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270
269화.
“복수라니요?”
정글의 지배자 리타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무슨 그런 말을 하냐는 듯 쳐다봤다. 그 대답에 케일이 의미를 파악하지 못해 주춤했을 때, 리타나는 미소를 그리며 입을 열었다.
“심판일 뿐이에요.”
오.
케일은 흘러나오려는 감탄을 삼켰다.
심판이라니, 이 얼마나 오만한 표현인가.
하지만 그녀는 제국의 3배 크기에 달하는 서대륙의 남부 정글 14구역을 제 발 아래에 둔 사람이었다.
정글은 타 왕국에 비해 마법도 기술도 무엇도 발전하지 않은 곳이었다.
대신에 그들은 다른 쪽으로 발전해 왔다. 정글의 힘은 한 번도 세상에 나온 적이 없어서 다들 모르고 있을 뿐이었다.
케일은 오만하게 웃는 리타나에게 두 손을 들어 보이며 수긍했다.
“제국을 심판한다고 말할 수 있는 곳은 정글뿐일 겁니다.”
케일은 그녀에게 문서를 하나 건넸다. 그가 이곳에 온 목적이 담긴 문서였다.
리타나는 문서를 받아 들며 입을 열었다.
“제국이 과연 마이플성 탈환 선전포고를 할까요?”
“당연히 할 겁니다.”
케일의 대답은 막힘없이 흘러나왔다.
‘제국이니까.’
제국이니까, 그렇게 행동해야 한다.
첫 번째로, 기습은 제국의 명예를 버리는 행위이다.
두 번째로, 제국과 위퍼 왕국을 제외한 중부의 왕국들은 모두 전쟁과 연결된 곳들로 전쟁에 상당히 민감한 상태였다.
그런 와중에 제국이 타 왕국을 기습한다?
‘대륙의 긴장감이 극도로 높아지겠지.’
더불어 타 왕국들이 제국을 향해 날카로운 시선을 보낼 것이다.
그러니 제국은 명분 세우기 좋은 ‘마이플성 탈환’을 내걸며 공식적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컸다.
“그럼 나중에 전장에서 만나요.”
리타나는 다시 흑표범 위에 올라탔다.
그녀는 전사들을 이끌고 정글 1구역 해안가로 갈 것이다.
케일의 별장 터가 존재하는 곳이자, 4왕국 1종족 연합 협약이 이루어진 그곳에서 정글 전사들은 곧 다가올 그때를 위한 준비를 하리라.
케일은 떠나는 리타나에게 인사를 하며 걸음을 옮겼다.
“제국으로 돌아갑니까?”
케일은 혼자 정글 1구역에 오지 않았다.
당연히 투명화한 라온과 최한, 온과 홍이 함께 왔다. 최한 어깨에 매달린 홍이 외쳤다.
“렉스 경이랑 첫 광폭화 준비하러 가야 하는데!”
“맞는데. 렉스 경은 묘족에 대해서 아는 게 우리보다 없는데. 심각한데. 똑똑한 왕 만들어야 하는데.”
온이 최한의 품에서 하품을 하며 심각하게 말했다.
하지만 케일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제국은 조금 이따가 가도 돼.”
“그럼 위퍼 왕국으로 갑니까?”
케일은 최한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이놈은 요새 어디 가는지 왜 이리 궁금해해?’
여태껏 군말 없이 알겠다고만 하던 최한이 요즘 들어 어디를 가는지 참 궁금해했다. 그렇다고 자신의 뜻에 반대하는 건 아니었다.
‘하긴 그동안 내가 말없이 막 시키긴 했지.’
김록수일 적에도 새 팀장이 되었을 때, 직원들에게 용병, 능력자들 관리에 대한 단편적인 지시만 내려 은근한 반발을 많이 겪었었다.
‘팀장님, 좀! 말 좀 해주세요! 왜 맨날 혼자서 다 합니까? 그런다고 세상이, 사람들이 알아주는 줄 아십니까? 우리가 회사원이라고 말해도, 사실 그런 일 아니잖아요. 왜 혼자서! 제발 그러지 마세요.’
‘팀장님, 허구한 날 웹소설이나 책만 보지 말고, 사람하고도, 예? 우리하고만이라도 대화 좀 합시다! 예?’
