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326
325화.
평평한 바닥으로 떨어지는 케일의 눈동자에 황태자 아딘의 얼굴이 담겼다.
신음을 터뜨리며 괴로워하는 얼굴.
그 위에 미소가 번지자, 케일은 웃으며 외쳤다.
“빌어처먹을 새끼, 역시 쉬울 리가 없지!”
그 순간, 아딘에게서 검은 연기가 폭탄처럼 터져 나왔다.
마치 거대한 검은 뱀이 하늘을 향해 솟구치려는 듯 아딘에게서 터져 나오며 위로 솟아올랐다.
오러 연기와 흑마법이 뒤섞인 힘.
그 힘이 케일을 덮쳤다.
콰아앙!
은빛 방패와 검은 연기가 부딪치며 굉음이 터지는 찰나, 아딘은 저를 향해 달려오는 두 존재가 보였다.
타샤와 최한.
그중 타샤가 마치 예정된 수순인 것처럼 공중으로 박차 올랐다.
죽은 마나와 바람이 뒤엉킨 채로 날아오르는 타샤는 작은 태풍과 같았다.
그녀는 검은 연기에 삼켜진 은빛 방패가 보였다.
“집어삼켜라.”
바람의 정령이, 그녀의 친구가 의지를 따랐다.
쾅, 쾅! 콰아아앙!
검은 태풍이 검은 연기를 집어삼켰다. 그러나 타샤의 눈동자는 그 광경을 담고 있지 않았다. 솟구쳐 오른 그녀의 시야에 어느새 아딘이 추락한 테라스가 닿았다.
여러 표정의 황실 놈과 연금술 종탑 놈들이 보였다.
그중 흑마법사들에게 눈이 갔다.
‘염탐을 한 뒤 파악한 바에 따르면, 연금술 종탑의 모든 인원이 흑마법사는 아냐. 비율은 반반이야.’
타샤의 귓가에 케일의 목소리가 맴돌았다.
‘또 노예로 잡혀온 사람들도 발견되었다. 다행히 전쟁 중이고, 요즘 말이 많이 돌아서 그런가 지하가 아닌 종탑 내 창고에 감금해 두었더군.’
콰아아앙!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검은 태풍이 뱀을 완전히 집어삼켰다.
느긋하게 바닥으로 착지하는 케일이 보였다.
‘타샤, 흑마법사들을 모두 잡아들여. 나머진 무시해.’
타샤는 케일이 꽤 믿고 따를 만하다고 평했다.
왜냐고?
‘숨만 붙여놔. 나머진 너희들 마음대로 해. 숨만 붙여서 끌고 오면 된다.’
쓸데없는 아량이 없으니까.
‘그들의 목숨은 우리 몫이 아냐. 렉스에게, 빈민가 사람들에게 넘겨야 해.’
그리고 쓸데없이 잔정도 많다.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저를 보며 굳어진 흑마법사들이 보였다.
타샤는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그녀가 왜 여기에 왔는가?
쾅!
방문이 열렸다.
방 안으로 들어서는 흑마법사와 제국의 기사들이 보였다.
타닥.
타샤는 테라스에 발을 디디며 두 팔을 활짝 벌리고는, 방 안에 있는 이들에게 환한 미소를 담아 말했다.
“자, 너희들을 지옥으로 보낼 다크엘프가 여기 왔다.”
그녀의 뒤로 다크엘프들이 치솟아 올랐다. 죽은 마나로 뒤덮인 다크엘프들은 하나같이 웃고 있었다.
그리고 웃는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아딘은 다시 여유로운 표정으로 돌아왔다.
“재밌는 짓을 했구나.”
추락하던 아딘의 몸이 방향을 틀었다. 이제 등이 아닌 얼굴이 바닥으로 향했다.
그러나 상관없었다.
“우습게 보였어.”
최한의 검에 베인 다리.
아딘의 손에서 검은 기운이 터져 나왔다.
“엇!”
다크엘프 한 명이 멈칫했다.
그가 휘감으려고 달려들던 죽은 마나 액체 일부가 빠르게 이동했다.
그리고 잘린 다리의 공간을 채웠다.
타닥.
아딘의 몸이 가볍게 땅에 내려섰다.
본인의 다리 하나, 흑마법으로 만든 죽은 마나 덩어리 하나.
인간의 다리와 달리 몬스터의 그것처럼 괴이한 것이, 아딘의 오른 다리가 있어야 할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임시지만 괜찮군.”
아딘은 웃었다.
남들에게, 제국민에게 보이기엔 참으로 괴물 같은 형상이었으나, 뭐 어떤가?
