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294
293화.
그 당연한 소리를 위해 케일은 시간을 잘 이용해야 했다.
그는 위퍼 왕국 마이플성벽 첨탑에 서서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사령, 아니, 신관님.”
“아, 참모장.”
케일은 다가오는 참모장 헤롤에게 가볍게 손을 들어 옆을 가리켰다.
“수호 기사 클로페 경일세.”
아.
헤롤은 탄식을 흘렸다. 백발에 우수에 찬 눈동자의 남자가 보였다.
불굴 연합의 상징이자 패배한 북부의 수호 기사. 그가 로운 왕국에 굴복했다는 것은 이미 유명한 이야기였다.
그럼에도 헤롤 참모장은 클로페를 보며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소드 마스터, 와이번 기사단의 수장.’
수호 기사는 로운이, 헤니투스 영지가 가진 기적과도 같은 힘 때문에 패배했지만 그가 가진 힘은 진짜였으며 아직도 유효했다.
헤롤은 그런 자가 위퍼 왕국을 도우러 왔다는 사실에 예의를 차리며 인사를 올렸다.
“수호 기사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헤롤은 자신의 인사에 미소를 그리는 클로페 세카를 볼 수 있었다. 그 모습에서조차 기사의 절제와 품격이 느껴지는 듯해 저도 모르게 탄성이 흘러나왔다.
포로로 잡힌 후텐 공작보다 품격이 더 높아 보였다.
왜 파에른 왕국 사람들이 수호 기사를 신성시 여기는지 알 것 같았다.
그 신성한 기사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위대하신 케일 님의 부탁을 어찌 미천한 제가 거부할 수 있겠습니까?”
헤롤의 몸이 멈칫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클로페는 환한 미소와 함께 말을 이었다.
“오히려 전설을 만드는 일에 일조할 수 있어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전설?
헤롤 참모장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러나 클로페의 눈동자는 바위와 같이 굳건했다.
“제가 케일 님의 흉내를 내야 한다니. 제 이름이 전설의 한편에 남을 생각에 심장이 뜁니다.”
헤롤의 정처 없이 흔들리는 눈동자가 케일을 향했다.
그러나 케일은 외면했고, 헤롤은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진짜 망나니 툰카를 모시는 참모장다운 모습이 보였다.
“위퍼는 소드 마스터이자 와이번 기사들의 수장이 이렇게 찾아주셔서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흐.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헤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클로페를 바라봤다. 수호 기사는 지팡이를 잡은 손 대신 다른 손을 들어 보이며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갑자기 웃음이 나오네요.”
클로페는 자꾸 튀어나오려는 웃음을 겨우 참으며 헤롤에게 미안함을 표했다. 헤롤은 기분이 나쁘려고 하다가 진심으로 미안해하는 클로페와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는 케일 때문에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 순간, 클로페와 케일의 눈이 마주쳤다.
클로페는 어제 영상 통신구를 통해 케일과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클로페, 서대륙 사람들에게 넌 아직 소드 마스터이며 와이번을 조종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렇지?’
역시, 역시!
클로페는 즐거움을 감출 수 없었다.
이제 자신은 오러를 쓸 수 없다.
이 시한폭탄과 같은 팔다리 때문이었다.
그리고 와이번 조종?
그건 원래부터 대륙을 대상으로 펼친 사기였다.
그러나 아직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거짓된 모습을 진실로 알고 있었다.
‘역시 케일 님을 따르면 내 이름은 높아진다!’
정말로 전설에 이름을 새길 수 있게 된다.
‘아딘, 멍청한 놈.’
파에른 왕국은 케일이라는 전설 앞에서 항복함으로써, 함께하기로 함으로써 좋은 방향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그러나 제국은, 황태자는-
‘끝이지.’
클로페는 황태자의 파멸 때문에 즐거운 것이 아니었다. 그가 즐거운 이유는 하나였다.
‘난 살 수 있다.’
가짜 팔다리를 달고 있건 말건 일단 자신과 파에른 왕국이 살아남는 게 중요했다. 그리고 케일 헤니투스는 거래를 아는 사람이었다.
채찍뿐만 아니라 당근도 잘 쓰는 사람이었다.
‘클로페, 이번 일을 제대로 해내면 북부 3왕국에서는 파에른 왕국이 우위에 설 수 있도록 로운이 지지를 표하도록 하지.’
