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262
261화.
키메라. 만들어진 괴물.
그 단어에 고룡은 침음을 흘렸다.
‘자연의 법칙에 어긋난 일이야.’
돌연변이, 변수와는 다르다.
위의 두 가지가 자연 안에서 일어난 일이라면 키메라는 자연 밖의 존재다.
“구백여 년 전.”
용 혼혈의 말이 이어진 순간, 고룡은 탄식을 흘렸다.
2차 성장은 예상했지만 900여년을 살았다니, 용의 수명에 버금갔다.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
에르하벤은 입을 꾹 다물며 용 혼혈의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용 혼혈은 얕은 숨을 내뱉으며 과거를 거슬러 올라갔다.
“나는 홀로 살아남은 아이라고 했어. 그 사람은 나에게 자신을 ‘아버지’라고 부르라 하였지. 홀로 살아남은 아이이니, 그 사람이 내 진짜 아버지는 아니야. 아, 내 아버지가 누군지 궁금하겠지?”
용 혼혈은 케일 바로 뒤에서 자신을 응시하는 어린 용의 눈동자가 보였다.
검푸른 눈동자에는 경계심과 안타까움, 그 모든 것들이 뒤섞여 있었다. 용 혼혈이 보기에는 참으로 순수한 감정들이었다.
어리구나.
정말 저 용은 어려.
그 사실에 용 혼혈은 실소를 흘리며 말을 이었다.
“내 아버지는 ‘하얀 별.’ 암의 수장이지.”
라온이 멈칫했으며, 고룡은 침음을 흘렸다. 문밖에 있던 고래족 위티라도 탄식을 참지 못했다.
다만 용 혼혈은 케일의 눈빛에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탐색하는 눈빛이었다.
여전히 조금의 틈도 없는 눈동자는 자신이 거짓을 말하는지 아닌지, 지금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 냉철하게 관찰하고 있었다.
‘무서운 놈.’
용 혼혈은 흘러나오는 웃음을 막지 않으며 물었다.
“그 사람을 잡고 싶지?”
암의 수장. 하얀 별.
용 혼혈을 동굴에 가둔 사람.
“그런데 말이야. 나도 가면 쓴 얼굴밖에 보지 못했어. 물론 눈가만 가려서 입은 보았지.”
용 혼혈은 자신의 피를 먹는 하얀 왕관을 보며 웃던 그 사람의 입매만 보았다.
그때의 웃음소리가 지금도 잠만 들면 들려왔다. 어두운 공간 속에서 자신이 들을 수 있는 생명체의 소리는 그것뿐이었으니까.
용 혼혈은 기억을 밀어내며 케일을 바라봤다. 눈이 마주친 순간 용 혼혈은 케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케일은 용 혼혈의 말에서 기묘함을 알아챘다.
“‘사람’이라고?”
용 혼혈은 ‘그 사람’이라고 했다.
용 혼혈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상하지?”
으음.
에르하벤은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숨죽인 공간. 용 혼혈의 힘없는 목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하얀 별은 사람이다. 그런데 구백여 년 동안 살아 있어. 죽음의 향기도 나지 않아. 어때?”
“죽음의 향기도 나지 않았다고?”
에르하벤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용 혼혈은 고룡과 눈을 마주했다.
“그래, 에르하벤. 너라면 나에 대해 바로 파악했겠지. 난 반이지만 용의 피를 지녔다. 용은 자연과 죽음의 냄새에 민감하지. 그래서 죽은 마나 냄새를 잘 맡고. 그런 나도 그에게서 죽음의 냄새를 맡지 못했어.”
에르하벤의 표정이 굳어졌다.
“…나를 알고 있나?”
“네 집을 그 사람이 부수라 지시했지. 그리고 그 지시는 내가 전달했는데?”
아.
고래족 위티라의 탄식이 감옥 안을 채웠다.
하나하나 퍼즐이 맞춰져 가고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가장 큰 의문은 남아 있었다.
케일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이상하다.
‘암’의 수장 하얀 별. 그는 누구지?
어떻게 인간이 구백여 년을 살 수 있지?
더불어 반은 용의 피를 지닌 놈이 죽음의 기운도 알아채지 못했다고 한다.
그게 자연적으로 가능한가?
“어때?”
케일은 다시 용 혼혈과 눈이 마주쳤다.
“그 사람 징그럽지? 죽이고 싶지 않아?”
