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327
326화.
최한의 걸음이 아딘을 향했다.
“무슨 저런 속도가!”
제국 기사 중 한 명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검다.
검도, 몸도 모든 것을 검은 오러로 뒤덮은 인간이 마치 한 마리의 맹수처럼 황태자 아딘에게 달려들었다.
정제되지 않고 난폭하게 일렁이는 검은 오러.
‘전하는 상급 기사인데!’
기사는 순식간에 아딘에게 도달해 검을 들어 올리는 최한의 모습에 두려움이 밀려왔다. 그때, 그의 상급자가 말했다.
“괜찮네.”
“…네?”
그가 되묻는 순간, 검과 검이 부딪쳤다.
콰아아앙!
마치 산과 산이 부딪친 듯한 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크흑! 눈 가려!”
기사는 상급자의 말에 눈을 가렸다.
지하의 먼지가, 충격으로 부서진 바닥의 파편들이 거대한 충돌로 발생한 바람에 휘몰아쳤다.
그리고 먼지바람이 멎어들었을 때.
“…세상에, 저게 가능해?”
기사는 눈앞에 보이는 광경에 지금이 전투 중이라는 것조차 잊어버리고 말았다.
검은 것들이 서로를 잡아먹으려 싸운다.
최한은 제 검과 부딪친 검은 검을 쳐다봤다.
죽은 마나로 만들어진 검. 더불어 검은 오러 연기로 감싸인 검.
그 검을 소드 마스터의 오러로 감싸인 검이 부수지 못하고 있었다.
황태자 아딘은 그 광경에 웃었다.
“어때? 자네도 이미 알고 있잖아. 내 검은 오러 연기와 네 검은 오러는 차원이 달라.”
끼기기긱-
검과 검이 서로 맞닿은 채 팽팽하게 대치를 이뤘다.
아딘은 그 와중에 입꼬리가 점점 더 올라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까 한 번의 공방, 그리고 지금 두 번째.
무표정한 최한의 얼굴.
물론 아까와 달리 지금은 제 오러를 감추지 않고 난폭하게 일으키고 있었다.
그러나 아딘의 눈에는 다 보였다. 그의 입이 열렸다.
“잡아먹고 싶지?”
은근한 목소리에 최한의 무미건조한 눈동자가 아딘을 향했다.
아딘의 눈동자가 최한의 손을 향했다.
잘게 떨리는 손.
황태자는 뱀처럼 속삭였다.
“내가 가진 검은 절망. 그거 잡아먹고 싶지? 응?”
아딘은 가라앉는 최한의 눈빛을 볼 수 있었다. 그 순간, 대치하던 최한의 검이 방향을 바꿨다.
쾅!
다시 검과 검이 부딪쳤다.
그리고 최한의 검이 아딘의 왼다리를 향했다.
콰앙!
하지만 다리에 최한의 검이 닿기도 전에, 황태자의 오른 다리가 최한의 검과 부딪쳤다.
죽은 마나로 만들어진 검은 다리.
“크, 크하하!”
아딘은 웃음을 터뜨렸다.
“보라니까! 이제 자네의 검은 내 오른 다리도 못 베어!”
콰직.
괴물 같은 다리가 힘을 주어 바닥을 박차는 순간, 바닥이 부서졌다. 동시에 최한과 아딘이 서로 부딪치기 시작했다.
콰앙!
쾅! 쾅!
부딪칠 때마다 검은빛이 터져 나왔다. 아딘은 환하게 웃으며 검은 오러 연기를 일으켰다.
“정말 안 잡아먹게?”
그리고 그 연기를 최한에게로 보냈다.
촤아악!
최한의 검이 연기를 갈라내었다. 그러나 검은 연기는 사라지지 않고 최한에게 다가갔다.
쾅!
최한은 연기를 따돌리며 아딘에게 검을 휘둘렀고 다시 막혔다.
아딘은 최한의 떨리는 손을 보며 말했다.
“손이 떨려서 본 실력이 안 나오지?”
떠는 손으로 어떻게 제대로 된 검을 펼친단 말인가.