다 죽여야 할 놈들인데.
그는 저 멀리 떨어진 곳에 내려서는 놈을 쳐다봤다. 케일 헤니투스의 안색은 멀쩡했다. 하지만 아딘을 향한 공격은 그가 시선을 두는 방향에서 오지 않았다.
“어딜 봐?”
낯익은 목소리.
아딘은 웃으며 손을 휘둘렀다. 어느새 그의 손에는 죽은 마나로 만들어진 검이 들려 있었다.
콰앙!
고개를 돌린 아딘의 눈동자에 최한의 무미건조한 얼굴이 담겼다. 아딘은 제 심장과 오른 다리를 상처 입혔던 놈에게 인사를 건넸다.
“자네 때문에, 내가 다리가 시려서 얼마나 고생한 줄 아나?”
상대가 아무 대답이 없음에도 아딘의 미소가 짙어졌다.
“전하!”
“전하, 저희가 왔습니다!”
동서남북으로 이어진 통로는 다크엘프들에 의해 막혔다. 하지만 연금술 종탑에서 지하로 오는 길이 막힌 것은 아니었다.
다크엘프 절반이 타샤와 함께 테라스를 통해 연금술 종탑 위로 올라간 상황.
종탑 쪽의 문이 열리며 지하로 일단의 사람들이 들어섰다.
“전하! 황실에는 연락을 해놓았습니다!”
“곧 황실 안의 마법사와 귀족들도 기사들과 합류해 전하를 구하러 올 것입니다!”
제국의 기사와 마법사들이었다. 그 사이에는 흑마법사들도 몇몇 섞여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황태자에게 접근하기도 전에 걸음을 멈춰야 했다.
“이, 이 다크엘프들이!”
남은 절반의 다크엘프.
그들이 사람들을 가로막았다.
“크흐흐.”
“흐흐, 얼마나 강해졌으려나.”
다크엘프들은 하나같이 웃고 있었다. 그들은 오랜만에 섭취한 막대한 죽은 마나와 아직 흡수 못 한 죽은 마나를 두른 채 제국 쪽 사람들을 반겼다.
“확인해 보면 되겠네.”
얼마나 강해졌는지, 싸워보면 된다.
“저, 저 미친놈들이!”
“감히 제국의 안마당에서 우리와 싸우려는 거냐!”
채앵, 챙!
제국의 기사들이 검을 뽑아 들었고, 마법사들의 소매가 마나로 펄럭이기 시작했다.
일촉즉발의 상황.
그때였다.
사아아아아-
바람이 불었다.
부드러운 바람이었다.
“…엇?”
“저게 무슨!”
제국 쪽 사람들이 당황했지만 다크엘프들은 더욱더 환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편하게 싸우겠네.”
“다행이야.”
다크엘프들이 안도했다.
봄바람처럼, 부모의 손길처럼 부드러운 바람이 한곳으로 몰려갔다.
제국 측도 아니었고, 최한과 아딘이 있는 곳도 아니었다.
그보다 더 뒤. 발을 편히 디딜 수 없는 곳으로, 바람이 하나둘 하얀 무언가를 끌어당겼다.
뼈다.
산처럼 쌓인 뼈 외에도 지하 공간 곳곳에 흩어져 있던 뼈들이 뼈 더미 산으로 모여들었다. 그렇게 차곡차곡 겹쳐지며 부서진 테라스 높이만큼 뼈의 산이 높아졌을 때, 그 앞으로 한 사람이 섰다.
제국 측은 그를 가리키며 분노를 토해냈다.
“케일 헤니투스!”
“죽었다더니, 역시 거짓 소문이었구나!”
그러면서도 두려움을 놓지 못했다.
골렘을 죽이던 그 불길이 떠올랐으니까.
여기서 그것을 펼치면 지하 공동은 물론, 연금술 종탑을 아예 지옥의 불구덩이로 만들 수 있을 터.
긴장감이 감돌았다.
하지만 따스한 봄바람이 멈춰들고 작은 뼛조각마저 전부 모였을 때.
-인간, 다 모았다!
케일은 두 손을 앞으로 펼쳤다.
“방어진을!”
“실드를 펼쳐!”
제국 측 사람들이 신속하고 빠르게 움직였다. 케일의 행동에 오히려 정신이 번쩍 든 것이다. 그러나 다크엘프를 지나 황태자에게 가려던 이들은 곧 걸음을 멈췄다.
“흐흐흐.”
“하하, 하하하!”
미친 것처럼 웃는 다크엘프들 때문이 아니었다.
