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282
281화.
끼이익.
밀리는 의자 소리와 함께 케일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자리를 떠나며 툰카에게 물었다.
“언제 떠나지?”
전장이 펼쳐질 격전지, 마이플성.
“내일. 국왕의 연설 뒤에 간다.”
제국이 먼저 선전포고를 했다.
그러면 왕국의 위신상, 아니, 무엇보다도 백성과 병사들의 사기를 위해 국왕이 맞받아 연설을 해야 맞았다.
그래야 백성들의 불안감과 병사들의 두려움이 줄어들 터.
케일은 고개를 끄덕이며 방을 나섰다.
“내일 연설 장소에서 보도록 하지.”
내일, 모두 전쟁터로 떠난다.
***
봄바람이 불어왔다.
-인간, 인간! 저 멀리 병사와 전사들이 서 있는 게 보인다! 우리 이제 싸우러 가는 것 같다!
케일은 봄 냄새를 맡으며 수많은 위퍼 병력들이 도열해 있을 곳을 향했다.
“신관님, 제가 걸음을 서두르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럼요. 괜찮습니다.”
케일이 부드럽게 답했고 그의 대답에 천인장은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천인장은 케일과 그 뒤에서 하얀 로브로 모습을 가린 신관 한 명을 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
천인장은 신관이 된 케일의 안내를 맡았다.
그는 이전에 케일을 본 적이 있었다. 천인장은 그때를 언급하며 조심스럽게 말을 붙였다.
“지난번 마이플성 전투 때 뵈었는데, 다시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신관님.”
천인장은 마이플성을 찾아왔던 신관들을 잊지 못했다. 열과 성을 다해 치료를 돕던 이들. 정말로 신의 부름을 받은 것처럼 헌신적인 모습이 뇌리에 뚜렷하게 남아 있었다.
그런 신관들의 우두머리로 보였던 이가 다시 위퍼 왕국을 찾았다.
‘툰카 대장군님과 아는 사이라 하셨지?’
그는 툰카 대장군의 요청으로 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곧 다른 신관님들도 도착할 거라고 했다.
“감사합니다, 신관님.”
천인장은 제국과 싸울 위퍼 왕국을 찾아준 신관이 진심으로 고마웠다.
“아닙니다. 그저 있어야 할 곳에 있는 것뿐입니다.”
크으!
겸손한 신관님의 말에 천인장은 감탄을 삼켰다.
한편 케일은 부담스러웠다.
‘뭘 저리 반짝이는 눈으로 쳐다봐?’
천인장의 존경을 담은 눈빛이 징글징글했다.
케일은 얼른 병사들이 있는 곳으로 가 대충 국왕의 연설을 듣고 마이플성으로 가고 싶었다. 하지만 신관 두 분을 모셔야 하는 천인장은 뛸 수도, 급한 모습을 보일 수도 없어 여유롭게 두 신관을 안내했다.
그러면서도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신관님.”
약간 간곡한 어조에 케일이 흠칫했다. 그때였다.
케일과 로브로 가린 최한, 천인장이 모퉁이를 돌아 저 멀리 큰 공터로 향할 때.
-인간! 모퉁이 뒤에서 툰카의 기운이 느껴진다! 뭔가 즐겁게 우리 인간한테 오려는 걸음걸이다.
아, 짜증 나.
케일은 툰카가 즐겁게 자신에게로 온다는 소리에 그냥 짜증이 났다.
그러나 능숙하게 신관 미소를 장착하고 유지했다. 당연히 툰카의 기척을 못 느낀 천인장은 케일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번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인간, 툰카 모퉁이 바로 뒤다! 놀래려는 건가! 나 툰카 놀래고 싶다! 툰카 나 보면 기절할 것 같다! 해보고 싶다!
아이고, 머리야.
케일은 한숨이 흘러나올 뻔했다. 하지만 그 한숨은 흘러나올 수 없었다.
천인장의 조심스러운 목소리 때문이었다.
“제가 이런 말씀 드리는 게 부담스러우시겠지만.”
케일은 천인장의 얼굴을 바라봤다.
