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281
280화.
당연히 왕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부들부들 몸을 떨어댔다.
“지, 지금 나에게 그따위 망발을-!”
하지만 왕은 그저 툰카를 노려보기만 했다.
스스로 무력이 형편없기도 했고, 기사들에게 툰카를 치라고 말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위퍼 왕국는 현재 비정상적인 형태였다.
왕은 왕이라는 명분만 있고, 재정을 비롯한 왕국 전반 행정에 관한 모든 권한은 군부에 치우쳐져 있었다.
그리고 그 군부, 부족민과 병사들의 중심이 툰카였다. 그렇기에 왕을 보호하는 기사들도 함부로 툰카에게 달려들 수 없었다.
그들도 제 목숨을 보존하고자, 이득을 유지하고자 왕을 모시는 왕족파였기에 충성을 위해 툰카에게 검을 들이밀지 않았다.
“…이!”
왕도 그 사실을 잘 알았다.
그래서 그는 분노를 담아 툰카를 노려볼 수밖에 없었다. 툰카는 그런 왕을 더욱더 광기가 담긴 눈동자로 응시했다.
툰카의 입이 다시 열렸다,
“나는.”
툰카는 스스로에 대해서 꽤 잘 알고 있었다.
“난, 내 위도 밑도 없는 놈이야.”
그래서 어디서든 앞장설 수 있었다.
“그리고 강한 놈을 죽이는 게 내 취미지.”
맨 앞에서 가장 강한 냄새가 나는 놈들을 죽여왔다. 물론 그 강한 놈들에게 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적들은 결국엔 자신을 피했다.
그게 무서워서든 더러워서든, 어쨌든 그를 피했다.
그 사실이 중요했다.
툰카는 살기 위해 굴복할 생각을 하는 왕을 내려다보았다. 왕은 사냥감이 된 기분이었다. 그도 이미 툰카를 피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었다.
무식하게 힘만 세고 야만적인 부족민 출신이라며 피했지만, 사실은 무서워서 툰카를 피했다.
왕의 시선이 살짝 툰카를 비켜 아래로 향했다.
그런 그에게로 툰카의 목소리가 귓속에 박혔다.
“살고 싶으면 우리가 어떻게 승리할지 그것만 생각하시오.”
살고 싶으면.
왕은 그 말에 침을 삼켰다.
분노와 두려움이 뒤섞여 온몸이 덜덜 떨렸다. 그때 상황을 보고 있던 왕족파 기사 한 명이 입을 열었다.
명색이 호위 기사 단장이었다.
“전하, 전할 말씀이 끝나셨다면 이만 자리를 옮기는 게 어떠실지요?”
기사단장은 툰카의 시선이 제 얼굴로 향하자 멈칫했다.
그는 무력으로 기사단장이 된 인물이 아니었다.
과거 마법이 비정상적으로 발달해 왕국을 지배했던 위퍼는 상대적으로 기사의 힘이 약했다. 마법사들은 권력을 위해 뛰어난 기사의 성장을 방해해 왔고, 그 덕에 지금 기사로서 입지가 탄탄한 이들은 대부분은 무력보다는 정치력이나 아부가 뛰어난 기회주의자들이 많았다.
“크흠, 대장군께서도 이만 하셔야 할 업무를 편히 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툰카는 기사단장과 왕을 쳐다보다가 몸을 돌렸다. 그리고 헤롤 참모장의 곁으로 다가갔다.
누가 보아도 왕과 기사단장을 무시하는 행위였다.
“이것들이-”
“전하.”
하지만 기사단장이 분노하려는 왕을 달랬다. 기사단장은 눈짓으로 그만 물러가자고 청했고, 왕은 숨을 몰아쉬며 툰카가 있는 방향과 등진 채 입구로 향했다.
그러면서도 왕의 시선은 헤롤의 손에 들린 제국의 서신을 향해 있었다. 저걸 빼앗으면 혼자서라도 제국의 말에 응하겠으나, 모든 주요 서류는 툰카의 손아귀에 있었다.
“…불경한 것들! 살길을 내어줘도 그걸 모르다니!”
