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27
26화.
셋도 그냥 셋이 아니다. 하나는 띨띨한 용이요, 하나는 파문을 원하는 미친 신관이요, 하나는 스텐 후작가 놈이다.
“하.”
케일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속절없이 흘러나왔다. 그는 고개를 푹 숙였다가 들었다. 그러자 조용해진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 분위기가 의아해 케일은 한스를 쳐다봤다.
한스가 어색하게 웃으며 비통한 표정의 평기사 톰과 마차 창문에 얼굴을 드러낸 테일러 쪽으로 눈짓했다.
테일러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불편하시다면, 자리를 비키겠습니다.”
버려진 후작가의 장남. 하반신 마비가 된 후로, 가문에서 최소한의 지원만 해주는 처지가 된 테일러의 인생은 하루 아침에 나락으로 치달았다.
후계자가 아닌 스텐 귀족 자제들의 말로는 죽음임을 아는 이들은 모두 테일러를 외면했고 불편해했다. 베니온이나 다른 형제에게 잘 보이려는 이들은 가끔씩 테일러를 대놓고 무시하기도 하였다. 남작가 자제보다 못한 처지가 테일러의 처지였다.
테일러는 헤니투스의 망나니 케일을 알고 있었다. 부유한 황금 거북이, 붉은 머리의 젊은 남자. 케일 뿐이었다. 아무리 중립인 헤니투스 백작가라고 하더라도 자신과 섞이는 것을 불편해 할 수도 있었다. 몸이 이렇게 된 후 모든 이들이 그랬다.
테일러는 케일의 한숨 소리에 현실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그 때였다.
“뭘 비킵니까?”
무미건조한 표정의 케일이 테일러의 마차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여기가 내 땅도 아니고. 같이 여행하는 처지에 그런 유치한 짓은 안 합니다.”
마차 창문을 사이에 두고 케일은 테일러와 마주했다. 그리고 슬쩍 그 안을 들여다봤다.
‘있네.’
미친 신관 케이지가 마차 안 쪽에서 자신을 물끄러미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의 저주술은 참으로 기괴하다고 하였다. 다른 이들이 처음 보았을 때는 저주 받은 직업 네크로맨서의 재림이라고 할 정도였다.
케일은 케이지에게서 시선을 돌려 테일러를 보며 손을 내밀었다.
“헤니투스 백작가의 케일 헤니투스 입니다.”
테일러는 마차 밖으로 내밀어진 손을 바라봤다. 그러다가 다시 무표정한 케일의 얼굴을 쳐다봤다. 달칵, 테일러는 마차 문을 열었다. 예법 상 자신도 마차에서 내려 인사를 해야 했다. 그게 예의였다.
“제가 다리가 불편해서 마차 밖으로 나가기가 힘듭니다.”
“압니다.”
테일러는 그런 것에는 전혀 괘념치 않는 케일을 잠시 쳐다보다가 악수를 했다. 케일은 얼른 그 손을 잡았다가 놔버렸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케일 공자.”
전혀. 케일은 전혀 반갑지 않았다. 그는 케이지에 대한 소개도 받기 싫어 바로 뒤돌아 서려 했다. 하지만 테일러는 과하게 예의바른 사람이었다.
“여기는 제 일행인 케이지 신관님이십니다. 영원한 안식의 신을 모시는 분이시죠.”
영원한 안식. 죽음을 가리키는 표현이었다. 케일은 터져나오려는 한숨을 꾹 참으며 케이지를 쳐다봤다. 케이지는 선량한 신관의 표본처럼 성스럽게 인사를 건넸다.
“반갑습니다. 케일 공자님. 케이지 신관이라 합니다. 밤의 편안함이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밤의 편안함. 죽음의 신을 모시는 이들이 일반인들에게 건네는 인사말이었다.
‘얼어죽을.’
밤의 편안함은커녕 오늘 밤 케일은 제대로 잠이 들지 못할 것 같았다. 그는 상냥하게 웃어보이는 케이지를 보며 레모네이드를 마시는 기분을 느꼈다.
‘착한 척, 신관인 척 하는 게 제일 가증스럽고 귀찮아서 파문되고 싶다더니.’
연기 하나는 잘 했다. 케일은 선량한 신관의 표본이라 불릴 미소를 짓는 그녀에게 씩 웃으며 담담하게 말했다.
