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296
295화.
“최대한 노력해 보겠습니다.”
케일 사령관이 아딘 황태자에게 답하고는 고개를 돌렸다.
귀족들은 케일의 암갈색 눈동자를 뒤덮은 검푸른 화마가 보였다. 몇몇 귀족은 눈빛을 교환했다.
‘가능하겠어? 저렇게 병색이 완연한 얼굴로?’
‘그러니까. 저번에 훈장 받았을 때보다 체격도 줄어들었어.’
작년 모고르 훈장을 받았을 때보다도 피부가 허예지고 근육이 빠진 듯한 체격.
아딘은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한계에 다가가나 보군.’
고대의 힘들의 충돌로 인한 죽음. 그 끝이 다가오는 시한부의 모습임을 느낄 수 있었다.
‘재밌군.’
흥미로웠다.
분명히 마냥 우직한 놈이 아니고 머리도 꽤 돌아가는 놈 같은데. 어째서 늘 정의롭고 선한 일만 하려고 하는 것일까?
황태자는 재밌었기에 케일에게 다가가 다급한 얼굴로 말했다.
“물의 힘을 어느 정도 쓸 수 있는가? 미안하지만,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부탁하네!”
얼른 죽는 꼴이 궁금했다.
아딘은 이런 제 심정을 모른 채 검푸른 불꽃에서 시선을 떼어 저를 쳐다보는 케일의 눈빛을 마주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저는 브렉 왕국과 함께한 전투에서 저 불길을 맞이한 적이 있습니다.”
“알고 있네. 브렉의 일이란 건… 우리도 예상하고 있어.”
케일은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의 불길보다 지금의 불길이 더 셉니다.”
아.
근처에 있던 자들이 탄식을 흘렸다.
“물 계열 마법을 써!”
“바람 마법을 써라! 최대한 진행을 막아!”
제국 측 마법사들이 바삐 움직였다.
바람은 일단 어느 정도 막았지만 불은 물 계열 마법에도 멈추지 않았다.
“불길이 더 치솟습니다!”
오히려 제국과 위퍼 측의 바람이 서로 부딪치는 바람에 불길이 마치 소용돌이처럼 휘몰아치며 더 거대한 불길을 만들어갔다.
그런 와중에 케일이 침통한 얼굴을 했다. 근처에 있던 자들은 그 의미를 알아들었다.
‘완전히 끄지는 못하는구나!’
‘…다 못 끄면, 어떡하지?’
마법이 안 통하는 불.
혼란이 깊어져 갔다. 다만 케일은 침통한 얼굴을 하면서도 눈동자가 슬그머니 움직였다.
‘…몇몇 귀족들은 자세히 모르는가 보군.’
마법이 안 통하는 불. 그것을 제국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몇몇은 모르는 듯했다.
물론 연금술 종탑이 만들었겠지만 황태자가 정글과 마이플성에 요긴하게 사용했었다.
‘부탑주네.’
그렇기에 케일의 시선이 부탑주 메텔로나에게로 향했다. 그녀는 분명 연금술 종탑 탑주와 자주 만나는 사이일 터.
‘…그 옆은 누구지?’
케일의 눈동자가 황태자 옆의 남자에게로 향했다. 눈이 마주치자 남자는 케일에게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영웅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는 탑주님의 제자 혼트라고 합니다.”
아, 그자다.
빈민가에서 시작된 기적의 연금술사.
어쩌면 빈민가에서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사람.
‘좋은데?’
연금술 종탑 박살 프로젝트에 끌어들일 인간을 또 한 명 발견했다.
케일은 살짝 고개를 까닥였다.
“인사는 나중에 하지요. 지금은-”
굳건한 얼굴의 영웅이 말했다.
“지금은 불을 먼저 꺼야 합니다.”
그때였다.
라온의 목소리가 갑자기 들려왔다.
-이상하다. 인간, 혼트 저거 죽은 것 같다.
…응?
훅 치고 들어왔다.
-죽은 게 어떻게 돌아다니지?
뭐라고?
케일의 눈동자가 순간 흔들렸다.
-…이상하다, 인간. 메리랑 비슷한 냄새가 나는데 생기가 없다.
뭐가, 없다고?
-저게 뭔지 모르겠다.
오, 세상에.
케일은 진심으로 당황했다.
생기가 없다니? 죽었다니?
케일의 시선이 황태자 쪽으로 향했다. 당연히 부탑주와 탑주의 제자 혼트가 보였다. 혼트는 케일 쪽을 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 눈동자에는 불길과 제국에 대한 걱정이 보였다.
‘저게 죽은 거라고?’
좀비인가?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케일은 혼트의 시선이 자신과 힐스만 쪽을 향해 있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때, 황태자가 다가왔다.
