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337
336화.
케일은 에르하벤 입가의 핏줄기 외에도 다른 상처가 보였다.
폭발에 휘말린 탓인지 에르하벤의 상의가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그 틈으로 등과 가슴, 배, 온갖 곳에 드리운 흔적들이 보였다.
오래된 상처였다.
‘…용이 상처를 지녔다고?’
케일은 문득 최한과 고래족 후계자 위티라가 떠올랐다. 그들도 크고 작은 상처들이 모두 있었다.
강자라고 평해지는 존재들. 그런 이들도 모두 상처를 가지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성장하니까.
처음부터 완전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차츰차츰 성장하는 동안, 그들의 몸에는 여러 이유로 흉터가 새겨지는 법이었다.
김록수의 온몸이 흉터로 흉측하게 뒤덮였듯이.
“금 용아! 푸읍!”
케일은 제 품에서 버둥거리는 라온의 머리를 감싸 안으며 입을 막아버렸다.
“저 꼬맹이는 이런 순간에도 저렇게 부르고 싶을까?”
어휴.
케일은 한숨으로 들썩이는 에르하벤의 어깨가 보였다. 언제 분노에 가득 찼냐는 듯 평온한 드래곤의 목소리에 케일은 툭 던지듯 말했다.
“에르하벤 님, 제가 언제 에르하벤 님 애가 된 겁니까?”
“금 용아! 나는 애 아니다, 위대한 라온 미, 푸읍!”
케일은 그냥 라온의 입을 틀어막으며 더 통통해져서 무거운 몸을 안아 들었다. 사과 파이는 살 때마다 지가 더 먹는 것인지, 아주 무거워졌다.
“…아이고, 내 팔자야.”
파괴적이게 아름다운 얼굴이 슬쩍 뒤돌아 케일과 어느새 투명화를 푼 라온을 쳐다보더니, 노인의 얼굴로 바뀌어 한탄을 내뱉었다. 그러고는 다시 정면으로 시선을 돌리며 무뚝뚝하게 말했다.
“물러나 있어.”
에르하벤은 정면에 보이는 하얀 별을 무감각한 눈빛으로 응시했다. 특히 하얀 별의 손에 들린 검으로 시선이 향했다.
불의 속성과 자연 재해의 힘이 담긴 검.
저것이 아마 진짜 용잡이의 재해의 검이리라.
“오랜만이네.”
방심하고 있다가 얻어터진 건 오랜만이었다. 그리고 얻어터지며 깨달았다.
아니, 처음에 자신이 던진 수십 개의 빛 화살을 물의 장막으로 소리 없이 가볍게 막아선 순간 깨달았다.
저놈은 내가 상대해야 한다.
우우웅-
에르하벤의 주위에 어느 때보다도 화려한 백금빛 입자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주위에 공기가 진동할 만큼 거대한 마나가 에르하벤을 중심으로 소리 없이 주변을 장악해 가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 또한 오랜만이었다.
오랜만에 에르하벤은 제 무력을 온전히 드러냈다.
‘에르하벤, 당신은 너무 오만해. 나도 오만하지만 나보다 더한 듯?’
이제는 죽은 용인 올리엔의 목소리가 귓가에 안개처럼 맴돌았다.
‘너무 지 잘난 맛에 사는 거 아냐?’
맞다.
에르하벤은 지 잘난 맛에 사는 오만한 용이다.
대개의 용이 그러하듯이 오만하고 또 오만했다.
그러나 에르하벤은 스스로 오만해도 되는 이유가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에르하벤, 당신은 젊었을 때 타고난 싸움꾼이라고 불렸다며?’
나이가 든 후에는 조용히 엘프들과 세계수를 도와주고, 가끔씩 어린 용들의 1차 성장을 도와주며 생을 차분히 보냈지만 에르하벤은 싸움꾼이었다. 과거에 용들 사이에서 그렇게 불렸다.
그렇지만 사실 ‘완전히 타고나지는’ 않았다.
먼지 혹은 가루라는 속성을 얻고 비웃음을 당했을 때, 그는 제 속성의 강함을 믿고 연습하고 노력했다.
그렇게 연습해서 발전한 속성으로 다른 용들의 앞에 섰을 뿐이었다.
에르하벤은 여전히 제 뒤에서 느껴지는 기척에 담담하게 말했다.
“물러나라.”
“에르하벤 님.”
케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르하벤은 그 목소리에 고개를 살짝 흔들며 무심한 목소리를 흘려보냈다.
“내가 한다.”
“금 용 할배!”
