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265
264화.
케일은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섰다.
이미 새벽은 지나가고 어느덧 해가 하늘 가장 높은 곳에 떠오른 한낮이 되었다.
우아아아아-
와아아아-
환호성이 케일의 귓가를 두드렸다.
반나절도 되지 않는 짧은 몇 시간.
하지만 그 몇 시간 동안 많은 것들이 이뤄지고 끝을 맺었다.
케일은 브렉 왕국군 진영 중심에 내려서며 한 사람과 마주쳤다.
“케일 헤니투스 사령관.”
왕세자 알베르였다.
그는 케일에게 다가가며 로잘린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패배한 적들을 모두 결박시켜라!”
패배.
적들은 패배하였고, 우리는 승리를 거머쥐었다.
곰족이 아무리 강하다고 평받는 수인족들 중에서 개체수가 가장 많다고 해도, 죽음의 협곡에 있는 숫자는 천 명에도 한참 모자랐다.
화염의 드워프족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런 그들을 수만의 보병과 수백여 명의 기사, 그리고 강자들이 포위했다.
당연히 결과는 승리밖에 남을 수가 없었다.
알베르는 케일의 앞에 섰다.
싱거운 승리.
그럼에도 이 승리를 조금 만끽하고 싶었다. 그래서 제일 고생한 놈 마중을 나왔다.
“어떠냐?”
왕세자는 케일을 보며 지금의 심정을 물었다.
와아아아-
두웅- 둥-
환호성과 즐거운 북소리, 더불어 발을 굴리는 소리들이 뒤섞인 공간. 알베르는 케일의 심정이 궁금했다.
여전히 담담한 저 표정으로 무슨 생각을 할지, 알고 싶었다.
“저하.”
“그래.”
케일은 담담한 얼굴로 툭 내뱉었다.
“추운 데 있었더니, 배고프네요.”
“이런 감정도 뭣도 없는 놈-”
하아.
알베르는 겨우 말을 멈추며 한숨을 내쉬었다.
곧 로운의 차기 왕이 될 알베르와 이번 전쟁의 중심, 케일 헤니투스 사령관.
병사들은 두 사람이 마주한 모습을 보며 차마 가까이 다가오지 못했다. 다만 어떠한 기대를 품고서 두 권력자들을 바라봤다.
조금 떨어진 곳, 전투가 벌어졌던 곳은 환호성이 가득했다.
하지만 아군의 주둔지에는 아직 그런 환호성이 퍼지지 않았다. 그건 주둔지에 있는 중심인물들이 조용했기 때문이리라.
그걸 알베르도 알고 있었다.
그는 화사한 미소를 그렸다.
‘자, 정신 차리고 네 할 일 해야지?’
알베르의 눈빛이 말했고, 케일은 찰떡같이 알아들었다.
“저하, 아군이 승리하였습니다.”
사령관은 묵직하면서도 기쁨을 담은 목소리로 알베르에게 보고했다.
왕세자는 케일에게 다가가 감격에 겨운 듯 그를 와락 안았다.
왕세자와 사령관.
두 사람이 말없이 포옹을 하는 모습은 병사들의 마음을 찡하게 만들었다. 특히 냉정해 보이던 두 수장이 저러니, 드디어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승리했구나.
드디어 끝이 왔구나.
병사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손에 힘을 풀었다.
툭. 툭.
무기들이 하나둘 바닥으로 떨어졌다. 혹은 무기를 꽉 쥐어 하늘로 들어 올렸다.
그리고 외쳤다.
와아아아아-
기쁨의 환호성이 주둔지 곳곳에 퍼지기 시작했다. 천막들 사이사이로 점점 더 많은 환호성이 울려 퍼지며 승리의 감정이 퍼져 나갔다.
알베르는 예전 수도 마법 폭탄 때가 떠올랐다. 그때도 케일과 이런 짓을 했었다. 물론 이런 짓이라고 해봤자 별다를 것은 없었다.