‘우리도 팀장님과 같은 마음이란 말입니다! 우리가 비록 위장해서, 숨어서 활동하지만, 그래도 가슴에 품은 뜻은 팀장님과 같아요!’
케일은, 김록수는 자신처럼 ‘퇴사’, ‘백수’가 꿈이라는 직원들을 떠올렸다가 이내 지웠다. 자신과 달리 가족이 있는 이들에게 모든 걸 다 말하고 일시키기가 그랬다. 그래서 단편적인 지시만 내리게 되었다.
케일은 저를 쳐다보는 최한과 온, 홍, 그리고 투명화한 채로 보고 있을 라온을 생각하며 툭 던지듯 말했다.
“어디 가는지 알아서 뭐 하려고?”
“따라갈 겁니다.”
“같이 갈 건데!”
“어딜 가는지 알아야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는데.”
최한, 홍, 온의 대답이 동시다발적으로 튀어나왔다.
케일은 헛웃음을 흘렸다.
“약한 인간은 내가 이동시켜 줘야 한다! 나 위대한 라온 미르 없으면 어디 못 간다!”
일행만 있는 공간에 투명화한 라온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약한 인간은 약하다! 내가 데려다 줘야 한다!”
케일은 알 수 없는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러다가 멈칫했다.
-자유를 원해? XX 같은 세상을 벗어나고 싶지?
…하늘을 잡아먹는 물의 목소리다.
-원래 사는 게 X같지만, 나만 믿어. 네 자유를 위해 나는 뭐든 XXX시켜 버릴 수 있어.
…세상에.
케일은 지난번에 기미가 보이긴 했지만, 청아한 목소리가 내뱉는 걸죽한 욕설에 새삼 당황했다. 그때, 뒤이어 짱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중해라.
-쳇.
짱돌이 물을 진정시키고 있었다.
케일은 기가 찼다.
‘요즘 고대의 힘들이 조용하다 싶더니. 역시 이것들은 점점 더 이상해져 가고 있어.’
케일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어쩌다가 이리 이상한 것들을 주웠을까. 그는 심각한 얼굴로 최한을 바라봤다.
“최한.”
“네.”
“너는 평화와 정의를 사랑하나?”
순간 최한은 말문이 막혔다.
평균 9세들은 슬그머니 입을 닫으며 두 사람을 이리저리 쳐다봤다.
“그게-”
최한은 케일의 물음에 쉽사리 대답을 하지 못했다.
17살. 그때까지만 해도 평화와 정의는 막연하게 옳다고 생각하던 개념이었다. 하지만 덩그러니 교복만 입은 채 어둠의 숲에 떨어졌을 때. 그는 세상을 보는 관념이 바뀌었다.
그러나 인간답게 살기 위해 평화와 정의를 택했다. 그게 마음이 편했다.
그렇지만 우습게도 마음 편한 길은 세상에 없었다. 최한의 지금이 그랬다.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집도, 가족도, 친우도 모두 생겼건만. 위험도 함께 다가오는 것이 느껴져 늘 마음이 불안했다.
최한은 케일을 바라봤다.
답을 내려주시려는 걸까?
자신의 이 불안한 마음을 알고 뭔가를 말해주시려는 걸까?
그렇다면 자신이 먼저 케일의 물음에 답해야 할 것이다.
최한은 마침내 입을 열었다.
“…평화와 정의가 멀게만 느껴집니다.”
특히 평화가 너무 멀게 느껴졌다.
“멀지.”
케일이 동의한다는 듯 담담하게 답하는 말에 최한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의 눈에 여전히 황폐한 정글 1구역이 보였다.
그 순간, 케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가까워질 수 있어. 얼마든지.”
“…케일 님.”
희망을 말씀하시려는 걸까?
최한은 제 어깨에 손을 올리고는 격려하듯 두드리는 케일을 볼 수 있었다. 케일도 그처럼 정글 1구역을 보며 입을 열었다.
“동대륙도 멀지.”
냐아옹.
평균 9세 중 맏이인 온만이 이 대화가 뭔가 이상함을 눈치챘다.
하지만 아직 다른 이들은 눈치채지 못했다.
최한은 슬픈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동대륙처럼 멉니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그곳처럼, 평화와 정의가 멀게 느껴집니다.”
“걱정 마.”
“케일 님.”