결국 왕은 분노의 외침을 내뱉으며 작전실을 빠져나갔다.
“으음.”
케일은 저를 신경도 쓰지 않고 빠져나가는 왕과 기사들을 쳐다보며 침음을 흘렸다. 이유는 간단했다.
-인간! 저 왕이라는 놈, 이상하게 마음에 안 든다!
라온이 구시렁거리고 있어 머릿속이 시끄러웠기 때문이다.
-10만 명이면 그 인원으로 전쟁해도 제국 이기겠다! 그런데 80년 동안 십만 명이라니! 저 왕은 계산할 줄 모른다! 역시 위대한 나보다 못한 왕이다!
참, 시끄럽네.
라온이 유달리 왕을 탐탁지 않아 하고 있었다.
반면 케일은 ‘저런 놈은 어디나 있지’ 하며 그러려니 하는 마음이었다.
‘세상사가 그렇지.’
한국도, 아니, 지구도 세상이 한번 뒤집히며 모든 것이 엉망이 되자 제 목숨과 부를 유지하기 위해 저 왕보다 물불 안 가리던 이들이 많았다.
하물며 권력자만 그랬을까?
아니, 전혀. 오히려 처음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랬다.
케일이, 아니, 김록수가 수능을 치고 난 뒤 식당에서 알바를 하다가 맞이한 다음 해. 어느 날 뜬금없이 찾아온 격변.
그때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서로가 서로의 삶을 외면했다.
그럼에도 결국 세상은 생각보다 빠르게 힘을 모아 유지되었다.
서로의 삶을 짓밟고 살아남기보다는 서로의 삶을 함께 지탱하려는 사람들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종말이 찾아오면 지옥이 펼쳐질 것이라 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누구나 지옥을 싫어했다. 그래서 지옥을 벗어나려 발버둥을 치고 결국 깨달았다.
혼자는 힘들다.
같이해야 한다.
그래서 세상은 다시 뭉쳤으며, 다시금 그럭저럭 버티고 살 만한 세상을 만들었다.
케일의 시선이 툰카와 헤롤에게로 향했다.
그는 위퍼 왕국의 왕을 보며 저런 쓰레기는 그냥 무시하는 게 답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왕의 마음에 공감하진 않았다.
케일도 김록수일 때처럼, 이 세상을 그럭저럭 버티고 살 만한 곳으로 만들고 싶은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지옥 속에서는 홀로 행복해도 괴로울 뿐이었다.
‘그래, 마음 편한 백수가 돈지랄하는 게 최고 행복한 삶이지.’
케일은 그런 의미에서 헤롤과 툰카를 새로운 눈으로 바라봤다.
단순 무식한 툰카.
클로페 이상으로 돌아버린, 이상한 광기를 지닌 헤롤.
그 두 놈이 지금, 위퍼 왕국이라는 세상을 지탱하려고 두 눈이 충혈되어 있었다. 그 사실이 케일에게는 꽤 새로우면서도 익숙하게 느껴졌다.
그때, 라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인간아! 우리 저 왕 놈 금고 털자! 탈탈 털자!
“으음.”
대책 없지만 끌리는 6살 용의 말에 케일이 침음을 흘렸다.
그리고 그 모습을 다른 이들이 지켜보고 있었다.
헤롤 참모장의 눈빛이 흐려졌다.
케일 헤니투스.
신관 모습을 한 채 은밀히 위퍼 왕국을 도우러 온 사람에게 좋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아니, 좋지 못한 수준이 아니라 최악의 모습을 보여주고 말았다.
헤롤을 포함한 작전실 참모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싶어 선뜻 입을 열지 못했다.
그때, 툰카가 케일에게 다가갔다. 그는 케일이 한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우리가 뒤에 있다.’
그 말을 떠올리며 툰카는 케일에게 말을 건넸다.
“제국이 우리에게 제안할 때-”
“잠깐.”
케일이 손을 들어 툰카의 말을 막았다. 그 행동에 ‘역시’ 싶어 참모진의 표정이 더 어두워졌을 때, 케일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문을 부수면 비밀 얘기가 되겠어? 어디 조용한 데 없나?”
아.
