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285
284화.
‘파괴하는 불’의 일렁임에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드워프였다.
쇠를 다루는 종족.
불과 떨어질 수 없는 드워프 카넬은 케일의 손바닥에 일렁이는 불을 보며 숨을 들이마셨다.
쇠를 녹이려는 불과 다르다.
쇠는 물론이거니와 모든 것을 집어삼키려는 사악한 불길만이 느껴졌다.
“사령관님-”
족장 카넬이 케일을 불렀지만, 케일은 그를 쓱 한 번 보고는 걸음을 옮겼다. 그 뒤를 신관복 차림의 최한이 후드를 쓴 채 뒤따랐다.
“저리 두어도 됩니까?”
최한이 케일에게 물었다. 누가 보아도 우두커니 서 있는 드워프 족장을 가리키는 물음이었다.
“메리가 갔으니 상관없어.”
족장 대신 드워프를 움직일 메리가 갔으니 상관없다는 냉정한 말.
“그리고 곧 그놈도 움직일 거다.”
그러나 뒤이어 내뱉는 말은 확신에 가득 차 있었다. 케일은 성벽을 내려가며 내성으로 향하는 계단을 밟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뒤돌아 성벽 밖을 내다봤다.
“저걸 보고 가만히 있으면 멍청한 거지.”
최한도 따라 밖을 바라봤다. 그리고 이내 케일을 따라 그들의 목적지로 이동했다.
최한과 케일 등 뒤로, 툰카가 몽둥이만 든 채 달려드는 제국의 기사들에게 마주 달려들고 있었다.
콰앙!
쇠몽둥이와 검이 부딪치며 굉음을 내었다.
“크흐흐흐.”
모고르 제국 제3기사단의 부단장. 그는 투구 사이로 들려오는 웃음소리에 미간을 찌푸렸다.
‘이렇게 갑자기 달려들 줄이야!’
명색이 위퍼 왕국 최고 권력 자리에 선 툰카였다. 그 대장군이 출두한 전쟁.
보통 이런 전쟁이면 어느 정도 서로 분위기를 잡거나 혹은 우두머리 간 약간의 언쟁이라도 있는 법.
아니, 적어도 격식과 품격은 있다.
그러나 이 대장군은 야만인답게 그딴 건 없었다. 그냥 냅다 달려들기만 했다.
‘상대해.’
제국 제1기사단의 단장이자 제국 황실 기사단의 총단장, 그리고 영광스러운 소드 마스터 후텐 공작.
그는 제3기사단에게 어떠한 전략도 없이 달려드는 툰카와 전사들을 잠시 상대하라고 명했다.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망아지에게 제국의 격을 보여주도록.’
말을 타고 마법 강화 갑옷까지 입은 제3기사단. 부단장은 말도 없이 발로 뛰어오는 툰카를 보며 웃음을 흘렸다.
전쟁은 소꿉놀이가 아니다.
그래서 어떠한 군사적 배치나 진도 없이 달려드는 야만인들이 우스웠다. 그러나 부단장의 미간은 찌푸려진 채 펴질 줄을 몰랐다.
‘…이런 무식한 힘이라니!’
쇠몽둥이와 부딪치자 마법 강화까지 한 검에서 상당한 진동이 느껴졌다.
순간 부단장은 검을 놓칠 뻔했다.
더욱이 힘만 무서운가?
말을 탄 그에게까지로 날아오를 듯 점프하는 툰카의 탄력성은 놀라울 정도였다.
‘어디 있지?’
흔들리는 검 손잡이를 움켜쥐며 부단장은 오러 연기를 피워 올렸다. 상급 익스퍼트인 그의 검에서 희뿌연 오러 연기가 공기 중으로 퍼질 때였다.
콰앙!
“커헉!”
부단장은 투구가 울리는 진동에 눈을 크게 떴다. 그의 목이 뒤로 젖혀졌다.
투구가 한 사람의 손아귀에 잡혔다.
“흐흐흐흐-”
부단장의 시야에 이를 드러내며 웃는 야만인 우두머리가 보였다.
파지직, 파직.
투구에서 전류가 일어났다. 내구도와 함께 인챈트된 전류 마법이 제 주인을 보호하기 위해 적을 향해 전류를 일으켰다.
그래 봤자였다.
부단장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곧 귓가에 천둥이 울리는 것과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콰직.
