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361
360화.
론은 시선을 돌렸다.
도서관 차가운 바닥에 대충 아무렇게나 몸을 눕힌 일행이 보였다.
특히 평균 9세와 최한, 비크로스는 지쳐 보였다.
그나마 에르하벤만이 케일의 근처 책장에서 기록서를 살피고 있었다.
그때였다.
기록서 도서관 입구로 한 사람이 들어섰다.
“…곧 있으면 일주일이야.”
버드 일리스였다.
일주일.
지금까지 케일이 이 공간 안에 머문 시간이었다.
그는 최소한의 생활을 위한 시간을 뺀 나머지 시간 내내, 잠도 줄이고 이 공간 안에서 책들을 뒤졌다.
“이제 좀 쉬는 게 어때?”
버드는 제가 말하는 와중에도 기록서를 읽는 케일이 보였다. 이제 두세 시간만 지나면 이곳에 머문 지 일주일이었다.
결국 버드는 한 가지 사실을 입에 올렸다.
“결국 첫 번째는 찾지 못했잖아?”
첫 번째.
일행의 표정이 흐려졌다.
고룡 에르하벤마저 책을 보던 것을 멈췄다.
하얀 별은 천여 년 동안 환생해 왔다고 했다.
그랬기에 구백여 년을 산 용 혼혈을 탄생시킬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가능했다.
‘그렇다면 분명 천여 년 전, 동대륙에서 첫 번째가 나와야 한다.’
에르하벤은 이미 케일에게 드래곤 슬레이어의 마을로 추정되는 곳이 동대륙의 ‘빛의 성’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렇다면 첫 번째 하얀 별은 더욱더 동대륙 강자 인명부에 기록되었을 확률이 높았다.
‘거기다 혹시 몰라서 이후의 이백여 년도 자세히 살폈지.’
하지만 첫 번째로 의심되는 자가 없었다.
물론 고대의 힘을 사용하거나 얻은 자들에 대한 기록도 몇 개 살펴보았지만, 하얀 별로 추정되는 정도의 파괴력을 지닌 고대의 힘 소유자는 없었다.
“케일, 생각해 봐.”
버드는 케일에게 다가갔다.
“분명 하얀 별은 힘을 숨긴 게 틀림없어. 약한 척하고 천 년을 버틴 거야. 그래서 인명부의 시선을 피한 거지.”
여기에 들어선 지 3일째 되었을 때 버드가 주장한 가설이었다.
“안 그래? 그가 환생자인 것도 모습을 드러낸 지금에서야, 천 년이나 지나서 알았다고. 인명부를 살펴본다고 그의 과거를 알 수 있을 것 같지 않은데.”
하지만 버드가 들을 수 있는 소리는 케일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사라라락. 사라락.
종이가 빠르게 넘겨지는 소리였다.
용병왕은 그 소리와 함께 얼굴에 벌겋게 열이 오르고 이마와 등에 식은땀을 한가득 흘리고 있는 케일의 모습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미친놈.”
결국 솔직한 심정이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용병왕은 며칠째 틈만 나면 소름 돋는 팔을 문질렀다.
조용히 책만 보고 있는 저놈이 걸어온 길이 보였다.
케일의 등 뒤로 수많은 책장들이 보였다.
모두 케일에게 읽힌 기록서들이 있는 책장이었다.
일주일.
일행이 많아봤자 두세 권의 기록을 살필 동안 케일은 일만여 권의 책을 읽었다.
오히려 그에겐 페이지를 넘기는 일이 체력에 부담이 될 것 같았다.
‘인간이야?’
인간의 기억력이 아니었다.
누구도 케일 헤니투스가 이런 능력을 가졌으리라 상상하지 못했으리라.
그러나 버드는 그런 능력을 소용없는 일에 쏟는 케일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때였다.
“인간-”
케일에게로 슬그머니 다가가는 존재들이 보였다.
온, 홍과 라온이었다.
“인간, 안 힘드나? 사과 파이 줄까?”
“땀이 뻘뻘 나는데.”
“쓰러지면 안 되는데.”
평균 9세들이 걱정 어린 얼굴로 케일 근처를 기웃거렸다. 그렇다고 완전히 가까이 다가가지는 못했다.
땀까지 흘리며 책을 읽는 그에게 쉬이 접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 인간!”
