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307
306화.
툭, 툭.
케일은 제 뺨을 두드리는 감각에 미간을 찡그렸다.
툭, 툭.
기분 나쁘게 뺨을 툭툭 두드리는 손길에 기분이 확 상했다.
‘기절했던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누가 내 뺨을 두드리는 거지?’
하아.
케일은 깊은 한숨과 함께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 당황했다.
“…뭐야?”
“김록수! 새끼야, 빨리 정신 안 차려?”
“어- 정수, 네놈이 여기 왜-?”
케일은 멈칫하며 제 목을 감쌌다.
이 목소리는-
김록수 목소리인데?
그리고 눈앞에 있는 놈은 입사 동기 최정수였다. 그것도 마지막 기억보다 젊었을 때. 얼빵하게 생긴 게 딱 이 자식이 20대 때였다.
케일은 후끈거리는 이마를 느끼고 볼을 쓸어내렸다. 이마에서부터 피가 흘러내린다.
고개를 숙이니 작업용 신소재로 제작된 검은 옷 곳곳이 찢겨져 피가 흐르고 있었다.
“아.”
케일은 지금 이 순간이 언제인지 깨달았다.
그 순간, 최정수가 그를 일으켜 세웠다.
“야! 빨리 가자! 머리 쓰는 놈이 후방에 있을 것이지, 왜 싸움터에 끼어? 이 멍청한 놈! 네가 온다고 도움이 될 줄 알아?”
“비켜.”
“뭐? 이 새끼가, 지금 얼빠져 있을 때가 아니라니까?”
안다.
지금 얼빠져 있을 때가 아니다.
케일은 몸을 일으켜 세워 뒤로 돌아섰다.
그러자 보인다.
겨우 몇 개를 다시 세웠건만, 무너지는 빌딩들과 하늘의 검은 홀에서 튀어나오는 괴물들이 보였다.
불타는 한국의 하늘이 보였다.
“빌어먹을.”
그때다.
이 ‘회사’에 입사했을 때. 신입 시절에 겪었던 일 중 하나.
한국 C-1 구역에 갑작스럽게 경보 1등급 몬스터가 출현했다.
그 지역을 관할하고 담당하던 능력자 길드와 헌터 놈들은 도망쳐 버렸고, 결국 이 회사 사람들이 파견 와서 정부 사람들이 올 때까지 버텨야 했다.
“…팀장.”
김록수는, 케일은 자신의 신입 때 팀장과 선배들이 보였다. 그들이 몬스터를 막고자 최대한 방어에 치중하고 있었다.
그때의 자신은 약했다.
후에 능력이 제대로 개화되었지만 이때는 그냥 새파란 초보였다.
그래서 이렇게 설치다가 도망쳐야 했다.
“흐흐-”
케일은 당연히 눈치채고 있었다.
꿈이구나.
그것도 아주 빌어먹을 꿈.
하필 제국과, 혼트와의 싸움 뒤에 기절하고서 이런 꿈이라니.
“야! 빨리 와! 능력도 다 개방 못 한 놈이! 하나뿐인 동기만 아니면! 어휴!”
케일은 최정수가 저를 부축하듯이 끌고 가면서 이때 자신이 내뱉었던 말을 기억해 냈다.
그때, 20대 때의 그는 말했었다.
‘내가 저 빌어처먹을 것들 다 해치우고 퇴사해서 퇴직금으로 평생 놀고먹는다.’
반드시 그러고 만다.
괴물도.
시민 안전과 몬스터 방어를 목적으로 한 모든 이득은 다 받아 처먹고 정작 중요한 때 도망간 능력자 길드 놈들도.
다 밀어 치워 버리고.
편한 세상에서 편하게 산다.
케일은 그때 했던 다시 말을 내뱉었다.
“내가 저 빌어처먹을 것들 다 해치우고 쉰다. 반드시, 편하게 산다.”
제국도, 암도.
세상엔 왜 이리 사람이라고도 부르기 아깝게 못돼 처먹은 것들이 많을까.
