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330
329화.
누구 하나 섣불리 입을 열지 못했다. 그저 크게 뜬 두 눈으로 제 옆에 선 이를 쳐다보았을 뿐이다.
‘내가 무슨 소리를 들었지?’
아니, 이게 무슨 상황이지?
옆을 둘러보던 눈동자들이 다시 앞으로 향했다.
그러자 입을 여는 수호검 버나드 경이 보였다.
“성자님, 오랜만에 만나뵈었지만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당황한 표정이 아니었다.
도통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들었다는 듯 굳은 얼굴이었다.
“제가 탑주님이라니요. 말도 안 됩니다. 저는 그저 제국의 평화만을 바라는 기사일 뿐입니다.”
버나드는 저에게 손을 내밀고 있는 성자 잭에게 고개를 가로저어 보였다.
“그리고 우리는 성자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성자님과 성녀님이-”
버나드 경의 손가락이 어둠 속 한편을 가리켰다.
“저렇게 만드시지 않았습니까?”
가장 찬란하게 빛난다는 평을 들었던 곳.
서대륙 최대 태양신 교단.
그 교단이 황폐하게 변해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보였다.
동시에 탑주 로브를 입은 자가 앞으로 나섰다.
“성자님, 악수는 저와 나누시면 됩니다.”
고집스럽고 괴팍한 얼굴의 탑주. 그가 한숨과 함께 갑갑하다는 듯 성자 잭을 바라봤다.
그 모습에 묘족 기사 렉스 경이 슬그머니 다가가 잭의 뒤에 섰다.
버나드 경과 탑주, 그리고 성자 잭과 렉스 경. 네 사람이 대치했다.
-인간! 저렇게 두어도 되나?
그 모습을 내려다보던 케일의 귓가로 라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인간! 성자가 위험할 수도 있다! 성자는 착한데 맹하다! 인간, 너도 알잖나? 차라리 정신 나간 소드 마스터를-
열성적으로 외치던 라온의 목소리가 멈췄다.
“누가 맹해?”
-…응?
“누가 맹하냐고?”
-…그야, 성자가 맹하다! 아닌가?
케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케일 님.”
최한이 다가오며 걱정을 내비쳤다. 그 뒤에 다크엘프 타샤가 있었다.
케일은 그 둘을 쳐다보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여긴 쟤 집이야.”
-응?
“네?”
태양신 쌍둥이 잭과 하나.
그들은 서로 반대 성향만을 모아놓은 것 같아 보였다.
치유력을 지니고 순한 성격의 잭.
전투 재능을 가졌으며 공격적인 성향의 하나.
그런데 말이다.
“2년 전까지 제국 태양신 교단에서 행사가 몇 개였을까?”
“케일 님, 그게 무슨-”
케일은 최한을 돌아보지 않고 이어 말했다.
“아마 엄청 많았을 거다.”
서대륙 최대의 교도가 있는 모고르 제국의 태양신 교단.
그곳에서 교황과 성자, 성녀는 수많은 의식과 행사를 치렀을 것이다.
“어쩌면 황태자보다, 황제보다 더 사람들 앞에 자주 서야 했을 거다.”
특별할 때에만 모습을 비추는 황제보다 더 자주 제국민들에게 다가갔을 사람.
“잭은 이 제국 안에서는 강해.”
맹하다고?
그렇게 보일 수도 있었다.
“순하고 착하지. 성자 잭은.”
어릴 적부터 교황에게 억압받고 학대를 받으며 컸음에도 착하게 컸다.
아무것도 몰라서 그럴까?
천만에 말씀.
“보통내기가 아니야.”
다크엘프 타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나는 신성력이 없습니다. 하지만 성자 잭은 반쪽이라도 신성력이 있지요.”
최한은 케일을 보던 시선을 돌려 타샤를 바라봤다.
타샤는 팔짱을 낀 채로 성자 잭을 바라보고 있었다. 묘한 표정이었다.
“태양신의 힘을 이은 자는 어둠의 속성을 지닌 종족과 인간을 무조건 죽여야 합니다.”
음.
최한의 입에서 침음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타샤는 웃었다.
“죽이지 않고는 못 견뎌냅니다.”
그러나 일순간 미소가 사라졌다.
“왜냐면 신의 말씀이기 때문이지요. 마치 본능과 같죠.”
왜 왕세자 알베르가 제국에 가기 전 케일에게 다크엘프 도시를 방문해 보호 팔찌를 구해오라고 했는가?
모두 태양신의 힘을 이은 성자와 성녀, 정확히 말하면 성자 잭을 피하기 위함이었다.