서대륙에는 위퍼 왕국에 오려는 신관들이 없었다. 포션도 비싸기에 위퍼 왕국군은 ‘치료’에 대한 걱정이 가장 많았다.
그런 가운데 치유력이 없어도 포션을 들고서 찾아온 신관들이 천인장은 고마웠다.
대략 천여 명의 병사들을 통솔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인 그는 이번 전쟁의 무게가 막중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그는 어제 이 신관 두 명을 모시라는 명령을 받은 후, 하룻밤 새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던 말을 조심스럽게 내뱉었다.
혹여나 제 주제에 이런 말을 해도 될까 하는 불안감을 담은 채.
“신관님, 농기구 들던 놈들이 다들 먹고사는 게 힘들어 병사가 된 거라, 몇 번 전쟁을 겪었지만 그래도 아직 많이 어수선하고 부족합니다.”
천인장은 제 밑의 병사들을 떠올렸다.
비마법사 연맹에서 시작한 병사들이 태반으로, 그들은 무시받던 부족민이거나 혹은 마법사들에게 억압받던 일반 평민들이었다.
“전쟁이 끝나면 고향으로 돌아가서 농사를 지어야 할 놈들이 대부분이라 팔다리가 성해야 해서요. 꼭, 꼭 좀 부탁드립니다.”
2년여의 시간 동안 위퍼 왕국은 늘 전쟁에 시달렸다.
늘 적을 향해 덤벼들고 승리를 해왔지만, 이번에는 적들이 덤벼드는 위치였다.
그리고 이제는 전쟁을 그만할 때가 되었다.
천인장은, 병사들은 알게 모르게 전쟁 이후의 평화를 생각하고 고민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리워했다.
-…인간, 툰카가 모퉁이에서 멈춰서 안 움직인다.
케일은 한숨을 삼켰다. 그는 천인장을 바라봤다. 간절한 눈빛이 케일을 껄끄럽게 만들었다. 김록수 때도 이런 눈빛을 많이 받았다.
“천인장님.”
케일이 나지막이 그를 부르자 천인장은 얼른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그냥, 그냥 이놈들 처지가 이렇단, 흘러가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러니 신관님은 흘려들으십시오! 제가 괜한 말을 해 부담을 드린 게 아닐까 싶습니다! 아, 물론 상부에서 내린 명이 아닙니다. 그저 제가 괜한 걱정으로 이런 말을 한 것이-”
“괜찮을 겁니다.”
천인장은 신관의 말에 횡설수설하던 말을 멈췄다. 신관의 부드러운 미소가 눈에 담겼다.
“위퍼 왕국에서 나는 곡물들이 참 품질이 좋다지요. 영근 곡물들로 가득한 들판이 보고 싶군요.”
“…신관님.”
천인장은 눈앞의 신관이 그저 고마웠다. 그러나 케일은 감동받은 얼굴이 부담스러워 시선을 피해 앞을 보면서 말했다.
“어서 안내하세요.”
“네, 네!”
천인장은 힘차게 앞을 향해서 걸음을 내디뎠다.
케일은 한숨을 삼키며 그 뒤를 따랐고, 최한은 힐끗 모퉁이 뒤를 돌아보다가 로브 후드를 꾹 누르며 걸음을 옮겼다.
-인간, 툰카 굳어 있다!
역시나 케일은 라온의 말을 흘려들었다.
***
곧 케일은 수많은 병사와 전사들이 도열해 있는 장소에 도착했다.
이곳에선 봄 냄새를 담은 바람이 느껴지지 않았다.
오로지 흙먼지가 가득한 매캐한 냄새만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게 정상인 곳이었다.
케일을 안내했던 천인장은 자신의 천인대로 향했고, 케일은 최한과 함께 헤롤을 포함한 참모진들 곁에 섰다.
헤롤은 케일의 가까이 서며 입을 열었다.
“숫자가 생각보다 적죠?”
“나머지는 마이플성에 있겠군요.”
신관 케일의 존댓말에 헤롤은 능숙하게 받아넘기며 답했다.
“그렇습니다. 절반 이상은 제국이 선전포고를 했을 때 마이플성으로 이동했습니다. 남은 이들은 오늘 이동할 예정입니다.”