“나보다 나쁜 것들이 왜 이리 많아?!”
케일이, 20대 때의 김록수가 외쳤을 때. 그는 저를 쳐다보는 최정수를 볼 수 있었다.
최정수가 말했다.
“시끄러워, 새끼야. 네 몸 관리나 잘해!”
흐흐흐.
케일은 웃음을 흘리며 입사 동기 최정수에게 툭 던지듯 말했다.
“너나 잘해.”
“내가 너보다 잘하거든?”
케일은 최정수의 대답에 흘리던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잘하는 놈이 먼저 죽냐?
케일은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최정수가 보인 순간부터, 선배들이, 전 팀장이 모두 보인 순간부터 이건 꿈이었다. 말이 안 되는 일이었으니까.
서른이 넘은 이후로는, 팀장이 되고 난 후의 김록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장면이었다.
최정수가 말했다.
“야! 우리 팀장 좌우명 모르냐?”
모르긴.
너무 잘 알았다.
“사는 게 최고야! 넌 그 말 좀 새겨둬라, 어?”
심장에 새겨둔 말이었다.
“야, 나중에 다 끝내고 팀장은 농장 할 거라던데. 난 그 옆에 과수원 할 거다.”
그때, 자신은 최정수에게 핀잔을 주었다.
‘넌 이런 때에 그런 한가한 말이 나오냐?’
그 말에 최정수는 특유의 얼빵한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지금 이 꿈처럼.
“넌 뭐 하고 싶냐?”
뭐 하고 싶긴.
백수지.
빌어먹을.
케일은 짜증이, 분노가 치밀어 오르다 못해 그 안에 숨겨둔 마음까지 튀어나오려 하자, 더욱더 화가 터져 나왔다.
그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외쳤다.
“빌어먹을! 내가 다 처부숴 버리고 만다!”
그리고 눈을 떴다.
케일은 눈을 깜박였다.
장면이 바뀌었다.
무너지는 빌딩도, 회사 사람들도, 도망가는 시민들도 다 보이지 않았다.
대신 다른 게 보인다.
케일은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 인간?”
검푸르고 동글동글한 눈동자가 보였다. 당황해서 흔들리는 앞발이 보였다. 케일의 이마에 수건을 올리려다가 멈춘 앞발이었다.
케일은 생각했다.
아, 드디어 꿈 깼다.
그때였다.
-아주 살벌하네.
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케일은 일단 눈에 보이는 것들을 파악했다.
먼저 당황한 라온과 수건이 담겨 있던 물 대야를 들고 있는 부단장 힐스만.
케일이 옆으로 고개를 돌리자, 작은 원형 탁자가 보였다.
성자 잭, 클로페 세카, 그리고 테이블 위에 놓인 영상 통신구 속 알베르 왕세자.
-아주 잠꼬대가 대단해.
알베르는 태연한 얼굴이었다.
누가 보면 어디 손자 소풍에 따라온 인심 좋은 할아버지 표정인 줄 알았으리라. 알베르는 그 얼굴로 인자하게 말했다.
-‘빌어먹을! 내가 다 처부숴 버리고 만다!’라고?
아, 내가 말로 했구나.
케일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저하. 제가 잠결에 진심을 뱉었나 봅니다.”
알베르 왕세자는 기가 찬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안 그래도 클로페에게서 영상을 보았고, 로잘린에게, 최한에게 상황을 전해 들었다.
그런데 그 모든 걸 벌인 놈이 기절했다가 깨더니 오랜만에 본다고 인사한다. 왕세자는 클로페와 다른 이들이 있음에도 저도 모르게 툭 내뱉듯이 말했다.
-다 처부수고 뭐 하게?
케일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 멀쩡했다. 그게 중요했다.
작은 막사 안.
케일은 답했다.
“백수요.”
정적이 내려앉았다.
클로페조차도 케일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었다.
“꿈을 덜 깨셨나 봅니다. 역시 케일 님도 아직 인간이시군요. 하긴, 영웅도 인간이지요. 하하하!”
