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287
286화.
뒤로 물러선 툰카 측. 역시 뒤로 물러선 제국 측.
실드로 앞을 막은 그들 사이의 텅 빈 땅.
“…불.”
그곳에 하늘에서 내려친 불이 치솟아 올랐다.
신이 인간을 위하여 불을 내렸다 전해지지만, 지금은 꼭 하늘에서 내린 천벌과 같았다.
후텐 공작은 저도 모르게 검 손잡이를 터질 듯이 그러쥐었다.
“공작님.”
등 뒤로 떨리는 상급 마법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국 마법병단 1대대를 통솔하는 자였다.
“저건 마법이 아닙니다.”
“뭐?”
“순수한 불의 힘입니다. 아무래도 고대의 힘 같습니다.”
갈색 로브. 그자가 떠올랐다.
로잘린 옆에 서 있던 자.
고대의 힘, 로잘린. 그 두 가지를 떠올리니 후텐 공작은 자연히 한 사람이 떠올랐다.
케일 헤니투스.
그자의 이름이 떠올랐다. 동시에 브렉 왕국의 전쟁을 도왔던 로운 왕국이 차례로 생각났다. 의심이 피어올랐다.
하지만 동시에 수그러들었다. 현재 제국과 좋은 관계인 곳이 두 곳 있다면, 그건 카로 왕국과 로운 왕국이었다. 더욱이 케일 헤니투스는 제국에서 훈장도 받지 않았던가.
‘쓸데없는 의심은 접어둔다.’
그러나 저 갈색 로브는 조심해야 했다. 후텐의 눈동자에 서서히 오만함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반면, 케일은 너무 놀라 살짝 비틀거릴 뻔했던 다리에 힘을 줬다. 살짝 그의 몸이 휘청였다.
“…케-!”
로잘린은 병사들이 근처에 있었기에 황급히 입을 다물며 그의 팔을 붙잡았다. 그리고 로브 속 케일의 얼굴을 살폈다.
‘어?’
케일의 얼굴색이 멀쩡했다. 괜찮다를 넘어 아주 쌩쌩해 보였다.
왜 그런 것 있지 않은가. 늘 방 안에 틀어박혀서 공부만 하던 사람이 어느 날 날이 좋아 밖으로 산책을 나와 가볍게 몸을 풀자, 혈색이 돌아 파리한 얼굴색이 좋아지는 경우 말이다.
케일의 얼굴이 딱 그랬다.
갈수록 파리해져서 걱정이 들던 얼굴에 살짝 붉은 기가 돌며, 혈색이 아주 철철 넘쳐 보였다.
“…괜찮아요?”
로잘린은 그리 물으며 케일의 눈동자를 당황한 마음으로 마주했다. 반면에 케일은 당황과 황당함이 오묘하게 뒤섞인 로잘린의 얼굴을 보는 순간 정신을 차렸다.
그는 주위를 둘러봤다.
놀란 병사와 더 놀란 마법사들.
그리고 헤롤 참모장의 묘한 표정.
케일은 아래도 내려다봤다.
실드 속에서 툰카가 케일을 응시하고 있었다.
-인간! 진짜 괜찮나? 아니, 괜찮은 것 같은데, 이상하다! 아니다! 나 알았다! 역시 그때 황금 때려 쏟은 그 강화가 대단했던 거다!
검은 용 라온의 안심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렇게 된 거 다른 것도 다 강화하자! 그러면 우리 인간, 이제 안 아프다!
그러다 침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다. 지금 못 한다. 강화는 돈 많이 든다… 내 저금통에 아직 돈 얼마 못 모았다.
하지만 케일은 라온의 목소리를 흘려들었다. 케일의 눈에 툰카가 보였다. 모두가 놀랐을 때, 툰카 홀로 반응이 달랐다. 놈은 케일을 응시한 채 입을 벙긋거렸다.
‘안 하나?’
씨익. 케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는 저를 잡고 있는 로잘린의 손을 떼어내며 입을 열었다.
