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277
276화.
드러난 호수 밑바닥, 그곳에 마치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진동하며 대지가 갈라지기 시작했다.
쩌저적-!
마치 열 손가락 산의 봉우리 정상에서 마주했던 그 용암처럼, 갈라진 틈새에서부터 무엇이든 녹일 것은 붉은 액체가 땅 밖으로 나타났다.
그 액체를 본 순간, 케일은 외쳤다.
“다 피해!”
그러자 한 존재가 외쳤다.
“비행!”
최한과 온, 홍의 몸이 공중으로 솟구쳤다. 그들을 비행시킨 존재는 에르하벤이었다. 하지만 최한은 공중으로 떠오르는 와중에도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런-”
호수 밑바닥에서 붉은 액체가 보인 순간, 지옥을 닮은 시뻘건 액체는 하늘을 집어삼킬 듯 치솟아 올랐다.
촤아아아!
마치 땅에서부터 폭우가 쏟아져 내리는 것처럼, 거대한 붉은 액체가 호수 밑바닥에서부터 솟구쳐 올랐다.
땅이 흔들렸다.
호수 밑바닥을 차지하고 있던 대지는 저 붉은 액체를 견딜 수 없다는 듯 속절없이 무너졌다.
최한이 과거에 몇 번이나 보았던 불기둥처럼 치솟아 오른 그것은.
“케일 님!”
해일이 되어 케일을 덮쳤다.
덮쳐오는 불꽃을 바라보며 케일은 생각했다.
‘망했다.’
아무래도 잘못 건든 것 같다.
-으하하하하하하, 커컥, 하하하하하하!
사레들릴 정도로 웃어대는 저 미친 불벼락을 잘못 건든 것 같다.
케일은 돈주머니들을 든 채 황당한 표정으로 저를 덮치는 용암을 쳐다봤다.
그때, 케일의 머릿속에 여인의 목소리가 울렸다.
-날아올라.
…어?
케일은 멈칫했다.
딱 한 번 들었던 목소리.
바람의 소리.
그 힘을 얻었을 때 들렸던 도둑의 목소리였다.
지금까지 신물을 발견하면 그저 작은 회오리바람을 만들어 길을 안내해 주기만 하던 이가, 처음으로 제 존재감을 드러냈다.
신의 물건을 훔쳐서 도망쳤던 그 여인이, 바다에 잠겨 자유로운 바람을 잃은 채 죽어야 했던 도둑이 말했다.
-불을 누구보다 잘 아는 존재는 바람이지.
불과 바람은 떼어낼 수 없는 존재다.
그들은 서로를 휘감으며 점점 더 거센 재앙이 되었다.
케일은 제 발끝에 스스로 맴도는 바람이 느껴졌다. 불이 강해지려는 순간 나타난 바람의 존재. 케일은 의아했지만, 발을 굴리며 땅을 박찼다.
케일이 바람과 함께 위로 솟구쳐 올랐다.
콰아아아앙!
그가 떠난 땅을 용암이 뒤덮었다.
용암은 호수를 집어삼킨 것으로는 부족하다는 듯 점점 더 많은 대지를 거침없이 뒤덮기 시작했다.
그렇게 빠른 속도로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던 용암은 결국 죽은 고룡 올리엔이 남겨둔 결계와 부딪쳤다.
콰아앙!
콰앙!
결계 경계에 용암이 닿자 나무줄기들이 튀어나와 용암을 막아섰다. 하지만 용암은 나무줄기를 손쉽게 집어삼켰다.
모두 녹였다.
“…이런 무지막지한 힘이라니.”
에르하벤은 할 말을 잃었다.
에르하벤은 회색 눈 호수를 다시 방문한 순간부터, 저번에 이곳으로 케일을 데려오느라 잠시 뚫었던 올리엔의 결계를 다시 펼쳤다.
비록 하늘을 잡아먹는 물은 사라졌지만 올리엔의 흔적을 남겨두고 싶어 결계를 유지시킨 것이었다.