전설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이득이 생겼다.
클로페는 겨우 웃음을 갈무리하며 담담한 얼굴로 케일을 바라봤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케일 님.”
다시 우수에 찬 멋진 얼굴이었다.
그래 봤자 미친놈처럼 낄낄대다가 순식간에 우수에 찬 꼴이라 제대로 맛이 가 보였다. 케일의 표정이 떨떠름했지만 그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이득을 위해선 제대로 할 놈이지.’
맛이 가도 요상하게 이성적인 클로페였다.
케일은 이제 이 맛 간 놈을 제대로 이용하기 위해 움직여야 했다.
“참모장, 알고 있겠지?”
클로페를 쳐다보며 혼란스러워하던 헤롤의 눈빛이 달라졌다. 케일은 그런 그에게 말했다.
“잠시 뒤, 황태자 아딘과 부탑주가 이곳에 도착한다.”
헤롤은 그 말에 침을 삼켰다. 클로페도 날카로운 눈빛이 되어 케일을 바라봤다. 둘은 한 가지 생각을 했다.
‘저 일급비밀을 케일 사령관은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수도에서 황태자 아딘이 전장으로 출발했다는 것은 서대륙의 권력자들 대부분이 아는 소식이었다.
하지만 그가 이 전장에 언제 도착할지는 어느 누구도 알 수 없었다.
그렇기에 헤롤은 케일의 정보력에 놀란 마음을 애써 삼켜야 했다.
‘만약 다른 사람 말이라면 믿지 못했겠지만.’
케일 헤니투스의 말이다. 안 믿을 수가 없었다.
또한 클로페도 케일의 말을 믿었다. 물론 그는 헤롤과 달리 근거가 있었다.
‘분명 카로 왕국 발렌티노 왕세자가 준 정보다.’
발렌티노와 케일의 대화를 본 클로페였다.
그의 예상대로 케일은 아딘과 전장에서 만나기로 한 발렌티노를 통해 정보를 얻었다.
카로 왕국은 모고르 제국의 오래된 우방국이고, 발렌티노는 아딘의 평생 친우라 알려졌으니까. 또한 카로 왕국은 지금도 제국을 도우러 한걸음에 달려오는 나라였으니까.
클로페는 이를 자세히 모른 채 어림짐작하고 있을 뿐이지만 소름이 돋았다.
‘케일 님은 도대체 어디까지 손을 뻗치고 있는 거지?’
서대륙 권력자들의 촘촘한 망을 다루는 케일의 모습이 그려졌다.
그 순간, 케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작하지.”
케일은 황태자를 만나러 가기 전에 바삐 움직여야 했다.
그는 참모장 헤롤을 보며 입을 열었다.
“황태자가 도착하는 순간, 그에게 불지옥을 보여줘야 하니까.”
헤롤은 정문을 내려다봤다.
툰카 대장군.
그가 닫힌 정문 앞에서 전사들과 함께 대기 중이었다.
대장군 옆에는 투구의 검사 최한이 함께였다.
“이번엔 우리가 먼저 친다.”
케일의 목소리가 헤롤의 귓가에 박혔다.
“현재 남아 있는 제국군은 기사단이 거의 전멸한 상태다.”
지난 1차전에서 검은 탑이 무너지며 사상자가 발생했지만, 보병과 연금술사, 마법사들은 대부분 살아남았다.
그러나 후텐 공작을 비롯한 기사단은 대부분 전멸 상태였다.
“황태자는 수도에 최소한의 기사들을 남겨두고 제2기사단을 비롯해 남은 기사단을 모두 이끌고 온다고 한다.”
그 기사단 병력에는 황가의 기사단만 있는 게 아니었다.
“또한 이번엔 제국의 귀족들이 가문의 기사들을 이끌고 온다,”
헤롤의 표정이 굳어졌다.
제국은 황가도 두렵지만 황가와 함께 오랫동안 힘을 비축해 온 귀족가의 병력도 엄청났다.
‘황태자는 위퍼를 끝장낼 작정이야.’
귀족들의 힘까지 가세했다.
“연금술 부탑주를 비롯한 정예 연금술사들도 온다는군.”
제국은 총력을 가할 준비를 해서 오고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 위퍼 왕국은 더 늘릴 자체 병력이 없다. 오히려 저번 전투의 부상자들로 인해 인원수가 준 상황이었다.
