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345
344화.
살고 싶고, 죽이고 싶다.
모순된 단어의 조합에 케일은 입을 다물었다.
그때, 한 사람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하얀 별이 용병왕 님을 노리고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시종 론이었다. 용병왕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을 표했다.
“그렇습니다.”
“…왜인지 연유를 물어도 되겠습니까?”
순간, 론은 용병왕의 올라가는 입꼬리가 보였다.
“알려 드려야죠. 몰란 가문의 마지막 가주셨는데.”
케일의 눈동자가 용병왕 버드 일리스에게로 향했다.
론 몰란.
과거 동대륙 뒷세계 5대 암살 가문 중 하나를 이끌던 수장. 그러나 ‘암’에게 가문이 몰살된 후, 아들과 함께 서대륙으로 온 자.
-인간아! 용병왕 해맑은 바보 아닌 것 같다! 똑똑하다! 맛 간 클로페 생각난다!
케일은 라온의 의견에 반박을 표하지 않았다.
어떻게 론의 정보에 대해서 알았을까?
론의 정보를 알고도 왜 이 여관에 굳이 찾아왔을까?
그 의문에 대한 답은 버드 일리스가 아닌 론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인명부를 봤나 보군요.”
인명부.
그 단어에 케일의 눈썹이 살짝 들렸다가 내려갔다. 그런 그에게 론이 말했다.
“용병 길드의 무서움은 동대륙 어디를 가나 용병이 존재한다는 점이죠.”
작은 도시 주점에 가도 용병이 한 명씩은 존재했다. 사람이 모이는 곳엔 반드시 사건이 생겼고, 이 사건을 해결하는 이들 중 대부분이 용병이었다.
케일의 입이 열렸다.
“정보력이 뛰어나겠네.”
버드 일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용병은 뒷세계, 그리고 밝은 곳, 어디도 가리지 않고 조건에만 맞으면 의뢰를 수행하지.”
선도 악도 없다.
오로지 스스로가 정한 기준에 따라 움직이는 세계.
어찌 보면 가장 철저한 비즈니스에 따라 행동하는 자들.
“그래서 정보가 중요해. 특히 강자에 대한 정보가.”
용병왕은 론을 보며 말했다.
“그래서 용병 길드에는 강자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어. 그걸 ‘인명부’라고 하죠. 론 몰란 가주님에 대한 기록도 있고요.”
얼굴, 이름, 출생. 용병들은 곳곳에 흩어져 강자에 대한 사소한 정보라도 모조리 긁어다 기록했다
왜냐면 자신의 몸이, 목숨이 모든 것인 용병들은 강자를 피해야 했으니까.
그리고 그 정보 덕분에 강자들은, 세상은 용병 길드를 두려워했다.
“최소한 십여 년은 더 전의 기록이었을 텐데. 그때의 얼굴로 지금 내 모습을 유추할 줄은 몰랐습니다.”
“뭐, 우연이 컸습니다.”
용병왕은 제 옆의 마법사 옆구리를 툭 쳤다.
“…야.”
살벌하게 낮은 목소리가 들려도 무시한 버드는 환한 미소로 말을 이었다.
“이 친구가 5대 가문 중 한 곳의 생존자였거든요.”
“…5대 가문?”
오랜만에 론의 목소리에 놀람이 서렸다.
그의 시선이 로브를 푹 눌러써 얼굴까지 가린 마법사에게로 향했다. 케일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그의 머릿속에 라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인간! 용병지부 길드장 금고 기억하나?
당연히 기억하지.
거기서 훔친 돈이 얼만데.
-거기 마법 금고 기억하나?
기억하지……?
-그거 만든 사람의 마나 느낌이 저 마법사한테서 풍긴다!
로잘린의 마나가 붉은색이듯이, 두 용의 마나가 각각 백금과 검은빛을 띠듯이, 마나에는 모두 각자의 느낌이 존재했다.
-아마 저 마법사가 그 마법 금고 만든 사람 맞을 거다! 반갑다! 인사하고 싶다!
…인사라니, 이 무슨 큰일 날 소리.
케일은 마법사에게로 향했던 시선을 슬그머니 돌렸다. 용병 길드장 방을 폭파시키고 난리를 쳤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케일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나중에 인사하자! 그 마법 금고 최상급 마법사가 만든 거다!