“저게 뭐야?”
멍하니 물음을 던지는 제국 기사의 눈앞에 은빛이 펼쳐졌다.
파아아앗-
거대한 방패와 날개가 지하 공동에 펼쳐졌다.
눈부신 날개를 단 방패가 뼈 더미를 감쌌다.
점점 은빛이 짙어졌다.
-나 실드 삼중으로 둘렀다! 이제 위대한 나한테 이 정도는 식은 수프 먹기다!
라온의 활기찬 목소리가 들렸다. 케일은 한 손으로는 방패를 펼친 채, 다른 한 손을 움직여 주머니에서 빵을 꺼내 먹기 시작했다.
“이건 뭐, 이젠 배가 고파서 뭘 할 수가 없네.”
고대의 힘만 쓰면 배가 고팠다.
케일은 방패를 오래 펼쳐야 했기에 빵을 우적우적 씹어 먹었다.
그 평화로운 광경에 제국 측은 얼이 빠진 표정을 지었다.
뭐지?
공격이 아닌가?
그런데 왜 방패를 최한이나 다크엘프에게 두르지 않고 뼈 더미를 감쌌지?
저기다 왜?
그러나 그 순간, 곳곳에서 커다란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하하! 역시 우리 방패 공자님이 최고라니까!”
“뭘 안다니까! 푸하하하!”
그 순간 제국 측은 기함을 토했다. 그들을 향해 검은 존재들이 달려들었다.
“이, 이것들이! 공격해!”
“방진을 펼쳐!”
다크엘프들이 제국 사람들을 덮쳤다. 제국 사람들은 죽은 마나를 두른 그들을 두려워하며 피했고, 대신 마법사와 흑마법사들이 나섰다.
“우린 이제 거칠 것이 없다! 숨만 다 붙여놔라!”
“사령관님과 타샤의 명이다, 다 휩쓸어!”
지하 공동에 들어오자마자 죽은 마나가 담긴 액체 통만을 공격하던 다크엘프들. 그들은 그럴 수밖에 없었다.
뼈가 있었으니까.
다크엘프들은 저 하얀 뼈가 이곳에 남겨둔 것이 무엇인지 뼛속 깊이 느끼고 있었다.
태어날 때부터 어둠 속성이면서, 동시에 자연과 가까우며 죽음을 곁에 두어야 하는 종족. 그들은 죽은 이가 남겨두고 간 것은 함부로 건들 수 없었다.
저 죽은 이들이 남겨둔 뼈들은 이 세상에 남겨진 이들에게 돌아가야 했다. 그것이 순리였다.
지금 저 위에서 제국민들을 대피시키고 있을 빈민가 사람들에게, 그리고 대륙 곳곳에서 갑자기 사라진 제 가족을 기다리고 있을 누군가들에게 돌아가야 했다.
그래야 비로소 죽음이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내일이라는 시간으로 이어지는 법이었다.
다크엘프들이 보기에 저 뼈 더미는 다 부수고 없애도 되는 연금술 종탑에서 지켜야 할 유일한 물건이었다.
그 생각을 알아챈 제국 사람이 있었다.
“푸하, 하하하하!”
아딘이었다.
그는 최한과 대치 중이던 검을 치우고 뒤로 물러서며 허리를 숙일 정도로 웃어댔다.
한없이 삐딱한 자세로 빵을 먹고 있는 케일 헤니투스. 하지만 그 눈동자는 방패로 아딘 저를 후려칠 때와 달리 심각했다. 이 공간에서 제일 귀한 것을 안고 있는 눈빛이었다.
“하하하하하-!”
아딘은 웃고 있던 얼굴을 들어 최한 너머의 케일을 바라봤다.
어느새 웃음이 사라진 얼굴이 입을 열었다.
“나랑 다른 놈이잖아?”
그는 귀를 후벼 파는 케일과 다른 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당연한 소릴.”
최한이었다. 그는 굳은 얼굴로 아딘에게 검을 겨눴다.
케일과 아딘.
쉬운 길을 두고 어려운 길을 가는 사람이, 어찌 쉬운 길만 가려는 놈과 같겠는가?
아딘은 숙였던 허리를 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넓은 지하 공동.
남쪽 편에서는 제국 측과 다크엘프들이 싸우고 있었다. 언뜻 보기엔 수적 차이로 다크엘프들이 수세에 몰린 것 같아 보였으나, 광분한 것처럼 날뛰는 다크엘프들은 어째 점점 더 강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북쪽에선 케일이 뼈를 산처럼 만들어 지키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중앙.