최한의 표정이 묘해졌다.
한 가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짱돌 저택에 온 이후, 성자 잭이 한 번이라도 메리나 다크엘프에게 날을 세운 적이 있었던가?
없었다.
적어도 최한은 낌새도 느낀 적이 없다.
티도 안 났다.
그게 쉬울까?
최한의 깨달음이 케일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성자 잭의 머릿속에서는 본능이, 신이 수천, 수만 번 말하고 있을 거다.”
저 다크엘프를 없애라.
메리를 정화해라.
네 동생을 죽여라.
“하지만 그는 아무도 죽이지 않았고, 오히려 다친 자들을 낫게 하는 힘만 사용하고 있지.”
본능을 억누르는 사람이다.
맹하다고?
착한 것과 맹한 것은 다르다.
순한 것과 우유부단한 것은 다르다.
“무력은 떨어질지 모르나, 심지만큼은 누구보다도 강할 거다.”
케일은 버나드 경, 탑주 로브를 입은 자와 마주한 성자 잭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최한, 라온. 이번 싸움에서 성자 잭도 늘 우리와 함께였다.”
라온과 최한의 시선이 케일과 타샤를 따라 아래로 향했다. 그 순간, 그들은 눈을 감는 성자 잭이 보였다. 동시에 케일이 입을 열었다.
“내려가도록.”
타샤와 최한이 빠르게 종탑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
그 순간, 케일은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바라봤다. 비행선과 함께 밤의 어둠이 담겼다.
그리고 성자 잭 또한 어둠을 마주하고 있었다.
“성자님?”
버나드 경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럼에도 성자 잭은 눈을 감고 있었다.
그는 어둠 속에서 장면들이 하나하나 스쳐 지나갔다.
검게 변한 정글 7구역의 나무들.
땅을 뒤덮은 그것들을 본 순간, 두 손이 떨렸다.
그래서 마주 잡아야 했다.
본능이 말하고 있었으니까.
정화해라.
없애라.
멸해라.
치유력밖에 없는, 힘없는 제 몸뚱어리로 부딪혀 나무들을 모조리 없애라고, 본능이 그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건 마치-’
마치 자신의 동생 하나가 네크로맨서 메리에게 치료를 받았던 그때와 같았다. 제 본능이, 신의 뜻이 저것들을 없애길 원했다.
그러나 잭은 보았다.
하얗게 변하는 나무들과 메리, 다크엘프, 그리고 그 나무들 사이로 내리쬐는 태양빛을.
그때 처음,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나의 목소리였다.
‘저것이 빛이다.’
케일이 하는 행동을 보며, 저것이 선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많았다. 그는 다른 일행에게서도 선을 많이 보았고, 덕분에 깨달았다.
하지만 이번에 자신이 낸 목소리의 의미는 그 깨달음과 달랐다.
“할 수 있다.”
저런 빛을 만드는 일은.
“성자님, 무슨 말씀이십니까? 대화 중에-”
버나드 경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성자 잭은 천천히 눈을 떴다.
고룡 에르하벤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정말로 리치라면 자네가 정체를 알아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냉정히 들릴지 모르나, 자네 정도의 실력으로는 그저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 정체를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네.’
버나드 경.
성자 잭은 제국에 있을 적 종탑의 연금술사들과는 마주할 일이 거의 없었다. 성자를 만날 수 있는 자는 제국의 고위직이나 수뇌부뿐이었으니까.
그러나 버나드 경은 만난 적이 있었다.
늘 황제의 곁에 있었으니까.
‘하지만 정체를 알아낼 방법이 있지.’
에르하벤이 말했다.
정체를 밝힐 방법이 있다고.
그렇다면 진실을 밝혀내면 된다.
밝히면 된다.
빛을 밝히면 된다.
그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
“성자님.”
잭은 버나드 경의 얼굴이 보인 순간, 한 발을 내디뎠다.
‘잭, 네 치유력은 태양신의 힘이지.’
나는 약하다.
그러나 약하지 않다.
고룡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닿아라.’
다시 한 걸음 더.
잭은 앞으로 달려들었다.
‘리치와 닿아라.’
갑작스럽게 잭이 달려들자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성자님!”
“갑자기 이게 무슨!”
묘족 렉스 경이 황급히 잭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나 당황한 렉스의 손이 조금 느렸다.
쾅!
성자 잭, 그는 버나드 경과 부딪쳤다.
로브 천 너머로 단단한 갑옷이 느껴졌다.
아팠다.