“전 신 안 믿습니다.”
케이지의 눈빛에 묘한 빛을 띠웠다. 그 눈빛은 신관 앞에서 뭔 이런 정신 나간 소리를 대놓고 하냐는 눈빛이었으나 그 눈빛을 케일은 반겼다. 계속 그렇게 생각하며 역시 망나니라고 여기길 케일은 바랐다.
“재밌는 분이시군요.”
“제가 좀.”
케일은 그녀의 말에 대충 답하며 테일러의 마차를 둘러보았다. 후작가 장남이라기엔 초라한 행색이었다. 기사 한명에, 마부로 따라온 수하, 그리고 케이지와 테일러 본인.
‘아마 돈도 다 떨어졌겠지.’
퍼슬 시에 위치한 저택에 마법 장치를 설치하느라 꽤 많은 돈을 썼을 것이다. 현재 후작가의 지원도 제대로 못 받는 처지니, 비상금을 쓸 수도 없을테고. 돈이 늘 부족한 상태로 최대한 그 지출을 줄이려 할 것이다.
마차를 훑어보는 케일의 행동에 테일러는 초라함을 억누르려 눈을 꾹 감았다가 떴다. 그걸 케일은 별 의미 없이 보며 생각에 잠겼다.
‘나 때문에 수도 가는 것 같은데.’
저들이 가는 방향이야 뻔했다. 수도, 왕세자 아니겠는가.
“한스.”
“네. 공자님.”
다가오는 한스에게 대충 케일은 지시했다.
“도와드려.”
“네.”
“식사도 따로 챙겨드리고. 야영지도 우리 옆쪽에 하나 만들어 드리고.”
밥도 같이 먹기 싫고. 괜히 야영지도 같이 쓰기 싫었다.
“그리고 나 찾지마. 네 재량으로 알아서 도와드려.”
괜히 얽힐 틈을 만들고 싶지도 않았다. 물론 마음대로 상황이 흘러갈 것 같지는 않지만.
“네. 공자님을 모시듯 모시겠습니다.”
“그러든가. 그리고 술 좀 가져 와.”
얘는 또 왜 이렇게 갑자기 열정적으로 변했어? 케일은 열정적인 한스의 모습을 떨떠름하게 쳐다보고는 테일러에게 고개를 작게 숙이며 인사를 대신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테일러 공자.”
“네. 배려 감사합니다. 케일 공자.”
“배려는 무슨. 아닙니다.”
묘한 표정으로 인사를 건네는 테일러에게서 케일은 미련없이 뒤돌아섰다. 그리고 곧장, 조금도 다른 곳에 시선을 두지 않고 자신의 마차로 향했다. 물론 옆에 따라붙는 부단장에게 지시를 내렸다.
“저쪽에는 기사 한명 같군. 부단장. 자네가 저쪽 불침번도 관리해.”
“네. 공자님.”
마차에 올라타기 전, 케일은 부단장이 테일러의 기사에게 뭐라 말하는 것을 확인했다. 불침번에 대한 것이리라. 기사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지는 것을 확인 후 케일은 곧바로 마차에 올라탔다.
탁. 경쾌한 소리와 함께 마차 문이 닫혔다. 그 닫힌 마차 문을, 황금 거북이가 새겨진 마차를 다른 이들은 잠시 쳐다보다가 이내 모두 제 할일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 마땅히 할 일이 없는 케이지와 테일러만이 그 닫혀진 문을 빤히 바라봤다.
그리고 마차에 올라탄 케일을 두 고양이들이 반겼다.
“나 저 사람들 아는데.”
“홍아. 누나도 봤던 사람들이야.”
창밖으로 상황을 지켜보던 고양이들이 다가와 슬그머니 옆에 앉더니 저들끼리 대화를 나누었다. 케일은 보지 않고 나누는 대화였지만 케일을 향한 물음이었다.
케일은 그래도 눈치가 빠른 고양이들에게 말했다.
“모른 척.”
“용처럼?”
“어.”
고양이들은 수긍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케일은 그 모습을 확인하고는 팔짱을 낀 채 눈을 감았다.
‘치료의 별.’
그가 테일러와 케이지에게 알려준 고대의 힘 이름이었다. 이 힘을 케일이 알게 된 것은 왕세자와 광장 테러 사건 때문이었다.