상상을 초월하는 악력은 투구를 마치 종잇장처럼 구겼다. 부서진 투구가 천천히 벗겨졌다.
사아아아아-
바람이 부단장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말의 등을 밟고 선 야만족의 우두머리는 투구를 손에서 놓았다.
탕!
고물이 된 투구가 흙바닥을 나뒹굴었다. 기사는 툰카의 번들거리는 눈동자와 광기에 가득 찬 얼굴에 순간 몸이 굳어버렸다.
“흐흐흐-”
툰카의 손이 부단장의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손에 닿은 갑옷에 마법 스파크가 튀었다. 하지만 툰카에게는 아무 느낌도 없었다.
“이, 이 야만인이! 부단장님을 놓아라!”
또 다른 기사가 툰카를 향해 달려들었다. 평기사인 그의 검에는 마법이 인챈트되어 전류가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검은 툰카에게 닿지 못했다.
타앙!
“크윽!”
거구의 여인이 든 창이 검을 튕겨냈다.
툰카의 왼팔이자 부족 최고의 창술사 펠리아. 그녀가 기사의 검을 쳐냈다. 마법 내성을 지닌 그녀에게 전류는 조금도 영향을 주지 못했다.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전사들은 먼저 출두한 제3기사단을 향해 끊임없이 달려들었다.
모두 가죽 갑옷 차림에 단출한 무기만을 들고, 혹은 맨손으로 거침없이 전장에 제 몸을 내던졌다.
“…이 미친 야만인들-!”
부단장을 구하려던 평기사는 당황했다.
웃고 있다.
툰카도, 그의 왼팔인 펠리아도 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었다.
“크하하하하하!”
툰카의 웃음소리가 전장을 뒤흔들었다.
쿵. 쿵. 쿵.
툰카와 전사들의 뒤. 아직 전장으로 뛰어들지 않은 병사들이 창대를 땅에 굴려대며 진동을 일으켰다.
마치 야만적이라고 평받았던 부족의 축제를 맞이한 듯이, 병사들은 창으로 땅을 두드리며 축제의 광기에 휩싸인 듯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제정신인 놈이 없어!’
작년 마이플성에서의 위퍼 왕국군과 달랐다. 그때보다 더, 더 근본적으로 미쳐 보였다.
특히 저들의 우두머리.
“커헉!”
부단장은 가공할 힘에 눌려 말에서 내팽개쳐지듯 떨어졌다. 대신 야만족의 우두머리가 말을 차지하며 평기사가 있는 쪽을 노려보았다.
평기사는 그 눈빛에 숨이 막혀왔다.
하지만 우두머리는, 툰카는 그를 보고 있지 않았다.
“툰카 대장군.”
평기사는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흠칫 몸을 떨었다. 동시에 안도했다.
제국의 검, 후텐 공작.
그가 말을 몰고 천천히 툰카에게 다가갔다. 그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툰카를 적으로 두지 않는 오만함이 엿보였다.
“오랜만이오. 제국에서 봤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어디 있지?”
하지만 툰카는 후텐을 깔끔히 깔아 보았다. 후텐의 눈썹이 꿈틀거렸지만 공작은 차분히 대화를 이어나갔다. 강자의 여유였다.
“뭐가 어디 있냔 말이오?”
흐흐.
후텐 공작의 물음에, 툰카는 실실 웃으며 먹잇감을 발견한 듯 혀로 입술을 축이고 짓씹듯 말했다.
“아딘 말이야, 아딘.”
순간 정적이 내렸다. 그 사이로 오로지 툰카만이 입을 열었다.
“아딘 그 겁쟁이 새끼 어디 있냐고!”
아딘. 모고르 제국의 황태자이자 사실상 다음 황제로 내정된 자.
툰카는 그의 이름을 근처 양아치 부르듯 불러댔다.
제국군은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
그리고 한 사람 더. 마이플 성벽 첨탑에 있던 화염의 드워프 족장 카넬은 붙박이처럼 굳어 멍청히 서 있었다.
“겁쟁이는 숨지 말고 나와! 이 주먹으로 박살을 내주마! 크하하하하!”
툰카의 외침.
겁쟁이는 숨지 말고 나와라.
타닥. 타닥.