그리고 케일이 뭘 저지를지 모르니 남들의 시선도 피할 겸 올리엔의 결계를 복구시킨 것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 결계가 속절없이 무너질 판이었다.
“이 박복한 놈이!”
에르하벤은 기가 차서 케일을 쳐다봤다. 그러나 선뜻 그에게 다가가 말할 수 없었다.
‘불이 날뛰어.’
케일의 몸에, 그의 피부에 붉은 기가 맴돌고 있었다. 마치 불에 감싸인 사람처럼 그의 몸에서 붉은빛이 뿜어져 나왔다.
더불어 그의 몸에서 날뛰는 불의 기운이 느껴졌다.
케일도 그런 스스로의 몸을 잘 알고 있었다.
“크윽.”
몸에 무리가 왔으니까.
아픈 게 아니었다.
더웠다.
아직 3월 초인데, 너무너무 더웠다.
‘내 주제에 뭘 강화한다고!’
케일은 짜증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참지 못하고 저도 모르게 목의 단추를 풀었다. 더워서 저도 모르게 나온 행동이었다.
그의 입에서 뜨거운 김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케일은 멍하니 있을 수 없었다.
용암이 다시 케일을 노리기 시작했다.
올리엔의 결계 따위는 관심도 없다는 듯, 용암은 바람의 소리로 간신히 하늘에 버티고 있는 그를 향해 다시 해일을 만들었다.
고대의 힘은 스스로 얻는 것. 케일은 비행 마법의 도움을 얻을 수 없었다.
그 순간에도 케일은 바람의 소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둘이 함께 싸우면 누구도 앞을 막지 못했다.
파괴하는 불, 짠돌이는 용사라 불렸다. 그리고 숨어서 지내야 했던 도둑은 그런 그를 가끔씩 도와주었다.
둘이 함께 적과 싸울 때면, 어느 누구도 그들을 막지 못했다. 막을 수가 없었다. 방해물은 모두 집어삼키고 몸집을 더 크게 키웠으니까.
-불이 본래의 힘을 찾아야 나도 내 진짜 힘을 쓸 수 있다.
뭐?
다가오는 용암을 보던 케일의 몸이 멈칫했다. 진짜 ‘바람의 소리’의 힘이라고?
-자유로운 바람의 힘은 단지 이동과 소용돌이가 다가 아니야. 바람은 어디든 존재한다.
나무도, 땅도, 불도, 물도, 그리고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도.
그 모든 것들의 옆에 늘 존재하는 공기의 흐름이 바로 바람이다.
-그래서 홀로 있을 때보다 누군가와 함께할 때 가장 아름답지.
비록 그녀는 도둑이었지만, 늘 동료들을 도왔다. 그래서 가장 파괴적인 불이 되도록, 가장 강력한 대지, 가장 단단한 나무가 되도록, 물이 저 멀리 바다 건너 동대륙에 가도록 도와주었다.
-언젠가 신물을 쓸 때.
케일은 미간을 찌푸렸다.
‘신물이라니?’
케일이 소유하거나 타인에게 맡겨놓은 신물은 총 세 개였다.
북부에서 얻은 전쟁의 신의 물뿌리개, 태양의 단죄, 그리고 죽음을 죽이는 방법.
갑자기 그 이야기가 왜 나온 것일까?
-그때, 내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라.
하지만 바람의 소리는 다시 침묵을 택했다.
대신 미친 자의 목소리가 케일의 머릿속을 뒤덮었다.
-뭐 하는 거지? 얼른 돈지랄을 하자고!
우우웅.
용암들이 한데 뭉쳐 천천히 땅으로 내려서는 케일을 향해 덮쳐들었다. 동시에 불벼락이 시끄럽게 케일을 보챘다.
-뭐 해? 즐기자고! 왜 가만히 있어? 어? 크크크, 날뛸 때가 왔다고!
케일은 더욱더 얼굴을 일그러뜨렸고, 그에 반응하듯 용암이 케일을 향해 달려들었다. 지켜보던 최한과 온, 홍은 저도 모르게 케일에게로 다가갈 듯 공중에서 발을 내디뎠다.