“…그렇게 굳센 결심을 하지 않아도 되네.”
“전하-”
아딘은 얼굴이 더욱더 창백해지고 방황하는 케일의 눈동자를 보며, 그가 얼마나 비장한 마음으로 제국을 구하려는지 깨달았다.
‘로잘린과는 척을 지려는 건가?’
또 의심이 하나 피어올랐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믿네.”
서대륙 유일 제국 황태자의 믿는다는 말.
그 무게는 상당했다. 귀족은 케일의 눈동자가 안정되는 것을 느꼈다. 새삼 황태자를 믿는 케일의 모습에 제국에 대한 자부심이 차오르는 그들이었다.
‘믿기는 얼어 죽을.’
귀족의 생각과 달리, 황태자의 가증스러운 모습에 급격하게 안정을 되찾은 케일이었다.
“후우.”
그는 깊은 숨을 내쉬며 흙벽 중심으로 다가갔다.
제국군과 귀족들, 모든 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케일은 흙벽의 난간으로 말없이 걸어갔다.
부단장 힐스만이 슬픈 표정으로 그 뒤를 따랐다.
스스로 희생을 하기로 결심한 주군의 뒤를 따르는 기사의 비장미가 그에게서 흘러나왔다.
-인간, 살살 하기로 했다! 나랑 약속했다! 안 그러면 위대한 내가 다 부숴 버린다!
아, 분위기를 잡을 수가 없네.
여섯 살의 칭얼거리는 목소리에 케일은 한숨을 푹푹 내쉬며 눈가를 쓸어내렸다.
“…두렵나 보군.”
그 모습을 귀족들은 다르게 받아들였다.
“사령관!”
케일은 낯익은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카로 왕국의 발렌티노 왕세자. 그가 다시 흙벽 위에 나타났다. 그의 표정은 서글펐다.
‘…케일 사령관의 마음이 어떠할지 짐작을 할 수가 없어.’
이 모든 판을 뒤흔들면서도 스스로의 몸을 갉아먹는 케일 헤니투스. 그가 짊어진 무게가 느껴져 발렌티노는 새삼 케일이 숨 막힐 정도로 거대해 보였다.
그러나 발렌티노는 그저 미소를 짓고는 전장을 향해, 거대한 불길을 향해 손을 뻗는 케일을 볼 수 있었다.
휘이이이잉-
마법과 백골새. 각자의 바람들이 충돌했다.
검푸르지만 무엇보다도 뜨거운 용의 분노가 마주한 케일의 몸을 뜨겁게 달궜다.
‘여긴 거의 다 적뿐이다.’
힐스만, 라온, 발렌티노.
그들을 빼면 적밖에 없는 공간.
그래서 케일은 결심했다.
‘적당히, 피 조금 토할 정도로 하자.’
라온이 있어 위험할 일은 없겠지만.
괜히 많이 힘을 써서 기절해 버리면 그야말로 이 전쟁판은 혼돈의 도가니가 될 것이다.
케일은 눈을 감았다.
-나 찾아?
그래. 너를 찾았어.
하늘을 잡아먹는 물.
그녀의 청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케일의 의지를 따라 물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아아아-
바람이 불었다.
황태자의 시선이 케일에게로 향했다.
‘방패 이후에 다른 고대의 힘 사용은 처음 보겠군.’
타인의 눈과 귀로 전해 들은 이야기는 많았다.
하지만 케일이 ‘물’의 힘을 사용하는 것은 한 번도 직접 보지 못했다.
“…어?”
귀족 한 명이 저도 모르게 말을 내뱉었다.
반짝인다.
아니다. 물결이다.
케일의 허리쯤을 빙 감싼 반투명한 푸른 물결이 원을 만들고 있었다.
“…오, 공자님.”
부단장 힐스만이 그 장면을 감격스럽다는 듯 바라봤다.
거대한 불길을 마주한 한 인간.
그 인간의 주위를 감싼 빛나는 물결.
보잘것없어 보였지만 아름다웠다.
당연히 눈을 감은 케일은 이 상황을 몰랐다.
그는 지금 딜을 하는 중이었다.
-XXX 같은 하늘을 잡아먹으려고?
아니야.
케일은 원하는 의지를 떠올리며 물의 힘을 갈구했다.
청아한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아하! 저 불 소용돌이가 네 자유를 막고 있구나. 처박살을 내서 XX하게 만들어서 XXX해 버릴까?
이런 미친 물.
케일은 의지를 보냈다.
그냥 저 소용돌이 대충 적당히 끄자.
-알았어. 네 의도대로 저 소용돌이를 끌게. 쓰러지거나 기절하지 않을 정도로만.