라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케일 다음은 라온이었다. 에르하벤은 한숨을 내쉬었다. 말년에 이게 무슨 고생이란 말인가.
그러나 오랜만에 제대로 싸울 생각에, 에르하벤은 들끓는 제 몸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기에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케일, 네가 제대로 챙겨.”
무엇을 챙겨야 하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명확했다.
케일은 은빛 방패를 다시 펼치며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발에 닿는 감각에 바람의 소리를 풀었다.
“…야.”
“뭐?”
케일은 메리의 백골 용에 올라타, 저를 부르는 하나에게 뚱한 얼굴로 되물었다. 하나는 어느새 투명화가 풀려 1m 20㎝ 정도 되어 보이는 용을 품에 안고 있는 케일을 쳐다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하늘을 바라봤다.
끼이이이-
검은 구름이 여전했다.
하나는 고개를 숙여 케일을 바라봤다.
“괜찮을까?”
저 검은 구름도, 저 하얀 별도 모두 괜찮을까?
하나는 여전히 무덤덤한 케일의 얼굴이 보였다. 케일은 바둥거리는 라온을 더 품에 가두며 말했다.
“안 괜찮으면 어쩔 건데?”
케일의 시선이 검은 구름을 지나 에르하벤에게로 향했다.
케일은 안 괜찮은 상황을 수없이 많이 겪어보았다. 그럴 때마다 해야 할 생각은 단 하나였다.
상황이 안 괜찮다면.
“괜찮게 만들어야지. 반드시.”
그러면 되는 일이다.
무엇이든, 상황은 바뀔 여지가 존재하는 법이었다.
케일은 에르하벤 어깨 너머로 고룡처럼 입가에 흘러내리는 피를 닦아내는 하얀 별이 보였다. 그의 어깨가 아주 지쳐 보였다.
“역시 현존하는 용 중에 제일 오래 살아서 그런가? 꽤 세네.”
그러나 지쳐 보이는 것과 달리 그의 표정은 꽤 쾌활했다. 그는 에르하벤 주위로 모여드는 백금빛 가루들을 보며 말했다.
“매번 궁금했었어.”
“무엇이 궁금했지?”
에르하벤 역시 무덤덤하게 대꾸했다.
그 와중에도 케일은 에르하벤의 눈짓을 받았고, 곧바로 아래를 향해 수신호를 보냈다.
곧바로 다크엘프 타샤가 아래로 내려가, 다른 다크엘프들과 함께 얼마 안 남은 사람들을 데리고 연금술 종탑에서 멀어졌다.
더불어 비행선 위의 로잘린도 비행선을 검은 구름 밖으로 이동시킬 것을 지시했다.
고룡은 도망칠 시간을 벌어주는 것이다.
지금부터 벌어질 싸움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다칠 수 있었으니까.
“우리도 가?”
하나의 물음에 케일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직.”
케일은 아래를 내려다봤다. 최한을 지나치고, 메리가 검은 실을 움직여 탑주 버나드, 아니, 남겨진 검은 뼈를 모으고 있었다.
그 옆의 성자 잭과 렉스 경도 보였다. 케일은 렉스 경에게 손짓했다. 그 신호에 렉스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들도 도망갈 것이다. 혹은 스스로를 방어할 방법을 찾을 것이다.
그것을 케일도, 에르하벤도, 그리고 하얀 별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하얀 별은 느긋했다. 마치 도망가는 이들은 상관없다는 태도였다. 그는 불의 검을 어깨에 걸치며 입을 열었다.
“내가 궁금했던 건 말이지.”
하얀 별은 아주 오래전을 떠올렸다.
정말 오래전부터, 그가 첫 번째 생을 살았을 때부터 궁금했던 일이었다.
“용은 천 년을 살아.”
밝은 갈색 눈동자에 찬란하게 빛나는 에르하벤이 담겼다.
“태어날 때부터 강했던 용들이 천 년을 사는 거야. 이 세상의 모든 생명체 중에서 가장 오래도록.”
가장 강하게 태어나고, 동시에 가장 오래 사는 존재.
“그러면 얼마나 강해지겠어?”
이 얼마나 불공평한 힘과 시간의 분배란 말인가.
하얀 별. 용잡이 가문에 태어나 자라난 청년은 그 사실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드래곤 슬레이어. 용잡이들은 인간의 수명을 지녔지. 그래서 오래 살아봤자 백 년 근처야.”
용잡이는 인간으로 태어나고, 처음부터 그리 강하지 않았다. 그리고 수명도 다른 수인족이나 용, 엘프, 드워프에 비해 짧았다.