“케일 님! 아무래도 위험합니다!”
그때였다.
“시끄럽긴. 짠돌이가.”
“…네?”
최한은 멈칫하며 저도 모르게 되물었다.
하지만 케일은 최한은 신경 쓰지 않은 채 돈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발끝에 맴도는 회오리가 줄어들며 몸이 점점 아래로, 용암으로 다가갔다. 그의 몸은 내부와 외부의 더위로 땀범벅이 되어갔지만, 케일은 점점 더 눈을 빛냈다.
늑대왕의 일기를 얻느라 100억 카운드가 담긴 금화 주머니는 50억 카운드만 남았다.
거기에 싱텐 상단주에게서 뜯어낸 300억 카운드 중 일부인 30억 카운드를 넣었다.
총 80억 카운드.
그것도 은화가 아닌 금화로 담겨 있었다.
더불어 금고를 털어 손에 넣은 동대륙의 금화들이 있었다.
‘백억?’
넘을 것 같은데.
케일은 쓸 때 쓰는 놈이었다.
이미 저와 제 주위 녀석들을 평생 먹여 살릴 돈도 따로 다 있었다.
‘남는 돈 이럴 때 써야지, 언제 써?’
그는 돈주머니에 집어넣은 손에 힘을 주었다.
그가 하려는 행동은 단 하나였다.
아공간 마법이 새겨진 돈주머니.
찌이익-
돈주머니가 내부에서부터 찢어졌다.
아공간 마법이 서서히 망가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찢겨진 틈새로 찰랑찰랑 금화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케일은 제 앞을 덮치려는 용암의 파도를 향해 기분 좋게 외쳤다.
“자, 짠돌아! 이게 돈맛이다!”
찌이이이익-
아공간 주머니가 완전히 찢겨졌다.
동시에 케일은 다시 바람을 일으켜 하늘로 치솟았다. 그런 그의 궤도를 따라 찬란한 빛이 흔적을 남겼다.
“…이, 미친놈.”
에르하벤은 이마를 짚었다.
“하하하하하!”
케일은 호탕하게 웃었다.
망가진 돈주머니에서 금빛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달이 없어도, 별빛과 용암의 붉은빛에 반사된 찬란한 금빛이 세상을 아름답게 밝혔다.
라온은 저금통을 안은 채 허망한 얼굴로 외쳤다.
“돈 비다! 금 비가 내린다! 충격적인데 신난다! 큰일이다!”
금화들은 용암 속으로 떨어졌다.
우우우우-
용암에서부터 마치 우는 것과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이는 정확한 표현이었다.
-크흐흑, 은보다 더 고급스럽고 단단한 금 냄새. 흐흐흐흑, 금이야. 오, 세상에!
금화들이 쉴 새 없이 용암을 향해 쏟아져 내렸다.
-오, 역시, 역시! 이 천사 같은 인간! 오, 흐흑, 오!
금 비를 맞는 용암의 색깔이 변하기 시작했다.
붉기만 하던 용암이 불벼락처럼 희미한 금빛을 머금기 시작했다.
지옥을 떠올리게 하는 시뻘건 색이 점점 성스러워 보이는 금빛을 조금씩 머금으며 적금빛이 되어갔다.
우우우웅-
우우웅-
용암의 울음이 커져갔다.
그때였다.
“귀찮네.”
케일의 담담한 목소리가 용암의 울음 사이를 지나갔다. 그리고 이어진 케일의 행동은 간단했다.
부우우욱.
돈주머니가 완전히 찢겨졌다.
그리고 케일은 그냥 입구를 열고 뒤집었다.
“…금, 금화가 쏟아져 내린다! 나 위대한 라온 미르는 오늘 또 다른 세상을 본다!”
그리고 케일은 감자 포대도 뒤집었다.
“…인간! 인간! 넌 위대하다! 인간! 나 위대한 라온 미르가 인정한다!”
