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303
302화.
불이다.
저 사람은 불이 되었다.
최한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활활 타오르는 불을 보는 멍한 그의 귓가로 어린 용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최한아! 정신 차려라! 아직 끝이 아니다!”
저 불이 끝이 아니라고?
몇 겹이나 두른 은빛 실드에 감싸여 있던 최한은 흠칫 몸을 떨었다. 그러다가 그는 고개를 숙였다.
끼이이- 쿠웅!
쿠웅- 쿵!
서른여 개의 골렘.
그것들이 하나씩 녹아내리며 무너져 갔다.
그 사이로, 불에도 녹지 않는 것이 보였다.
검은 액체.
최한의 검을 검게 물들였던 그 존재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케일 님의 불도 소용이 없는 것인가!’
최한의 눈빛이 흐려졌다.
‘결국 저 절망 덩어리는 파괴가 불가능한 것일까?’
최한이 마음속으로 절박한 물음을 던졌을 때.
불바다의 밖에 있던 존재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불이 꺼지면 큰일이야.”
황태자 아딘이었다.
‘불이 꺼지면 검은 절망이 드러날 터. 제국군들이 더 혼란을 느끼고 의심을 품게 되겠지.’
그리고 이 마이플성 인근은 평생 복구가 불가능한 황폐한 땅이자, 산 생명체는 피해야 할 죽음의 땅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꾸만 미소가 지어지려고 했다.
그는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케일 헤니투스.”
방패. 땅. 물. 불.
하얀 별과 같은 수의 고대의 힘.
물론 자신의 목덜미를 잡았을 때 사용했던 그 순간 가속력은 고대의 힘인지 마법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지만, 최소한 저 불까지 합치면 네 개였다.
그리고 건강한 케일 헤니투스.
재밌어.
진심으로 재밌었다.
그리고 죽이고 싶었다.
동시에 깨달았다.
“너구나.”
너다.
지금껏 제국의 모든 계획을 실패하게 만들었던, 제국을 막아섰던 알 수 없는 힘이 너였구나.
케일 헤니투스와 로운 왕국.
저것들이 호의를 가장한 채 제국의 목덜미를 노리고 있었다.
이제야 비로소 퍼즐이 모두 맞춰졌다.
그는 입을 열었다.
“지금 당장, 케일 헤니투스를 향해 마법 공격을 퍼부어라!”
그의 머릿속에서 망가진 골렘이나 죽어가는 조종사들, 그리고 울부짖는 절규는 없었다.
다만 검은 절망이 드러난 뒤의 수습만이 머릿속에 있었다.
‘케일 헤니투스도 검은 절망을 없애진 못할 테니까.’
이 불바다 속에서 아직도 울부짖고 있지 않은가.
끼이이이- 끼이이-
죽어버린 것들이 울고 있지 않은가.
가공할 만한 힘도 결국 검은 절망은 없애지 못했다.
‘그렇다면 케일 헤니투스를 죽여 그가 벌인 일로 뒤집어씌운다.’
그만 죽으면 다 해결될 여지가 있는 일이었다.
“부탑주! 마법단장!”
그의 부름에 두 사람이 얼른 정신을 차렸다. 하지만 그 외의 귀족과 병사들은 넋을 잃은 상태였다.
아딘은 똑바로 명령했다.
“케일 헤니투스를 노려라! 지금 저자는 멈춰 있다!”
케일 헤니투스는 움직이지 않은 채 허공에 가만히 떠 있었다.
“죽어가는 골렘 조종사들의 비명이 들리지 않는가! 어서 그들의 복수를, 제국의 복수를 해야 한다!”
“전하의 명령에 따라라! 다들 마정석을 쏟아부어 최대의 공격 마법을 사용해라!”
메텔로나가 황급히 마법사와 연금술사들을 진두지휘했다.
“목표는 케일 헤니투스다!”
목표는 오직 하나였다.
이 경이로운 광경을 만든 자.
우우웅- 우우우웅-
덜덜 떠는 손으로 마법사들이 마법을 작동하기 시작했다.
“저 불이 제국군을 덮치면 우린 죽음뿐이다!”
황태자의 이 말이 사람들을 움직이게 했다.
순식간에 마법이 발사 준비를 끝냈고 이제 공격 신호만 내려지면 되는 상황. 메텔로나가 황태자에게 눈짓했고, 황태자가 손을 들어 올렸다.
저 손이 내려가면 공격이었다.
천천히 손이 내려갔다.
그는 전장의 불을 보며 미소를 그렸다.
왜냐고?
‘혼트가 웃고 있군.’
탑주의 제자 혼트가 웃고 있었으니까. 아주 즐겁다는 듯.
그렇기에 확신했다.