“시작하세요.”
로잘린의 눈빛이 달라졌다.
아직 불기둥이 타오르고 있었다.
연금술 검은 탑에 비견되는 높다란 불기둥. 함부로 꺼뜨리기 두려운 아우라를 뿜어내는 존재였다.
그러나 홀로 서 있는 기둥은 초라했다.
“불을 꺼라! 그리고 진형을 이동하라!”
후텐 공작의 목소리가 천둥처럼 제국군들 사이로 휘몰아쳤다. 정신을 차린 제국군은 곧 진형을 이동하기 시작했다.
저 불기둥은 피한다.
‘왜 저기에 불기둥을 내리쳤는지 알 수 없지만, 우리에겐 소용없는 일이야.’
제국군 진영을 향한 불기둥도 아니었고, 그저 빈 땅을 내리친 힘이었다.
아무도 죽이지 않는다면 결국 보잘것없는 힘.
‘어차피 마이플성으로 향하는 다른 길은 많다.’
허허벌판과 같은 곳에 자리 잡은 마이플성이다. 어디로든 가면 되는 일이다.
수만의 제국군이 마이플성 하나 감싸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리고 성을 모두 둘러쌀 정도의 제국군을 상대하기에 위퍼 왕국의 전사와 병사들은 수가 적었다. 더욱이 성벽에는 소수의 병사와 마법사들 수십밖에 없지 않은가.
‘드워프와 저 불기둥만 조심하면 된다.’
결국 물량 싸움이다.
그 순간이었다.
우르르르르-
조용하던 하늘이 다시 울기 시작했다.
“아.”
후텐 공작은 한 가지를 떠올렸다.
고대의 힘으로 추정되는 불 때문에 잊고 있던 힘.
로잘린과 또 다른 누군가의 마법.
검은 구름은 여전히 전장을 뒤덮고 있었다.
“이런!”
“공작님!”
후텐 공작은 다급히 입을 열었다.
“실드를 펼쳐라!”
이번에는 제국군을 향해 마법이 내리칠 것이다.
보아라.
지금 불기둥으로 가려지지 않은 성벽 위의 마법사들도 모두 벌건 화염 계열 마법을 준비하지 않는가!
‘툰카를 보호하기 위함이었어!’
저 붉은 기둥은 툰카를 제국군으로부터 떨어뜨리고 제국군에게 마법을 난사하기 위한 술책이었던 것이다.
후텐은 로잘린과 위퍼 참모들의 작전을 그제야 눈치챌 수 있었다. 그렇기에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실드를 재촉했으며, 병사와 기사들은 몸을 웅크러뜨리고 방패를 펼쳤다.
우르르르.
다시 하늘의 울음이 그쳤을 때.
콰아아앙!
콰아앙!
하늘에서, 그리고 마이플성에서부터 붉은빛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파괴를 담은, 흘러내리는 피와 같은 불과 달랐다.
일반적인 불, 그리고 일부 전류 마법들이 공간을 뒤흔들었다.
“크윽!”
후텐 공작 옆의 마법사가 땅의 진동에 몸을 비틀거렸다.
어마어마한 힘이었다. 특히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적금빛 벼락에, 순간 후텐 공작도 뒷목이 서늘해져 왔다.
그러나 후텐 공작은 천천히 숙였던 몸을 온전히 펼 수 있었다.
마법이 지나간 자리.
“…공작님, 아무도 죽지 않았습니다.”
제국 측에 죽은 자는 아무도 없었다. 다친 이들이야 조금 있었지만, 아무도 죽지 않았다.
그러나 후텐 공작은 그 상황에 웃을 수 없었다.
“뭐, 저런!”
후텐 공작은 앞을 보며 황당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피와 같던 불기둥이 기준으로 장벽이 만들어졌다.
활활 타오르는 불의 장벽이 제국군의 눈앞에 나타났다.
마법으로 만들어진 온갖 불과 전류들이 뒤섞여 벽이 되어 타오르고 있었다.
