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288
287화.
제국 제3기사단이 불구덩이 속 유일한 길로 달려갔다.
“말에서 내려!”
후텐 공작은 말에서 뛰어내리며 외쳤다.
말이 시뻘건 불을 보고 겁을 집어먹었다. 겁먹은 존재는 전장에서 쓸모없었다.
‘어차피, 저 좁은 입구에 말은 거추장스러운 존재.’
판단을 내린 후텐 공작이 불구덩이를 향해 빠른 속도로 나아갔다.
챙-!
검이 하늘을 찌를 듯 치솟아 올랐다, 아니, 오러가 치솟아 올랐다.
검을 닮은 은회색의 오러가 하늘을 향해 치솟았다.
제국의 검. 그 이름은 후텐 공작이 소드 마스터이기에, 그리고 그의 오러 빛깔이 검날 그 자체이기에 붙여진 이름이었다.
“공작님을 따라라!”
제3기사단 단장의 외침과 함께 말에서 내린 기사들은 공작을 감싼 형세로 툰카를, 성의 정문을 향해 나아갔다.
“으하하하! 결국 땅으로 내려왔구나! 역시 같은 위치여야 재밌지! 크하하하!”
후텐 공작은 저를 향해 달려드는 툰카가 보였다.
툰카와 전사들이 앞으로 향하자, 뒤쪽 병사들이 장창과 화살을 들고 그 자리를 메꿨다.
“건방진 놈.”
후텐 공작은 짓씹듯이 내뱉으며 오러를 머금은 검을 든 채로 땅을 박찼다.
툰카와 후텐.
두 사람은 서로만을 보며 부딪칠 듯 달려들었다.
‘건방진 야만인 주제에! 죽인다!’
후텐은 자존심이 상했다.
압도적인 병력을 준비해 왔음에도 자꾸 위퍼에 휘둘리고, 이제는 전장의 흐름까지 바뀌었다.
그가 앞서서 달려간 이유는 흐름을 바꾸기 위해서였다.
또,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다.
마지막으로.
“네놈은 죽여주마!”
툰카를 죽이기 위해서였다.
툰카가 이제 후텐 공작의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왔다. 오러가 없는 야만인 따위는 결코 닿을 수 없는 거리에서, 후텐 공작은 툰카를 향해 살초를 날릴 수 있었다.
오러가 있었으니까.
마법사와 일반인의 가치가 다르듯, 오러가 있는 자와 없는 자도 전장 위에서 그 가치가 다르다.
우우우웅-
은회색의 오러가 하늘로 향했다. 그리고 빠른 속도로 아래로 내리그어졌다.
툰카를 죽인다.
그 의지가 담긴 검이, 후텐의 첫 공격이 시작되었다.
“네놈은 내가 짓밟아주-”
그때였다.
소름이 돋았다.
후텐은 일순간 서늘함이 느껴졌다.
검이 온다.
검과 같은 섬뜩한 날이 온다.
후텐은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렸다.
검은 투구가 보였다.
눈동자조차 대부분 가려져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투구.
‘…언제?’
언제 저것이, 저 사람이 여기까지 왔지?
못 느꼈는데?
소드 마스터인 내가 아무것도 못 느꼈는데?
그러나 의문은 더 커질 수 없었다.
평범한 철검을 들고서 그저 평범하게 달려오는 투구의 검사. 후텐 공작은 닭살이 돋은 팔을 움직였다.
하지만 검은 투구의 검사가 더 빨랐다.
“크윽!”
후텐은 몸이 휘청였다. 그의 눈동자가 커졌다.
순간적인 가속으로 제 오른쪽을 들이박는 놈의 모습이 보였다.
‘무슨 이런 속도가……!’
평범한 검사인가?
아니면 암살자?
아니면-
‘소드 마스터?’
후텐의 검에서 다시금 은회색 오러가 피어올랐다. 그리고 철사망으로 가려진 투구 안의 눈동자를 보려 했다.
위퍼 왕국에는 이런 검사가 없으니까.
그러자 희미하게 눈동자가 보였다.
붉었다.
새빨간 눈동자가 보였다.
마치 지옥의 용암에서 기어 올라온 뱀과 같은 눈동자. 후텐은 저도 모르게 검은 투구 뒤로 지옥의 불이 보이는 듯했다.
후텐은 다급하게 팔을 휘둘렀다.
은회색 오러가 검은 투구를 향했다.
