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347
346화.
희망과 모험을 사랑하는 여관.
쾌적함과 친절하지만 듬직한 직원들, 웬만한 고급 식당 저리 가라 수준의 음식으로 자유 도시 리브엔시에서 새로이 떠오르고 있는 여관.
그곳의 3층이 침묵으로 가득 찼다.
‘그럼 내가 갔다 오면 되겠네.’
헤니투스 영지 출신, 20세 케일 헤니투스의 발언 이후 이어진 침묵이었다.
“어… 음…….”
용병왕 버드 일리스는 덤덤하게 웃어 보이는 케일을 쳐다보며 뭐라 입을 열려다가 주위 사람들 얼굴을 보고는 슬그머니 품에서 술병을 꺼내 들었다.
‘동대륙 정보가 정확하네.’
동대륙 정보통에게 들은 바로, 케일 헤니투스는 워낙 희생정신이 뛰어난 데다 이렇게 착하고 영웅적인 사람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라 평해진다.
지금 로운 왕국에 가서 장래 희망을 물으면 어린이들 대부분이 방패 공자를 외치고, 몇몇이 소드 마스터나 네크로맨서를 외친다고 한다.
용병왕 버드 일리스는 술을 마시며 가볍게 툭 던졌다.
“우리 친구, 아주 착하네.”
그리고 버드는 멈칫했다.
“착해? 누가? 내가?”
케일의 얼굴이 황당하다는 듯 일그러졌다.
“나 못된 편인데?”
버드는 케일 옆 일행의 얼굴이 더 일그러지는 것을 보며 저도 모르게 속마음을 툭 내뱉었다.
“취했냐? 아침 술 많이 하면 별론데?”
뭔 소리야.
케일은 버드 일리스의 헛소리에 이 녀석이야말로 아침부터 취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그의 머릿속에 목소리가 하나 들려왔다.
-희생하려는 건가?
짱돌은 또 왜 이래.
-인간아!
라온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인간아! 나는 지금 왕세자처럼 돌고 있다! 지금 공중에서 네 바퀴째 돌고 있다! 하얀 별보다 더 돌지도 모른다!
뭐래?
케일은 어쩐지 머리 위에 시원한 바람이 부나 싶었는데, 그게 모두 라온이 머리 위에서 빙글빙글 돈 탓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탁. 탁.
케일은 바닥을 두드리는 소리에 고개를 숙였다.
온이 고양이 앞발로 바닥을 탁탁 두드려 댔다.
냐아아옹.
홍은 케일의 종아리에 매달렸다. 더불어 슬그머니 다른 일행을 쳐다본 케일은 살벌한 론과 비크로스의 표정에 눈동자도 못 마주치고 시선을 돌렸다.
어째 갈수록 저 부자는 눈빛이 살벌해져 간다.
하얀 별보다 더 무섭다.
케일은 최한을 쳐다봤다.
담담했다.
‘역시.’
역시 차분한 것이 최한다웠다.
케일은 마지막으로 에르하벤 쪽을 쳐다보려다가 말았다. 지금은 왠지 고룡을 보기가 그랬다.
그 순간, 케일의 귓가로 고룡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람섬이라니.”
케일의 얼굴에 의아함이 담겼다.
에르하벤의 목소리에는 제 수명을 위해 케일을 그곳에 보내야 한다는 슬픔 이상의 것이 담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케일의 입이 열렸다.
“바람섬이 왜요?”
케일은 바람의 소리 주인인 도둑의 또 다른 힘이 있다는 소리에, 그 섬을 방문하는 일이 그다지 힘들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왠지 모르게 자신을 반길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나 에르하벤의 표정은 심각해져 갔다.
이는 론과 비크로스의 표정이 다른 일행보다 더 심각한 이유와 상통했다.
“서대륙에는 5대 불가사의 지역이 존재하지.”
헤니투스 영지 어둠의 숲, 카로 왕국 죽음의 땅 등등, 서대륙엔 5대 불가사의 지역이 존재했다.
“그리고 동대륙에는 불가사의 지역은 없지만 3대 금지(禁地)가 존재한다.”