케일은 이제야 서서히 제 의지를 따라 움직이는 물의 힘을 느꼈다.
지배하는 물과 달랐다.
오히려 부드러웠다.
천천히 스며드는 봄비처럼, 뺨을 살짝 적시는 부슬비처럼.
케일은 처음으로 고대의 힘을 이용하며 이런 생각을 했다.
‘조용해.’
호수처럼 조용하게 일렁이는 힘이 느껴졌다.
처음이라 걱정했건만, 케일은 안심했다.
그때, 오랜만에 짱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맹수는 은밀히, 고요히 다가와 먹잇감의 목을 틀어쥐어 잡아먹는 법.
어?
-잡아먹는 물. 이름의 의미를 잊지 마라.
…설마?
케일이 멈칫한 순간이었다.
감고 있던 그의 눈가가 찡그려졌을 때, 제국의 한 마법사가 외쳤다.
“거대한, 아주 거대한 힘이 느껴집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땅, 땅 밑에서 뭐가 흐르고 있습니다!”
“모입니다! 땅 밑에서 한 곳을 향해 기운들이 뭉치며 거대한 힘을 만들고 있습니다!”
땅 아래.
그곳에는 물이 흐른다.
땅속 작은 물길들이 한 곳을 향해 모여들기 시작했다.
마법사들, 그것도 황태자 곁에 있을 만한 상급 마법사들만이 그 힘을 느꼈다. 그들의 눈동자가 흔들리며 케일에게로 향했다.
마나와 다른 힘.
그것은 자연이었다.
땅 밑에서 거대한 힘이 모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거대한 힘이 웅크러뜨리며 더 이상 몸집을 키우지 않았을 때.
케일은 눈을 떴다.
동시에 제국 사람들은 보았다.
쩌저저적-
갈라진다.
땅이 갈라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물이 솟아올랐다.
아니, 날카로운 창이 나타났다.
바람과 바람이 부딪쳐 만들어내는 거대하고 검푸른 불의 소용돌이.
도시 하나를 집어삼킬 것 같은 그 지옥의 화마.
쿠우우우웅-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창.
푸른 물로 만들어진 창이 검푸른 불의 소용돌이 한가운데를 땅에서부터 관통했다.
콰아아앙! 콰아앙!
굉음과 폭발로 사람들은 귀와 눈이 순간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
물이 검푸른 불을 잡아먹었다.
소용돌이를 관통하는 창이 게걸스럽게 제 몸뚱이를 소용돌이 중심에 부딪치며, 소용돌이를 찢어발겼다.
“…세, 세상에-”
제국군의 시선이 한 곳으로 향했다.
지옥과 같던 불이 사라지고 있었다.
동시에 물의 창도 하늘로 향하며 조금씩 사라져 갔다.
그러나 사라지지 않는 존재가 있었다.
그들의 시선이 한 사람의 등으로 향했다.
로운의 영웅, 케일 헤니투스 사령관.
그들은 새삼 ‘영웅’과 로운이 만든 기적이 무엇인지 피부로 느껴졌다. 그들의 피부에는 소름이 돋아 있었다.
그리고 케일도 소름이 돋았다.
‘…이게 뭐야?’
불을 다 꺼버렸다.
아니, 흔적도 없이 그냥 깡그리 없애 버렸다. 덩그러니 놓인 마이플성이 보였다.
‘그 고룡 에르하벤이 만든 불인데. 그걸 어떻게 이리 쉽게?’
그것도 힘을 조금만 쓴 것 같은데?
하늘을 잡아먹는 물은 지배하는 물보다 더 한순간에 ‘용의 분노’를 집어삼켰다.
-무엇이든, 난 하늘까지도 잡아먹을 수 있어.
청아한 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케일은 천천히 고개를 숙여 제 손을 내려다봤다. 손이 떨렸다. 그 모습을 보며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인간, 피 안 토하나? 저 정도 썼는데 멀쩡하다!
내 말이.
라온과 케일의 의문이 일치한 순간이었다.
짱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물은 은밀하고 고요하게 움직이다가 한 방을 먹이는 힘이 존재하지.
케일이 멈칫했다.
-잠잠하다 한순간에 밀어닥칠 걸세.
케일의 얼굴이 구겨졌다. 그의 손이 더 세차게 덜덜 떨리고 있었다.
설마?
진짜로?
-원래 물이 후폭풍이 세. 힘내게.
결국 분통을 참지 못한 케일의 입이 열렸다.
“빌어먹, 커헉!”
그 순간.
검푸른 불도, 푸른 물도 모두 사라진 공간에서 검붉은 피가 사람들의 시야를 사로잡았다.
희생한 영웅의 몸이 서서히 주저앉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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