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261
260화.
브렉 왕국 죽음의 협곡 국경선.
적막하고 어두운 천막 안.
빛이 존재하는 곳은 천막 한편에 놓인 책상 위뿐이었다.
톡. 톡. 톡.
테이블을 두드리던 손가락은 이내 움직임을 멈췄다.
그 손가락은 이내 피곤으로 충혈된 눈가 근처를 쓸어내렸다.
로운 왕국의 왕세자 알베르 크로스만.
그는 로운 왕국 왕실이 아닌, 브렉 왕국 죽음의 협곡 국경 근처 천막 안에서 잠들지 못하고 있었다.
‘왕세자 저하, 케일 공자의 상황을 알고 계셨나요?’
한 시간 전. 로잘린의 연락을 받았을 때, 그녀는 냉정했다. 하지만 그 속내까지 차가운 상태는 아니었다.
왕세자 알베르는 이를 알기에 순순히 시인했다.
‘알고 있었습니다, 로잘린 씨.’
‘…그렇군요.’
로잘린은 왜 말해주지 않았냐 같은 어리숙한 질문은 하지 않았다.
그 정도 사정은 서로 잘 아는 위치였으니까. 전쟁 중에 누가 아픈 것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저하도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건 아닌 것 같군요.’
‘더 일이 있습니까, 로잘린 씨?’
괜히 물었어.
알베르는 로잘린에게 그 질문을 하지 말아야 했다.
로잘린은 왕세자에게 질문에 대한 답을 해주었다. 그녀는 자신이 본 것과 론이 말해준 것을 모두 들려주었다.
대의는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희생이 옳지도 않았다.
그런 생각을 지닌 알베르였기에, 그는 거친 말을 내뱉었다.
“이런 미친놈.”
“저 말입니까?”
음?
익숙한 목소리였다.
촤악.
천막 입구의 천이 걷혔다.
늦은 밤.
천막 밖에 뺀질뺀질한 표정의 케일 헤니투스가 삐딱하게 서 있었다.
이 새끼가 지금 왜 여기 있나?
알베르는 황당한 마음을 감출 수 없어 그게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왜 왔어?”
케일은 왕세자 알베르가 퉁명스럽게 내뱉는 말에 황당했다.
왜 오긴?
“제국 부수러 왔지요.”
피식.
알베르는 자리에서 일어서 수하가 푹 잠드시라며 가져온 와인을 집어 들었다.
와인 병을 거머쥐는 알베르의 손길은 거침이 없었다. 얼마나 거침이 없는지 코르크 마개를 대충 손아귀 힘으로 뽑아냈다.
“왜?”
“힘 안 숨기십니까?”
“내 맘이다만.”
“역시 로운 왕국의 미래 태양께서는 거침이 없으시군요.”
유들유들하게 웃는 얼굴의 케일은 태연히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 와인 잔을 들어 올렸다.
“복귀했습니다.”
역시 이 자식은 마음에 안 든다.
알베르는 인상을 찡그리며 반대편 소파에 앉았다.
“불경한 놈.”
또르르르.
와인 잔은 붉은 와인으로 채워졌다.
“왕세자에게 술 받는 귀족 놈은 너뿐일 거다.”
“영광입니다, 로운의 태양이시여.”
“너는 혀에 기름칠을 얼마나 하는 것이지?”
케일의 표정이 떨떠름해졌다.
“저하만큼은 아닐 텐데요.”
왕세자의 표정도 떨떠름해졌다. 그 순간이었다.
와인과 함께 가져온 과일 바구니. 톡, 톡, 작은 소리와 함께 바구니에 있던 열매가 공중으로 둥실둥실 떠올라 사라졌다.
아삭아삭.
누군가 과일 먹는 소리가 허공에 들려왔다.
알베르는 케일을 쳐다보다가 소리가 들리는 허공을 바라봤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드래곤 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스스스-
마법이 풀렸다.
열매를 앞발에 쥔 채로, 과일즙이 입가에 한가득 묻은 여섯 살 용이 앞발을 흔들었다.
“반갑다, 왕세자야! 나는 위대한 라온 미르다!”
“네, 네. 대단하십니다.”
케일은 멈칫했다.
다크엘프 쿼터인 것을 떠나, 드래곤과 인사를 나누는 것치고 이 기름칠 잘된 혀의 소유자 알베르가 너무나도 무덤덤했다.
“왕세자야, 안 놀라나?”
라온도 신기했는지 물었고, 알베르는 산뜻한 미소와 함께 제 앞을 가리켰다.
“저 녀석이 더 신기합니다.”
