지만 케일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고통에 가득 찬 신음 소리뿐이었다.
론은 마음이 쓰렸다.
빈 속이 쓰리듯, 그렇게 쓰려왔다.
그리고 케일은 론의 얼굴이 일그러지자 더 당황스러웠다.
‘왜 이래?’
왜 자꾸 단도를 만지면서 무섭게 쳐다봐?
나 뭐 잘못했어?
아닌데?
‘왜 그래?’ 이렇게 묻고 싶은 것이 ‘크으으’ 신음이 되어 튀어나가는 환장 맞을 상황에 케일은 결국 한 가지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냥 가만히 있자.
어떻게든 알아서 되겠지.
지금 내 몸이 아파 죽겠구먼, 뭔 신경을 써?
케일은 그냥 체념했다.
그 체념의 눈빛을 읽은 것일까. 케일은 저를 보며 말하는 론의 목소리에 조금 마음이 놓였다.
“걱정 마세요, 도련님.”
론은 케일이 했던 말을 떠올리고 있었다.
‘힘드네.’
‘평소처럼, 부탁해.’
인자한 미소가 입가에 걸렸다.
“평소의 저처럼 알아서 할 테니, 쉬세요. 도련님.”
케일은 그 말에 안심했다.
잠깐 이 노인네가 뭔 짓을 할까 무서웠는데 역시나 중심을 제대로 잡고 있었다.
로잘린을 상대하는 일.
그 일을 론이 맡는다면 그나마 안심이었다.
론이라면 평소처럼 냉정히, 간단하지만 정확하게 이 상황을 말하고 넘길 테니까.
그리고 표면적이긴 해도 인간 중 가장 연장자로서 일행을 다독일 수 있을 터.
케일은 안도하며 간신히 뜬 눈을 다시 감았다.
그게 문제였다.
“에르하벤 님, 바로 연결 부탁드립니다.”
“…음, 알겠네. 케일이 자네에게 믿고 맡긴 듯하니.”
연결? 여기서?
나 지금 피 흘리고 막 아프고 그런데? 여기서? 굳이?
케일은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다시 눈을 뜨려 한 순간.
“쿨럭!”
한 움큼의 검은 피가 또 토해졌다.
더불어.
-음? 론 씨! 오랜만이-
쾌활하던 로잘린의 목소리가 뚝 끊겼다.
영상 통신구가 꺼진 게 아니었다.
론은 영상 통신구 너머 로잘린과 기웃거리던 최한, 라크가 세상이 정지한 듯 굳어버린 것을 무심히 바라봤다. 물론 영상 통신구 너머로 지붕이 날아간 왕궁이 하나 보였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도련님, 잠시 나갔다 오겠습니다.”
아니, 나가지 마.
케일은 눈을 뜨지 못해 왜 갑자기 로잘린의 목소리가 들리다 뚝 끊겼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론이 차라리 여기서 계속 말해주길 바랐다.
하지만 케일은 아파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달칵.
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론이 문을 열고 나가자 조금 떨어진 곳에서 웅크리고 있는 두 고양이가 보였다.
“우리도 들어가면 안 되는 것 같긴 한데. 누나, 그래도 들어가고 싶은데!”
“…가만히 있어야겠는데. 그럴 때 같아.”
홍은 대놓고 들어가고 싶음을 어필했지만, 온은 론의 표정과 제 코끝을 스치는 혈향에 홍을 제 옆에 두며 못 움직이게 했다.
론은 온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문을 닫았다.
론은 닫힌 문을 잠시 동안 응시했다.
-론 씨, 방금 전에, 그러니까, 지금 제가 뭘 본 거죠? 네? 분명 케일 공자인데. 네, 론 씨?
로잘린의 떨리는 음성이 들려왔다.
론은 영상 통신구를 쥔 채 여관 2층 가장 구석진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하, 할아버지!
라크의 겁먹은 목소리 또한 들려왔다.
론은 그에 답하지 않고 가장 구석에 있는 방에 들어갔다.
달칵, 탁.
문이 닫히고 그가 홀로 남았을 때. 여태껏 말이 없던 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떻게 된 겁니까?
최한이었다.
론은 영상 통신구 화면 속 최한을 응시했다.
처음 이놈이 도련님을 따라 헤니투스가에 왔을 때. 그때 자신과 아들, 그리고 최한은 주방에 남아 서로를 향해 무기들을 겨눴다.
