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292
291화.
-뭔 일은 뭔 일이야.
왕세자 알베르의 환한 미소가 영상 통신구 너머로 보였다.
-큰일이지.
“…하아.”
큰일이라면서 웃는 꼴에 케일은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분명 저 얼굴은 지금 즐기는 얼굴이다.
반대로 렉스 경과 상인 빌로스의 얼굴은 허옇게 질려 있었다.
그들의 시선은 케일의 다리를 토닥이는 검은 용에게 향해 있었다.
“인간! 황태자 보기 싫나? 힘내라!”
토닥토닥.
통통한 앞발이 다리를 툭툭 두드렸다. 렉스 경과 빌로스는 충격을 받은 채 그 장면을 외면했다.
“…용이라니. 역시 내가 황금 밧줄을-”
빌로스가 중얼거렸으나, 신경 쓰는 이는 하나도 없었다.
대신 왕세자는 히죽이며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었다.
-큰일이군. 황태자가 자네를 요청하다니. 훈장도 받은 명예 제국민이나 다름없는데 가봐야 하는 거 아닌가?
빌어먹을.
케일은 욕이 튀어나오려는 것을 참았다.
-거참, 제국 황태자도 급한가 봐. 불 끄게 자네가 필요하다니.
그랬다.
제국이 케일을 찾는 이유는 ‘불’ 때문이었다.
아직도 마이플성 앞에는 케일의 ‘파괴하는 불’이 만든 불기둥이 활활 타오르고 있는 중이었다.
더불어 제국은 브렉 왕국과 죽음의 협곡 불기둥에 대한 정보가 있었다.
그 장소에 있었던 로잘린이 불의 장벽이 세워진 위퍼 왕국 마법사 진영에 있었기에, 그들은 죽음의 협곡에서의 모습이 또다시 재현될까 두려움이 일었을 터.
그러니 그때 정글의 불을 끈 케일을 찾는 것이다.
“안 갈 수도 없고.”
케일은 한숨처럼 내뱉었다.
“그, 왜 안 가면 안 됩니까?”
렉스 경이 조심스럽게 대화에 끼어들었다. 케일은 그 물음에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요청에 불응하면 의심할 거야. 로운이 위퍼를 지원하는 거 아니냐고.”
안 그래도 모고르 제국은 지금 브렉 왕국에도 압박을 주고 있다고 했다.
브렉 쪽에서 로잘린은 이미 쫓겨난 왕족이라며 관련이 없다고 말해도, 제국은 의심을 더 가중시키기만 했다.
물론 심증이라 공식적인 압박은 어려웠다.
“음, 애매하군요.”
“그렇지.”
렉스도, 케일도, 하얗게 질린 빌로스도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일 때였다.
-안 가도 돼.
“…네?”
왕세자 알베르가 산뜻하게 말했다.
-로잘린 씨한테 귀한 자료가 있었거든.
“귀한 자료요?”
-어, 그걸 나도 가지고 있어서. 황태자한테 보여줬더니 납득하더군.
뭐지?
케일은 이상하게 오랜만에 뒤통수가 시려왔다. 그러나 왕세자 알베르는 태연했다.
-자네가 동대륙 여관에서 침상 생활을 했을 때 모습을 로잘린 씨가 저장해 두었더군.
…아.
케일의 표정이 허망해졌다.
동대륙 여관에서의 침상 생활.
그건 ‘하늘을 잡아먹는 물’을 얻고 난 뒤, 피를 토하면서 덜덜 떨며 보냈던 그 침상 생활이었다.
그걸 시종 론이 로잘린과의 영상통신 때 그녀에게 잠깐 보여주었다.
‘그걸 언제 저장했대? 아니, 왜 저장해 놔?’
케일의 얼굴이 황당함으로 물들어갈 때, 라온이 외쳤다.
“나 그거 못 봤다! 나도 눈 감고 있어서 못 봤다!”
-라온 님, 지워졌습니다. 아쉽게도.
지우기는.
로잘린은 물론 알베르도 영상을 아직 가지고 있었으나, 용이라도 6살에게 보여줄 몰골이 아닌지라 왕세자는 능글맞게 넘겼다. 그때 라온은 소리만 들리던 중이라 케일의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아쉽다, 왕세자야!”
케일은 왕세자와 드래곤의 대화를 기가 찬 심정으로 쳐다봤다. 그때, 눈이 마주친 왕세자가 경쾌하게 말했다.
-황태자에게 지금 이렇게 아파서 요양 중이라고 했네. 상당히 놀랐던지, 무사히 살아나 웃는 얼굴을 보았으면 한다더군.
알베르는 그 영상이 참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황태자의 놀란 얼굴은 잊을 수가 없었다. 하긴 누가 보아도 충격일 영상이었다.
‘로운의 영웅이 어떠한 희생을 하며 로운을 지켜냈는지 알겠군요.’
황태자 아딘이 그 호감형 얼굴에 서글픔을 담아 말하자, 알베르가 답했다.