케일은 알베르의 손가락이 저를 향하자 얼굴을 구겼다. 반면 라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왕세자야. 넌 좀 똑똑하다.”
“과찬이십니다. 위대한 라온 미르 드래곤이시여.”
“아니다, 넌 똑똑하다!”
“감사합니다. 이 밤의 지혜를 모두 담아 그린 듯한 총명함을 지니신 라온 미르 님.”
알베르의 칭찬에 라온의 입꼬리가 씰룩이고 날개가 흥겹게 파닥였다.
그 순간, 케일은 알베르와 시선이 부딪쳤다.
‘이러면 되냐?’
알베르 왕세자의 눈빛이 딱 그러했다.
역시 기름칠 잘된 혀.
드래곤조차 찬양하기는커녕 대충 대하는 저 자세.
역시 잘 통하는 사람이다.
케일은 덤덤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손바닥을 내밀었다.
말도 필요 없었다. 알베르는 테이블에 있던 서류 중 제일 위에 있던 것을 케일에게 건넸다.
케일이 그 서류를 펼쳤고, 왕세자는 입을 열었다.
“발렌티노 왕세자가 배가 많이 고픈가 보더군.”
케일은 첫 장을 읽기 전, 잠시 멈춘 채 카로 왕국 왕세자 발렌티노를 떠올렸다.
어딘가 모르게 인간다운 왕세자, 그리고 모고르 제국 황태자 아딘과 절친한 친우 사이로 알려진 사람.
그와 함께했던 식사 자리가 생각났다.
‘배가 고프면 뭐든 잡아먹을 수 있게 돼. 그리고 절박해지지. 케일 사령관, 알베르 왕세자와 긴밀히 연락을 하고 싶네.’
‘얼마든지요. 저하의 배고픔을 채워 드릴 겁니다.’
카로 왕국은, 발렌티노 왕세자는 불굴 연합과 제국의 동맹 사이에서 자신들이 놀아났음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 사실에 대해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저하, 카로 왕국은 제국이 위퍼 왕국을 노린다는 정보를 어떻게 알고 있었습니까?”
“제국이 카로 왕국을 아주 우습게 보았더군.”
알베르 왕세자는 와인을 한 모금 마시며 입을 열었다.
“카로 왕국에 있는 빛 속성 교단과 제국 측의 인사가 접촉하는 걸, 카로 왕국 측 사람이 발견했어.”
카로 왕국은 지난 리오나성 전투 때 도망가려고만 하고 조금의 도움도 주지 않았던 교단들에 이를 갈고 있었다.
하지만 이를 드러내 놓고 하진 않았다.
오히려 발렌티노 왕세자는 겉으로는 전쟁 후 복구 작업을 위해 다시 교단과 친해지려는 제스처를 취하면서, 안으로 은밀히 교단에 대한 감시를 강화했다.
그 결과로, 카로 왕국은 제국과 접촉하는 몇몇 교단을 확인했다.
케일은 그 사실을 듣자마자 한 가지를 떠올릴 수 있었다.
“제국에서 교단과 접촉할 이유는 치유력 신관을 확보하기 위함이겠군요.”
“그렇지. 그리고 전쟁 때, 치유 관련 신성력을 가진 신관이 가장 필요하지.”
케일은 제국도 교단도 납득했다.
특히 빛 속성 교단 중 가장 큰 규모를 지닌 태양신 교단은 분명히 제국의 손을 잡을 것이라 확신했다.
아무리 제국 내에서 태양신 교단이 참혹한 짓을 저질렀다고 해도, 아직 그곳에 태양신 신도가 가장 많았다.
카로 왕국 태양신 교단 주교는 그곳을 손에 넣고 싶을 것이다. 그래야 교황이 될 테니까.
이 모든 걸 알아챈 카로 왕국은 얼마나 화가 났겠는가?
제 안마당에서 온갖 짓들이 몰래 벌어지고 있었다.
케일은 발렌티노 왕세자의 분노를 이해했다. 하지만 알베르 왕세자는 아직 모두 말하지 않았다.
“또 제국은 카로 왕국에 접근했어.”
“함께 동맹을 맺자고요?”
“그렇지.”
하!
케일은 기가 찼다.
“…발렌티노 왕세자가 이를 갈고 있겠군요.”
“카로 왕국을 만만하게 보다 못해 바보로 봤지.”
카로 왕국에 군사를 보내면서도 불굴 연합을 도왔던 모고르 제국.
그곳이 이번에는 교단 내 가장 중심 자원인 치유력 신관을 노리면서, 카로 왕국에게는 동맹을 맺자고 한다.