론 부자의 얼굴이 굳은 이유였다.
3대 금지.
생명체가 함부로 그 땅을 밟는 것을 금하는 곳.
용병왕 버드 일리스의 입이 열렸다.
“동대륙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3대 금지에 대해 수도 없이 들으면서 자라지. 그곳은 위험하니까. 가면 죽는다고. 그리고 죽는 방식에 대해서도 전해져 와.”
3대 금지.
그 땅을 밟은 자들은 각기 다르게 죽었다.
그중 바람섬에 대한 이야기.
“‘바람이 지나간 자리에는 셀 수 없는 칼날에 베인 시체만이 존재한다’라고 말이야.”
용병왕은 안경알 너머 케일을 보며 은근히 떠보듯이 말했다.
“갈 수 있겠어? 드래곤 님도 금지라고 말하는 곳인데?”
하!
용병왕은 기가 찬 듯 웃는 케일이 보였다. 케일은 제 일행을 보며 버드의 물음에 답했다.
“어.”
못 가긴 뭘 못 가?
-저곳에 내 팽이채와 내가 훔쳤던 유물이 있어. 신의 물건이 아니라, 신을 모신다고 했던 자들이 만든 신전의 물건.
도둑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점점 더 열기를 띨수록 케일은 가볍게 답했다.
“버드, 내 친구. 네가 간 걸 내가 못 갈 것 같나?”
“뭐?”
케일은 술로 살짝 상기된 용병왕의 볼을 가리키며 말했다.
“술 깨고 길이나 안내해. 이 술주정뱅이 친구.”
“푸하하하!”
버드 일리스가 웃더니 동료 마법사에게 손바닥을 펼쳤다.
“야, 마법 스크롤 좀 빌려주라.”
“맡겨놨냐?”
퍼프 가문의 생존자는 퉁명스럽게 말하며 품 안에 마법 스크롤 뭉치를 꺼냈다. 모두 텔레포트 스크롤이었다.
“난 술 안 깨도 돼!”
버드는 함박웃음과 함께 텔레포트 스크롤을 케일 일행에게 건넸다.
그리고 말했다.
“난 늘 멀쩡하거든!”
“얼어 죽을.”
마법사의 목소리는 버드의 웃음소리에 묻혔다.
하아.
그 순간, 케일은 에르하벤의 한숨 소리가 들려왔지만 모른 척했다. 뭐라 말하고 싶어 입술을 달싹이는 고룡이 보였지만 케일은 제 옆의 그에게 살짝 속삭였다.
“약속은 지켜야죠.”
장수하게 해준다고 약속했으니 지켜야지. 안 그래?
케일은 일행을 보며 말했다.
“일단 섬까지는 못 가도 같이 갈 사람들은-”
케일은 시종 론이 인자하게 웃어 보이는 것이 보여 헛기침과 함께 말을 맺었다.
“론이 알아서 꾸려봐.”
“알겠습니다, 도련님.”
케일은 인자해 보이는 론의 얼굴을 외면하며 버드 일리스에게 물었다.
“버드, 어디로 가는 거지? 바로 섬으로는 못 갈 것 아닌가?”
용병왕은 케일의 물음에 씨익 웃으며 말했다.
“바람섬에는 쌍둥이 섬이 존재하지. 그 옆에 존재하는, 똑같은 형태의 똑같은 섬.”
으음.
비크로스가 침음을 흘렸다.
케일의 시선이 비크로스에게로 향한 순간.
“…술독.”
비크로스는 한 단어를 내뱉었다.
그에 케일은 이상하게 뒤통수가 시려와 황급히 버드를 쳐다봤다. 버드는 다시 술을 마시며 말했다.
“내 고향 섬이지!”
퍼프 가문 출신 마법사가 덤덤하게 이어 말했다.
“바람섬의 쌍둥이 섬. 동대륙 최고, 최대의 양조장을 형성하고 있는 섬.”
아주 담담하게, 무뚝뚝하게 보일 정도로 말을 이었다.