하지만 이내 라온이 케일에게 달려들었다.
케일이 다음 기록서를 향해 손을 뻗다가 비틀거렸다.
그의 몸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온몸에 열이 펄펄 끓은 채, 케일이 쓰러지려 했다.
“인간, 인간!”
“도련님.”
론이 비틀거리는 케일을 부축했다. 이곳에 와 처음으로 비틀거린 케일의 모습에 일행이 놀라 다가갔다. 버드도 마찬가지였다.
그 순간, 버드는 론에게 부축을 받은 채로 저를 쳐다보는 케일의 시선이 보였다.
그 시선에 저도 모르게 다가가던 것을 멈췄다.
소름 돋는 시선이었다.
열과 피로로 가득한 얼굴과 다르게 조금의 온기도 느껴지지 않는 서늘한 눈동자.
그 눈동자가 버드를 응시한 채 입을 열었다.
“역대 용병왕에 대한 기록도 있네.”
버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당연하지. 우리도 강자니까.”
그 순간, 버드는 올라가는 케일의 입꼬리가 보였다.
“여기에 하얀 별로 추정되는 자는 없는 것 같군.”
“그렇다니까!”
버드는 그제야 케일이 포기했다 싶어 걱정 어린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이만 쉬어. 미래를 생각할 때야! 넌 머리도 똑똑한 놈이 왜 이리 부질없-”
“용병왕.”
케일이 버드의 말을 끊었다.
“용병왕? 그게 왜?”
그에 버드는 되물었다.
용병왕이 왜?
“없어.”
“어?”
다시 되묻는 버드를 보며 케일은 점점 더 환한 미소를 지었다.
이 인명부들의 정체를 알 것 같았다.
동대륙의 강자들 대부분이 기록된 인명부들.
그런데 가장 명확해야 할 존재가 없다.
“초대 용병왕.”
케일은 첫 번째 인명부를 작성할 당시, 용병 길드가 가장 기록하기 쉬웠음에도 없었던 존재를 언급했다.
“초대 용병왕의 기록이 없어.”
순간 버드의 표정이 내려앉았다.
그는 크게 한 대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았다.
지금껏 별달리 생각하지 않았던 부분.
“…설마?”
버드를 비롯한 다른 용병왕들의 기록은 존재했다.
케일의 입이 열렸다.
“초대 용병왕. 그놈은 어떤 놈이지? 무슨 힘을 썼지?”
케일의 미소가 환하게 지어졌다.
“그놈이 하얀 별일 것 같은데? 왜 내 감이 그렇게 말하지?”
제 가족과 친족을, 한 마을을 몰살하고 세상에 나왔을 하얀 별.
그 강한 놈은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혼자였다.
당연히 기반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리고 제 처지에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일이 필요했을 것이다.
용병.
누구나 될 수 있는 직업.
강한 자라면 더욱더 기반을 다지기 쉬운 직업.
무엇보다 과거를 굳이 들춰내지도, 들킬 일도 거의 없는 일.
그리고 이 기록 보관소에 초대 용병왕의 기록은 조금도 없었다.
하얀 별.
그놈이 스스로를 숨기고 감추려고 했다면.
“초대 용병왕, 그자의 기록은 어디 있지?”
케일의 눈동자가 현재의 용병왕과 그의 어깨 너머 기록서들을 담고 있었다.
“…여기에는 없다.”
버드는 당황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없어. 정말로.”
케일을 바라보는 그의 동공이 흔들렸다.
“정말, 하나도 없어. 초대 용병왕이라는 자리와 이름은 남아 있지만. 그가 만든 용병 길드 시스템은 천 년이 지나도 남아 있는데!”
버드는 이제야 이상함을 깨달았다.
너무나도 당연히 여겨 별로 깊이 생각하지 않았던 사실이 제대로 머릿속 수면 위로 올라왔다.
왜냐면 찾아봤었으니까.
“내가 처음 용병왕이 되었을 때 말이야. 이상했거든. 초대 용병왕만 그가 가진 힘이나 인생에 대한 내용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지 않았으니까!”
버드는 답답함과 동시에 선명해지는 머릿속을 주체 못 하고 제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그래서, 그래서 말이야. 내가! 여기 자유 도시 도서관이랑 동대륙 곳곳의 도서관에 다 연락해서 초대 용병왕에 대한 자료를 부탁했었다?”