“공작님! 사방이 막혔습니다!”
후텐은 기사의 외침이 들려왔다.
그의 눈에도 보였다.
불의 장벽이 마이플성을 감싸고 있었다. 어느 누구도 침입할 수 없다는 듯.
과거 제국이 마이플성을 감싸는 불의 장벽을 만들어놓고 도망갔듯이, 위퍼 왕국은 그때를 똑같이 재현했다.
하지만 한 가지가 달랐다.
“…다 막지는 않았군.”
다 막지 않았다.
제국은 위퍼 왕국이 성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꺼지지 않는 불을 입구도 없이 연금술로 둘러 세웠다.
그러나 위퍼 왕국은 입구를 만들어놓았다.
피와 같던 불기둥과 적금빛 벼락이 내리쳤던 자리. 그 두 자리 사이로는 어떠한 불도 치솟지 않았다. 여전히 흙먼지만 날리며 텅 비어 있었다.
그리고 그 너머로 마이플성의 정문이 보였다.
제국은 저곳을 넘으면 불에 닿지 않고도 마이플성을 탐낼 수 있었다.
“하, 하하-”
후텐 공작은 웃음을 터뜨렸다.
정문 앞.
불이 없는 곳.
그곳을 채우는 이들이 보였다.
맨 앞은 툰카였다.
그리고 그의 뒤를 수하인 전사들이 채웠으며, 그 뒤는 병사들이 채웠다.
또한 정문 위의 성벽에는 용병 마법사와 로잘린이 빽빽하게 자리해 있었다. 그리고 갈색 로브도 보였다.
갈색 로브의 케일은 툰카의 등을 내려다봤다. 툰카는 그 시선을 느끼며, 불 장벽 사이에 있는 유일한 입구에 서서 후텐 공작과 적들을 바라봤다.
그는 전쟁 전 첨탑에서 케일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케일, 도와주는 건 고맙지만 나와 전사들은 싸울 거다.’
헤롤 참모장도 툰카의 말을 거들었다.
‘보조만 부탁드립니다. 위기 상황이 되면 앞으로 나서달라고 부탁드리겠지만, 일단은 저희 힘으로 하고 싶습니다.’
제국과의 싸움.
위퍼 왕국은 스스로 어느 정도 버티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했다. 그게 병사들의 사기도 높이고, 제국이 다시는 위퍼를 노리지 않게 만드는 일이었다.
또한 나아가 헤롤은 이 전쟁을 빌미로 왕을 죽이거나 완전한 허수아비로 만들 작정이었다. 그러려면 성과가 있어야 했다. 그렇기에 그들은 싸우고자 했다.
물론 툰카는 헤롤과 조금 다른 이유였다.
‘그게 위퍼답다.’
위퍼 왕국다운 일.
야만적이라고 평을 받든 말든 일단 그들 손으로 싸워야 한다.
그 말에 케일은 두 사람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안 그래도, 나는 적어도 1차전에서는 나서지 않을 생각이다.’
툰카는 불의 열기가 느껴졌지만 핏줄이 터진 듯 충혈된 후텐 공작의 눈동자가 더 잘 보였다. 케일의 목소리가 간질간질 귓가에 맴돌았다.
‘나는 너희들이 날뛸 수 있는 전장을 만들어줄 거다.’
‘툰카, 좁고 깊은 협곡을 상상해라.’
아군이 있는 좁은 협곡으로 들어서는 적들을 떠올려라.
깊고 깊은 협곡. 양쪽이 높은 절벽으로 가로막혀 좁디좁은 곳.
그것도 불로 만들어진 협곡.
물론 협곡과 마이플성 전투는 다른 환경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같을 것이다.
‘적들은 좁은 길의 끝에서 위퍼의 전사들을 마주할 거다.’
적의 숫자가 아무리 많아도 그들이 마주할 수 있는 길은 단 하나뿐이었다.
깎아지른 협곡 사이를 가르듯이, 그렇게 이 불 장벽의 입구를 넘어야 할 것이다.