“술꾼들의 천국.”
누구의 천국?
3대 금지 옆에 그런 게 있다고?
“바가지 하나 들고 다니면 친절한 섬사람들이 하루 종일 술을 가득 채워주는 곳. 물보다 술을 구하기 쉬운 곳.”
…뭐야, 그게.
“아주 훌륭한 내 고향이지! 자랑스러운 내 고향! 나에게 늘 천국과 같은 곳! 술주정뱅이들의 천국!”
용병왕 버드 일리스의 얼굴이 점점 더 벌겋게 달아올랐다. 저건 신난 표정이었다. 그는 고향 섬에 대해 아주 커다란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케일! 내 술친구인 자네라면 분명 좋아할 거다! 거긴, 거긴-!”
버드 일리스가 감격에 가득 차서 말했다.
“정말 낙원이야!”
“술판이겠지.”
퍼프 가문 마법사가 혀를 차며 이어받았다.
-인간아! 용병왕 이상하다! 진짜 어딘가 똑똑한데 이상하다!
빙빙 돌기를 멈춘 라온이 외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용병왕은 꿋꿋하게 케일에게 다가와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우리 술내기라도 할까?”
허.
케일이 기가 차서 실소를 흘렸다. 하지만 그의 표정이 이내 달라졌다. 용병왕의 냉정한 눈동자가 보였다. 버드 일리스의 가볍지만 절대로 가벼워 보이지 않는 입이 열렸다.
“나중에 내가 서대륙에 용병 길드를 창설하고 싶은데, 내가 이기면 그걸 네가 도와주는 거야. 어때?”
이것 봐라?
케일은 피식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버드 일리스는 하얀 별 문제보다 더 먼 미래를 계획하며 케일에게 술내기를 제안했다. 케일은 그런 그의 말장난일지도 모를 내기에 기꺼이 함께하기로 했다.
버드 일리스가 실소를 흘리는 것과 달리 서늘한 케일의 눈동자에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을 때, 케일이 버드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입을 열었다.
“그러면 내가 이기면 말이야.”
무엇이 좋을까.
술내기에서 케일이 이기면, 무엇을 받아야 할까.
케일은 버드 일리스에게 가볍게 말했다.
“넌 내 탐- 아니.”
아이구.
실수로 탐지기라고 할 뻔했다.
버드 일리스의 특별한 능력. 하얀 별과의 싸움에서 필요했다.
“넌 내 비서 겸 시종이야.”
“…뭐?”
버드 일리스, 용병왕이 황당한 표정으로 케일을 쳐다봤다.
비서? 시종? 내가?
“기한은 6개월 정도.”
그러거나 말거나 케일은 덤덤하게 말했다.
“왜 질 것 같냐?”
용병왕은 저도 모르게 답했다.
“아니.”
“그럼 됐네.”
케일의 눈꼬리가 나른한 웃음을 그렸다.
“내기 성립이다.”
왠지 버드 일리스는 불안함이 치밀었다. 술이라면 어느 누구에게도 져본 적 없는 용병왕. 그의 오래된 친우가 그의 머릿속에 속삭였다.
-너 질 듯. 케일 헤니투스 파이팅.
퍼프 가문 마법사, 버드의 오래된 친우는 판단이 정확한 편이었다.
버드의 동공이 흔들렸다. 그 와중에 케일은 입을 열었다.
“가지?”
케일은 바람섬을 향해 움직였다.
***
“바로 네 고향 섬으로 이동하는 게 아니었나?”
케일은 정면을 응시했다.
안개로 가득 찬 바다가 보였다.
작지도 크지도 않은 배가 꽤 높은 파도에 출렁였다.
그 출렁임 위에 자리한 배에는 케일 일행과 용병왕, 그의 친우가 함께하고 있었다.
“내 고향 섬은 이방인들을 데려올 때는 텔레포트 주소를 공개하지 않아.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니까 이해 부탁해.”
케일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버드의 고향 섬으로 가지는 못했지만, 근처 섬으로 이동하자 한 시간이면 버드의 고향 섬에 닿을 수 있었다.