라온의 외침은 쏟아져 내리는 금화와 금괴들의 금속 소리로 인해 묻혔다.
불벼락은 당황했다.
-어? 어?
케일은 피식 웃었다.
불벼락이 당황했다.
-…어… 음… 이거 백억 넘겠는데?
케일은 그러거나 말거나 금괴들을 쏟아부었다.
어차피 앞으로 암과 용병을 털면 더 벌게 될 것이고, 주교에게 받을 130억 카운드 외에도 몇백억의 돈이 있다.
케일은 담담하게 말했다.
“미친 짓을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그러나 무심한 말과 달리 케일의 표정은 상쾌했다. 밝아도 너무 밝았다.
‘행복하다.’
케일은 진심으로 행복했다.
돈 뿌릴 때가 제일 신났다.
결국 돈벼락은 울부짖었다.
-역시 이놈은 악마보다, 천사보다 미친놈이야!
쿠우우우웅-
붉은 액체는 사라졌다.
적금빛의 호수만이 케일의 발아래에 존재했다.
케일은 아래로 내려섰다.
찰랑.
표면이 흔들렸지만, 케일은 적금빛 호수, 아니, 늪에 가까운 진득한 액체 위에 올곧이 섰다. 그리고 담담하게 말했다.
“포대에 금괴 더 있는데.”
적금빛 늪 위에 용암이 더 이상 먹지 못한 금괴들이 떠다녔다.
케일은 이를 보며 한층 삐딱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불벼락의 힘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졌다.
케일은 진짜 백억만 먹은 파괴하는 불의 담이 참 작다 싶었다. 그러나 그는 곧 묘한 기분에 제 몸을 내려다봤다.
빛나고 있었다.
진득한 늪이 빛나며 서서히 증발하기 시작했다.
적금빛의 연기가 피어올라 케일을 감싸기 시작했다. 그때, 그의 머릿속에 파괴하는 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현실적인 게 좋았어.
증발한 적금빛 연기가 케일의 몸을 완전히 감쌌다. 공중에 있던 이들은 케일이 보이지 않았다. 그저 눈부신 적금빛만이 땅에서부터 하늘을 향해 빛나고 있었다.
-남들이 신, 혹은 영생을 좇아갈 때, 혹은 권력이나 명예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좇아다닐 때 난 돈을 좇았다.
그 빛은 마치 땅에 뜬 태양과 같아 보였다.
-돈은 눈에 보이고, 내 손에 쥘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존재였으니까.
파괴하는 불은 현실을 좋아했다. 세속적이고 참 팍팍해 보일지라도 현실이 좋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난 그게 아름답더군.
남들은 짠돌이라고, 용사가 명예도 없이 돈만 밝힌다고, 마지막에 가서는 북부를 불바다로 만들고도 돈만 찾는다고 욕을 먹었지만.
-파괴만 할 줄 아는 나에게 돈은 무언가를 지킬 수 있는 수단이었거든.
태어날 때부터 뭐든 태우고 파괴만 일삼았던 자신에게, 돈은 어찌 보면 파괴한 것들을 다시 살려내고 지켜낼 수단이었다.
어릴 적 제 힘을 주체 못 해 뭣도 모르고 태워 버린 귀족의 논. 그의 부모님은 없는 돈을 긁어모아 귀족에게 바쳐 그가 끌려갈 뻔한 것을 겨우 막아냈다.
‘그깟 돈은 아무것도 아니란다. 널 지킬 수 있었으니까.’
‘돈은 그런 존재라는 걸 잊지 마렴.’
가난한 부모님은 열심히 돈을 모았지만, 또 자신을 위해 아무렇지도 않게 아낌없이 돈을 썼다.
파괴만을 일삼던 자는 케일에게 말했다.
-난 나를 위해 돈을 쓴 사람에게는, 꼭 그에 상응하는 보답을 해야만 한다.
무조건 그래야 한다.
그게 그의 철칙이자 마음의 한을 푸는 방식이었다.