‘툰카 너를, 너희들을 넘지 못하면 적들은 위퍼 왕국의 땅을 밟을 수 없다.’
툰카는 제 옆에 달린 주머니를 매만졌다. 이 주머니 속 구슬이 케일이 불굴 연합과의 전쟁 때 죽음의 협곡에서 사용했던 그 불기둥의 재료라 헸다.
‘협곡의 불은 꺼지지 않을 거다. 내가 그렇게 만들 테니, 그냥 앞만 봐. 어때? 네가 원하는 전장인가?’
어떠냐고?
원하다마다. 너무나도 툰카의 마음에 드는 전장이었다.
그는 제 옆에 서는 전사들을 느끼며, 그리고 제 뒤에 있는 성벽 위의 사람들을 느끼며 마음이 든든해짐을 느꼈다.
수만의 제국군이 두렵지 않았다.
자신이 죽기 전까지 제국군은 결코 이 길을 지나가지 못한다.
소름 돋게도 툰카는 이 전장이 마음에 들었다.
그때, 그의 뒤에서 예상치 못했던 소리가 들려왔다.
끼이이이-
성문이 열렸다.
곧 툰카는 제 옆에 서는 병사 옷차림의 남자를 볼 수 있었다. 투구를 쓴 놈. 툰카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얼굴이 안 보여도 누군지 알았다.
“오러 못 쓴다고 하지 않았나?”
투구를 쓴 남자, 최한은 평범한 철검을 뽑아 들며 자세를 올곧이 세웠다.
‘최한, 싸우고 싶다고? 곧 우리는 치료를 하러 가야 할 텐데.’
‘케일 님, 치료도 중요하지만 검을 드는 것도 살리는 일 같습니다.’
‘그것뿐인가?’
‘…후텐 공작은 오러를 씁니다. 툰카는 오러가 없지요. 혼자는 힘들 겁니다.’
‘너도 지금 오러를 쓰면 안 된다만?’
툰카와 케일이 같은 질문을 했다.
최한은 왠지 나오려는 웃음을 참고, 케일에게 했던 대답을 떠올리며 담담히 답했다.
‘그래도 툰카 혼자보다는 제가 같이하는 편이 낫습니다.’
“난 그래도 강하다.”
툰카는 웃음이 나왔다.
정체를 숨겨야 해서 오러도 못 쓰는 놈이, 저를 두드려 패며 날을 세우던 놈이 지금은 툰카의 바로 옆에 섰다.
맞다.
최한은 오러를 쓰지 않아도 강한 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강한 놈이 제 편이다.
툰카는 알 수 없는 감정이 치솟아 올랐다.
“최한, 너도 내 친구지?”
“시끄럽다.”
채앵.
더 말하지 말라는 듯 최한의 평범한 검 끝이 후텐 공작을 가리켰다.
최한과 후텐 공작은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었다.
제국에 갔을 때는 혹시 후텐 공작이 최한의 경지를 알아차릴까 봐 케일이 떼어놓고 다녔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같은 소드 마스터라도 최한과 후텐의 경지는 천지 차이였다.
후텐의 외침이 울려 퍼졌다.
“제3기사단은 내 뒤를 따라라!”
제국 기사단이 말을 타고서 공작과 함께 마이플성의 유일한 입구를 향해 달려들었다.
우우우웅-
동시에 다시 제국의 마법병단이 마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들의 마나가 유일한 성의 입구와 불의 장벽을 향했다.
불의 장벽과 그 장벽의 유일한 틈에 있는 자들을 모두 죽이기 위한 마나가 대기에 진동했다.
툰카는 그 모든 것들의 앞에 서서 제 뒤에 있는 이들을 떠올리며 흉폭하게 외쳤다.
“나를 밟고 넘어가기 전까지 이 땅은 못 지난다!”
이미 최한은 땅을 박차며 앞으로 쏘아나가고 있었다.
소수와 다수의 싸움.
소수가 원하던 전장이 이제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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