케일은 남들이 듣지 못하게 목소리를 낮췄다.
“용케도 병사들이 마법진 스크롤을 받아들였나 보군.”
제국이 쳐들어올 상황. 최대한 빨리 이동해야 했고, 거기에 텔레포트 마법만 한 게 없었다.
헤롤은 케일이 병사를 가리키며 시선을 저에게로 향하자, 눈길을 회피하며 답했다.
“…위퍼 왕국민들은 마법을 싫어하고 증오합니다. 그러나 죽는 건 무서우니까요.”
병사들은 죽기 싫었다.
안 그래도 마이플성 불기둥의 위엄을 맞닥뜨렸던 이들이었다. 그래서 연금술과 마법의 위험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그래서 마법사가 아니면 된다는 생각으로, 이동 마법진 스크롤을 포함한 마법 스크롤 사용은 받아들였다.
모순이다.
헤롤 자신도 모순이고, 병사들도 모순이었다. 그걸 알기에 수뇌부도 병사들도 마법 스크롤 사용을 쉬쉬하며 왕궁 밖으로 흘러가는 것을 피하려고 했다.
“잘 생각했어.”
그리고 타국의 사령관은 그 모순을 칭찬했다.
“일단은 사는 게 중요한 거지.”
그것이 진리라는 듯 말하는 사령관 케일의 모습에 헤롤은 흘러나오려는 웃음을 삼켰다. 그래, 뭐든 살아남아야 시도라도 해볼 수 있었다.
헤롤은 요즘 생각 중이었다.
마법이 없는 세상을 만들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마법으로 억압하려던 세력이 없는 세상을 만들고 싶었던 걸까.
전자와 후자는 달랐다.
후자를 택하면 마법을 받아들여도 된다.
그러나 전자를 택하면, 위퍼 왕국은 지금 모순의 길을 걷는 중이었다.
“참모장님, 대장군께서 오셨습니다.”
그때, 헤롤은 참모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툰카가 홀로 휘적휘적 등장했다.
그러고는 아무런 말 없이 병사와 전사들 맨 앞에 섰다.
“곧 국왕 전하가 오시겠군.”
케일은 작게 중얼거리며 툰카의 앞에 놓인 단상을 바라봤다.
국왕이 병사들이 사기를 높여주면 툰카는 진군을 외칠 것이다. 케일은 수만 명의 사람들이 함성을 내지르는 광경을 상상했다.
꽤 훌륭한 그림이었다.
그래서 국왕을 기다렸다.
‘…음?’
그런데 이상했다.
모두가 있는데, 국왕이 오지 않았다.
국왕의 호위를 맡은 친위 기사단도 보이지 않았다.
1분, 2분.
10분이 흘렀다.
약속된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아무도 말이 없었다.
하지만 정자세로 선 병사와 수뇌부들의 눈동자가 바삐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특히 도열해 있는 병사들과 달리 한쪽 측면에 모여 있는 참모진들의 표정이 좋지 못했다.
“참모장님!”
참모 한 명이 헤롤을 불렀다. 혼란에 가득 찬 표정이었다.
반면에 헤롤은 조금의 요동도 없이 눈빛만 번뜩이고 있었다. 그 분노한 눈빛에 참모는 입을 다물었다.
그때였다.
“크흠.”
한 기사가 공터로 들어섰다.
국왕 친위 기사단의 부단장이었다.
그는 등장하자마자 입구 근처에 서 있던 참모진들 쪽으로 다가갔다.
“무슨 일입니까?”
부단장은 저를 향해 다가간 헤롤의 차가운 물음에 멈칫하면서도 양피지를 하나 펼치며 말했다. 그 목소리는 꽤 컸다.
“국왕 전하께서 몸이 좋지 못해 연설이 불가피하신 상태입니다.”
하!
케일은 제 등 뒤에서 최한이 내뱉는 탄식을 들었다.
최한뿐만이 아니었다.
참모진들의 눈빛이 안 좋아졌다.
어제만 해도 작전실에 와서 고함을 지르던 인물이 갑자기 아프다? 연설을 하지 못할 정도로?