텅 비어 있는 공간.
그곳에는 자신과 최한 두 명만이 존재했다.
아딘의 입꼬리가 올라가며 입이 열렸다.
“황당하군.”
마치 두 사람만을 위해 만들어진 전쟁터와 같은 텅 빈 공간.
아딘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었다.
“최한, 자네는 소드 마스터지만.”
아딘은 초급 흑마법사에 익스퍼트 최상급 검사.
그리고 최한은 인간을 넘어섰다는 소드 마스터.
그러나 일반적인 싸움과 이 싸움은 달랐다.
아딘은 덤덤하게 그 사실을 알렸다.
“자네는 완전한 절망을 얻은 나를 이기지 못해.”
단순히 죽은 마나만을 품은 초급 흑마법사와 아딘은 달랐다.
검은 절망. 완전한 절망을 집어삼킨 아딘은 스스로 생각하기에, 그리고 눈으로 보기에 자신이 일반 흑마법사들과 격이 다르다고 생각했다.
이는 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아딘은 최한을 내려다보는 눈길로 말했다.
“자네 속성이 내 하위란 말이야, 하위.”
최한의 오러는 이제 아딘에게 소용이 없다.
“자네 오러는 나한테 잡아먹혀. 방금 전에도 부딪쳐 봐서 알잖아? 최상급 익스퍼트인 내가 소드 마스터의 검을 막았어. 그것도 아주 가볍게. 이 사실로 충분하지 않아? 내가 진심이 되면 자네가 날 이길 수 있을까?”
아딘은 기가 찬 얼굴로 최한에게 물었다.
“그래도 네 주인이 허락해 주던가? 싸우라고?”
최한은 여유 만만한 아딘을 보며 며칠 전을 떠올렸다.
케일과 나눴던 대화가 귓가에 맴돌았다.
‘최한, 네가 하겠다고?’
‘네.’
‘속성이 잡아먹힐 정도라던데.’
그때 했던 대답을 최한은 한 번 더 되새겼다.
‘케일 님.’
로잘린, 라크, 메리.
모두가 점점 더 성장하고 있었다.
울부짖던 렉스 경을 본 순간, 해리스 마을이 스쳐 지나갔다.
그 순간 느꼈다.
내가 이 싸움에 나서고 싶다.
‘저는요.’
그렇기에 솔직히 말했다.
‘절 잡아먹으려던 것들을 죽이고 살아난 놈입니다.’
어둠의 숲.
나보다 근력이 강한 괴물.
나보다 빠른 괴물.
나보다 월등한 괴물.
모든 괴물들이 나보다 강했고 내 목숨을 노렸다.
그것들을 다 이기고 성장하며 올라온 사람이 나 최한이다.
‘케일 님, 살아남는 건 강하고 약함으로만 정의되지 않습니다.’
그때, 최한은 케일이 처음으로 제 말에 씁쓸한 표정을 짓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맞다. 산다는 건 그렇지.’
그러고는 평소의 얼굴로 명령했다.
‘그럼 황태자는 네가 맡아라.’
최한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황태자 아딘. 이번 작전을 넘어 미래를 생각했을 때 꼭 처리해야 할 적이다.
그렇기에 최한은 그런 적을 약점이 있는 자신에게 넘긴 케일에게,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에게 가벼운 목소리가 들렸다.
‘그냥 죽이는 건 아까우니까.’
케일이었다.
‘좀 패라.’
고개를 든 최한.
‘그리고 안 되겠다 싶으면 뒤로 빠져. 다른 녀석들이 패면 되니까.’
그는 웃으며 답했다.
‘네, 그러겠습니다.’
최한은 며칠 전의 대화를 마음에 새겨두며 아딘을 쳐다봤다.
허락받았냐고?
“그래, 허락받았다.”
하!
아딘은 기가 차는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이내 그의 표정이 굳어졌다.
우우우웅-
최한의 검에서 피어오른 난폭한 어둠.
불완전한 어둠과, 그 안에 담긴 마찬가지로 불완전한 절망.
그것은 검을 지나 점점 최한의 몸 전체에서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는 담담한 얼굴로 선언했다.
“난 오늘 성장한다.”
어둠의 숲에서부터 시작된 그의 새로운 삶.
그는 늘 강한 적과 마주해야 했다.
“그리고 살아남는다.”
최한은 아딘에게 검 끝을 겨눴다.
케일은 미소를 그렸다.
요새 부쩍 느끼지만.
영웅의 탄생, 그건 이제 없는 이야기였다.
다만 현실만이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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