그저 감격한 얼굴로 환하게 웃으며 작게 중얼거릴 뿐이었다.
“훈장 싫지? 돈 줄까?”
“네, 황금패 주십시오.”
“뭐 하게?”
“돈지랄, 아니, 돈 쓸 데가 있습니다.”
그리고 진심이 담긴 케일의 요구가 들려왔다.
“배고픕니다.”
하아.
알베르는 짜증이 확 치밀어 올랐다. 그때, 그는 케일과 함께 땅에 내려선 이가 보였다. 클로페 세카. 원래는 고고하고 말없는 수호기사인 줄 알았던 놈.
그놈은 다른 병사나 기사들과 달리 알베르, 케일 곁에 있었다.
알베르는 클로페 세카가 하는 말이 들렸다.
“역시 케일 님은 이런 환호를 받을 만한 영웅이십니다.”
뒤이어 케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실, 저놈 조금 맛 갔습니다.”
나도 알아.
알베르는 한숨을 삼키며 화사한 미소와 함께 포옹을 풀었다. 케일도 듬직하고 멋진 사령관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약한 인간이랑 왕세자랑 또 그렇게 웃는다! 사기 치려는 건가?
케일은 오랜만에 들린 라온의 사기 칠 거냐는 물음을 깔끔히 무시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나둘, 일행이 전장에서 다시 아군의 주둔지로 돌아오고 있었다.
케일은 라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집에 가나?
이번에 케일은 라온의 말을 모른 척하지 않았다.
“아니, 별장.”
케일은 속삭이듯이 답하고는 왕세자 알베르에게 시선을 두며 말했다.
“돌아가시죠.”
알베르는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지.”
일단 로운 왕국으로, 수도로 가야 했다.
***
“…내가 왜 그랬지.”
케일은 스스로에 대한 비판을 하기 시작했다.
왜 수도부터 간다고 했을까.
돌아가자는 말에 묘하게 덤덤하던 왕세자를 알아차렸어야 했다. 그 인간이 그냥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끄덕일 리가 없었다.
역시 뭔가 찝찝하더라니. 케일은 얼굴을 있는 대로 일그러뜨렸다.
그런 그의 입안으로 사과 파이 한 조각이 들어왔고, 케일은 이를 먹으며 마차 창문 커튼을 살짝 걷었다.
보인다.
은빛 방패가 보인다.
현재 케일은 퍼레이드 중도 아니었다.
그냥 헤니투스 백작가 황금 거북이 상징도 없이, 겉보기에는 평범하고 소박해 보이는 마차를 탄 채 이동 중이었다.
그런데도 창밖에 은빛 방패를 들고 다니는 애들이 보였다. 검은 로브를 뒤집어쓰고 다니는 애들도, 검은 천을 두건처럼 쓰거나 검은 실을 머리카락처럼 매단 채 검을 들고 다니는 애들도
보였다.
그리고 화려하게 꾸민 거리를 볼 수 있었다.
아주 기쁨이 철철 넘치는 수도의 모습이 조그마한 창밖으로 보였다.
제기랄.
“인간! 오랜만에 오는 별장도 좋다! 우리 집만큼은 아니지만, 역시 천막보다는 좋다!”
검은 용 라온은 푹신한 마차 소파에 앉아서 사과 파이를 하나 더 케일 입안에 욱여넣었다.
라온은 케일을 따라갔다가 처음 머물렀던 집 중 하나에 다시 와서 기분이 꽤 좋았다.
수도에 있는 헤니투스 백작가.
죽음의 협곡에서 돌아와 그곳에서 하루 머무른 라온은 입꼬리를 씰룩이며 날개를 파닥였다. 그리고 사과 파이를 하나 메리에게 내밀었다.
“메리야! 너도 먹어라!”
“감사합니다, 라온 님.”