이후 이놈은 케일의 앞에선 존댓말을 하더니, 저택을 안내해 주라는 말을 남기고 케일이 사라지자 참 싸가지 없는 태도를 보였다.
‘안내해.’
그렇게 반말하던 놈이 제가 팔을 잃게 되자 함께 바다에 나가 ‘암’, 인어족과 싸웠으며, 지금은 곧잘 존댓말을 하며 저를 꽤 따랐다.
최한과 론의 시선이 부딪쳤다.
-하나도 빠짐없이 말씀해 주십시오.
“입 닫아.”
로잘린과 라크가 멈칫했다. 론의 이런 모습을 처음 보았기 때문이었다. 살수였다고 해도 늘 인자하고 부드러운 이였으니까.
하지만 최한과 론, 비크로스는 이런 모습이 서로에게 더 익숙했다.
-싫습니다. 말하십시오.
로잘린과 라크는 론의 살벌한 모습에도 대쪽 같은 최한, 그리고 삐뚜름하게 웃는 론을 번갈아 바라보며 침묵을 택했다.
그 순간, 론이 입을 열었다.
“너는 늘 성질이 급하구나.”
처음 만난 날, 주방에서도 급하게 살수를 날리더니.
-빨리 말해주십시-
“시끄럽다. 내가 알아서 말할 테니까.”
최한은 론의 화난 모습에 결국 입을 다물었다.
그는 론이 자신에게 화가 난 것이 아님을 느끼고 있었다. 이 음흉하면서도 차가운 암살자가, 그러면서도 정 많은 노인이 화날 일은 몇 되지 않는다.
“닥치고 듣도록.”
최한은 침묵과 함께 경청을 택했다.
케일이 론에게 이번 일을 맡긴 것은 잘한 일이었다. 소드 마스터이자 강자인 최한을 케일만큼 편하게 대하는 사람은 론이었다. 아니, 막 대할 수 있는 사람은 론뿐이었다.
“도련님의 고대의 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다시 론은 시종으로 돌아와 차분하게 말을 내뱉었다.
-아.
로잘린은 그 말에서 벌써 알아챘다는 듯 탄식을 흘렸다. 그녀의 표정이 흐려졌다.
-뭐야? 궁 다 부수고 왜 이러고 있어? 누가 죽었어? 표정이 다 왜 그래?
불쑥 나타나 손에 묻은 벽 가루를 털던 범고래 아치는 순간 저를 노려보는 눈빛들에 입을 꾹 다물며 구석에 갔다.
-어… 음, 그래. 조용히 할게.
다시 조용해지자, 론은 입을 열었다.
온화한 얼굴의 시종 론, 그의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일행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범고래 아치마저 하늘을 올려다보며 애써 눈에 힘을 주게 만든 담담한 이야기가 고요한 방 안에 울려 퍼졌다.
케일은 론이 내뱉고 있는 이야기를 모른 채, 점점 달관한 자세가 되어갔다.
계속 아프니 적응이 되었다.
“쿨럭.”
개뿔이!
하나도 적응이 안 된다.
케일은 그냥 포기하고 힘을 쭉 뺀 채로 눈을 감았다.
“쉬도록. 비크로스, 나가자.”
“옆에 없어도 됩니까?”
“라온이 있어. 쟤가 케일 상태 알아차리는 건 나보다 더 낫다.”
“…알겠습니다.”
모두 방에서 나가고 적막이 내려앉았다.
케일은 온몸이 부서졌다가 도로 이어지는 것 같은 고통에 땀을 흘리며 숨을 몰아쉬었다.
그때였다.
“인간.”
케일은 라온의 목소리가 들렸다.
모두가 나가자 깨어난 것인지, 제 입가의 피를 닦는 동글동글한 앞발이 느껴졌다.
“인간, 아직도 아프나?”
1차 성장을 해도 그대로인 동그란 머리가 케일의 옆구리를 비비적거렸다.
“나는 약한 인간한테 제일 먼저 말해줄 거다.”
케일의 귓가로 다가간 어린 용은 작게 속삭였다.
“내 속성이 뭔 줄 아나?”
라온은 케일에게 제일 먼저 말해주고 싶었다.
성장해 낸 자신이 이룬 것을 꼭 제일 먼저 말하고 싶었다.
라온은 케일에게 속삭였다.
“현재.”
라온이 깨달은 것.
“내 속성은 ‘현재’다.”
용은 특정한 자연물뿐만 아니라 특이하거나 추상적인 속성을 지닐 수 있었다.