…싫다!
케일은 슬그머니 라온의 말을 흘려들었다.
그리고 마법사도 론에게 고개를 한번 꾸벅이고는 다른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잊고 싶은 과거입니다.”
그 말에 론은 더 이상 다른 것을 묻지 않았다.
어찌 되었든, 제 정체를 알아내 찾아왔으니까. 그리고 몰란 가주는 적어도 뒷세계에서는 유명했던 자였다.
몰락한 후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은 어느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는 노인에 불과했지만.
다시 용병왕이 대화의 중심에 섰다.
“아무래도 리브엔시 뒷세계와 용병 길드 사이에 벌어진 일들이 이 여관이 개업한 시기와 묘하게 겹치더라고요. 그래서 조사를 슬쩍 해봤는데, 아이구머니나! 제 옆의 이 친구가 론 가주님의 얼굴을 어디서 본 것 같다고 한 겁니다!”
무슨 신나는 전설 이야기를 하듯이 버드 일리스는 말을 이었다.
“이 친구가 똑똑하거든요. 그래서 당장 인명부를 살폈죠. 그랬더니 에그머니나! 인명부에 그려진 론 몰란 가주님이 나이가 드시면 딱 지금의 이 얼굴이겠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왔죠.”
시종 론은 저를 향한 용병왕의 탐색하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고 버드 일리스는 웃으며 덤덤하게 말했다.
“혹시 몰란 가문이, 론 몰란 가주님이 하얀 별에 숙이고 들어가서 뒷세계와 용병 길드를 헤집나 싶어서요.”
론의 입가에 삐뚜름한 미소가 걸렸다.
하얀 별에 숙이고 들어간다? 내가? 가족들을, 아내를 잃은 내가? 가문의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본 내가?
“…웃기는 애송이군.”
존댓말이 사라지고, 론은 용병왕을 애송이라 칭했다. 늘 냉정함을 유지하던 눈동자에 조금씩 그 안에 가둬두었던 불길이 비쳤다.
그때, 버드 일리스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와서 보니 제가 큰 착각을 했습니다.”
버드 일리스는 바로 사과의 말을 건넸다. 또 바로 이어 말했다.
“하지만 5대 가문 중 한곳은 ‘암’에게 자발적으로 숙이고 들어갔습니다.”
“…뭐?”
론은 몰랐던 사실이었다.
그는 지금껏 5대 암살 가문이 몰란 가문처럼 몰살당하거나 파괴된 줄만 알았다.
“우리 가문 이야기입니다.”
케일은 용병왕과 론을 보던 시선을 돌렸다. 로브를 쓴 마법사. 그가 누구도 보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퍼프 가문. 그곳의 서열 2위였던 숙부가 자기 쪽 사람들을 데리고 ‘암’에 제 발로 먼저 기어들어 갔죠.”
케일은 분명 저 마법사가 가문의 유일한 생존자였다는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숙부 무리와 ‘암’의 무리가 퍼프 가문을 몰살했습니다. 숨어 있던 저만 빼고요.”
서열 2위를 숙부라고 칭하는 마법사.
“제 어머니와 아버지, 형제들이, 모두가 죽었죠.”
퍼프 가문은 몰살되었으면서도 몰살되지 않았다.
마법사는 그 뒤로 다시 입을 열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암’과 하얀 별, 숙부 무리를 향한 그의 분노가 느껴졌다.
짧은 침묵이 내려앉았다.
이는 케일에 의해서 깨졌다.
“아직 할 말 다 안 끝난 것 같은데?”
버드 일리스의 입가에 미소가 짙어졌다.
서른을 넘게 산 그는 케일이 저보다 나이가 어린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의 행동에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바로 입을 열었다.
“하얀 별이 왜 나를 죽이고 싶어 하는지 알아?”
“방금 전에 말했던 것 같은데.”
케일은 술을 한 모금 마시며 답했다.
“네가 가진 타인의 능력을 알아보는 그 힘이 싫어서 죽이려거나.”
타인의 능력을 알 수 있다는 것.
굉장히 위험하면서도 매혹적인 힘이었다. 케일의 덤덤한 눈빛이 용병왕의 얼굴을 향했다.
“혹은 탐내거나.”
하얀 별은 그 힘을 없애고 싶거나, 탐내거나 둘 중 하나일 터.