그 사람. 아버지라고 부르라 했던 인간.
“난 그런데.”
용 혼혈은 그 사람을 죽이고 싶었다. 아니, 그러고 싶다. 지금이라도 당장.
힘을 잃은 분노와 울분이 용 혼혈의 눈동자에 떠올랐다.
“내 최초의 기억은 동굴이다. 동굴에서 처음 눈을 떠 그 사람을 마주했을 때, 그 사람은 말했다.”
900여 년 전. 아직도 서늘한 동굴 벽의 기온을 기억하고 있다. 그 서늘함보다 더 차가웠던 목소리가 소리에 대한 최초의 기억이었다.
“용의 심장을 네 몸에 새겼다.”
케일은 에르하벤이 용 혼혈을 보자마자 했던 말을 떠올렸다.
‘용의 심장을 먹었어.’
그 의미가 용의 심장을 몸에 새겼다는 의민가?
케일은 에르하벤을 바라봤고, 충격을 감추지 못해 일그러진 고룡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표정에서는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어진 용 혼혈의 목소리에 케일은 답을 들을 수 있었다.
“그 뒤로 나는 이따금씩 용의 심장을 먹었다.”
…용의 심장을 몸에 새긴 것과 용의 심장을 먹는 건 별개의 일인가?
케일은 순간 말문이 막힌 채로 용 혼혈을 바라봤다.
이놈은 도대체 몇 개의 생명을 잡아먹고 몸을 유지하고 있단 말인가.
하지만 케일은 쉽사리 생각한 바를 내뱉을 수 없었다. 용 혼혈의 눈꺼풀이 잘게 떨렸다. 용 혼혈은 과거를 떠올리고 있었다.
구백여 년. 천 년에 가까운 어마어마한 시간.
“내가 왜 검은색 머리칼에 검은 눈동자인 줄 아나?”
용은 한 시대에 한 가지 색깔을 지닌다.
“뒤죽박죽 섞였거든.”
모든 빛이 섞이면 결국 아무것도 없는 어둠이 된다.
“용들의 심장을 먹었더니 어느 순간부터 색깔이 섞이더라고.”
그의 심장에는 용의 심장이 섞여 있다. 그 심장은 문신처럼 스며들었으며 다른 용의 심장을 먹을 때마다 제 몸을 장악해 갔다.
그러던 어느 날, 눈과 머리칼, 비늘의 색이 모두 까맣게 변해갔다.
용 혼혈은 그 빛깔이 자신의 처지와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 사람은 나를 3차 성장까지 끝나게 만들고 싶은가 보더군.”
완전한 용으로 만들고 싶어 했다.
이유는 모른다.
“그러나 나는 결국 만들어진 존재라 구백여 년간 2차 성장이 한계였다. 그리고 나는 2차 성장까지 그 사람이 준 용의 심장을 총 네 개 먹었어. 몸에 새겨진 심장까지 합치면 나는 총 다섯 용의 목숨으로 만들어진 존재지.”
“…믿을 수가 없어.”
에르하벤은 결국 속마음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용 다섯을 죽였다고?
동대륙 고룡 올리엔까지 합치면 여섯이다.
최소 여섯.
그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니,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용은 홀로 사는 존재인지라 하나하나 따로 죽였겠지만, 결코 약하지 않았다. 홀로 있어도 용은 강했다.
그런데 인간이 용을 그렇게나 죽였다고?
‘…인간이 아니다.’
동굴에서 대부분의 삶을 보낸 용 혼혈과 달리 세상 속에서 천여 년을 살았던 고룡은 제 경험으로 결론을 내었다.
용을 죽인 그놈은 인간이 아니다.
“에르하벤.”
용 혼혈은 그런 에르하벤을 보며 웃었다.
그도 처음에는 암 수장, 아버지가 벌인 일을 믿지 못했다. 그가 가져다주는 심장들을 먹으면서도 믿지 못했다.
하지만 세상 밖에 나오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용은 홀로 살아가는 존재지. 괴팍하고 이기적이고. 그래서 죽어도 웬만하면 아무도 몰라.”
용은 스스로를 고립시킨다. 특히 심한 몇몇은 가족도 잘 만들지 않았다. 성장에 방해가 될 짐을 만들기 싫었으니까.
그게 약점이었다.
죽어도 아무도 모른다.
감싸주고 슬퍼할 가족도, 지인도 없다.