“그래도 우리 마법사 친구가 지금 속도를 높이고 있으니까, 빨리 도착할 거야.”
퍼프 가문 마법사가 마법을 사용하여 배가 빠르게 이동하도록 조종하고 있었다.
버드는 그런 친우를 가리키고는 입을 열었다.
“일단 내 고향 섬에서 며칠 묵으면서 바람섬을 지켜봐. 바로 보이니까. 그리고 네가 준비되면 바로 시작할 수 있도록 나도 준비해 놓을게.”
“…준비?”
케일의 물음에 버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 준비. 바람의 흐름을 봐야 할 거 아냐?”
칼날과 같은 바람들이 사방에서 몰아치는 곳.
버드는 아무리 바람 속성의 힘을 지녔다고 해도 패턴이나 흐름이 눈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용병왕은 그런 그에게 평온하게 답하는 케일을 볼 수 있었다. 심드렁한 얼굴로 바다를 보면서 하는 말.
“괜찮아. 내 고대의 힘이 길을 가르쳐 주겠지.”
“…응?”
“응?”
버드 일리스는 저도 모르게 되물었다.
케일과 버드의 시선이 부딪쳤다. 용병왕은 살짝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
“케일, 네 바람의 고대의 힘이 아무리 강력하다고 하더라도 그 힘만을 믿으면 안 돼.”
케일은 오해를 한 듯한 버드에게 차분하게 답해주었다. 그래도 하얀 별을 제외하고 처음으로 함께 움직이는 고대의 힘 소지자가 아니었던가.
“아니, 내 고대의 힘 주인이 이 섬과 관련이 있어서 말을 다 해주더라고.”
“…어?”
버드가 다시 한번 되물었다.
케일은 잠시 멈칫했다. 버드의 반응이 이상했다.
“…케일, 고대의 힘이 왜 말을 해?”
“…어?”
이번엔 케일이 당황했다.
고대의 힘이 왜 말을 하냐고?
“원래 고대의 힘 주인들이 말을 걸지 않아?”
“어?”
둘은 서로를 보며 ‘어?’만 내뱉었다. 버드 일리스는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뭔 소리야? 고대의 힘 목소리가 들린다니? 그게 말이 돼?”
뭐라고?
정말로, 케일은 당황했다.
그 순간, 고룡 에르하벤의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케일, 그게 무슨 소리지? 고대의 힘 주인들 목소리가 들린다고?”
…들리지요?
케일은 그간 이따금씩 당연하다는 듯 고대의 힘 주인들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들려왔다.
그게 원래 그런 게 아니었던가?
그 순간, 케일에게 고대의 힘 주인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앗, 몰랐구나.
짠돌이, 파괴하는 불이 말했다.
-몰랐나 보다. 이게 이상한 줄.
그 뒤는 부서지지 않는 방패의 먹보 신녀였다.
-헐, 대박.
-모를 수도 있지.
그다음에는 청아한 목소리의 하늘을 잡아먹는 물. 뒤이어 도둑.
마지막으로 짱돌이 근엄하게 내뱉었다.
-고대의 힘은 한 사람의 몸과 영혼에 새겨지는 힘.
인간, 혹은 자연에서 파생되는 고대의 힘.
-그래서 하얀 별은 자신의 몸에 새겨져 있던 고대의 힘을 후대에 남겼지. 그게 반쪽짜리 새로운 고대의 힘이다.
케일과 가짜 드래곤 슬레이어 시렘이 가졌던 용살자의 힘은 하얀 별의 몸에 새겨져 있던 고대의 힘.
-그리고 하얀 별은 영혼에 새겨둔 강력한 드래곤 슬레이어의 고대의 힘을 계속해서 제 영혼에 가둬두며 생을 거듭할 때마다 안고 갔지. 시간이 흐를수록 그 힘은 강해지고 완전해져 갔어.
한 사람이 생에 걸쳐 한 번이라도 고대의 힘을 얻으면 천운이라고 했다.