화염의 드워프 족장은 천천히 발걸음을 떼었다. 그의 몸이 전장에서 점점 멀어지며 뒷걸음질을 쳤다. 그의 머릿속에 케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곧 볼 수 있을 거다. 네놈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
드워프 족장은 뒷걸음질 치며 막혔던 숨을 토해냈다.
“후우.”
그리고 후텐 공작도 깊은 숨을 토해내었다. 하지만 그의 눈동자엔 분노가 어렸다.
“툰카 대장군, 난 지금 예의를 지키고 있소.”
아무리 툰카가 강하더라도, 후텐 공작은 그의 경지가 보였다. 그 말은 후텐이 툰카보다 우위라는 소리였다.
강자로서 예의를 지키던 후텐은 정말로 예의라곤 밥 말아 먹은 무식한 놈을 보며 서서히 날을 세우기 시작했다.
“예의?”
흐흐흐!
하지만 툰카는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그는 최한과 로잘린이 오기 전, 첨탑에서 케일과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이번엔 받기만 해서 미안하군. 원하는 게 있나?’
툰카는 자신의 물음에 놀라는 케일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곧 평소의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
‘후텐 공작으로 부족해. 아쉬워.’
툰카는 역시 이놈은 약한 듯 강한 놈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누가 제국군을 보고 이런 말을 할까?
‘황태자. 그를 이 진흙탕으로, 아니, 불구덩이로 끌어들여. 우리만 당할 순 없지.’
그 말은 너무나도 툰카의 마음에 드는 말이었다.
그렇기에, 앞으로는 예의를 말하면서 뒤에서는 협박하고 위퍼 왕국을 집어삼킬 야욕을 지닌 제국에게 비웃듯이 외쳤다.
“위퍼를 노리면 황태자 새끼 제 놈도 내려왔어야지!”
말을 밟고 있던 툰카의 신형이 순식간에 앞으로 쏟아졌다.
콰앙!
굉음이 터져 나왔다.
기사들이 툰카의 앞을 가로막았다.
기사의 검으로 만들어진 벽. 툰카는 그 너머 있는 후텐 공작을 보며 외쳤다.
“진흙탕에서, 아니지, 불구덩이에서 뒹굴게 해주마! 네놈들도 우리와 같은 곳에 서야 할 거다!”
귀족이고 왕이고 황제고 나발이고 간에!
다 부수면 그만이다.
“우리 위퍼는 약하지 않다!”
툰카의 외침이 전장을 가득 채웠다. 모두의 귓가에 들렸다.
케일은 그 목소리에 목청 좋다며 웃었고, 뒷걸음질 치던 드워프 카넬은 주먹을 꽉 쥔 채 전장을 외면하며 뒤돌아 달렸다.
전장의 반대 방향, 내성으로 향했다.
콰아앙!
그와 동시에 다섯 개 검으로 만들어진 벽이 무너졌다.
툰카는 검날이 제 몸을 스쳐도 무시하며 앞으로 달렸다.
높은 곳에 있는 놈들이든, 강한 놈들이든 다 자신과 같은 위치로 끌어내리면 된다. 땅 위에 서면 모두 다 같다.
마법? 오러? 인간이 태어날 때 주어진 것은 오로지 제 몸뚱어리뿐이다. 그 몸뚱어리만으로 자연과 싸우며 성장한 사람이 툰카였다.
그가 겁이 없는 이유는 제 타고난 몸뚱어리를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등 뒤도 두렵지 않았다.
채앵!
후텐 공작이 검을 뽑아 들었다.
오러가 치솟아 올랐다. 마법 내성은 있어도 오러 내성은 없는 툰카. 필패만이 존재했다.
우우웅-
제국 제1기사단의 최상위 실력자들에게서 오러 연기가 피어올랐다. 최소 상급의 익스퍼트. 그들은 툰카 뒤의 전사들을 향해 검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기사단 뒤에서 마법단장이 외쳤다.
“1차 공격 준비!”
그 외침에 제국 마법병단 근처의 마나들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후텐 공작은 저를 향해 일직선으로 달려오는 툰카를 보며 웃었다.
“대장군, 전사들은 우리 기사단의 손에, 그리고 병사들은 마법사들의 손에 죽을 것이오.”
마법 내성을 지닌 전사들은 기사에게, 마법 내성이 없는 병사들은 마법사에게 죽임을 당할 것이다.
