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338
337화.
하얀 별에게로 향하던 고룡 에르하벤의 몸이 잠시 멈칫했다.
장수하셔야죠.
그 말에 에르하벤은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천 년. 너무 오랜 시간을 살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쳤다. 무료했다. 물론 위험한 일이 없어서 무료하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가끔씩 의문이 들었었지.’
하얀 별이 자신의 삶에 대해 의문을 지녔듯이, 에르하벤도 자신의 삶에 대해 의문을 가진 적이 있었다.
‘왜 용은 천 년 가까이를 사는 걸까?’
무엇 하러?
뭐 좋으라고 혼자 오래 산단 말인가?
에르하벤이 천 년을 살며 가장 많이 본 광경 중에 하나가 죽음이었다.
태어나면 어느 순간 죽는다. 그것은 당연한 순리였다. 이를 거부할 생각은 없었지만, 죽어간 이들을 지켜보는 것은 꽤 좋지 못한, 힘겨운 경험이었다.
에르하벤은 그래서 이 세상이 용을 독선적이고 오만하며 홀로 있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혼자여야, 남들과 섞이지 않아야 그런 경험을 덜할 테니까.
어쩌면 에르하벤이 세계수와 엘프들을 돌본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는 일인지도 몰랐다. 세계수는 죽지 않는 나무였고, 또 오래 사는 종족 중 하나가 엘프였다.
“말년에 이리될 줄은 몰랐는데.”
에르하벤은 슬그머니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감추며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눈앞에 하얀 별이 보였다.
서늘하게 가라앉은 눈빛의 고룡은 검은 구름을 향해 나아갔던 케일을 떠올리며 단 한 가지만을 생각했다.
‘살려야지.’
지금 이 녀석들을 살려야 한다.
그것이 중요했다.
에르하벤은 하늘로 뻗어진 하얀 별의 손을 향해 장창을 던졌다.
“어이구, 내 팔을 잘라 버리게?”
하얀 별은 피식 웃으며 다른 손으로 물의 장막을 펼쳤다.
콰아앙!
굉음과 함께 백금 장창과 물의 장막이 부딪쳤다. 백금빛이 폭발하며 순간 사람들의 시야가 하얗게 가려졌다.
그리고 그 백금빛이 사라진 순간, 하얀 별의 눈동자가 살짝 커졌다.
“어, 자르게. 오래 산 친구.”
물의 장막 바로 그 코앞. 에르하벤이 나타나 있었다. 그의 왼손이 장막에 부딪쳤다.
백금빛 입자로 가득 찬 왼손과 푸르른 물이 서로 닿은 순간.
파스스-
소리는 없었다.
어떠한 소리도 없이 물이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그 장막을 꿰뚫고 에르하벤의 손이 하얀 별을 향해 뻗어졌다.
그리고 어느새 왼손에는 백금빛 장창이 새로이 들려 있었다.
하얀 별의 밝은 갈색 눈동자가 물을 뚫고 나오는 용의 눈동자와 마주쳤다. 인간의 것과 다른, 세로로 긴 동공을 지닌 금색 눈동자.
“…빌어먹게도 고룡답군.”
하얀 별이 다시 장막을 펼쳤던 왼손을 움직였고, 그때 에르하벤의 장창이 하늘로 향한 하얀 별의 오른손으로 던져졌다.
콰아아아아앙!
다시 한번 거대한 폭발음이 제국 수도를 뒤흔들었다.
“크윽!”
“윽! 도대체, 도대체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야?”
제국 수도 성벽 밖.
그곳에 모인 제국 사람들은 수도를 뒤덮은 검은 구름과, 그 아래 수도 중심부인 연금술 종탑 근처에서 싸우는 이들을 보며 두려움을 감추지 못했다.
혼란스러움은 이미 넘어섰다.
지금 보이는 전투의 폭발력만으로도 혼란보단 앞일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만이 남을 수밖에 없었으니까.
두려움에 이미 최대한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도망간 이들도 있었지만, 이 터전이 모든 것인 이들은 성벽 밖에서 웅크린 채 이 전투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버나드 경이… 리치이고.”
다시 볼까 무서웠던 검은 해골의 리치. 리치가 죽으니, 또 다른 이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 사람은 이제 하늘에 손을 뻗은 채 무언가를 벌이려고 했다.
고룡 에르하벤은 그 무언가를 알아채기 위해, 막기 위해 하얀 별의 오른손을 장창으로 찔렀다. 하지만 이는 물을 머금은 하얀 별의 왼손에 의해 막혔다.