검은 투구의 검사는, 최한은 그 오러를 보는 순간 바로 뒤로 물러섰다.
서걱.
하지만 그의 옷깃이 살짝 베였다.
‘역시.’
최한은 조금 잘린 제 옷깃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검을 그러쥐었다.
마법으로 바뀐 붉은 눈동자가 투구 너머 후텐 공작을 주시했다.
‘라온, 최한 눈 색 바꿔놔. 들킬지도 모르니까.’
‘알았다, 인간! 최한아! 내가 좋아하는 색으로 해준다! 내 마음대로 할 거다!’
라온은 그저 좋아하는 색으로 바꿔줬을 뿐이었으나, 의도치 않게 후텐 공작에게 깊고 붉은 잔상을 남겼다. 그러나 그는 경험 많은 소드 마스터였다.
“누구냐?”
후텐이 물었으나, 최한은 다시 검을 겨눴다.
투박해 보이는 검은 투구.
가죽 갑옷도 입지 않은 평상복.
더욱이 오러도 없는 평범한 철검.
“공작님, 제가 상대하겠습니다!”
“총단장님! 저런 잔챙이는 제가 맡겠습니다!”
대열에서 빠진 기사 두 명이 공작에게 다가왔다. 하지만 공작은 기사들에게 어떠한 답도 내려주지 않았다.
그의 신형이 앞으로 쏘아졌다.
콰앙!
다시 한번 폭발과 같은 굉음이 울려 퍼졌다.
후텐 공작의 눈동자가 비웃음을 담았다.
검과 검이 부딪치지 않았다.
평범한 철검은 은회색의 오러를 피했다.
대신 철검은 후텐 공작의 검을 흘려냈다. 검 손잡이가 서로 강하게 부딪쳤다.
“왜 오러를 사용하지 않지?”
후텐은 투구의 검사를, 최한을 노려보며 물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는 상대인 최한의 경지를 완전히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한 번 부딪쳐 보고 가늠할 수 있었다.
저자는 내 수준이다.
즉, 소드 마스터다.
후텐은 실소를 흘렸다.
“소드 마스터의 싸움에서 오러를 안 써? 지고 싶은가 보군.”
소드 마스터가, 검사가 오러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건 그냥 눈을 감고 싸운다는 소리였다.
사아아-
은회색의 오러가 바람을 갈랐다.
최한은 뒤로 물러섰다. 그는 평범한 철검을 내려다봤다.
“지고 싶은 게 아니군.”
후텐 공작이 올곧고 우아한 자세로 오러를 펼치며 최한에게 다가왔다. 그는 최한을 보며 단정적으로 말했다.
“죽고 싶나 보군.”
오러를 사용하지 않고 소드 마스터와 싸우는 일.
맞다.
그건 죽고 싶다는 소리와 마찬가지였다.
최한은 검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붉게 변한 그의 눈동자가 후텐 공작의 자세를 응시했다.
아니, 관찰했다.
풀숲에 숨어 먹이를 기다리는 뱀처럼, 후텐 공작의 모습을 숨죽인 채 하나하나 샅샅이 관찰했다.
오러를 쓸 수 없었을 때로, 그때로 최한은 돌아갔다.
후텐 공작은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사람이라 했다. 제국 최고의 공작가에서 태어나 검술에 재능을 보이자마자 제국 최고의 스승에게서 검을 배웠고, 그 결과로 소드 마스터가 되었다고 했다.
그렇기에 그의 검은 우아했으며 격식이 넘쳤다.
그러나 최한은 후텐 공작과 반대쪽에서 검을 휘둘렀다, 아니, 삶을 버텨왔다.
되도 않은 ‘흑무검술’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전, 그에게는 검술이라는 것이 없었다. 그저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동작만을 할 뿐이었다.
최한의 몸이 앞으로 쏘아나갔다.
후텐 공작과 최한이 다시 한번 부딪쳤다.
역시나 최한은 철저히 오러를 피했지만, 후텐 공작에게 어떠한 공격도 할 수 없었다.
그저 필요 없는 부딪침이 이어졌다.
“정제된 검술을 익혔군.”
후텐 공작은 그런 최한의 검을 여유롭게 평했다.
언제 소름이 돋았냐는 듯, 그는 평정을 되찾았다.
“흐.”
그리고 비웃음을 들었다.
투구의 검사가 그를 비웃었다.
최한은 정제된 검술이라는 말에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천천히 투구를 쓴 목을 돌리며 근육을 풀었다.