‘턱도 없는 소리.’
참모장의 눈빛이 점점 더 사나워지기 시작했다.
아플 리가 없다. 제 몸이 가장 고귀하다며 귀하게 여기는 부류가 아니던가.
아프기는커녕 너무나도 멀쩡한 상태로 지금 연설을 피하는 중이리라.
어제 헤롤과 툰카가 했던 행동 때문에 이러나?
‘그건 아니지.’
제 몸이 소중한 만큼 제 위신도 소중한 왕이었다.
그런 왕이 어제 툰카의 협박에 겁을 먹었던 것이 분해서 이 자리에 오지 않았다? 그럴 리가 없다.
‘제국이 겁나는 것이겠지.’
여기서 국왕은 연설을 하면 제국과의 전면전을 받아들이고 선포한 것이나 다름없게 된다.
하지만 여기서 연설을 피해 버리면, 공식적으로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이 없다면, 위퍼 왕국이 패배해 제국이 왕궁으로 쳐들어와도 국왕은 할 말이 존재했다.
왕은 제국에 할 변명거리를 만들려고, 마법사와 비마법사 연맹 간의 싸움 때처럼 이 상황을 회피 중이었다.
그래서 헤롤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부단장은 지금 이 상황의 의미를 압니까?”
병사들의 혼란이 느껴졌다.
싸우러 간다.
나라를 지키러.
이 땅을 지키러.
그런데 왕국의 주인이라는 자가 아프면 얼마나 아프다고, 목숨을 걸고 싸우려는 이들의 배웅조차 오지 않는다.
응원조차 하지 않는다.
그것이 무엇을 말하겠는가?
병사들에게, 백성들에게 어떻게 보이겠는가?
병사들이 바보인가?
누가 보아도 왕이 겁먹었다고 생각할 것 아닌가?
우두머리가 겁을 먹으면 아무리 강한 전사가 수하라고 하더라도 그들의 기세는 꺾인다.
그걸 왕도, 눈앞의 부단장도 알 것이다.
헤롤의 눈빛은 마탑을 노릴 때처럼 흉폭하게 변해갔다.
원래 미친놈이었던 헤롤이었기에 그는 기질을 아낌없이 드러내며 부단장을 노려보았다. 부단장은 그의 시선을 피하며 서류에 적힌 대로 읽어 내려갔다.
“크흠, 그래서 연설은 할 수 없으며 응원한다는 말씀을 전하라 하셨습니다.”
응원?
승리가 아니라 응원이라고?
헤롤은 기가 찼다.
‘쳐 죽일 새끼!’
마탑주보다 나쁜 놈이다.
헤롤의 광기가, 잔인함이 국왕을 향하기 시작했다. 당장에라도 왕을 죽이고픈 눈빛이었다.
그러나 헤롤은 지금 선뜻 움직일 수 없었다.
하나둘 병사들의 웅성거림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불안함이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병사들이 동요한다!’
기세가 꺾이고 있다.
헤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바로 전부 다 마이플성으로 끌고 갈 것을!
그때였다.
쿠웅-
땅을 울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헤롤은 단상 위를 가리키는 신관 케일을 보았다.
케일이 웃고 있었다.
헤롤은 고개를 돌렸다.
발로 땅을 굴러 큰 진동을 만든 사람이 단상 위로 향하고 있었다.
툰카.
그가 단상 위에 섰다.
그리고 대뜸 외쳤다.
“나는 무식하다.”
어이구야.
케일은 피식 웃음을 흘리며 손으로 눈가를 쓸어내렸다.
그 와중에도 웅성거리는 병사들의 목소리는 그냥 묻히게 만들 정도로 특유의 커다란 목소리가 병사들 사이에 울려 퍼졌다.
“나는 유식한 말은 모르고, 머리도 잘 안 돌아간다. 그러나 한 가지는 안다.”
병사와 전사들은 툰카를 쳐다봤다.
“너희들은 왜 나를 따랐나?”
전사들은 대부분이 야만인이라고 무시받던 부족민 출신이었다.
병사들은 대부분이 생업에 종사하던 일반 왕국민 출신이었다.
