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29
28화.
덜컹거리는 소리와 함께 마차는 출발했다.
냐아옹.
온과 홍은 맞은편에 앉은 케이지와 테일러를 힐끔힐끔 쳐다보면서 케일의 근처에 옹기종기 달라붙어 있었다.
“케일 공자. 이번 왕실에서 주최하는 행사에 대해서 잘 아십니까?”
케일은 후작가 장남 테일러가 말을 꺼내자 그를 쳐다봤다. 숙취에 쩔쩔 매는 신관과 달리 테일러는 케일보다 말짱했다. 이 유약해보이는 귀족이 제일 술이 셌다.
케일은 자신을 쳐다보는 테일러에게 입을 열었다.
“왕실에는 처음 가봅니다. 몇 년 전 동북부 귀족 자제 모임을 가봤지만요.”
테일러가 이 이야기를 입에서 꺼낸 것은 단순히 케일에게 말을 붙이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고마운 이에게 정보를 하나 주고 싶어서였다.
“그러셨군요. 이번 왕실에서 여는 행사는 현 국왕 전하의 50주년 탄신일을 기념하는 행사입니다.”
“왕국민들을 위한 즐거운 축제지요.”
마치 나는 그 안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듯 말하는 케일의 모습에 지켜보던 테일러의 눈빛에 이채가 감돌았다.
“케일 공자에게는 축제가 아닌가 봅니다?”
축제는 무슨. 테러 때문에 심장이 두근거리는데. 케일은 뒷말을 속으로 삼켰다. 그는 아마 비밀 단체 인물들과 더불어 앞으로 일어날 테러 사건에 대해서 아는 유일한 이일 것이다.
아는 것은 무거운 책임감과 쓸데없는 고민을 안겨주기 마련이었다. 물론 책임감과 그 고민은 어느 정도 연관 관계가 있었다.
‘막기는 할건데. 그렇다고 내가 다치거나 힘들 것 같으면 빠져야지.’
테러 사건에 대한 케일의 마음가짐이었다. 적당히, 내가 손해 보지 않는 한도에서 할 만큼 하면 된다. 모른 척하기에는 죽음이 가지는 무서움을 아는 케일, 김록수였다.
“테일러 공자에게도 축제는 아니잖습니까?”
케일이 무심하게 건넨 말에 테일러는 물론이거니와 술병에 쩔쩔매던 케이지조차도 씩 웃어보였다.
“축제를 위한 마지막 고비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유약한 외양과 달리 테일러는 담이 큰 이였다. 그러니 올곧은 성정을 지니고도 후작가에서 불구가 되기 전까지 베니온보다 앞섰으리라.
“케일 공자.”
“네.”
“왕세자 저하를 조심하십시오.”
테일러는 케일을 보며 말을 이었다.
“제가 비록 버려진 장남이라 하여도 스텐 후작가 안에서 정보를 얻을 방도는 있습니다. 이번 50주년 탄신일 기념은 원래 있던 행사지만, 귀족가 자제들을 모두 부르는 것은 왕세자 저하가 건의하여 진행한 것으로 압니다.”
테일러는 왕세자에 대해서 안다.
“왕세자 저하는 어떻게 설명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지만.”
어떻게 말할지 모르겠다는 듯 망설이는 그를 보며 케일은 툭 내뱉었다.
“기름칠이 잘된 혀를 지니고 계시죠.”
“아, 맞습니다! 아니, 그게 아니고.”
정답이라는 듯 격하게 동의하던 테일러는 이내 당황한 표정으로 그 말에 부정하려 했으나 이내 인정했다.
“네. 맞습니다. 알고 계셨군요.”
“알고자하면 알 수 있는 정보 아닙니까.”
“그렇죠. 하지만 케일 공자처럼 그렇게 적절한 표현은 처음 들어봤던지라.”
테일러가 긍정하듯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지켜보며 케일은 왕세자를 떠올렸다.
기름칠 잘 된 혀.
왕세자는 사람에 대한 칭찬을 엄청나게 잘했다. 더불어 그 사람을 띄워주는 일도 잘했다.
그리고 나서 써먹었다.
물론 상대는 자신이 써먹히는 줄도 모르고 이용당한다. 그 대표적인 인물 중 하나가 왕세자가 친우이자 영웅이라며 띄워주었던 최한이었다.
평민인 최한에게 친우라고 하며 살갑게 대한 왕세자를 최한은 꽤 좋게 생각했다. 하지만 책으로 읽는 케일에게는, 김록수에게는 영 마음에 들지 않는 인간일 뿐이었다.
‘문제는 그 이용하는 방향이 올바르다는 거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권력을 위해 사람을 이용하지 않았다. 왕국, 왕국민. 혹은 더 넒은 범위를 위해 그는 사람을 이용했다.