아딘은 거칠게 뛰는 심장에서 검은 절망을 더 거세게 뿜어냈다. 그 순간, 지하 공동 안에 기이한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끼이이이- 끼이이-
검은 절망. 그 속에 담긴 죽은 영혼들의 울부짖음.
그것이 최한을 덮쳤다.
“크윽!”
무표정하던 얼굴이 처음으로 일그러졌다.
쿵. 쿵. 쿵.
최한의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잡아먹으라고.
저 검은 절망을 거둬들여 네 것으로 만들라고. 그래서 완전해지라고.
최한은 소리 없는 유혹이 온몸을, 피부를 들쑤시는 듯했다.
“크으, 윽!”
골렘 때보다 더 심했다.
골렘 안에 파묻힌 검은 절망과 달리 아딘이 내뿜는 검은 절망은 연기가 되어 그를 파고들었다.
끼이이- 끼이이-
결국 최한의 발이 두 걸음 물러섰다.
그 순간, 그의 귓가로 아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절망이라는 게 말이야.”
아딘은 제가 심장에 가둬둔 검은 절망을 일으킬수록 점점 가라앉는 최한의 눈동자를 보며 말했다.
절망이라는 건.
“전염성을 지녔더라고. 생각해 보면 맞아. 세상에 혼자 절망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
최한은 더욱더 거세게 뛰는 심장의 소리와 아딘의 목소리가 뒤섞여 들려왔다.
맞다고.
심장이 아딘의 말이 맞다고 거세게 소리쳤다.
어둠의 숲에 홀로 살아갈 때, 도망치면서 외치지 않았냐고.
왜 나만 이런 일을 겪어야 하냐고. 억울하다고.
그렇게 외쳤다고, 그에게 과거를 부르짖었다.
“그래서 남의 절망을 탐내더라고.”
맞아.
심장이 다시 말했다.
그래서 지금 온몸이 남의 절망을 탐내는 거라고.
최한은 심장과 아딘의 목소리가 뒤섞여 하나로 들렸다.
“자네는 이 검은 절망을 받아들여야 성장할 걸세.”
그래. 받아들여.
더 강해지는 거야.
어둠의 숲에서 결국 네가 가장 강해졌듯이.
그러면 돼.
“아니면 자네가 나처럼 다 손쉽게 얻을 위치에서 태어나거나… 뭐 하는 거지?”
아딘의 눈동자가 최한을 향했다.
“크큭!”
최한의 어깨가 들썩이다가 결국 젖혀지며 얼굴이 드러났다.
“푸하, 하하하하!”
최한이 웃고 있었다.
-인간, 최한 저렇게 웃는 거 처음 본다!
전장을 지켜보던 케일도 당황해 라온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저놈이 저렇게 웃는 거 처음 보는데.
케일의 표정이 찜찜해져 갔지만, 최한은 웃음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하하하하- 하하! 크윽, 하하하!”
최한은 숨까지 거칠게 쉬면서 웃어댔다.
그러다가 그가 웃음을 거뒀을 때, 아딘의 표정이 묘해졌다.
없다.
검은 오러가 사라졌다.
최한은 검은 오러를 모두 거둬들였다. 이어진 최한의 행동에 아딘의 표정이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최한이 다시 아딘에게로 달려들었다.
오러 없이.
오로지 제 한 몸과 검만을 들고서 아딘에게 다가갔다.
“미쳤나?”
아딘의 외침이 들려왔다.
심장의 목소리도 들렸다.
‘검은 절망을 얻고 강해져야 돼.’
그 순간 최한의 입이 열렸다.
“버린다.”
“…뭐?”
되묻는 아딘의 목소리는 최한에게 닿지 않았다.
쿵. 쿵. 쿵.
심장의 목소리도 듣지 않았다. 그저 거세게 뛰는 심장 박동에만 귀를 기울였다. 내 몸 안에 피가 돌고 있다는 증거.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
어둠의 숲에 처음 떨어졌을 때.
최한은 살아남기 위해 많은 것들을 버렸다.