부단장 힐스만이 배턴 터치를 하듯이 말했다.
“가끔 저러시죠.”
케일은 저런 시선쯤이야 무시했다. 알베르 왕세자가 케일의 오랜 소망을 다 알고 있으면서 ‘너 어쩌냐?’라는 눈빛으로 피식피식 웃어댔지만 역시 무시하며 입을 열었다.
“최한, 메리, 로잘린 씨가 갔나?”
라온이 답했다.
“맞다! 그 셋이 정글에 먼저 갔다!”
케일이 분명 말해두었다.
일단 정글에 가야 한다고.
케일은 최적의 조합이 먼저 움직였음에 흡족함을 느꼈다. 그 셋이라면 최악은 피해줄 터.
그의 눈동자가 영상 통신구로 비치는 알베르에게로 향했다. 알베르는 그 시선에 곧바로 입을 열었다.
-네가 기절한 지 이제 겨우 3시간이다.
“3시간이나 지났군요.”
알베르는 케일의 표현에 미소를 그렸다. 그는 이놈이 무엇을 말하려는지쯤은 눈에 훤했다.
-오늘 저녁 브렉 왕국, 위퍼 왕국, 로운 왕국, 그리고 북부 3왕국이 선포한다.
역시.
케일은 이 급박한 3시간 동안 알베르가 이미 움직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흑마법이 세상에 다시 나타났다고 말이야.
케일은 몸을 일으켜 세웠다.
알베르의 말은 이어지고 있었다.
-신전들에게도 연락 중이다. 흑마법이라는 것만 진실로 받아들여지면 우리 손을 들어줄 거야.
“시간이 걸리겠지요?”
-그래. 제국이 극구 부인할 테니까. 신전의 병력들이 바로 끼어들긴 힘들 거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알베르가 잠시 말을 하다가 멈췄다.
케일은 침대 밖으로 나와 땅에 발을 딛고 올곧이 섰다. 그리고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지금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
왕세자가 하려던 말.
다시 흑마법이 출현했다는 왕국들의 선포, 황태자와 연금술 종탑의 박살, 교단들의 도움. 그런 것들보다 중요한 일.
“정글에 다녀오겠습니다.”
지금 당장 전쟁이 벌어진 곳이 먼저였다.
알베르는 잠시 입술을 달싹였다. 케일이 벌인 경이로운 광경을 봤으니까. 더불어, 그게 얼마나 저놈에게 무리가 갔을지 상상하지 않아도 눈앞에 그려졌다.
하지만 이번 싸움에, 특히 골렘을 없앴던 그 케일의 힘이 필요했다.
왕세자는 하고픈 말이 있었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입술만을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했다. 그리고 그는 저를 쳐다보는 케일을 볼 수 있었다.
케일이 툭 던지듯 물었다.
“로운은 괜찮습니까?”
전쟁을 하지 않기로 한 로운.
그러나 전쟁의 한복판이었다. 왕세자는 이제 전쟁의 중심으로 가야 했다.
현재 서대륙에서 제국 다음으로 강국이 로운이었으니까.
알베르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답했다.
-네 걱정이나 해라, 미련한 놈.
케일은 그 말에 덤덤히 고개를 끄덕이며 라온에게 손짓했다.
라온이 곧바로 텔레포트 마법진을 펼쳤다. 성자 잭도 따라 올라섰고, 케일은 힐스만에게도 손가락을 까딱였다.
그러고는 클로페에게 말했다.
“넌 알지?”
“당연하지요. 안 그래도 헤롤 참모장과 툰카 대장군이 배웅 못 해서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클로페는 당연하다는 듯 텔레포트 진에서 물러섰다.
“마이플성 뒤처리는 알아서 해놓겠습니다.”
케일은 클로페가 씨익 웃어 보이는 꼴에 찝찝함이 밀려왔다. 헤롤이라면 충분히 클로페를 견제하며 잘 해낼 것이지만, 워낙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클로페이기 때문에 불안했다.