치료의 별. 단 한 번 한 사람의 어떤 상처나 병도 그 이전의 건강한 상태로 돌릴 수 있는 일회성 고대의 힘. 그 힘을 왕세자는 가지고 있었다. 죽은 왕비가 건네준 힘이었다.
광장 테러 사건 때, 왕족들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비밀 단체는 테러를 감행한다. 광장과 수도 여기저기에서 마법 폭탄이 터졌다.
그 때 최한은 반 밖에 막지 못했다. 그 또한 엄청난 일이었기에 왕국에서는 그를 대단히 여겼지만 최한 스스로는 나머지 폭발로 죽어간 이들을 떠올리며 비밀단체에 대한 증오를 키워나갔다.
‘그 때 비밀단체는 폭탄 몇개를 사람에게 설치하지.’
최한은 천재 마법사 로잘린과 함께 사람에게 설치된 폭탄들부터 막으며 그 사람들의 대피를 도왔다. 그 당시 최한이 유일하게 구하지 못한 노인이 있었다.
그 노인은 폭탄을 벗어던지다가 오른쪽 팔과 다리가 터져나갔고 이에 최한은 상당히 괴로워하였다. 그 노인의 다친 모습을 목도한 왕세자는 치유의 별에 대한 것을 떠올리고 그 때 책에는 치유의 별이 언급된다.
당연하게도 왕세자는 그 힘을 노인에게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에 죽은 노인을 본 것으로 죄책감을 가지는 최한을 위로하며 그를 영웅으로 치켜세울 뿐이었다.
‘어쩌면 당연한 거지.’
케일은 왕세자의 그 판단을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본인 물건 본인이 알아서 쓰는데 자신이 뭐라할 권리가 무엇 있겠는가. 물론 최한이나 로잘린이라면 그 힘을 썼을 것이다.
“그런데 용 동생은 따라오는 거에요?”
홍의 물음에 케일은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된 거 이왕 용도 잘 써먹어야지.’
구해주고 말려고 했으나, 은혜 갚은 까치나 호랑이 형님도 아니고 졸졸 쫓아다니는 용을 제대로 써먹어야 할 것 같다. 써먹을 방도도 이미 이틀 밤을 생각하며 정해두었다.
케일은 최한이 발견한 마법 폭탄 5개의 위치는 알았지만, 발견하지 못하고 터진 나머지 다섯개의 위치는 정확히 모른다.
발견한 다섯개 폭탄의 경우, 최한은 로잘린의 천재적인 마나 감응력을 통해 하나씩 겨우 겨우 발견해낸다.
그런데 케일에게는 로잘린과는 비교도 못할 뛰어난 마나 감응력을 가진 존재가 어미 잃은 오리마냥 쫓아오고 있다.
“고생 좀 시켜봐야지.”
고양이들이 흠칫했지만 케일은 이를 모른 채, 수도에서 용에게 시킬 노동을 하나씩 정리해나갔다. 이를 모른 채 그 다음 날, 이른 아침부터 용은 멧돼지 고기를 야영지에 배달해놓았다.
수도에서의 계획을 세우느라 늦잠을 잤던 케일은 멧돼지 고기를 확인하러 나갔다가 묘한 분위기에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젯밤, 그는 마차 안에서 밥 먹고 잠도 잤다. 철저히 테일러 일행과는 엮이지 않으려 했다. 그렇기에 지금의 이 묘한, 어딘가 어두침침한 분위기를 이해할 수 없었다.
“한스. 무슨 일이야?”
한스가 난감한 미소를 지으며 케일을 맞이했다. 그를 비롯한 케일 일행들은 이제 이 고기와 과일들에 대해 의심을 서서히 거두고 있었다.
론이야 어찌 생각하는지 몰라도, 다른 이들은 최한과 케일이 괜찮다고 한 부분이었기 때문에 그럭저럭 이해하고 넘어갔다. 더불어 요리사 비크로스가 최상급 재료라고 단언하기도 하였다.
“하하, 공자님 일어나셨습니까?”
한스는 슬금슬금 테일러 일행 쪽 눈치를 보더니 케일에게 다가왔다.
“저, 아무래도 테일러 공자님께서 오해를 하나 하신 듯 합니다.”
“오해?”