몬스터들이 먹다 땅에 버린 과일과 고기를 주워 몸을 웅크린 채 허겁지겁 먹었고.
자신을 숨기려 괴물들의 시체 틈 사이에 숨고, 벌레가 제 몸 위를 기어가도 숨죽여야 했으며.
자신의 냄새를 숨기기 위해 사람들이 더럽다고 말할 괴물들의 오물을 온몸에 묻히고 땅굴 속에 웅크려 있기도 했다.
자존심. 청결. 따뜻한 음식. 편히 누울 곳.
다 하나씩 버렸다.
그리고 그 빈자리에 채워진 것이 있었다.
어느 날부터.
어느 순간부터.
내 검에서 피어오르는 것이 검은색이더라.
그러나 유일하게 버리지 않은 것이 있었다.
포식자의 오물을 몸에 묻힌 채 다른 포식자들을 피해 땅굴에 숨어 있던 밤.
잠이 들면 곤란한 밤.
그런 밤이면 그는 숨죽인 채 중얼거렸다.
‘…나는-’
밤뿐만이 아니다.
틈이 날 때마다 중얼거렸다.
‘나는- 최한이다.’
나는 최한이다.
‘최한.’
이름을 외웠다.
수천, 수만 번.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이 내 이름을 외우고 또 외웠다.
인간이 한 명도 없는 곳.
말을 할 곳도 없는 이곳에서 말을 잃지 않기 위해.
그리고 나를 잊지 않기 위해.
단 하나 버리지 않은 것이 이름이었다.
그게 나니까.
모든 것을 버려도 최한이라는 ‘나’는 버릴 수 없었다.
수십 년,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을 버텨야 했던 나날 속에서 그는 이름만은 버리지 않았다.
나, 최한으로서 존재할 수 있다면.
그 안에 다른 것들을 버리고 다시 채우면 된다.
최한의 검이 아딘의 눈앞에 드리워졌다. 오러도 없는 평범한 검.
그 검 너머 최한의 흔들림 없는 눈동자가 보인 순간, 아딘은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필요 없는 건 버린다.”
떨림이 사라졌다.
최한의 손이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그는 다시 채울 것들을 떠올렸다.
어둠의 숲에서 빠져나온 이후의 삶.
수십 년에 비해 턱없이 짧은 시간.
그러나 그 시간은 최한의 손을 떨지 않게 만들었다.
헤니투스 영지 저택에서 머물던 어느 날, 그날의 라온과 케일의 목소리가 생각났다.
‘최한아! 그런데 예전부터 생각했지만 너 발음 특이하다!’
‘난 좋은데.’
‘물론 인간 말대로 최한 이름 좋다! 물론 내가 최고로 이름 좋다!’
최한은 땅을 박찼다.
위로 떠오른 그는 자신을 따라 땅을 박차는 아딘을 보며 검을 아래로 천천히 내리그었다.
그때, 라온과 케일은 저를 쳐다보며 대화를 주고받았다.
‘뭐, 이름이 특이하니까 기억도 잘되고. 그리고.’
케일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최한, 그게 네 이름 같은데. 다른 건 딱히 생각 안 나.’
‘맞다! 최한은 최한이 어울린다!’
최한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는 저를 따라 올라서며 검은 절망을 최대로 피워 올리는 아딘을 보며 툭 내뱉었다.
“어리석구나.”
아딘은 어리석었다.
소드 마스터는 단순히 오러를 만드는 이가 아니다.
수천, 수만 번 검을 휘둘러 그 검에 제 인생을 담는 사람이다.
흑무검술.
제 검법의 이름이었다.
그때 자신의 삶은 검었고,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그렇기에 흑무(黑無)라고 지었다.
그러나 이제 그 이름은 버려야 한다.
왜냐고?
여전히 검었으나, 가득 차 있었다.
주위에 너무나도 많은 것들이 자리했다.
쿵. 쿵. 쿵.
최한은 환한 미소를 그렸다.
심장의 목소리가 사라졌다. 최한은 검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온몸에 피가 들끓었다.
‘나는 성장할 것이며, 결국 살아남는다.’