버드 일리스는 입을 열었다.
“나는 고대의 힘을 지녔어.”
케일의 눈동자에 이채가 스쳐 지나갔다.
‘암’쪽 사람을 제외하고 고대의 힘을 지닌 사람을 처음 만났다.
동시에 의문이 들었다.
대충이지만, 그리고 제약도 있지만, 어쨌든 타인의 능력을 아는 힘.
“그건 무슨 속성이지?”
문득 케일은 지배하는 아우라가 생각났다.
그 힘은 따로 속성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다. 버드 일리스의 힘도 그런 것일까?
그러나 용병왕의 힘은 속성이 존재했다.
“바람.”
바람?
그게 바람의 힘이라고?
케일은 제가 가진 ‘바람의 소리’를 떠올렸다. 그 와중에도 버드 일리스의 말은 이어졌다.
“나는 냄새를 맡아.”
그의 표정이 은밀해지며 코가 찡긋거렸다.
“그리고 소리가 들려.”
투박한 손가락이 귀를 쓸어내렸다.
“아주 희미하게 그 사람의 냄새가, 분위기가, 능력이.”
버드 일리스는 케일을 응시했다. 그의 냄새가, 분위기가, 능력이.
“바람을 타고 나에게 전해져 와.”
버드에게 맡아지고 들려왔다.
바람을 타고서.
그래서 착각했다.
하얀 별과 이 눈앞의 친구를.
“고대의 힘을 소지한 자들은 그 속성에 따른 냄새가 나.”
버드 일리스는 제 콧가를 매만졌다.
“내가 하얀 별과 너를 구분한 가장 큰 이유가 뭔 줄 알아?”
“뭐지?”
케일은 차분하게 물었고 버드 일리스는 희열에 가득 차서 말했다.
“너와 하얀 별에게서 하나씩, 상대방에게서는 없는 향이 나.”
각자 하나씩 없다고?
케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의 눈동자가 에르하벤과 닿았다.
고룡은 동대륙으로 오기 전 케일에게 말했다.
‘하얀 별은 완전하지 않다.’
‘그 녀석은 너와 달리 속성의 균형을 이루지 못했어.’
자연의 속성.
그 균형을 이루지 못했다.
케일의 입이 열렸다.
“나에게는 하늘의 냄새가 없겠지?”
“맞아. 아네.”
버드 일리스는 어서 말하라는 케일의 눈빛에 바로 입을 열었다.
“하얀 별에게서 없는 향이, 냄새가, 너한테서 하나 나. 가장 희미하게 나는 향이지.”
가장 희미한 향?
케일은 지배하는 아우라를 제외하고 그가 가진 고대의 힘들을 떠올렸다.
일단 물과 불은 하얀 별이 가지고 있었다.
“무엇이지?”
“땅.”
…땅?
짱돌?
-나를 왜 부르나?
무서운 짱돌의 근엄한 목소리는 무시했다.
“하얀 별에겐 고대의 힘 중 땅의 힘이 없는 것 같다. 물론 세 달 전 이야기니 확실치 않지만.”
땅과 하늘.
케일과 하얀 별이 서로 가졌거나 가지지 못한 힘이었다.
다시 한번 더 케일과 에르하벤의 시선이 서로를 향했다.
고대의 힘은 속성의 문제로 서로 충돌한다.
그것은 몸에 무리를 주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기 위해 자연의 5대 속성으로 균형을 맞춘다.
하늘은 통상적으로 말하는 자연의 5대 속성이 아니다.
하얀 별. 그가 균형을 맞추기 위한 마지막 단추.
땅.
“어쨌든 하얀 별이 어느 순간부터 내 힘을 탐내더군. 아마도 나는 그가 땅의 힘을 찾기 위해서 내 힘을 탐내는 게 아닐까 싶어.”
용병왕은 차분해져 있었다.
“그래서 대놓고 도망 다니면서 하얀 별을 죽일 방도를 찾고 있지.”
웃음기가 사라진 그의 눈동자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대화의 어느 순간부터 그는 술을 한 모금도 마시지 않고 있었다.
“왜냐면, 하얀 별이 뒷세계와 용병 길드 모두를 장악해선 안 돼. 그렇게 되면 균형이 무너져.”
뒷세계, 그리고 일반적인 동대륙 세상.