“…성자-”
버나드의 눈동자가 일그러지며 잭을 밀치려는 순간, 잭은 씨익 미소를 그렸다.
원래의 그라면 이렇게 들이받지 못한다.
언제나 위엄과 성스러움을 챙겨야 하는 성자.
그러나 그는 이미 동료들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
때로는 달려들어야 한다.
그는 입을 열었다.
그리고 목청껏 외쳤다.
“문을 열어라!”
그 외침과 함께 사람들은 금빛을 보았다.
동시에 어떤 소리가 들려왔다.
끼이이-
끼이이-
문이 열리는 소리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갑작스럽게 터진 빛만이 보였다.
거대한 빛의 파도가 사람들을 덮쳤다.
“아, 아-”
누군가는 무릎을 꿇었다.
성자 잭.
그에게서 치유력을 머금은 거대한 빛이 흘러나왔다. 은은하게 빛나는 것과 달리, 마치 태양이 나타난 것처럼 눈이 부셨다.
반쪽짜리지만.
그는 치유력만큼은 최고였다.
에르하벤은 잭에게 말했다.
리치와 닿으면.
‘치유력을 써. 태양이 담겼으니까.’
어둠의 속성에게 가장 치명적인 속성, 태양.
잭은 저를 덮치는 손을 보았다.
“커헉!”
잭은 신음을 터뜨렸다.
그의 목덜미를 쥔 손이 보였다.
“아, 아니!”
“저럴 수가!”
서서히 금빛이 사라지며 한 광경이 보였다.
성자 잭이 공중에 떠 있었다.
그의 목덜미가 누군가에게 잡혀 있었다.
“버, 버나드 경이 왜!”
“저길 봐! 버나드 경 손을 봐!”
버나드 경의 손이 검게 변해갔다. 잭은 제 목덜미를 쥔 버나드의 손을 잡았다.
금빛이 머금어진 잭의 손이 닿자, 타는 소리가 들려왔다.
치이이익-
버나드의 피부가 탔다.
검게 변해갔다.
성자는 일그러진 버나드 경의 얼굴이 보였다.
“…이 새끼가-”
성자에게만 들릴 버나드의 낮은 욕지거리에 성자는 웃었다.
이런 욕은 면전에서 처음 들어보았지만, 진중하던 수호검의 얼굴이 일그러지고 그의 눈동자가 점점 검게 변해가는 모습에 잭은 웃었다.
“…반쪽짜리 주제에, 감히!”
버나드의 타들어가던 손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갔다. 잭의 치유력이 버나드 경에게 끼치는 영향력이 점점 줄어들었다.
그 순간, 잭은 웃으며 말했다.
“얼른 와.”
“뭐?”
버나드가 반문했을 때, 문이 열렸다.
성자의 명령으로 문이 열렸다.
끼이이익-
끼이익-
사람들의 시선이 두 곳으로 향했다.
하늘, 그리고 땅.
하늘에서 비행선의 문이 열렸다.
그곳에서 하얀 뼈로 만들어진 새가 나타났다.
거대한 새 수십 마리가 날갯짓을 하며 제국 수도 하늘 곳곳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제국민들은 그 하늘을 가리켰다.
“…저건 영상 속!”
“성기사! 성기사다!”
백골새의 위.
하얀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검을 들고서 하늘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리고 하나둘, 연금술 종탑 하늘 위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땅.
끼이익- 쾅!
사람들이 고개를 돌렸다.
굳게 닫혀 있던 연금술의 종탑 정문이 열렸다. 문 안으로 어둠이 보였다.
하지만 그 어둠을 박차고 나오는 이가 보였다.
“저, 저분은!”
누군지 못 알아본 이들이 태반이었지만, 몇몇은 그 사람의 정체를 알아채고 눈을 크게 떴다.
그 순간 버나드 경은 잭이 웃으며 하는 말을 들었다.
“왔구나.”
동시에 버나드 경은 성자 잭을 손에서 놓아야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제길!”
금빛과 검은색이 뒤섞인 오러가 버나드 경을 향했다.
소드 마스터 하나.
검은색 핏줄로 뒤덮인 얼굴을 드러낸 그녀가 환하게 웃었다.
“안녕?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
태양신의 쌍둥이가 모두 제국에 모습을 드러냈다.
동시에 금빛과 검은색이 뒤섞인 오러가 내리쳤다.
콰아아아앙!
치유력으로 가득한 빛이 흘러나오던 자리.
그 중심에 하나의 검이 내리꽂히며 굉음이 울려 퍼졌다.
그 자리는 파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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