그제야 다들 툰카가 부순 문을 쳐다봤다. 왕과 그의 측근들이 나간 문 근처에는 어쩔 줄 몰라 하는 경비 전사들이 있었다.
“제가 다른 곳으로 안내하겠습니다.”
참모장 헤롤이 나섰고 케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와 대장군과만 대화를 했으면 싶어.”
“좋다.”
툰카도 곧바로 동의했고, 곧 케일은 조용한 공간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
케일은 멀뚱히 서 있는 최한에게 찻잔을 주고, 저도 찻잔을 집어 들며 툰카에게 물었다.
“제국은 위퍼 왕국이 그 제안을 받아들이길 원하는 건가?”
대답은 툰카가 아닌 헤롤이 했다.
“아뇨, 당연히 우리가 그런 제안을 거부할 것이라 판단하고 보낸 서신 같습니다.”
하긴 어느 누가 노예, 볼모 십만 명을 바치며 항복을 하겠는가.
제국은 툰카의 호전적인 성격을 뻔히 알고 있었다.
헤롤의 눈빛이 서늘하면서도 음습하게 가라앉았다.
“아무래도 제국은 우리 위퍼가 더 분노해서 달려들길 원하는 것 같습니다.”
헤롤은 툰카를 쳐다봤고, 툰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헤롤 참모장은 케일에게 물었다.
“제국은 마이플성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위퍼 왕국을 원하는 것이겠지요?”
케일은 차를 한 모금 삼켰다. 차 표면에 마법으로 염색한 백발과 푸른 눈동자가 비쳤다. 그는 태연히 말했다.
“당연히 그렇지.”
달칵.
케일이 찻잔을 내려놓았고, 헤롤의 표정은 흐려졌다.
위퍼 왕국 참모진은 비마법사 연맹 출신으로, 대부분이 마법 외의 학문을 파던 젊은 학자들이어서 머리가 꽤 깨어 있는 편이었다. 그들이 이번에 내린 결론이 헤롤의 입을 통해서 흘러나왔다.
“로운 왕국은 대놓고 위퍼 왕국을 도울 수 없겠죠?”
그러면 제국과 척을 지게 된다.
현재 로운은 모고르 제국과 친한 척하며 그들의 연금술 종탑을 무너뜨릴 계획 중이었다. 그걸 모를 리 없는 동맹국 위퍼였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한 번 더 질문을 던졌다.
로운 왕국의 힘이 필요했으니까.
케일은 담담히 답했다.
“그래. 이번 전쟁에서 로운의 병사들은 어느 누구도 전쟁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예정이다.”
“…최한 씨와 네크로맨서님도 말입니까?”
“그래.”
헤롤은 눈을 감았다.
하지만 케일은 냉정했다.
‘로운 왕국이 새로운 모고르의 지원자가 되려면, 지금 제국민들과 척을 져서는 안 된다.’
아무것도 모르는 제국민들은 지금 이 위퍼와의 전쟁에서 로운이 위퍼를 돕는다면, 로운을 미워할 것이다.
마법 폭탄 테러와 케일의 제국 훈장 사건으로 호의를 쌓아왔다 해도 전쟁 한 번이면 날아갈 얄팍한 감정이었다.
그래서 이번에 로운 왕국에선 명분이 없는 이는 어느 누구도 ‘본모습’으로 전쟁에 나서지 않을 작정이었다.
헤롤은 다시 눈을 뜨더니, 냉정한 케일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정글은 마이플성에서 전투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적으로 움직이고요?”
“그래. 정글은 따로 제국을 칠 예정이다.”
위퍼 왕국과 맞닿은 로운과 정글이 모두 마이플성의 전투를 돕지 못한다. 물론 식량을 비롯한 물자는 4왕국 1종족이 돕기로 했지만.
‘강자가 부족해. 전투 인력이 적어.’
이를 한 번 더 확실히 인지한 헤롤은 그런 상황임에도 굳이 그들을 찾아온 케일을 바라봤다.
지금 케일은 사령관으로 온 것이 아니었다.
그저 개인 자격으로 참가했다.
도우러 왔다.
그래서 참모들은 아직 이 부분은 확정 짓지 못했다.