걱정 말라는 말이 최한의 마음속에 크게 다가왔다. 그는 저 멀리 황폐해진 땅을 바라보는 케일의 우수에 찬 눈동자를 보며 주먹을 쥐었다.
자신이 했던 다짐이 떠올랐다. 전설로 향하는 길을 만드는 사람이 되자고.
“제가 반드시 평화와 정의가 있는 그 길까지 모시-”
“옆집이야, 옆집.”
“네?
옆집? 어디가? 동대륙이?
최한이 잠시 멈칫하며 그를 불렀다.
“…케일 님?”
“평화와 정의는 얼마든지 가까워질 수 있지.”
역시.
최한은 결국 케일이 도달해 내는 결론에 꽉 쥔 주먹에 힘을 더 주었다. 얼마든지 가까워질 수 있다는 말은 자신도 그곳에 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상상을 하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최한은 절망이 있는 길일지라도 기꺼이 검을 들고 앞장설 수 있었다.
“최한.”
“네.”
케일이 최한을 바라보며 말했다.
“함께 가자.”
최한은 케일에게서 한 걸음 물러섰다. 그리고 저를 쳐다보는 그에게 고개를 숙였다. 크게 예의를 차리지 않은 동작이었지만, 그의 눈빛은 주군에게 답하는 기사처럼 결연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네, 어디든 가겠습니다.”
그때, 눈치를 보고 있던 6살 검은 용이 냅다 외쳤다.
“나도 간다, 인간!”
“그래. 알아.”
“안다니 좋다! 아니다, 당연히 그렇게 알아야 할 거다!”
“그래. 그러니까, 동대륙 텔레포트 마법진 펼쳐.”
“응?”
라온이 멈칫했다.
냐아아아옹.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온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케일은 저마다 다른 표정의 일행을 바라봤다.
제국에 두고 온 이들을 뺀 최한, 온, 홍, 라온.
이 조합은 딱 라온을 구하러 갔을 때의 그 조합에 라온을 더한 것과 같았다. 꼭 김록수일 때처럼 주변에 뭐 없는 녀석들끼리만 이리 모였다.
그는 꽤 마음에 드는 조합을 보며 입을 열었다. 그 표정은 비장했다.
“내일 여관 개업식이다.”
냐아아옹.
온이 한숨처럼 울음소리를 냈다.
그걸 모른 채, 케일은 라온에게 말했다.
“여관에 간다.”
***
최한은 멍하니 3층짜리 여관의 간판을 바라봤다.
“어때?”
케일의 물음에 최한은 솔직하게 답했다.
“…너무 따뜻해 보입니다.”
빨간 지붕에 하얀 벽을 가진 여관은 꽃과 나무들이 심어진 작은 정원 같은 마당을 지녔으며 어딘지 모르게 정겨운 분위기를 풍겼다.
-맞다! 최한 말대로 따뜻해 보인다! 우리 별장, 아니, 사업체 자격이 된다! 인간아, 문을 열어라!
케일은 흐뭇한 얼굴로 여관 입구를 열었다.
딸랑딸랑.
손님이 왔다는 신호로 경쾌한 종소리가 울렸다.
최한은 그 귀여운 소리를 따라 들어섰고, 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도련님, 어떻습니까?”
“좋네. 보수를 잘했어.”
최한은 시종 론의 옆에 있는 이들을 바라봤다.
요리사로 보이는 남자 두 명, 그리고 종업원으로 보이는 남자 세 명이 보였다. 다섯 명 다 순박하고 선하게 생겼다.
특히 살포시 짓고 있는 미소가 참으로 사람 좋아 보였다.
‘긴장했군.’
하지만 최한은 다섯 명이 긴장 상태라는 것이 느껴졌다.
‘꼭 암살 예고장을 받은 사람같이 긴장하는군.’
이상했지만, 최한은 케일의 행동에 생각을 접었다.
“뒤뜰에 있는 여관 식구들도 소개해 주지.”
“아, 네!”
안 그래도 여관 뒤쪽에서 많은 수의 사람 기척이 느껴졌다.
사실 최한은 동대륙에서 케일이 무엇을 했는지 자세히 몰랐다. 그래서 새로운 식구들이 누구일지 상당히 기대되었다.