‘사실 이용이라고 하기에도 그렇고.’
이용보다는 부탁이 맞았다. 상하의 관계에서 하는 이용이 아니고 수평적으로 전하는 부탁이었으니까.
기름칠 잘 된 혀로 칭찬을 엄청나게 하며 도울 수 밖에 없는 슬픈 이유를 대어 부탁을 하니. 최한은 거절도 못했다. 냉정하지만 최한만큼 착한 로잘린도 결국 그 부탁을 들어주었고.
물론 그런 혀를 지닌 이도 약점이 있었다.
“아무튼 케일 공자. 왕세자 저하는, 음, 아시는 대로 그런 분이니 엮이면 많이 피곤해지실 겁니다.”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최대한 조용히 있다 올 생각입니다. 저는 눈에 띄는 걸 싫어합니다.”
케일은 테일러의 말에 물 흘러가듯 대답하였다. 하지만 그는 그 말 뒤에 마차 안에 정적이 내려앉은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고양이 온과 홍도. 숙취로 힘들어하던 케이지도. 잔잔한 미소를 띠우고 있던 테일러도. 다들 빤히 케일을 쳐다봤다.
“…왜 그렇게 쳐다보십니까?”
“음. 조용히 있다 오는 것이 가능할, 아닙니다.”
“아니에요.”
케이지와 테일러는 아니라며 시선을 거두었다. 고양이들은 도리도리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분위기에 케일은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덧붙였다.
“설사 엮인다고 하더라도 공자와 신관님이 생각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순간 테일러와 케이지는 케일이 씩 입꼬리를 올리며 웃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미소가 상당히 음흉하고 악동 같아 보였다. 케일은 두 사람에게 웃으며 말했다.
“저도 꽤 기름칠이 잘 된 혀 거든요.”
왕세자는 동류를 만나면 물러서며 피했다. 동족 혐오였다.
칭찬을 하며 살살 사람을 써먹는 자라면, 케일 자신도 그렇게 행동하면 될 일이다.
케일은 숙취가 조금 가신 듯 편안한 얼굴의 케이지가 자신을 빤히 바라보자, 그녀와 시선을 마주했다. 그녀는 말했다.
“케일 공자에게는 지금 이 모습이 더 어울리는 것 같아요. 아주 나빠보였어요.”
“착해보이는 것보다는 낫죠.”
역시. 케이지가 혼자서 고개를 끄덕이며 무언가를 납득하였으나 케일은 이를 신경쓰지 않았다. 대신 마차 창문의 커텐을 살짝 걷어내 그 밖을 살폈다.
어느 새 수도 성문이 멀지 않았다. 케일의 마차가 향하는 성문은 일반 평민들이 사용하는 곳과는 그 입구부터 달랐다. 귀족들이 주로 이용하는, 그래서 빠르게 지나칠 수 있는 입구로 향하고 있었다.
“확실히 수도는 다르군요.”
창밖으로 살짝 보이는 광경에 케일의 입에서 저절로 흘러나온 말이었다. 테일러는 그 반응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로운 왕국은 ‘바위’의 나라죠.”
수도를 감싸는 거대한 성벽이 보였다. 그 성벽에는 각기 다른 조각상들이 세워져 있었다.
로운 왕국은 조금 특이한 나라였다. 서대륙 최대 대리석 생산지임과 더불어 서북부와 서부에는 화강암이 많이 존재하고 있어 바위의 나라라고 불렸다.
왕국 내 북부로 갈수록 산의 높은 곳은 대부분 돌이었다. 돌산이 참으로 많은 로운 왕국이었다.
테일러는 문득 떠올랐다는 듯 말을 이었다.
“고대의 이야기를 살펴보면 이 로운 왕국이 존재하기 전부터 이 땅은 ‘바위’ 관련된 이야기가 많았죠. 그 중에 하나로 이 땅 위에는 그 ‘바위’와 같은 수호신이 있었다고 합니다.”
로운 왕국은 서대륙에서 동북부에 위치했다.
“어떠한 공격이 와도 모든 것을 지킬 수 있었던 수호신. 대륙에 어둠이 내려앉았을 때, 그 어둠을 가장 앞에서 막았던 존재.”
이 세계에 고대와 그 이후를 구분 짓는 신화가 있었다. 그 신화는 한가지의 형태가 아니었으며 곳곳에서 다른 형태로 존재했다.
고대의 끝이 어둠이 내려앉아 이를 물리쳤을 때라는 이야기도 있었고, 서로의 힘을 탐하고 질시하던 고대의 힘 소지자들간의 알력 다툼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또한 신의 분노로 그 시대가 종말했다는 이야기도 존재했다.