“왜?”
하얀 별은 고룡의 장창을 잡은 채 저를 응시하는 이에게 태연하게 물었다.
“내 고대의 힘이 무엇인지 궁금해?”
에르하벤의 입이 열렸다.
“하늘이 우는군.”
그의 온 감각이 현재 하늘에서 움직이는 것들을 느끼고 있었다.
바람.
비.
벼락.
하늘이 만들 수 있거나 혹은 하늘에 존재하는 것들이 검은 구름을 향해 뭉쳤다. 고룡의 온몸에 소름이 돋게 할 만큼, 등 뒤가 쭈뼛쭈뼛 서게 만들 만큼 강대한 기운이 하늘에서 느껴졌다.
에르하벤은 이 고대의 힘이 무엇인지 대강 가늠이 되었고, 그 예상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이 고대의 힘은 속성이 하늘인가?”
“그래. 처음 들어보지?”
장창과 왼손이 계속해서 부딪쳤다. 그 와중에도 에르하벤은 하얀 별의 물음에 순순히 답했다.
“그래. 처음 들어보는군.”
하늘의 힘을 품은 고대의 힘이라니. 처음 들어보았다.
그러나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소름 돋는 이 와중에도 에르하벤은 새로이 느껴지는 감각에 입을 열었다.
“일부만 사용하려는 건가?”
바람, 비, 벼락. 지금 뭉치는 저 정도의 힘이 끝이 아닐 것 같다는 감각이 에르하벤에게 경고를 보냈다.
하늘.
그 이름에 담긴 힘은 겨우 이 정도가 아닐 것이라고. 지금 온몸에 소름을 돋게 만드는 이 힘이 모두는 아니라고.
천 년의 경험이 그에게 경고를 보냈다.
하얀 별은 미소를 그렸다.
“맞아. 전력을 다할 생각은 없어. 이 정도로 충분하거든.”
백금 장창과 물로 감싼 손이 부딪친 채로 대치했다. 누구의 힘도 밀리지 않는 팽팽한 상황.
그 상황에도 하얀 별은 여유롭게 에르하벤을 권태로운 눈빛으로 쳐다보았고, 에르하벤은 조금 굳은 표정으로 그를 응시했다.
하얀 별이 전력을 다하지 않는 이유.
에르하벤은 하얀 별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래서 담담하게 물을 수가 있었다.
“몸에 부담이 가서?”
순간, 하얀 별의 미소가 사그라졌다.
에르하벤은 그런 그를 보며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네 녀석도 케일처럼 고대의 힘을 여러 개 몸 안에 담아두고 있는 것 같은데. 과연 그게 몸에 부담이 안 될까?”
고대의 힘을 여러 개 소유할 시 그 속성들이 부딪쳐 몸에 무리를 주었다.
물론 소유자의 그릇이 어느 정도이냐에 따라 다르지만, 결국 고대의 힘을 사용할 때 그 충격은 소유자의 몸에 고통으로 전해졌다.
“물론 모든 속성들을 얻어서 균형을 갖추면 되지만.”
물, 불, 바람, 땅, 나무.
케일 헤니투스는 이제 속성을 모두 갖춰, 고대의 힘 속성 충돌의 영향에서 조금 벗어나 안정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에르하벤의 입가에 서서히 미소가 걸렸다. 그는 아까 전 자신의 장창에 부딪치고 난 후 입가에 피를 흘렸던 하얀 별을 기억하고 있었다.
“넌 아직 다 못 갖춘 것 같은데? 균형이 안 맞지?”
미소가 사라진 하얀 별에게 에르하벤이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너만 천 년을 산 게 아니야. 난 한 번뿐인 삶일지라도 천 년을 살았어.”
그 말과 함께 에르하벤의 등 뒤에서 거대한 파도가 일렁였다.
그것은 백금빛 입자로 뒤덮인 파도였다. 에르하벤은 힘을 아끼지 않을 생각이었다.
“전력으로 해야 할걸?”
고룡은 제 어깨를 넘어 치솟아 오른 파도를 향해 손짓했다.
“가라.”
거대한 백금 입자의 파도가 하얀 별에게로 향했다. 하얀 별은 저를 향해 오는 무지막지한 힘의 파도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그러다가 입꼬리를 올렸다.
“에르하벤, 나를 묶어두고 지키고 싶었나 보군.”
