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317
316화.
“…제 마음대로 말입니까?”
어느새 다시 차분해진 내비게이션과 같은 어조에 케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가 다 가지든, 아니면 나눠주든. 마음대로 해.”
메리는 케일과 나무줄기를 번갈아 바라봤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케일의 머릿속에 먹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화를 해야 해. 나무가 묶어두는 것도 한계가 있어.
헤니투스 영지에 있던 사람 먹는 나무.
사람들은 황폐화된 나무 주위를 피했지만, 그렇다고 그곳이 죽은 마나에 잠식되어 검게 변한, 죽어버린 땅은 아니었다.
다만 모든 것들이 메말라갈 뿐이었다.
-죽은 것이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지 않고 세상에 온전히 존재한다면, 그것만으로도 타 생명체에 영향을 주게 돼.
사람 먹는 나무처럼.
주위에 안 좋은 영향을 줄 수도 있었다.
“음? 다 나와 있네요?”
케일은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위로 들어 올렸다.
높이 자라난 검은 나무줄기. 그 위에서 다크엘프 탸사가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다크엘프들은 현재 전사들을 도와 전쟁 후 복구 작업을 함께하고 있었다. 자연의 각기 다른 속성을 가진 정령들은 어떤 존재들보다도 복구 작업에 도움이 많이 되었다.
“안 그래도, 음, 급하게 왔는데 바로 만났네요.”
타샤는 난감한 얼굴과 달리 가볍게 나무줄기에서 뛰어내렸다.
케일은 침묵하는 메리 대신 타샤를 바라봤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타샤 뒤에서 상당히 충격받은 표정으로 따라오는 남자를 보았다.
‘…왜 왔어?’
케일은 의문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고, 반면에 타샤는 그런 케일에게 미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게, 갑자기 제가 상황을 보고하니까-”
“오! 이럴 수가! 오, 오, 오!”
타샤 뒤에 있던 이는 그녀의 말을 잘라먹으며 연신 감탄사를 흘려보냈다.
아이고야.
케일은 골이 아파왔다. 그러나 그의 몸이 곧 재빠르게 움직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미천한 놈이 감히 두 다리로 서서 존귀하신 분의 얼굴을 볼 수는 없습니다!”
“시장님!”
“할아버지! 좀!”
케일과 타샤가 재빠르게 무릎을 꿇으려고 하는, 다크엘프이자 지하 도시의 시장인 오반테를 붙잡았다.
타샤의 할아버지인 그는 여전했다.
-이 다크엘프 또 이런다!
라온의 신난 목소리가 들렸지만 케일은 들을 정신이 없었다.
“오, 이럴 수가!”
“할아버지, 좀!”
타샤가 말렸지만, 다크엘프 시장은 케일이 있던 천막 바로 앞에 선 이를 보고 경악에 휩싸였다.
백금발의 남자.
에르하벤이었다.
제일 마지막으로 케일의 천막에서 나온 그는 태연한 얼굴로 왕세자 알베르와 연결된 영상 통신구를 들고 있었다.
급히 나오느라 모두 그를 잊어먹는 바람에 홀로 남겨져 황당해하는 알베르를 챙긴 유일한 인물이자, 조용히 지금까지의 상황을 천막 구석에서 지켜보던 이였다.
약 500여 년 넘게 살아온 다크엘프들의 현 수장은 서늘한 기운에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이 정도 기운이라면……!’
실제로 용을 만나 용의 기운이 어떤지 느껴보지 못한 다른 다크엘프들은 에르하벤과 투명화한 라온의 기운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과 달리, 과거 실제로 용을 보고 그의 기운을 느껴본 적이 있었던 시장 오반테는 곧바로 에르하벤의 정체를 알아챘다.
동시에 그는 라온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음에 소름이 돋았다.
‘…라온 님이 더 강해지셨구나!’
예전에 만났을 때와 달리 투명화하자 느껴지지 않는 라온의 기운에, 오반테는 라온이 저보다 더 월등히 강해졌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시장님.”