“그런 자들이 짧은 수명과 약한 기반 아래에서 성장해 결국 용을 사냥할 만큼 강해져. 놀랍지 않아?”
하얀 별의 입가에 비틀린 미소가 지어졌다.
“그러나, 그렇게 강한 우리는 용을 모두 정복할 수 없었지.”
놀라울 정도로 성장하는 용잡이.
드래곤 슬레이어 가문의 가주 단 한 명. 그 세대에 단 한 명만 존재하는, 용과 대등할 수 있는 인간.
그 인간은 용을 정복할 수 없었다.
“왜?”
답은 간단했다.
하얀 별은 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했다.
“수명이 짧으니까.”
인간은 수명이 짧아서 강해질 수 있는 시간에, 성장할 수 있는 시간에 한계가 존재했다.
이 얼마나 불공평한가.
단지 신체만이 강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오래 살아온 지혜. 오랜 시간이 만들어준 경험과 힘의 숙련도.
용잡이는 결코 천 년을 산 용의 경험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그래서 궁금했었어.”
아니, 선택했다.
하얀 별은 저를 쳐다보는 고룡에게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만약 용잡이가 용의 수명만큼 존재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과연 강해질까?”
그 작은 의문에서, 어쩌면 불복에서 시작된 스스로의 존재에 대한 불만. 그 불만이 쌓이고 쌓여 만들어진 상황에서 하얀 별은 환생을 택했다.
자연에게 반역자라 불리던, 그러나 그 힘만 따지면 지배자가 되어야 옳았던 드래곤 슬레이어.
하얀 별은 자신의 운명을 부수고 싶었다.
물론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떠올리고 싶지 않을 정도로 수많은 것들을 희생시키며 얻은 기회였다.
“그래서 나는 용만큼 살 수 있는 방법을 택해서, 그 삶을 살며 차근차근 하나씩 하나씩 죽였어.”
하얀 별의 미소가 짙어졌다.
“용들을.”
약한 용부터 강한 용까지.
새로이 태어나는 횟수가 늘수록 점점 더 강한 용을 찾아내어 죽였다.
새로 태어나면 새로이 젊은 육체를 얻을 수 있었고, 잊히지 않는 기억으로 경험과 연륜은 계속해서 쌓였다.
그런 그를 누가 이기겠는가?
아니, 이겨도 결국에는 새로 태어난 그가 죽였다.
그 과정에서 용 혼혈과 가짜 드래곤 슬레이어 시렘이 만들어졌다. 천 년의 세월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하얀 별에게 에르하벤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의문이 해결되었나?”
하얀 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제 그 의문 따위는 자신이 준비해 온 일들에 비하면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글쎄, 어릴 적 가졌던 의문이라 해결될지는 잘 모르겠는데?”
대륙 유일하게 천 년을 산 용, 에르하벤. 그는 저를 겨누는 불의 검을 보며 물었다.
“만약 의문이 해결되면?”
하얀 별은 상상만으로도 유쾌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는 자신이 천 년여간 준비했던 두 가지 일을 떠올리며 답했다.
“그 뒤에는 케일을 용잡이로 만들면 되겠지. 그리고 내가 원하던 바를 손에 넣으면 돼.”
그 말과 함께 하얀 별의 검에서 불길이 치솟기 시작했다.
마치 용암과 같은 불이 거대한 검날을 만들어갔다.
휘이이이-
동시에 바람이 그 검에 머물렀다. 마치 폭풍과 용암이 뒤섞인 것 같았다. 자연 재해들이, 그 공격적인 자연의 속성들이 뭉치고 있었다.
“네가 원하는 바가 무엇이지?”
그 반면에 질문을 던지는 에르하벤의 곁은 어느새 빛으로 둘러싸인 채 고요했다. 어떠한 소리도 없이 그저 존재하고만 있었다.
“내가 원하는 거?”
하얀 별의 입가에 미소가 사라지며 피곤에 찌든 입가가 자리했다. 그 입가가 열망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다.
“반역자가 아니라, 지배자가 되는 것이지.”
지배자.
그 단어에 케일은 순간 저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갔다.
쿵. 쿵.
심장이 갑자기 뛴다.
백골 용 위에 올라타 있던 케일은 날뛰기 시작하는 제 몸 안의 힘에 소름이 돋았다.
그때, 케일의 머릿속에 에르하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드래곤 슬레이어의 힘은 아름다운 힘이다.
하얀 별과 싸울 준비를 마친 용은 케일에게 한 가지를 알려주고자 했다.
