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310
309화.
“태양신 신물이 왜 필요하지?”
케일은 질문을 던졌다. 덜덜 떨면서도 고개를 가로젓는 부탑주 메텔로나가 보였다.
“그, 그것까진 모르게, 겠습니다. 탑주님이 필요하다고 하셔서 오래전부터 찾아왔다고 들었습니다.”
메텔로나는 대답을 하다가 케일의 눈빛이 냉정한 것을 보고는 지레 흠칫 몸을 떨며 황급히 말을 이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언젠가 탑주께서 ‘진짜’ 빛들이 사라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진짜 빛?
케일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태양신의 신물을 떠올렸다.
태양의 단죄.
그 작은 손거울 모습의 신물이 ‘진짜 빛’일까?
하지만 케일은 부탑주가 한 말을 정확히 들었다. 그는 그녀에게 조금 더 다가가며 차분히 물었다.
“빛‘들’이라고?”
하나가 아니라 복수를 가리키는 표현.
그 물음에 메텔로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어진 그녀의 말에 케일은 미간을 찌푸렸다.
“네. 신물과 태양신이 힘을 내려준 이들이죠.”
태양의 단죄와 반쪽짜리 성자 잭.
케일은 제 품으로 들어온 것들이 하나하나 단추가 맞춰져 가자, 탄성이 흘러나올 것을 꾹 참으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안 그러면 웃을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그 표정에, 여기서 유일하게 겁을 집어먹은 이가 있었다.
부탑주는 황급히 다시 말을 꺼냈다.
“그래서 성자와 성녀를 잡아다가 신물의 위치를 알아내려고 했습니다. 의도치않 게 둘 다 도망가는 바람에 곧바로 생포를 못 했지만요. 물론, 케일 사령관님께서 성자 잭을 손에 넣으셨-”
“잠시만.”
케일은 메텔로나의 말을 멈췄다.
‘…성자와 성녀라고?’
둘 다라고?
한쪽은 신성력만 있는 반쪽짜리이고, 한쪽은 신성력이라고는 없는 가짜인데?
그때였다.
“아.”
누군가의 탄성이 들려왔다.
케일은 고개를 돌렸다.
왕세자 알베르였다. 그가 케일과 눈을 마주치자 입을 열었다. 여전히 잔뜩 내리깐 목소리로 그는 말했다.
“내가 태양신에 대해서 조금 잘 알지.”
다크엘프 쿼터라서.
그리고 태양신의 축복을 받았다는 로운 왕국 크로스만 왕가의 왕세자라서.
그는 적이자 축복의 대상인 태양신에 대해, 그 신의 교리에 대해서 꽤 잘 알았다.
특히, 다크엘프로서 잘 알았다. 다크엘프에게 태양신 교단은 피해야 할 가장 큰 적이었으니까.
“태양신은 늘 어둠을 물리치라고 말하지. ‘치유’보다는 ‘성전’이 어울리는 교단이야. 그래서 신도들에게 늘 어둠의 속성을 가진 생명체들을 멸종시키라고 했어. 그리고 그 힘을 자신의 뜻을 이어받을 만한 ‘아이’들에게 나눠줬지.”
케일은 멈칫했다.
설마?
“그렇다면 태양신의 신물은 ‘무기’일 확률이 높아.”
태양신의 쌍둥이.
무기를 다룰 능력이 없는 대신, 신성력만 지닌 반쪽짜리 성자 잭. 그리고 신성력은 없지만 스스로 소드 마스터가 될 만큼의 재능을 지닌 하나.
한쪽은 태양신의 힘을, 한쪽은 전사로서의 자질을 가지고 있었다.
하.
케일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흘렸다.
그는 제 품 안에 있는 손거울을 떠올렸다.
그래, ‘단죄’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건 무기다.
케일은 깨달았다.
“둘 다 진짜구나.”
하나와 잭.
그 두 쌍둥이는 원래부터 ‘진짜’였다.
