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279
278화.
케일은 고개를 숙이며 앞에 선 이와 눈을 마주했다.
“할 수 있겠나?”
화염의 드워프 족장 카넬. 무릎을 꿇고 있던 그의 눈동자에는 웃고 있는 사령관의 모습이 비쳤다.
힐끗.
드워프의 시선이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황태자 얼굴이 보이던 텅 빈 석벽으로 향했다.
‘황태자 아딘이 암과 협력 관계라는 것은 알지만.’
그래서 한때는 암, 불굴 연합과 협력해 서대륙을 농락하려던 황태자 아딘이 무서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드워프 카넬은 다시 시선을 제자리로 돌려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쿵.
그의 이마가 차가운 돌바닥에 닿았다. 족장은 담담히 말했다.
“무조건 합니다.”
할 수 있다. 해낼 것이다.
살려면 그런 대답을 해서는 안 된다. 그 이상을 담아 말해야 했다.
비장한 드워프 족장을 바라보는 케일의 미간이 미세하게 찌푸려졌다가 얼른 펴졌다.
‘왜 이리 오버해?’
그냥 한다고 대답하면 될 걸 왜 이마까지 박으면서 비장하게 말하지?
케일은 뭔가 떨떠름하고 이상했지만, 드워프 족장 개인의 특색이라 생각하며 그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툭. 족장 카넬은 제 어깨 위에 올려진 손의 서늘함에 소름이 돋았다. 그 소름이 채 지워지기도 전, 귓가에 무감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살고 싶은 의지가 느껴지는군. 열심히 해봐.”
드워프는 입술을 깨물었다.
‘역시 그냥 의지로는 부족한가?’
불새.
사령관이 말하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진 몰라도, 반드시 그걸 만들어야 살길이 보일 것 같았다.
‘다시 노예가 되든 말든 일단 부족원들을 살려야 돼.’
그때, 다시 사령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적이었지만 화염의 드워프족이 만든 날개는 놀라웠어.”
놀라웠다고? 우리가 만든 날개가?
족장은 멈칫하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케일과 눈이 마주쳤다.
“전장의 하늘을 지배할 거다.”
모두 최대한 소리를 죽인 공간. 케일의 목소리가 드워프들 사이로 내려앉았다.
“화염의 드워프족 손으로, 이번엔 제대로 된 진짜 날개를 만들도록.”
그 말과 함께 족장은 제 어깨에서 떨어지는 손이 보였다.
사령관은 화염의 드워프족에게 노예가 되라든지, 혹은 그 외의 어떠한 미래나 방향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다.
그저 살고 싶은지와 그들이 앞으로 만들어야 할 것만 말해주었다.
그 때문일까. 족장 카넬은 이 두 가지 문제가 머릿속에 낙인처럼 뚜렷하게 새겨졌다. 족장은 주위 드워프들을 보지 않아도 그들의 마음이 느껴졌다. 그랬기에 그에게서 멀어지며 뒤돌아서는 사령관의 등을 보고 물었다.
“만들기만 하면 됩니까?”
드워프가 평생 해왔던 것.
용 혼혈과 암에 억눌리고, 다른 종족의 무시를 받으며 평생 해왔던 일.
그것만 하면 살 수 있을까?
드워프들은 사령관의 등을 바라봤다. 사령관은 공동 입구로 걸어가며 말했다.
“드워프가 다른 종족보다 뛰어난 면이 바로 ‘만드는 것’이라지.”
사령관은 ‘만들면 살려준다’는 약속의 말은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어지는 말에, 드워프 족장 카넬은 주먹을 꽉 쥐었다.
“장인의 힘을 보고 싶군.”
장인.
한 분야의 길을 개척한 자.
그 길에 자신의 삶을 새길 줄 아는 자.
그런 사람을 장인이라 불렀다.
‘…노예가 아닌, 장인.’
드워프 족장은 천천히 꿇었던 무릎을 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끼이이이-
공동의 유일한 입구가 다시 열렸다.