“이제 감이 잡히네.”
아니, 감이 돌아왔다.
최한은 미소를 그렸다.
어둠의 숲.
그때의 감각이 돌아왔다.
최한은 툰카를 위해, 그리고 위퍼를 돕기 위해 나선 것이 맞았다. 하지만 다른 이유들도 많았다.
후텐 공작을 본 순간, 번뜩 떠오른 생각.
‘오러를 묶어두고 싸우면?’
최한은 완전한 어둠을 손에 쥐고 싶었다. 그러려면 불완전한 지금의 어둠을 만들었던 때로 돌아가야 했다.
그때가 언제던가?
어둠의 숲에서 살 때였다.
그때 최한은 소드 마스터가 되기 전까지 약자였다. 늘 절박했고 비굴했으며 비참했다. 그러나 강자가 된 순간, 그때의 감정들은 마음 깊이 가라앉아 버렸다.
그래서 이런 상황이 필요했다.
완전한 강자가 아닌, 약점이 존재하던 때로.
그러면 막혔던 길이 보이지 않을까?
최한은 다시 후텐 공작을 향해 달려들었다.
“크윽!”
“커헉, 막아라! 화살을 쏴!”
“전사들은, 멈추지 마라!”
그의 귓가로 입구 앞에서 싸우는 병사와 전사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국 제3기사단을 시작으로 제국의 보병과 기사들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
후텐과 기사단이 강자인 툰카를 비롯한 전사들을 상대했다면, 보병들은 그 틈을 쉴 새 없이 밀어붙이며 정문을 노렸다.
“적들이 입구로 오지 못하게 해라! 발! 발을 묶어!”
위퍼 측의 악에 받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들은 미쳤지만, 절박해서 미쳤다.
“창을 뻗어! 전사들을 노리는 검들을 막아!”
최한도 그래서, 절박해서 미쳤었다.
그는 후텐 공작이 보였다. 자신과 달리 그냥 걷는 것에도 우아함과 품격이 담긴 검사가 보였다.
감각이 되살아났다.
오러가 묶였지만, 저놈을 죽여야 하니까.
최한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답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문제가 제대로 보였다.
“화살을 쏴라!”
“위퍼의 땅을 넘지 못하게 해라!”
“기사들의 목을 베!”
아수라장. 그 속에서 유독 위퍼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들이 저리 절박한 이유는 최한과 비슷했다.
“우리 땅을 지켜라!”
“우리가 무너지면 위퍼가 무너진다!”
지켜라.
내가 무너지면 다른 이들이 다친다.
어둠의 숲에서 나온 최한은 아주 강해졌기에 저를 지켜야 할 절박함을 더 이상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집이 생기고 새로운 가족이 생기며, 그는 다시 지켜야 할 무언가를 발견했다.
그래서 절박하다고 생각했다.
‘아냐. 나는 절박하지 않아.’
벽의 정체를 느꼈다.
최한은 자신이 왜 막혔는지 깨달았다.
이 소리들 때문이다.
-최한아, 너 다칠 거 같으면 손 들어라! 내가 실드를 쳐준다!
-최한아, 인간이 적당히 하란다!
“실드를 쳐! 펠리아 님께 실드를 쳐!”
“로잘린 님! 전류 마법 2차 갑니다!”
“불을, 장벽의 불을 꺼지게 하지 마라! 화염 마법을 계속 써!”
“창을 뻗어라!”
“후방의 병사들은 앞의 병사들이 무너지지 않게 뒤를 받쳐! 밀리는 순간, 모두 밟혀!”
“부상자는 뒤로! 멀쩡한 놈들은 멈추지 말고 화살을 쏴!”
나만 절박한 게 아니라서 그랬다.
최한은 후텐 공작의 검이 보였다. 제대로 준비한 듯한 오러가 실린 검이 최한의 틈새를 노렸다.
품격이 서린 검. 그 검 앞에서 최한은 땅을 굴렀다.
강자 앞에서 살려면 뭔들 못하겠는가.
최한은 흙먼지를 뒤집어썼다.
“이-!”
후텐이 기가 차다는 듯, 도망치듯 땅으로 구른 최한을 경멸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어떻게 정제된 검술을 익힌 검사가 제대로 준비해 건넨 자신의 검을 그리 더럽게 피하냐는 눈빛이었다.
“한심하군.”
그리고 땅을 구른 최한의 틈새를 놓치지 않았다.