오반테는 낮게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저를 쳐다보는 케일 헤니투스가 보였다.
‘…강해졌어.’
케일에게서 자연의 기운이 물씬 풍겨왔다. 그의 정령이 케일의 곁을 빙빙 돌며 떨어질 줄을 몰랐다.
‘…이제 1년이던가.’
처음 만난 후 이제 1년 정도 흘렀다.
그사이 케일 일행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단 말인가.
‘전쟁으로 이렇게 강해진다고?’
어림없는 소리였다. 분명 이들이 강해진 이유가 따로 있을 것이다.
물론 그 이유는 중요한 것이었지만, 시장 오반테에게는 크게 중요치 않았다.
그의 눈동자가 메리를 지나쳤다.
증손녀와 같은 아이였다.
동시에 자신이 시장으로 앉아 있는 죽음의 땅, 그 사막 아래 지하 도시가 떠올랐다.
오래전부터 대대로 이어져 온 운명의 고리.
그 운명이 이번 대가 되어서야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는 힐끗 백금발의 용을 쳐다봤다.
눈이 마주쳤다.
-나는 무시하거라.
용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반테는 두 다리에 힘을 주며 똑바로 섰다.
케일은 저를 쳐다보는 오반테의 눈빛에 멈칫했다.
강렬하다 못해 약간 광기가 보이는 듯했다.
‘이 노인네가 왜 이래?’
드래곤 광신도나 다름없는 오반테가 뜨거운 눈빛을 보내자 뒤통수가 서늘해져 왔다.
툭.
오반테는 케일의 어깨를 붙잡고 귓가에 속삭였다.
“나도 모든 것을 걸겠소.”
뭔 소리야?
갑자기 뜬금없이 나타나서 뭔 말을 하는 거야?
케일이 슬슬 띠꺼운 눈빛으로 시장을 거쳐 타샤를 쳐다봤다.
“아, 정말! 시장님, 그렇게 말하면 어떡해요!”
타샤는 골치 아프단 얼굴로 케일을 바라보며 말했다.
“제가 어젯밤 다크엘프 전투를 시장님께 보고드렸어요. 그랬더니 시장님이 메리와 관련해 할 말이 있다고 하셔서 방금 전에 급히 오신 거예요. 그리고 케일 공자에게 전해줄 것도 있다고 합니다.”
“…메리요?”
케일의 시선이 다시 시장에게로 향했다.
그 순간 시장의 입이 열렸다.
“메리.”
그는 부드럽게 메리를 불렀다.
“네, 할아버지.”
오반테는 평소처럼 차분하게 답하는 메리를 보며 그녀의 10살 시절을 떠올렸다.
‘아픈 네크로맨서가 더 좋아요.’
흑마법사와 네크로맨서 중 네크로맨서를 택했던 어린아이.
“넌 어떤 네크로맨서가 되고 싶으냐?”
오반테는 그때 하지 않았던 질문을 던졌다. 메리는 그 질문에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냥 섣불리 대답하기에는 오반테의 눈빛이 진지했다.
조금 엉성해 보여도 그는 가장 현명한 다크엘프였다. 그리고 자신에게 네크로맨서의 길을 열어준 고마운 할아버지였다.
메리는 케일을 쳐다봤다.
라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착한 메리야! 네 하고 싶은 대로 답해라! 너는 특별히 위대하다는 말 같이 써도 된다!
검은 로브 속 메리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녀는 저번 제국과의 전쟁 때 혼트를 조종했던 탑주와 싸우며 한 결심이 있었다.
자신이 공부했던 책의 지은이처럼.
메리는 생각한 바를 말했다.
“월등하게.”
배가 고팠다.
그녀는 죽은 마나를 머금은 나무들을 보자, 배가 고팠다.
메리는 그 감정을 배가 고프다고밖에 표현하지 못했다.