‘그 고귀한 희생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지요. 그래서 로운은 케일 헤니투스 사령관의 회복에 집중하며 그를 보호하고자 합니다.’
‘이해합니다. 로운의 뜻을 충분히 받아들였습니다.’
알베르는 찌푸린 케일을 향해 뜻을 전했다.
-그러니 황태자는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자네가 위퍼 왕국을 도울 거란 상상도 못 할 테니까.
“안 되는데요.”
왕세자 알베르가 멈칫하며 케일을 쳐다봤다.
언제 찌푸렸냐는 듯 입꼬리가 슬금슬금 올라가고 있었다. 그 표정에 알베르는 저도 모르게 툭 던지듯 물었다.
-가게?
황태자 보러 제국 측에 가게?
“네.”
-허.
기가 찬 듯한 음성이 들려왔지만, 케일은 태연했다.
“그런 아픔을 딛고 제국을 도우러 가면 제국은 저를 어떻게 생각할까요?”
명예 제국민이 아니라 뼛속까지 제국민인 줄 알 것이다.
-얍삽한 놈.
케일은 덤덤히 그 시선을 넘기며 빌로스를 쳐다봤다. 빌로스가 흠칫 놀랐지만 케일은 냉정하게 질문을 던졌다.
“빌로스, 연금술 부탑주와 황태자가 언제 움직인다고 하지?”
빌로스는 들었던 정보를 떠올리며 재빠르게 답했다.
“일주일 안으로는 움직일 것 같습니다. 보급품을 그때 맞춰서 준비하더군요.”
그는 상인의 정보망과 뇌물을 이용하여 군사물자 보급에 대한 정보를 찾다가 이 정보를 얻게 되었다. 기밀은 아니었다.
“이미 확정된 사항으로, 곧 발표를 할 것이라 합니다. 제국민들의 마음을 가라앉혀야 하니까요.”
“연금술 부탑주만 움직인단 말이지?”
“네, 물론 연금술사들도 움직입니다.”
케일과 왕세자 알베르의 시선이 부딪쳤다.
-탑주는 도통 보이지가 않는군.
“그러게요.”
연금술 종탑 탑주는 과거 빈민가 출신의 제자를 소개했던 그때 이후, 한 번도 공식적으로 사람들에게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
-어쨌든 지금은 부탑주가 종탑의 실질적인 총책임자 아닌가?
“그렇죠.”
-그 사람은 전쟁 동안 수도에서 빠지겠군.
케일은 대꾸했다.
“빈집이죠.”
탑주는 어디 있는지 모르겠으나, 실질적인 활동가인 황태자와 부탑주가 수도를 떠난다.
물론 황제가 있었지만.
케일의 시선이 렉스 경에게로 향했다.
“빈집은 털어야죠.”
흠칫.
렉스 경의 몸이 저도 모르게 떨렸다.
그때였다.
“또 터나? 제국에만 오면 턴다! 그냥 다 털자!”
여섯 살 용의 외침에 정적이 찾아왔다. 케일은 한숨을 삼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 거 아냐.”
“아니냐, 인간?”
“어.”
“그러면 뭔가?”
케일은 렉스 경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툭툭, 부드럽게 두드리며 말했다.
“무릎 좀 꿇자.”
“…네?”
뭐요?
렉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러나 케일의 눈동자는 굳건했다.
“사람 좀 모아놓고 있어.”
“네?”
“내가 일주일 안으로 신호를 보낼 테니까, 그때 무릎 꿇을 사람들 몇 명만 모아봐.”
“무슨-?”
스스로 제국의 주인이라고 여기는 것들이 없을 때 휘몰아쳐야 한다.
평범한, 혹은 가난한 제국민들이 연금술 종탑 앞에서 무릎을 꿇는 순간, 종탑을 무너뜨리기 위한 첫 걸음이 시작될 것이다.
“그리고 너 길 알지?”
“길이요?”
도통 이해할 수 없는 대화의 흐름에 렉스 경이 당황했을 때, 케일은 이번만큼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연금술 종탑 빠져나왔던 그 길 말이야.”
렉스 경의 얼굴이 굳었다.
그 길.
누나와 형을 내버려 둔 채, 아기 고양이 모습으로 빠져나왔던 그 더럽고 무서운 길.
연금술 종탑의 지하 하수구였다.
그 지하에는 죽은 시체들이 무수히 많았다.
“그 길, 분명히 넌 알 거다.”
연금술 종탑으로 몰래 들어갈 수 있는 길.
렉스는 당연히 알고 있었다.
빈민가 집에서, 토굴에 숨어서 지내다가 형제의 복수를 하고 세상에 진실을 알리기로 마음먹은 순간. 그는 기사가 되겠다고 결심하기 전에 그 통로를 찾아갔다.
그러나 그 하수구 통로를 지키는 경비병들이 생겨 있었고, 통로는 철창으로 더욱더 좁아졌다.