후텐의 검이 다시금 땅을 구른 최한의 심장을 노렸다.
후텐은 경멸과 비웃음을 담아 검은 투구의 검사를 바라봤다.
오러를 피하느라 땅을 굴러 자세가 무너진 놈. 이런 놈을 잡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때였다.
“이래서 내가 벽에 막혔던 거야.”
뭐?
투구 검사의 영문 모를 말이 들리는 순간이었다.
“크흐흐흐!”
웃음소리가 들렸다.
‘아차!’
툰카.
이건 툰카다!
그놈을 잊고 있었다. 후텐 공작의 검이 멈칫했다.
앞은 땅바닥을 구르던 투구의 검사.
등 뒤에선 툰카.
잠깐의 망설임이 공작의 검 끝에 맴돌았다. 그러나 그는 이내 원래 가던 방향대로 검을 휘둘렀다.
‘이놈부터다.’
투구의 검사부터다.
그때, 후텐 공작은 무너진 자세 사이로 희미하게 보이는 붉은 눈동자와 마주쳤다.
붉은 눈은 웃고 있었다.
공작은 또다시 멈칫했다.
최한은 웃고 있었다. 그는 공작의 등을 향해 달려드는 툰카가 보였다.
그를 따라오는 기사들에 의해 피투성이가 되어도 웃으며 공작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그 눈동자에는 공작을 죽이겠다는 절박함이 보였다.
이게 문제였다.
나만 절박한 게 아니라서 문제였다.
혼자 하지 않아도 이길 수 있는 길이 자꾸 보이니까.
케일도 그렇고 일행도 그렇고, 그들과 함께 싸우면 길이 보였다. 강해지지 않아도 괜찮을 수 있는 길이.
툰카가 땅을 박찼다.
잘려 나간 쇠몽둥이가 후텐 공작의 머리를 노렸다.
“제길!”
잠시 멈칫했던 그 찰나의 순간, 후텐 공작은 결국 투구의 검사를 외면하며 몸을 뒤로 돌렸다.
툰카부터 해치워야 했다. 은회색의 오러가 툰카의 목을 향해 움직였다.
그 순간이었다.
후텐 공작은 서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딜 봐?”
서걱.
후텐 공작의 몸이 굳었다. 그의 눈동자가 움직였다. 언제 무너진 자세였냐는 듯 날카로운 칼날과 같은 투구 검사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평범한 철검이 박힌 제 옆구리가 보였다.
뱀은 소리 소문 없이 먹잇감의 목덜미를 물었다. 그리고 독을 흘렸다.
“커헉.”
공작의 몸에 박힌 철검 끝에서 검은 오러가 피어올랐다.
그러나 몸에 박혀 있었기 때문에 공작도, 어느 누구도 그 검은 오러를 볼 수 없었다.
‘오러를 쓸 수 있으면서……!’
공작은 그 말을 내뱉지도 못한 채, 서늘한 붉은 눈동자만을 보아야 했다.
그때였다.
삐이이이이- 삐이이이-
성벽 위에서 피리 소리가 들려왔다.
성 주위에 불의 장벽을 둘러 적들의 공격을 막았지만, 동시에 성에 갇히게 된 마이플성의 병력들.
끼이이-
기이한 소리와 함께 로잘린과 라온의 검은 구름 위로 사라졌던 하얀 새. 백골새가 다시금 나타났다.
끼이이- 끼이이-
하얀 새가 검은 구름을 헤치며 하늘에서 땅을 내려다봤다.
땅에서 위퍼는 스스로를 가뒀지만 하늘에서의 위퍼는 누구보다 자유로웠다.
케일은 최한에게 검이 박혔음에도 피리를 부는 저를 허망하게 쳐다보는 후텐 공작을 보며 담담히 말했다.
“검은 탑들을 부숴라.”
그 목소리는 영상 통신구를 타고 백골새들의 위, 드워프들에게 전해졌다.
곧 1차전이 끝날 것이다.
제국이 원하지 않더라도 상관없었다. 케일과 위퍼가 장기전을 원하고 있었으니까.
황태자 아딘을 이곳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한차례의 부딪침. 맛보기를 오래 보여줄 필요는 없었다.
불구덩이 목전까지 황태자가 내려왔을 때. 그때 진정한 화마가 그를 집어삼킬 것이다.
-나중에 내 힘 제대로 쓸 거지?
짠돌이 불벼락의 말에 케일은 침묵으로 긍정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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