왜냐면 한 번도 진심으로 가져보지 못한 욕망, 혹은 열망이었으니까. 순수하게 바깥세상이 보고 싶었던 그때의 욕심과는 다른.
늪처럼 더 깊이 파고드는 탐욕.
강해지고 싶다.
그 열망과 탐욕.
이를 채우지 못한 메리는 배가 고팠다.
“전 월등하게, 강해지고 싶습니다.”
시장 오반테는 여전히 부드럽게 물었다.
“누구처럼?”
메리는 이에 망설임 없이 답했다.
“죽음의 현자처럼요.”
자신에게 네크로맨서가 되는 길을 알려준 책의 지은이.
그 사람처럼 되고 싶다.
이를 듣고 있던 타샤가 멈칫했다.
그녀가 정글로 오기 전, 할아버지인 오반테가 메리를 보호하라고 하며 언급한 말이 있었다.
‘그래, 어쩌면 이 모든 건 순리겠지. 죽음의 현자의 뜻을 이어받을 순간이 왔구나.’
그때, 그녀는 죽음의 현자가 누구인지 의문이 들었다. 타샤의 시선이 저절로 할아버지 오반테에게 향했다.
하지만 오반테는 타샤가 아닌 케일을 보고 있었다. 그의 입이 열렸다.
“죽음의 현자.”
오반테는 품에서 책을 하나 꺼냈다.
아주 오래전부터, 대대로 죽음의 땅 지하 도시 시장에게만 전해져 오는 이야기.
죽음의 현자.
“그녀가 곧 죽음이요.”
그녀는 죽음을 품에 안았다.
더불어.
“어두운 것들의 유일한 왕.”
빛도 어둠도 자연이었다.
어둠에 묻혀야만 살아갈 수 있었던 존재들을 처음으로 이끌었던 사람.
“죽음의 왕.”
그 단어가 다크엘프 시장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순간, 케일은 과거 제국전 때 탑주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죽음의 왕이 참 슬퍼하겠어. 그녀라면 다시 네크로맨서의 힘을 이은 이가 나왔다고 기뻐했을 텐데.’
죽음의 현자가 곧 죽음의 왕이었다.
그러나 아직 오반테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카로 왕국의 사막을 죽음의 땅이라는 5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만든 사람이자.”
5대 불가사의 중 유일하게, ‘사람’이 전설의 주인공인 죽음의 땅.
낮에는 붉고 밤에는 어두운 모래로 덮인 사막.
그 사막을 만든.
“최후의 네크로맨서.”
현자이고, 왕이며, 최후의 존재.
“그녀는 유일하게 흑마법사를 압도한 네크로멘서로서 ‘죽음의 왕’이라 불렸지요.”
압도적으로, 월등하게 어둠의 정점에 달했던 사람.
“동시에 다크엘프들에게 살 곳을 마련해 준 사람이었습니다.”
다크엘프들이 살 곳.
죽음의 도시, 혹은 생명의 도시라 불리던 사막 아래의 거대한 지하 도시.
케일은 탑주가 했던 말이 다시 떠올랐다.
‘겨우 다 없애 버렸는데 말이야. 다크엘프들도 그렇고. 씨를 말린 줄 알았더니.’
연금술 종탑 탑주는 다크엘프들도 없어진 줄 알았다.
하지만 그들은 죽음의 땅, 그 사막 아래에서 살고 있었다.
오반테가 씨익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자세한 내막은 설명하자면 길지만, 흑마법은 다크엘프도 죽이려고 했지요.”
“…할아버지! 정말이에요?”
타샤가 놀라서 물었고, 오반테는 그저 아주 오래된 역사라며 고개를 가로저어 보였다.
“지하 도시를 아름답게 가꾸는 것은 다크엘프들의 몫이었으나 그 처음 장소를 마련해 준 이는 죽음의 현자였지요.”
오반테는 시장에게만 전해지는 이야기를 음미하듯 눈을 감았다.