평온한 기계 같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케일이 메리의 검은 로브를 눈에 담은 순간이었다. 메리는 담담하게 고저 없이 말했다.
“어제 저택 밖에서 공자님을 연호하는 목소리들이 간간이 들리더군요. 왕국민들이 기뻐서 공자님을 위한 노래를 부르고 갔다고 합니다. 방패와 불기둥, 물의 장벽에 관한 노래라더군요.”
…망했다.
케일은 해탈한 표정으로 사과 파이나 씹어 먹었다.
그러다가 최한이 보였다.
마차에는 케일, 메리, 최한, 라온, 라크가 함께 타고 있었다. 마부석에는 당연히 마부와 함께 부단장 힐스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로잘린은 아직 브렉 왕국에서 뒤처리 중이라 오기 힘들었다. 특히 곰족, 드워프 문제와 관련하여 케일이 그녀에게 부탁한 것이 있어, 고래족 위티라와 함께 그 처리를 하느라 정신이 없을
것이다.
‘나중에 곰족하고 드워프도 만나러 가야겠군.’
케일은 수도에 있는 헤니투스 백작가 저택 지하를 떠올렸다.
지하에 있는 연무장. 라크가 첫 광폭화를 했던 그 장소에서 현재 범고래 아치와 파세톤이 용 혼혈을 감시하고 있었다.
케일이 용 혼혈에게 주었던 일주일이 끝나갔다.
오늘 밤. 케일은 용 혼혈에게 선택의 결과를 물으러 가야 했다.
이런저런 복잡한 생각들이 케일의 머릿속에서 뒤엉켜가고 있었다. 그래서 멍하니 최한을 보던 케일은 그의 표정을 보고 무심코 물었다.
“너 어디 또 전쟁 가냐?”
“…제가요?”
순하게 미소 짓는 최한에게 케일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어. 왜 검집을 계속 잡고 있어?”
“왕궁에 간다고 생각하니 떨려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가?
케일은 최한의 상태가 묘하게 이상했지만, 그러려니 넘기려 했다. 그때, 라온이 외쳤다.
“인간아, 최한은 지금 강해지는 중이다!”
“…여기서?”
“그래!”
“마차 안에서?”
“그래!”
“사과 파이 먹으면서?”
“그런 게 있다!”
뭐라는 거야.
케일은 황당한 눈빛으로 라온을 쳐다봤지만, 라온은 입을 꾹 다물며 시선을 피했다. 그래서 최한을 쳐다보자, 최한은 그저 담담하게 말했다.
“그저 밥값 하려고 할 뿐입니다.”
밥값은 충분히 하고 있다만?
케일은 아무래도 이상했지만, 딱히 저를 향해 날을 세우는 게 아니라 그냥 넘어갔다. 케일의 시선이 다시 마차 창밖을 쳐다보며 구겨졌고, 최한은 그런 케일을 바라봤다.
그는 론과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케일이 아팠던 때, 아니, 죽을 뻔했을 때.
그 대화가 끝나갈 쯤, 론이 최한에게 말했다.
‘너나 나나 한 번은 겪어봤다. 그러니 더 이상은 안 된다. 여기가 마지막 집이다. 그건 알고 있겠지?’
알다마다.
최한은 너무 잘 알아서 탈이었다.
론은 자신이 동대륙에서 떠나야 했던 경험과 최한이 해리스 마을에서 겪었던 일을 언급하며 헤니투스 가문을 마지막 집이라고 칭했을 것이다.
하지만 최한은 론처럼 ‘한 번’만 경험해 보지 않았다.
홀로 이 세계에 떨어졌을 때 이미 집을 한 번 잃었으며, 해리스 마을에서 다시 한 번 잃었다. 그리고 이번이 세 번째.
정말로 마지막이 되어야 했다.
최한은 스스로가 가진 한계를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불완전한 어둠.