헤롤은 케일을 바라봤다.
“그래서 그들이 오기 전에 우리가 먼저 치는 겁니까?”
케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황태자가 오기 전.
“이곳을 난장판으로 만든다.”
헤롤은 뿔나팔을 집어 들었다. 그런 그에게로 케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표는 제국의 남은 기사들과 사자족이다.”
위퍼의 전쟁은 늘 같았다.
최선의 방어는 공격.
뿌우우우우-
1차전 뒤, 조용하던 전장.
헤롤의 뿔나팔 소리가 침묵을 깨뜨렸다.
그 순간.
끼이이이-
닫혔던 마이플성의 정문이 열렸다.
***
뿌우우우우-
사자족 후계자 중 한 명인 에드리치. 그는 들려오는 뿔나팔 소리에 멈칫했다.
“지금 위퍼 놈들이 뿔나팔을 분 건가?”
그의 시선이 살아남은 소수의 기사들 중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제1기사단 부단장에게로 향했다.
“이런!”
하지만 부단장은 사자족 후계자의 시선을 신경 쓸 틈이 없었다. 그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뒤따라 연금술 총책임자와 마법병단 총책임자가 일어났다.
“곧 황태자 전하께서 오실 터인데!”
“제기랄! 위퍼 이 새끼들은 가만히 있다가 지금 왜 갑자기 이러는 거야!”
연금술사와 마법사가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1차전 뒤, 금방이라도 제국군을 모두 찢어 죽일 듯이 날뛰던 위퍼 왕국군은 침묵하며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촤악.
제1기사단 부단장은 천막 입구 천을 들춰내며 밖으로 향했다.
무너진 검은 탑의 잔해들이 곳곳에 존재하는 황폐한 땅.
마법 공격으로 곳곳이 파이고 검게 물든 땅.
그 땅에서 한 발 물러서 진지를 구축한 제국군.
당연히 그 진지의 앞에는 연금술사와 마법사들이 만든 간이 성벽이 존재했다. 돌이 아닌 흙으로 만들어진 그 성벽은 위퍼의 위협으로부터 제국군들을 안심하게 만들었다.
“저걸 만들 때도 움직이지 않던 위퍼군이 어찌하여?”
흙벽을 만들 때도 제국군을 방치하던 위퍼군이었다.
그런데 지금 왜?
‘하필 황태자 전하가 곧 도착할 이때에!’
기사단 부단장은 곧바로 흙벽 위로 향하는 계단을 올랐다. 그 뒤를 연금술사와 마법사 총책임자들이 따랐다.
“아, 귀찮게.”
사자족 후계자 에드리치는 그 다급한 모습을 따분하다는 얼굴로 쳐다봤다. 그때 천막 밖에 대기하던 그의 외척이자 이종사촌인 그로니카가 다가왔다.
“한번 올라가 보는 게 어때?”
에드리치는 영 탐탁지 않았다.
사자족 대표로 온지라, 황태자가 오면 몰라도 이런 잔챙이들만 있는 전장에 나서기엔 자신의 격이 아까웠다. 그때 그로니카가 에드리치를 움직일 말을 내뱉었다.
“드워프, 잊었어?”
“하… 그 새끼들.”
에드리치는 추락하는 자신을 비웃던 드워프들이 잊히지 않았다. 그의 걸음이 부단장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명 때문에 왔지만.’
후계자 지위를 공고히 하기 위해 제국을 도우러 왔지만 열심히 할 생각이 없던 에드리치. 그에게 화염의 드워프족 존재는 정말로 짜증 나는 일이었다.
“…내가 그것들은 죽여야지.”
하찮은 놈들은 감히 땅 위에서 가장 고귀한 피인 사자족을 건드린 대가를 깨달아야 할 것이다. 그는 느릿느릿 흙벽 위에 올라섰다.
뿌우우우우우-
위퍼 측의 뿔나팔 소리와 함께 그는 마침내 흙벽 너머 멈춰 있던 전장이 보였다.
끼이이익-
전장의 침묵이 깨지며 마이플성의 정문이 열렸다.
툰카가 보였다. 역시나 맨 앞에 선 자는 대장군이었다.
제국의 부단장은 외쳤다.
“기사들을 소집해라! 보병들을 대기시켜!”