“…이번 전쟁에서 케일 사령관님의 방패나 죽음의 협곡에서의 물기둥, 석창은 볼 수 없겠지요?”
불굴 연합과의 전투로 유명해진 케일의 고대의 힘.
그건 전쟁 내내 유용하게 쓰인 ‘부서지지 않는 방패’와 용 혼혈을 향해 치솟았던 물기둥인 ‘지배하는 물’이었다.
그리고 믿을 수 없는 석창에 대한 이야기도 퍼지고 있었다.
그래서 케일이 온다고 하자 반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헤롤 참모장은 그에게 물어야 했다.
‘볼 수 있겠습니까?’라고 물은 게 아니라 ‘볼 수 없겠지요?’라고 물었다.
“그래. 볼 수 없어. 내 정체도 숨겨야 하니까.”
“…역시 그렇군요.”
로운이 숨으면 당연히 케일도 숨어야 했다.
그는 떠오르는 로운의 영웅이나 다름없었으니까.
헤롤은 한숨을 삼켰다. 그때, 툰카가 입을 열었다.
“와준 것으로 충분하다! 케일, 그리고 최한.”
케일 뒤에 서 있던 최한이 멈칫하며 툰카를 쳐다봤다. 한때 최한이 비 오는 날 먼지 날릴 듯 팼던 툰카가 고마움을 담아 최한을 바라봤다.
“헤롤 참모장! 우리 부족민과 병사들로 충분하다! 포션과 물자도 넘칠 정도로 지원받을 것이고!”
툰카는 다시 호탕한 목소리로 헤롤에게 말했다. 헤롤은 전보다 철이 들어 저를 위로할 줄 아는 대장군을 묘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처음에는 그저 헤롤의 오래된 복수와 광기를 충족시켜 줄, 마탑을 없애줄 사람으로 툰카를 택하고 모셨다.
그러나 이제는 함께 싸워온 과거가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또한 같이 위퍼를 구하려는 목표를 가져서 그런지 몰라도, 그를 대장군으로 빛나게 해주고 싶었다.
“네. 대장군님. 저번처럼 우리가 승리할-”
“그런데 말이야.”
답하던 헤롤의 말이 끊겼다.
케일이 헤롤과 툰카를 향해 입을 열었다. 그는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런데 말이야.
“죽음의 협곡에서 만들었던 불기둥에 대해서는 왜 묻지 않지?”
협곡을 부수고 넘어오려던 불굴 연합의 대군을 막는 데 가장 큰 기여를 한 것은 불기둥이었다. 케일은 그에 대해서 묻지 않는 헤롤을 응시했다.
헤롤은 묘한 표정으로 답했다.
“브렉 왕국이 한 일인지, 로운 왕국이 한 일인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불기둥.
그에 대한 타국의 의견은 분분했다.
일단 케일의 힘이 아닌 것은 모두 확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브렉 왕국과 로운 왕국이 입을 꾹 다물고 있어 정확히 어느 누가 만든 힘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은근히 브렉 왕국이 아닐까 말이 나오고 있었다.
왜냐면 드워프의 마법 폭탄 발사에 맞서 날린 마지막 공격이 로잘린의 마법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브렉 왕국의 마법이 이번에 드러난 바로는 꽤 강했기에 그 추측에 힘을 실어주고 있었다.
“…로잘린 씨와 브렉의 마법사들이 만든 힘이 아닐까 추측 중입니다.”
헤롤은 어찌 설명할 수 없는 표정이 되었다.
마법사를 배척하고 마탑을 무너뜨린 위퍼 왕국.
“그러니 아무리 브렉 왕국이 동맹이라고 해도 저희 입장에서 불기둥에 대한 말을 어찌 꺼내보기가 힘들군요.”
힘들다.
브렉 왕국 마법사들에게 도와달라 요청하기도 힘들었고.
아직도 마법사들을 미워하는 위퍼 왕국민들에게 몰래 마법 스크롤을 쓰거나 마법을 사용하는 수준이 아닌, 공식적으로 타국에 마법사를 요청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힘들었다.
이게 위퍼 왕국이 가진 진정한 어려움이었다.