“모고르 제국은 형제의 나라처럼 끈끈한 카로 왕국과 함께 이 혼돈을 이용해 세를 넓히고 싶다고. 함께하자고 했다는군.”
이야.
케일은 솔직한 감상을 내뱉었다.
“쓰레기네요.”
“뭐, 전쟁이나 정치판이 그렇지.”
“하긴 그렇죠.”
알베르 왕세자는 기가 차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케일의 모습에 조금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일에 황당해하고 분노하는 케일이 조금 순수해 보였기 때문이다.
‘하긴 아직 스무 살이지.’
그 생각을 한 순간이었다. 삐뚜름한 미소를 짓는 케일이 보였다.
“카로 왕국보고 제국과 동맹을 맺으라고 하죠.”
왕세자 알베르는 케일을 바라봤다.
“제국은 본인들이 불굴 연합의 파에른 왕국처럼 되기를 원했겠지만, 카로 왕국이 파에른 왕국이 되도록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불굴 연합을 배신한 파에른 왕국.
제국 또한 카로 왕국과의 동맹에서 결국 배신을 택할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배신하는 자는 카로 왕국이리라.
“…내가 착각을 했군.”
“음? 생각이 다르셨습니까?”
“아니.”
자네가 순수하다는 생각을 한 내가 멍청했지.
알베르 왕세자의 입꼬리도 케일처럼 올라갔다. 그의 생각도 케일과 같았다.
“안 그래도 이미 그러자고 제안했어.”
역시.
케일은 박수를 쳤다. 라온이 과일을 먹다가 덩달아 박수를 쳤다.
“발렌티노 왕세자도 그 제안을 받아들였어.”
“오, 역시 우리 로운의 태양께서는 늘 큰일을 하십니다.”
인간과 용의 박수에 알베르는 조금도 기쁜 표정을 짓지 않았다. 꼭 일하느라 고생했다고, 더 고생하라고 격려하는 박수 소리 같았다.
그래서 그는 손을 들어 박수를 멈추게 하며 입을 열었다.
“아부는 그만하-”
“제국 면적을 줄입시다.”
왕세자 알베르의 눈동자가 케일과 부딪쳤다.
“그럴 생각 아니셨습니까?”
케일은 위퍼 왕국이 내전을 겪었을 때, 그곳에서 은둔하고 있던 마법사들을 빼돌린 왕세자 알베르의 수완을 알고 있었다.
불굴 연합 소속 북부 3왕국은 죽음의 협곡과 어둠의 숲 때문에, 지리상 로운 왕국이 땅을 넘보기가 번거로웠다.
하지만 제국은 그런 방해물이 없다.
알베르 왕세자는 케일의 손에 묘족 기사 렉스 경과 연금술사, 그리고 태양신 쌍둥이도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런 사람이 이 기회를 그냥 놓칠까?
오히려 노리고 있을 터.
대의와 평화를 좋아해도 핏줄은 지배자인 왕을 타고난 사람이다.
‘그렇다면 무기를 쥐고 있는 내가 먼저 내뱉는 게 낫지.’
케일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로운 왕국이 강해지면 득이었다. 그래야 자신과 제 영역 안 사람들의 미래가 한결 더 안전하고 신경 쓸 일이 줄어들 테니까.
겸사겸사 전쟁을 빨리 끝내 평화가 찾아오면 고생하는 서대륙 사람들에게도 좋을 일이었다.
케일은 이왕 움직이는 거 한 번에 휘몰아치듯이 싸잡아 모두 해결해서 이십 대 후반부터 평화롭게 은둔하며 집에서 뒹굴면서 살고 싶었다.
아직 백수의 삶을 놓지 않았다.
케일은 그 다짐을 되새기며 와인을 한 모금 삼켰다. 알베르는 턱을 쓰다듬으며 흘러가듯 평이하게 말했다.
“다 먹으면 체할 것 같고.”
제국을 모두 먹으면 체하니까.
그리고 다른 동맹국들 눈치를 봐야 하니까. 또한 얼떨결에 동맹국들의 힘을 키울 수는 없으니까.
더불어 알베르 왕세자는 평화를 원했다.
그러니까.
“안 체할 정도로 조금만?”
조금만 제국의 땅을 먹어치울 생각이었다.
“우리, 아니, 너의 계획대로 흘러가면 제국에는 새로운 지배자가 들어서겠지.”
제국에는 새로운 지배자가 들어설 것이다.
그래야 뿌리가 바뀔 것이고, 그와 함께 대륙에 전쟁의 씨앗이 사라질 터.