이어서 마법사와 연금술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법병단을 준비시켜라!”
“1-헨, 액체를 준비시켜! 이번에는 연금술을 제대로 써야 돼! 황태자 전하께서, 부탑주님이 곧 오실 거다!”
제국군 우두머리들은 다급해졌다.
황태자가 온다.
부탑주도 온다.
그들 앞에서 형편없는 모습을 보여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병사들은 달랐다.
“…곧 황태자 전하께서 귀족들을 데리고 오신다고 했는데.”
“흙벽으로 일단 버티면 안 되려나?”
병사들은 제국의 대패를, 그 끔찍한 잔상을 아직 잊지 못했다. 모든 것들이 다 부서지고, 불길 속에서 죽어가던 제국의 기사들.
그 기억이 남아 위퍼에 대한 두려움을 키웠다.
“빨리 안 움직여?”
하지만 결국 병사들은 움직여야만 하는 존재였다. 그들은 상급자의 명령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기사는 부단장에게 다가가 보고했다.
“부단장님! 1기사단은 모두 준비를 마쳤습니다!”
간신히 살아남아 있던 기사들이 다시 전장으로 나아가고자 하였다.
부단장은 전장을 보며 답했다.
“곧 출전한다.”
“네!”
그의 시선이 툰카와 전사들, 그리고 투구의 검사에게로 향했다.
사자족 에드리치도 마찬가지였다.
투구의 검사.
소드 마스터도 아닌데, 소드 마스터 후텐 공작을 처절하게 굴복시킨 검사.
정체불명의 그가 이 전투의 변수였다.
사자족 에드리치는 투구의 검사를 지나쳐 마이플성의 하늘을 바라봤다.
“드워프 카넬.”
그 새끼도 나오려나?
나오면 반드시 죽이리라. 백골새에 탔든 말든 무조건 땅으로 추락시켜 죽이고 말리라.
“크흐흐흐.”
상상만으로 즐거워 에드리치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때였다.
뿌우우우우-
한차례 더 뿔나팔이 불린 순간.
“어……?”
부단장은 눈을 비볐다.
“에드리치!”
사자족 그로니카는 친척이자 후계자인 에드리치를 불렀다. 그러나 에드치리는 그로니카의 외침에 대답하지 못한 채 흙벽 아래 전장을 내려다봤다.
아니, 마이플성 정문을 바라봤다.
“크하하하! 이제 두 번째 전쟁이다!”
툰카가 두 팔을 벌리며 태연히 걸어 나오고 있었다.
투구의 검사는 평범한 철검을 제국군에게 겨눴다.
그러나 그 장면이 문제가 아니었다.
툰카와 최한, 그들 뒤의 전사들.
그리고 그 뒤.
지금 막 마이플성 정문을 통과해서 나오는 존재들.
부단장은 외쳤다.
“…고, 곰족!”
광폭화한 곰족 수백여 명.
그들이 전장의 침묵을 깨뜨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사자족들은 당황했다.
드워프만이 아니었어?
죽음의 협곡에 갔던 곰족들도 ‘암’을, 아니, 그들의 곰족을 배신한 거야?
“…에드리치.”
“제기랄.”
에드리치는 욕을 내뱉고 곰족의 지배자를 떠올렸다. 동시에 지금 마이플성 정문에서 나오는 곰족들을 쳐다봤다.
“…저들은 왕을 배신했어.”
또 다른 왕을 꿈꾸는 사자족의 후계자 에드리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쿵. 쿵. 쿵.
곰족의 손목 족쇄와 연결된 사슬의 끝에 달린 쇠구슬.
수백여 개의 쇠구슬들이 곰족의 걸음을 따라 동시에 땅 위를 구르며 진동을 일으켰다.
땅이 울렸다.
그리고 마이플성 성벽 위.
“…저자도 나타났군.”
에드리치는 그 ‘갈색 로브’를 주시했다.
그때 제국군의 성벽 위로 한 마법사가 올라와 다급히 외쳤다.
“곧 황태자 전하께서 도착하십니다!”
그리고 동시에, 제국군에게 툰카의 외침이 들려왔다.
“두 번째 지옥을 펼쳐주마!”
전쟁의 또 다른 이름, 지옥.
황태자 도착까지 카운트다운이 얼마 남지 않은 순간, 2차전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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