자신의 검은 오러는 아직 완전히 어둠을 담지 못했다. 라온도 케일도 완전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하지만, 괜찮은 것과 별개로 최한은 미래를 준비해야 했다.
그는 지금도 검을 매만지며 수련 중이었다.
아니, 생각 중이었다.
어떻게 하면 어둠을 완성할까?
외로움과 절망에 익숙했던 과거로 돌아가 그때를 다시 느껴야 할까?
온갖 생각들이 뒤섞여 최한의 내면은 고요하게 휘몰아치고 있었다. 그는 단 하나의 벽만 남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벽을 뛰어넘을 한 번의 발돋움.
그것만 있으면 된다.
다만 걱정이 일었다.
스스로 발돋움하지 못하면 디딤대가 필요하다.
밟고 올라설 존재가 필요하다.
그러나 최한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는 제 두 발로만 벽을 넘어서고 싶었다. 라온이 그러했듯, 라크가 그러했듯이.
“아, 최한.”
“네, 케일 님.”
“저번처럼 궁 부수지 마라.”
케일은 대답 대신 순하게 웃어 보이는 최한의 모습을 찝찝하게 쳐다보다가 이내 마차 창밖으로 보이는 광경에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마차는 로운 왕궁 정문을 지나치고 있었다.
조금씩 조금씩, 입에서 입으로 퍼진 종전 소식.
그 소식의 공식적인 발표가 오늘 이루어질 예정이었다.
***
왕세자 알베르는 단상 위로 향하는 계단을 하나씩 밟았다.
로운 왕궁 정문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중앙궁. 그 중앙궁에서도 가장 높은 곳.
그곳의 테라스에 선 그는 그보다 높은 단상 위로 향했다.
왕도, 다른 왕족들도 없이, 오로지 알베르만이 이 단상 위에 올랐다. 그렇게 얘기가 되었으니까.
와아아아아아-
단상에 선 순간, 알베르는 왕궁 정문 너머 저 멀리 중앙광장에 모인 왕국민들이 보였다. 그들은 저렇게 모여서 알베르를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알베르가 단상에 서자, 마법사가 다가와 곧바로 알베르 앞의 영상 통신구를 가동시켰다.
우우웅-
영상 통신구가 점점 더 빛을 발하며 연결을 시작했다. 알베르는 잠깐의 틈 동안, 뒤돌아섰다. 그리고 테라스 안쪽에 위치한 이에게 손짓했다.
그러자 그 손짓을 받은 상대방은 기겁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댔다.
케일이었다.
그는 질겁한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고 그럴 때마다 꽤 긴 머리칼이 흔들렸다.
알베르는 그 모습에 피식 웃음을 흘렸다.
‘저런다고 왕국민들이 네 공을 모를 줄 아는 건가?’
참 희한하게 똑똑하면서도 멍청한 놈이다.
살다 살다 힘든 곳에서는 제일 앞장서면서 꼭 보상을 받아야 할 자리에서는 뒤로 빠지는 놈은 처음 보았다.
권력도 명예욕도 없고, 돈 욕심만 무진장 많은 놈.
‘갑자기 오십억 정도가 왜 필요하지?’
도통 이해할 수 없는 놈이다.
“저하, 연결되었습니다.”
마법사의 말이 끝나자 알베르는 영상 통신구 앞에 똑바로 섰다.
와아아아아-
더 커진 환호성이 들려왔다.
아마 자신의 모습이 저 멀리 중앙광장에 나타나고 있으리라.
알베르는 왕국민들과 함께 광장에 있을 순 없지만, 그들이 눈앞에 있는 것처럼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가 입을 여는 순간, 광장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그 적막을 뚫고 왕세자의 말이 울려 펴졌다.
담담한 목소리가 로운 왕국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그 말은 짧았다.
“전쟁이 끝났다.”
왕국민들은 소리 없이 주먹을 꽉 쥐거나 입을 틀어막았다.