케일은 최한이 연 문 밖으로 나아갔다. 로잘린과 메리가 그 뒤를 따랐다. 그들이 나가자, 다시 문 밖에 있던 병사와 기사, 마법사들이 들어서며 문은 서서히 닫혔다.
끼이이- 쾅!
드워프들은 완전히 문이 닫히는 순간까지도 저 멀리 앞을 향해 걸어가는 케일의 뒷모습을 눈에 담았다.
반면 케일은 누굴 쳐다보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로잘린 씨.”
“후우, 네.”
한숨과 함께 로잘린이 케일을 쳐다봤다. 딱 아무런 말도 없이 그런 큰일을 벌이냐는 눈빛이었다.
케일은 그 시선에 헛기침을 하며 품에서 서류를 꺼내 로잘린과 메리에게 말했다.
“이 안에 ‘불새’에 대한 내용이 있습니다. 제 생각을 대략적으로 적은 것이니 이 일은 로잘린 씨와 메리에게 부탁합니다.”
호오.
로잘린은 살짝 감탄을 흘리며 최한을 쳐다봤다.
‘웬일로 문서까지 미리 작성해서 준대?’
로잘린의 눈빛에 최한은 슬그머니 미소를 지으며 대답을 아꼈다. 로잘린은 그 모습에 뭐가 있겠구나 싶어 어깨를 으쓱였다가 케일에게 말했다.
“전 이만 가봐야겠어요. 할 일이 많아서. 위티라 씨와 마무리할 일도 있고.”
메리도 슬그머니 로잘린의 옆에 서며 이어 말했다.
“케일 님, 저도 갑니다. 불새 만들려면 바쁩니다.”
어차피 이제 두 사람은 필요 없었기에 케일은 대충 손을 흔들어 배웅하고는 걸음을 빨리했다.
두 사람이 감옥 밖으로 향한 것과 달리, 케일은 반대 방향으로, 감옥 더 깊숙한 곳으로 향했다.
블랑성 감옥의 가장 중범죄자들이 머무는 곳.
지하 감옥.
그는 지하 감옥들이 즐비한 복도를 지나갔다.
철창들이 보였다.
그리고 철창 너머로 손발이 묶인 이들이 보였다. 거대한 지하 감옥 한 층이 모두 꽉 차 있었다.
크르르, 크르르-
꼭 짐승이 우는 것과 같은 소리.
케일은 횃불의 빛이 닿지 않아 어둠 속에서 저를 노려보는 철창 안의 존재들을 보며 삐뚜름한 미소를 그렸다.
그러나 그 눈빛들은 케일의 걸음을 묶어두지 못했다.
케일은 지하 감옥 가장 끝 방까지 걸어갔다.
복도의 끝 정면에 위치한 마지막 감옥.
케일은 그 철창 가까이 다가가자마자 다리를 들어 올렸다.
쾅!
케일의 발이 철창을 거침없이 찼다. 누가 보아도 시정잡배와 같은 행동이었으나, 여기에는 감옥에 갇힌 자들과 최한, 투명화한 라온, 케일을 제외하면 아무도 없었다.
간수와 병사들은 지하 감옥 밖에서 대기 중이었다.
“…뭡니까?”
감옥 끝 방, 그 벽에 매달려 있던 이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갈라지고 메마른 목소리였다.
케일은 어둠 속에서 저를 노려보는 곰족 수뇌부가 보였다.
브렉 왕국과 로운 왕국은 사로잡은 포로들을 고문하지 않았다. 그러나 적의 수뇌부는 탈출이라는 생각을 하기 힘들도록 구속해 놓았다.
‘중간 관리자라고 했던가.’
죽음의 협곡에서 곰족을 이끌던 자는 중간 관리자라 들었다. 케일은 로잘린의 말을 떠올렸다.
그녀는 북부 왕국들에게 들은 정보를 케일에게 말해주었다.