케일은 고개를 들었다.
사아아아아-
적금빛이 그에게로 스며들었다.
그리고 스며들지 못한 적금빛이 위로 솟구쳐 오르기 시작했다. 케일의 머릿속으로 파괴하는 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불벼락은 꼭 하늘에서 떨어질 필요가 없지. 밑에서도 솟구칠 수 있어.
여러 갈래의 적금빛이 밤하늘을 향해 쏘아졌다.
땅에서부터 시작된 한줄기의 빛이 창처럼 하늘을 향했다.
-그거 아나?
콰앙!
쾅! 쾅!
굉음과 함께 하늘에서 적금빛이 터져 나갔다.
마치 불꽃놀이를 보는 듯 아름다웠다.
-하늘은 강하고 오만해.
케일은 하늘에 닿아 부서지는 적금빛을 보며 파괴하는 불의 목소리를 들었다.
-하늘의 속성을 지닌 자를 조심해라.
…하늘 속성?
케일의 미간이 찌푸려졌을 때, 불벼락은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괜찮을 거다. 그걸 기억해.
사아아아아-
하늘로 올라가지 않고 주변에 남아 있던 적금빛이 빠르게 케일의 몸으로 스며들었다.
“…후우.”
케일은 깊은 숨을 토해냈다.
용암도 호수도 모두 사라진 황폐한 호수 밑바닥. 케일은 그 중심에서 손을 뻗었다.
화르르륵.
이전과는 다른, 더 선명한 적금색을 담은 불벼락이 그의 손바닥 위를 춤추듯 맴돌았다.
“인간아!”
라온을 시작으로 일행이 하나둘 케일 곁으로 내려섰다. 한 번 겪어서 익숙해진 라온을 빼면 모두 충격을 받은 가운데, 에르하벤이 케일의 손바닥 위 불벼락을 보며 말했다.
“…천 년 동안 처음 보는 광경이군.”
그러면서도 그는 불벼락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불을 표현하는 속성은 참으로 많았다.
빛, 따뜻함, 심지어는 요리까지.
하지만 지금 저 불벼락은 불의 속성이 대부분 사라져 있었다.
오로지 순수하게 흉폭하고 파괴적인 속성만이 남아 있었다.
그걸 확언하는 말이 케일의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무서운 짱돌의 목소리였다.
-그 불이.
서대륙에서 가장 차가운 북부를 활활 태우던 그 불이. 더 할 수 있었음에도 적당히 스스로 멈춰 섰던 그 불이.
-드디어 온전하게 세상에 나왔군.
짱돌. ‘지키는 자’는 앙숙과 같았지만 가장 자유롭고 무서웠던 ‘파괴하는 자’의 온전한 힘이 돌아왔음을 인정했다.
그 순간이었다.
삐이이- 삐이이-
붉은빛을 토해내는 영상 통신구가 라온의 앞발 위에 나타났다. 케일은 일행을 보며 말했다.
“서대륙으로 가야겠군요.”
이제 다시 전쟁터였다.
“인간! 똑똑한 로잘린 연락이다!”
아직 불굴 연합의 뒤처리로 바쁜 로잘린. 그녀는 라온이 영상통신을 연결하자마자 케일을 보며 대뜸 물었다.
-곰족과 화염의 드워프족을 어떻게 할 건가요? 살려둘 겁니까?
케일은 곰족과 드워프는 일단 로잘린에게 맡겨두고 다른 일을 처리하는 중이었다.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곰족과 드워프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제국은 아군이었던 자들이 가졌던 힘의 진가를 마주해야 할 것이다.
“살고 싶어 매달리게 만들 생각입니다.”
-네?
“적에게도 기회를 줘야지요.”
케일은 꽤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
그러나 아무도, 심지어 최한도 그의 말을 표면 그대로 믿지 않았다.
-공자, 그리고 제국의 황태자가 연설을 한다고 합니다.
케일의 미소가 더 짙어졌다.
황태자 아딘이 서대륙 판세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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