후텐 공작을 태운 말이 앞으로 쏘아졌다.
쾅!
후텐 공작의 검과 툰카의 쇠몽둥이가 부딪쳤다.
서걱.
오러에 쇠몽둥이가 베였다.
이게 자연의 법칙이었다. 강자가 약자를 짓밟는 공식이고, 부족민의 한계였다.
후텐 공작은 가볍게 검을 휘두르며 툰카에게 말했다.
“바람의 방향이 느껴지오?”
바람은 제국에서 위퍼 왕국을 향해 불었다.
“봄바람은 제국에서 위퍼 왕국으로 향하지.”
서대륙의 봄바람은 늘 서에서 동으로 불었다. 툰카는 다시 한 번 잘린 몽둥이를 들고서 후텐 공작에게로 달려들었다.
콰앙!
검과 잘린 몽둥이가 부딪친 순간, 후텐은 사자의 갈기보다 못할 정도로 더럽게 헝클어진 야만인을 보며 비릿한 미소를 지은 채 속삭였다.
“차라리 80년을 버리지 그랬소?”
80년간 노예 10만 명.
후텐이 제 가식을 한 꺼풀 벗겨냈다.
그때였다.
“봄바람 같은 개소리하고 자빠졌네.”
크흐흐흐흐.
툰카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바람이 느껴졌다.
제국에서 위퍼로, 서에서 동으로 부는 봄바람이 아닌, 다른 바람이 느껴졌다.
후텐 공작의 시선이 툰카의 등 뒤를 향했다.
바람이 분다.
마이플성에서부터 바람이 불어온다.
바람이 마이플성에서부터 밖으로 몰려나온다.
끼이익- 끼이익-
기괴한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오랫동안 쓰지 않았던 기계들이 오랜만에 움직일 때 나는 소리 같은. 혹은 비틀어졌던 톱니바퀴가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 맞물려져 가는 그런 소리가.
그 소리가 바람과 함께 불어왔다.
“크하하하하! 왔구나! 역시!”
툰카의 희번덕거리는 눈빛이 후텐 공작을 찢어 죽일 듯 노려보았다.
“내 뒤는 이제 강해! 크하하하!”
사아아아-
거센 바람이 자연의 흐름을 따라 불어오는 봄바람을 집어삼키며 흐름을 바꿨다.
동에서 서로.
제국에서 위퍼로 향하던 바람이 일순간 반대 방향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제국은 자신들을 향해 움직이는 바람도 느끼지 못했다.
떠오른다.
마이플성의 중심.
그곳에서 하얀 새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날개 없이, 오로지 뼈만이 존재하는 하얀 새.
그것들이 날갯짓을 하며 바람을 일으켰다.
그중에서도 가장 거대한 새.
최상급 마정석 여러 개를 몸통에 박은 백골의 새가 하늘을 지배할 듯 반쯤 접힌 날개를 펼쳤다.
그 새는 누군가에게 목줄이 잡혀 있었다.
검은 연금술 탑 위에 있던 사자족이 저도 모르게 외쳤다.
“족장 카넬……! 드워프 저 새끼들이 왜 저기에!”
새의 목줄을 쥔 것은 화염의 드워프 족장 카넬.
성벽에서 멀어진 그가 간 곳은 제 부족원들이 있는 성내였다. 툰카의 목소리가 그의 등 뒤에서 울렸다.
‘겁쟁이는 숨지 말고 나와!’
‘우리 위퍼는 약하지 않다!’
그리고 케일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머릿속을 후려쳤다.
‘곧 볼 수 있을 거다. 네놈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
족장 카넬은 백골새의 조종을 담당하는 목줄을 한 손에 쥔 채 다른 한 손으로 영상 통신구를 꽉 쥐었다.
다른 네 마리의 백골새를 조종하는 드워프들이 작은 족장의 등을 바라봤다.
백골새의 크기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작은 덩치의 드워프들. 그들의 앞에 선 가장 큰 새 위의 족장에게, 영상 통신구 너머의 남자가 말했다.
-뒤는 걱정 마라.
족장은 뒤를 돌아봤다.
마이플성의 가장 높은 꼭대기.
그곳에서 그들의 사령관이 그들을 응시하고 있었다.
바람의 방향이 바뀌었다.
-바람이 불을 몰고 올 거다.
사령관의 목소리가 바람과 함께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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