‘곰족은 왕이 지배자로 존재한다고 해요. 북부 왕국은 왕을 보지 못했지만, 그의 밑에서 관리자 신분으로 곰족들을 이끄는 계급이 있다고 하더군요.’
크르르, 크르르.
케일은 감옥 곳곳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실소를 흘렸다.
다른 붙잡힌 곰족들이 내는 짐승의 소리였다.
케일을 위협하려는 듯, 자신들은 아직 건재하다는 듯 그렇게 울어댔다.
그래, 울어댄다.
케일은 겁먹은 짐승들의 울음이 들려왔다. 그래서 그는 이 감옥 곰족들의 우두머리인 중간 관리자에게 말했다.
“영악한 놈들이 전사 흉내를 낸다고 전사처럼 보일 줄 아는가?”
울음소리가 뚝 끊겼다.
영악한 종족.
이는 수인족 사이에서 곰족을 가리키는 소리였다.
케일은 관리자를 바라보며, 이 지하 감옥에 있는 곰족 모두에게 전했다.
“나는 족장 카넬에게 살고 싶냐고 물었고, 족장은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이마를 땅에 박았다.”
관리자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족장 카넬. 곰족이 무시하던 그 화염의 드워프 족장이었다. 그 족장이 케일에게 무릎을 꿇었다고 한다.
분명 살려달라는 의미일 터.
“나는 화염의 드워프족들에게 할 일을 만들어주었다.”
곰족들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그들은 생각했다.
‘드워프들은 기회를 얻었구나.’
살 기회를 얻었구나.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케일은 드워프들에게 살려준다고 약속한 적이 없었으며 그저 지시를 내렸을 뿐이었다.
케일은 어수선해지는 분위기를 느끼며 담담히 말을 이었다.
“너희의 왕은 너희를 버린 것 같지만.”
곰족들은 그 말에는 동요를 보이지 않았다. 특히 관리자는 더 그러했다.
‘손해야.’
곰족은 개체수가 많아서 더 강할 수 있었던 종족이었다. 관리자가 아는 왕은 손해를 보면서까지 죽음의 협곡 곰족들을 구하러 올 자가 아니었다.
오로지 곰족이 살 땅을, 왕국을 원할 존재였다.
그렇기에 영악한 곰족은 동족의 도움을 기대하지 않았다.
이는 케일 또한 알고 있었다.
“근데 말이야.”
그러나 기대하지 않는다고 해서 죽고 싶을까?
영악한 놈들이니까 더 알 것이다.
이렇게 죽는 건 그냥 헛된 죽음이라는 걸. 자신들이 이렇게 죽을 수는 없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아는 놈들이 곰족이다.
그래서 케일은 물었다.
“언제부터 곰족이 의리가 있었지? 충성이 있었지?”
타닥. 타닥.
케일은 철창에 다가갔다. 그는 철창 가까이 얼굴을 들이밀며 철창 너머 벽에 묶인 곰족 관리자를 응시했다.
“너희는 늑대족도 사자족도 아니잖아.”
무리와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늑대족이 아니며, 부족 자체에 대한 자부심과 고고한 지조를 지닌 사자족도 아니었다.
곰족 관리자는 어둠 속에 있는 자신과 달리 횃불 아래에 서 있는 케일이 선명하게 보였다. 더불어 그의 뒤에 있는 소드 마스터도.
“너흰 곰족이다.”
관리자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늑대족도 사자족도 아닌 곰족. 영악하면서도 강해서 가장 많이 생존할 수 있었던 종족.
“본능대로 생각해.”
케일은 그 곰족의 본능대로 생각하라고 일렀다.
관리자의 메마른 목소리가 지하 감옥 안에 울려 퍼졌다.
“본능을 따라가면 무엇이 나타나지?”
“그건 곧 알 수 있겠지.”
곰족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중얼거렸다.
“곧이라.”
케일은 ‘곧’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그 말은 곰족이 조만간 살 구멍이 생긴다는 의미였다.
‘아니, 살 구멍은 아니지. 이리 쉽게 살려줄 인간이 아니지.’