하얀 별은 가지고 있던 드래곤 슬레이어의 힘 외에 천여 년에 걸쳐 고대의 힘을 하나씩 모아갔다.
물론 이 일이 천 년이나 걸릴 만큼 오랜 시간이 필요한가 싶지만, 이는 하얀 별만이 아는 그의 사정이 있을 터.
케일은 하얀 별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참. 케일, 고대의 힘도 제대로 쓸 줄 모르는구나.’
그리고 그때 짱돌은 아직, 아직 더 있어야 하얀 별과 겨룰 수 있다고 했었다.
짱돌이 이어 말했다.
-하얀 별을 이기고 싶나?
당연히 이기고 싶었다.
-가장 손쉬운 방법을 알려주마.
케일은 이상하게 등 뒤가 서늘해져 왔다.
그 순간, 바람, 물, 불, 땅, 나무. 다섯이 동시에 말했다.
-우리를 없애라.
한 사람의 영혼에 깃드는 힘.
그렇기에 고대의 힘은 온전히 그 영혼에 속해야 비로소 완전해졌다. 하지만 지금 케일의 안에는 그 전 주인들의 의지가 남아 있었다.
그건 완전한 힘의 소유가 아니었다.
부서지지 않는 방패, 먹보 신녀가 말했다.
-우리를 먹어버려.
늘 배고프다고 말했던 그녀가 케일에게 담담하게 속삭였다.
-우리의 존재를 집어삼켜라. 우리의 목소리가 하나하나 사라질 때마다.
고대의 힘 전 주인들의 의지를 없애고 그들의 존재를 사라지게 할 때마다.
짠돌이, 짱돌, 먹보, 도둑, 하늘을 잡아먹는 물. 그들이 사라질 때마다.
-네가 강해져.
케일은 알 수 없는 기분에 휩싸였다.
없애고 강해지라고?
케일은 그간 고대의 힘 주인들과 그가 나눴던 대화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배고파.’
‘희생할 건가?’
고대의 힘 주인들이 했던 여러 말들이 케일의 머릿속에 똑똑히 남아 있었다. 그는, 케일은 기억하고 싶은 것들을 아주 정확하게 기억하는 사람이었으니까.
그 순간, 짱돌이 말했다.
-하지만 더 쉬운 방법도 있지.
케일의 표정이 달라졌다.
고대의 힘을 없애는 것보다 더 쉽게 하얀 별을 이기는 방법.
그 방법이 짱돌을 통해 케일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하얀 별에 버금가는 그릇을 지닌 인간이 있다.
순간, 케일의 손이 배 난간을 세게 잡았다.
-그 인간을 병기로 만들어.
병기.
하얀 별이라는 거대한 적을 없앨 수 있는 무기.
-고대의 힘들을 찾아서 그 인간에게 모두 속성별로 건네라.
한 사람을 무기로 만들어라.
-그리고 네 대신 하얀 별과 싸우게 만들어.
툭.
케일은 그의 양어깨에 올려진 감촉을 느꼈다.
“…케일 님?”
-인간아! 멀미하나?
최한의 손과 라온의 앞발이 각각 케일의 어깨 양쪽에 올려졌다. 케일의 시선이 투명화한 라온이 있을 쪽이 아닌 최한에게로 향했다.
원래라면 주인공이었어야 할 최한.
그렇다면 하얀 별과 싸우게 될 사람도 최한이었다.
환생자, 그리고 차원 이동자.
그는 저를 걱정스레 쳐다보는 최한이 보였다. 동시에 짱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지금 네가 보는 저 인간이 하얀 별에 버금가는 그릇을 지녔다.
한 인간을 병기로 만들어 하얀 별이라는 적과 싸우게 만들어라.
배가 파도를 따라 출렁인다.
케일의 입이 열렸다.
“빌어먹을.”
쉬운 길과 가장 쉬운 길.
케일은 순간 뱃멀미가 밀려올 것만 같았다.
-희생시킬 건가?
짱돌이 물었다.
그리고 케일이 답했다.
당연히.
“어렵게 가야지.”
한 번도 쉽게 살아본 적이 없는 케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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