‘그리고 탑주, 리치는 신물과 태양신 쌍둥이들을 없애려고 했고.’
그림이 그려졌다.
케일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더 이상 메텔로나와 나눌 대화가 없었다. 그는 자신은 조금 더 여기 남아 있겠다는 듯 눈짓하는 고룡 에르하벤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메텔로나에게 마지막 물음을 던졌다.
“정글에 대한 계획을 아나?”
부탑주는 흠칫하며 계획에 대해서 읊었다. 그 내용들은 ‘정글 정복’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확실히 지금 정글에 대한 제국의 대응은 변화한 내용이야.’
아마도 황태자, 혹은 탑주가 수도로 돌아가서 정글의 제국군에게 새로이 명령을 내렸을 터.
“그, 저는 위퍼를 중점으로 맡고 정글은 탑주와 전하께서 거의 전적으로 맡으셔서. 저는 대략적인 작전 흐름은 알지만 그 이상 자세히는 모릅니다.”
부탑주는 다급한 제 말에도 케일이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뒤돌아서는 모습이 보였다.
“헉.”
그 순간, 그녀는 압박감이 사라지며 숨을 온전히 들이마실 수 있었다.
“허억, 허억.”
숨을 몰아쉬던 메텔로나는 최한, 다크엘프와 함께 천막 밖으로 나가는 케일의 뒷모습을 보며 압박감이 사라져도 떨고 있는 자신의 처지를 명확하게 인식했다.
반면에 케일은 일행과 함께 8구역 경계선까지 이동했다. 경계선에는 전사들이 도열한 채 삼엄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여기서 더 7구역 가까이 가면 제국의 시야에 걸릴 수 있다고 합니다.”
케일은 최한의 보고에 고개를 끄덕이며 알베르에게 물었다.
“됐냐?”
“참, 갈수록 말투가 날뛰는 망아지 수준을 넘어서는구나.”
알베르는 케일의 불경함을 대충 흘려 넘기며 경계선 나무 위로 올라가 골렘을 바라봤다. 케일은 자신과 달리 나무에 자유롭게 올라가 자리를 잡은 알베르를 묘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진짜 다크엘프 같네.’
새삼 엘프 같아 보였다.
나중에 전투 인력으로 써먹어도 되겠는데?
남들이 알면 정말로 불경하다고 평할 만한 생각을 하던 케일은 알베르와 시선이 마주쳤다.
“왜?”
“케일, 너- 저거를 어떻게 없앴지?”
알베르는 제 말에 씨익 웃어 보이는 케일이 보였다.
동시에 그는 이모인 다크엘프 타샤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검은 절망이라니. 그 끔찍한 것이 다시 세상에 나올 줄이야. 우리가 그걸 정화할 수 있다고 전해져 오기는 하지만, 역사에서만 보고 실제로 해보지 않아서… 자신이 없구나.’
타샤는 망설이다가 알베르를 보며 말했다.
‘정말로 케일 공자가 그것과 죽은 마나까지 같이 정화를 했다고? 그게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니?’
타샤는 정말로 진지하게 그런 물음을 던졌다.
알베르는 이곳으로 오기 전 귀족들이 했던 말들을 떠올렸다. 왕국의 선포를 앞두고 흑마법과 제국과의 일이 모두 수면 위로 드러난 상황.
‘저하, 케일 헤니투스 사령관에게 너무 많은 직무를 맡기는 게 아닌지요?’
‘만약 저하의 말씀대로 케일 공자가 이 모든 것들을 밝혀냈고, 현재 그 전쟁의 최전방에서 맞서 싸운다면, 이리- 두어도 괜찮을까요?’
사실상 케일에 의해 전쟁의 흐름이 바뀌고 있음을, 대륙의 판도가 바뀌고 있음을 이제 로운의 귀족이라면 눈치채고 있었다,
특히, 이번에 흑마법을 발견하고 이에 대응하는 케일의 모습은 전해 듣기만 해도 상식의 범주를 넘어서 있었다.