알베르는 그 평화를 위해 움직였지만, 감춰둔 속내가 따로 있었다. 물론 케일이라면 당연히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 속내였다.
“케일 공자, 그때 새로운 지배자가 왕이 될지, 황제가 될지, 그건 우리도 모르는 일이야.”
“그렇죠. 그때 모고르 제국이 지금처럼 제국일지, 왕국이 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지요.”
“로운도 무엇이 될지 아무도 알 수가 없는 일이고.”
알베르 왕세자는 케일에게 와인 잔을 내밀었고 케일은 제 와인 잔을 부딪쳤다.
챙그랑!
경쾌한 유리 소리와 함께 케일과 알베르, 로운 왕국의 새로운 계획이 시작되었다.
그 기념으로 케일은 와인을 쭉 들이켰다.
탁!
빈 와인 잔이 테이블 위에 놓였다.
왕세자는 일어서는 케일을 바라봤다.
“할 일이 있나 보지?”
“네.”
“가.”
미련 없다는 듯 가라고 손짓하는 알베르의 모습에 케일도 별다른 말 없이 천막 밖으로 향했다.
라온이 투명화를 하며 그 뒤를 따랐다.
케일은 자신의 천막으로 향했다.
그곳에 에르하벤이 있다.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고룡과 함께 갈 곳이 있었다.
***
화르르르-
인간이 땅을 파서 만든 땅굴 안. 횃불이 불타며 길을 비췄다.
케일은 고래족 후계자 위티라의 안내를 받으며 땅굴 안을 걸어가고 있었다.
“땅굴 가장 안쪽 감옥에 있어요.”
위티라는 길을 안내하며 주위를 살폈다.
고룡 에르하벤, 그리고 라온, 마지막으로 케일까지.
셋이 브렉 왕국군이 만든 땅굴 안을 거닐고 있었다.
셋은 말이 없었다.
하지만 태연했다.
위티라는 더 이상 깊은 생각을 하지 않았다. 대신 땅굴의 끝, 가장 깊은 감옥에 도착한 순간 살짝 뒤로 물러섰다.
“들어가시면 돼요.”
달캉.
위티라는 마법사들의 잠금 마법 장치가 가볍게 부서지는 것을 보았다.
라온의 검은 마나로 잠금 마법은 손쉽게 파훼되었다.
‘성장했구나.’
위티라는 라온의 성장을 느끼며 이제 침묵을 택했다.
그런 그녀를 스쳐 지나가 감옥 안으로 들어서는 이가 있었다.
케일은 제일 먼저 감옥 안으로 들어섰다.
잘게 온몸을 떨며 시체처럼 누워 있는 이가 보였다.
두 눈과 입이 가려지고 온몸이 결박된 상태.
더불어 인간도, 용도 아닌, 뒤틀린 파충류의 비늘로 뒤덮인 자, 용 혼혈.
케일은 용 혼혈의 옆에 앉았다. 라온이 케일의 바로 옆에 섰다. 경계하는 라온이 느껴졌지만 케일은 별다른 말 없이 용 혼혈의 눈과 입을 가리는 구속구를 벗겼다.
일주일.
케일은 용 혼혈에게 바로 죽을 것인지, 아니면 6개월의 시한부 삶을 살지 선택할 시간을 주었다. 케일은 그 시간보다 조금 더 이르게 용 혼혈을 찾아왔다.
용 혼혈의 검은 눈동자가 케일을 담았다.
그 순간이었다.
“…넌 인간이구나.”
감옥 밖.
이 안으로 들어서지 않은 자.
고룡 에르하벤의 목소리가 케일의 귓가에 들려왔다.
에르하벤의 분노와 한탄이 섞인 목소리가 케일의 귓가에 들려왔다.
“용의 심장을 먹었어.”
용 혼혈은 에르하벤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케일을 쳐다보고 있어야 했다.
조금의 연민도, 분노도. 감정의 한톨도 보이지 않는 눈빛과 표정이 용 혼혈에게로 향했다. 서늘한 암갈색 눈동자가 용 혼혈에게 질문을 던졌다.
“넌 누구지?”
괴로운 시간을 보냈던 용 혼혈의 입안은 메말라 탁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용 혼혈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키메라’라는 단어를 아나?”
서로 다른 종이 결합하여 나타난 생물체.
사자의 머리에 말의 다리. 뒤섞인 존재를 일컫는 말.
키메라.
용 혼혈은 온전한 인간과 온전한 두 용을 보며 말했다.
“나는 만들어진 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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