정신없어 보이는 버드와 달리 케일은 담담하게 물었다.
“부탁했는데?”
하!
버드는 탄식과도 같은 웃음을 흘렸다.
“내가 확인한 내용이 뭔 줄 알아?”
소드 마스터이자 용병왕이었지만, 버드는 어릴 적부터 책을 읽고, 무언가를 찾고 생각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런 그가 찾아낸 초대 용병왕에 대한 기록.
“천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동대륙에서 수많은 왕국들이 탄생하고 멸망하는 동안 자리를 지킨 거대한 세력의 토대를 만든 위대한 용병왕. 그는 당시 용병들의 우상이었으며, 용병들은 그를 위해 움직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버드는 낮게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그게 끝이다?”
동대륙에서 모은 모든 초대 용병왕에 대한 내용은 그것뿐이었다.
용병 길드 초기에 대한 기록은 상세히 남아 있는데 말이다.
“…난 그냥 전설 속 영웅, 그런 거라서 저딴 기록만 남아 있는 줄 알았는데.”
그는 안경알 너머 지친 얼굴로 웃고 있는 케일을 보며 입을 열었다.
“일부러 안 남긴 거야?”
“모르지.”
케일은 단호하게 답했다.
“몰라. 초대 용병왕이 하얀 별일지 아닐지. 아직 정확한 단서가 없으니까. 하지만.”
그 순간, 최한이 입을 열었다.
“의심은 해볼 수 있겠군요. 초대 용병왕은 어느 순간 뚝 세상에 나타난 인간이니까요.”
최한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버드는 이상하게 그 미소가 씁쓸하게 보였다.
툭. 툭.
케일은 최한의 어깨를 두드리며 입을 열었다.
“어느 순간 세상에 뚝 나타난 것은 상관없어. 그건 그럴 수도 있어.”
최한의 미소가 사라지며 케일을 응시했다. 하지만 케일은 버드를 비롯한 다른 일행을 보며 말했다.
“하지만 그 이후에 남겨진 그 사람의 역사가, 기록이 조금도 없다는 건 의심해 볼 만하지.”
최한은 그 순간 고개를 돌려 저를 쳐다보는 케일이 보였다.
문득 최한은 케일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헤니투스 영지 대 파에른 왕국의 전투가 발발했을 때.
‘네 차례다.’
‘…제가 할 일이 있었습니까?’
‘네 힘을 다 써라.’
‘…새로운 역사입니까?’
최한은 제 물음에 케일이 했던 답이 문득, 정말로 문득 머릿속에 떠올랐다. 선명하게.
‘그래. 네가 이곳에 써 내릴 너의 역사지.’
최한은 슬그머니 미소를 그려 보였다.
케일의 눈동자는 그제야 자연스럽게 최한에게서 버드에게로 옮겨졌다.
“그리고 있잖아.”
하얀 별과 초대 용병왕 이야기로 정신이 없던 용병왕.
그는 케일이 다시 새로운 화두를 꺼내려는 모습에 이상하게 서늘함이 밀려왔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자신이 먼저 말을 꺼내 버렸다.
“초대 용병왕에 대한 추측을 일주일 동안 했을 리는 없을 것 같은데?”
버드는 침을 삼키며 이어 말했다.
“안 그래? 그 정도면 백 년의 기록만 봤어도 됐을 텐데, 너는 일주일 내내, 최소 수천 권의 기록서를 모두 살폈잖아. 그건 왜 그런 거야?”
일행도 그 물음에 동의를 담아 케일을 바라봤다.
그리고 여전히 웃고 있는 케일을 볼 수 있었다.
“내가 하려던 이야기가 그 답이 될 것 같은데.”
케일은 초대 용병왕의 존재에 대해 추측하면서도 이 기록서들을 살폈다.
이상했으니까.
이상한 찜찜함이 그를 건드렸으니까.
“여기가 정말 강자만을 기록해 두기 위한 공간일까?”
동대륙 강자들에 대한 기록이 남겨진 이 공간.
“만약에 정말로, 이 인명부의 시작이 하얀 별이 맞다면 말이야.”
그렇다면 그놈이 동대륙 강자에 대한 기록을 남길 필요가 있을까?