들어도 들어도 짜릿한 소식이었고, 공식적으로 듣는 순간, 마음속을 꽉 채워 벅차게 만들었다.
“로운은 스스로를 지켰으며, 또한 이 대륙을 지켰다.”
왕세자의 말이 귓가를 지나 가슴에 들어왔다.
가장 먼저 불굴 연합과 부딪쳐야 했던 로운 왕국.
버틸 수 없을 것이라 평해지던 왕국.
그 왕국이 첫 번째로 싸워 불굴 연합을 이겼으며, 대륙 곳곳에서 활약해 마침내 전쟁의 끝에서 승리를 거머쥐고 왔다.
“내가 했던 말을 기억하는가?”
불굴 연합이 전쟁을 선포했을 때, 가장 마지막으로 입장을 발표했던 로운 왕국.
그때 로운을 대표해서 알베르가 했던 말이 있었다.
“이 땅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곳이 로운 왕국이다.”
왕국민들은 그 말이 다시 떠올랐다.
그리고 왕세자가 저 말을 하고 난 뒤에 했던 말도 떠올랐다.
‘살아남은 자들의 힘을 보여주겠다.’
왕세자는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지금, 왕세자의 말은 그때와 달라져 있었다.
“우리는 살아남았으며, 우리는 살아남은 자들의 힘을 보여주었다.”
로운은 서대륙에 자신들의 역사와 힘을 결과로 보여주었다.
왕세자의 밝은 미소가 왕국민들의 눈동자에 맺혔다. 부드러운 목소리가 점점 봄을 닮아가는 햇볕처럼 따스하게 들려왔다.
“이제 즐거운 마음으로 봄을 맞이하면 된다.”
봄을 맞이하라.
아무런 걱정 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그 말을 끝으로 왕세자는 마법사를 쳐다봤고, 영상 통신구가 끊어졌다.
동시에 저 멀리서 하늘에 닿을 듯한 환호성이 들려왔다.
와아아아아-
이 기쁨은 아마도 일주일은 수도와 왕국 전역을 가득 덮으리라.
알베르는 왕국민을 향하던 미소 띤 얼굴 그대로 단상을 내려왔다.
타닥. 타닥.
단상을 내려온 그는 테라스를 지나 다시 실내로 들어섰다. 그러자 사령관 케일 헤니투스와 네 명의 인물이 더 보였다.
전쟁의 공을 세운 다른 이들은 다른 공간에 있었고, 케일과 이 넷만을 따로 여기로 불렀다.
서북부의 스텐 후작.
동남부의 아일란 후작.
중앙의 오르세나 공작.
서남부의 기예르 공작.
각 지역을 대표하는 귀족가의 수장들이 왕세자의 앞에 서 있었다. 화사한 미소의 그와 달리, 귀족들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알베르는 저처럼 미소를 짓고 있는 케일을 보며 손을 들어 올렸다.
탁.
촤르르륵-
그가 손을 든 순간, 테라스 문이 닫히며 순식간에 커튼이 쳐졌다.
테라스 너머 보이던 바깥 풍경이 사라졌다.
그 환한 햇살도, 왕국민들의 함성도. 모든 것들이 단절되었다.
왕세자 알베르는 입을 열었다.
“케일 헤니투스 사령관.”
“네, 저하.”
햇살이 사라지자, 겨울의 서늘함만이 남아 실내를 차갑게 만들었다. 알베르는 네 귀족의 굳은 얼굴을 보다가 케일에게 물었다.
“이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지?”
평온한 물음에 담담한 답이 들려왔다.
“제국의 깃발을 찢으러 가야 합니다.”
왕세자 알베르는 케일의 모습이 보였다.
전쟁의 끝을 외쳤건만, 케일은 아직 동북부 사령관의 검은 제복을 벗지 않고 있었다.
겨울의 끝자락. 다가오는 봄을 맞이해 웅크렸던 생명들이 기지개를 켜듯, 로운 왕국은 날개를 펼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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