불의 검이 다시금 나타났다.
그 검이 금빛 파도를 마주한 채 내리그어졌다.
“아!”
밑에서 지켜보던 성자 잭이 탄식과도 같은 비명을 터뜨렸다.
금빛 파도를 자를 줄 알았던 검. 그 검에서 치솟아 오른 불은 금빛 파도를 향해 나아가지 않았다.
“…케일 공자!”
검에서 뿜어져 나온 불이 하늘로 오르고 있는 케일에게 부메랑 모양으로 쏘아져 갔다. 하얀 별은 그제야 미소를 그리며 백금빛 파도에 검을 겨눴다.
“케일 헤니투스의 고대의 힘은 나한테 져. 불완전하지.”
케일이 어떤 고대의 힘을 들고 나오든, 현재 하얀 별의 고대의 힘 어느 하나도 이길 수 없었다. 그러니 지금 케일이 무슨 짓을 하든, 하얀 별의 하늘 속성이 내뿜는 힘을 파괴하지 못한다.
“큰일이네? 안 가봐도 돼? 케일 헤니투스를 지키고 싶을 거 아냐?”
에르하벤을 향한, 피곤은 사라지고 어느새 흥미만이 남은 하얀 별의 눈동자. 그 눈동자에 피식 실소를 흘리는 에르하벤이 담겼다.
그 모습에 하얀 별이 멈칫했을 때.
콰아아앙!
하얀 별의 불이 무언가와 부딪치며 폭발을 일으켰다.
불과 함께 은빛 실드가 산산조각 나며 부서지고 있었다. 하늘로 향하던 케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하.”
그는 툭 던지듯이 말했다.
“왜 와?”
텅 빈 그의 주위를 3중 은빛 실드가 감싸 안고 있었다. 그리고 케일의 옆에 검고 통통한 용이 자리했다. 용은 날개를 파닥이며 당당하게 말했다.
“나는 내 마음대로 살 거다!”
케일은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절대로 떨어지지 않겠다는 듯 케일의 재킷 자락을 슬그머니 잡는 용의 오동통한 앞발이 보였다.
찡그린 얼굴의 케일이 이번에는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렸다.
“넌 왜 와?”
소드 마스터 하나. 그녀가 언제 멍한 표정이었냐는 듯 뚱한 얼굴로 툭 던지듯 말했다.
“너 바보냐?”
“뭐?”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바보냐는 말이 왜 나와?
케일이 황당해서 쳐다볼 때, 백골 용을 탄 하나가 케일 쪽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고는 케일 손에 들린 백검을 뺏어 들었다.
“검 쓸 줄 알아?”
“…….”
“이거 어떻게 쓰는 줄 아냐?”
“…….”
라온이 케일 대신 답했다.
“인간, 할 말 없다!”
맞다.
할 말이 없었다.
-난 수단이 물건이라고, 백검이라고 하지 않았다. 네 옆에 있는 동료도 포함된다.
짠돌이가 케일의 머릿속에 말했다.
“…하.”
케일은 한숨을 쉬는 저를 보며 피식 웃고 검을 고쳐드는 하나와 날개를 파닥이는 검은 용 사이에서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고개를 숙인 순간 어떤 광경이 보였다.
“이 정도 파도로 나를 어쩌려고?”
백금의 거대한 파도를 불의 검으로 천천히, 위에서 아래로 베어내는 하얀 별이 보였다. 그의 입가엔 피가 흐르고 있었지만, 소리 없이 마나의 파도를 베어내는 그의 힘은 놀라웠다.
하지만 케일은 갈라지는 파도보다 다른 것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싸우는 에르하벤과 하얀 별.
그들보다 더 밑.
땅에서 보이는 광경.
“…왜-!”
왜 도망을 안 가고!
케일의 미간이 팍 찌푸려졌다.
땅 위 연금술 종탑 광장.
그곳에 한데 모이는 최한, 메리, 잭, 렉스 경이 보였다. 더욱이 비행선은 어디다 두고 왔는지 광장에 있는 그들에게 비행 마법을 시전시켜 주는 로잘린이 보였다.
“내 참.”
케일은 헛웃음을 흘렸다.
“도망가라고 했더니-”
“그럼 너도 도망가라, 인간아! 너는 왜 안 가나!”
훅 치고 들어오는 6살이 다다다 내뱉는 말에 케일은 할 말을 잃었다. 그렇지만 그는 곧 정신을 차려야만 했다.