아무리 용병 길드를 크게 키우려는 야망을 지녔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최후의 드래곤 슬레이어.
어쩌면 인간 중 가장 강했을 놈이 다른 강자들을 두려워해?
그 의문이, 일주일 내내 케일이 기록들을 살펴보게 만들었다.
“이 강자들에 대한 인명부가, 이 기록들이 조금 다르게 보이더라고.”
하얀 별.
지금까지 그가 했던 일 중 하나.
그리고 동대륙 여러 강자들에 대한 기록.
그 두 가지가 맞물려지며 케일의 머릿속에 하나의 가설을 만들었다.
“인간이 살면서 고대의 힘을 하나라도 얻으면 그건 천운을 타고났다고 하지. 그만큼 고대의 힘을 얻는 건 힘든 일이라고 하더군.”
아.
에르하벤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도 무언가를 깨달은 것이다.
“이 기록들 속에는 자신이 가진 고대의 힘을 드러낸 강자들이 기록되어 있어.”
케일은 눈을 감았다. 기록해 둔 정보들이 그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강자에 대한 기록이라는 말에 혹해 놓칠 수 있는 정보들.
강자들이 곁다리 힘으로 많이 사용했던 고대의 힘.
그에 대한 정보들도 이 천 년의 기록들 속에 남겨져 있었다.
아직 케일이 모두 본 것은 아니지만, 동서대륙에서 고대의 힘에 대한 기록이 이리 많이 모여 있는 곳은 여기뿐이리라.
“그리고 말이야.”
감고 있던 눈이 서서히 떠졌다.
“고대의 힘을 가장 쉽게 얻는 방법은.”
버드는 저도 모르게 머리카락이 쭈뼛 섰다.
“그 소유자를 죽이고 흩어지는 고대의 힘을 가지는 거야.”
버드는 주먹을 쥐었다가 폈다를 반복했다. 쥐가 날 것 같았으니까.
그런 그에게로 케일이 물었다.
“초대 용병왕이 지금 살아 있다면, 이 장소를 몰래 숨어 들어올 수 있겠지?”
미소 짓는 케일의 손가락이 버드를 가리켰다.
“너처럼 말이야.”
하얀 별이 초대 용병왕이라면, 그는 이 장소에 몰래몰래 들어와 정보를 확인했을 것이다.
자주 올 필요도 없었다.
십 년, 혹은 몇십 년 만에 한 번씩 들러 확인하면 될 것이다.
그가 필요로 하는 고대의 힘 소유자를 찾기 위해서.
“하, 하하.”
버드는 케일이 웃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분명 소름이 돋는데, 그도 이상하게 웃음이 지어졌다.
알 것 같았으니까.
버드의 입이 열렸다.
“하얀 별은 내 고대의 힘을 가지려고 하지.”
하얀 별은 현재 자연의 오대 속성 중 땅의 힘만 없었다.
“내 고대의 힘에 이 기록들만 있으면, 하얀 별은 땅 속성 고대의 힘을 얻기 수월해지겠어.”
그래서.
“그래서 그놈은 나를 죽이려고 했던 거야. 그리고 ‘암’을 통해 용병 길드를 잡아먹으려고 하고.”
천여 년 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하얀 별은 요즘 숨어서 행동하지 않았다.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왜냐면 그도 급해졌으니까.”
이번에는 버드의 손가락이 케일을 가리켰다.
“너라는 놈이 나타나서 말이야.”
하얀 별은 케일 같은 놈을 처음 보았을 것이다.
천운이 따라야 하는 고대의 힘. 그걸 두 개 가지고 있는 것도 신기하건만, 이놈은 다섯 개가 넘었다.
그리고 하얀 별이 찾는 땅의 힘도 지녔다.
“그놈은 너를 죽여 땅의 힘을 가지거나, 아니면 너한테 죽음을 당하거나 그 두 길밖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길 거야.”
버드는 케일이 웃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의 입이 열렸다.
“급한 거야. 그놈도.”
케일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지만, 웃었다.
생사의 줄을 타는 것은 이미 십오 년이 넘게 김록수가, 케일이 해오던 짓이었다.
그의 입이 열렸다. 담담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래. 우리처럼.”
우리처럼 하얀 별도 급했다.
서로가 서로의 목숨 줄을 끊어야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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