한 가지를 배척하면 생기는 난관이 위퍼 왕국의 운신을 힘들게 만들었다.
찬밥 더운밥을 가릴 때가 아니건만, 현재 위퍼를 지탱하는 반마법 성향과 대놓고 반대로 움직이기는 힘들었다.
그것 역시 또 다른 전쟁의 결과였으니까.
하지만 헤롤은 조심스러운 태도로 케일에게 물었다.
“혹시 브렉 왕국 마법사를 요청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10만 명의 80년. 그 숫자가 헤롤을 압박했다.
마법사를 증오하던 광기 가득한 놈이 두려워하는 것이 생겨 마법을 찾게 되었다.
그때였다.
“여기 좌표가 어떻지?”
“…네?”
케일이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좌표 말이야.”
“아.”
뭐가 뭔지 모르겠으나, 헤롤은 좌표를 말했다.
그 순간, 케일의 머릿속으로 라온이 말했다.
-접수했다! 그러면 이 좌표로 가르쳐 준다! 곧 올 거다!
곧 온다.
케일은 그 말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툰카와 헤롤을 보며 말했다.
“툰카 대장군, 그리고 참모장. 브렉 왕국 마법사들도 나서지 않을 작정이다.”
헤롤의 표정이 흐려졌다.
그때 케일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위퍼 왕국 마법사 연맹에 속하지 않았던 마법사들을 기억하나?”
좀처럼 종잡을 수 없는 대화의 흐름이었다.
“모르겠다만.”
하지만 툰카는 케일의 물음에 착실히 답했다. 그는 마탑이 무너지고 난 뒤, 왕국 내의 마법사들에 대한 관심을 끊었다.
그러나 헤롤은 관심을 끊지 않았다. 헤롤은 묘한 표정으로 케일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마법사 연맹에 속하지 않고 은둔하거나 숨어 있는 마법사들은 꽤 되었지요. 그리고 그들은 마탑이 무너진 후 대부분 위퍼 왕국 밖으로 도망을 가서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케일은 저를 쳐다보는 헤롤에게 왕세자 알베르와 나눴던 이야기 중 하나를 내뱉었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이 로운으로 왔다.”
사실은 왕세자 알베르가 로운으로 불러들인 것이나, 케일은 그들이 도망치다가 로운으로 온 것이라 말했다.
“그리고 로운은, 그들을 로운 왕국민으로 받아들였네.”
헤롤은 입을 꾹 다물었다.
이미 도망간 마법사들이 대륙 곳곳에 흩어져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이 문제에 대해 로운을 탓할 수 없었다.
로운 왕국은 위퍼를 많이 도와줬으니까.
더욱이 그 말을 전하는 이가 케일이 아니던가.
“…케일 공자님, 그 이야기는 지금은 그냥 묻어두죠.”
그래서 헤롤은 그 문제를 일단 묻어두기로 했다.
제국과 싸우는 판국에 로운과도 싸우기 싫었다. 하지만 케일은 그러지 않았다.
“곤란하지만 묻어둘 수가 없겠네.”
“네?”
그때였다.
우우우우웅-
방 안에 진동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반은 마법사인 헤롤의 표정이 굳어지며 한곳을 응시했다.
그 순간, 케일의 목소리가 들렸다.
“위퍼를 돕고 싶어 하는 사람을 초대했어.”
파아아앗!
환한 빛이 공간을 뒤덮고 그 자리에 한 사람이 나타났다.
덜컹. 헤롤의 의자가 덜컹였다.
헤롤은 아무 말도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런 그의 앞에 한 사람이 싱그러운 미소를 그려 보였다.
“오랜만이에요.”
로잘린.
그녀가 홀로 찾아왔다.
케일은 그녀의 옆에 서며, 멍한 얼굴의 헤롤과 툰카에게 말했다.
“브렉 왕실에서 쫓겨나 자유 신분이 된 로잘린 씨가 위퍼 왕국에 용병으로 고용되고 싶다더군.”
왕실에서 쫓겨난 로잘린의 이야기는 유명했다.
헤롤은 탄성을 흘렸다.