곰족 관리자의 생각은 정확했다. 케일은 편히 살려줄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지금과 다른 변화가 생긴다는 것만은 사실일 터.
곰족은 철창에서 멀어지며 떠나갈 듯 뒤돌아서는 케일에게 말했다.
“기다리겠습니다. 그동안 본능대로 생각하고 있겠습니다.”
존댓말이었다.
케일은 관리자에게 미소를 그려 보이고는 지하 감옥을 빠져나왔다. 들어갈 때와 달리 어떠한 짐승의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저마다 살고 싶어서 머리를 굴리는 곰족들의 눈빛만큼은 이전보다 선명하게 보였다.
케일은 이들을 이용할 생각이었다.
지하 감옥을 빠져나온 케일에게 침묵하던 최한이 물었다.
“케일 님, 곰족은 미끼가 되는 겁니까?”
케일은 최한에게 대답 대신 다른 말을 했다.
“넌 은근히 영리해.”
최한과 케일의 생각이 얼추 일치했다.
-인간! 미끼 하기에는 너무 크다! 곰족은 크다!
라온의 말에 케일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크니까, 미끼다.
누구보다도 눈에 잘 보이니까 미끼인 거다.
곰족 왕의 눈에 보일 미끼면 충분했다.
“케일 님, 이제 어디로 갑니까?”
케일은 이번에도 최한의 물음에 답하지 않은 대신 라온에게 말했다.
“라온, 나 염색 마법.”
그 말에 라온은 외쳤다.
-이제 무식한 툰카 보러 가나?
이제 위퍼 왕국, 툰카를 보러 갈 차례였다.
***
“…왔구나.”
케일은 툰카의 말투에 당황했다.
툰카가 있는 위퍼 왕국 왕궁에 도착한 케일.
그는 신관복을 숨기기 위해 입은 로브의 후드를 벗자마자 더 강대한 체격이 된 툰카가 보였다.
그런데 그 툰카의 표정이 이상했다.
-인간! 툰카가 감동받은 표정 같다!
그러니까.
케일은 제가 도착한 텔레포트 마법진 앞에서 감동스러운 표정으로 서 있는 툰카가 당황스러웠다. 집채만 한 놈이 그런 표정을 지으니 징그러웠다.
거기에다 툰카가 전보다 훨씬 더 대장군다운 옷차림새와 깔끔하면서도 정제된 분위기를 뿜어내 놀라웠다.
하지만 툰카는 수하들을 내버려 둔 채, 막 텔레포트해 온 케일에게 다가가 말했다.
“…정말로 홀로 와줬구나.”
나 혼자 아닌데?
뒤에 최한도 있고 투명화했지만 용도 있는데?
그리고 더 올 건데?
케일은 사실과 다른 말을 하는 툰카가 황당했다. 하지만 툰카는 제 할 말을 계속했다.
“제국 황태자 놈이 선전포고를 하자마자 네가 제일 먼저 달려와 주다니.”
정글이 바로 제국 쳐들어간다고 했는데, 내가 잠시 멈추라고 했다만?
케일은 띠꺼운 표정이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황태자 놈’이라고 하는 툰카가 본질은 여전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띠거운 표정도 곧 깨졌다.
툰카는 바보 같아 보일 정도로 환하게 웃었다. 그는 꼭 소년 만화 주인공 같은 웃음을 지어 보이며 힘차게 말했다.
“고맙다. 역시 내 친우답다!”
이건 또 뭔 상황이야.
케일은 속마음을 툭 내뱉었다.
“…네가 지금 뭔가를 착각한 것 같은데.”
피식.
툰카가 바람 빠지는 웃음을 흘리며 감동에 찬 눈동자로 말했다.
“쑥스러워하긴.”
아닌데?
전혀 안 쑥스러운데?
케일은 기가 찼다.
-인간! 툰카가 좀, 좀 괜찮은 인간이 된 거 같다! 착한 인간이 착하고 부끄러움 많다는 걸 알아본다!
케일은 정말로 기가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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