제국에게 위험한 상황이 아니다.
케일 헤니투스는 죽는다.
아딘, 그가 불을 보면서도 웃을 수 있는 이유였다.
그러나, 그때였다.
황태자는 손이 내리는 와중에 한 사람의 목소리를 들을 수가 있었다. 지금껏 말이 없던 존재. 혼트.
그가 입을 열었다.
“…하얀 별께 알려야 해.”
목소리는 계속해서 들려왔다.
“이건 그 힘이다. 그 잊힌 것들의 힘. 진짜 고대의 힘.”
그 순간, 황태자는 눈을 크게 떴다.
바뀌고 있었다.
불바다가 바뀌고 있었다.
혼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반드시 죽여야 돼. 다 모이기 전에 죽여야 해.”
그리고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에서 공격대기를 하고 있던 마법사 한 명이 주저앉으며 외쳤다.
“못하겠습니다! 모, 못하겠어요! 저, 저 광경을 보고 고, 공격할 수 없습니다!”
마법사는 눈동자에 담기는 광경을 보며 덜덜 떨리는 손을 움켜쥐었다. 그의 눈동자는 케일을 향해 있었다.
모여들고 있었다.
검은 연기들이, 그 해골 모양의 연기들이 케일에게로 다가갔다.
끼이이이이- 끼이이-
절규가 함께 그에게로 향했다.
케일은 그 광경을 신경 쓰지 않은 채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는 가끔 생각했었다.
먼치킨으로서 깽판을 치고 다 뒤엎으면 기분이 어떨까?
시원할까?
신날까?
재밌을까?
‘얼어 죽을!’
개 같았다.
그는 땅 아래를 내려다봤다.
녹아내리는 골렘.
타 죽어가며 비명을 지르거나 넋을 놓은 연금술사 조종사들.
더불어 징그럽고 진득진득한 검은 절망.
그 절망이 땅에 닿자 땅이 검게 물들어갔다. 더불어 검은 연기와 절규가 더욱더 심해졌다.
케일은 고개를 들었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케일 자신을 뒤덮는 검은 연기들을 보며 당황한 최한이 보였다. 케일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시작했다.
주체할 수 없는 이 힘을 제대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끼이이이- 끼이이-
검은 연기와 절규, 그것들로 검게 가려진 케일이 천천히 땅으로 내려섰다.
그는 골렘과 조종사, 검은 절망, 불로 가득 찬 곳에 발을 디뎠다.
“케일 님!”
최한이 놀라서 은빛 실드 밖으로 뛰쳐나가려고 했다.
“저 액체가!”
검은 절망. 그 진득한 액체가 케일을 향해 모여들었다. 검은 연기와 절규로 가득 차 보이지 않는 케일의 곁으로 뭉쳐들었다.
케일은 점점 검은 늪에 빠진 듯 제대로 보이지 않게 되었다.
곧 잠식되어 사라져 버릴 것 같았다.
“안 돼!”
나처럼, 홀려 버리면 안 된다! 저 힘에 속으면 안 된다!
최한은 뛰쳐나가려 했다. 하지만 그를 가로막는 투명한 존재가 있었다.
“라온, 막지 마라!”
“바보 최한아! 인간 말 잊었나!”
다급히 외치던 최한이 멈칫했다.
그의 귓가로 어린 용은 말했다.
“인간이 힘을 주체 못 할지도 모른댔다! 그런데 지금 인간, 아직 몸을 가눈다! 그릇도 이상이 없다!”
라온은 냉정하게 케일의 상태를 파악하고 있었다.
“인간은 이제 시작인 거다!”
검은 용의 눈동자에는 보였다.
케일에게서, 우리 인간에게서 따뜻함이 느껴졌다.
인간이 불을 찾는 이유 중 하나인 따뜻함.
춥고 외로운 것들을 위로하고 보듬어주는 힘.
그 힘을 향해 춥고 외로운 것들이 모여들었다.
검은 연기와 절규.
케일의 따뜻함을 향해 죽어간 이들의 절망이 다가갔다.
그리고 라온은 그것들이 모두 뭉쳤을 때, 외쳤다.
“사라진다! 사라질 거다!”
뭐?
최한이 저도 모르게 되물은 순간, 그는 눈앞이 빨갛게 물들었다.
파아앗-
빨간 빛이 터져 나왔다.
불바다 중심에서부터 터져 나온 적금빛.
“…검은 것들이-”
검은 것들이, 해골이, 진득한 검은 액체가 타오른다.
검은 늪이 타오른다.
처음의 불바다에 비하면 숨 막힐 정도의 압박감을 주는 광경은 아니었다.