로잘린은 어깨를 으쓱이며 자신의 참전 이유를 밝혔다.
“내 동료들이 다들 위퍼 왕국에 간다고 해서요. 제가 그들의 상관인지라, 나도 가기로 했어요.”
“…동료……? 상관이요?”
헤롤이 저도 모르게 그 말을 되물었을 때, 케일이 입을 열었다.
“이제는 로운 왕국민이 된 마법사들이 위퍼 전쟁에 참여하고 싶다더군.”
이제는 로운 사람이 된 마법사. 그들이 누군지 헤롤과 툰카는 단박에 알아들을 수 있었다.
마법사 연맹에 속하지 않고 은둔해 있던 마법사들, 그리고 비마법사 연맹을 피해 목숨을 유지하려 왕국 밖으로 떠난 마법사들.
지금은 로운 왕국 마법병단에 속한 마법사들.
케일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우리 왕세자 저하께서는 그들에게 기꺼이 휴가를 내려줬지.”
로운은 이번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다.
하지만 뒤에서 도울 방법은 많았다.
“그래서 그 마법사들은 모두 고향으로 휴가를 오겠다고 하더군.”
물론 모든 위퍼 왕국 출신 마법사들이 위퍼로 오고 싶어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마법사 연맹에 속하지 않고 마법사 연맹을 꺼려하던 자들이라 그런지, 대부분 비마법사 연맹과 왕국민들의 감정을 이해했다.
그리고 고향을 돕고 싶어 했다.
“로운은 휴가 지원금으로 그 마법사들에게 마정석을 줄 거야.”
로운은 마이플성 전쟁을 지원하기 위해 마법사들에게 마정석을 제공하기로 했다.
더불어 마법사들이 따르는 로잘린이 그들에게 힘을 보태주기로 했다.
신분, 위치, 이 모든 것들에서 가장 자유로우면서도 강한 사람이 로잘린이었으니까.
참모장 헤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의 눈동자가 일렁이고 있었다.
지금은 아니지만 위퍼 왕국 출신이었던 마법사들이 위퍼를 구하러 온다. 어디 하나 손 뻗을 곳 없는 위퍼를 구하러. 위퍼 왕국민들에게 굳이 좋은 소리를 못 들을 것이 뻔한데도 위험을 무릅쓰고 온다.
헤롤은 속이 뒤집히는 기분에 휩싸였다. 머릿속보다 마음이 복잡하게 뒤엉켰다.
그때, 케일이 슬그머니 악동과 같은 미소를 지으며 헤롤과 툰카에게 말했다.
“그리고 불기둥 말이야. 그거 브렉 왕국 건 줄 알았지?”
설마? 로운 왕국이 만든 것인가?
헤롤은 번뜩 스치는 생각에 눈동자가 크게 뜨였다. 케일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그거 내 거야.”
“…로운이 아니라 케일 공자님 거라고요?”
“어. 참고로 마법이 아니고 연금술이야.”
참모장 헤롤은 말문이 막혔다. 그의 눈동자에는 웃고 있는 백발의 케일만이 담겼다.
그때였다. 헤롤이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크크-”
억눌린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툰카였다.
그는 어깨를 들썩이면서도 억눌린 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이내 그는 몸을 뒤로 젖히며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크하하하하하하하!”
툰카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케일을 보며 말했다.
“두렵지가 않다. 이 전쟁이 두렵지 않아!”
케일의 미소가 짙어졌다.
제대로 된 툰카다운 모습이었다. 눈에 뵈는 게 없는, 싸움에 미친 전사의 모습 그 자체. 그래서 적들에게 두려움의 광기를 선사하는 놈.
그놈이 번뜩이는 눈빛으로 케일에게 확언했다.
“제국을 씹어 발겨 먹어주마.”
케일은 그런 툰카에게 태연히 말했다.
“살살해.”
하하하하하하!
툰카는 뭐가 웃기냐는 듯 쳐다보는 케일의 표정에 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인간! 툰카가 다시 원래 툰카 된 것처럼 웃는다!
그러게 말이야.
케일은 툰카와 달리 복잡한 표정으로 얼이 빠진 헤롤에게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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