케일은 멧돼지와 그 근처에 휠체어를 타고 있는 테일러, 그 휠체어를 잡고 있는 케이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죽은 멧돼지 앞으로 가 휠체어 옆에 서며 입을 열었다.
“무슨 일입니까?”
늘 그렇듯 용이 잡아온 멧돼지 크기는 어마어마했다. 거의 호랑이보다 더 큰, 비크로스가 기뻐할 멧돼지였다.
그리고 멧돼지 옆에는 늘 그렇듯 그림이 있었다. 포크 그리기가 귀찮았는지 나이프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케일 공자. 죄송합니다.”
아침부터 이건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일까.
테일러는 허무한 미소를 입가에 매단 채 멧돼지를 차마 쳐다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아무래도 제 행적이 다 들통이 났나 봅니다.”
행적? 의아해하는 케일에게 신관 케이지의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그녀는 화가 나 있었다.
“비밀리에 왔는데, 어떻게 이런. 나조차 알아채지 못할 힘을 지닌 존재라니. 이건, 너무 하잖아.”
용을 네 힘 수준으로 어떻게 알아차려? 케일은 상황 파악을 끝냈다.
웬만한 힘으로 잡을 수 없는 거대한 멧돼지를 깔끔하게 죽인 솜씨. 그리고 케이지 신관에게 들키지 않고 몰래 놓아두고간 그 은밀함. 엄청난 실력자임을 드러내놓았고 그 옆에 그려진 칼 그림.
케일에게는 작은 나이프였으나, 저들에게는 거대한 칼로 보인 듯 했다. 케일은 절망감과 미안함이 뒤썩인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테일러를 외면하였다.
“…케일 공자. 이 일은-”
“비크로스.”
그리고 비크로스를 불렀다.
스텐 후작가의 차남 베니온은 지금 상당히 바쁠 것이다. 그런 그가 뭐하러 하반신 마비의 버려진 장남에 모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겠는가. 베니온이 수도에 ‘치유의 별’이 있는 걸 아는 것도 아니고.
“네. 공자님.”
아침 햇살에 번쩍이는 식칼을 들고 비크로스는 그 무뚝뚝한 얼굴에 신남을 표현하며 다가왔다.
“아침부터 스테이크 해야 겠는데.”
“공자님. 이번에도 최상급 스테이크 나올 것 같습니다.”
멍하니 이를 지켜보던 테일러의 입이 열렸다.
“…이번에도?”
케일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우리 일행 중에 식량 배달을 하는 이가 있습니다.”
“…누구입니까?”
피식. 케일은 코웃음을 치켜 기가 차다는 듯 답했다.
“보기와 달리 부끄러움이 많은 녀석이라. 볼 수는 없습니다.”
그는 야영지 뒤편에 위치한 한 나무의 잎이 들썩거리는 것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었다. 그리고 그 가로젓는 행동에 테일러와 케이지의 얼굴이 벌겋게 물들어 갔다.
“크흠. 그, 그렇군요. 저희가 오해를 하나 한 듯 합니다.”
“그럴수도 있죠. 비크로스는 훌륭한 요리사라 음식을 잘 하니, 스테이크나 드시고 가세요.”
비크로스가 멧돼지를 쓰다듬다 말고 케일을 쳐다봤다. 케일은 그러나 그 시선에 눈을 둘 수 없었다. 들려온 테일러의 말 때문이었다.
“케일 공자. 수도에 가는 길이라 들었습니다. 혹시 괜찮다면 그 가는 길 뒤따라 가도 되겠습니까?”
역시. 이럴 줄 알았다. 케일이 예상하던 바였다.
“편한 대로 하십시오.”
수도에 같이 간다고 케일 자신이 그 편지의 주인공인 것을 알 리도 없고. 이왕 이렇게 된 거 수도까지 잘 데려다주고 빚 하나 지워놓아도 좋을 것이다.
잘 해결해내면 써먹을 데가 많은 인재 둘 아닌가.
“네. 수도 근처까지만 잠시 신세지겠습니다.”
케일은 테일러의 말에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눈치는 있어.’
수도 근처. 딱 케일이 베니온과 스텐 후작가에게 후에 둘과 함께 한 것을 들켜도 곤란하지 않을 위치에서 테일러는 헤어지자고 말했다. 수도까지 함께 들어가면 여러모로 곤란한 일이 많을테니까.