테일러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신화도 로운 왕국에 존재하는 여러 신화의 갈래 중 하나였다.
“테일러. 그 신화를 좋아하나봐?”
케이지의 물음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어. 좋아해.”
케일이 창밖을 보던 시선을 돌려 테일러를 바라봤다. 다리를 다치기 전부터 테일러는 체격 자체가 호리호리했다. 테일러는 제 무릎을 매만지며 말을 이었다.
“수호신은 온몸이 부서져도 바위처럼 굳건히 서 있었다고 해. 그래서 바위로 둘러싸인 이 동북부 땅을, 사람들을 지켜냈다고 하지.”
대륙에 내려앉은 어둠과 관련된 신화는 그 내용이 무궁무진하게 많았다.
대륙의 중심에서 어둠이 시작되었을 때, 다른 신화에서는 그 어둠과 싸운 이야기가 존재했다. 하지만 테일러가 말하는 신화 속 인물은 유일하게 지키는 것에 중심을 두었다고 한다.
테일러는 그런 존재가 영웅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존재가 현실에서는 존재할 수 없으니까. 그래서 나는 이 신화를 좋아하지.”
“믿지는 않나봐?”
케이지의 물음에 테일러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다치면서, 몸이 부서져 나가면서 무언가를 지킬 이는 아주 드무니까.”
“그렇죠.”
테일러의 말에 동의하듯 케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 자신을 지키는 것이면 몰라도 남을, 그것도 이 동북부 땅을 지켰다니. 케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신화였다.
“그런데 그 신화는 처음 들어보는군요.”
고대의 힘과 관련된 내용이 ‘영웅의 탄생’에 나오는 만큼 케일은 5권까지 읽으며 꽤 다양한 형태의 전설과 신화들을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로운 왕국의 바위 수호신에 관한 이야기는 처음 들어보았다.
“네. 아마 유명하지 않을 겁니다. 저도 고대 서적이나 고대의 힘에 대해서 조사하다가 알게 된 신화거든요. 케이지에게도 제가 말했었고.”
케일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커텐을 다시 내렸다. 그리고 품에서 동그란 펜던트를 꺼내 던졌다.
“준비하십시오.”
테일러와 케이지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펜던트를 한 손씩 같이 잡았다. 마법 장치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케일은 한숨을 내쉬며 마차 한 구석에 있는 술병을 집어 들었다.
잠시 뒤, 귀족 전용 성문 입구에서 마차가 서고 밖에서 부단장의 목소리와 함께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똑똑똑.
“공자님. 수도 방위 기사가 확인을 한다고 합니다.”
탕. 케일의 발이 대충 마차 문을 찼다. 그러자 태연한 얼굴의 부단장과 당황한 왕실 기사의 얼굴이 보였다. 케일은 한 손에는 술병을, 다른 한 손에는 술로 가득 채운 잔을 들고서 왕실 기사를 쳐다봤다.
“확인해.”
마차 안에는 술 냄새가 진동을 했다. 케일은 시벌겋게 물든 얼굴은 물론이거니와 어젯밤부터 술을 마신 사람이라는 게 느껴질만큼 술에 찌들어 보였다.
일주일 뒤에 있을 행사를 위해, 아직 시간이 멀었지만 꽤 많은 귀족 자제들이 이 입구를 지나갔다. 그 때마다 왕실 소속 기사 두명이 마차 안을 눈으로 확인했다. 겉치레 절차라도 해야 할 일이었다.
하지만 왕실 기사는 이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그런 그에게 부단장은 단정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희 공자님께서는 해장을 해장술로 하시지요. 아주 해장에 있어 최고의 경지에 다다른 분이십니다.”
당황한 왕실 기사의 얼굴과 어떻게든 케일의 모습을 칭찬하려는 부단장을 보며 케일은 생각했다.
‘아, 피곤하다.’
그래서 그는 말했다.
“빨리 좀 끝내지?”
술병이 나뒹구는 마차 안을 왕실 기사는 동료를 불러 같이 눈으로 확인하였고 이내 통과를 내렸다.
“통과십니다.”
그 말에 부단장이 천천히 문을 닫았고 닫히는 문 사이로 왕실 기사는 인사했다.
“수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끼이익. 탁. 문이 완전히 닫혔고 잠시 뒤 성문 안으로 마차는 움직였다.
케일은 가득 채우고 있던 술잔을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수도에 오신 걸 환영한다는데요?”
투명화 마법을 푼 테일러가 웃으며 케일에게 장치를 건네고 그 빈 손에 잔을 받아들었다.
“환영 인사는 오랜만이군요.”
케일 일행은 수도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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