끼이이이-
검은 구름에서 흘러나오던 기괴한 울음소리가 끊겼다. 케일은 속도를 높였다.
“서둘러.”
불안감이 밀려왔다.
여전히 하얀 별은 에르하벤과 공방을 펼치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분명 에르하벤이 하얀 별의 불의 검을 꽤나 잘 막아내고 동시에 공격 마법도 잘 날리는 것 같았다.
그 순간이었다.
케일은 고개를 드는 하얀 별과 눈이 마주쳤다.
가면 사이로 드러난 눈.
그 눈꼬리가 휘었다.
에르하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두 도망가라!”
절박한 외침이었다.
동시에 에르하벤에게서 거대한 백금빛이 종이 위에 퍼지는 물감처럼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케일은 그 퍼져 나가는 빛에 신경 쓸 수가 없었다.
우우우웅-
검은 구름이 울음을 토해내고 있었다.
케일은 고개를 돌렸다.
“크윽, 큭!”
하나가 진동하는 백검을 든 두 손이 떨리는 것을 어떻게든 진정시키려 하고 있었다. 케일과 그녀의 시선이 마주치자 하나가 씨익 미소를 그리며 입을 열었다.
그 목소리가 떨렸다.
“…이상하네. 소, 손이 떨리는데?”
케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하나는 얼굴 가득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 시작은 검은 구름이 지금과 다른 울음을 토해냈을 때부터였다.
“인간! 검은 구름 안에서 이상한 게 느껴진다!”
라온이 케일을 보며 말했다.
“절망! 저 안에 절망이 있다!”
케일은 검은 구름 사이로 번쩍이는 빛이 보였다. 아니, 빛이 아니었다.
검은 것이 번쩍이고 있었다.
검은 벼락이었다.
당장에라도 땅으로 내리칠 것 같은 검은 벼락이 땅을 향해 활시위를 겨누는 것처럼 번쩍였다.
우우우웅-
하늘의 울음을 들으며 케일은 제 발치를 쳐다봤다.
어느새 백금빛이 그의 발까지 도달했다. 그리고 발을 지나 그의 몸을 지나쳤다.
백금빛의 막이었다.
검은 구름 아래에 존재하는 것들을 감싸는 거대한 백금의 막. 케일은 백금의 막이 제 허리를 지나 더 위로 커져가는 광경과 함께 에르하벤이 보였다.
마치 검은 구름을 백금의 막으로 지탱하려는 것처럼, 하늘을 떠받치듯 위로 펼쳐진 그의 두 손.
그런 에르하벤의 주위를 감싼, 최한, 메리, 로잘린.
그리고 그들 앞에 하얀 별.
케일은 웃고 있는 하얀 별이 보였다. 그는 마치 에르하벤이 하늘의 힘을 막을 수 없다는 듯이 여유롭게 굴면서 케일도 마찬가지라는 듯 웃어 보였다.
그 모습에 케일은 툭 내뱉었다.
“저 재수 없는 새끼.”
천 년을 살았든 말았든, 저거는 앞으로 재수 없는 새끼다.
-케일.
파괴하는 불, 짠돌이가 케일을 불렀다.
-우리는 벼락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다. 저 검은 빛깔을 파괴하는 것이다.
알고 있다.
“하나, 라온.”
“왜? 난 따라갈 거야.”
“나도 간다!”
손을 덜덜 떠는 하나, 그리고 에르하벤의 백금빛 막을 유심히 쳐다보는 라온. 둘의 대답에 케일은 담담하게 말했다.
“에르하벤 님의 막 아래에 숨어.”
“싫다니까.”
“싫다, 인간아!”
파직, 파지직.
라온과 하나는 시선을 돌렸다.
검은 구름 안에서 언제라도 땅으로 내리칠 듯 번쩍이는 검은 벼락이 내는 소리가 아니었다.
다른 벼락이었다.
적금빛의 벼락.
언제라도 하늘을 향해 치솟을 듯 번쩍이는 적금빛.
케일은 제 가슴께까지 올라온 백금의 막에서 벗어나 더 위로 올라가며, 검은 구름과 동등한 위치에 선 채 동료들에게 말했다.
“다 태워 버릴 거니까.”
그러니, 피해 있어.
-최대 출력으로?
짠돌이가 물었고, 케일은 답했다.
“어.”
케일은 온몸을 가득 채우는 힘을 느끼며 미소를 그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