최한은 뒤뜰로 연결된 후문을 향해 걸어가는 케일의 뒤를 따라가면서도 주위를 둘러보았다. 헤니투스 백작가와 왕궁, 그런 곳들과 달리 소박하면서도 아기자기하고 따뜻한 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어느 초보자 모험가라도 마음 편해질 공간으로 보였다.
‘여기가 우리 새집인 건가?’
동대륙에 새로 생긴 터가 최한을 조금 신나게 만들었다. 처음부터 꾸려가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그래서 그는 꽤 가벼운 마음으로 뒤뜰로 향하는 문턱을 지나쳤다.
‘꽤 강한 기운도 몇 명 느껴지는데, 여관 경호로 뽑으신 건가? 역시, 작은 것도 놓치지 않으셔.’
그리 생각하며 최한은 뒤뜰에 꽉 찬 인원들을 마주했다.
그리고 잠시 멈칫했다.
살벌하다.
얼굴들이 하나같이 살벌하다.
그리고 비장했다.
또 하나 더.
“…왜 저 옷을-?”
“아, 유니폼이야, 유니폼.”
케일은 최한이 굳어 있든 말든 태연히 답했다.
“우리 여관의 가치인 모험, 정의, 평화를 담아낼 유니폼이지. 우리가 사랑하는 가치들을 위해 행동해야 하지 않겠어?”
최한은 뒤뜰에 모인, 그러니까 식구들 중 맨 앞에 선 자, 장대한 골격의 가장 강해 보이는 이를 쳐다봤다.
검은색 옷이다.
그리고 하얀 별 하나와 붉은 별 다섯 개 무늬가 조잡하게 새겨져 있었다.
누가 보아도 가짜 암 옷이었다.
일부러 조잡하게 만든 가짜 암 옷이 유니폼이란다.
최한은 케일을 바라봤고, 케일은 무심하게 아공간 주머니에서 꺼낸 옷 하나를 최한에게 내밀었다.
“네 거다.”
“…감사합니다.”
검은 옷에는 붉은 별이 하나 새겨져 있었다.
마찬가지로 조잡하다.
그때, 케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두의 평화를 위한 시작이 될 거다.”
최한은 옷을 조심스럽게 움켜쥐며 답했다.
“멀지 않군요.”
“그래.”
“무엇을 하면 됩니까?”
최한의 목소리와 함께 케일의 머릿속에 목소리가 하나 들려왔다.
-돈지랄을 할 때가 왔어! 왔다고!
파괴하는 불.
그 짠돌이 불벼락이 오랜만에 목소리를 냈다.
-난 은화를 집어 던지던, 천사와 같은 네 모습을 잊지 못했어! 은화보다 성스러워 보였다고!
케일은 아공간 주머니에서 붉은 별이 새겨진 옷을 하나 더 꺼내 들었다. 불벼락은 아직 말하는 중이었다.
-너 툰카인가 하는 놈한테 불놀이하자며?
맞다.
케일은 툰카에게 불놀이를 하자고 했다.
-너도 알잖아.
파괴하는 불이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이 힘이 제격이야.
당연히 케일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개업식에 맞춰서 동대륙에 들르지 않았던가.
제국과의 전쟁을 위한 마지막 열쇠를 만들러 왔다.
케일은 살벌한 얼굴만 골라서 데려온 산적들과 최한을 보며 입을 열었다.
“오늘 여관 개업식이 열린다.”
평범하고 따뜻한 개업식은 저녁 시간까지 열릴 것이다.
하지만 해가 진 후.
“그리고 오늘 밤부터 리브엔시 뒷세계 조직들을 하나씩 부순다.”
최한의 검 한 방이면 조직 건물 문짝이 다 뜯겨져 나갈 것이다.
케일은 웃는 얼굴을 숨기지 않았다.
산적들을 데려온 전 채주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가는 동안, 케일은 담담하게 선언했다.
“아, 우리 조직 이름은 ‘진짜 암’이다.”
누가 ‘너희는 누구냐?’ 하고 물어보면, 사실대로 ‘우리는 진짜 암이다!’ 하고 답하면 딱 좋은 이름이었다.
-약한 인간, 우리 이제 동대륙도 구하나?
케일은 무시무시한 말을 하는 여섯 살을 모른 척하며 붉은 별이 새겨진 로브를 꺼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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