구하러 올 존재가 없다.
“왜 너를 지금에서야 노린 줄 아나?”
에르하벤은 저를 보는 용 혼혈의 눈동자에 스쳐 지나가는 감정을 읽었다.
그건 부러움이었다. 이 용 혼혈은 고룡을 부러워했다.
“에르하벤, 넌 덜 이기적이거든. 다른 용들과 달리 넌 알고 지내는 용들이 꽤 많았어. 그리고 그들을 도왔지.”
동대륙 고룡 올리엔보다 더 고룡인 에르하벤을 암이 건드리지 않았던 이유. 유독 그의 주위에는 다른 생명체들이 많았다.
암은 왜 그런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에르하벤은 미간을 찌푸리며 그 이유를 깨달았다.
‘가루’ 혹은 ‘먼지’라는 속성을 지녀서 그런지 몰라도, 그는 저보다 약하고 하찮고 보잘것없는 것들을 아꼈다. 이상하게 약한 것들에 눈길이 갔다.
아는 어린 용들이 1차 성장을 할 때 보호해 주고, 세계수를 지켜줬으며, 엘프들을 보호하고 몇몇 엘프들의 목숨까지도 구해주었다.
에르하벤은 고고히 홀로 살았지만 고립을 택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네놈이 마지막이 된 거다.”
고룡은 용 혼혈의 말이 끝났을 때, 눈을 감으며 물었다.
“내 심장도 네 것이 될 예정이었나?”
용 혼혈은 고룡의 질문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저를 노려보는 어린 용과 무감각한 표정의 케일 헤니투스를 보며 답했다.
“아니, 그건 아냐. 그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을 뿐이다. 하지만 무엇에 쓰일지는 나도 몰라.”
그저 에르하벤의 레어를 침입하라는 지시를 다른 이에게 전달했을 뿐이다.
용 혼혈은 저와 비슷하게 세월을 보내온 고룡의 아름다운 모습을 눈에 담았다.
흉측한 가짜와 달리, 진짜는 찬란했다. 같은 백금빛도 흉내 낸 백금빛과 진짜는 달랐다.
“…후우.”
용 혼혈은 깊은 숨을 내뱉었다. 몸 상태에 비해 너무나도 많은 말을 내뱉었기 때문이다.
그는 케일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린 용이 자신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검은색이지만 자신과 달리 아름다운 검은 피부와 검푸른 눈동자가 보였다.
자신은 1차, 2차 성장 때 약해지는 그 무기력한 상황에 대해서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다. 그렇게 아프다가 죽어도 상관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그러나 조금 억울했다. 이대로 살다가 죽기에는 억울해서. 그 마음 하나로 성장기를 버텼다.
용 혼혈과 눈이 마주친 라온의 입이 살짝 열렸다가 다시 닫혔다. 똑똑한 용이라고 하지만, 라온은 지금 제 감정을 뭐라 표현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저 용 혼혈의 검은 눈동자를 마주 볼 뿐이었다.
에르하벤도 용 혼혈을 역시 복잡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저만큼 살아온 놈이고, 동족의 목숨을 다섯 개나 차지한 놈이다. 그럼에도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그때였다.
“또 오지.”
덤덤한 목소리가 감옥 안을 채웠다.
케일이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또?”
용 혼혈이 저도 모르게 되물었을 때, 케일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할 시간이 아직 남았으니까.”
케일이 준 생각할 시간 일주일. 아직 일주일이 되려면 며칠 더 있어야 했다. 하지만 용 혼혈은 케일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어 입을 열었다.
“…난 용 다섯의 생명으로 이루어진 존재야. 바로 죽여야 하지 않아? 화 안 나? 난 저주받은 존재야.”
“내가 널 살려줄 사람인가?”
순간 용 혼혈은 말문이 막혔다.
케일은 착각하는 듯한 용 혼혈에게 진실을 말해주었다.
“어느 쪽으로든 널 죽게 할 사람이 나다.”
지금 바로 죽든, 6개월 동안 고통 속에서 괴로워하다 몸이 터져서 죽든.
결국 그는 죽는다.
“죽을 방식을 네가 택하게 해줄 뿐이야.”
그 선택에 따라 케일이 이놈에게서 얻어가야 할 것들과 얻을 방향이 달라질 뿐이었다.
“네 목숨이니 네가 알아서 택하도록.”