그 사이에 있던 용병 길드.
‘암’에 의해 균형이 무너지면 결국 다른 동대륙 곳곳이 위험해질 수 있었다.
“그리고 용병들이 무자비하게 희생당해선 안 돼.”
홀로, 혹은 팀으로 움직이는 용병들.
그들이 유일하게 믿고 기대는 곳이 용병 길드다. 용병왕은 그 길드를 지켜야 할 책임이 존재했다.
“…하아.”
용병왕은 술병을 향해 손을 뻗었다.
속에 열이 차올라 술이 고팠다. 술을 마시면 더 속이 들끓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술병을 타고서 술이 그의 입으로 흘러들어 갔다.
“친구.”
케일이 입을 열었다.
“나는 케일 헤니투스라고 한다. 서대륙 로운 왕국, 헤니투스 백작가의 망나니지.”
오, 나도 망나닌데.
용병왕은 술을 마시느라 답하지 못하고 어서 말하라는 듯 고갯짓만 했다. 그런 그에게 케일이 말했다.
“내가 지금부터 두 가지 제안을 하려고 해.”
하얀 별을 죽일 거라던 케일의 말을 떠올리며 버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 말하라는 신호였다.
여전히 술을 마시는 그에게 케일은 말했다.
“첫 번째, 인명부.”
…용병 길드 인명부?
“그걸 나한테 보여줘.”
케일은 덧붙였다.
“몽땅.”
인명부를 몽땅 보여달라.
버드 일리스는 술병에서 입을 뗐다.
“…인명부는 천여 년에 달하는 기록이야.”
그 순간 버드는 환하게 웃는 케일이 보였다.
사악해 보였다.
진심으로.
“아.”
버드는 고개를 돌렸다.
흑발의 소드 마스터가 탄성을 흘리고 있었다. 동시에 케일의 머릿속으로 에르하벤의 목소리가 들렸다.
-똑똑하구나.
케일은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내뱉었다.
“버드 일리스.”
용병왕은 케일을 쳐다봤다.
“하얀 별.”
하얀 별. 그는 환생자다.
수없이 생을 반복한 자.
“난 그자의 역사를 알아야 할 것 같거든.”
환생자는 동서대륙 어느 곳에서나 태어났을 것이다. 그러니 동대륙, 서대륙 모두를 오가는 것일 터.
그리고 그는 강자다.
분명 그의 기록이 어떤 형태로든 남겨져 있을 것이다.
천여 년에 가까운 기록 속에서 모두 다른 외양을 지닌 채 다른 형태로.
‘약점.’
놈의 약점을 찾는다.
인명부를 훑어보며 그 속에 감춰진 하얀 별의 과거를, 행적을 샅샅이 뒤진다.
“…두 번째는?”
용병왕은 나직하게 물었다. 그리고 케일은 답했다.
아주 담담하게.
“네 앞의 드래곤 님을 살려.”
뭐?
용을 살려?
용병왕의 시선이 에르하벤에게로 향했다.
창백한 안색의 백금발의 남자. 하지만 이 자리에서 가장 강한 분위기를 가진 자였다.
톡. 톡.
용을 쳐다보던 버드 일리스는 테이블을 두드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케일이 자신을 쳐다보라는 듯 테이블을 살짝 두드렸다.
“그러면 네가 편히 살 수 있게 해줄게.”
죽을 걱정 없이.
“그리고 암도 정리하고.”
케일은 시종 론을 쳐다봤다. 그리고 용병왕에게 웃으며 말했다.
“하얀 별도 없애주마.”
용병왕은 하얀 별을 떠올렸다.
동시에 케일, 최한, 에르하벤, 그리고 라온이 있을 허공을 순서대로 바라봤다.
세상에 이런 전력이 한데 뭉쳐 다니는 게 가능할까?
케일은 천천히 와인이 든 잔을 들어 입가로 가져갔다.
“친구, 내 손을 잡아.”
용병왕은 붉은 와인을 삼키는 케일의 휘어진 눈꼬리가 사악해 보였다.
“응? 살고 싶다며?”
케일이 은밀히 속삭였다.
-인간! 방금 하얀 별보다 사악해 보이게 웃었다! 역시 인간 대단하다! 다음에 하얀 별한테 그렇게 웃어주자!
케일의 얼굴이 구겨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