다크엘프들은 대대로 저들을 배척한 인간을 그리 미워하지 않았다.
왜냐고?
아주 오래전부터 지하 도시의 우두머리인 다크엘프가 늘 말해왔기 때문이다.
인간들도 우리와 비슷하다.
그들을 모두 미워하지는 마라.
그들도 힘든 사람은 우리처럼 똑같이 힘들다.
모든 인간을 미워하기에는, 다크엘프들이 살아갈 곳을 만들어준 이도 ‘인간’이었으니까.
오반테는 케일을 보며 말했다.
“모든 총력을 다 걸어 그대들을, 그리고-”
메리의 어깨 위에 노인의 주름진 손이 올라갔다.
“그리고 메리를 돕겠소.”
죽음의 현자는 죽기 전에 말했다고 한다.
그 말에 다크엘프 오반테는 반박하지 못했다.
왜냐고?
다크엘프와 흑마법사들은, 어둠의 속성을 지닌 생명체들은 어둠이 가진 ‘아픔’을 모른다.
특히 죽음은 더욱더 모른다.
그러나 네크로맨서는 아픔과 죽음을 늘 곁에 둔다.
오반테는 운명이라는 글자를 떠올렸다.
10살.
살기 위해 사람들이 있는 도시를 도망쳐 사막을 건너던 아이. 그 아이가 흉측한 외양의 네크로맨서가 되었다.
그리고 17년이 흘러 그 아이가 세상에 나왔을 때, 흑마법이 다시 세상에 나타났다.
오반테는 한 번도 상상해 보지 못한 일들이 어느새 일어나 있었다.
‘죽음의 도시 시장’이라는 자리.
다크엘프보다 더 소수인 고래족도 왕이 있거늘, 타 부족과 달리 다크엘프들은 왕을 두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이제 대부분의 다크엘프들은 이에 대한 연유를 몰랐지만 시장만큼은 알고 있었다.
왕의 자리는 따로 있으니까.
오반테는 멀뚱히 서 있는 메리의 어깨를 토닥이며 다른 손에 쥔 책을 케일에게 건넸다.
“죽음의 현자가 남긴 흑마법에 대한 책입니다.”
그가 네크로맨서 책과 함께 메리에게 내민 책이기도 했다.
“현자께서는 이 흑마법 책과 네크로맨서 책 각각의 주인이 있을 것이라 했습니다.”
케일은 검은색으로 뒤덮인 책을 받아 들었다.
제목도 없는 검은 책.
“현자께서는 주인이라면 그 책의 첫 장을 읽는 순간 자신의 것임을 안다고 하셨지요.”
메리가 네크로맨서 책 내용을 듣고 스스로 그 책을 택했듯이, 오반테는 케일에게 그 책을 보라고 하였다.
케일은 묘한 기분과 함께 검은 책을 펼쳐 들었다.
사락.
표지를 넘기자, 그 책의 제일 첫 장에 적힌 문구가 하나 보였다.
‘이거 봐라?’
케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검은 책에는 한 문장이 적혀 있었다.
거울.
떠오른 것은 태양의 단죄. 신물이었다.
케일은 살짝 소름이 돋았다.
도대체 영웅의 탄생 5권 안에 담기지 못한 이야기가, 진실이 어느 정도일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연결된 것일까?
어쩌면 ‘진짜 세상’이기에, 모든 것들이 원인과 결과로 이어졌는지도 모른다.
의문을 품은 케일이 다음 문장을 읽는 순간, 그림이 하나 그려졌다.
제국의 중심. 연금술 종탑 아래에서부터 시작될 그림.
케일의 시선이 성자 잭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메리에게 닿았다.
태양신 쌍둥이와 죽음의 왕.
그들이 제국에서 그릴 그림을 상상한 케일은 등이 찌릿했다.
기분 좋은 오싹함이었다.
서대륙에서 가장 높은 탑이, 무너지는 종탑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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