그들은 마법사 연맹과의 내전 때, 광기에 가득 차 툰카의 뒤를 따랐다.
“왜 농기구를 들고서, 맨손으로 돌덩이를 쥐고서 내 뒤를 따랐나?”
툰카의 물음이 공터를 가득 채웠다.
능숙한 군주들이 하는 절제되면서도 카리스마 넘치는 연설과는 달랐다. 어조도 투박했고, 서 있는 자세도 껄렁껄렁했다.
거기다가 눈빛도 상대를 잡아 죽일 듯 번들거리고 있었다.
툰카는 화가 나 있었다.
“우리는 왜 싸웠나!”
왜 광기에 가득 차서 마법사들에게, 강자에게 덤볐나?
2년 전만 해도 싸움이라고는 몰랐던 왕국민들의 표정이, 억압받아 구석에서 살아야 했던 부족민들이 표정이 달라졌다.
참모진들도 툰카를 바라봤다.
헤롤은 저도 모르게 케일 곁으로 걸어갔다. 그런 그에게 케일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기회다. 툰카 저 자식은 모르고 이러는 것 같지만.”
헤롤의 귓가에만 들릴 은밀하지만 따뜻한 목소리.
“이번이 기회야. 부족민, 왕국민들이 진정으로 서로를 위해 융합할 기회.”
그저 광기에 가득 차 피를 찾았던 집단에게 잊힌 목표가 다시금 떠오르기 시작했다.
분노와 광기를 뿜어내던 헤롤의 눈빛에 다른 빛이 머물기 시작했다.
툰카와 헤롤.
비마법사 연맹의 중심이자, 지금은 위퍼 왕국의 중심이 된 자들.
그때 헤롤의 귓가로 툰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이번에도 앞으로만 갈 것이다!”
폭군은 광기에 가득 찬 사람들을 끌어당겼던 그 모습 그대로 외쳤다.
병사와 전사들은 떠올렸다.
늘 앞만 보고 싸웠던 그들의 대장.
“너희들의 의사는 중요치 않다.”
그래, 저 모습에 매료되어 다쳐도 뒤따랐다.
“내 뒤를 따라라.”
병사와 전사들의 눈이 일순간 커졌다.
혼자서 앞만 보고 가던 리더가 말했다.
“나를 쫓아라.”
따라오라고 말하고 있었다.
늘 승리를 거머쥐던 리더의 말이었다.
서서히 뜨거운 분위기가, 광기를 닮았지만 조금 다른 열기가 병사들 사이를 흐르기 시작했다.
툰카는 눈이 뒤집힐 만큼 화가 나 있었다.
제국에, 왕에게 화가 났다.
그래서 다 때려 부수고 싶었다.
그러나 툰카는 이전과 분명 달라졌다.
그의 시선이 한쪽으로 향했다. 케일이 보였다. 여유롭게 웃고 있는 낯짝에, 툰카도 적이 보면 섬뜩할 미소를 그리며 다시 한번 말했다.
“뒤는 걱정하지 마라.”
앞만 봐라. 뒤는 걱정하지 마라.
툰카는 여전했지만 달라졌다.
그리고 달라진 리더에게 그를 닮은 수하들이 답을 보냈다.
쿵. 쿵. 쿵.
와아아아-
다시 전쟁에 달려들 준비가 끝난 전사들이 발을 굴리는 소리와 병사들의 열기 가득한 외침이 사방을 뒤흔들었다.
그건 타인이 보기에는 광기에 가득 찬 것처럼 보였다.
-인간아! 이제 곰족이랑 드워프 데려오나? 마이플성으로 데려오나?
케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서대륙 타국 사람들이 질겁했던 그 광기의 집단이 다른 감정을 품고서 똘똘 뭉쳤으니, 이제 다 휩쓸어버리는 일밖에 남지 않았다.
‘아니지.’
케일은 제 생각을 정정했다.
다 태워 버릴 일만 남았다.
그때였다.
-불바다를 만들려고?
백억에 충격을 받아 한동안 조용하던 불벼락이 갑자기 튀어나왔다.
-두근두근거린다. 어떡해.
…이 미친놈.
케일은 불벼락을 무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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