라온은 미련 없이 용 혼혈에게서 뒤돌아서는 케일과 케일을 쳐다보는 용 혼혈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케일에게로 날아갔다. 그리고 케일의 표정을 보고는 괜히 등에 매달렸다.
“…나는 좀 더 남아 있도록 하지.”
“편한 대로 하십시오.”
에르하벤은 제 말에 아무렇지도 않게 답하는 케일을 쳐다보다가 용 혼혈을 바라봤다.
“나랑 이야기 좀 하지.”
“…마음대로.”
고룡과 용 혼혈의 대화가 시작되려 했다.
그때, 감옥 밖으로 나가려던 케일이 걸음을 멈추고서 입을 열었다.
“야, 너 이름이 뭐지?”
케일은 잠시의 정적 뒤, 용 혼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아버지는, 그 사람은 용이 되면 이름을 지어준다고 했지.”
그러나 용 혼혈은 진짜 용이 될 수 없는 존재였다.
케일은 얼굴을 있는 대로 찡그렸다.
‘제기랄, 괜히 물어봤어.’
케일은 치밀어 오르는 짜증을 억누르며 감옥 밖으로 나가 버렸다.
고래족 위티라는 고룡 에르하벤의 가보라는 손짓에 인사를 하고는 케일의 뒤를 따랐다.
타닥, 타닥.
횃불의 빛을 제외하면 어두운 땅굴 안에 발걸음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위티라도 라온도 아무 말 없이 케일의 눈치를 보았다.
그리고 케일은 이 판타지 세상을 욕하고 있었다.
‘썩어빠진 세상!’
‘암’이고 하얀 별이고 나발이고 간에, 빌어처먹을 ‘영웅의 탄생’만큼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는 세상이었다.
확 엎어버리고 싶은데 유리 몸이라 엎어버릴 힘도 없다.
‘제기랄!’
짜증에 가득 찬 걸음걸이는 거침없으면서도 거칠었다.
케일은 감정을 실은 투박한 걸음을 내디디며 땅굴 입구로 향했다. 곧 땅굴의 입구가 보였다.
“공자, 제가 열까요?”
뒤에 따라오던 위티라가 말을 건네며 앞장서려고 했지만, 케일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짜증을 가득 담아 앞길을 방해하는 입구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어이구야!’
그리고 놀랐다.
쾅!
문을 도로 닫았다.
케일은 제 심장 근처 가슴께를 움켜쥐었다.
와씨.
이야, 씨.
케일은 숨을 들이마시고 다시 문을 열었다.
“너 왜, 왜 이러고 있어? 아니, 언제 왔어?”
얼마나 놀랐던지 말을 더듬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케일 님.”
최한이 문 바로 앞에 서 있었다.
‘이 자식은 틈만 나면 왜 문 바로 앞에 있어?’
최한에게 몇 번 간 떨어질 뻔했던 케일은 얼굴을 있는 대로 구겼다. 그는 최한에게 뭐라 말을 몇 마디 하려다가 들려오는 소리에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고래족 위티라는 최한의 눈빛에 표정이 묘해졌다.
“공자님!”
“케일 공자!”
케일은 최한의 어깨 너머로 로잘린과 라크가 이쪽으로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범고래 아치는 고개를 연신 가로저으며 터덜터덜 그 뒤를 따라왔다.
“케일 님.”
“어?”
부드럽고 순한 목소리에 케일은 다시 최한을 쳐다봤다.
최한이 문서 두 장을 케일에게 내밀었다.
“협약 문서를 받아 왔습니다.”
북부 3왕국 중 2왕국.
노르란드와 아스코산의 서명이 들어간 문서.
케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생각보다 빨리 일을 처리하고 왔다. 역시 이들은 먼치킨답고, 유능했다.
케일의 눈동자가 저 멀리 협곡 절벽 반대편으로 향했다.
불굴 연합기가 아스라이 보였다.
밤임에도 희미한 빛을 받은 깃발들이 펄럭이고 있었다.
때가 왔다.
“케일 공자!”
“로잘린 씨.”
케일은 근처까지 다가온 로잘린에게 함박 미소와 함께 말했다.
“이제 곰족과 드워프족의 뒤통수를 치면 되겠군요.”
첫 번째 전쟁의 종식이 멀지 않았다.
불굴 연합기.
드디어 저 깃발을 찢어버릴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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