몇 년 사이에 커버린 그는 다시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그때 그는 스스로가 미웠다. 조금 더 일찍 움직일걸. 그랬다면 누나와 형의 얼굴을 한 번이라도 더 볼 수 있을지 몰랐다.
“…저는 이제 고양이 모습이라도 그 안을 들어갈 수 없습니다.”
“상관없어.”
“…공자님 곁의 묘족 두 분도 그 통로가 좁을 겁니다.”
“괜찮다.”
케일은 렉스 경의 불안한 모습에 담담하게 답했다.
“쥐는 들어갈 수 있지 않나?”
“…그렇죠?”
“그럼 됐어.”
케일은 겁 많지만 말 잘 듣는 쥐족 출신을 한 명 알고 있었다.
쥐족 혼혈 뮐러. 혼혈이라도 쥐의 모습으로 변신이 가능했다.
그때, 알베르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자네가 렉스 경이군.
“왕세자 저하-”
렉스의 얼굴을 뻔히 알면서 모른 척한 알베르였다. 렉스는 아직 로운의 제안서를 손에 들고 있었다.
왕세자 알베르는 전형적이고 화사한 왕자님 미소를 지어 보였다.
-부담 갖지 말고 편히 생각해 보게. 강제력은 없으니까.
“…저하.”
화사하면서도 따뜻한 모습에 렉스는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다른 것도 다른 것이지만 황가가 걸립니다.”
렉스는 다시 고개를 들어 영상 통신구 속 알베르의 머리칼을 쳐다봤다.
태양을 닮은 찬란한 금빛.
“금빛이 없는 저를 제국민들이 받아들일지 모르겠습니다.”
알베르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걸렸다.
아주 오래전부터 태양신의 사랑을 받는다고 알려진 로운의 크로스만 왕가. 그 상징인 금발. 금빛은 왕의 상징이었다.
-하긴 제국도 황금에 의미를 두었지.
모고르 제국도 태양신이 국교인 것은 물론, 로운과 비슷한 상징이 하나 있었다.
그것이 모고르 제국 황가의 상징이었다.
햇볕 아래에서만 빛나는 금안. 평소에는 어떤 색이어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위대한 태양신 아래에서만 빛났기에, 황가의 상징은 그들에게 꽤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었다.
그때 가만히 있던 빌로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도 그 상징은 로운이 훨씬 오래되지 않았습니까?”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로운 왕국.
그래서 빌로스와 같은 로운 왕국민들은 태양의 상징은 로운이 원조이고, 제국에게 이 상징을 빼앗겼다고 생각했다.
-렉스 경.
“네, 저하.”
-겉가죽은 중요치 않네. 그리고 역사는 새로이 쓰는 법이네. 과거의 이야기에 머물지 말도록.
렉스는 자신의 겉모습을 신경 쓰지 말라는, 중요치 않다는 알베르의 말에 입술을 꽉 깨물었다. 누가 보아도 왕자이며, 그 자리에 누구보다도 잘 어울리는 사람이 진심으로 부드럽게 건네는 말에 힘이 났다.
…과거의 이야기에 머물지 마라.
렉스는 이 말을 되새겼다.
반면에 알베르는 케일과 눈이 마주치고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누구보다도 겉가죽을 신경 써 다크엘프 쿼터의 모습을 감춘 알베르였으니까.
케일은 그런 알베르에게 살짝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알베르가 렉스에게 한 말은 알베르 자신에게 한 말이었으니까.
케일은 잠시 정적이 내려앉았을 때, 입을 열었다.
“그럼 이만 끊죠. 바쁩니다.”
바빴다.
얼른 준비하고 이제 다시 마이플성으로 가야 했다.
***
파아앗!
환한 빛과 함께 케일은 텔레포트 진에서 내려섰다.
“공자!”
“케일 님.”
그러자 바로 로잘린과 최한이 보였다. 참모장 헤롤도 함께였다. 당연히 라온은 투명화 상태였다.
로잘린은 다급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공자, 황태자와 부탑주가 온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그런데 정말로 공자가 제국 측에 가나요? 제국을 도울 건가요?”
로잘린은 저를 응시하는 케일의 눈빛에 다급하게 열었던 입을 닫았다. 그의 눈빛이 진중했기 때문이다.
백발로 바뀌어도, 여전히 그 피를 닮은 붉은 머리칼이 아른거렸다.
“네, 제국에 갑니다.”
로잘린은 담담한 목소리에 입술을 달싹이다가 말했다.
“공자가 제국에게 불바다를 보여줄 거라면서요?”
그녀는 말할수록 황당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그런데 그 불바다를 공자가 또 끈다고요?”
불내는 것도 케일.
불 끄는 것도 케일.
로잘린은 이런 상황이 당황스러웠다. 최한도 말은 안 했지만 눈빛이 흔들렸다.
케일도 스스로 생각하기에 황당했지만, 어쩔 수 없었기에 한참 만에 답했다.
“…네, 제가 다 합니다.”
북 치고 장구 치고.
아주 자진모리장단이 휘몰아칠 판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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