그래서 걱정하는 귀족과 신하들이 늘어났다. 단순히 권력 투쟁을 넘어 자신과 다른 특별함에 대한 거리낌이었다.
너무 압도적이어도 두려운 법이었다.
왕세자는 타샤와 귀족들의 말들이 모두 머릿속에 헤매는 가운데 직접 골렘을 보러 왔다.
‘저걸 혼자 없앴다고?’
골렘의 위용과 더불어 다크엘프의 피를 지녔기에 알 수 있는 끔찍하고 음습한 힘.
그는 그것들에게 덤벼들었던 케일에게 한마디를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미련한 놈.”
“뭐?”
케일은 저도 모르게 반문했다.
갑자기 뭐야?
그런데 라온이 반응했다. 조용히 투명화해 있던 용이 말했다.
-왕세자 말이 맞다!
뭐?
“이런 멍청한 놈.”
“…네?”
2연타다.
케일이 얼빠진 얼굴을 했지만 왕세자는 진심이었다.
권력자가 되고 싶은 이들이 가장 귀히 여기는 것이 무엇인가?
그건 바로 제 목숨이다.
오래 살며 계속해서 권력을 누리길 원한다.
왕세자는 창백한 안색의 케일을 향해 솔직하게 말했다.
“네가 제일 미쳤구나.”
“저기요? 형?”
알베르는 케일을 가뿐히 무시하며 시선을 돌렸다.
“최한.”
“네.”
“고생이 많다.”
“감사합니다.”
최한이 꾸벅 고개를 숙인다.
뭐야?
나 빼고 무슨 대화 중이야?
케일이 황당해서 쳐다봤지만, 알베르는 나무에서 내려와 케일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열심히 해. 안 그러면 나중에 재상이나 귀족회의 의장으로 앉혀 버릴 테니까.”
이 무슨 끔찍한 소리를!
재상이 되면 자신의 소중한 백수 중년의 삶이 날아간다.
의장이 되면 그냥 늙어 죽을 때까지 일해야 한다.
‘이런, 이런 악덕 고용주 왕족이 다 있나!’
케일이 소리 없는 비명이라도 지를 표정으로 왕세자를 쳐다봤다. 그러자 알베르가 다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동생, 대신에 무사히 다 끝마치면 내 이름을 걸고 백수로 살게 해주마.”
“형은 역시 저 하늘의 태양처럼 강렬하면서도 현명한 어휘를 구사해.”
알베르는 대번에 아부를 내뱉는 케일을 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신하의 말을 떠올렸다.
‘저하, 저하는 케일 헤니투스 사령관의 힘이 두렵지 않으십니까?’
내가 왜?
천에 가려진 알베르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자신은 그렇게 만만한 사람이 아니다.
“이만 가봐야겠어.”
알베르는 저를 쳐다보는 케일의 눈빛에 덤덤히 말했다.
“나도 한 방 먹여야지.”
“…어련히. 잘 가쇼.”
“말투가 참 술 취한 망아지 같구나.”
알베르는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으며 곧 텔레포트 마법을 통해 원래 가야 할 곳으로 이동했다.
그곳은 위퍼 왕국 마이플성이었다.
오늘 밤. 알베르와 각국 대표들의 선포가 서대륙 전체에 울려 퍼질 것이다.
***
어두운 밤.
정글의 나무에 가려져 달빛도, 별빛도 하나 들어오지 않는 땅 위.
작은 영상 통신구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것으로 로운, 브렉, 위퍼, 그리고 북부 3국은 서대륙에 흑마법이 출현했으며 이를 섬멸시키기 위해 모든 힘을 쏟을 것을 선포하노라.
알베르가 외친 말이 끝나는 순간, 케일은 영상 통신구를 껐다. 라온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들려왔다.
-인간! 이제 우리 가나?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수만의 전사들은 보이지 않았다.
오로지 밤처럼 어두운 타샤를 비롯한 다크엘프 몇 명, 로잘린, 정글의 지배자 리타나, 최한, 에르하벤, 메리가 다였다.