아래로 내리그어지는 검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최한의 검에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피어오른다.
최한의 검에서 검은 오러가 피어오른다.
하지만 이전과 달랐다.
-이, 인간아! 저, 저것 봐라! 저, 저거!
나도 보여.
케일은 눈을 크게 떴다.
빛이 난다.
검은색인데도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빛을 뿜어내었다.
여전히 거칠고 난폭한 검은 오러였으나, 빛이 났다.
죽은 마나와도, 검은 절망과도 달랐다.
흑마법사, 네크로맨서, 다크엘프, 아딘 그 누구와도 빛깔이 달랐다.
“이, 이게-”
아딘의 눈동자가 커졌다. 그와 죽은 마나로 만든 검, 검은 연기를 덮치는 밝고 검은빛.
그 너머 최한은 우는 듯 웃고 있었다.
절망을 모두 버리지 않았다.
절망의 반을 버리고, 그 자리에 행복을 채웠다.
과거와 지금을 담았다.
“이게 나야.”
눈부신 검은빛이 최한의 검 끝을 떠나 아딘을 덮쳤다.
“이, 이건 말도 안 돼!”
아딘은 검은빛에 부서지는 검은 연기를 볼 수 있었다.
‘속성을 바꿨어?’
끼이이- 끼이이이-
기이한 울음소리가 점점 사라졌다.
최한의 새로운 오러는 검은 절망을 집어삼키려 하지 않았다. 그저 뚫고 지나갔다.
날카로운 검이 그러하듯이, 앞의 것을 베고 나아갔다.
‘이게 가능해?’
나보다 밑의 속성을 가졌던 놈이 이제는 나와 다른 속성이라고?
아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속성의 우위가 사라졌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순수하게 쌓아온 실력뿐이다.
최상급 익스퍼트의 오러 연기는 소드 마스터의 순수한 오러를 이기지 못한다.
“아, 안 돼-!”
아딘은 제 죽은 마나 검마저 부서뜨리며 덮쳐오는 아름다운 검은빛에 경악을 터뜨렸다.
그 순간.
콰아아아앙!
굉음과 동시에 아름다운 검은빛이 터져 나오며 사람들의 귀와 눈을 뺏어버렸다.
그 빛의 시간이 끝났을 때.
쿠웅!
아딘이 다시 한번 추락했다.
“쿨럭, 쿨럭!”
거친 기침을 토해내는 아딘의 두 손과 두 팔이 엉망이 되어 있었다. 죽은 마나 검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이, 건 말도, 아, 안, 쿨럭!”
아딘의 몸 위로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최한이었다.
그는 검을 검집에 넣고는, 검집을 몽둥이처럼 그러쥐었다. 그리고 한 발을 들어 올렸다.
“커허헉, 커헉!”
최한은 검은 피를 토해내는 아딘의 가슴 위를 밟았다.
“커허헉! 크헉, 컥!”
그 압력에 아딘이 다시 피를 토해낼 때, 최한은 고개를 돌렸다.
엄지를 척하니 들어 올린 케일이 보였다.
케일이 웃으면서 입을 벙긋거렸다.
‘좀 패라.’
그리고 라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최한아! 대단하다! 네 새 속성 좋다! 너랑 똑같다!
최한은 검집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내렸다.
퍽!
또 들어 올렸다가 내렸다.
퍼억!
매타작이 시작되었다.
최한은 제 새로운 속성을 떠올렸다.
어둠도.
절망도.
무엇에도 속하지 않았다. 세상에 이름 붙일 단어가 없었다.
그저 최한. 그를 닮은 속성이었다.
그게 좋았다.
기뻤다.
“하, 하하-”
최한은 자신을 찾은 기분에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어린 듯, 그러면서도 어른스러운 미소가 그의 얼굴 가득 환하게 피어올랐다.
퍼억, 퍽, 퍼억!
그 와중에도 케일의 명령을 따라 착실히 매타작을 벌이는 최한이었다.
그래서 최한은 웃으면서 기계적으로 사람 패는 광경에 찝찝한 표정이 된 케일을 보지 못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