그때였다.
-참고로 마이플성에 각 협력국 사람들이 모두 갈 것이니, 이쪽 걱정은 덜 해도 돼. 한 시간 안에 다 당도할 예정이다.
알베르는 툭 던지듯 말했다.
케일은 안심했다. 이러면 괜찮았다.
그 외에도 알베르는 몇 가지 더 진행된 부분을 말했고, 케일 역시 한 가지 부탁을 했다.
-거기까지 생각했나?
알베르는 감탄하면서도 흔쾌히 답했다.
-바로 준비하지.
케일은 이렇게 진행을 알아서 잘 해놓은 알베르에게 오랜만에 기름칠한 혀로 아부 좀 하려고 했다.
-정글서 연락해라. 그 때 보자.
뚝.
하지만 연락이 끊겼다.
“인간! 왕세자는 늘 한결같다!”
그러니까.
케일은 한숨과 함께 라온에게 텔레포트 진을 실행하라 턱짓했다.
라온은 케일의 안색과 몸을 한번 쭈욱 훑어보더니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힘차게 끄덕이며 말했다.
“간다!”
그래, 가자.
또 전쟁터로.
***
케일은 변하는 시야에 눈을 감았다. 몸에 기이한 감각이 감돌았고 그는 곧 눈을 떴다.
그러자 보였다.
“…라온, 여기가 어디지?”
“하늘이다!”
공중으로 이동했다.
케일은 발밑이 휑했다.
“똑똑한 로잘린이 여기로 오랬다!”
케일은 눈앞에 보이는 광경에 다시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여기가 어디지?”
이번엔 다른 대답이 들려왔다.
하늘은 하늘인데, 어디 하늘이냐?
“정글 8구역! 여기로 오랬다!”
제국이 침략한 정글 7구역이 아닌, 그 아래에 있는 정글 8구역.
케일은 등 뒤에서 힐스만과 성자 잭의 목소리가 이어 들려왔다.
“이럴 수가! 저건 또 무엇-”
“오, 신이시여.”
그러나 케일은 그 둘을 살필 틈이 없었다.
그는 로잘린이 왜 여기로 오라고 했는지 알 수 있었다.
“빌어먹을 흑마법 새끼들.”
7구역 곳곳이 조금씩 불타올랐다.
하지만 그보다도 케일은 정글의 나무들 위로 치솟아 오른 검은 인간 모양의 골렘들이 보였다.
총 4개의 골렘.
20여 미터에 달하는 그것들이 동서남북, 정글 7구역의 입구를 문지기처럼 지키고 있었다.
더불어 7구역의 하늘.
7구역 중앙에 위치한 왕궁 바로 위에, 성 모양의 비행 물체가 자리해 있었다. 마치 감시하는 것처럼, 중앙에서 정글 7구역을 내려다보는 듯했다.
“오셨어요?”
케일은 8구역 아래에서 비행으로 날아오른 로잘린이 보였다.
그녀는 빠르게 날아올라 케일의 옆에 서며 말했다.
“…현재 저희와 정글군은 공격을 멈췄습니다.”
케일은 저들이 왜 공격을 멈췄는지 알 것 같았다.
로잘린이 씁쓸한 얼굴로 말했다.
“현재 정글 7구역 주민들이 인질로 잡혀 있습니다.”
한 구역 전체의 사람들이 인질이 되어 있었다.
일반 정글 사람들이 저 사방을 막고 있는 골렘과 공중의 비행선 감시를 벗어나 도망칠 수는 없을 터.
“정글 7구역은 요새처럼 변해 버렸습니다.”
누구도 들어갈 수도, 나갈 수도 없는, 길이 모두 막힌 요새.
동시에 지옥과도 같은 곳.
그곳이 7구역이었다.
그 순간, 로잘린은 케일이 덤덤히 내뱉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요새 아닙니다. 길은 있습니다.”
케일의 선명한 눈빛이 로잘린을 직시했다.
어디든 길은 분명히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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