쏴아아- 쏴아아-
정글을 가로지르는 강을 옆에 두고서 케일은 입을 열었다.
“시작하죠.”
그 순간이었다.
다크엘프와 리타나의 시선이 에르하벤에게 향했다.
케일이 갑작스럽게 데려온 사람.
다크엘프들은 그를 흔들리는 눈동자로 두 손을 꼭 쥔 채 바라본 반면, 리타나는 의문이 가득했다.
그녀가 예전 4왕국 1종족 협정 때 호위기사로 소개받았던 자였다. 그러나 케일은 그자의 정체를 새로이 소개했다.
‘대마법사입니다.’
최상급 마법사 로잘린을 넘어서는 존재.
어둠 속에서도 그의 백금발은 빛나고 있었다.
에르하벤의 손이 움직였다.
금빛 가루가 순간 일행을 감쌌다.
동시에 그들의 모습이 모두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갔다.
로잘린만이 온전한 모습을 드러낸 채 말했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투명화한 동료들을 향한 인사의 끝에, 그녀는 바람이 나부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사사삭-
그건 일행이 달려 나가는 소리였다.
에르하벤의 등장으로 힘들게 물 아래로 움직일 이유가 없었다.
그들은 모두 투명화한 채, 강 옆을 따라 7구역으로 달려 나갔다.
사아아아- 사아아-
바람의 소리가 케일의 발끝에 맴돌았다.
***
-인간! 다들 빠르다!
그러게.
케일은 고개를 들었다.
빠르게 이동한 덕에 어느새 7구역 감시 범위 근처에 도착했다.
그러나 7구역의 성벽은 보이지 않았다.
7구역을 북에서 남으로 가로지르는 강, 그 강을 막는 성벽은 없었다.
대신 수많은 제국군 병사들이 보였다. 병사들이 강 양쪽에 틈 없이 배치되어 있었다.
아무리 투명화했어도 저들을 넘어서려면 부딪쳐야 할 터. 물론 몰래 넘어갈 수 있을 만한 실력자들이지만, 중심부까지 최대한 조용히, 최소한의 변수도 없애야 했다.
딱. 딱.
케일의 손가락이 부딪친 순간.
-알았다! 인간!
-시작하마.
라온과 에르하벤의 목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케일은 강으로 뛰어들었다.
아직 감시 범위 밖.
촤아아-
촤아아- 촤아아-
그를 시작으로 물을 가로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물 아래.
투명한 원들이 생겨났다.
케일은 입을 열었다. 그의 목 근처에 금빛 가루가 스쳐 지나갔다.
다크엘프들과 리타나는 에르하벤이 홀로 만든 줄 알지만 사실 두 용이 만든 원 안에서, 그는 편히 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마법이 닿은 그의 목소리가 물속에서도 일행에게 선명히 들렸다.
“직진한다.”
곧 투명한 원들이 강 밑바닥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감시 범위 안으로 들어섰지만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았다.
촤아아아- 촤아아-
케일과 일행은 강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다.
아래에서부터 위로.
밤하늘 아래 잔잔한 강물 속에서 케일 일행은 마침내 7구역 중심으로 들어섰다.
그 순간이었다.
케일은 라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일하게 강 아래가 아니라 강 위로 이동하던 용의 목소리였다.
-인간! 인간아!
케일은 멈칫했다.
다급한 용의 목소리였다.
그때, 케일은 기묘함을 눈치챘다.
멈춰 선 것이 자신만이 아니다.
아무런 신호도 없었건만 몇 명을 감싸고 있을 투명한 원 몇 개가 멈췄다.
-인간! 제국이 미쳤다!
라온의 목소리에 케일은 고개를 들었다.
일렁이는 물속이 보였다. 그 일렁임만큼 라온의 목소리도 일렁였다.
-7구역 안에, 인간, 7구역 안 곳곳에 거대한 폭탄들이 있다!
뭐?