라온이 가진 속성은 추상적이지만 가장 쉽게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라온은 케일의 옆에 웅크렸다. 에르하벤의 말대로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게 아프고 답답했지만, 라온은 케일의 옆, 자신의 자리에 누우며 말했다.
“지금 여기가 내 속성이다.”
현실로 돌아와 지금 여기에 있을 수 있는 것.
그것이 라온에게는 가장 중요했으며, 그게 라온의 속성이었다.
툭.
라온은 제 머리를 쓰다듬으려 덜덜 떨리는 손에 머리를 비볐다.
역시 지금 살아 있는 게 제일 좋다.
자신도, 모두도.
라온은 케일의 옆에 딱 붙었고, 케일은 어린애의 체온을 느끼며 다시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
***
그리고 다음 날.
달칵.
문이 열렸다.
비크로스는 아버지 론을 대신해 물수건을 들고서 침실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당황했다.
툭.
들고 있던 수건이 바닥에 떨어졌다.
“비, 비크로스-”
“…공자님?”
케일이 일어났다.
그런데 조금 이상했다.
비크로스는 저를 향해 간신히 몸을 일으키는 케일의 모습에 놀라서 얼른 다가가 그를 부축했다.
파들파들 떨리는 손가락이 비크로스의 옷자락을 움켜쥐었다.
“공자님, 무슨 일이! 에르하벤 님을 불러올까요?”
“비, 비크로스-”
힘이 하나도 없는, 떨리는 목소리.
비크로스는 케일의 목소리에, 그 서늘한 얼굴에 핏기가 조금씩 사라져 갔다.
그때였다.
히히.
웃음소리였다.
비크로스는 웃음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라온이 히죽이며 케일의 옆구리에 머리를 비벼댔다.
그 순간 케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투명한 유리구슬처럼 연약한 목소리.
“…고기.”
“네?”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비크로스의 표정이 점점 담담해져 갔다.
그런 그의 옷자락을 꽉 움켜쥔 케일이 간절한 눈빛으로 말했다.
“배고파.”
비크로스는 차분히 물었다.
“안 아프십니까?”
“어. 배고파.”
“…정말 괜찮으신가 보군요.”
케일은 하나도 안 아팠다. 사실, 이전보다 몸이 더 좋아졌다는 것이 느껴졌다.
다만 배가 고팠다.
-이제 그릇이 다 붙었다. 고생했다. 앞으로는 아프지 말자.
짱돌의 목소리.
-불벼락이다! 이제 돈지랄 차례야!
환호하는 불벼락의 목소리.
케일은 둘을 깔끔히 무시했다.
대신 미칠 것같이 배고픈 속을 부여잡았다. 라온은 그런 케일의 모습에 호응하듯 아공간에서 사과파이를 꺼냈다가, 그 상태를 보고는 구석에 밀어두며 비크로스에게 말했다.
“나도 배고프다! 나 업어준 비크로스야!”
“막내 목소린데!”
“둘 다 나았는데! 나도 배고픈데!”
방문을 기웃거리던 온과 홍이 라온과 케일의 목소리에 방문 안으로 들이닥쳤다. 평균 9세들의 목소리로 방 안은 다시 활기가 가득 차기 시작했다.
비크로스의 서늘한 얼굴 위, 입꼬리가 슬쩍 씰룩이며 올라갔다.
그때였다.
“아, 공자님.”
비크로스는 이제 아프지 않다는 케일에게 해야 할 말을 떠올렸다.
어제 론이 로잘린에게 들었다며 알려준 소식이었다. 긴급 소식이었지만, 케일의 상태 때문에 참아둔 이야기였다.
“제국이 위퍼 왕국에게 빼앗긴 마이플성을 다시 차지하기 위해 준비 중이라는 정보입니다.”
음?
케일은 두 눈을 깜박였다.
뭐가 뭐를 했다고?
“…제국이 위퍼 왕국을 친다고?”
“표면적으로는 마이플성만 되찾겠다고 합니다.”
그게 그 말이지?
케일의 표정이 묘해졌다.
지금 이 시기에 모고르 제국이 툰카가 있는 위퍼 왕국이랑 한판 붙는다고?
황태자 아딘이랑 툰카가 붙는다고?
…제국의 뒤통수를 칠 때가 온 건가?
케일은 씰룩이는 입꼬리를 제어하며 눈을 감았다가 떴다.
“소고기 스테이크로.”
일단 배부터 채워야 했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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