“그건 보고 결정하죠.”
물론 케일은 그들과 생각이 달랐다. 마법 상자에는 아직 여러 물건들이 그 유용한 쓰임을 기다리고 있었다.
“네. 어디든 괜찮으신 데까지만 함께 부탁드립니다. 공자.”
“그러죠.”
평이하게 대답하는 케일을 테일러와 케이지는 묘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하지만 케일은 그 시선을 외면하며 한스에게 말했다.
“식사는 마차로.”
“네.”
케일은 다시 마차로 향했다. 그 때였다. 그를 불러세우는 이가 있었다.
“케일 공자님.”
케이지였다. 그녀는 두통이라도 오는 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그에게 다가왔다. 다가오는 그녀를 보며 케일은 영 찝찝한 기분을 느꼈다.
“왜 그러십니까, 신관님?”
“정말로 믿으시는 신이 없으십니까?”
이건 또 무슨 소린가.
“네.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케이지의 알겠다는 대답에 케일은 얼른 마차로 향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그녀에게 테일러가 다가왔다.
“왜 그래?”
케이지는 친한 이들과 신전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앞에 나서는 일이 극히 드문 이였다. 그런 그녀가 인상까지 찌푸리고 케일에게 말을 건 행동이 그는 의아했다. 그녀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상당히 찝찝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상해.”
“뭐가?”
“아니, 꼭.”
케이지는 자신의 뒤통수를 매만졌다.
“꼭 죽음의 신이 안쓰러운 눈빛으로 내 뒤통수를 쓰다듬는 그런 찝찝한 기분이 들어.”
“…무슨 그런 기분이 다 있어? 잠을 잘못 잔 거 아냐?”
“그런가.”
케일을 볼 때 그녀는 그런 기분이 계속 들었다. 꼭 어릴 적 신전에서 새 신전을 짓는다고 어마어마한 노동을 시켰을 때, 이를 다 하고 뻗어버린 케이지에게 죽음의 신이 시선을 둘 때 이런 기분이었다.
‘케일 공자가 테일러와 나를 악덕 신전처럼 부려먹을 리도 없고.’
케이지는 테일러의 말대로 잠을 제대로 못 잤다고 생각하며 그 기분을 털어내었다.
그렇게 케일의 일행은 늘어났고 특별할 것 없이 편안하게 수도로 향했다.
케일이 잠시 찌뿌둥한 몸을 풀려고 마차 밖으로 나갈 때마다 테일러 일행이 그에게 시선을 두었지만. 그들도 케일도 별다른 대화를 하지 않았다.
그렇게 계속 이동을 하여 수도에 도착하기 하루 전 밤, 마지막으로 여관에서 머물게 되었을 때.
“케일 공자. 술을 좋아하시지요?”
테일러와 케이지가 케일을 찾아왔다.
“무슨 일이십니까?”
이 늦은 시각에 찾아온 그들에게 케일은 이유를 물었지만 딱히 의아해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그 태도에 테일러는 미소를 그렸다.
“술이 없으면 하루도 살지 못하는 망나니 케일 헤니투스.”
테일러는 유력한 소가주 후보였을 시절, 모든 귀족 자제에 대한 정보를 머리속에 심어두고 있었다. 케일에 대한 정보는 특이했기에 모를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닌 것 같습니다.”
허나 정보와 달리 마주한 케일은 달랐다.
자신들을 생각해 늘 마차에서 지내며 그 대우를 최상으로 해주는 배려심을 지녔으며, 수하들은 그를 믿고 따랐다.
무엇보다도 자신들을 평범하게 대했다.
“소문과 당신은 달랐습니다.”
수도를 코앞으로 둔 이 시점. 테일러와 케이지는 내일 새벽부터 숨을 죽인 채 은밀히 움직여야 했다. 물론 왕궁에 들어갈 때는 당당히 들어가야겠지만. 그 전에 숨어서 알아볼 것도 준비할 것도 많았다. 허나 그들은 원래 계획과 달리 움직이고자 결심했다.
일주일이 넘는 시간 동안 지켜 본 케일 헤니투스. 이 사람이 테일러와 케이지의 머릿속에 들어왔다.
“케일 공자. 떠나기 전 술 한잔은 괜찮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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