폭탄?
-죽은 마나 폭탄이다! 크기도 아주 크다! 주택가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수백 개다!
케일의 귓가에 ‘딱’ 소리와 함께 투명화가 풀렸다.
마법을 푼 사람은 고룡 에르하벤이었다.
케일은 아까 자신과 거의 비슷하게 멈춰 섰던 이들이 누군지 알 수 있었다.
다크엘프들, 메리, 에르하벤. 그들이었다. 하나같이 표정이 심각했다. 그들은 라온처럼 강 위를 보지 못했지만, 죽은 마나의 기운을 느낀 것이다.
어마어마하게 커다랗고 끔찍한 기운.
-이거 수백 개… 터지면 7구역 정글 사람들 다 죽는다! 아니, 7구역은 그냥 죽음의 땅이 된다! 더 이상 살 수 있는 땅이 아니다!
이 쓰레기 새끼들.
케일은 비로소 제국의 생각을 알아챘다.
인질이 끝이 아니었다.
이들은 7구역을 아예 없애 버릴 작정이리라.
어쩌면 인질들을 구하러 올 정글의 전사들까지 끌어들여 죽일 작정일지도 몰랐다.
-인간! 7구역 전체가 그냥 거대한 죽은 마나 폭탄이나 다름없다! 큰일이다!
골렘도, 경비를 서던 병사들도 모두 이 상황을 가리기 위한 수작이었다.
쳐들어올 정글 전사들을 위한 경비가 아닌, 7구역 안을 들여다보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한 경비였으리라.
“하, 하하-”
케일은 그냥 기가 찼다.
-메리랑 다크엘프들이 감당할 수준이 아니다. 이거 다 동시에 터지면 누군가는 죽게 된다!
그 누군가는 일반 정글 사람들일 것이다.
케일의 눈빛에 분노가 서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머릿속이 복잡해져 왔다.
-그렇다고 나나 할배가 나서서 다 부수면 더 큰일이다! 또 그냥 놔둘 수도 없다!
케일은 다급함에 입을 열려다가 멈췄다.
-인간?
그는 라온의 목소리를 무시했다. 어린 용의 다급한 목소리 사이로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배고파.
응?
목소리의 주인은 부서지지 않는 방패의 주인, 먹보 신녀였다.
얘가 왜 튀어나와?
케일이 의문을 던지기도 전, 먹보가 말했다.
-내가 먹으면 되는데.
뭐?
뭘 먹어?
죽은 마나?
-기억 안 나?
먹보가 물었다.
-우리 처음 만난 곳. 네가 나한테 빵을 줬던 나무. 기억 안 나?
기억난다.
헤니투스 영지 빈민가 꼭대기에 있던 ‘사람 먹는 나무’.
그 까만 나무. 그래서 더 기이한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었던 나무이자 ‘부서지지 않는 방패’를 얻을 수 있었던 장소였다.
‘…잠깐. 까만?’
케일이 고대의 힘 ‘부서지지 않는 방패’를 얻는 순간, 까만색이 사라지며 하얗게 변해 버렸던 나무.
‘설마?’
그 나무가 검게 변한 이유는 단순히 먹보 때문이 아니라 다른 이유가 있었던 건가?
빈민가 사람들은 검은 나무 아래에서 모든 것이 황폐화되었다며 그곳을 무서워하고 피했다. 그때는 케일은 라온도 없이 홀로 움직이고 있었다.
문득 죽은 마나로 황폐화되는 땅이 떠올랐다.
그 순간, 짱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과거 검은 비가 내렸을 때, 방패 아래에서 생명체들은 살아 숨 쉴 수 있었지. 비록 정화는 못했지만.
뒤이어 부서지지 않는 방패, 나무 속성을 지닌 먹보가 말했다. 느릿느릿하면서도 단호한 목소리였다.
-나 다 잘 먹어.
이런 멋진 먹보 같으니라고!
케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여긴 정글이니까.
가장 나무들이 많이 존재하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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