-드래곤 슬레이어는 반역자라 불렸지. 동시에 과거에 용들은 따로 부르는 이름이 있었다.
용들은 용잡이를 싫어하면서도 좋아했다.
그런 용들에겐 드래곤 슬레이어를 부르는 오로지 그들만의 이름이 존재했다.
-스스로를 극복한 자.
에르하벤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아름다운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지.
케일은 머릿속에 전해지는 에르하벤의 말과 그가 입 밖으로 내뱉는 말을 함께 들을 수 있었다.
“지배자는 어떻게 얻으려고?”
백금빛의 가루가 천천히 사방으로 흩날리기 시작했다.
마치 꽃가루처럼, 소리 없이, 바람도 없이 흩어지는 가루들.
그 가루의 중심에 선 에르하벤은 창을 앞으로 겨눴다. 그 창에 불의 검이 마주 겨눠지며, 하얀 별은 답했다.
지배자가 어떻게 되겠느냐.
답은 간단했다.
“하늘이 되려고.”
그 순간, 케일은 몸을 웅크렸다.
“허억.”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쿵. 쿵. 쿵. 심장이, 온몸이 요동쳤다.
“인간, 아프나?”
속삭이는 라온의 다급한 목소리에 케일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픈 게 아니다.
“힘드나, 인간?”
힘든 것도 아니다.
케일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저 속이 울렁거렸다. 마치 빠른 속도에 휘말려 흔들리는 것처럼 온몸이 울렁거렸다.
깊이 숨을 내쉬는 그의 머릿속에,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기 있구나.
고대의 힘.
그 힘의 주인들이 오랜만에 말했다. 이번에 입을 연 존재는 거칠게 말했다.
-저 새끼가 하늘의 힘을 가지고 있었어.
청아한 목소리가 거친 말을 내뱉었다.
하늘을 잡아먹는 물. 그녀가 케일의 내부 안에서 들끓고 있었다. 물 속성의 힘이, 케일의 혈액을 타고 흐르는 힘이 날뛰고 있었다.
분노를 참지 못하겠다는 듯 날뛰는 힘. 그 힘의 주인이 울부짖듯이 말했다.
-모두를 죽인 놈의 힘이, 그 힘이 다시 나타났어!
모두를 죽였다고?
케일의 표정이 굳었을 때.
-나.
무서운 짱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먹보, 도둑, 짠돌이.
방패, 바람, 불벼락.
-우리가 죽을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던 힘이지.
그 넷을 죽게 만든 힘이라고?
케일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새벽이 밝아와야 할 시간.
끼이이이이-
그러나 새벽은 없고 검은 구름만이 보였다.
연금술 종탑과 그 인근을 가득 채운 구름. 기괴한 울음소리만을 토해내는 하늘.
하늘 속성의 고대의 힘이라.
케일은 잘 상상이 되지 않았다.
-하늘. 모든 것들을 내려다보는 힘이지. 모든 것은 하늘 아래에 존재한다는 빌어처먹을 생각을 지닌 힘. 세상에 나타나서 안 될 그 빌어먹을 힘이 다시 나타났구나.
그러나 짱돌의 심각한 목소리만으로도 어느 정도의 힘일지 가늠이 되었다. 절박하게 외치는 하늘을 잡아먹는 물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번엔 내가, 우리가 잡을 수 있어! 이번에는 가능할지도 몰라!
절박함과 작은 희망이 담긴 목소리.
-나는 이제 이름대로 하늘을 잡아먹을 거야!
계속해서 외쳐대는 하늘을 잡아먹는 물.
하지만 그 목소리는 짱돌의 목소리가 들린 순간 멈췄다.
-도망가라.
처음이었다.
이토록 진지한, 무섭게 느껴질 만큼 엄한 짱돌의 목소리는.
-아직은 안 된다.
아직은 안 된다.
지금은 안 된다.
-네놈은 아직 약하다. 조금 더, 조금 더 성장해야 한다.
문득 케일은 하얀 별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참. 케일, 고대의 힘도 제대로 쓸 줄 모르는구나.’
짱돌이 말한 약하다는 단어와 함께 그 말이 떠올랐다.
약한가?
모두를 놀라게 만들 정도의 힘을 쓰는 내가?
그런데 그 힘이 제대로 다루지 못한 힘이라고?
복잡해지던 케일의 머릿속에 정리되는 말이 들려왔다.
-희생하지 마라.
짱돌의 담담한 목소리였다.
-네 편도 아직 힘이 부족하다.
케일은 제 일행을 떠올렸다.