하지만 모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끼이이- 끼이이이-
끔찍한 그 절규. 정체를 알 수 없는 기괴한 울음소리. 그것이 사라졌다.
대신 검은 연기가 하얗게 변해갔고, 검은 액체가 점점 적금빛에 잡아먹혀 갔다.
그 사이로 들렸다.
으아아아아아!
으아아아-
으아아아아아!
사람 소리가 들려왔다.
울고 있는 사람들의 무수히 많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얗게 변한 연기와 함께 그 소리들이 하늘로 점점 멀어져 갔다.
불바다도 사그라졌다.
불이 저절로 꺼져갔다.
골렘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모든 것들이 흔적도 없이,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굉음도, 폭발음도 없어진 순간. 마이플성에 있던 로잘린은 고개를 들어 올렸다.
투둑, 투둑.
은빛 실드에 닿은 적금빛 가루가 보였다.
아니, 재가 보였다.
불은 함께 타오르고 난 뒤, 연기와 재만을 남기는 법이었다.
그녀는 입을 열었다.
“…정화.”
마치 태양의 빛 가루가 떨어지듯 아름다운 광경.
토독. 토독.
적금빛 재가 눈처럼 타버린 검은 땅에 내려앉았다.
그리고 한 사람의 어깨 위에도 내려앉았다.
케일 헤니투스, 그의 머리칼부터 어깨까지. 적금빛 재가 소복하게 내려앉았다.
케일은 고개를 들었다.
그의 한쪽 무릎이 꺾였다.
“케일 님!”
최한이 앞으로 고꾸라지려는 케일을 받아 들었다. 그는 눈을 크게 떴다.
주르륵.
한 줄기의 검은 피가 케일의 입가를 타고 내렸다.
적금빛 재가 내리는 아름다운 광경. 그 속에서 최한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큰 폭발도, 소리도 없는 이 평화롭고 아름다운 광경이야말로 많은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희생을 해야 얻을 수 있는 적막임을.
그는 알고 있었다.
“케, 케일 님-”
최한의 손이 덜덜 떨렸다. 그는 어떻게든 케일을 부축해 일으켜 세우려 했다.
그때였다.
케일의 입이 달싹였다.
동시에 최한은 제 손을 탁 쳐내는 투명하고 동그란 앞발을 느꼈다.
-비켜라, 최한아!
그리고 최한은 눈앞에 불쑥 나타난 것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축축하게 젖은 사과파이였다.
그것이 허공에 둥둥 떠서 움직이더니 케일의 입안으로 욱여넣어졌다. 최한은 훌쩍이는 목소리가 머릿속에 들려왔다.
-인간! 우리 인간! 배고프다! 내가 안다! 저건 배고프다는 눈빛이다! 다행이다! 인간 한 3일 굶은 것 같은 상태지만 안 죽는다!
“라, 라온?”
최한은 당황했지만 곧이어 케일이 우물우물 사과파이를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볼 수밖에 없었다.
노동에 찌든, 피곤에 절어버린 얼굴을. 힘 하나 없이 축 늘어뜨린 몸을 지닌 채로 케일이 사과파이를 씹으며 크게 외쳤다.
“지상의 괴물을 노려라!”
최한이 멈칫했다.
전투 초기.
클로페가 백골새 위에 올라타서 했던 말.
‘날아올라라!’
그리고.
‘지상의 괴물을 노려라!’
사람들은 이 괴물이 ‘골렘’이라 생각했다.
최한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그는 그제야 안도했다.
케일은 지금 괜찮았다.
삐이이- 삐이이이이-
피리 소리가 들려왔다.
하늘 높이 도망갔던 백골새들이 다시 나타났다.
그리고 화살처럼 한 뱡향을 향해 날아갔다.
클로페는 외쳤다.
“사령관께서 명하셨다! 크크, 크하하하하! 드디어 지상의 괴물을 잡아야 할 때가 왔다!”
백골새의 부리가, 기사들의 검이 한 방향을 향했다.
지상의 괴물.
황태자 아딘.
케일이 클로페에게 내렸던 진짜 명령이 화살처럼 제국을 겨눴다.
그리고 케일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저를 쳐다보는 최한에게 말했다.
“최한.”
“네.”
케일은 온몸에 힘이 빠져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힘을 너무 많이 썼다.
“내 뺨 좀 쳐라.”
정적이 잠시 내려앉았다가 곧 깨졌다.
“…네? 괘, 괜찮으신 겁니까? 정신이 없으신 것 같은데?”
-인간, 괜찮나? 그릇은 무사한데! 이제 힘쓰면 머리가 맛이 가나?
진심으로 최한이, 라온이 당황해 외쳤을 때, 케일은 담담히 답했다.
“기절할 것 같거든.”
기절하면 큰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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