에르하벤과 라온, 최한, 메리. 많은 이들이 있었다. 이들로도 부족하다고?
그러나 짱돌의 가라앉은 목소리가 이어진 순간.
-그리고 나처럼 외면해 희생당하게 만들지 마라.
희생당하게 만들지 마라.
그 말에 케일은 저도 모르게 입이 열렸다.
“도망가!”
최한, 메리, 잭, 하나. 모든 이들이 그를 쳐다봤다.
고룡과 하얀 별이 대치하는 고요한 순간.
“도망가라!”
케일은 목에 핏대를 세우며 외쳤다.
“…케일?”
그 행동에 가장 놀란 이는 에르하벤이었다. 제가 알던 케일과 달랐으니까.
하지만 케일을 쳐다보던 에르하벤의 시선이 다시 정면으로 향했다.
“역시 고대의 힘을 많이 지녀서 그런가?”
하얀 별이 웃으며 말했다.
“감이 좋은데?”
우우우웅-
진동음이 들려왔다.
에르하벤은 그 진동음이 들린 곳을 쳐다보았다. 믿을 수가 없었다.
“…저건-”
하늘이 진동하고 있었다.
아니, 거칠게 제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케일은 하늘을 향해 손을 뻗는 하얀 별이 보였다. 하얀 별은 자신에게 반응하는 하늘을 보며 말했다.
“버나드, 내 충직한 수하여.”
리치의 심장 구슬에서 퍼진 검은 구름.
“네 힘으로 내가 파괴해 주마.”
검은 구름.
그것이 하얀 별에게로 향했다.
“제국 수도는 버린다.”
하얀 별이 그리 말하는 순간, 검은 구름이 일렁였다.
케일은 미간을 찌푸렸다. 조용하던 짠돌이, 파괴하는 불이 말했다.
-하늘은 아직 이기지 못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지금 당장 케일과 고대의 힘들이 할 수 있는 일.
“…정화.”
-정화는 가능하다.
정화할 것이 무엇인가?
말하지 않아도 보였다.
하얀 별을 향해 가는 검은 구름.
-네 곁엔 정화의 수단이 많다.
케일은 자신 곁에 있는 수단을 떠올렸다. 그의 눈동자에 이채가 흘렀다.
“하나.”
“어?”
하늘의 구름이 요동치는 상황을 멍하니 쳐다보던 하나에게 케일은 빠르게 물었다.
“이 백검으로 검은 구름을 없앨 수 있나?”
“…구름?”
하나는 잠시 멈칫했다가 케일의 충혈된 눈동자와 핏대를 세우며 외치던 목소리를 떠올리며 얼른 답했다.
“모르겠어. 다만 파괴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내놔.”
“…어?”
하나가 멍하니 되물었지만 케일은 곧바로 그 백검을 보며 손을 뻗었다.
“쓸 데가 있어?”
“어. 있어.”
하나는 망설이다가 쓸 데가 있다고 말하는 케일에게 백검을 쥐여주었다. 그리고 옆구리에 찬 자신의 검을 뽑아 들려 했다. 뒤따를 작정이었다.
그러나 이는 실패했다.
“자.”
“어?”
하나는 제 품으로 넘겨진 존재를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케일은 라온을 하나에게 안겨줬다. 이번 일에 라온은 혹시라도 하얀 별과 부딪치면 안 되니까. 위험할 수도 있었다.
“뭐냐? 인간?”
“뭐야?”
케일은 당황한 표정으로 뭐냐고 묻는 하나와 라온에게 답하는 대신, 바람의 소리를 발에 머금으며 위로 떠올랐다. 그리고 둘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도망가.”
그 순간, 짱돌의 한숨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희생하지 말라니까.
그리고 케일은 온몸을 감싸는 단단한 힘을 느꼈다.
짱돌이 그의 몸을 보호하기 시작했다.
파지직, 파직.
백검을 쥔 오른손, 그리고 파괴하는 불을 머금은 왼손.
케일의 그 모습을 본 에르하벤이 거대한 백금빛 바람을 일으키며 하얀 별을 향해 쏘아나갔다.
-케일, 물러나라. 나로 충분하다, 아니, 내가 해낸다.
내가 해낸다.
저 말에 담긴 무게를 모를 케일이 아니었다.
짱돌은 하늘 속성은 용도 이기지 못한다고, 부족하다고 말했다.
그걸 알고서 내버려 두라고?
“장수하셔야죠.”
케일은 고룡의 말에 짧게 답하며 하늘을 향해, 검은 구름을 향해 솟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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